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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작품들

러셀(1872-1970), 제31장 논리 분석철학, in "서양철학사", 현대편.

작성자마실가|작성시간17.12.19|조회수694 목록 댓글 0


현대편(Mordern Philosophy), in 󰡔서양 철학사(A History of Western Philosophy 1945)󰡕(러셀, 최민홍, 집문당, 1996(, 1945, 수정 1961), I 722, II 489.) .

- 러셀(Bertrand Arthur William Russell, 1872-1970) 영국 수학자, 논리학자, 철학자...

 

*** 현대편(Mordern Philosophy) 하권

1부 르네상스에서 흄에 이르기까지 11-269

2부 루소에서 현대까지 271-487

31장 논리적 분석철학 477-487

* 이 마지막 장에서, 즉 논리 분석철학을 할애한 장에서, 러셀이 보기에, 형상형이상학을 기반으로 하는 철학을 그만 두고, 이제 철학이 진정한 진리 탐구의 길을 언어를 통하여 가야 한다고 본 것이고, 이 언어는 수학과 마찬가지로 논리의 체계위에 정립되어 한다고 보고 있다. 그럼에도 이 글을 쓰는 1945년도 당시에 이미 논리분석철학의 한계는 드러났다. 자기 지시에 대한 모순으로 메타언어를 동원해야 한다고 하였다. 언어의 이차원(상위차원)의 도입은 공리상으로 문제가 될 것이다. 왜 모든 과학부분 또는 철학의 형이상학부분이 실재의 배후(토대) 또는 실재성의 내재성(다양체)을 다시 묻겠는가? - 그 작동은 인간의 욕망이 아닐까? 아직은 가야 할 길이 먼 것 같다. (50WLB)

 

** 러셀은 논리적 분석철학의 주요 토대로써 수학과 물리학을 제시한다. 그 수학과 물리학이 논리에 따르는 측면의 경우, 즉 논리에 알맞은 정합성의 경우의 사례들만을 모은 것인지에 대해 자문해야 할 것이다. 표면에서 상층의 철학은 수학에 맞게 정식화 될 수 있는 것을 현상에서 찾아서 법칙화한다. 이 경우에 수학은 법칙의 원리 또는 정리(공리)인 것으로 간주하고 이 정리는 논리학에 기초하는 것으로 본다. 이런 원리와 법칙 그리고 제정리들(제명제들)의 관계의 삼각관계는 주지주의 철학의 전형이다. 이것이 종교로 옮겨지면 삼신성에 적용될 수 있고, 정신분석학의 삼원성의 관계에도 적용된다. 인간의 지식이 이런 삼각형적인 구조가 안정성을 갖는다는 것은 퓌타고라스와 플라톤이래로 상층철학의 근본이다. 여기에서 질적인 것을 빼버리고 형식만을 추상하여 개념(또는 명사)을 형상화(또는 상징화)하는 것이다.

** 러셀은 지시어가 고유명사일 경우에 존재하는 것으로 보고, 그리고 서술어(지시어)의 구절은 의미를 갖는 것이라고 한다. 소크라테스는 존재이지만, 프랑켄슈타인은 존재가 아니며, 더하여 황금산(둥근사각형)이나 일각수는 존재가 아니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장에서 그 지시어들은 의미가 있다. 수학에서 무한소의 대상을 정확하게 결정할 수는 없지만 의미가 있고, 또한 최고의 큰 무한도 대상을 정할 수 없지만 의미가 있다. 그로서는 물리적 세계에서 전세계는 대상인 것 같지만 대상이 아니라 지시어일 뿐이다. 물리적 세계에서 동시적 두 사건은 대상인 것 같지만 그렇지 않고, 서술적으로 의미가 있다. 미시 세계에서 물리적 현상은 불연속적이라는 것은 의미가 있지만, 실재적 대상이 아니라 서술적 사건이게 된다. 마치 물질이 불연속의 입자로 간주하는 경우는 대상화한 것이고, 파동으로 간주하는 것은 서술적 사건이 될 것이다. - 이런 이원적 구분과 달리 물질은 규정에 들어가지 않은 필연성으로서 엉김 또는 흐름일 수 있다. .

** 그러면 러셀에서는, 의식 또는 정신(mind)은 대상일까 지시어일까? 아니면 물리적 세계처럼 사건일까? 러셀은 물질이 흐려진 정신이고 정신은 흐려진 물질처럼 보는 윌리엄 제임스처럼 보려고 한다. 그러면 의식의 사유와 신체의 지각은 각각이 대상이 있을까? 러셀은 이중성에 머물 것이다. 아마도 사유에서는 서술적 의미를 문장화할 수 있을 것이고, 지각에는 미세하게 부분적으로 대상화 할 수 없지만, 지시적 대상을 서술하는 지시어를 구성할(composer) 수 있을 것이다. 우리로서는, 이 두 측면이 어떤 구조가 먼저 있는 것이 아니라, 가능한 생성에서 구성되는 양태에 따라 구조의 표현과 형식이 안과 겉처럼 이중화 될 것이고, 이런 과정은 거울효과처럼 보이지만, 대칭적 거울효과가 아니라 비대칭적 거울효과로 나타날 것이다. 이로써 자아는 이중성의 한 측면에 둘 수 없어서 스스로 분열증적 효과를 드러낼 것이다. 자아의 드러남이 안에서 사유와 겉에서 지각이 거의 일치를 유지한다면 현자(또는 부처)의 경지일 것이다. (50WLB)

***31논리적 분석철학의 주요 내용으로

1) 수학에서 칸토르 무한, 프레게에서 수(). 카르납과 러셀은 논리 언어 분석으로

2) 물리학에서 상대성 이론의 아인슈타인, 양자론의 물리적 불연속성.

