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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1(주) 요한 강해(12) "우리도 물동이를 버려야한다"(4:27-42)

작성자유승민|작성시간26.06.15|조회수65 목록 댓글 0

현재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아가는 중이다.

예를 들자면, 중국역사전문가들이 이런 말을 했다. 

"수천년의 한중역사관계중 현재 대한민국은 중국보다 더 잘사는 30년의 시간 속에 머물러 있다"

1990년대 중반 이후부터 개인소득면에서 대한민국이 중국을 추월하기 시작한 사실을 두고 하는 말이다.  

 

세계 역사학자들과 경제사학자들은 청나라 이전의 과거 중국을 '세계 경제와 문명의 압도적인 중심지"로 평가한다.

과거 중국은 전 세계 GDP의 30%를 차지하는 강력한 국가였다.

하지만 아편전쟁을 기점으로 쇠퇴하기 시작했다.  

 

상대적으로 대한민국은 80년대부터 경제 호황기를 맞았다.

1988년에는 경제성장률이 무려 12%에 달하기도 했다. 

현재 대한민국의 경제규모는 세계 12위권이다. 

 

그런데도 우리는 매일 아침 눈을 뜰 때 어떤 생각을 하는가?

"오늘도 너무 행복해" "나는 부족함이 없어"라고 말하는가? 

아니면 혹시 무언가를 더 채워야 한다는 불안감 이나 가만히 있으면 남보다 더 뒤처질 것같은 의무감으로 하루를 시작하지는 않는가?

 

우리는 역사상 가장 풍요로운 시대를 살지만, 역설적으로 가장 목말라하고 있다.

많이 가진 사람들도, 조금 덜 가진 사람들도, 아니 전혀 가진 것이 없는 사람들도 하나같이 무언가에 목말라한다. 

우리 인생자체는 아무리 채워도 밑 빠진 독처럼 공허하다.

 

오늘 본문에 나오는 사마리아 여인의 삶이 딱 그랬다.

그는 한낮의 뜨거운 태양 아래에서 무거운 물동이를 들고 우물가로 걸어왔다.

그의 인생은 매일 물동이를 채우고, 다시 비워지면 또 채우러 와야 하는 피곤하고 끝없는 갈증의 연속이었다.

여인에게 물동이는 '생존의 도구'이자 '인생의 목마름을 해결해 줄 유일한 수단'이었다.

그녀는 물동이가 없으면 하루라도 살 수 없기에, 사람들의 따가운 시선을 피해 정오의 뙤약볕을 뚫고서라도 물동이를 들고 우물로 와야만 했다.

 

오늘날 우리에게도 각자의 물동이가 있다.

"이 정도 통장 잔고는 있어야 노후가 안전해" (재정의 물동이)

"내 자녀가 이만큼은 성공해야 내 면이 서" (자녀 성공의 물동이)

"직장에서 이 자리까지는 올라가야 인정받아" (성취의 물동이)

 

요행히 우리 모두가 열심히 노력하고 수고하여 각자의 물동이를 가득 채웠다고 가정해 보자.

이렇게 물동이를 채우면 영원히 행복할 것 같은가?

세상의 우물은 며칠만 지나면 다시 소진되어버린다.

 

그래서 우리는 지금도 세상의 우물가에서 무거운 물동이를 쥐고 끙끙대며 앓고 있는 것이 아닌가?

물동이를 채워도 목마르고, 물동이를 버리자니 마땅한 수가 안 보인다.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과 대화하는 중 그분이 메시야라는 사실을 깨달았다(25-26, 29)

그 순간, 영혼의 지독한 갈증이 해결되었다. 

 

그리고 놀라운 일이 일어났다.

그토록 집착하던 물동이를 버리게된다(28)

 

왜 물동이를 버렸을까? 두 가지 이유때문이다. 

1. 낡은 물동이로는 생수를 얻을 수 없기 때문이다. 

<낡은 물동이>? 사마리아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기 전까지 그녀가 살았던 세상의 방식을 가리킨다. 

대부분의 세상사람들이 사는 방식을 말한다. 

 

오래 전 중학생이었던 우리 아들에게 들었던 말이다.

