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터 벤야민: 고통의 기억과 유물론적 구원의 유토피아
연효숙(연세대 외래교수), pp. 235-264.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다시 쓰는 맑스주의 사상사
한국철학사상연구회, 오월의 봄, 2013, P. 560.
벤야민을 맑스주의와 연결할 수 있는 고리가 있을까? 벤야민은 일차대전이 이후에야 학문 활동하여, 이차대전 발발로 프랑스로 도피하였고 독일의 프랑스 점령으로 쫓기어 스페인으로 넘어가는 중에 죽었다. 그가 살았던 시기에 중요한 것은 세계공황이 있었고, 각나라들 모두 기술발전에 열을 올리는 시절이다. 1차대전이 레닌 말대로 식민쟁탈 전쟁이었다면, 이 시기에 특히 독일의 나찌 정권은 기술력의 발달을 목표로 삼아 세계의 식민지 재편에 가담하는 시기이다. 기술발달이 인간의 삶을 부유하고 안락하게 하리라는 희망은 시간이 지남에 따라 계급사회를 강화하고 지배계급의 획일화와 절대화를 이루는 전제(전체주의) 국가로 가는 시기이다. 소련은 계획경제체제에서 미국은 테네시개발에서 국가주의 획일화로 가고, 일본은 산업화의 과정에서 만주 사변을 일으키며 제국주의의 대열에 들어가는 시기이다. 를 위해 것도 마찬가지였다. 이런 시기에 인민은 억압의 대상이다.
유태인으로서 소수자인 벤야민이 독일을 보는 눈은 비판적일 수 밖에 없을 것이다. 인식론적 의미에서 과학주의 또는 형이상학적 의미에 주지주의가 전반적으로 주류를 이루는 상황이며, 신칸트학파가 배경이며, 통일과학론이 가세하고 있다. 여기에 프랑크푸르트학파의 비판이론은 인식론에 대한 비판으로 시대적 한계를 갖는다. 벤야민은 과학주의의 폐단을 보면서도 독일에서 인민의 성장이 필요함을 느꼈으리라. 그는 은연중에 인성에 관한한 인문주의가 아니라 인도주의에 연관에 있게 된다.
유태인 프로이트와 유태인 벤야민의 공통점은 정신병리학적 의미에서 둘다 과거의 추억들 중에 고통 또는 위협의 순간에 대해 다시 떠올리는 정신적 상흔 즉 트라우마에 주목한 것 같다. 이는 라틴계 세파라드 유태인과는 다른, 아셰키나제 유태인의 특징들 중의 하나이기도 하다. 상흔의 극복을 위한 해결 또는 해소는 어디에서 찾아야 할까? 대중문화에서 또는 인민역사에서 그 원인성을 찾을 수 있을 것이다. 그 원인성은 인간 본성에 관한 것이다. 낭만주의에서 비극을 그리고 대량 복제의 예술은 상반된 것처럼 보인다. 전자는 인격성에 관한 것이고 후자는 사회성 중에서 문화의 창발이 관한 것이다. 인격성의 발현은 상처로서 추억을 해소하는 길일 것인데, 구체적으로 무엇을 할 것인가? 새로운 문화의 창발은 대중의 방식과는 달리가야 하지 않는가?
이데아를 다양한 표상들(시뮬라크르)로 제시하는 것은 데미우르고스의 역할이다. 데미우르고스의 시대에서, 물질(물자체)의 자기 생성과 의식의 변신은 있을 수 없을까? 양차대전 사이에 서구의 지식인의 고민은 문명의 반성뿐만 아니라 문화에 대한 새로운 관점을 필요로 했으리라. 세파라드 유태인으로서 베르그송이 자유인으로서 인도주의에 필수불가결한 새로운 종합을 찾는데 비해, 아셰키나제 유태인으로서 벤야민은 인문주의로 과학주의로 젖어 있던 자신이 살아온 환경을 해체하고 싶었을지도 모른다. 우리가 보기에 역사의 발전은 말하는 두 가지 방식 단선적이든 순환적이든 폐쇄적 종교아래 있다. 벤야민은 개방적 방향으로 세계의 길을 찾으려 했을 것이다. 역사의 불연속에서 도약이라 말하지 않고, 나찌 독일과 같은 상황에서 한시대의 소멸을 보려고 하는 것은 주지주의자들의 터전에서 비판적 시각을 갖는 자들의 특색이기도 하다. 서구의 몰락을 말하거나 유럽의 위기를 말하는 것도 앙글로 색슨 사고의 특징인 셈이다.
