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신의 오후(Le Faune)
스테판 말라르메, 김화영, 민음사, 3판 2016(초: 1974), P. 118.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1842-1898)(쉰여섯) 프랑스 시인. 죽음을 맞이한 해1898년 드레퓌스 사건에 졸라의 편에 서다. Brise Marine (1865), Don du Poème (1865), L'Après-midi d'un faune (1876) Un coup de dés jamais n'abolira le hasard (1914), Igitur (1925, 유고출판)
- 말라르메 (Stéphane Mallarmé 1842-1898) 19세기 프랑스의 상징파 시인. 그의 ‘화요회’에서 20세기 초 활약한 지드, 발레리 등이 배출되었다. 장시 목신의 오후(Apres-Midi d'un faune, 1876, Monologue du faune, 1865), 던져진 주사위(Coup de dès 1897, 원제: Coup de dès jamais n'aboutir le hasard), 미완성 소설『이지튀르(Igitur)』(187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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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 가지 흥미로운 것이 있는데, 벩송과 연관 때문이다. 이 책의 년표가 부정확한 것 같다.
말라르메는 1871년 퐁딴(꽁도르세) 고등학교 교사로 발령났다. (114) [꽁도르세가 맞다]
- 이 때 벩송은 이 학교(보나파르트(1848-1870) -> 꽁도르세(1870-1874) -> 퐁딴(1874-1883) -> 꽁도르세(1883-))에 1868년 7학년으로 입학하여 계속 다녔다. 1874년에 교장(퐁딴)이 벩송을 뛰어난 학생으로 기억했다는 기록이 있다. 아마도 영어 선생은 말라르메였을 지도 모른다. 벩송이 영어를 잘 했기에 기억될 수 있을 지도 모르는데, 그런데 벩송에게는 말라르메의 이야기는 없다. (50MLB)
** 들뢰즈가 말하는 말라르메의 수수께끼 같은 단어 “책(Livre)”에 관하여
「자서전」(1885년 11월 16일 월요일) (75-81) [번역자는 후기에서 이 “자서전”이 전문이 아니라 한다.]
들뢰즈가 리좀의 흐름의 본보기로 또는 다양체의 실재로서 말라르메의 “책(Livre)"를 들고 있다. 나로서는 이 단어가 막연하게 한 작가의 영혼과 같은 의미로서, 그 영혼이 변화하고 확장하는 과정에 있는 만큼이나 시(들)의 터져 나옴이 그러한 비유일 것으로 생각했다. 그런데 「자서전」에는 말라르메가 자신의 의도를 드러내어 설명하고 있는데, 그 설명이 산문시와 같다.
「자서전」은 앞에 실린 시들과 달리 원문이 없다. 원문이 아니라도 몇 구절만 있어도 구글에 찾아 갈 수 잇는데 말이다. 그래도 번역된 것의 일부를 보자.
“... 나는 마치 옛날 사람들이 ‘위대한 작품’을 굽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하여 가재도구와 지붕의 서까래를 불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의 허영과 만족감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연금술사의 인내심을 가지고 항상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기 때문이오. 위대한 작품이라니 뭘 말하는 것인가? 말하기도 어렵구료. 요컨대 여러 권으로 된 하나의 책, 비록 멋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우연적인 영감들을 주워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건축적이고 신중히 계획된 책다운 책 말이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절대의 책(le Livre)이라고 말하겠소. 결국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천재들까지도 자기도 모르게 시도해 본 딱 한 권의 책이 존재할 뿐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소. 대지, 즉 세계에 대한 오르페우스적 설명, 이것이 시인의 유일한 숙제이며 문학적 유희의 본질이겠소. 왜냐하면 책의 리듬 자체, 그래서 비개인적인 동시에 살아있는 것인 책의 리듬 자체가, 페이지를 매기는데 있어서까지, 이 꿈의 방정식, 또는 시가(Ode)와 나란히 놓이기 때문이오. ... ”(77-78) - [모든 잠재성을 포함하는 “딱 한 권의 책이 존재할 뿐이라”라는 생각은 들뢰즈도 말하고 싶어 한다. 그거 지구가 아닌가? 우주가 신들을 만드는 기계라고 하면 지구라기보다 우주가 맞을 것 같다. 확률적 개연성의 총집합이 책이 될 수 있을까? 표현 상으로 신이라고 하기 싫으면 “온책(Livre)”일 것 같다. 사실 상으로 그 많은 책들이 신들(온책)의 표현이 아닌가 말이다. 물론 온책에는 허구와 거짓도 포함하고 거짓을 밝히는 것도 포함하고, 허구를 넘어서 상상도 환상도 포함하게 될 것이다. 그게 삶이 아닌가! (50PLB)]
다음 두 문장은 구글에 등장한 문장인데 「책(le Livre)」에서 나오는 문장이라 한다
"Un livre ne commence ni ne finit; tout au plus fait-il semblant"
"Le monde existe pour aboutir à un livre".
