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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水經注》

汾水

작성자붉은까마귀|작성시간26.06.17|조회수18 목록 댓글 0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지금의 산서성 서쪽의 汾河라는 하천을 고대 汾水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다음 기록들은 《水經注》를 설명하기 위해 인용한 기록들 입니다.

山海經曰:《北次二經》之首,在河之東,其首枕汾,曰管涔之山,其上無木,而下多玉,汾水出焉,西流注于河。

山海經曰:《北次二經》의 시작은, 하수의 동쪽이며, 그 분수가 시작되는 곳을 , 관잠산이라고 하는데,

정상에는 나무가 없고, 산기슭에는 옥이 많이 있으며. 분수는 이곳에서 발원하여 서쪽으로 흘러 하수와 합류 한다.

위 지도는 중공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가 비정하는 管涔山의 위치는 입니다.

《十三州志》曰:出武州之燕京山。

亦管涔之異名也。

其山重阜脩巖,有草無木,泉源導于南麓之下,蓋稚水濛流耳。

又西南,夾岸連山,聊峯接勢。

劉淵族子曜嘗隱避于管涔之山,夜中忽有二童子入,跪曰:管涔王使小臣奉謁趙皇帝。

獻劒一口,置前,再拜而去。

以燭視之,劒長二尺,光澤非常,背有。

《十三州志》曰:무주의 연경산에서 나온다.

(연경산은) 관잠산의 다른 이름 이다.

그 산은 가파르고 험준하며, 풀은 있지만 나무는 없고, 샘물이 발원하여 남쪽 기슭으로 흐르는데,

그저 잔잔하게 흐르는 작은 도랑일 뿐이다.

또 사남쪽에 연산의 계곡 연안을 흐르는데, 봉우리들과 접하고 있다.

유연족이 관선산에 숨어 지내고 있을 때, 어느 날 밤, 두 동자가 갑자기 들어와 무릎을 꿇고 말했다. : 관잠왕께서 조나라황제께 문안드리려고 저를 보내셨습니다.

그는 칼을 바치고 두발 벌하고 떠나 갔다.

촛불에 비춰 살펴보니, 그 칼은 길이가 2척이 였고, 광택이 뛰어났으며,문양이 있었다.

燕京山管涔山의 다른 이름이다?

현재 중공 역사는 공식적으로 燕京山에 관한 설명이 없습니다.

중공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가 어느 지명이나 산천에 관한 설명이 없다 라는 것은

고대의 역사 기록이 현재 중공 역사가 비정하는 것과 분명하게 다른 경우 입니다.

고대 중국의 地名들은 대부분 春秋時代의 나라 이름에서 비롯된 것이며,

이와 같은 地名은 지금 까지 어어져 온 것입니다.

즉,이라는 이름은 燕國이 있었던 땅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이 때문에 燕京의 의미는 "연나라 서울"을 의미하며, 연나라 서울은 지금의 北京이라는 것은

역사 해석의 기본적 상식 입니다.

이 때문에 지금의 북경 동북쪽에 燕山이라는 산이 비정되어 있는 것입니다.

管涔山이 있는 곳으로 비정되는 곳은 역사적으로 燕나라 영토 였던 적이 없는 곳입니다.

또, 지금의 汾河라는 하천은 발원 하면서는 남쪽으로 흐르다가 서남쪽을 흐르는 하천 입니다.

그러나 汾水라는 하천은 발원하면서 부터 서쪽으로 흐른다 라는 것입니다.

필자는 山海經을 춘추시대 이전에 쓰여진 역사서로 추정 합니다.

왜냐 하면, 山海經管涔山이라고 기록한 이유는 山海經이 쓰여진 때는

이라는 나라가 존재 하지 않았기 때문에,이라는 땅 이름 역시 존재 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 《十三州志》는 北涼의 학자 阚駰(간인)이 편찬한 지리서 이며, 한무제가 설치한 13주의 현, 산, 하천, 유적지, 풍습, 민족 등에 대한 기록을 담고 있으며,西晉 오호십육국시대 서북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기록하고 있는 지리지 입니다.