불연속과 더불어 몰락, 위기, 모순을 말하는 것은 과거와 단절하고 현재의 지금의 강조일 수 있다. 그러나 벩송에 따르면 현재는 단면이 아니며 기억의 두께를 지닌 덩어리이다. 반성과 창발은 동시적이고 이질적이다. 인식론적 역사의 측면이 아니라 형이상학적 역사의 측면에서 인간 또는 인민의 긴장과 노력을 통한 창발을 기다려야 한다. 인간은 태어나면서 모든 것을 지니고 있지 못하지만, 배우고 실행하면서 점진적으로 나아가는 중에 도약이 있다. ‘나아가는 도중에’처럼 언제나 역사에서 시간이 필요하다. 전설 같지만 모세가 40년을 유태인을 단련시켰듯이, 신화 같지만 세혜라자데는 한 인간을 바꾸는데 천하루밤에 이야기를 했듯이, 누구에게나 시간이 필요하다.
87년이래 박정희 그림자들 지우려고 노력했지만 반동들은 군부를 통해 또는 이명박과 박근혜를 통해 좀비 박정희를 살리면서 인민에게 편견과 착각을 심었다. 이것을 벗어나는 노력은 다섯 차계 촛불 시위뿐만이 아니라, 박근혜 탄핵이후도 새로운 체재(nouveau régime)을 가는 동안에 지속적인 노력과 긴장이 필요하다. (49WLB)
****
# 발터 벤야민: 고통의 기억과 유물론적 구원의 유토피아 235
연효숙(연세대 외래교수), pp. 235-264.
제1장 주변인으로 살다 비극적으로 죽다. 237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은 1892년 독일 베를린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 1919년 스위스 베른 대학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 비평의 개념」으로 박사학위를 받았다. (238) [일차대전 중에 스위스에서 공부하는 시절인가?(49WKI)]
벤야민의 삶에 결정적인 상처를 안긴 일은 프랑크푸르트대학에 제출한 교수자격 취득논문인 「독일 비애극의 기원」(1923-1924)이 심사위원들에게 거부되어 통과되지 않은 사건이었다. (238)
벤야민은 1927년[서른다섯] 모스크바를 방문한 후 파리로 돌아와 너무나도 현대적인 시각을 선취한 멋진 작품인 아케이드 프로젝트를 쓰기 시작한다. .. 1928년[서른여섯] 일방통행로에서 벤야민의 독특한 글쓰기 양식은 두드러지게 나타나게 되어. 기존의 전통적 글쓰기 문법에서 벗어나 자유롭고 파편적인 그만의 특성이 드러나게 된다. (239)
또한 1930년대에는 그가 많은 시간을 보낸 베를린 도시에 관한 이야기들, 베를린 연대기, 베를린의 유년 시절을 쓴 후, 나치의 폭압적인 손길을 피해 1933년 파리로 망명한다. 그리고 대중에게 잘 알려진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을 1936년[마흔넷]에 출간한다. (239)
벤야민 사유에는 묘한 양면적인 특성이 긴장감 있게 결합되어 있다. 즉 어떻게 보면 지나치게 심미적이고 예술적이기도 하지만, 결코 사회성이 결어되어 있지 않다. .. 다른 식으로 표현하자면, 벤야민은 정통 맑스주의적 관점을 변화시켰으며, 경제결정론적인 생각에서 훨씬 자유로운 면모를 가지고 있다. 그래서 벤야민은 통상적인 맑스주의와 달리, 예술을 현실 은폐의 상부구조 이데올로기 생산물로 간주하지 않고, 예술의 자율성을 더 중시했다. 그의 글 속에 보들레르, 프루스트, 발레리, 카프카 등이 등장하는 것도 다 이러한 이유에서 기인한다. (241)
벤야민은 역사적 유물론이기도 하지만, 작가이자 예술가이고 비평가인 것이다. (242)
매체철학자, 대중문화 철학자로서 벤야민의 면모는 우리에게 비교적 익숙하고 또 대중적으로 잘 알려져 있다. 그는 채플린 영화에 감탄하고 이에 대한 초녕과 회고를 남겼다. 동시에 영화를 통한 혁명의 가능성을 보았고, 대중의 어리석음과 포퓰리즘을 걱정하기 보다는 대중에 대한 진지한 신뢰와 대중의 역동성을 보는 것을 놓치지 않았다. [인도주의 철학자들은 인민의 관대하고 온후함을 본다. 마치 걸승이 인민에게 걸식으로 살아가는 것을 잘 느끼기나 한 것처럼 말이다. (49WKI)]