"아빠! 우리 반 애들 전부가 노스페이스를 입고 다녀"

이때 "전부"라는 말은? 자신의 부적절한 주장을 정당화할 때 사용하는 일종의 전문 용어이다. 

"요즘 여성들 전부 명품빽 하나쯤 가지고 있어"

"요즘 사람들 죄다 그렇게 살고 있어"

 

기억해라.

예수님이 주시는 영원한 생수는 세상의 방식인 '낡은 물동이'에는 담을 수 없다.

참된 은혜를 경험하려면, 내가 집착하던 세상의 물동이를 내려놓아야 한다.

 

본문에 이 여인이 고집했던 삶의 방식을 알수 있는 구절이 하나 소개되었다(17-18)

"다섯 남편"

<다섯 남편>은 단순히 여인의 복잡한 사생활을 보여주는 숫자가 아니다. 

세상 사람들이 갈증을 해소하기 위해 살아가는 방식을 상징적으로 보여주는 핵심 단어이다.

 

여인은 첫 번째 남편에게서 만족을 얻지 못하자, 두 번째, 세 번째, 결국 다섯 번째 남편을 만났다.

여기서도 만족하지 못하여 다섯번째 남편까지도 바꿨다(17-18)

지금은 여섯번째 남자을 만나 동거하고 있었다. 

 

이는 "이것만 가지면, 이 사람만 만나면, 이 자리에만 오르면 행복할 것"이라며 끊임없이 신기루를 쫓아 정욕과 대상을 바꾸는 세상 사람들의 삶의 방식과 정확히 일치한다.

 

사실, 세상이 주는 만족에는 유통기한이 있다.

사마리아 여인은 다섯 남편을 만났지만 만족하지 못했다.

예수님께서 지금 함께 살고 있는 사람조차 남편이 아니라고 지적하신 것은,세상의 방법으로는 결코 영혼의 깊은 갈증을 채울 수 없음을 드러낸다.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후 마침내 그 세상의 방식으로는 자신을 채울 수 없음을 깨닫고 물동이를 버린 것이다.

 

지금 여러분 손에 쥐어진 낡은 물동이는 무엇인가?

 

주님의 신령한 은혜를 구하면서도, 입으로는 세상의 가치가 무의미하다고 말하면서도

주님 한 분만으로 충뷴하다고 고백하면서도

여전히 세상의 방식을 붙들고 있지는 않는가?

 

성도 여러분,

사마리아 여인이 버린 물동이는 그녀가 평생 붙들고 살았던 '다섯 남편이라는 삶의 방식'이었다.

우리도 이렇게 살고 있지는 않는가?

돈이면 다 될 줄 알고 돈이라는 남편을 구했고,

명예만 얻으면 다 될 줄 알고 명예라는 남편을 구했으며,

명문대학에만 들어가면 모든 근심이 사라질줄 알고 학력이라는 남편을 구하며 살았다. 

하지만 그 다섯 남편이라는 물동이는 채울 때만 잠시 시원할 뿐, 돌아서면 다시 목마른 낡은 물동이였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여러분의 낡은 물동이를 버려야 생수가 채워진다.

지금처럼 세상의 방식으로 살면 생수를 마실 수 없다. 

우리가 예수를 믿으면서도 늘 목말라하는 원인은?  우리가 아직도 낡은  물동이를 붙들고 있기 때문이다.  

구원이란? 물동이를 버리는 행위를 말한다.

구원은 삶의 방식을 바꾸는 것이다. 

 

2. 더 가치있는 물동이를 발견했기 때문이다.

일반적으로 사람은 더 가치 있는 무언가를 발견하게되면 기존의 가진 것을 버리게된다. 

신형 휴대폰을 구입하게 되면 더 이상 구형 모델 휴대폰은 사용하지 않게된다. 

 

무엇이 내 인생에서 가장 소중한지를 알게 되는 순간 낡은 물동이를 버리게된다. 

사도 바울도 예수 그리스도를 만난 후, 자신이 그토록 소중히 여겼던 가문, 학벌, 로마 시민권을 모두 '배설물(쓰레기)'로 여겼다(빌 3:8).

 

사마리아 여인이 물동이를 버린 것도 같은 이유 때문이다.

