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예술 창조

영화: 조페(Joffé, 1945-), 바텔(Vatel, 2000)

작성자마실가|작성시간16.01.01|조회수499 목록 댓글 0


바텔 (Vatel, 2000)

시대극, 드라마, 로맨스/멜로, 프랑스, 영국, 벨기에, 103분, 2000(한국 2003-11-21)

롤랑 조페(Roland Joffé, 1945-) 영국 감독,

제라르 드파르디외(Gerard Depardieu) 프랑소와 바텔 역

우마 서먼(Uma Thurman) 안느(Anne de Montausier)역,

이 영화는 1671년 4월 23일-25일에 바텔이라는 인물의 실화이다. 그래서 궁정의 내부를 들여다보는 통로를 축제를 조직하는 공연 기획자를 중심으로 꾸몄다. 루이14세는 푸께를 제거했고 그리고 꽁데 공을 어떻게 다루어야 할지를 고민하는 시기에 꽁데 공의 초대를 받는 것으로 되어 있다. 당시 재무상은 꼴베르였다. 당시 왕 만큼은 아니라도 상당하게 지방의 왕족들이 자기 재정을 유지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꽁데 공은 플랑드르난으로 소원해진 루이 14세 왕실과 좋은 관계를 갖고자, 축제를 열었다. 그 축제 기획자가 영화의 주인공 바텔이다. 왕의 환심을 사는 이야기가 줄거리이다. 평민 출신 집사와 왕의 눈에 든 평민 여인 안느와 삼각 관계는 흥미를 위해 삽입한 것으로 보인다. 안느를 꾀는 왕의 시종(로장 공작?), 그리고 오를레앙공(루이14세 동생)이 훼방놓는 장면들 등은 그 인물들의 성격에 맞게 각색한 것일 것이다. 동생 오를레앙공의 세상물정 모르는 듯한 행동은 왕위를 넘보지 않는다는 표현일 것이다.

실화만큼이나 집사장 프랑스와 바텔에 대한 이야기는 문학사에서 이야기 거리로 남아 있다. 자살에 대해서도 .. 여기 참석했던 마담 세비녜가 그녀의 딸에게 보낸 편지 속에 이 이야기가 남아있다고 한다.

**이 영화에서 마지막에 꽁데 공에게 네델란드 사절이 오는 장면이 있다. 역사적으로 프랑스는 꽁데 공을 지휘관으로 룩상부르 장군에 의해 1672년 네델란드를 침공했고 이 때 네델란드는 공화정이 무너진다. 스피노자가 벽보를 부치려고 한 때도 이때 이다. 참조로 스피노자와 연관연표를 보자(󰡔스피노자, 1975󰡕(피에르-프랑수아 모로, 류종렬, 다른세상, 2008)

1672(마흔) 프랑스의 침공이 있었다. 그리고 공화당에 반대하는 혁명이 일어났다. 오렌지 윌리암 공 3세가 권력을 장악했다. 8월 20일에 장 드 비트 형제는 거리에서 살해되었다. 스피노자는 벽보([야만인들의 최후])를 작성했고, 하숙집 주인이 만류하지 않았더라면 그것을 벽에 붙이러 나갔을지 모른다.

1673(마흔하나) 하이델베르크 아카데미의 교수인 파브리티우스는 "공식적으로 확립된 종교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도록" 자유롭게 종교 비판을 하지 않는다는 조건으로 스피노자에게 팔라틴 선거 제후를 대신하여 철학 교수직을 제안하는 편지를 썼다. 스피노자는 그에 대한 답장에서 "나는 공공 교육을 시행한 적이 결코 없으며, 게다가 공식적으로 확립된 종교에 풍파를 일으키지 않기 위하여 철학하는 나의 자유가 어떤 제한들 속에 포함되어야 하는지도 모릅니다: 결국 종교적 분열은 열렬한 종교적 열정에서보다는 오히려 다양한 정열로부터 나오고, 심지어 정열이 올바른 사유를 표현할 때조차 이 정열의 의미를 왜곡시키며 모든 언술을 단죄하는 모순에 대한 사랑으로부터 나옵니다."라고 썼다. 스피노자는 유트레히트에 주둔한 프랑스 진영에 가기 위하여 꽁데 공(Prince de Condé, 1621-1686)의 통행증을 얻었다. 그런데 [의도적으로] 꽁데 공이 없을 때 [그 진영을 방문하여] 그는 거기서 룩상부르 원수의 영접을 받게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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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프랑스와 바텔(François Vatel, 본명 Fritz Karl Watel, 1631-1671)

프랑스와 바텔(François Vatel, 본명 Fritz Karl Watel, 1631-1671) 스위스 출신 프랑스인. 제과기술자, 파티조직자, 집사(intendant), 관청(호텔)지배인(maître d'hôtel français), 푸케(Nicolas Fouquet)의 집사를 거쳐서 꽁데 공의 집사였다. 요즘말로 공연기획자이다. .

1653, 22살의 나이로, 푸께가 지은 보-르-비꽁트(au château de Vaux-le-Vicomte)성에 곡마사(l'écuyer, 시종)로서 참여했다. 루이14세 치하에 마자랑 수상 밑에서 재정감독관인 푸께(Nicolas Fouquet, 1615-1680)의 집사를 거쳐서, 꽁데 대공(Louis II de Bourbon-Condé dit le Grand Condé, 1621-1686)의 집사가 되었다.

