설1883카프카1919아버지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Brief an den Vater. (1919)」
in 꿈 같은 삶의 기록(잠언과 미완성 작품집(Nachgelassene Schriften und Fragmente, 1897-1924), 카프카(Kafka, 1883-1924), 이주동 옮김, 카프카전집2, 솔, 2004, pp. 525-594.
[30] 1919년 11월 · 525-594 「아버지에게 보내는 편지(Brief an den Vater. (1919)」
[카프카의 나이 서른여섯, 아버지 헤르만 카프카(Hermann Kafka, 1854–1931)의 나이 예순다섯이다. 부자간에 할 말이 많다는 것은 그 부자의 단절 또는 계열의 차히가 있다는 것이다. ]
[장가 못간 게다가 병까지 있는 아들이 아버지에게 하고 싶은 이야기가 무얼까? 날 놓아주면 안되나...?]
사랑하는 아버지께
셀레젠
아버지께서는 얼마 전에 저에게 이렇게 물으셨지요. 제가 아버지를 두려워하는 까닭이 무엇이냐고 말입니다. 늘 그래왔듯이 저는 아무런 대답도 드릴 수가 없었습니다. 한편으로 제가 아버지를 두려워하기 때문이기도 하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이렇듯 공포를 갖게 된 데는 사소한 사건들이 하도 많아서 일일이 다 말씀드릴 수가 없기 때문입니다. 아버지께 글로 대답을 드리려고 합니다만 그것도 대단히 불완전할 것 같습니다. 왜냐하면 이렇게 글을 쓰고 있는 지금도 아버지에 대한 두려움이 있으며 그 두려움이 제 생각을 방해하고 있고, 또한 글로 써야 할 소재가 하도 방대하여 제 기억력과 오성을 훨씬 넘어서기 때문입니다. (525, 편지 시작 문단)
아버지께서는 제가 글 쓰는 것과 그리고 그것과 연관된, 아버지께서 알지 못하는 것에 대해서 험오감을 가지셨는데, 그것이 더 발 어울리는 일입니다. 엉덩이를 발로 짓밟혀서 터진 상태로 옆으로 기어가는 벌레를 어느 정도 연상케 하긴 했습니다만, 사실 저는 이때 어느 정도는 아버님으로부터 독립된 상태였습니다. 그래서 저는 어느 정도는 안전했으며 숨도 돌리 수 있었습니다. (570)
[직업선택, 또는 진로선택 과정에서] .. 외견상르로는 근심 없는 평안한 생활 속에서 낭비해온 시간과 돈에 비교해보면 비참하기 이를 데 없습니다. 특히 제가 알고 있는 모든 사람들과 비교해 보아도 역시 그렇습니다. 그것이 비참하기는 하지만 저로서는 이해가 가는 일입니다. 제가 사고를 할 수 있게 된 시기부터[몇살부터?] 저는 정신적 실존 문제에 가장 주의를 기울여왔기 때문에 다른 것은 아무래도 좋았습니다. 저희가 있는 곳에서는 유대인 인문계 고등학교 학생들은 쉽게 눈에 뜁니다. 이들[유대학생들]이 찾고 있는 것은 가장 비사실적인 것입니다. 하지만 제 경우처럼 냉정하고, 거의 베일로 싸여 있는, 그리고 파괴될 수 없고, 어린아이처럼 의지할 데 없는, 가소로울 정도이고, 독립적이긴 하나 차가운, 환상적인 어린아이의 동물과도 같은 자기만족적인 무관심을 그 어디에도 저는 본적이 없습니다. (572) [이미 열여덟 인문계 고등을 졸업하기 전에, 카프카는 유대인으로서 보다 한 현존의 인간으로서 시대와 상황의 외부 사람이었다는 점이다. 그런데 내용상으로는 아버지와 아주 달리 그가 병약했기 때문이라고 것이다. 병약했다는 점은 생리적으로 자신을 반성하게 하지만 또한 자기의 내면을 들여다보는 성찰의 시간도 많이 있다. 왜냐하면 아프니까 혼자 있을 시간이 많기 때문이다. (50ULE)]