49WKI)
제2장 벤야민에게 역사란 무엇이었을까? 243
그러나 역사에 대한 흔치 않은 글인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를 대하게 되면, 그가 당시 당면했던 현실과 고통스러운 기억, 그리고 그 현실에서 희망할 수 있는 미래에 대한 작은 소망의 절실함을 간접적으로 읽을 수 있게 된다. .. 1939년[마흔일곱, 이차대전]...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하기 전, 파리에 머물면서 집필한 이 글... / 마지막 글이기도 했고 또 쫓기는 듯한 심정에서 쓴 글이기 때문인지 다른 글보다 분량이 상당히 짧지만, 내용은 복잡하고 함축적이며 난해하다. (244)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는 18개의 짧은 테제로 구성되어 있다. ..내용은 크게 세 가지로 정리해볼 수 있다. (245)
첫째, 정통 맑스주의자들이 철저히 종교를 비판하고 거부했다면 벤야민은 맑스주의에 종교를 특이하게 결합시키는 시도를 하고 있다. (245)
둘째, 벤야민은 역사의 낙관주의적 신념을 견지하고 있는 근대 역사주의와 단절하고자 하며, 맑스주의에 기반을 두었다고 자처하는 사회민주당에게까지 비판을 가한다. (246)
셋째, 벤야민은 진보의 연속적이고 발전적인 역사관과는 현저히 다른, 파국, 단절과 같은 불연속적인 시간으로서 역사를 보는 독특한 눈을 가지고 있다. (247)
이 지점에서 벤야민의 역사관에는 결정적으로 유대교의 메시아적인 시간과 역사 속의 구원의 가능성이 배태되어 있다. (247)
제3장 [서양]장기 자동기계와 역사적 유물론 248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제1테제 .. 요약하면, 어떤 장기판 기계가 있는데, 이 기계 앞에는 터번을 두르고 긴 수연통(물담배)을 문 터키 분장을 한 인형이 서 있다. .. 기 기계안에는 장기의 명수인 등이 굽은 난쟁이가 숨어서 인형의 손놀림을 조종하고 있다. .. “장기 두는 터키인”이라는 이름을 가진 것으로 1780년 독일의 발명가이자 건축가인 볼프강 폰 캠펠렌(Johann Wolfgang von Kempelen, 1734-1804)이 만들었다고 한다. (248-249)
그렇다면 이 그림에서 실제 주인공은 누구일까? 누구나 볼 수 있는 터키 인형이 표상하는 역사적 유물론? 인형을 실질적으로 조종하는 숨어 있는 난쟁이가 표상하는 신학? 또 왜 굳이 벤야민은 역사적 유물론이 공격하고 비판하는 신학을 끌어들였던 것일까? (249) [내가보기에 이데아를 감추고 있는 신학과 기계를 움직이는 데미우르고스의 설화를 활용한 것 같다. 기계론은 언제나 목적론의 먹이감이 아닌가! 목적론의 꼭대기에 관념이 있고. 벤야민은 크리스트교 신학과 아셰키나제의 궁국적 왕국에 대한 비판의식일 수 있다. (49WKI)]
제4장 고통의 기억을 지닌 천사 251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의 제9테제에서 벤야민은 그의 친구인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 1897-1982)이 자신의 29세 생일에 보내준 「천사의 인사」라는 시를 인용하고 있다. “내 날개는 날 준비가 되어 있고 / 나는 기꺼이 돌아가고 싶다. / 왜냐하면 내가 평생 머문다 해도 / 행복하지 못할 것이기에” 그 다음에 벤야민은 초현실주의 화가인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의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는 벤야민이 수집해서 한 동안 소유한 그림으로, 숄렘이 뮌헨에 거주할 때 잠시 맡아 가지고 있었다고 한다. (252)
