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F. Duchesneau, Les Oeuvres I, Dictionnaire, PUF, 1992, p. 1274. (P.2190.)
- 뒤세스노(François Duchesneau, 1943-) 카나다 철학자. 몬트리올대학 교수, 라이프니츠 전문가.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가 태어날 때는 독일에서 30년 전쟁(1618-1648)이 끝날 무렵이었다. 이 전쟁은 독일에서 카톨릭과 프로테스탄트 사이의 전쟁인데 경과에서 각 왕국들의 이해관계로 변화되었다. 이를 지지하는 나라들이 참여하여 유럽의 전쟁터였으며, 베스트팔렌 조약(Westfälischer Friede, fr. traités de Westphalie, en Peace of Westphalia, 1648)의 결과로 유럽의 개별국가의 정립의 계기가 된다. 독일은 인구가 절반 정도 사라질 정도로 거의 완전히 피폐해졌다. 이 시기에 태어난 지식인은 무엇을 할 것인가? 화해 또는 재건일까? 인간의 본성에 대한 새로운 길을 찾을까? 이 박학다식한 철학자는 새로운 세대에 관심을 가졌을까?
이 학자는 철학자이기 이전에 물리학자로서 정역학에서 동역학으로 관심을 가졌고, 스스로 자립하여 살기 위해 한 때는 여러 기술 장치를 들을 연구하였다. 수력 압착기 풍차 등을 연구하고, 또한 하르츠 산맥의 광산개발에 참여하여 기술자로 일했다(1680-1685). 해설자가 라이프니츠의 학적 체계를 3시기로 구분해서 말하듯이, 첫째 시기는 라이프니츠의 철학적 관심으로 전환은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étaphysique, 1686)에서 시작하여, 둘째 시기에서는 실체와 자연에 대한 글들을 썼고, 셋째 시기에는 신과 우주에 관한 관심으로 단자론(Monadologie 1714)을 쓰는 시기라고 한다.
라이프니츠는 실증적 사실을 탐색한 후에 마흔(1686)쯤에서 사물 총체에 대해 철학적 관점을 가졌다고 할 수 있고, 말년에는 그것을 우주론에까지 확장하였던 것으로 보인다. (53LLH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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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 뒤세스노(François Duchesneau, 1943-), p. 1274.
[생애와 영향]
라이프니츠는 1646년에 라이프찌히(Leipzig)에서 태어났다. 그는 1661년[열다섯]부터 이 도시의 대학에서 공부를 했다. 1663년[열아홉]에 그는 학사 자격 논문으로 (약칭) 「개체의 원리(De Principio Individui)」를 [토마지우스(Jacob Thomasius, 1622-1684)의 지도하에] 제출했다. 예나 대학에 잠시 머문 후에, 그는 1664년 석사를 마쳤는데, 논문으로 [ 「법전의 철학적 문제 표본(Specimen Quaestionum Philosophicarum ex Jure collectarum, 1664)」을 제출했다. 이 학력형성의 과정은 알트도르프 대학에서 법학 주제로서 [「법률에서 복잡한 사건들에 관해 (De Casibus Perplexis in Jure, 1666)」를 제출하면서 끝났다. 그는 같은 해에 「조합의 기술(De Arte Combinatoria 1666)」을 출판했다. 그의 법률가의 역량은 보이네부르크 남작(Johann Christian von Boyneburg, 1622-1672)의 주목을 받았다. 남작은 그에게 마인츠(Mainz, fr. Mayence)의 선제후(Kurfürst, Electeur)인 쇤보른(Johann Philipp von Schönborn, 1605-1673)의 측근이 되어 보좌역(자문역)을 얻게 했다. 라이프니츠는 교회들을 재통합하려는 기획을 가지고 법률적인 작업들을 활용하였다. 이 기획으로부터 「무신론자에 반대하는 본성의 고해성사(Confessio naturæ contra atheistas 1668)」(1688-1672)의 필사본들이 나온다. 근대 역학 과학의 신봉자인 라이프니츠는 1671년에 파리 과학 아카데미의 의도에 맞게 추상 운동의 이론(Theoria motus abstrati, 1671) 그리고 런던 왕립학회에 연설에서 「새로운 물리학의 가설(Hypothesis Physica Nova, 1671)」을 “구체적 운동의 이론(Theoria motus concret)”이란 부제로 발표했다.