그러나 저는 천성으로 게으른 편은 아닙니다. 다만 저에게 할 일이 아무것도 없었던 것입니다. 제가 생활하던 곳에서도 배척당했고, 심한 비판을 받았으며, 억압을 당했기 때문에 그곳에서 다른 곳으로 도망치려고 무진장 애룰 써 보았으나 헛일이었습니다. 왜나하면 그것은 하찮은 예외적인 일에도 못 미치는 저의 힘으로는 불가능한 일이기 때문이었습니다. / 이러한 상태에서 저는 그러니까 직업을 선택하는데서 자유를 얻었던 것입니다. (574)
그러므로 문제는 저의 허영심을 너무 손상시키지 않고 이 무관심을 적당히 허락해줄 수 있는 직업을 찾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법률학을 택한 것은 당연한 일이었습니다. (576)
이 방면에서는 모든 일이 실패작이었기 때문에, 역시 아버지께 저의 이러한 결혼계획을 이해시켜드리지 못할까 두려웠습니다. 더군다나 이 편지의 성공 여부는 모두 여기에 달려 있습니다. (577)
우선 아버지께서는 제 결혼 실패를 과거 여러 가지 실패했던 사례들과 동일선상에 놓으시더군요. 아버지께서 이 실패 사례에 대해서 저의 종래의 해명을 받아들이신다는 것을 전제한다면 그 자체에 대해 반대할 의사는 전혀 없습니다. (577-578)
아버지께서는 끈질기에 간섭을 하셨지만 심하지 않았습니다. 왜냐하면 그와 같은 간섭이 가능하기 위해서는 반드시 상호간에 강한 신뢰감이 필요하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우리 두 사람에게는 이미 오래전부터 특히 결정적인 시기에 그러한 신뢰감이 결여되어 있었습니다. 그리고 또 서로 원하는 것이 완전히 달랐기 때문에 별로 행복하지도 못했습니다. (579) [아버지라고 간섭할 이유가 뭐있나? 참 내...]
(.. 도시의 아이들이 침대에서 일상적으로 저지르는 여러 가지 죄악을 포함해서 ‘큰 위험’ 같은 것을 생각해 본 적이 없었습니다.).../... 물론 열여섯 살보다 더 많지는 않았을 것입니다. (581) [왜 우리는 성년이 되면 부모가 자신에 대해 아는 것이 1/10도 안된다고 하는 것일까? 이게 사실일까? 많은 애들은 자식들이 커나가는 과정을, 친구관계, 음식선호, 스포츠와 음악 선호 등등을 안다고 하는데 사실일까?]
그리고 바로 그런 아버지께서 마치 저라는 사람은 그런 식으로밖에 정해져 있지 않은 것처럼 몇 마디 노골적인 말씀으로 저를 그런 불결함 속으로 밀어 떨어뜨리셨던 것입니다. 그러므로 세상에 저와 아버지만으로 구성되어 있다는, 저에게 매우 친숙한 관념이 만일 사실이라고 한다면 그때 아버지와 함께 이 세상의 순결이 끝나고 저와 함께 아버지의 충고의 힘으로 불결함이 시작된 것입니다. 아버지께서 저에게 그런 식의 선고를 하였다는 것은 그것만으로는 이해할 수 없는 일이었습니다. ... 그래서 저는 이것으로 또 다시 저의 가장 깊은 내부의 본질을 붙잡을 수 있었습니다. 그것도 매우 엄격하게 말입니다. (592)
“그 여자 말이다. 아마 블라우스 하나는 잘 골라 입었던 모양이지. 그것은 프라하 유대인 연인들이 즐겨 쓰는 수법이지. 게다가 너는 물론 그녀와 결혼하기로 작정했겠지. 그것도 가능한한 빨리. 일주일 이내에. 내일. 오늘도 될 수 있겠지. 나는 네 의향을 모르겠구나. 하지만 넌 다 큰 어른인데다 도시에 살고 있지 않느냐. 그런데도 마음에 드는 여자만 나타나면 서둘러 결혼이나 하려 들고 어찌할 바를 모르는 구나. 다른 가능성이란 전혀 없느냐? 만일 그것이 두렵다면 내가 함께 가주마.” (583) [서른여섯의 아들에게 하는 말씀치고는 고약하다해야 하나...어쩌나..]