Jacques Scherer, « Le Livre »8 de Mallarmé. Premières recherches sur des documents inédits, Paris, Gallimard, 1957; 를 참조하라고 한다. - 쓔레(Jacques Scherer, 1912-1997) ENS출신, 문학으로 교수자격, 대학교수. 몰리에르 보마르셰 말라르메 전문가.
(50MLJ)
*** 셋째로 읽는데
앞에 읽기와 마찬가지로 건성이다. 프랑스 문장을 보면 너무 모르는 단어가 많아서 한글 한 문단 읽고, 불어 읽어 보는데, 단어 때문만이 아니라 해석이 안된다. 이렇게 어려운 시가 있나는 생각이 든다. 들뢰즈가 다양체를 설명하는 데 가장 좋은 실증이 말라르메인데 말라르메를 어려워하기 때문에 영미 작가의 예를 든다고 했던 것이 생각난다.
아무 생각없이 읽으면 운율을 잘 맞추었다는 느낌이 들지만, 가져온 단어들을 보면 그가 얼마나 많은 독서를 했는지 상상이 간다. 게다가 프랑스어를 꼭 라틴어 쓰듯이 이리 저리 흩어 놓아도 문장이 되는 것은 같은데, 나로서는 라틴어 배울 때 초기처럼 어렵다.
내가 예전에 이 시집을 읽은 적이 있다. 분명히... 그때는 프랑스 시선으로 되어 있었던 것 같은데 이제 세계 시인선으로 내고, 프랑스 시인들 몇몇이 이 시리즈에 들어 있다. 지금 생각하면 겉멋으로 시들을 읽은 것 같다. “목신의 오후”는 여러 번 읽은 것 같다. 그런데도 이번에 읽으면서 읽은 적이 있는지에 대한 어떠한 단어도 생각나는 것이 없을 뿐 아니라 이렇게 긴 장시라는 것조차 생각나지 않는다. 이 시만을 따로 여러 번 읽었다. 다섯 번은 넘게 읽었다. 그런데 뭔가를 적으려고 하니 이 시에서 떠오른 어떠한 중요 개념도 생각나는 것이 없다. 다시 뒤척여 본다. 앞으로 이 시를 생각하면 “님프들”을 떠올려야겠다. (50MMF)
* 다섯 번은 읽은 것 같다. 아니 네 다섯 번 ... 우리말이 이런 점이 있구나..
프랑스어 단어가 어려워서, 그만 접고 쉬운 것부터 보자는 생각이 든다. 예전에 프랑스 책을 읽다가 한 쪽에 모르는 단어가 다섯 이상 나오면 책꽂이 두고, 그 보다 쉬운 방식으로 쓰여진 그와 관련된 문고들(중등생 용, 고등생 용 요약들)을 구해서(헌책방에 널려 있으니) 들고서 하루 저녁내로 읽곤 했었다. 사실 미셀 뚜르니에의 것도 고등학생용으로 나온 책을 읽었고 맑스의 자본론 1권은 샤뜰레가 요약한 간추린 책을 읽었듯이 말이다. 보들레르도 상징이 많은데 그런가 싶어서 책을 구입해서 얼핏 보니 말라르메 보다는 쉬운 것 같다. 그런데 덮었다. 윤구병 말대로 다섯 번 읽어서 이해 안 되면 열 번이라도 읽어보지 .. 그래서 다시 시작하면서 불어를 유심히 보았다. 미주에 나오는 해설이 맞고 안 맞고 상관하지 않고 하나하나 찾아서 읽으니, 이해되는 듯하다가도 뒤섞여서 여전히 어렵다. 플라노메네 아이아(방황하는 원인) 같다. 하여튼 읽고 또 읽어보자는 생각이다. (50MMJ)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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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나스타즈(Anastase grec Anastasios (Anastasis signifiant résurrection): 오리게네스와 도니티우스파들을 단죄했다.
퓔세리(Pulcherie; Pulchérie, Aelia Pulchéria, 399-453) 비잔틴 제국 여황제(재위 450-453), 크리스교인
** 다시 읽으며
문장이 어렵다는 것은 자꾸 읽어서 익숙해지면 문장도 보이고 문맥도 잡을 수 있는 것 같다. 그럼에도 말라르메의 어휘 폭은 매우 넓은 것은 분명하다. 다시 읽을 기회를 가지기를 바라면서 여기서 일단락을 지어야 겠다.