"西晉 오호십육국시대 서북 지역의 역사와 지리를 기록하고 있는 지리지" 이다?

지금의 산서성이나, 지금의 북경일대는 어떻게 해석을 해도 西晉의 서북쪽일 수 없습니다.

즉, 管涔山의 실제 위치는 西晉의 서북쪽에 있었음을 의미하는 것입니다.

다음은 《周禮》의 기록 입니다.

冀州浸曰汾

분수는 기주를 적신다.

현재 동아시아 역사 프레임에 따르면, 지금의 汾河라는 하천이 흐르는 산서성 일대는

그 어느 때라도 冀州에 속했던 적이 없는 땅이며, 幷州에 속한 땅 입니다.

《地理志》曰:汾水出汾陽縣北山,西南流者也。

漢高帝十一年,封靳彊爲侯國。

後立屯農,積粟在斯,謂之羊腸倉。

山有羊腸坂,在晉陽西北,石隥縈行,若羊腸焉,故倉坂取名矣。

漢永平中,治呼沱、石臼河。

按司馬彪

《地理志》에 따르면, 분수는 분양현 북산에서 발원하여 남서쪽으로 흐른다.

한 고조 11년, 진강을 제후국으로 제후국에 봉했다.

이후 이곳에 농경지가 조성되었고, 곡식을 저장하기 위해 양창창이라고 했다.

산에는 양장판이 있었으며, 진양 서북쪽에 있으며, 험하고 구불 구불한 돌 언덕을 오르면 양창반이 있는데,

이 때문에 옛날에는 창판취라고 불렀다.

한 영평 연간에는 호타하와 석구하도 이곳에서 다스렸다.

北山은 북쪽에 있는 산으로도 해석할 수 있지만 이 기록의 北山愚公移山北山으로 보입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呼沱河를 위 지도와 같이 비정하고 있으며, 石臼河는 설명하지 못합니다.

또 현재 중공 역사는 羊腸坂을 지금의 하남성 沁陽에서 산서성 晉城 까지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지금의 하남성 沁陽에서 산서성 晉城은 지금의 汾河라는 하천과 아무런 관련이 없는 곳입니다.

《後漢郡國志》,常山南行唐縣有石臼谷,蓋資承呼沱之水,轉山東之漕,

自都慮至羊腸倉,將憑汾水以漕太原,用實秦、晉。

苦役連年,轉運所經,凡三百八十九隘,死者無算。

拜鄧訓爲謁者,監護水功。

訓隱括知其難立,具言肅宗,肅宗從之,全活數千人。

和熹鄧后之立,叔父陔以爲訓積善所致也。

羊腸即此倉也。

又南逕秀容城東。

《후한군국지》에 따르면, 상산 남쪽으로 가면 당현에 흥탕현에는 석구라는 계곡이 있는데,

이 계곡은 호타의 물이 모여 산동으로 곡식을 시어 나른다.

都慮(도노)에서 양창창까지 연결되는 분수는 태원에서 秦나라와 晉나라로 곡식을 운반 한다.

수년간 389개의 고개를 넘는 험난한 고단한 노역의 여정으로 수많은 인명 피해가 발생한다.

등훈은 임금을 알현하고 물을 관리 하는 감독관으로 임명되었다.

생략.

생략.

양창은 창고다.

더 남쪽으로 수용성을 지나간다.

위 기록을 현재 동아시아 역사 프레임으로 해석을 하면, 논리적 모순이 될 수 밖에 없습니다.

《魏土地記》曰:秀容,胡人徙居之,立秀容護軍治。

東去汾水六十里,南與酸水合,水源西出少陽之山,東南流注于汾水。

汾水又南出山,東南流,洛陰水注之。

水出新興郡,西流逕洛陰城北,又西逕盂縣故城南。

《위토지기》에 따르면, 수용군은 호인들이 이주해와서 거주 하는 곳으로, 수용도호부를 세우고 군대를 두어 다스린다.