외교적 임무를 맡았던, 그는 1672년에서 1676년까지 파리에 체류했다. 그는 파스칼(Pascal, 1623-1662)의 필사본들을 보았고,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는 그의 과학 조언자가 되었다. 런던으로 짧은 이동에서 그는 올덴부르크(Henry Oldenburg, c.1619–1677)를 매개로한 맺어진 접촉들 덕분에 영국의 과학적 흐름을 보았다. 1673년부터 그는 철학자의 고백(Confessio philosophi, 1673)을 쓰기 시작했다. 계산기에 관한 그의 작업들이 있고, 미분계산의 발견의 서막들이 파리 체류에서 열린다. 이 당시 그는 과학아카데미 회원으로 선출되었다. 1676년 라이프니츠는 하노버 공(le duc de Hanovre)의 측근으로 사서직과 고문관직(conseiller aulique)을 받아들였다. 귀국의 길에 그는 스피노자를 방문했다[1676]. 라이프니츠는 1678년에 역학에 초점을 맞추고, 많은 과학자들과 서신교환을 이어갔다. 그리고 라이프치히에서 월간지 악타(Acta Eruditorum)을 창간하였고, 하르츠[Haut-Harz (Oberharz)] 탄광을 위한 기술혁신의 기획을 하였다. 그는 1684년에 「최대치와 최소치를 위한 새로운 방법(Nova Methodus pro Maximis et Minimis, 1684)」에 의해 무한소의 알고리즘[연산법]을 알아 차렸다[미적분의 창안].
같은 해 그는 인식, 진리, 관념에 관한 성찰(Meditationes de Cognitione, Veritate et Ideis, 1684)에서 인식이론을 알렸고, 또한 「자연법칙에 관하여 데카르트 및 다른 사람들이 저지른 중대한 오류에 대한 간략한 논증(Brevis Demonstratio Erroris Memorabilis Cartesii et Aliorum Circa Legem Naturae, 1686)」[악타(Acta) 1686년 3월호]에서 자신의 동력학을 소개하였고, 자기 체계의 첫째 학적 정식화 작업으로서 형이상학 서설(Discours de métaphysique, 1686)을 썼는데, 이 글은 아르노(Arnauld, 1612-1694)에게 보낸 편지를 핑계로 작성되었다. 동력학은 데카르트주의자들과 소위 힘들에 대한 논쟁을 자극했고, 그리고 말브랑쉬(Malebranche, 1638-1715)와 서신왕래에서 상당 부분에서 정당화되었다. 브랑슈비끄 가문의 가계 기원들에 관한 역사 기록적 탐구들을 위한 동기로, 라이프니츠는 오스트리아와 이탈리아로 긴 여행을 하였다(1687-1690). 이때에 그는 뉴턴(Newton, 1643-1727)의 수학원리(Principia, 1687)알았고, 그는 중요한 수고본인 권능(잠재성)의 동력학(Dynamica de potentia seu legibus naturæ corporeæ, 1689)을 작성하고, 여기에 접속되어 연결되는 동력학 시론(Essai de dynamique, 1691)(프랑스어로), Animadversiones in partem generalem Principiorum cartesianorum 1692)을 쓰고 1695년에는 Specimen Dynamicum. 1695를 내놓았다.
이제 그는 둘째 학적 정식화 작업을 향하여 나아간다. 개선하는 철학원리와 실체 개념에 대하여(De primae philosophiae emendatione et de notione substantiae, 1693, 실체들의 본성과 소통에 대한 새로운 체계(Système nouveau de la nature et de la communication des substances, 1695) 궁극적 근원의 사물에 관하여(De rerum originatione radicali. 1697, 자연 그자체에 관하여(De ipsa natura. sive de vi insita actionibusque creaturarum. 1698를 썼다. 이 시기에 프랑스 철학자 벨(Pierre Bayle, 1647-1706), 제네바 신학자르 클레르크(Jean Le Clerc, 1657-1736), 프랑스 철학자이자 오라트리오 신부인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 1638-1715), 네덜란드의 물리학자이며 수학자인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1629-1695), 스위스 수학자 베르누이(Jean Bernoulli, 1667-1748), 네델란드 철학자 드 볼더(Burchard de Volder, 1643–1709) 등과 서신교환이 활발했다. 이 서신교환은 다루는 개념들의 함축을 계속하여 확장시켰다. 라이프니츠는 로크(Locke 1632–1704)의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에 주의를 기울였고, 이 작품이 그에게 그의 신 인간오성론(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을 나오게 했다.
