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AFE

생물 생명

비뉴(Vigne, 1954-): "목축의 시작(2004)"

작성자마실가|작성시간20.02.13|조회수704 목록 댓글 0

목축의 시작(Les débuts de l'élevage, 2004)

-드니 비뉴, 김성희, 알마SS20, 2014, P. 145.

- -드니 비뉴(Jean-Denis Vigne, 1954-), 프랑스 고고학자, 생물학자. 󰡔목축의 시작: 문화의 기원들(Les débuts de l'élevage: Les origines de la culture, 2004)󰡕

- 김성희: 부산대학교 불어교육과와 동대학원을 졸업했다.

 

 *  나는 항상 구석기에서 문화와 신석기의 문화의 차이가 예술적으로 엄청나다는 생각을 하곤 하였다. 왜일까? 인간의 도구적 생활과 집단적 위계의 질서사회가 성립한 신석기에서 인간의 의식의 변화가 매우 컷을 것이라는 점이다. 벩송식으로 도구적 지성이 강조된 것은 신석기 시대가 아닐까? 구석기에는 정서 또는 감동의 문화와 밤의 문화가 있었을 것인데 말이다. 이 책은 이런 생각이 엉뚱하지 않다는 것을 설명해 준다. (49NKF)

   가축화(家畜化, domestication) 동물은 최종빙기에 개, 그리고 농경과 목축의 시기에서, 우선 9천년전 염소,, , 돼지, 그리고 7천년전 고양이(le chat), 그 다음 75백년전 제부(le zébu: Bos taurus indicus), 6천년전 라마와 알파카(Alpaca, 학명: Vicugna pacos, 낙타과), 5천년전 당나귀, 45백년 말, 3천년전 낙타, 물소, 난봉낙타(Dromadaire), , [누에(Ver à soie)], 집비둘기, 25백년전 야크, 15백년 거위, 1천년전 오리, 700년 칠면조, 500년 모르모트(le Cobaye) - O - 금붕어 1000, 토끼 1600년 경.(32쪽과 위키피디아 참조)인데, 우선 식용(또는 가죽)으로 그리고 노동용으로, 그리고 군사적으로도 쓰였을 것이다. 토끼가 늦게서야 된 것은 사냥이 쉬워서 그냥 두었을 것 같다. (51NMI)

  가축화 동물과 인간 사이의 상호보조 맞추는 과정을 긴시간의 과정이었다. 그러나 그 종들을 관계를 떠나 야생으로 돌려보내면 그 나름으로 또 야생화의 길을 걸을 것이다. 그럼에도 그 종이 이루는 환경은 야생으로만 자라온 종으로서 삶과 다르지 않을까한다. 즉 환경이 이미 바뀌었기 때문이다. 생명종은 종들 사이에서만 공진화하는 것뿐만이 아니라 자연환경과도 공진화한다고 보야야 할 것이다. 게다의 생명종의 각 의식들은 공진화의 길을 갈 수 밖에 없다. 그것이 삶의 방해물이되었던 보충물이 되었던 의식에 직접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 받기 때문이다. 이런 과정에서 생명체와 자연을 통털어서 변화과정 중에 있는 준안정상태라고 본 들뢰즈/가타리의 상상은 실재성이고 구체적인 것 같다. 준 안정성으로 고른 평면은 유동적이며 진동한 질적인 것이다. 그 자체 덩어리가 환경이며 리듬을 타는 변화과정중에 있다. 여기에 수레를 타고 간다고 비유하기보다 그 속에 파뭍혀서 함께 가는 중에 있는 것 같다. 그 과정에서 개별성으로 개체가 드러낼 때 각각의 종들이 있듯이, 종의 과정속에 인간의 개체도 그렇게 등장하는 것일 것이다. 그 등장은 요즘 말로 70억 중에 어느 개체인지는 몰라도 끊임없이 솟아나려고 하는 개인들이 있을 것이다. 그 솟아오른 것이 고른 평면에서 솟아났다고 여기는 것은 시간이 경과하여 과거의 잔재로 남을 경우에야, 그 때 가서야 깨닫고 확인될 것이다. 생성과 창발은 판별은 시간이 지나야, 즉 설탕이 물에 녹기를 기다려야 한다. (51OLH)


# 내용 ****************

󰡔목축의 시작: 문화의 기원들(Les débuts de l'élevage: Les origines de la culture, 2004)󰡕

* 여는 글: 문화의 기원들에 대하여: 롤랑 샤에르(Roland Schaer, 1947-) 5

문화의 기원을 논한다는 것은 기술적이거나 언어적이거나 종교적인 등등의 성질을 지닌 인간의 행동양식에 대해 이야기하는 일이다. (5)

하지만 인간은 특유의 인지적 능력 덕분에 그 차원과 위력 면에서 전대미문의 문화적 혁신을 이뤄냈다. 특히 도구의 발명과 개선, 불의 이용, 언어의 출현, 의식(儀式)과 예술의 창조, 그리고 1만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가는 농경과 목축이라는 생물공학의 등장은 인간 문화적 진보에 큰 획을 그은 사건들이었다. (6)

브뤼노 모레유(Bruno Maureille, 1963-)󰡔최초의 장례(Les premières sépultures, 2004)󰡕, 장 드니 비뉴(Jean-Denis Vigne, 1954-)󰡔목축의 시작(Les débuts de l'élevage, 2004)󰡕, 파스칼 피크(Pascal Picq, 1954-)와 엘렌 로슈(Hélène Roche, s.d.)󰡔최초의 도구(Les premiers outils, 2005)󰡕, 마르셀 마주와예(Marcel Mazoyer, 1933-)󰡔농경의 시작(Les débuts de l'agriculture, 2007)󰡕, 장 루이 데살(Jean-Louis Dessalles, 1956-)과 파스칼 피크(Pascal Picq 1954-), 베르나르 빅토리(Bernard Victorri, s,d.)󰡔언어의 기원(Les origines du langage, 2010)󰡕, 미셀 로르블랑셰(Michel Lorblanchet, 1955-)󰡔예술의 기원(Les origines de l'art, 2006)󰡕 (6-7)

* 머리말 9

이 책은 동물의 가축화라는 주제를 보다 넓은 시각에서 다루려는 목적도 가지고 있다. 한편으로 가축화가 인간의 기술 및 행동 양식의 역사에서 차지하는 의미를 알아보고, 다른 한편 인간의 자연 지배라는 관점에서 신석기 혁명의 역할을 고찰하는 것이다. 특히 둘째 관점은 주제에 조금 벗어나 보일지도 모르나 이 시대가 고민해야 할 문제와 맞닿아 있다는 점에서 가치가 있다고 본다. (10)

* 차례 11

* 글을 시작하며 13

현재 우리와 같은 모습을 한 현생인류는 약 25만년 전에 아프리카에서 처음 나타났다. 현생인류가 서아시아 지역에 등장한 것은 5만 천 전이며, 서유럽에 등장한 것은 3만년 저니다. 그 이후로 빙하기가 끝날 때까지 인류는 야생채취와 무척추동물 채집, 어로, 덫사냥, 수렵으로 얻은 산물을 먹고 살았다. (13)

현재 밝혀진 지식에 따르면, 날흙으로 벽을 올린 집들이 모여 형성된 거대한 마을과 함게 정착현상이 가장 먼저 그리고 가장 명확히 나타난 곳은 서아시아 지역이다. 기원전 제10천년기에서 제9천년기로 접어드는 시기에 서아시아에서는 정착현상에 이어 농경의 출현도 뒤따랐다. (14)