수용군은 분수 동쪽 60리 떨어진 곳에 위치하며, 남쪽으로 흘러 산수와 합류 하여,

준수는 소양산에서 발원하여, 동남으로 흘러 분수 에서 모인다.

또 분수는 남쪽에서 나와 동남쪽으로 흘러 낙음수에서 모인다.

낙수는 신흥군에서 나와 서쪽으로 흘러 낙음성 북쪽을 지나 또 서쪽으로 흘러, 옛 맹현의 남쪽에 있는 옛 성을 지난다.

《魏土地記》는 현전하지 않는 역사 지리지이며, 北魏 때에 편찬된 역사서로 추정되며

오직 《水經注》에 인용되어 있는 北魏의 강토를 기록한 역사 지리지 입니다.

다음은 중공 维基百科,自由的百科全书가 설명하는 秀容 입니다.

秀容郡,中国南北朝时设置的

北魏永兴二年(410年)置秀容郡,治所在秀容县(今山西省忻州市西北五十五里杨庄附近)。

辖境相当今山西忻州市原平市等地。

太平真君七年(446年)并肆卢郡敷城郡二郡入秀容郡,属肆州

东魏天平二年(535年)侨置恒州于秀容郡城,北齐废秀容郡。

서기 410년, 북위 영흥 2년에 수룡군이 설치되었으며, 치소는 수용현(현재 산서성 흔주시 북서쪽 55리 떨어진 곳)이다.

수룡군의 관할 구역은 대략 현재의 산서성 흔주시와 원평시 일대다.

446년, 태평진군 7년에 병주 사로군과 부성군을 통합하여 수용군이 되었고, 이후 사주에 속하게 되었다.

서기 535년, 동위 천평 2년에 수용군에 항주가 창설되었으며, 수용군은 북제 시대에 폐지되었다.

현재 중공 역사는 酸水洛陰水를 설명하지 못합니다.

왜냐하면 지금의 汾河 지류 가운데에는 酸水洛陰水로 비정할 만한 하천이 없기 때문입니다.

春秋左傳‧昭公二十八年》,分祁氏七縣爲大夫之邑,以盂丙爲盂大夫。

洛陰水又西,逕狼孟縣故城南,王莽之狼調也。

左右夾澗幽深,南面大壑,俗謂之狼馬澗。

舊斷澗爲城,有南、北門,門闉故壁尚在。

洛陰水又西南逕陽曲城北,

春秋左傳‧昭公二十八年》기씨 7 현을 나누어 대부의 읍이라하고, 맹병을 맹대부로 했다.

또, 낙음수는 서쪽으로 흐르며, 랑맹현 옛성 남쪽을 지나, 옛 왕망의 랑조다.

좌우에는 협곡에 , 남쪽에는 랑마간이라는 깊은 계곡물이 있다.

옛 단간을 성이라 하며, 남문과 북문이 있으며, 성문의 성벽이 아직도 남아 있다.

낙음수는 남서쪽으로 흐르며 양곡성의 북쪽을 지난다.

春秋左傳昭公(前541年〜前510年)은 魯나라 25代 임금이며, 현재 동아시아 역사 해석으로의

춘추시대 魯나라의 위치는 산동반도 泰山의 남쪽 입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祁氏七縣은 晉나라의 대부 였던 祁盈(기영)이 살해된 후,

晉나라는 기영의 영토를 7개의 구역으로 나누었다."라고 해석을 합니다.

그러나 春秋左傳‧昭公二十八年》,"分祁氏七縣爲大夫之邑,以盂丙爲盂大夫。"의 이 기록은

魯나라 昭公이 祁氏의 땅을 七縣으로 나누어 盂丙을 大夫로 세웠라는 것입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盂丙을 다음과 같이 설명 합니다.

역사 문헌에서 "맹병"은 주로 춘추시대 晉나라의 대부(일부 사서에서는 "맹병"으로 표기)를 가리킨다.

그는 晉나라의 황제 위선자에 의해 맹제(현재의 산시성)의 고위 관리로 임명되어 유명해졌다.

그의 후손 중 일부는 이 지명을 성씨로 사용하기도 했다.

