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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벽예배

6/22(월) 고전 14;1-19

작성자유승민|작성시간26.06.18|조회수25 목록 댓글 0

본문을 소통이라는 주제로 관찰한다.

같은 언어를 쓰면서도 대화가 통하지 않는 부부, 세대 갈등, 직장 내 소통 오류등이 발생한다. 

고린도 교회도 심각한 '불통'을 겪었다.

신비로운 방언 은사를 받은 사람들이 예배 분위기를 독점했고, 그래서 다른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해 소외되고 예배가 혼란해빠졌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좋은 은사들이 왜 공동체를 깨뜨리는 무기가 될까?

 

① 은사의 기준은 '타인의 유익'이다 (1-5절)

 바울은 방언보다 예언을 하라고 권한다.

방언? 하나님께 비밀을 말하지만 사람들은 알아듣지 못한다. 

반면 예언? 사람에게 말하여 덕을 세우고, 권면하고, 위로할수 있다(3절).

여기서 '예언'은 미래를 맞추는 점술이 아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깨달아 사람들에게 위로와 확신을 주는 현대의 '격려와 권면의 말'을 가리킨다.

 나를 돋보이게 하는 행동(방언)보다, 남을 살리는 행동(예언)이 더 고귀하다.

 

② 알아듣지 못하는 말은 소음일 뿐이다 (6-11절)

 바울은 세 가지 비유를 든다.

피리와 거문고:?음의 구분이 없으면 무슨 곡인지 모른다 7절).

나팔: 소리가 분명하지 않으면 전쟁 준비를 못한다(8절).

외국어: 뜻을 모르면 서로에게 불편함을 준다(11절).

 교회 안의 영적 엘리트주의를 경고한다.

나만 아는 신앙적 지식이나 은사를 자랑하며 초신자나 다른 이들을 소외시키는 행위를 말한다

아무리 옳은 말과 훌륭한 사역도 상대방의 눈높이에 맞추지 않으면 '시끄러운 소음'에 불과하다.

 

③ 이성과 마음이 함께 가는 예배를 드려야 한다 (12-19절)

바울은 영으로도 기도하고 이성(마음)으로도 기도하겠다고 선언했다(15절).

교회에서 깨달은 마음으로 다섯 한 마디를 하는 것이, 알아듣지 못하는 일만 마디 방언보다 낫다(19절).

감정적 흥분이나 개인의 영적 카타르시스에만 머무는 신앙을 경계해야 한다.

진짜 영적인 것은 가장 '상식적'이고 '배려 깊은' 모습으로 나타난다.

은사의 종착지는 '사랑'과 '교회의 덕'이다.

 

나는 배우자나 자녀에게 그들이 이해할 수 있는 언어로 사랑을 표현하고 있는가?

나의 봉사와 헌신이 다른 사람을 주눅 들게 하는가, 아니면 위로를 주는가?

세상 사람들이 이해할 수 없는 교회만의 언어로 그들을 정죄하고 있지는 않는가?

이번 한 주간, 나의 일만 마디 자랑보다 낙심한 형제를 살리는 '다섯 마디 격려의 말'을 건네는 성도가 됩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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