구대륙에서든 신대륙에서든 인류 집단은 식물을 배제하고 동물을 사육하기 시작하면서부터 사냥을 통한 포식 활동을 점차 그만두고 농산물이나 축산물에 생존을 의지하는 생활방식으로 서서히 옮겨갔다. 이러한 경제적 변화는 수백 년 내재 수천 년에 걸쳐 이뤄졌으며, 인구적, 사회적, 문화적으로도 큰 변화를 가져온다. 이 같은 변화는 세계 지역마다 다양한 형태로 나타났지만, ... (14-15)

따라서 목축의 출현은 인류 역사의 대변화를 구성하는 주된 요소 가운데 하나에 해당한다. (15)

이 책은 목축의 기원이라는 주제와 관련된 가장 최근의 지식과 문제를 대중과 공유하려는 목적에서 쓰였다. 이들 위해 우선 역사의 단편들을 재구성하게 해주는 자료 즉 고고학 발굴에서 나온 동물의 뼈처럼 이 책의 주제를 풀어내기 위한 귀중한 증거이자 주요 정보수단이 되는 자료를 간략히 살펴볼 것이다[§1.1]. 그런 다음에는 목축이 시작된 장소와 시기에 대해 알아보고[§1.2], 고기와 젖의 생산에 주로 관계된 기술에 관해 검토할 것이다[§1.3]. 이어서 인간이 유제류(有蹄類, , , 염소, 돼지처럼 발굽이 있는 동물)를 가축으로 만든 이유에 대해서도 알아볼 것이다[§2.1]. 끝으로 이 책의 마무리는 조금은 생소하게 보일지도 모를 주제, 자연을 길들이는문제에 관해 살펴 보는 내용이 될 것인데[§2.2], 이 대목에서 우리가 특히 자문해볼 점은 오늘날 환경 파괴 및 생물다양성 감소와 관련해 서구 사회를 불안하게 만들고 있는 현상들이 신석기 시대 초에 시작된 과저의 결과는 아닐까 하는 것이다. (15-16)

1장 목축의 기원에 관한 고고학적 자료 17

[§1.1]고고학적 유골 19

이처럼 유골 잔해가 제공해주는 정보는 아주 풍부하다. 우리가 문제의 동물이 야생짐승인지 가축인지 알 수 있는 것은, 또 가축일 경우 그 동물이 인간과 얼마나 가까웠고 인간에게 어떤 이득을 주었는지 알 수 있는 것은 바로 유골 잔해에 담긴 정보 덕분이다. (23)

[§1.2]목축의 출현 장소와 시기 24

이와 관련해 주목해야 할 지질 시대는 기원전 19천년/18천년부터 9200년 사이에 걸쳐 전개되다가 갑작스런 온난화로 종결된 최종빙기’(Tardiglacial)와 현재 우리가 살고 있는 시대로서 온화한 기후를 특징으로 하는 홀로세’(Hilocene). (24)

󰋮 : 수렵인의 가축 26

[가축으로서 시작이라기보다 반려동물로서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정주자들보다 떠돌이의 것이 아니겠는가? 헤라클레스의 이야기에서 개의 이야기를 찾아볼 필요가 있다. 오디세우스에서는 개의 이야기가 있다. 개와 마부(?)만이 거지같은 오디세우스를 알아보았다고 한다. (51NMH)]

개가 가축으로 존재했다는 증거는 기원전 18-12천년부터 확인된다. 이 시기는 후기 구석기 시대 말의 문화에 대응된다. 서유럽의 경우는 빙하기 마지막 수렵인의 문화인 막달레니안 문화, 서아시아의 경우는 나투프 문화가 그것이다. (26)

사람들이 종종 말하듯이 개의 가축화와 더불어 목축의 역사가 시작된 것은 아니다. 개를 기른 인류 집단이 소, 돼지, , 염소 등을 사육하는 목축활동으로 바로 옮겨간 것은 아니기 때문이다. 그리고 목축을 행한 집단에서도 개를 기른 행위의 다른 동물을 사육한 해위는 수천 년의 간격을 두고 서로 별개로 나타났다. (27)

가축화된 개의 기원에 대한 지식은 최근 분자적 접근을 통해 다듬어 졌으며, 여기에 특히 도움을 준 것은 DNA분석이었다. .. 그렇게 해서 학자들은 개의 조상이 늑대라는 사실을 분명히 밝혀냈으며, 이 점에 대해서는 현재 조금의 의혹도 없다. (28)

󰋮 농경목축인의 다양한 가축 31

[우선 9천년전 염소,, , 돼지, 그리고 7천년전 고양이(le chat), 그 다음 75백년전 제부(le zébu: Bos taurus indicus), 6천년전 라마와 알파카(Alpaca, 학명: Vicugna pacos, 낙타과), 5천년전 당나귀, 45백년 말, 3천년전 낙타, 물소, 난봉낙타(Dromadaire), , [누에(Ver à soie)], 집비둘기, 25백년전 야크, 15백년 거위, 1천년전 오리, 700년 칠면조, 500년 모르모트(le Cobaye) - O - 금붕어 1000, 토끼 1600년 경.(32쪽과 위키피디아 참조)]

게다가 가축화의 기원을 이야기하는 목록은 20세기까지 계속된다. 가령 사슴과 타조의 사육은 수십 년 전에 시작되었다. 이는 인간이 특히 경제적 목적으로 계속해서 동물을 가축으로 만들어왔음을 말해주는 사실이다. (36-37)

그렇다면 동물의 가축화는 어떻게 그토록 다양한 지역에 그토록 다양한 형태로 이뤄질 수 있었을까? .. 단 한 곳의 발원지에서부터 시작해 그 발상이 새로운 경제활동과 더불어 퍼져나간 것이 아니라 다양한 발원지에서 시작된 것이다. (27)

.. 동물의 가축화는 하나의사건이 아니라 다수의사건이며, 따라서 목축의 기원이라는 문제를 이해하려면 기후적이거나 문화적 설명에 그칠게 아니라 경우에 따라 달라지는 보다 복잡한 조건들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 (27-28)

󰋮 서아시아에서 유제류 가축화 31

가축화가 제일 먼저 시작된 곳이자 그 발원지로서 가장 많이 알려진 지역은 서아시아다. (38)

제일 먼저 주목할 사건은 기원전 14천년-13천년 무렵에 나투프 문화 마을이 출현한 것이다. 이는 세계에서 가장 먼저 형성된 마을로 알려져 있는데 사실 제대로 모습을 갖춘 마을이라기보다 날흙으로 만들어진 집들이 한데 모여 있는 형태에 가깝다. (39) [인간종이 동굴에 나와서 흙집[움막]을 지었다? 반지하 움막집일까?...] [들뢰즈/가타리 견해로는 구석기 시대 말에도 마을이 있는 것 같이 상상하는데 말이다....]