예수라는 '최상의 가치'를 발견하자, 평생 전부인 줄 알고 붙들었던 물동이를 배설물처럼 여겼다.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를 만나후 영적인 눈이 열려 진짜 가치를 알아본 것이다.

정오의 뜨거운 태양 아래서 물을 긷는 수고로움을 기꺼이 감수하게 만들었던 물동이를 버리고

이제는 영원한 생명을 전하는 하나님 나라의 물동이를 가지게 되었다.

 

과거 사마리아여인은 다섯 남편을 '소유'하고, 물동이에 물을 '채워야만' 안심이 되던 삶을 추구했었다.

이제는 달라졌다. 

 

한 번 생각해보라. 이 여인이 예수님을 만나게 되어 복권에 당첨이 되었는가?

예수님을 만난후 갑지가 부자가 되었는가? 아니다.

경제적으로 형편이 나아진 것이 아니다. 

하지만 그녀는 물동이를 버렸다. 

예수님이라는 물동이가 낡은 물동이와는 비교할수 없을 정도로 귀하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삶을 움직이는 동력 자체가 바뀐 것이다.

전기차의 동력은 전기다. 가솔린 차의 동력은 휘발류다. 자동차를 움직이게 만드는 동력이 다르다. 

세상사람들의 동력이 돈이라면 하나님의 사람들의 동력은 하나님이 되어야한다. 

우리가 예수를 믿게되었다면 동력을 바꾸어야한다. 

 

“여러분, 대여섯 살 된 아이가 길가에 떨어진 깨지고 때 묻은 장난감 스마트폰을 하나 주웠다고 상상해 보자.

소리도 안 나고 화면도 다 긁힌 장난감이다.

그런데 아이는 그게 너무 좋아서 손에 꼭 쥐고 절대 안 놓으려고 한다.

 엄마가 ‘그거 더러워, 버려’라고 소리치고 억지로 빼앗으려 하면 아이는 자지러지게 울며 더 세게 움켜쥔다.

 

그런데 그 아이의 손에서 그 낡은 장난감을 스스로 놓게 만드는 아주 쉬운 방법이 있다.

아빠가 퇴근길에 아이가 그토록 갖고 싶어 하던 진짜 최신형 태블릿 PC를 포장도 뜯지 않은 채 아이 눈앞에 보여주는 것이다.

‘자, 이거 아빠가 너 주려고 사 왔어!’그 순간 어떤 일이 일어날까요?

아빠가 버리라고 다그치지 않아도, 아이는 자기도 모르게 손에 쥐고 있던 때 묻은 장난감을 바닥에 툭 떨어뜨린다.

 

사마리아 여인의 물동이가 바로 이와 같았다.

예수님이라는 진짜 보물, 내 영혼의 갈증을 단번에 해결해 주실 영원한 생수를 발견하자, 그동안 목숨처럼 움켜쥐고 있던 세상의 낡은 물동이는 더 이상 붙들고 있을 이유가 사라진 것이다.

 

사마리아여인이 예수님이라는 '영원한 생수'를 마시자, 세상의 물을 담던 낡은 물동이는 더 이상 중요하지 않게 되었던 것이다.

우리도 더 좋은 가치를 발견했을 때 이전 것을 미련 없이 버린다. 

영적인 원리도 같다.

억지로 금욕하고 참는 것이 아니라, 예수님이 주시는 은혜의 맛을 진짜로 맛보게 되면 물동이를 버리게되어 있다. 

 

물동이를 움켜쥐고 있을 때는 나 혼자 먹고 살기도 피곤한 인생이었다.

늘 빠듯하게 산다. 늘 허기지다. 늘 목말라하고 늘 부족하다고 하나님께 때를 섰다.

자고 일어나는 순간부터 걱정하며 살아간다.

그 이유? 부족해서가 아니다. 모자라서가 아니다. 

물동이를 쥐고 있기때문이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물으신다.

"너는 언제까지 그 낡은 물동이를 채우기 위해 인생의 에너지를 다 허비할래?

이제 그것을 내 발 앞에 내려놓고, 내가 주는 하늘의 평안과 사명으로 살지 않겠니?"

사마리아 여인은 더 귀한 가치를 발견했기에 물동이를 버려둘 수 있었다.

