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지식인의 죽음: 김질락 옥중수기 (원제 주암산)
김질락, 행림서원(杏林書院), 2011.11.01, P. xvi + 447.
*내가 이 책을 읽게 된 것은, 어제 철학아카데미에서 이정원이 발표한 「거짓, 필연, 확률」이라는 논문에 의해서이다. 그 논문의 주제는 사실(현실)에 등장한 것이 진리(진솔)이라고 한다면, 그 만큼이나 많은 이야기를 내포한 다양체를 서술구조로 인정하여 진위를 구별하는 것이 문제가 있을 수 있다는 점이다. 즉 다양체의 표면은 하나의 서술인 것 같은데, 내면의 여러 갈래들은 계열로서 지속되어 온 것은 거짓인가? 그렇지 않겠지. 그 다양체가 드러낸 집합 같은 표면은 n이며 하나의 사건이다. 그 하나는 이미 다질성을 내포하고 있다. 다양체가 하나로서 사실의 단면이 되는 것은 필연이라 할 수 있는데, 하나로 표현되기 전의 다수에서 보면, 그 하나는 우발(contingent)이다. 그런데 여러 계열들 중에서 한 계열의 점과 다른 계열의 점의 마주침은 우발이라기보다, 공중의 주사위가 어떤 하나의 수가 나올 수 있는 것은 우연(hasard)이다. 현실화에서 우발이 아니라 나올 수 있는 아자르(우연)는 거의 무한이다. 이 무한을 다 합하여 수렴할 수 있다면 n으로써 필연이다. 그럼에도 주사위에서 1이라는 숫자는 무한하게 던져 본다면 1/6이다. 이것은 여섯 번 중의 하나가 아니라, 천 번은 1이 그 다음 천 번은 2... 이하 등등, 이렇게 해서 1/6일 수도 있을 것 같지만, 꼭 6등분이 되는 것도 아니다. 실험적으로 해보면 각각이 동등하게 1/6이라는 것도 아닌데, 계산은 필연적으로 1/6이다. 그러면 6등분의 모두가 한꺼번에 등장하는 영원(n)은 일어날 수 있는 각 부분들의 확률이 완성되어서 각 등분은 부동이며 그 각각은 다자로써 동일율이 성립한다. 그런 의미에서 영원이다. 즉 전체(일자)의 부분들(개체들, 다자들)이 확률로 등장한다고 할 수 있다.
수학과 물리학에서는 영원이란 사영기하학의 점에 대비되는 성운과 같다. 들뢰즈가 고른평면이라 부른 것과 닮았다. 그런데 생물학에서 단세포들의 덩이인 볼복스가 그 모양을 한다. 그런데 진화론에서, 생물 종(種)에서는 덩이인 성운이 가우스의 종(鍾)모양일 것이다. 이 종(鍾), 쇠북 모양이 삶의 세상이라는 점이다. 그렇다고 종모양의 중심에 있는 높은 마루(고원)가 세상의 진실을 말하고 있는 것만은 아니라, 시대의 문제제기로서 사건을 드러낸 상태라는 점이다.
**이 논문의 주제는 “거짓의 힘”이다. 원문을 찾아보면 “이미지 속에서 거짓의 권능(la puissance du faux dans l'image)”이다. 여기서 이미지를 이루고 있는 것 속에서 현실화되지 못한 실재성이 논리적으로 또는 현실화되지 못했다고 거짓으로 취급 받을 수 있지만, 그 자체는 실재성으로서 권능을 지니고 있다. 이 권능은 현실에 등장하지 않았지만, 그럼에도 힘(능동력)을 발휘하고 있는 “기억 총체”이다. 이 기억 총체를 인식적으로 알아차리고 있지만 표현하지 못한(보이지 않은) “지각”이다. 이 침묵 속에 있는 것 또는 보이지 않지만(5관이 잘 표현해 줄 수 없지만) 실재하는 힘으로 있다. 유전과 기억은 이런 의미에서 잠재력(puissance)이며 번역상 권능이라 할 수 있다. 플라톤의 움직이지 않는 영원과 달리 ‘작동하는 권능’(puissance d'agir, 벩송의 용어)이며 들뢰즈가 영원이라고 또는 이념이라고 부르고 싶어 한다. 나는 이를 생명체로써 인간의 영혼이라 부르고 싶다. 소크라테스가 ‘이뭣꼬’를 추구한 것도 이 영혼이라는 생각이 든다.