말라르메가 말하는 책(le Livre)는 플로베르와 보르헤스를 합쳐서 의미적으로 보면, 전부다 쓰여진 것은 아닐지라도 그 사람임(이것임)을 말하는 한 인간의 일생(une Vie)와 같다. 일생은 마침표를 찍을 때까지이다. 현재에서 과거가 있는 죽음 이전에 전미래가 있다. 책(일생)은 마침표이전의 모두를 말하기보다, 현재(이제)에서 과거(어제)와 전미래(아제)를 한 덩어리로 간주하는 것이다. 이 덩어리는 분할 할 수 없는 필연성이며, 이것에 대한 서술이 책으로 되어 있어서 고정된 것이 아니라, 잠재성과 실재성(다양성)과 현실성(현실태)을 문법적 시제와는 관계없이 서술하는 것과 같다. 그래서 삶(생애)이란 세 시기로서 앞뒤가 정해진 것이 아니라, 어느 시점에서는 앞뒤, 좌우, 상하가 뒤바뀌었다고 할지라도 확률상으로 한 시점에서 등장할 수 있는 실재성의 확장이다. 이 확장은 생의 폭만큼이나 넓으며, 서술에서 한계를 넘어선다는 점에서 경계가 불분명하다.
나로서는 그러한 자료의 중첩을 지니고 있는 부분이 “마실에서 천하루밤(천이틀밤, 천사흘밤) 이야기”이다. 낸들 이런 방식이 될 것이고 생각지도 않았지만, 책(생애)을 하나 만들고 싶다는 생각을 버릴 수 없다는 점에서 말라르메에게 찬사를 보내지 않을 수 없다. 저술이니 문집이니 또는 총서를 만든다고 해서 그 생애가 전부가 아니듯이 글로서 표현해 놓은 것 모두가 생애도 아니다. 그럼에도, 아직도 완성되지 못한 어떤 책(생애)을 만들려는 소크라테스적 욕망이 남아있다는 것은 부정할 수 없다. 이런 의미에서, 여러 책들과 문서들과 더불어 끊임없이 나와 관계되지 않았던 부분들을 길어 올리기보다 나와 관계있는 부분들을 짜깁기 하듯이 만들어 보는 것도 한 가지 지도(들뢰즈 표현)를 그리는 것일 것이다. 이나이에 이런 생각을 하다니... 곧 개마고원을 만들 시작의 노력을 하는 이 시점, 글쓰기와 말하기를 줄여서 자연 속에 파묻혀야 하는 이 시점에서 말이다.
(3:28 50QME)
** * * * * 목신의 오후 세계시인선 09
목신의 오후( L'Après-midi d'un faune)
스테판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1842-1898), 김화영, 민음사, 2016(초 1974), P 118
* 차례 5
1. 인사 Salut 6
2. 시현(視現) 환영(幻影) Apparition 9
3. 한숨 Soupir 13
4. 창 Les fenêtres 13
5. 바다의 미풍 Brise marine 19
6. 시의 선사 Don du poême 21
7. 백조 Le vierge... 23
8. 목신(牧神)의 오후 Le faune 25
9. 성녀(聖女) Sainte 39
10. 죽은 시인을 위한 건배 Toaste funèbre 41
산문 - 데제생트를 위한 Prose 47
11. 다른 부채 - 말라르메 양의 Autre évantail 55
12. 레이스가 지워진다 Une dentelle 59
13. 미래의 현상 Le phénomène future 61
14. 유추(類推)의 악마 Le démon de l'analogie 65
15. 파이프 La pipe 65
# 베를렌에게 보낸 답신: 자서전 75
20년이 지난 오늘, 어지간히도 많은 시간을 허비하긴 했지만, 나 스스로는 쓸쓸한 기분으로나마 잘한 일이라는 생각이요. 그 까닭인 즉, 젊었을 때 쓴 산문과 시 조각들, 또 그것들에 화답하듯 써서 어떤 문예지의 창간호가 나올때 마다 여기 저기에 발표한 그 후의 작품들 외에, 나는 마치 옛날 사람들이 ‘위대한 작품’을 굽는 가마에 불을 때기 위하여 가재도구와 지붕의 서까래를 불태웠던 것과 마찬가지로 일체의 허영과 만족감을 희생시킬 준비가 되어 있는 연금술사의 인내심을 가지고 항상 다른 것을 꿈꾸고 시도했기 때문이오. 위대한 작품이라니 뭘 말하는 것인가? 말하기도 어렵구료. 요컨대 여러 권으로 된 하나의 책, 비록 멋들어진 것이라 할지라도 우연적인 영감들을 주워 모아 놓은 것이 아니라 건축적이고 신중히 계획된 책다운 책 말이오. 한걸음 더 나아가서 절대의 책(le Livre)이라고 말하겠소. 결국 글을 써본 사람이라면, 천재들까지도 자기도 모르게 시도해 본 딱 한 권의 책이 존재할 뿐이라고 나는 굳게 믿고 있소. 대지, 즉 세계에 대한 오르페우스적 설명, 이것이 시인의 유일한 숙제이며 문학적 유희의 본질이겠소. 왜냐하면 책의 리듬 자체, 그래서 비개인적인 동시에 살아있는 것인 책의 리듬 자체가, 페이지를 매기는데 있어서까지, 이 꿈의 방정식, 또는 시가(Ode)와 나란히 놓이기 때문이오.