이십년 전[그러면 카프카 여섯 살인데] 아버지께서 그와 비슷한 말씀을 하셨을 때는 아버지의 눈에서 아직 조숙한 도시 젊은이에 대한 존경심 같은 것을 어느 정도 읽을 수 있었습니다. (583) [카프카(현재 서른여섯)는 이십년 전이란 용어를 세 번이나 쓰는 것으로 보아, 여섯 살 때에 추억의 트라우마가 있다. 서른여섯인데도 아버지의 승인과 찬사를 꼭 받아야 하나, 유대인이라서 그런가? / 1889(여섯)년에 프라하에 있는 독일계 초등학교에 다닌다. - 아마도 아버지는 독일계 학교를 보내면서, 신문물에 대해 존경과 경멸의 이중성이 있었던 것이 아닌가 한다. (50ULE)]
그것은 어떤 사람이 상대방의 손을 꼭 잡고 누르면서 이렇게 외치는 것과 같습니다. “자, 가거라. 가라니까. 왜 가지 않느냐?” (584-585) [베이트슨이 말한 ‘이중구속’의 본래 의미는 이런 것이다.
그것은 제가 분명히 정신적으로 결혼할 능력이 없는 사람이었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사실은 제가 결혼하겠다는 결심을 한 순간부터 더 이상 잠을 잘 수 없었다는 사실에서도 드러났습디다. 밤낮으로 머리는 불덩이처럼 달아올랐습니다. ... 그것은 불안과 심약함과 저 자신을 멸시하는 기분에서 오는 일반적인 강박증세였습니다. (586)
그러나 현재 상태에서 보듯이 저의 혼사는 그야말로 아버지의 가장 고유한 영역이란 점에서 저에게는 그 길이 막혀버렸습니다. 저는 이따금씩 지도를 활짝 펼쳐놓고 그 위에 아버지께서 가로로 몸을 쭉 펴시고 계신 모습을 상상해봅니다. 저에게는 아버지께서 발견하지 못한 영역과 혹은 아버지의 활동 영역에 들어 있지 않은 영역들만이 제 인생에서 중요할 것으로 보였습니다. (587) [카프가 바깥 영역은 글쓰기 밖에 없을 것 같다. 뒤에 나오네...]
그러나 이때 훨씬 중요한 것은 제 자신에 대한 불안입니다. 그것은 이렇게 이해될 수 잇을 것입니다. 제가 이미 암시했듯이, 저는 글을 쓰거나 또 그것과 연관된 일을 해서 일종의 독립이나 도피를 꾀했지만 극히 작은 성공을 거두었을 뿐입니다. 그리고 이젠 거의 진척을 보지 못할 것입니다. (589)
“... 원래 나(아버지)는 공격자이고 너(아들)는 단지 자기 방어를 한 것뿐이라는 것이다. 이제 너는 그러니까 네 자신의 불성실로 인해서 이미 소기의 목적을 달성한 것이나 다름없을 것이다. 왜냐하면 너는 다음 세 가지 사실을 입증해 보였기 때문이다. 첫째는 네가 죄가 없다는 것이고, 둘째는 내게 죄가 있다는 것이며, 그리고 셋째는 네가 순전히 관대한 마음으로 나를 용서해줄 생각이라는 것. 그것뿐만 아니라 많든 적든 간에, 물론 지신을 거역하는 것이기는 하지만 언제든 나 역시 죄가 없다고 증명해서 그것암저 믿도록 할 각오가 되어 있다는 것이다. ... 너는 이 편지에서도 여전히 나에게 기생하고 있다. ” (591-593) - [아버지를 통한 자기 고백인데.. (이년전 폐결핵이란) 병색을 확인 점 때문일까? ]
인생은 ‘인내 겨루기’ 이상으로 많은 참을성을 필요로 합니다. 그러나 이러한 항의에 따라 이를 정정한다 할지라도 그것을 일일이 관철할 수는 없으며 또 그렇게 할 생각도 없습니다. 하지만 제 생각으로는 그것을 정정할 경우에 훨씬 진실에 가까운 어떤 것에 도달할 수 있어서 그 결과 우리 두 사람은 어느 정도 안정될 것이고 삶과 죽음을 좀더 편한 마음으로 맞이할 수 있으리라 생각합니다. / 프란츠
(3:38, 50ULE)
* 다시 읽어보라 ... / 아버지와 아들 간의 관계 중에서, 이중구속의 의미에서 다시 보아야 할 것 같다. 카프카는 들뢰즈/가타리가 보았듯이 “너무나 거대한 외디푸스”에 눌린 것일지도 모른다. 그 부정적인 거대한 외디푸스를 기계산업, 관료제, 독재정 같은 것에 대입해 보았다고 할 수 있을 것 같다. (50UL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