첫 단계 농경활동은 서아시아에서 초기 신석기 시대가 시작되고 몇 세기 후인 기원전 95백년 무렵에 나타났다. 초기 신석기 시대는 토기 이전신석기시대로 규정되고 PPN: Pre-Pottery Neolithic)이라는 약어로 칭해지면 다시 각각 PPNA(토기이전 신석기 A)PPNB(토기 이전 신석기 B)로 나뉜다. (40) [“쌀 문화지역이 1만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고 한다. 그런데 최종빙하기에 남방에서 쌀이 먼저일까? 서아시아(중동)에서 밀이 먼저일까? 아직 규명되지 않은 것 같다. (51NMI)

따라서 이 책의 주제와 연관이 있는 시기는 농경의 출현과 토기의 출현 사이, 즉 기원전 9천년-65백 사이에 위치한다. 토기 이전 신석기 시대의 큰 마을들은 나푸트문화기의 마을과 마찬가지로 아나톨리아 반도에서부터 팔레스타인 남부에 이르는 지역에 걸쳐 자리해 있었으며, 문화적으로 상당한 동질성을 지녔다(동일한 집 건축 기술, 동일한 도구 제작 기술). (41) [들뢰즈/가타리가 기원전 7천년전 아나톨리아 지역으로부터 동의 영향권으로 보아 제국이라는 부를 수 있는 영향권을 설명하였는데, 동일한 집 건축과 동일한 도구제작으로 물질적 내용을 찾을 수 있는 것 같다.]

현재 우리가 알고 있는 지식에 따르면 아나톨리아 지역의 경우 적어도 기원전 제8천년기 초에 염소와 양의 목축이 시작된 데다가, 두 동물의 야생 조상종이 원래부터 존재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어쨌든 최초의 가축 종들의 이동은 가축화가 시작되고 수십 년 내재 200-300년 만에 빠르게 진행되었다. 그리고 가축화된 소, , 염소, 돼지가 기원전 8300-8200년부터 키프로스 섬에 존재했다는 최근 연구 결과로 미루어 볼 때, 그 이동은 꽤 긴 거리에 걸쳐 이뤄졌다. 그런데 키프로스는 수백만 년 전 바다에서 솟아난 이후 대륙과 연결된 적이 한 번도 없었던 것으로써, 그 시에 네 가축종의 야생조상에 해당하는 동물은 어떤 것도 존재하지 않았다. (42-43)

가축화된 염소에 대한 증거는 기원전 8천년 무렵에 훨씬 더 동쪽에서, 즉 메소포타미아 지역의 동쪽 가장자리를 따라 이라크와 이란의 국경을 이루고 있는 거대한 자그로스 산맥의 사면에서도 확인된다. (43)

기원전 75백년 무렵 아나톨리아 반도와 이후 이른바 비옥한 초승달 지대(Fertile Crescent)로 일컬어지는 지역의 거의 전역에 거주했던 목축 집단은 네 종의 유제류 가축 , 즉 소, , 돼지, 염소를 사육했다.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지역의 모든 인류가 마을에 정착해 살았다는 뜻은 아니다. 목축을 하되 유목 생활을 했던 최초의 집단이 남긴 흔적도 바로 그 시기로 거슬러 올라간다. (44)

󰋮 유럽에 출현한 유제류 가축 45

실제로 유럽에서는 양과 염소의 야생 조상족이 존재하지 않는다. 서아시아의 들염소와 유사한 야생염소 종은 많이 있지만(코카서스, 알프스, 스페인 지역), 유전학적 연구 결과에 따르면 그 염소 종들은 가축화된 염소와 같은 계통에 속하긴 해도 조상으로 보기에는 유전학적으로 거리가 멀다... (45)

그림 5에서 보듯이 신석기 문화의 확산은 더디게 진행되었다. 그리스에서 스페인까지 전파되는데, 1천년이 넘게 걸렸고, 카르파티아[폴란드아래지역] 분지에서 파리분지까지는 15백년이 걸렸다. 특히 일부지역에서는 문화의 전파가 동일한 과정에서 따라 일정한 속도로 이뤄진 것처럼 보인다. 어느 한 마을에서 나온 첫 후손 세대가 그 마을에서부터 15-18킬로미터 떨어진 새로운 마을에 정착하는 과정에 따라서 말이다. 한 마을의 후손 대부분은 반경 15-18킬로미터 지역에 걸쳐 사방으로 분산되었을 것이다. 예를 들어 신석기 문화가 전파되는 방향의 전방에 마을이 있다고 해보자. 펏 세대의 후손들 가운데 일부는 그 방향을 따라 15-18킬로미터 더 나아간 곳에 정착했을 것이고, 이로써 약 20년에 해당하는 한 세대 동안 그 거리만큼 신석기 문화가 확산되었을 것이다. 이처럼 느리면서도 비교적 일정한 속도로 문화가 확산된 것은 자연스러운 것으로까지 볼 수 있다. 20세기초 선사학자들이 생각한 것처럼 동쪽에서부터 목축 경제의 급격한 유입이나 인류의 대대적인 이동이 있었던 것은 아니라는 얘기다. (49-50) [이런 생각이 든다. : 자동차의 시대, 파리에서 비엔나까지, 1자동차로 1시간 14(1,235.8 km). 파리에서 이스탄불까지 27시간 (2,804.0 km), 파리에서 모스크바까지 29시간 (2,830.4 km) / 서울에서 북경까지 항로 592km]

그런데 신석기 문화가 상대적으로 빠르게 전파된 지역도 있으며, 아주 느리게 전파된 지역도 있다. 빨리 전파된 지역으로는 프랑스 남부를 들 수 있는데, 기원 5800-5600년 무렵 이탈리아에서부터 바다를 통해 이 지역으로 바로 들어온 인류 집단이 양을 들여왔기 때문이다. ...이는 당시 목축 집단이 항해 기술을 유익하게 활용할 줄 알았기에 가능한 일이었다. (50)

아일랜드가 영국보다 먼저 목축을 경험했을 것이다. 영국인들에게는 미안한 얘기지만 말이다! 실제로 목축문화가 영국 땅에 도착한 것은 이후 다뉴브 경로를 통해서였다. 물론 아일랜드에는 다뉴브 경로를 통해서도 다시 목축이 들어온다. 스코틀랜드 북부는 기원전 제4천년기에 가서야 영향을 받는데, 이는 문화의 전파속도가 그만큼 느렸음을 잘 보여주는 사실이다. (52-53)

[§1.3]목축 기술: 고기와 젖의 생산 54

단 동물의 동력활용이나 양털과 모피 생산처럼 이 책의 틀을 벗어난 기술발전 이야기로 흘러갈 수 있는 측면을 제외하고 오로지 고기와 젖의 생산에 관해서만 살펴보기로 하자.

󰋮동물의 외형 관리 54

()에서 나타난 두 가지 형태학적 변화 ...

우선 첫째 변화는 양의 뿔과 관련된 것이다. .. 야생종은 삼각형을 띠지만 가축 종은 타원형이다. 인간이 이러한 변화를 일부러 추구했을 가능성은 희박한데.. .. 따라서 이 변화는 의도적인 것이 아니라 가축화에 따른 우연한 결과로 보인다. (55)

둘째 변화는 양의 크기가 줄어든 것이다. ... / 크기가 서서히 작아진 단계는 갇혀 지냄에 따른 자연스러운결과로 해석해 볼 수 있다. (55-56) [자연과 다른 환경에서 스트레스 때문도 있고, 초기에 경험 부족으로 계절에 따른 영양 결핍도 관계있다고 하다.]