변신론(Théodicée, 원제 Essais de Théodicée sur la bonté de Dieu, la liberté de l'homme et l'origine du mal, 1710-14)을 쓰면서, 스위스의 고고학을 겸한 박학다식한 부르게(Louis Bourguet, 1678–1742), 오를레앙공의 자문위원장인 레몽(Nicolas-François Rémond, 1638-1725), 벨기에 제수이트 신부이며 신학자인 데 보스(Barthélemy Des Bosses, 1668-1738) 등과 교신하는 그의 말년 시기는 그의 셋째 학적 체계의 규범적 정식화 작업의 시기이며, 이성에 기초한 자연과 은총의 원리(Principes de la nature et de la Grâce fondés en raison, 1714)와 단자론(Monadologie 1714)(독번역 1720, 프랑스 원판 출판 1840)을 썼다. 이런 관련으로 라이프니츠는 뉴턴주의의 철학적 의미[함축]들을 검토하였고, 뉴턴의 대변인 격인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와 논쟁으로 된 서간들(Ecrits)[The Leibniz-Clarke Correspondence, 1717] 속에 나오는 자연적 질서에 대한 라이프니츠에 고유한 개념 작업은 뉴턴에 대립된다. 이 편지 교환은 라이프니츠가 하노버에서 죽음과 더불어 끝났다. (François Duchesneau)
**인명록
1605 쇤보른(Johann Philipp von Schönborn, 1605-1673)[baron de Boinebourg] 보름스 주교, 뷔르쯔부르크 후작주교를 거쳐 마인츠 선제후이자 대주교, 라이프니츠는 이 대주교의 보좌역이 되었다.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1672년 9월 라이프니츠는 예수회를 반대하는 글로 유명한 얀센주의(수많은 엄격한 도덕형식을 만들어내는 비정통 로만가톨릭운동) 신학자 앙투안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를 만나 교회 재통합을 위해 도움을 청했다.
1619 올덴부르크(Henry Oldenburg, c.1619–1677) 독일신학자, 외교관, 자연철학자. 영국왕립학회 창설하고 초대 사무총장. 스피노자와 편지교환. 라이프니츠와도 편지교환
1622 토마지우스(Jakob Thomasius, 1622-1684) 독일 수학자, 법률가. un philosophe et juriste allemand.
1622 보이네부르크 남작 요한 크스티안(Johann Christian von Boyneburg, 1622-1672) 독일 정치가. 라이프니츠는 뉘른베르크에 머물면서 당시 가장 유명한 독일 정치가인 보이네부르크 남작을 만났다.
1623 블레즈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의 심리학자, 수학자, 과학자(물리자), 발명가, 작가, 철학자.
1629 크리스티안 하위헌스(Christiaan Huygens, lat. Christianus Hugenius, 1629-1695) 네덜란드의 수학자, 물리학자이자 천문학자이다.
1629 에른스트 아우구스트(Ernst August von Braunschweig-Calenberg, 1629–1698), 하노버(Hannover) 선제후. 브랑슈빅 가계. 라이프니츠는 그의 사서였다. [동일인물 fr. Ernest-Auguste, duc de Brunswick-Lunebourg (1629-1698)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lat.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 포르투갈 유대계 네델라드 철학자. 스피노자(Spinoza, 1632-1677)의 생애 마지막 시기에 1676년 11월 18일 21일 라에에서 만났다.
1632 로크(John Locke 1632–1704) 영국 철학자, 의사. 맘(the mind) 백지(blank slate, tabula rasa)라고 주장. 인간 오성론(An Essay Concerning Human Understanding, 1690)
1638 말브랑쉬(Nicolas Malebranche, 1638-1715) 프랑스 철학자, 오라트리오 신부, 신학자.
1638 레몽(Nicolas-François Rémond, 1638-1725) / Nicolas-François Rémond de Montmort (de) (1638?-1725), 오르레앙공의 자문위원장,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
1643 뉴턴(Isaac Newton, 1643-1727) 영국 물리학자, 중력의 법칙을 발견하였다. 자연철학의 수학원리(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Mathematical Principles of Natural Philosophy, 5 July 1687.)
1643 드 볼더(Burchard de Volder, 1643–1709) 네델란드 철학자. 메노니트파 가계(Mennonite family) 출신.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1647 벨(Pierre Bayle, 1647-1706) 프랑스 철학자, 작가, 사전편찬자.
1657 르 클레르크(Jean Le Clerc, Johannes Clericus, 1657-1736) 제네바 신학자, 성경학자. 켈빈파
1667 쟝 베르누이(Jean Bernoulli, Johann Bernoulli, 1667-1748) 스위스 수학자, 물리학자. -그의 형은 자끄 베르누이(Jacques ou Jakob Bernoulli 1654-1705)
1668 데 보스(Barthélemy Des Bosses, 1668-1738) 벨기에 제수이트 신부, 신학자. 라이프니츠와 편지 교환.
1675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 영국 철학자, 국교 성직자. 로크와 버클리 사이에서 중요인물, 라이프니츠와 편지 교환에서(1715-1716) 뉴턴의 대변자.
1678 부르게(Louis Bourguet, 1678–1742) 스위스 박학자. 고고학, 지리학, 철학, 성경학 수학,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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