또한, 춘추시대 魯나라에도 동명이인이 있었다.

위 기록의 盂丙이 晉나라 사람인지, 魯나라 사람인지는 이 글을 읽고 계신 귀하가 판단 하시기 바랍니다.

현재 중공 역사는 洛陰水는 설명조차 하지 못하면서 祁氏七縣의 위치는 산서성 중부 일대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魏土地記》曰:陽曲,胡寄居太原界,置陽曲護軍治。

其水西南流,注于汾水。

汾水又南逕陽曲城西南注也。

東南過晉陽縣東,晉水從縣南東流注之。

《魏土地記》曰:양곡은 태원에 경계에 거주하던 호의 거주지였으며, 양곡의 호군이 설치되어 다스렸다.

양곡수는 서남쪽으로 흘러 분수와 만난다.

분수는 또 양곡성 남쪽을 지나 서남쪽에서 모인다.

그리고 분수는 동남쪽으로 흘러 진양현 동쪽을 지나며, , 진수를 따라 진양현 남동쪽을 흘러 모인다.

현재 중공 역사는 晉陽縣=太原으로 비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위 기록에서 보듯이 晉陽縣 太原은 별개의 지명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위 지도에서 보듯이 지금의 太原의 구 도심은 汾河의 동쪽에 있으며,

지금의 汾河太原의 동남쪽을 흐르는 것이 아니라 남쪽으로 흐르는 하천 입니다.

太原郡治晉陽城,秦莊襄王三年立。

태원군은 진양성에서 다스렸으며, 진장양왕(기원전 281년~기원전 247년) 3년에 세워 졌다.

尚書所謂既脩太原者也。

태원을 복구한 사람들은 태원 사람들이다.

《春秋說題辭》曰:高平曰太原。原,端也,平而有度。

높은 평평을 태원이라고 하며, 원은 근본과 끝을, 평은 헤아리다 이다.

廣雅曰:大鹵,太原也。

대로를 태원이라고 한다.

《廣雅》는 삼국시대 曹魏의 학자 張揖이 227년경에 편찬한 중국 고대의 백과사전식 어휘집(훈고학서)입니다.

현존하는 중국 최초의 어휘 사전인 《爾雅》의 체제를 모방하여 그 내용을 대폭 확장했기 때문에

"이아를 넓혔다'"라는 뜻에서 《廣雅》라는 이름이 붙었습니다

《釋名》曰:地不生物曰鹵,鹵,罏也。

땅에서 생물이 자랄 수 없기 때문에 소금 땅이라고 했으며, 로는 罏다.

는 는"소금 밭" 또는 "소금이 나는 땅"을 의미 합니다.

따라서 太原이라는 땅은 소금을 채취 하는 땅이 였던 것으로 보입니다.

"나귀" 또는 "술항아리를 올려 놓는 흙으로 된 받침대"라는 의미로 쓰입니다.

따라서 의 최초 의미가 무엇인지는 알 수가 없습니다.

《穀傳》曰:中國曰太原,夷狄曰大鹵。

중국을 태원이라고 하며, 이적을 대로 라고 한다.

太原을 차지한 나라를 中國이라고 했던 것입니다.

古代에는 소금은 대단히 중요한 광물이며, 소금이 나는 땅을 차지한 나라가 천하의 패권을 차지 했던 것으로 보이며

太原은 지금의 카스피 해 또는 아랄해 연안과 가까운 곳에 위치 했을 가능성이 큽니다.

匈奴의 어원인 淳維의 의미는 "소금기가 있는 땅" 입니다.

夫餘의 의미는 "소금기가 있는 땅을 다스리다" 입니다.

십수년전 필자가 이와 같은 해석을 하면서도 필자는 동아시아 역사가

西域에서 일어난 역사라는 것은 꿈에서도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단언컨데, 지금의 汾河는 절대로 고대 汾水 일 수 없는 하천이며, 현재 산서성 太原은 역사 공정에 의한 짝퉁입니다.

필자 해석의 옳고 그름은 이 글을 읽고 계신 귀하가 판단 하시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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