.. 하지만 당시[4천년 전] 인류가 가축을 그 형태에 따라 선별한 행위는 기원후 19세와 20세기 사이에 축산업자들이 샤롤레홀스타인’ ‘오브락등의 품종을 선별한 것과는 아무 상관이 없다. 기원전 인류가 동물에 대해 품종을 구분했다고 말할 수 있는 것은 ()의 경우가 유일하다. 고대 메소포타미아 와 이집트, 그리고 더 나중에 고대 그리스와 로마에서는 사이트하운드나 몰로시안, 소형 견종들을 구분해 알고 있었다. (57)

󰋮고기와 젖 생산의 최적화 58

신석기 시대 목축인이 가축의 성별과 연령을 관리하는 것은 거의 확실하다. 인류가 동물을 사육하게 되면서 제일 먼저 관리한 것이 바로 그 분분이었을 것이다. 그리고 그 방법은 수컷에 비해 온순하고 생산성도 큰 암컷을 선택하고, 이런 저런 가축의 도축의 연령을 그 쓰임새에 따라 결정하는 방식이었을 것으로 보인다. (58)

엘메르(Daniel Helmer, s.d.) 동물고고학, 고생물학,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동방 고고학, 지중해 지역 연구. / 프랑스 국립과학 연구소(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58).

염소 도축 프로필을 보면 그 소비가 0-2개월에서 정점을 이룬다. 젖먹이 새끼 염소가 많이 소비되었다는 뜻이다. ... 도축 프로필에서 2-4(이 연령들은 모두 어림값이다) 무렵에 도축의 비율이 다시 약간 상승한 것도 나이가 들 젖 생산량이 줄기 시작한 염소들(노폐老廢라 일컫는)을 도축한 결과로 볼 수 있을 것이다. (60)

양의 도축 프로필을 염소의 경우와 뚜렷한 차이를 보인다. ... 어린 새끼의 도축 비율은 염소에 비해 훨씬 낮은 대신, 6-18개월에 이른 새끼의 도축 비율이 높다. .. 따라서 양의 도축이 6-18개월에서 높은 비율을 보인다는 것은 그 목축이 고기의 생산을 우선시하는 방식이었음을 말해주는 증거라 할 수 있다. (60-61)

󰋮고기의 활용: 키프로스 돼지의 사례 62

고기를 분할한 기술과 과정을 추측하기는 상당히 쉬운 편이다. 뼈가 도구에 의해 파인 흔적은 유골 상에서도 그대로 남아 있을 때가 많기 때문이다. 하지만 고기를 어떻게 익혔는지 알아내기란 대개 어렵다. 일단 끓여서 익히는 방식(선사 시대 인류는 가죽부대에 담긴 물에 가열한 돌을 넣는 방법을 썼다)은 눈에 보이는 흔적을 뼈에 남기지 않는다. (65)

신석기 시대에 키프로스에서 돼지의 머리와 목, 넓적다리 부위는 언제나 구워서 익혀진 것으로 확인되었다. 이에 비해 다른 부위들에서는 불에 구운 흔적이 전혀 발견되지 않았는데, 물론 그렇다고 해서 그 부위들이 불에 구워진 적이 절대 없다고 단언할 수 있는 것은 아니다. 하지만 불에 구운 흔적이 일부 부위에서 우선적으로 나타나는 것을 미루어 볼 때, 부위마다 방식을 달리하는 요리법이 당시에 이미 존재했던 것으로 추론해 볼 수 있다. 그런데 이처럼 체계화된 요리법이 신석기 시대에 목축과 더불어 시작되었다고 볼 수 없을 것이다. 최초의 목축인은 수렵인의 후손이기만 한게 아니라 목축 초기에는 그들 역시 수렵인이기도 했기 때문이다. (65-66)

󰋮가축의 젖은 언제부터 활용되었을까? 66.

젖의 활용이라는 문제는 반세기 전부터 학자들에게 큰 의문점 한 가지를 제기해왔다. 인류는 목축을 시작하면서부터 가축의 젖을 바로 활용했을까? 아니면 나중에 가서 젖을 활용할 생각을 하게 되었을까? .. 유제류의 목축은 고기를 보다 확실하게 얻기 위해 시작되었을까, 아니면 사냥으로는 얻을 수 없는 젖을 얻기 위해 시작되었을까? (66)

일부학자들은 젖의 활용이 기원전 4천년기, 다시 말해서 목축이 시작되고 4,000년이 더 지난 후에 시작되었다고 봤다. (66) [이 초기 입장은 다섯 번이가 번복되어 목축보다 앞섰다고 여기게 된다. 긴 이야기이 소절(小節)의 주제이다. ]

[그 중에서] 엘메르(Daniel Helmer, s.d.)는 젖이 목축이 시작된 시점과 가까운 시기에 전문적으로 활용되었음을 ..[밝힌다] (69)

트레세(Anne Tresset, s.d) [프랑스 생물학자.] 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 Département Écologie et Gestion de la Biodiversité -(70)

소는 젖의 생산과 관련해 양이나 염소와는 다른 유명한 특성 하나를 가지고 있다. 전통적인 품종의 암소는 젖을 짤 때 새끼가 곁에 없으면 젖을 내놓지 않는다는 게 그것이다. ... / 소의 이러한 특성은 고고학 유적지에 근거해 젖의 활용 문제를 밝히는 일을 더 어렵게 만든다. (70-71) [이로서 도축 프로필에서 젖떼기 시점을 찾게 된다. / / 게다가 고기와 달리 젖의 도구 흔적을 찾기 어렵다.]

안 트레세와 마리 발라스발라스(Marie Balasse, s.d.)는 이상과 같은 방법으로 신석기 시대에 베르시에서 사육된 송아지와 오늘날 송아지의 젖떼기시기를 서로 비교했는데, 그 결과 신석기 시대 송아지가 몇 개월 정도 먼저 젖을 뗀 것으로 확인되었다. (74)

[왜 고기보다 젖을 얻기 위해 노력했을까? 일반적으로 고기는 삶에 건강을 위한 것이라면 젖은 환자(노약자)의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

[한 가지 구석기 동굴벽화는 야생동물일 것인데, ...단지 사냥거리로서 그린 것일까?]

 

2장 목축은 인류 역사의 혁명인가? 77

[§2.1] 인간은 왜 유제류를 가축으로 만들었을까? 79

목축의 기원 ..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아직 알지 못하며, 어쩌면 앞으로도 완전히 알 수 없을 것이다. 하지만 고고학은 몇 가지 실마리를 우리에게 제시해주고 있다. (79)

󰋮최초의 가축화 80

앞에서 봤듯이 가축화의 흔적은 세계 거의 전역에서 찾아볼 수 있다. 그 흔적에 근거해 추론해볼 때 목축 행위는 지리적인 면에서나 시간적인 면에서 서로 독립된 여러 기원을 가진 것으로 보인다. .. 현재 지식 상태에서 볼 때 동물의 가축화는 오스트랄로피테쿠스 시대나 네안데르탈인 시대는 물론이고 후기 구석기 수렵시대에도 없었다. 가축화는 오로지 홀로세 동안 이뤄졌으며, 폭넓은 전개를 통해 인류 사회만이 아니라 지구의 표면적 모습까지 크게 바꾸어 놓았다. (80) [인류가 탈영토화에서 재영토화하면서 환경을 바꾸어 놓았다. 그 환경의 리듬에 맞추려 하는데, 오염 속에서 사는 것도 새로운 영토화 작업이 이어지고 있는 셈이다. 물을 들고 다니듯이 산소를 들고 다니는 시절이 곧 올 것 같다. (51OLF)]

󰋮기후적 제약 81

온난화가 목축의 출현 계기가 되었을 거라고 보는 관점은 오랫동안 하계에서 가장 자주 언급된 가설이다. (81)

이처럼 기후 가설은 신석기 혁명의 전개 및 기후변화에 관한 지식의 발전으로 타당성을 잃었다. 그렇다고 기후적 요인을 완전히 배제해서는 안 될 것이다. (82)

