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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史記》

《史記》 卷三 殷本紀 第三, 成湯

작성자붉은까마귀|작성시간26.06.09|조회수12 목록 댓글 0

成湯,自契至湯八遷。

성탕은 계에서 탕에 이르기 까지 8번을 옮겼다.

는 帝이며 帝嚳은 황제헌원의 長子 입니다.

즉, 夏나라를 세운 成湯은 황제헌원의 후손 입니다.

황제헌원의 아들인 昌意의 아들이며 顓頊 임금의 伯父가 帝嚳 입니다.

즉, 夏, 殷 왕조의 혈통은 모두 황제헌원의 씨 입니다.

황제헌원은 25명의 아들이 있었으며 그중 14명만이 性氏를 받았다고 하며,

신라 김씨의 시조로 알려져 있는 少昊金天氏 역시 황제 헌원의 여러 아들 중 한명입니다.

少昊金天氏가 신라김씨의 先祖가 맞는다면, 황제헌원과 堯, 舜

그리고 夏, 殷의 역사는 우리 역사인 것입니다.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夏, 殷을 전설의 시대로 평가 합니다.

정확히 기록된 歷年인 존재하고, 일부 역사적 유물이 출토 되기도 하는데

夏, 殷을 전설의 시대로 몰아 가는 이유가 무엇일 까요?

夏, 殷의 역사가 정확히 밝혀지면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모조리 거짓이라는 것이 들통 나기 때문입니다.

그야말로 불편한 진실인 것입니다.

한중일 그 어느 나라 역사 학자들도 이 진실이 밝혀 지는 것이 즉거울 수 없는 것입니다.

靑代에 최초로 발견 되었다 라는 殷虛의 유물이라는 甲骨文字가 하남성 安陽에서 발견된 것이 사실이라면,

安陽에서 발견된 甲骨文字는 殷나라의 유물이 아니라 지금의 하남성 일대에 존재해 있던

밝혀지지 않는 문명에 의한 유물인 것입니다.

즉, 소위 말하는 漢字는 알려지지 않은 지금의 중공 하남성 일대에 존재 했던 제 3의 문명인에 의한 문자인 것입니다.

夏, 殷은 황제헌원이 살았던 그 땅에 존재 했던 나라이며,

그 땅은 西域이라고 기록된 중앙아시아 라는 것만은 분명 합니다.

또, 사마천은 漢나라 世係의 역사를 다음과 같이 기록하였습니다.

  • 卷一     五帝本紀第一

  • 卷二     夏本紀第二

  • 卷三     殷本紀第三

  • 卷四     周本紀第四

  • 卷五     秦本紀第五

  • 卷六     秦始皇本紀第六

  • 卷七     項羽本紀第七

  • 卷八     高祖本紀第八

즉, 五帝으로 이어지는 역사를 쓴 것입니다.

위에 열거된 왕조들은 모두 혈통적으로 동일한 世係로 이어 졌음을 기록한 것입니다.

다시 강조하지만 지금의 중공을 中國이라고 호칭하기 때문에 중五帝으로 이어지는 왕조가

마치 지금의 中共이 계승한 것과 같은 착시를 일으키는 것입니다.

지금의 中共이 필사적으로 고대의 왕조들을 지금의 中共 땅으로 비정하려는 이유가 그들의 짧은 역사를

五帝으로 이어지는 왕조를 통해서 조작해 보려는 몸부림 인 것입니다.

五帝으로 이어지는 왕조를 중공 역사로 인정하는 것은

우리가 中共의 역사 공정을 인정하는 것이나 다름이 아니며, 우리 참 역사를 부정하는 것입니다.

湯始居亳,從先王居,作帝誥。

탕이 처음 살았던 곳은 박이며, 서조의 왕들이 거주 했던 곳을 따른 것이며, 임금이 명령하여 만든 곳이다.

탕 임금의 선조 왕들은 夏나라 임금들이 대대로 거주 하던 땅이라는 것입니다.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夏나라 平陽을 산서성 서남쪽으로 비정하고 잇습니다.