벤야민의 서술 ..“ 파울 클레가 그린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라는 그림이 있다. 이 그림의 천사는 마치 자기가 응시하고 있는 어떤 것으로부터 금방이라도 멀어지려고 하는 것처럼 묘사되어 있다. 그 천사는 눈을 크게 뜨고 있고 입을 벌어져 있으며 또 날개는 펼쳐져 있다.” (252-253) [원판을 보아야겠지만, 나로서는 사자머리에 새날개 등 새로운 스핑크스를 연상하기도 한다. 외디푸스가 만난 테베의 스핑크스가 아니라, 이집트의 신전들 앞에 여러 스핑크스를 생각해 본다면, 스핑크스를 수호천사(동양의 무신상 또는 문신상이 있듯이) 정도로 보아도 될까? (49WKI)
이 새로운 천사는 누구인가? 이 천사는 인간을 각성시키는 주체, 역사적 유물론자라는 것이 벤야민의 해석이다. 이 역사적 유물론자는 통상적인 유물론자처럼 역사를 진보의 아름다운 가상과 발전으로 보기보다는, 오히려 어두운 파국으로 보고 있다. (255) [벤야민의 역사적 유물론이란 말을 직접 썼는지 모르지만(썼겠지), 그의 유물론은 맑스의 유물론과 상관 없는 것같다. 형이상학적 유물론은 자본주의 발달에서 유물론을 넘어서 인성의 생성에서 유물론적 근거를 보는 것이 아닐까 한다. (49WLB)
벤야민이 포착한 새로운 시간과 역사에 대한 생각은 과거에 ‘있었던 것’과 지금 우리가 살고 있는 ‘지금의 시간’을 변증법적으로 절묘하게 결합시킨 이미지인 것이다. 지금 현재의 시간에서 볼 때 과거는 그저 단순히 과거의 필름이 반복적으로 재생되는 것이 아니라, 지금의 나에게 순수하고 일회적으로 일어나는 일인 것이다. (256)
제5장 역사는 직선이 아니라 파괴, 소멸, 해체 257
일반적으로 근대의 역사 이념을 지배해왔던 역사주의에서는 근원을 묻고 이 근원에서 무엇인가 만들어지며, 여기서 비롯되는 연속적이고 직선적인 시간관을 제시한다. 반면에 벤야민은 연속적이고 직선적인 역사관 대신 파괴와 소멸, 해체 그리고 구성의 과정으로 점철되는 특이한 역사 흐름을 제시한다. (257) [근대 역사이념, 앙글로색슨의 역사 이념은 호모사피엔스 즉 도구적인간의 역사관이다. 선사시대를 포함하여 유인원시대로 점점 내려가 근원의 문제를 다루게 되면 인간이 겸손해 질 것이다. 타인과 타생명체와 더불어 살지 않으면 안된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인민이 관대함과 후덕함을 지니고 있다는 것을 될 것이다. 이 품성을 이용하는 구경꾼이 사적 이익을 탐하는 것은 사악하다. 그것도 권력의 폭력을 이용한 김기춘은 나쁜 구경꾼이다. (49WLB)]
벤야민은 몽타주 원칙을 역사 속에 받아들이고자 하여, 작은 파편화 원칙을 고수하고 있기 때문에 그에게 역사는 불연속성으로 파편화된 이미지로 그려지기도 한다. (257-258)
벤야민은 확실히 역사적 유물론자임에 틀림없다. 그는 거대 시간에 의해 구조화될 수 없는 순간과 불연속성에서 새로운 역사적 유물론을 만들 수 있다고 생각했기 때문이다. (259) [논자가 벤야민을 역사적 유물론자라고 하는 것은 과도하다.]
“로베스삐에르에게 고대의 로마는 지금 시간으로 충전된 과거로서, 그는 이 과거를 역사의 연속체에서 폭파해내었다. 프랑스 혁명은 스스로를 다시 귀환한 로마로 이해앴다. 프랑스 혁명은 마치 유행이 과거의 의상을 인용한 것과 똑같이 고대 로마를 인용했다.” .. “역사주의가 과거에 대한 ‘영원한’ 이미지를 제시한다면, 역사적 유물론자는 과거와의 유일무이한 경험을 제시한다.” (259)
제6장 유물론적 구원의 유토피아 260
“역사는 구성의 대상이며, 그 구성의 장소는 동질적이고 공허한 시간이 아니라, 지금시간으로서의 충만한 시간” [논자 벤야민의 시간관이라 하는데, 동일성에 대해 이질성을 드러낸 것으로 보인다. 이런 시간이 표면에 머물면 현상학이 되고 심층에서 솟아나는 것으로 사유하게 되면 생성론이 될 것이다. (49WLB)]
유대인 벤야민에게 메시아적 구원의 역사는 그의 일상이자, 신념으로 굳건하게 자리 잡았음에 틀림없다. 벤야민이 놓인 시점과 장소는 낙원에서 추방되어 있는 상태이며, 이 끝에 보편적인 구원의 사건이 일어난다. [아세케나제 유대인임을 부정할 수 없다.]