󰋮인구적 경제적 요인 84

... 기원전 제8천년기 중반에 가서야 .. 사냥이 고기 생산에서 둘째 자리로 물러나는 것도 바로 그 지점부터다. (87)

어째든 여기서 우리가 말할 수 있는 것은 목축이 기원전 7500년 무렵에 인류 집단에 실질적인 경제적 이득을 가져다주고 인구 증가 현상에 견인차 역할을 했을지는 몰라도, 고기를 얻는 일이 목축의 출현 계기는 아니었다는 사실이다. 그 대신 목축의 출현이 그 전까지 구하기 힘들었던 식품인 젖(그리고 버터나 치즈 같은 부산물)과 젖이 가진 영양적 이로움을 인류에게 제공함으로써 신석기시대 경제와 인구 증가에 유리한 조건으로 작용한 것은 분명해 보인다. (88)

󰋮기술적 측면 88

새끼 동물을 어린아이 키우듯이 하는 일은 먹을 것(특히 사냥감)을 주는 자연에 바치는 일종의 감사 표시이기 때문이다. 동물이나 식물을 아무 대가 없이 취하기만 하면 자연을 언짢게 만들어서 사냥감이 줄어드는 일을 당한다고 믿는 것이다. ‘펫 키핑(pet-keeping)이라 칭해지는 그러한 관계는 천혜의 자연과 계속해서 조화를 이루면서 살게 해주는 주술의식에 속한다. (89)

여기서 우리에게 중요한 점은, 그 같은 관례에 미루어 볼 때 동물을 돌보고 먹이고 기르는 능력은 신석기시대 초에 개발된 새로운 기술이 아니라 구석기 시대와 중석기 시대의 수렵인이 이미 가지고 있던 기술이었다는 것이다. 이런 의미에서 보면 목축의 출현은 기술적 혁신에 속하는 사건이 아니다. (89)

또한 동물을 기르는 일이 더 이상 어느 한 가정에만 관계된 것이 아니라 마을 공동체 차원에서 전개되었다는 점에서 마찬가지다. (90)

󰋮인류의 인지적 차원 90

목축이 인류의 인지적 진화의 결과로 시작되었다고 보는 가설에 관해서는 고고학자 자크 코뱅(Jacques Cauvin, 19302001)1990년대에 상징의 혁명이라는 표현으로 이야기한 견해를 간단히 살펴볼 필요가 있다. (90-91)

자크 코뱅에 따르면, ... 우선 수렵 채집 사회의 경우에 신앙은 본질적으로 자연주의적 성질을 띠며, 샤먼이 인간과 자연을 매개하는 역할을 한다. 이 같은 신앙에서 인간은 자연의 다른 요소들(동물, 식물, , , 벼락, 화산 등)보다 위에 서는 게 아니라 동일한 위치에 자리 한다. .. 수평적 세계관은 오늘날까지도 다른 문화의 영향을 받지 않은 채 존속되고 있는 수렵 채집 사회들이 지닌 본질적 특징이다. (91) [노마드적 특성이 먼저다. 수평적 관계를 매끈한 공간이라고 한다. ]

기원전 1만년경, 다시 말해 나투프 문화기와 토기 이전 신석기 시대 사이에 놓이는 키아미안(Khiamian)’ 문화기라고 불리는 시기에 ... 고고학적 유적지에서 발견된 상징물 덕분이다. .. 이 상징물들은 돌이나 흙으로 만든 작은 조각상의 형태를 하고 있는데, 여기서 중요한 것은 이 조각상들이 기도자세로 볼 수 있는 모습, 즉 시선이 하늘로 향해 있는 모습의 여신과 인물들을 표현하고 있다는 것이다. 물론 그 훨씬 이전에도 이른바 구석기 시대의 비너스가가 존재했고, 이 역시 영적인 의미를 가지고 있었을 가능성이 크다. 하지만 신석기 시대의 조각상은 구석기 시대의 것과는 다르게 동물을 거느리고 있을 때가 많으며, 이로써 앞에서 말한 인간과 동물의 서열관계를 보여준다. (92)

알랭 테스타르(Alain Testart 1945 2013)가 지적했듯이. 자크 꼬뱅은 신의 관념이 출현한 현상에 대해 과도한 중요성을 부여한 것으로 보인다. 나프트 문화기에서 키아미안 문화기로 넘어가는 시점에 등장한 것으로 확인되는 사회, 경제학적 현상은 다른 것들도 많은 말이다. 예를 들어 당시부터 뚜렷하게 나타나기 시작한 식품저장행위는 부의 축적과 사회적 계급화를 가져왔을 것이고, 그 결과 경제활동의 분업화가 강화되면서 농경과 목축이 출현하기에 알맞은 조건이 형성되었을 수도 있다. (93)

󰋮 고양이: 특별한 가축화 과정 94.

[유제류와 다른 고양이의 가축화는 흥미롭다... 축적에서 오는 식품 도난꾼 쥐들을 억제하기 위한 수단이었다. 환경은 삶의 터전에서 만들어 지는 것이다. ]

흔히 고양이는 이집트에서 처음 가축회되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생각이 사람들의 머리속에 자리 잡게 된 것은 고양이의 모습을 한 여신 바스테트(Bastet)가 이집트 신화에서 중요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데다가, 프톨레마이오스 왕조 때까지 바스테트에게 바쳐진 고양이 미라가 수십만 구나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94-95)

요컨대 학자들은 고양이가 기원전 1900년대 이집트보다 더 이전에 가축화되었을 것이라고 생각해 볼 수는 있었어도 그 증거를 찾을 수 없었으며, 증거를 언젠가는 발견할 수 있을 거라는 기대도 거의 가질 수 없었다. (96)

그런데 1980년대에 들어 영국의 동물고고학자인 사이먼 데이비스(Simon Davis, s.d.)는 당시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의 알랭 르 브룅(Alain Le Brun s.d.)의 연구팀이 발굴한 키프로스의 신석기 시대 유적지 키로키티아(Khirokitia)에서 고양이의 아래턱뼈를 발견한다. (97)

콜레쥬 드 프랑스의 장 길렌(Jean Guilaine, 1936-)이 이끄는 연구팀이 [2004년에 사이프러스의] 쉴로우로캄보스(Shillourokambos)에서 수집한 자료들로 인해 고고학자들은 대륙에서 목축 역사에 관한 해석을 재검토하고 새로운 시나리오를 세워야 했다. (100)

그림11, 사람과 고양이의 유골이 같이 뭍혀있던 실로우로캄보스(키프러스)의 묘지(기원전 7500-7000)에 대한 평면도. (102)

그렇다면 당시 고양이는 서아시아에서 가축으로 길러졌을까? 아마도 그럴 것이다. 왜냐하면 키프로스의 신석기시대 인류는 몇 세기 이전에 아나톨리아나 레반트(지중해 동부 연안 지역)PPNB 마을에서부터 건너온 사람들이기 때문이다. (105)

그렇다면 고양이의 가축화는 인간이 고양이를 인간의 소유로 만들어 이요하기 이전에 고양이가 먼저 인간과 가까워지는 것을 선택하는 매커니즘에 따르지 않았을까? 오늘날 학자들 사이에서 가장 많은 주목을 받고 있는 것이 바로 이 가설이다. / 실제로 레반트 지역에서 쥐는 아주 일찍부터 인간의 편리공생(片利共生) 생물이라 불리는 집단을 이루어 존재한다. (106-107)

