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eyond Science and Civilization: A Post-Needham Critique, 1999.
[과학과 문명을 넘어서: 니담이후 비평, 1999]
하트(Roger Preston Hart 1957k- ), EASTM( 16, 1999, pp. 84-114
EASTM: East Asian Science, Technology, and Medicine)
본문은 읽지 않았다. 결론(107-109쪽)을 몇 번 읽어 보았으나, 논자인 하트가 과학사의 방향을 잡으려는 것 같은 느낌이다. 그런데 과학사? 이것은 학문사는 아니겠지만, 인식론적 대상으로서 자연과학을 지칭할 것 같다. 그러면 자연과학 속에 수학을 포함시킬까? 아닌 것 같고 사회학과 심리학을 다루는 것 같지도 않다.
제목에서나 본문의 소제목에서 과학과 문명을 등위적으로 놓았다. 일반적으로 서양이 자연과학의 발달사를 문명사처럼 여긴다. 그런데 프랑스 철학 개론들은 21세기 후반에 들어와 문명이란 항목을 다루지 않는다고 소개한다. 그 대신 자연과 문화라는 대비로 다룬다. 한마디만 하자. 동양과 서양을 문명으로 나누는 것이 이데올로기이다. 서양문명이 우월하다는 선전제로 암묵적으로 가지고 있다.
이 논자가 역사에서 근대라고 하는 시기를 어디로 잡고 있는지, 근대과학에서 근대와 같은지도 또한 누구의 학설을 기준으로 삼았는지도 의아하고, 그가 말하는 이성(reason), (논리인지 인식인지) 합리성(rationality)과 법칙 또는 규약의 합법성(legitimity)은 무슨 내용을 근거로 하는지... 아마도 내가 본문을 죽 안 읽어서 그럴까?
이 논자의 결론을 첫 줄을 볼 것 같으면 문명과 문화를 섞어 놓아서 나로서는 혼란 스럽다. 왜 논자는 이런 투로 글을 쓸 수 밖에 없었을까? 논자는 프랑스 문헌을 프랑스 문맥에서 읽지 않은 것 같다. 예로서 푸꼬의 작품 영어 번역본이 나를 놀라게 한다. “광기와 문명: 이성의 시대에 미치광이의 역사”이다. 여기에 ‘문명’이란 것이 큰 주제처럼 되어 있다. 결론 부분에서 논자는 문명과 문화를 여러 차례 혼용해서 쓴다. 한 가지만 말하자. 소위 말하는 수학이나 자연 과학은 [논리학이 원리를 내세운다고 하면] 일정한 한계 내에 일정한 법칙 또는 규칙을 찾는 것이다. 그 규칙을 잘 찾을 수 없는 부분이 인간과학 즉 사회학, 심리학, 인류학, 인종학 등이다. 왜 이런 분류가 있는가? 피타고라스와 플라톤의 분할의 법칙은 어느 한쪽 부분만을 다루겠다는 의사표시정도 인데, 그 한부분에 법칙 또는 규칙 같은 것을 발견하면 다른 학문에도 적용되리라고 믿는 것은 크게는 일반화의 오류이고 적게는 범주 착오이다.
분할과 분류는 다르다. 분할의 법칙은 형식상으로 또는 형상을 위주로 하는 상층형이상학을 기반으로 한다. 분류는 생성과 확장에 따른 관계와 연관을 다루는 것으로 심층형이상학을 근원으로 한다. 이 둘을 들뢰즈는 차이와 “차히”로서 구별했다. 심층에서는 범주와 부분(특이성)도 다르고, 경계를 한정짓는 방법도 다르다. 서양과 비서양으로 나누어, 서양은 이성적이고 비서양은 불합리(여기서는 직관)하고, 서양은 지적 수준이 높은데 비해 비서양은 원시적[토속적]이라고 보았던 것은 19세기 크리스트교 이데올로기의 절정이었고, 그러한 오만이 극에 달해 21세기에 그들끼리 문명과 야만의 1차대전을 치르고(물론 정치경제학적으로 식민지 쟁탈전이다) 그리고 2차대전을 분할법으로 이어지는 것이 아니었던가.
동양과 서양의 차이를 지리적인 관계에 이데올로기적 관계와 섞어서 보는 것은 기본적으로 서양이 동양을 하위에서 대등관계로 올려주는 듯이 보이는 정도이다. 동양은 기본적으로 확장과 조화인데 비해, 서양은 위계와 지배이다. 서양에서 이를 문명으로 또는 과학과 기술로서 포장한 것이 과학을 통한 동서양의 구별이다. 이는 동일성이라는 기반을 먼저 가정한 것을 우선 또는 상위로 삼고서, 이질성이지만 조화(화이부동)를 추구하는데도 불화처럼 보이는 것을 강조하여 배제의 원리를 들이대는 것이 서양의 사고이다. 물론 소크라테스에서 벩송과 들뢰즈에서도 이질성과 특이성을 주장하는 경우들이 있는데, 논자는 이런 점에 대해서 모르는 것 같다.