벤야민이 계몽주의와 역사주의의 역사관을 통렬이 비판했다는 면에서 혁명적이기도 하지만, 또 종교의 메시아니즘을 통한 구원의 가능성을 결코 포기하지 않았다는 면에서 보수적이기도 하다는 평가가 적지 않다. 그러나 지금시간으로서 구원의 메시지를 담은 벤야민의 유물론이 우리의 고통을 어루만질 수 있는 ‘유물론적 구원의 유토피아’로 거듭나기를 기대해본다. (263) [메시아를 통한 구원의 가능성이란 측면은 전형적으로 종교성을 띤 상층주의자임에 틀림없다. 이 글에서도 프롤레타리아 또는 인민의 삶에 대한 언급보다, 시대 상황에서 고민하는 한 이방인의 모습이 더 부각되었다. 양차대전의 사이에 유럽이 얼마나 상층의 광기에 빠져 있었는지를 벤야민을 통해 보는 것으로 족할 것이다. 아셰키나제 유대인의 한계일 것이다. 앙글로색슨의 시대 한계에서 비극적 삶을 산 것이다. (49WLB)]
* 참고문헌
* 더 읽어볼 책 (49WLB)
* 인명 **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유태계 독일인, 작가, 문예비평가,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 비평의 개념(1919)」, 「독일 비애극의 기원(1924)」, 일방통행로, 베를린 연대기, 베를린의 유년 시절,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2년 출간)
볼프강 폰 켐펠렌(Johann Wolfgang von Kempelen, 1734-1804: Johann Wolfgang von Kempelen, en hongrois Kempelen Farkas, en slovaque Ján Vlk Kempelen) 헝거리 작가, 발명가. “장기 두는 터키인”
파울 클레(Paul Klee, 1879-1940), 독일 출생으로 스위스에서 죽었다. 독일 화가이다. 어머니(Ida Klee-Frick)는 브장송 출신 스위스인이고, 아버지(Hans Klee)는 독일 중남부 바스-프랑코니(Basse-Franconie)출신이다. fr.Wiki에는 유대인이라는 이야기는 없다. 「새로운 천사(Angelus Novus, 1920)」
게르숌 숄렘(Gershom Scholem, 1897-1982) 베를린 태생 예루살렘에서 죽었다. 1923년(스물여섯) 예루살렘도착, 유태인 역사가 철학자. 유대 카발라와 신비주의 전문가이다.
# 발터 벤야민(Walter Benjamin, 1892-1940) 년보
1892 독일 베를린의 비교적 유복한 가정에서 태어났다.
1914(스물둘) 일차대전 때 그는 무엇을 했을까?
1919(스물일곱) 스위스 베른 대학에서 「독일 낭만주의의 예술 비평의 개념」으로 박사학위
1924(서른둘) 프랑크푸르트 대학에 교수 자격논문 「독일 비애극의 기원」 거부 당함
1927(서른다섯) 모스크바를 방문하고 파리로 돌아옴
현대적인 시각을 선취한 멋진 작품, 아케이드 프로젝트 쓰기 시작 서
1928(서른여섯) 일방통행로에서 그의 독특한 글쓰기 양식이 드러난다.
1930 ... 베를린 연대기, 베를린의 유년 시절
1933(마흔하나) 나치의 억압을 피해 파리로 망명.
1936(마흔넷) 「기술 복제 시대의 예술작품」 출간
1939(마흔일곱) 이차대전... 스페인 국경에서 자살하기 전, 파리에 머물면서 집필한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사후 1942년 출판).
1940(마흔여덟) 스페인 국경을 넘다가 자살(나치의 유대인 추적에 살해설도 있다).
1942 「역사의 개념에 대하여」(1942년 출간) (정리6:10, 49W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