파리국립 자연사 박물관의 토마 퀴치(Thomas Cucchi, s.d.)가 최근 증명한 바에 따르면 집쥐가 키프로스에 서식하기 시작한 것은 실로우로캄보스 마을이 처음 생겨난 기원전 8300-8200년 무렵이며, 인류가 키프로스에 여우와 고양이를 들여온 것은 그로부터 불과 몇세기 후의 일이라는 것이다. 결국 당시 키프로스 사람들은 여우와 고양이로부터 얻을 수 있는 이점을 오래전부터 알고 활용하되, 이 동물들을 가축처럼 다루지는 않았던 것 같다. 실로우로캄보스의 묘지에 묻힌 고양이처럼 일부 고양이는 예외적으로 아주 특별한 지위를 누렸던 것으로 보이지만 말이다. (108-1090

󰋮 결론을 대신해서 109

첫째 결론은 고양이(그리고 다른 소형 육식동물들)의 가축화는 쥐 때문에 골치를 앓고 있는 마을이자 인간과 공생할 수 있는 소옇 육식동물이 주변 환경에 서식하고 있던 마을이라면 어디서든 시작되었을 수 있다. (109

둘째 결론은 가축화의 다양성을 시간적, 공간적으로 검토했을 때도 확인 되는 사실로서, 각 동물 종은 각기 고유한 과정에 따라 가축의 지위를 획득했다는 것이다. (110)

게다가 자크 꼬방의 가설은 흥미로운 추가적 고찰을 유도한다. 신석기 혁명의 중심이 되는 변화가 세상을 서열화해서 바라보고 인간을 동식물보다 우위에 놓는 세계관과 관계가 있다면, 이 세계관이 농경과 목축의 출현 외에 다른 중요한 생태학적 변화에도 기원으로 작용하지는 않았을까 하는 것이다. 바로 이 문제가 다음 장에서 마지막으로 살펴볼 내용이다. (111) [인간이 끼친 환경의 변화가 여러 동물에서도 식물에서도 새로운 탈영토화를 가져온다. 환경 자체가 준안정상태가 아닐까? ]

[§2.2] 자연을 길들인다는 것 112

자연을 길들이다라고 표현했을 때, ‘길들이다라는 단어는 동물의 가축화라는 무제에서 그 단어가 갖는 뜻과 물론 같은 뜻은 아니다. .. ‘길들이다라는 단어는 환경에 대한 부분적이고 무의식적인 소유를 가리킨다. / .. 코르시카[를 예시할 것이다.] (112) [길들인다. 영토화하다와 같은 의미로 받아들여도 좋을 것이다.] .

󰋮 코르시카의 동물상 변화 113

후기 구석기 시대에 코르시카는 사르데냐 섬과 더불어 아주 커다란 하나의 섬을 이루고 있었다. 그런데도 당시 수렵인이 이 섬에 들어와 살지 않았다는 것은 의외의 사실이다. (113)

최종빙기 초에 코르시카에는 여섯 종의 포유류가 존재했다. (113)

다시 말해 인간이 들어와 살지 않았던 플라이스토세에는 새로운 종이 1,000년 마다 약 0.06종이 유입되었다. 종의 유입이 평균적으로 1만년마다 한 번도 안 되는 꼴로, 즉 우연의 작용(예를 들어 동물이 헤엄쳐 건너오거나 나뭇가지를 타고 건너오는 것 같은)으로 발생했다는 뜻이다. 그러므로 신석기 시대 초 이후로 코르시카에 새로운 종이 유입된 배율은 상대적으로 비정상적이라 할 수 있으며, 이는 신석기 시대 이전에는 작용하지 않았던 새로운 요인이 개입되었음을 암시한다. 게다가 해당 현상이 신석기 시대 인류가 코르시카에 정착한 바로 그 시기에 발생했다는 사실에 미루어 볼 때, 결국 문제의 개입은 인간에 의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인간이 코르시카 자체를 인간의 소유로 만든 것은 아니지만 그 환경을 간접적이고 부분적인 방식으로 소유했고, 이는 적어도 포유류에 있어서는(조류와 파충류, 양서류는 그렇게 큰 영향을 받지 않았다) 섬의 동물상을 완전히 뒤바꿀 정도로 충분히 큰 변화였던 것이다. (118)

󰋮 신석기 시대에 시작된 지중해 생물 다양성의 감소 120

각 섬의 생물 다양성이 그처럼 증가한 것이 인간의 개입에 따른 긍정적인 결과로 생각될 수도 있을 것이다. 하지만 유감스럽게도 그렇지 않다. 그 현상은 오히려 생태학적 재앙에 해당한다. 실제로 그러한 생물 다양성의 증가는 섬 각각에 대한 현실일 뿐, 지중해 유역 전체에 관계된 것이 아니다. ... 지중해 유혁 전체로 보면 생물 다양성의 감소가 발생한다. (120)

󰋮 새로운 포유류의 유입 122

󰋮 섬에서 대륙으로 오록스의 멸종 124

역사상 실재하는 오록스의 모습을 담은 마지막 자료는 16세기에 독일계 스위스 박물학자 게스너(Conrad Gessner, Konrad Gessner, 1516-1565)가 남긴 판화 작품이다. (125)

어째서 보호 정책을 펼쳤음에도 오록스의 수가 감소하는 것을 막지 못했을까? 그 답은 복잡하면서도 전쟁으로 얼룩졌던 유럽의 역사에서 찾아봐야 한다. 전쟁이 몇 년감 계속돼도 보호 정책은 느슨해졌고, 기아가 창궐하면서 오록스는 허기진 사람들의 배를 채워줄 수밖에 없었기 때문이다. 게다가 야크토로프카 보호구역을 사실상 오록스의 무덤으로 만들면서 멸종을 부추긴 사건도 있었다. 이 보호구역 주변에는 가축화된 소들이 서식하면서 오록스와 이따금 접촉을 했는데, 이 소들이 질병에 걸려 오록스에게 그 병을 옮긴 것이다. .. 마지막 암컷 한 마리가 1627년에 죽으면서 오록스는 지구상에서 영영 모습을 감추고 만다. (127) [북미의 산비둘기 비슷한 새가 죽은 기록을 본적이 있는데, .. 인간들 참 나쁘다 생명계의 상위에 있다는 사고가 지구 환경을 이렇게 변하게 하는 지도 모른다. 이제 공기를 사서 마셔야 할 때가 가깝다니 말이다...]