논자는 인류가 지성에서 또 직관에서 별 차이가 없다는 것을 인정하지 않는 것 같다. 과학기술을 바탕으로 하는 문명론을 버리고 문화론에 입장에 서면, 20세기 전반의 프랑스처럼, 토속문화와 기계문화 사이에 이성의 차이는 없다고 한다. 단지 삶의 공동체에서 필요한 대상들(기계들)과 그 적용방식에서 “차히”가 있다. 논자는 통합 또는 통일성을 이루는 하나의 법칙과 같은 것이 있을 것으로 보고 있는 듯하다. 차이들을 모으면 하나의 통일된 것 또는 부분들의 총체적 통합이 연속성을 갖는 것처럼 보고 있기 때문이다. “차히”가 모이면 통합이 아니라 “다발”이며 차히들의 총체적 일체는 확장이며 소라고등처럼 넓어져 간다는 점을 간과한 것이다. 그래서 논자는 아직도 그의 참고문헌의 러셀이나 비트겐슈타인을 읽고 있는지 모른다.
그의 결론은 과학과 문명에서 작은 부분에서라도 실재성을 보려고 한다. 그의 실재성의 개념도 모호하다. 철학에서 상층의 철학에서 원리과 법칙이 실재성이라고 근 2000년을 주장했지만, 이제 심층 철학에서는 원리와 법칙은 인위적으로 만든 관념(아직 미해결인 선전제)일 뿐이며, 특이성과 창발(emergence)의 개연성 속에서 미래에 대한 탐구를 한다는 것은 상식처럼 되어 있지 않는가? 논자는 문명의 몰락을 걱정하는지 모르지만, 인류는 새로운 문화를 만들며 살아갈 것이다. 알파고의 알고리즘이 이세돌을 이긴 것은 문명의 승리이지만, 19 대 19라는 바둑판의 한정 위에서 이다. 그 수는 어느 한계에서 끝날 수 있다. 그러나 인간의 70억(오늘) 대 70억(내일)은 가능한 좋은 수를 찾으려 노력을 하지만 답이 있는 것도 한계가 있는 것도 아니다. 학문으로써 과학은 한계가 없다. 그럼에도 각 부분 과학들이 자기 한계 내에서 무엇이 법칙적이며 규약적인지를 찾는 것은 중요하다. 그렇다고 한 과학이 다른 과학의 상위에 있는 것도 아니며, 한 과학의 원리가 다른 과학에 적용되어 맞아 떨어지라는 법도 없다. 특이성으로써 각 인간은 삶의 양식들(문화)을 다양하게 만드는 다양체의 일부이다. (49NLD)
**다시 생각해보면, 하트는 합리주의와 이성주의를 구별하지 않고 있다. 분할의 법칙을 이용하는 자들이 분할의 어느 한 쪽을 진리라고 하는 의미에서 의미론자들이다. 분할은 편이와 실용을 위한 것이다. 이성주의는 각각의 분할에서 각각의 장점을 보면서 조화와 종합을 하려 한다. 이성은 한 쪽이 진리이면 다른 쪽이 거짓이라는 것이 아니라, 한 쪽은 이런 면에서 유용하고 다른 쪽은 다른 면에서 유용하다는 것을 알고 각각의 영역과 법위 또는 법주를 인정해 주는 것이다. 합리주의 관점에 서있는 자들의 오해 중에 또 하나는 자기 쪽은 실재성이며 다른 쪽을 관념론 또는 유명론 정도로 여긴다. 상층의 합리주의 법칙 또는 원칙이 관념에 가깝고, 그 유명론 정도로 치부하는 심층의 실재성은 자연주의적 태도에서 오는 구체적이고 현실적이다. 즉 실재론의 두 가지 개념이 있다. 즉 상층의 실재론과 심층의 실재론이다. 논자는 상층의 실재론, 분할의 한쪽을 합리를 넘어서 이성이라고 보는 듯하다. 이것은 전래적으로 제국주의의 산물이며, 모든 과학의 통일이 가능하고 그 가능성 위에 하나의 원리 즉 신적 원리가 먼저(선 전제로) 있다는 신념(신앙)을 이야기하는 것 이상의 것이 아니다. 제국주의가 통일성과 절대성을 선전제로 두고 지배와 통제의 방식으로 사고하는 것은 오래동안 위계의 하부에 대한 억압과 수탈의 방식이다. 이들에게 한 가지만 해보라고 하면 된다. 포틀래치를 한번 실행해 보고, 즉 모든 것은 다 내주고도 다시 그렇게 스스로 모을 수 있는 능력이 있는 자가 진솔하게(그들 말로 진리로) 능력있는 자라는 것을 실행해보면 된다. 재벌의 자식이 이런 진솔(진리)를 모를 리 있겠는가? 다 내주면 자기가 타인을 따르게하고 배우게할 능력이 있기나 하겠는가? 합리의 법칙과 권력과 자본은 그런 행태의 착각을 진리라고 여기고 있다.