논문은 말해지 않았거나 침묵의 힘이 있다고 한다. 한 수기에서 이야기가 거짓이라고 하는 것과 그것이 말하지 않는 침묵이 있다는 것은 다른 것(차히 différenciation)이 같다. 전자는 사실과 대비이다. 이에 비해 후자는 표현할 수 없거나 다 쓸 수 없는 경우에, 일반적으로 시에서 행간의 의미(signification)가 있듯이, 잠재해 있는 실재성이 있을 때 권능은 여전히 발휘할 준비가 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이것은 어제도 이제도 아니고, 아제(미래)의 이야기가 남아있다는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n+1(아제)에게 힘을 실어주는 것은 어제(n-1)이지, 이제(n)의 사실(진리)이 아니라는 역설이 나온다. 왜 퀴니코스학파와 스토아학파가 플라톤의 이데아론을 반박하려 했는가 하는 점에서 보면, 플라톤은 이제(n)로서 간주된 것을 부동의 필연으로 삼아서 이데아를 영원화 하려 했다는 것이다. 고른 평면에 선을 그어 골을 팠는데, 그 골 하나만을 사실로 받아들여 영원화 했다는 오류를 범한 것이 된다. (50OMJ)
***김질락의 어느 지식인의 죽음: 김질락 옥중수기 (원제 주암산)(1991초, 2011재). 이 책은 두 동지(김종태, 이문규)가 사형당하고(1969) 난 뒤, 1972년에 그 자신도 사형 당하기 전까지 쓴 것으로 되어있으나, 죽음과 교환한 수기가 될 수 없다는 것을 수기자 본인이 느끼고 있기도 한 것 같다. / 1988년 출소한 신영복은 “말”지와 인터뷰에서 ‘통혁당에 가담한 것은 양심의 명령 때문이었고 향후로도 양심에 따라 통혁당 가담 때와 비슷한 생각으로 활동하겠다’고 밝힌 바 있다. 사람들은 김질락이 옥중에서 쓴 이 글은 후회와 소심함으로 되어 있다고 하나, 한겨레 편집위원을 지냈던 정운영인가에 의하면 정간은폐는 여전하다고 한다. 조갑제가 이런 사실을 모르고 반공서적으로 조갑제가 배부처로 자부했겠는가? 조갑제는 이 글이 이미 윤색된 것임 느끼고 있지 않았겠는가. (50PKA)
◎ 김질락(1934-1972) 년표
1934년 6월 4일 경북 영천군에서 태어나, 어려서부터 작은아버지인 김종태의 영향을 많이 받으며 자랐다.
1953(열아홉)년 서울대학교 문리대에 입학하여 학내 비밀서클 활동을 하였다
1957(스물셋)년 학교를 졸업하고 「경남매일신문사」 논설위원으로 활동하였다.
[1963(스물아홉)년 결혼...
1964(서른)년, 김종태의 권유로 상경하여 김진환, 이문규 등과 「청맥」을 발간하였으며 이 잡지의 주간을 지냈다. 동시에 사회주의 이론 서적을 학습하고, 혁명운동에 관한 교육을 받으며 논의를 펴나갔다.
1965(서른하나)년 11월 초, 김종태, 이문규 등과 통일혁명당 창당을 결의하고 이의 발기인이 되었으며,
1966(서른둘)년 2월 후배인 이진영, 신영복과 함께 민족해방전선을 구성하였다.
1967(서른셋)년에 월북하여(5월 5일~5월 28일) 평양에서 약 20일간 머물면서 노동당에 입당하고 교양을 받았다.
1968(서른넷)년 통일혁명당 사건으로 구속된 후, 수기 형식의 「어느 지식인의 죽음(원제: 주암산)」을 집필하였다.
1972(서른여덟)년 7ㆍ4 남북공동성명 직후인 1972년 7월 15일 사형되었다. [책의 앞 날개 안쪽의 기록이다]
어느 지식인의 죽음: 김질락 옥중수기 (원제 주암산)(1991초, 2011재):
# 김질락 옥중수기 어느 지식인의 죽음 : v-viii
기억 속에 잠들어 있던 이 책을 재발간 하기까지 도움을 주신 행림서원 이갑섭 사장님과 이 책의 배포를 흔쾌히 맡아주신 조갑제닷컴에 감사드리며 제작을 위하여 비용을 후원해주신 많은 분들에게 진심으로 감사함을 전합니다. (vii-viii)
[글쓴이 이름이 없고, 사이버안보감시단블루아이즈(http://cafe.naver.com/iblueeyes)라 되어 있다.]