󰋮토끼의 확산: 사냥감에서 가축으로 128

사람들이 흔히 하는 생각과 달리 토끼는 처음부터 세계 곳곳에 존재하면서 번식하는 동물은 아니었다. 토끼는 매우 빠르게 번식하는 것은 사실이지만, 서식지에 틀어박혀 있는 습성이 커서 자기 영역 밖으로는 거의 나오지 않는다. (128-129)

토끼의 확산은 중세에 이르러 가속화된다. 우선 9세기에는 루아르 북쪽 니에브르 지역에 토끼가 출현했다. 그리고 다시 빠르게 확산되면서 11-12세기에는 파리 분지와 프랑스 북부 에 이어 영국, 아일랜드, 독일 북부, 네델란드 등지에서 나타났으며, 14세기-15세기에는 덴마크, 스코틀랜드, 이탈리아 전역과 사르데냐 첨에서도 그 모습을 드러냈다(코르시카 섬에는 아직 출현하지 않았다). 대서양, 인도양, 태평양의 수많은 섬에까지 확산되었다. 토끼를 배에 싣지 못하게 하는 미신이 있었음에도 선원들이 토끼를 섬에 데려간 것은 몇 마리만 풀어 놓으면 수년 뒤에 다시 섬을 찾았을 때 싱싱한 고기를 실컷 먹을 수 있다는 사실을 알았기 때문이다. 더구나 토끼 고기는 괴혈병에 좋다는 이유에서도 귀한 대접을 받았다. (129-130)

유럽과 이후 세계 여러 지역에 빠르게 확산된 토끼는 다양한 문제를 불러왔다. .. 짐작할 수 있다시피 여기서 지배적인 역할을 한 것은 인간의 개입이었으며, 특히 두 가지 중요한 사회 현상이 원인으로 작용했다. (130)

첫째 현상은 사냥이 특권층의 소유물이 된 것이다. .. 평민은 사냥을 할 수 없었으며, 이를 위반할 경우 대개는 사형에 처해졌다. (130-131)

둘째 현상은 10세기부터 이른바 토끼 수렵장이 생긴 것이다. 이 수렵장은 울타리가 없는 땅에 토끼 몇 마리를 들여 놓고, 토끼들이 그 안에서 자연 상태로 굴을 파고 번식하며 살게 만들어둔 공간이었다. (131) ‘

자도라-리오(Élisabeth Zadora-Rio, s.d.)

세실 칼루(Cécile Callou, s.d.). Archéologie - Archéozoologie

토끼의 사례는 가축화의 기원을 이해하는 문제와 관련해 중요한 세가지 정보를 제공한다. 첫째 정보는 동물의 가축화는 갑작스런 사건으로 시작되는 것이 아니라 서서히 진행되는 과정의 결과라는 것이다. 가령 토끼의 가축화 과정은 1500년 걸쳐 진행된 사건이다. 둘째 정보는 동물의 가축화에는 사회의 성향이 큰 영향을 미친다. 토끼의 가축화는 중세 사회의 극심한 계급화나 사냥을 가치있는 활동으로 여기는 사고방식이 없었다면 이뤄지지 못했을지도 모른다. 셋째 정보는 동물의 지위가 오늘날 사회에서도 사냥과 목축 사이를 오가고 있다는 것이다. 현재 우리가 야생의 것길들여진 것사이에 그어둔 구분선은 결국 절대적인 것이 아니라 상대적인 것이라는 얘기다. (133-134)

* 나가는 말 135.

개를 기른 구석기시대 수렵인의 사회를 서아시아 지역에서 최초의 마을을 세워 염소젖을 활용하고 고양이를 이용하며 살았던 인류의 사회나 혹은 토끼 수렵장을 만들어 토끼를 확산시키는 결과를 가져온 중세 사회에 연결 짓는 작업이 오늘날 우리 사회의 일부 문제점들을 더 잘 이해하는데 도움이 될까? (135)

이 책에서 목축의 기원을 고고학적 조명과 더불어 보다 넓은 관점, 즉 수천 년 전에 시작되어 갈수록 심화되어온 인간의 자연 지배라는 관점에서 살펴봄으로써 강조하고자 했던 것은 지금의 우리와 최근 선사시대를 살았던 우리 조상들 사이에 존재하는 본질적인 연관성 때문이다. (136)

해마다 수천 종에 이르는 동식물이 멸종하는 것은 물론 지구에게 돌이킬 수 없는 손실이다. 하지만 우리가 유전자재조합 생물체(GMO, Geneticallly Midified Organisme)에 대해 주저하는 마음을 품고 있음에도 이미 그로 인해 인위적인 생물다양성을 만들어내는 단계에 들어서 잇는 문제는 어떻게 봐야 할까? (135) [지각불가능한 과정을 거쳐서 가시적 결과가 나오시기는 생명체에서 세기이상일 수도 있다. 그 미래 인류에 대한 사고보다 이제까지 살아온 과정에서 사라진 종들에 대한 연구가 더 필요할 수 있다는 것이다. 거기서 실마리를 찾아야 하지 않겠는가?]

우리가 우리에게 주어진 책임을 깨닫고 이 깨달음이 풍요로운 생물학적 재산을 지키기 위한 다양한 형태의 행동으로 이어진다면, 5세기 뒤에 지금 우리의 지각은 인류 역사의 차원에서 신석기 시대 인류가 동식물을 활용할 수 잇는 인간의 힘을 자각한 것만큼 중요한 혁신이었던 던 것으로 드러날지 모른다. 실제로 2세기 전부터 현대 생물과학 분야들의 출현과 더불어 시작된 혁신이 3세기 안에 인류에게 새로운 자원 활용 능력을 가져다주지 말란 법도 없지 않은가? 야생의 것과 길들여진 것, 자연적인 것과 문화적인 것이 더 이상 오늘날과 같은 의미를 갖지 않는 형태의 자원 활용 능력 말이다. (139) [200년 사이에 굉장한 인지 지식의 발달을 가져왔고 실재 삶의 양식에도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몇 몇 종의 멸종에도 영향을 미치듯이, 그런데 앞으로 3세기(근거를 제시하지 않은 추정) 3백년 이내로 새로운 변화, 종 자체의 탈영토화가 있을 수 있다고 저자는 추측하는 모양이다. 나로서는 적어도 나 이후 10세대가 어떻게 살지를 알 수 없다. 말하자면 우리가 5백전(연산-중종)시대에서 지금까지 변화를 유추해서 앞으로의 변화를 추론할 수 없고, 21세기 18(거의 20)의 변화가 과거의 100보다 더 격변하는 것 같으니 말이다. 3백년이면 과거 1500년의 변화과정 보다더 변화가 심할 것 같다. 20년을 변화의 작은 변곡점이 생긴다고 보면 앞으로 2040년의 변화는 어쩌면 1500년보다 훨씬 더 길게 잡아 2000년의 변화를, 각 분야별로 스크린으로 담아 각각을 1시간으로 영상으로 틀어본다고 해보자. 상상(l'imagnaire)한 미래를 바라볼 수 있을 지도 모르겠다. (51OLH)]

.. 우리가 기억해야 할 두 가지 중요한 사실을 짚어보면서 내용을 마무리하기로 하자. 우선 첫째 사실은 역사가 우리에게 가르쳐주듯이 어떤 인간 사회도 상상력을 포기하지 못했고, 포기하려 하지도 않았다는 것이다. 우리 주변의 생명체들, 우리가 영양을 취하고 또 보호하고 이용하고 변화시키려고 애쓰는 그 생명체들은 우리 감각 세계와 공명(共鳴)하고 있으며, 세상과 우주에서 인간이 차지하는 지위에 대한 우리의 인식과도 공명하고 있다. 신석기 시대든 오늘날이든 어떤 기술적 행동도 집단적 상상력이 그것에 암시적으로 결부 시키는 긍정적이거나 부정적인 의미로부터 자유롭지 않다. 따라서 우리 사회가 기술적 행동이 가여올 미래에 효과적으로 대처할 수 있으려면 인간과 인간 사회를 움직이는 심층적 정신 구조를 더 잘 파악하고 고려해야 한다는 얘기다. (139-140) [들뢰즈/가타리가 한걸음 더 나아가 환경과 생명체 사이에 공명이 있고, 우주 안에서 환경들 사이에도 공명이 있다. 이 공명의 진동하는 판이 플라노메네 이며, 추상적 기계라고 한다. 추상적이라고 하는 것은, 왜냐하면, 질들로 이루어진 고른판은 형상 없는 순수질과 같은 것이기 때문이다. (51OLH)]