오늘 우리도 이 시간부터 낡은 물동이 버리고 대신에 생수의 물동이를 들고 예수님을 만나러 가자.  

 

여러분에게 예수님은 정말 그런 가치가 있으신 분인가?

예수님 한 분만으로 충분하여, 내가 평생 생명처럼 쥐고 있던 세상의 자랑과 염려의 물동이를 기꺼이 내려놓을 만큼 그리스도가 여러분 인생의 최고 가치인가?

대답해보세요.

 

이 질문에 자신있게 대답하지 못한다면?

그 분은 여전히 물동이를 버리지 못하고 있다는 반증이다.

또한 아직 예수님을 진짜 메시야로 만나지 못한 것일지도 모른다.

 

우리가 예수를 믿고 있는데도

구원을 받았다고 하는데도

우리가 왜 목마른줄 아는가?

예수를 믿는데도 늘 근심하고 염려하는 이유가 무엇인 줄 아는가?

입으로는 하나님을 진심으로 믿고 있다고 말하면서도 늘 목말라하는 이유는?

아직까지도 우리가 낡은 물동이를 놓치 못해서이다. 

 

물동이를 버려야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마실 수 있다. 

손에 쥔 물동이를 놓지 않으면, 주님이 주시는 생수를 두 손으로 받아 마실 수 없다.

그래서 늘 목말라하면서 살게된다. 

 

“미국의 유명한 낙농회사 ‘보든(Borden)’의 후계자였던 ‘빌 보든’이라는 청년이 있었다.

그는 고등학교를 졸업할 때 이미 어마어마한 부를 상속받은 백만장자였다.

세상 기준으로 보면 이미 인생의 가장 크고 화려한 물동이를 가득 채운 사람이었다.

그런데 그는 대학 시절 예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영혼의 생수를 맛보게 되었다.

세상의 부유함이 줄 수 없는 하늘의 기쁨을 맛본 것이죠.

그러자 그의 인생 우선순위가 완전히 뒤바뀌었다.

그는 이 생수의 복음을 들고 복음의 소외지였던 중국의 무슬림들에게 가기로 결단했다.

주변의 모든 사람이 말렸다.

‘너는 그 엄청난 기업을 경영해야지, 왜 그런 고생길을 가려고 하느냐?’

그때 빌 보든이 자신의 성경책 맨 뒷장에 적었던 유명한 고백이 있다.

‘No Reserves(남김없이).’

자신이 가진 재물과 권세를 주님 위해 남김없이 쓰겠다는 고백이었다.

 

그는 선교지로 가던 중 안타깝게도 이집트에서 척수막염에 걸려 25세라는 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나게 되었다.

인간적으로 보면 성공의 물동이를 다 버려두고 가다가 비극을 맞이한 것처럼 보인다.

하지만 그가 임종하기 직전, 성경책에 마지막으로 남긴 문장은 이러했다.

‘No Regrets(후회 없이).’

그는 자신이 세상의 물동이를 버려두고 주님을 쫓았던 삶을 단 한 순간도 후회하지 않았다는 사실을 기록한 것이다. 

세상의 썩어질 물동이와 비교할 수 없는 영원한 하나님 나라의 가치를 보았기 때문이다.”

 

이번 한 주간, 여러분이 움켜쥐고 있는 불안의 물동이, 집착의 물동이를 주님 앞에 내려놓기를 바란다. 

"주님, 내 힘으로 내 인생을 책임지려고 했던 이 물동이를 내려놓습니다.

주님이 내 삶의 주인이 되어 주시고 영혼의 갈증을 채워 주옵소서." 

 

이렇게 고백하라.

그러면 더 가치 있는 또 다른 물동이를 발견하게 될것이다.

세상이 줄 수 없는 예수 그리스도안에만 있는 평안과 만족이라는 물동이를 발견하게 된다. 

 

사마리아여인은 세상의 욕망을 채우던 '낡은 물동이'를 버리고, 예수님이라는 '영원한 생수의 물동이'를 취하게 되었다.

 

여러분도 낡은 물동이를 내려놓아라.

근심의 물동이를 내려 놓아야한다.

그래야 영원한 생수의 물동이를 가질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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