사랑하는 친구여, 이것이 바로 내가, 머리가 쪼개지는 듯해서, 혹은 지친 나머지 팽개쳐 버렸던 내 악벽의 적나라한 고백이오. 그러나 이 악벽은 나를 사로잡고 놓아주질 않는데, 어쩌면 나는 성공할 것이오. 이 작업의 전체를 다 완성하겠다는 것이 아니라(그렇게 하려면 나도 알 수 없는 그 어떤 존재여야 하겠지요!) 실행에 옮긴 그 한 조각을 보여주고, 한 사람의 일생을 다 바쳐도 부족할, 나머지 부분 전체를 가리켜 보임으로써, 어떤 자리를 통하여 그 전체의 영광스러운 진정함이 빛을 발하도록 하는 일에 성공을 거두겠다는 것이오.이루어 놓은 부분을 통하여, 그 책이 존재한다는 사실을 증명하고, 내가 알고 있었다는 사실을 증명하는 것 말이오. (77-78) [왜 이 두 문단을 다시 쓰냐 하면, 생애의 덩이(다양체) 그 자차가 책이라 언표로서 표현되었을 뿐이다. 그 다양체는 모든 우연의 결합일 수 있는 만큼이나 필연이다. 이 필연의 받아들임이 스토아학자일 것 같다. 소크라테스도 브루노도 로베르피에르도 마찬가지 이지 않겠나? 삶의 마감이 따로 시간이 있는 것이 아니지 않는가. 우연 즉 필연의 단절이 아니겠는가 말이다. (50QME)]
# 작품출처 82
# 주(註) 83
# 작가연보 113
1841 6월 부모 결혼
1842 3월 말라르메(Stephane Mallarmé, 1842-1898) 출생
1863(스물하나) 부친상, 8월 마리아 게르하르트와 런던에서 결혼
1894(스물둘) 카튈 망데스(Catulle Mendès, 1841-1909) 집에서 빌리에 드릴라당(Auguste Villiers de L'Isle-Adam, 1838-1889)을 만나다. 11월 19일 첫딸 주느비에브 출생
1873(서른하나) 4월 에두아르 마네(Édouard Manet, 1832-1883)를 만나 친해지다.
1874(서른둘) 졸라(Émile Zola, 1840-1902), 클라델을 만남. 퐁텐블로 숲 기슭, 센 강가의 마을 ‘발뱅(Valvins)’을 발견
1880(서른여덞) 몇 년 전부터 구스타프 칸이 주선하여 시도해 본 모임으로 저녁때 롬 가에있는 말라르메의 아파트에, 위스망스, 쥘 라포르그, 폴 클로델, 폴 발레리, 앙드레 지드, 피에르 루이 등의 문인, 휘슬러, 르동, 모네, 모리소 같은 화가들이 모여 담소하는 ‘화요회(화요일은 말라르메가 쉬는날)’ 시작.
1885(마흔셋) .. ‘화요회’에 로덴바크, 생폴-루, 샤룰 모리스, 르네 길, 퐁테나스, 앙리 드 레니에, 비엘레 그리펭, 알베르 모켈, 아르튀르 시몽, 위슬레르 등 참가.
1892(쉰) ‘화요회’가 세상에 널리 알려지다.
1893(쉰둘) 7월 모파상 사망, 장례식에 참석.
1896(쉰다섯) 1월 베를렌(Paul Verlaine, 1844-1896)(à 51 ans)사망, 조사를 낭독,
1898(쉰일곱) 1월 졸라가 로로르(L'Aurore)에 “나는 고발한다”를 발표하자 그를 지지.
9월 9일 발뱅에서 호흡 곤란으로 사망.
# 옮긴이의 글 117 (5:19, 50QM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