이 기록 대로 라면, 이 라는 땅은 平陽 가까운 곳에 있었던 땅으로 해석하는 것이 합리적 추론 입니다.

湯征諸侯。

탕이 제후들을 정벌 했다.

葛伯不祀,湯始伐之。

갈백이 하, 은의 연대를 부정하자, 탕이 쳤다.

湯曰:「予有言:人視水見形,視民知治不。」

伊尹曰:「明哉!言能聽,道乃進。

君國子民,為善者皆在王官。勉哉,勉哉!」

湯曰:「汝不能敬命,予大罰殛之,無有攸赦。」作湯征。

伊尹名阿衡。

阿衡欲奸湯而無由,乃為有莘氏媵臣,負鼎俎,以滋味說湯,致于王道。

或曰,伊尹處士,湯使人聘迎之,五反,然後肯往從湯,言素王及九主之事。

湯舉任以國政。

伊尹去湯適夏。

既醜有夏,復歸于亳。

入自北門,遇女鳩、女房,作女鳩女房。

湯出,見野張網四面,祝曰:「自天下四方皆入吾網。」

湯曰:「嘻,盡之矣!」

乃去其三面,祝曰:「欲左,左;欲右,右。

不用命,乃入吾網。」

諸侯聞之,曰:「湯德至矣,及禽獸。」

當是時,夏桀為虐政淫荒,而諸侯昆吾氏為亂。

湯乃興師率諸侯,伊尹從湯,湯自把鉞以伐昆吾,遂伐桀。

湯曰:「格女眾庶,來,女悉聽朕言。

匪台小子,敢行舉亂,有夏多罪,予維聞女眾言,夏氏有罪。

予畏上帝,不敢不正。今夏多罪,天命殛之。今女有眾,女曰:『我君不恤我眾,舍我嗇事而割政』。

女其曰:『有罪,其柰何』?

夏王率止眾力,率奪夏國。

有眾率怠不和,曰:『是日何時喪?予與女皆亡』!

夏德若茲,今朕必往。

爾尚及予一人致天之罰,予其大理女。

女毋不信,朕不食言。女不從誓言,予則帑僇女,無有攸赦。」

以告令師,作湯誓。

於是湯曰:「吾甚武」,號曰武王。

桀敗於有娀之虛,桀犇於鳴條,夏師敗績。

湯遂伐三㚇,俘厥寶玉,義伯、仲伯作典寶。

湯既勝夏,欲遷其社,不可,作夏社。

伊尹報。

於是諸侯畢服,湯乃踐天子位,平定海內。

湯歸至于泰卷陶,中𤳹作誥。

既絀夏命,還亳,作湯誥:「維三月,王自至於東郊。

告諸侯群后:『毋不有功於民,勤力迺事。

予乃大罰殛女,毋予怨。』

曰:『古禹、皋陶久勞于外,其有功乎民,民乃有安。

東為江,北為濟,西為河,南為淮,四瀆已修,萬民乃有居。

동쪽을 강수라 하였고, 북쪽을 제수라고 하였고, 서똑을 하수라고 핬으며, 남쪽을 회수라고 했으며,

4독이 정비 되면서, 만 백성이 살수 있게 되었다.

필자가 《史記》 卷三 殷本紀 第三, 成湯 篇을 번역한 첫번째 이유가 이 기록을 해석하기 위함 이며

다른 기록들은 역사를 를이해 하는데 있어서 별 도움이 안되는 기록이라서 번역을 생략 합니다.

東為江,北為濟,西為河,南為淮의 기록을 현재 동아시아 역사 프레임으로 해석을 하면, 말이 안됩니다.

현재 동아시아 역사는 =長江, 河=河水로 해석하기 때문에,

이 기록을 현재 동아시아 역사 프레임으로 해석하면

논리적으로 설명이 안되기 때문입니다.

后稷降播,農殖百穀。

三公咸有功于民,故后有立。

昔蚩尤與其大夫作亂百姓,帝乃弗予,有狀。

先王言不可不勉。』

曰:『不道,毋之在國,女毋我怨。』」

以令諸侯。

伊尹作咸有一德,咎單作明居。

湯乃改正朔,易服色,上白,朝會以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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