진정한 기억을 지닌 자는 아무것을 가지고 있지 않는 듯이, 산보하고 돌아다녀도 그 능력을 발휘할 수 있다. 노마드를 행하는 리좀이 어디에 간들, 어디에서 주저앉아도 맑은 샘으로 솟아난다. 안그런가? 알파고는 합리적 사고이며 인간은 이성적 사유를 한다. 그렇지 않은가? (49LNE)
# [과학과 문명을 넘어서: 니담이후 비평, 1999], 하트(Roger Preston Hart 1957k- )
차례
[서언] 88
문명과 과학 90
과학적 서양과 직관적 동양 93
토속적(primitive) 대 근대 과학 96 [우리가 토속적이라 번역한 것은 문화적 차원이다]
과학적 혁명과 그(The) 과학적 혁명 98
찬사-와-비난 문명들의 역사들 101
차이들을 반복하기 103
과학과 후기 근대의 서양 105
결론 107
* 참조문헌 109-114
[여기에는 그 많은 참고 문헌 중에 데리다(Derrida)의 책(Dissemination 1981) 한권, 푸꼬(Foucault)의 책 (Histoire de la folie à l'âge classique. Folie et déraison, 1961)(영어판 Madness and Civilization: A history of Insanity in the Age of Reason, 1988) 책 한 권이 있다.]
[저자가 세 권(편) 이상 참조문헌에 기록한 학자들은 보드(Derk Bodde, 1909–2003), 크롬비(A. C. Crombie, 1915–1996), 니덤(Joseph Needham, 1900-1995), 피엔슨(Lewis Pyenson, s.d.), 시빈(Nathan Sivin 1931-) 등이다.] .
- [영국의 초기 작업에 이어서 미국이 중국에게 학문적으로 접근하고 있는 중인 것 같다.(오랜 제스위트의 작업과 차이가 있을 것이다). 그럼에도 합리성(상층 관념성)와 실재론(경험론)에 근거하여 지배적 논리에 치중하고 있지나 않을까? 탈식민지 관점일까 식민지 지배의 관점일까? (49NLE)
*** 시대 순
조지프 니덤(Joseph Terence Montgomery Needham, 1900-1995)[李约瑟, Lǐ Yuēsè 리약슬]영국 케임브리지 대학의 교수, 박물학, 과학사회학 학자. 중국에서 과학과 문명(Science and Civilisation in China (1954–2008)
보드(Derk Bodde, 1909–2003) 미국인 중국 역사학자, 중국학 전공. 중국 사상, 사회 과학(Chinese Thought, Society, and Science: The Intellectual and Social Background of Science and Technology in Pre-Modern China, 1991
크롬비(Alistair Cameron Crombie, 1915–1996) 오스트레일리아 과학사가, Styles of Scientific Thinking in the European Tradition: The History of Argument and Explanation Especially in the Mathematical and Biomedical Sciences and Arts. 1994
시빈(Nathan Sivin 1931-)[Xiwen, 席文, 석문), 미국작가 중국연구자, 역사가, 펜실베니아 대학 명예교수. History of Humanity. Scientific and Cultural Development. 1996, The Way and the Word. Science and Medicine in Early Greece and China 2002(with Sir Geoffrey Lloyd).
로이드(Geoffrey Ernest Richard Lloyd, 1933-), 켐브리지 대학 고대과학 및 의학사가. 니담연구소 연구원. 적대자들과 권위자들(Adversaries and Authorities: Investigations into ancient Greek and Chinese Science. 1996) .
피엔슨(Lewis Pyenson, s.d.)[1943k-] The Goettingen reception of Einstein's general theory of relativity, 1973) Cultural Imperialism and Exact Sciences: German Expension Overseas 1900-1930, 1985, Lewis Pyenson Empire of Reason: Exact Sciences in Indonesia 1840-1940, 1997
- Lewis Pyenson and Jean-François Gauvin, The art of teaching physics: the eighteenth-century demonstration apparatus of Jean Antoine Nollet(Lewis Pyenson; Jean-François Gauvin; David M. Stewart, Québec : Septentrion, 2002).
하트(Roger Preston Hart, s.d. 1957k- ) 텍사스 대학 조교수, 중국 연구자. 1979년 수학으로 학사, 1982년 수학으로 석사, 이후 중국유학, 1997년 중국역사 과학사 박사학위 (49NLD) (4:20 49N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