1661년 푸께가 성을 완성하고 루이14세와 그의 모후 어머니(Anne d’Autriche), 그리고 궁정인들을 초대했다. 이 향연(축제)에는 굉장했다. 왕은 자기를 탐냈다는 것을 그는 몰랐다. 1662년 푸께가 체포되었을 때 그는 런던으로 도망갔다. 거기서 구르빌(Gourville, 1625-1703)을 만났다.

1663년 바텔은 꽁데공의 총집사가 되었다.

1671년 프롱드(la Fronde, 1648–1653),) 반란 이래로 루이 14세의 신임을 잃은 꽁데공(50살)은 33살의 루이14세를 초대했다. 3일 밤낮을 초대하였는데 루이14세와 궁정인(하인포함) 3,000명 을 초대했다. 꽁데 공은 20년 전의 프롱드난이래로 실권에 대해 화해의 장을 만들고자 했다. 바텔은 왕과 궁정인의 환심을 사고자 보름간 준비했다.

1967년 4월 21부터 사흘이다. Le soir du jeudi 23 avril 1671, le dîner du vendredi 24 avril, Au petit matin du vendredi 24 avril, 이 셋째 날에 새벽 4시에 단지 두 바구니의 생선만 도착했다. 마담 세비네가 전하기를 그는 자기 칼로 자살했다. 마흔 살이다. 아침은 구르빌에 의해 두 테이블만 차려졌다. [생선을 활어조(vivier)에 준비하지 않았을까?] 그러고 나서 생선광주리들 도착했다. 그러나 회식자들은 그를 존경하는 의미로 요리를 먹지 않았다고 한다.

* 구르빌(Jean Hérault, baron de Gourville, 1625-1703) 푸케의 친구. 바텔이 런던 추방에서 만났다. 회상록 작가인데, 로슈푸코의 기사(부하, 하인)이었고, 1669년에 꽁데공의 집사였으며, 매우 신중했던 그는 꽁데공과 거의 동등한 친구, 로슈푸코, 마담 세비녜, 브왈로 와도 친구로 지냈다. 평민 출신으로 아주 드물게 지위상승을 했다. 꼬냑 주교(Daniel de Cosnac 1628–1708)는 « Gourville était homme capable de négocier, habile, fertile en expédients »평가하고, 작가 상뜨 베브(Charles-Augustin Sainte-Beuve, 1804-1869)는 󰡔Causeries du lundi 1851-1881) 16권󰡕에서 구르빌에 대해 « quelque chose comme le Gil Blas et le Figaro du xviie siècle »이라 했으며, 마담 세비녜(Sévigné 1626-1696)는 죽기 전에 이렇게 썼다. « Je suis fort touchée de la mort de Gourville, avec lequel j’avois renoué un commerce très-vif ; j’ajouterai que son bon esprit étoit si parfaitement revenu, que jamais lumière n’a tant brillé avant de s’éteindre. »

* 오를레앙공(Philippe de France, duc d’Orléans appelé aussi Philippe d’Orléans, 1640-1701) 루이 13세와 안 오트리쉬의 아들, 즉 루이14세의 동생, 영화에서 장난꾸러기처럼 행세하며 왕실의 정치에는 무관심한 것으로 나온다.

* 꼴베르(Jean-Baptiste Colbert, 1619-1683), 프랑스 루이 14세의 재정총감

* 로장 공작(Antonin Nompar de Caumont, premier duc de Lauzun (1692), marquis de Puyguilhem, comte de Saint-Fargeau, 1633-1723) [영화에서 왕의 시종] 프랑스 군인, 궁정인, 왕 근위대장, 루이 14세의 총아. 그는 여성에 환심을 사는 데 힘쓴다. 그는 루이 14세의 여사촌 몽팡지에(Anne Marie Louise d’Orléans, duchesse de Montpensier, « La Grande Mademoiselle » 1627-1693)과 비밀리 결혼하였다. 정확한 이유는 모르지만 1671년 겨울 체포되기도 한다.

# 출연 주요 인물

제라르 드파르디외(Gerard Depardieu): 바텔 역 [바텔(François Vatel, 1631-1671)

우마 서먼(Uma Thurman): 안느(Anne de Montausier) 역, 루이 14세가 눈길 준 여인

팀 로스(Tim Roth) 마르키스(Marquis de Lauzun) 역[로장(Lauzun 1633-1723)]

티모시 스폴(Timothy Spall) 구르빌(Gourville) 역 [바텔의 친구역] [Gourville, 1625-1703)]

줄리안 샌즈(Julian Sands) 루이스 14세(Louis XIV) 역 [Louis XIV, 1638-1715]

나탈리 세르다(Nathalie Cerda) 여왕 마리-테레스(La Reine Marie-Thérèse) 역

줄리안 글로버(Julian Glover) 왕자(Prince de Condé) 역 [Grand Condé, 1621-1686)]

아리엘 돔바슬(Arielle Dombasle) 콩데 왕비(Princesse de Condé) 역

머레이 라흐란 영(Murray Lachlan Young) 필리페 오를레앙(Philippe d'Orléans) 역 [Philippe d’Orléans, 1640-1701)]

하이웰 베네트 (Hywel Bennett) 콜베르(Colbert) 역 [꼴베르(Colbert, 1619-1683)] ,

(48VMB)


첨부파일 름조페2000바텔.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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