둘째 사실은, 목축의 기원은 알아보며 확인할 수 있었듯이 인류 역사에 과한 우리 지식은 아직 몹시 미미한 단계라는 것이다. 그러므로 그 지식을 더 넓힐 필요가 있다. 과거를 더 많이 알지 못한 채로, 그래서 역사(선사시대의 역사를 포함해서)만이 우리에게 제공해줄 수 있는 수백 년 내재 수천 년의 거리두기를 활용하지 못하는 채로 미래의 도전에 응하려고 하는 것은 이치에 맞지 않는 일일 것이다. (140) [상층의 유용, 실용, 편리의 논리가 얼마나 현재 인간의 이기심을 부추기고 있는지를 생각해보아야 한다. 지식은 아직도 미미하다. 그 심층의 과정을 채우재는 만큼 미래의 인류의 삶의 양식에 대한 기대와 희망이 있을 것이다. 기대와 희망을 예견하고자 하는 헛된 망상이 결과론과 목적론에 기대고 있다는 사실을 알아야 할 것이다. 미래는 예측불가능하다. 그럼에도 오랜 과정의 변화를 보면 미래의 갈래가 흐릿하기보다 새로운 반복의 창발을 볼 수 있을 것이다. 며칠 전에도 정감록보다 낫다고 여기는 송하비결의 예언서를 믿는 '경제적 공진화 모임'(경공모)의 드루킹이라는 인물이 화제다. 예언이 결과론이라는 것을, 그리고 지적 배경이 인지론이라는 것을, 그리고 그런 모임이 거의 모두 다단계처럼 위계라는 것, 이런 양식의 삶의 양식이 군사문화의 반영이라는 것을, 상층형이상학의 본질을 잡아먹힌 사고라는 것, 최상에는 인정하든 인정하지 않는 초월자를 두는 것, 이런 배경에 전쟁의 부추기는 이상한 유일신앙자들의 선동이 있다는 것, 그 선동으로 위험과 위협을 넘어서 인민에게 공포를 심는 다는 것, 등을 사유해 볼 필요가 있다. 사유 심층의 깊이에 들어가는 것이 미흡하다. 그 노력에 인구의 80%가 기울여야 반도의 진정한 영세중립이 도래할 것이다. 인민이 스스로 사유의 양식들을 가질 때가 되었다. (51OLH)]

* 참고문헌 142

* 감사의 글 145 (13:32, 51OLH)

 

## 인명 ...

발라스(Marie Balasse, s.d.) 프랑스 국립과학연구소 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뷔퐁(Georges Louis Leclerc de Buffon, 1707-1788) 프랑스의 철학자박물학자. I. 뉴턴의 영향을 받아 그 저서를 프랑스에 소개하는 동시에 인과론적 자연인식의 발전에 힘써 '유기분자설'을 수립했다.

세실 칼루(Cécile Callou, s.d.) 프랑스 고고 동물학자. Archéologie - Archéozoologie De la garenne au clapier: étude archéozoologique du lapin en Europe occidentale (1CD audio)1 Jul 2003

꼬뱅 (Jacques Cauvin, 19302001) 프랑스 인류학자, 고고학자. 󰡔Religions néolithiques de Syrie-Palestine. 1972󰡕, 󰡔Naissance des divinités, naissance de l'agriculture : La révolution des symboles au Néolithique 1994󰡕(증보판 1997).

퀴치(Thomas Cucchi, s.d.) 프랑스 고고학자, 생물학자. chercheur du CNRS au laboratoire archéozoologie et archéobotanique1

다비스(Simon J.M. Davis ) 󰡔(The Archaeology of Animals, 1987)󰡕

장 루이 데살(Jean-Louis Dessalles, 1956-)과 파스칼 피크(Pascal Picq, 1954-), 베르나르 빅토리(Bernard Victorri, s.d.)󰡔언어의 기원(Les origines du langage)󰡕

게스너(Conrad Gessner, Konrad Gessner, 1516-1565) 스위스 자연학자.

길렌(Jean Guilaine, 1936-) 프랑스 고고학자. spécialiste de la Préhistoire récente et de la Protohistoire. 2004년 사이프러스의 쉴로우로캄보스(Shillourokambos) 발굴 󰡔Au temps des dolmens, 1998󰡕,

엘메르(Daniel Helmer, s.d.) 동물고고학, 고생물학, 신석기시대 청동기 시대, 동방 고고학, 지중해 지역 연구. / 프랑스 국립과학 연구소(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르 브룅(Alain Le Brun s.d. ) 1977-1981년 키로키티아(Khirokitia, Chypre) 유적 발굴(Etudes néolithiques), Directeur de recherche au CNRS, Directeur de la Mission française de Khirokitia. 󰡔Les anciens Chypriotes. Entre Orient et Occident Vassos Karageorghis 1992󰡕 󰡔Khirokitia, un village néolithique 1995󰡕

미셀 로르블랑셰(Michel Lorblanchet, 1955-)󰡔예술의 기원(Les origines de l'art, 2006)󰡕

브뤼노 모레유(Bruno Maureille, 1963-)󰡔최초의 장례(Les premières sépultures, 2004)󰡕 B Qu'est-il arrivé à l'homme de Néandertal?, 2008

마르셀 마주와예(Marcel Mazoyer, 1933-), ingénieur agronome et enseignant-chercheur, 󰡔농경의 시작(Les débuts de l'agriculture)󰡕, Développement et socialismes avec René Dumont, Le Seuil, Paris, 1969

파스칼 피크(Pascal Picq, 1954-)와 엘렌 로슈(Hélène Roche, s.d.)󰡔최초의 도구(Les premiers outils)󰡕

포플랑(François Poplin, 1943-). 프랑스 수의학 박사(Lyon, 1967). - Maitre de conférence au Muse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à Paris (en 2010)

엘렌 로슈(Hélène Roche, 1946-), 󰡔최초의 도구(Les premiers outils)󰡕(avec 파스칼 피크(Pascal Picq, 1954-). Docteur en archéologie préhistorique, Hélène Roche est directeur de recherches émérite au Centre National de la Recherche Scientifique (CNRS). Au début des années 1970, elle fait un séjour de deux ans au Tchad en tant qu’enseignante à l’Université de Ndjamena.

롤랑 샤에르(Roland Schaer, 1947-) ENS출신, 1971년에 철학으로 교수자격 통과, 생명체의 철학자. 󰡔문화의 기원들(Les origines de la culture, 2008)󰡕(éditions du Pommier, 2008, 117 p.), 󰡔살아있는 것에 대답한다(Répondre du vivant, 2013)󰡕(éditions du Pommier, 237 p.)

테스타르(Alain Testart 1945-2013) 프랑스 인류학자. un anthropologue français.

트레세(Anne Tresset, s.d) 프랑스 생물학자. Muséum National d'Histoire Naturelle · Département Écologie et Gestion de la Biodiversité

장 드니 비뉴(Jean-Denis Vigne, 1954-), 󰡔목축의 시작(Les débuts de l'élevage, 2004)󰡕

자도라-리오(Élisabeth Zadora-Rio, s.d.) directeur de recherches au CNRS, 󰡔L'église, le terroir, 1989󰡕

(15:03, 51OLH)


첨부파일 책S20비뉴2004목축.hwp

 


다음검색
현재 게시글 추가 기능 열기
  • 북마크
  • 신고 센터로 신고

댓글

댓글 리스트
맨위로

카페 검색

카페 검색어 입력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