# 사형집행을 기다리면서 쓴 從北[종북]세력 앞 경고장 ix-xvi
- 조갑제 [그는 이 책을 반공자료로서 쓰기 위해 머릿 글을 쓴 셈이다. 하락도 없이 .. 허락받을 수도 없지만 말이다. 이 책이 비매품이라 되어 있어서 가격도 없다. 그런데 종로 도서관에 들어와 있다. (50OMJ) ]
[내부 제목] 어느 지식인의 죽음 1
▪차례 3
•머리말: 나의 시작은 나의 끝이었다 5-6
- 김질락
•아버지 나라도 지금 꽃이 피나요 7-10
- 아버지의 딸 김수아 드림
•역사의 진실이라는 무게를 느끼며 12-14
- 편집자 씀
여름이 오려 하던 4개월 전 어느 날 한 중년 여인이 조용히 편집실의 문을 열었다. 내가 걸어 다닐 수 있을 때 남편을 정리하고 싶다는 여인의 소박한 소망... (13) [1991년 이라면 부인 55세 정도 때?... 원고를 맡긴 뒤 이야기가 있을 것인데... ]
- 월간 청맥 주간 김질락 17-101
- 통일혁명당 창당 준비 과정 102-159
- 이진영, 신영복 등과 함께 민족해방전선 구성
“... 이집트의 낫세르가 그랬고, 인도네시아의 수카르노가 그랬으며, 쿠바의 카스트로가 그렇게 성공했습니다. 지금 세계는 미소의 지배시대에서 벗어나 다원화의 시대로 이행해 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우리 손으로 조국을 통일할 수 있고 우리의 힘으로 독립을 쟁취할 수가 있습니다. 모든 일은 순서가 있는 법이니 우리는 가장 쉬운 데서부터 일을 착수하여 점차 어려운 투쟁으로 발전해 나가야 합니다. 나는 결코 인혁당과 같은 전철을 밟지 않을 것입니다. 나는 나대로 혁명의 방법론을 갖고 있습니다. 미스터 신은 나하고 같이 일해 볼 생각이 없으시오?” / “말씀 잘 들었습니다. 저도 인혁당에 관련했던 사람들을 몇사람 알고 있는데 그들은 모두지 돼먹지 못했더군요. 너무 교조주의적이라고 할까. 요즘 세상엔 그런 방법이 통하지 않는 것 같아요. 저는 곧 군대를 입대하게 됩니다. 단기간의 훈련만 차치면 육사교관으로 임명됩니다. ...” (106)
1923 서도원(徐道源 1923-1975) 인혁당, 대구매일 신문기자. ‘경락연구회’(經洛硏究會)
1924 도예종(都禮鍾 1924-1975) 인혁당, 삼화토건 회장, ‘경락연구회’(經洛硏究會)
1926 김종태(1926-1969 사형)-통일혁명당 위원장, 경북 영천군 출생
나는 신영복을 향해 조직을 함에 있어서 너무 덤벼서는 안된다고 수차에 걸쳐 당부하고, 양보다는 질을 더 중요시해야 하며, 당원은 항상 합법적인 인물들이 둘러 싸여 자신을 은폐할 수 있어야 한다고 주장하고, 정간 은폐의 원칙을 철저히 고수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128) [참조 155쪽, 258쪽]
- 첫 번째 입북 기도 160-191
-운명의 날 4월 4일
아들인 영아는 그 때 돌지난 지 7개월이었고, 딸인 수아는 낳은 지 겨우 넉달 밖에 안된 때라 눈도 제대로 뜨지 못하던 때였다. (174)
- 마침내 이북행 보트를 타다 192-224
- 공해로 해서 산동반도에 들러 북상행
[월북 과정 이야기]
- 주암산에서의 20일: 서울과 평양은 너무 멀다 225-291
- 서울과 평양은 너무 멀다.
[평양체류 이야기가 이 책 끝가지 이다.]
- 1970년대의 결정적 시기론 292-
- 당이 우선인 사회
- 대동강은 흐른다 403-447
- 나의 가족들에게 대단히 미안하게 생각한다.
(4:14, 50P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