3) 물리학과 심리학의 경계의 모호성을 제시한 윌리엄 제임스.

이들을 종합해 보건데, 러셀의 생각으로, 철학이 앞으로 논리분석철학으로, 즉 분석경험론으로 갈 것이라는 간략한 서술이다. (= 전혀 그렇지 않을 것이다) 논리분석철학은 자본주의에서 상품자유주의를 밀어주는 효과를 드러낼 것이다. 상층형이상학의 길로 가는 길목에 정신분석학을 만날 것이다. 둘다 분석이라는 점의 공통점이 있고, 게다가 둘다 서술에서 실재성이 없더라도 의미”(sense)를 표출할 것이다. 20세기 후반에서 21세기에는 회오리의 마지막 부분의 가장자리에서 일어나는 탄젠트는 매우 많은 방향들(les sens)이라는 점을 강조하게 될 것이다. (50WLB)

 

*** 내용 ***********

31장 논리적 분석철학 477-487

피타고라스 이후로 철학에는 두 가지 조류가 서로 대립되어 있었다. 사상에 있어서 수학의 영향을 받아 온 사람들과 경험의 영향을 더 많이 받아온 사람들과의 대립이 그것이다. 플라톤, 토마스 아퀴나스, 스피노자, 칸트 등은 수학파라고 칭할 수 있는 철학자들이고 데모크리토스, 아리스토텔레스, 로크 이후의 현대 경험론자들은 그 반대파에 속하고 있다. (477) [세 가지 양태로 보면, - 상층: 플라톤, 아퀴나스, 헤겔, 하이데거 - 표면: 데모크리토스, 로크, 칸트, 듀이, 푸꼬, - 심층: 플로티노스, 스피노자, 루소, 벩송, 들뢰즈.]

17세기의 위대한 수학자들은 낙천적이었으며 성과를 거두기에 분주하였다. 그리하여 그들은 해석기하학, 미적분을 토대가 불확실한 채 방임해두었다.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는 현실적인 미분이 가능하다고 믿었다. /../ 19세기 중엽을 지날 무렵 바이에르스트라스(Weierstrass 1815-1897)는 미적분 없이도 그 계산을 할 수 있다는 것을 입증하여, 그 계산법을 논리적으로 확실하게 하였다. 이어서 게오르크 칸토어(Georg Cantor, 1845-1918)가 나타났다. (477)

칸토어는 연속이라는 말에 명확한 정의를 내리고, 그가 정의한 연속성은 수학자나 물리학자에게 다 필요한 개념이었음을 밝혔다. 이렇게 해서 베르그송의 신비주의와 같은 것이 이미 옛것이 되어 버렸다. 칸토어는 무한수(無限數)에 관한 오래 전부터의 논리적인 어려운 문제들을 해결하였다. (478) [초한수(超限數, Transfinite Number, Les nombres transfinis)로서,, ω {omega}, 알레프-0(0, aleph null, aleph {0}}) ... 무한수 사이에 비교불가능한 수들이 있을 수 있다. 알레프 수(, aleph number). / 린데만(Carl Louis Ferdinand von Lindemann 1852-1939) 독일 수학자. 1882π의 초월수(la transcendance du nombre π)임을 출판하였다. 초월수(超越數, transcendental number) - les nombres transcendants sont π(파이) et e. 그리고 자와 콤파스의 도움으로 원 넓이를 사각형을 바꿀 수 없다고 한다. ]

게오르그 칸토르는 무한한집합을 부분이 전체 집합이 포함하는 항수(項數)와 같은 항수를 포함하는, 그러한 집합으로서 정의를 내렸다. (479) [자연수의 집합 = 짝수의 집합, 이를 라이프니츠는 모순이라 생각했는데, 칸토르는 모순이 아님을 주장하였다. 즉 집합론에서 가능하다.]

다음에 중요한 사람은 프레게(Frege, 1848-1925)이다. 그의 첫 저술은 1879년에 출판하였고[󰡔개념 표기법: 순수 사고의 산술적 형식 언어의 모형(Begriffsschrift, eine der arithmetischen nachgebildete Formelsprache des reinen Denkens. 1879)󰡕], 수에 관한 정의는 1884년에 출판하였다. (479)

()의 정의에 있어서 수를 다수와 동일하게 간주한 것이 상례이다. 그러나 의 한 예가 특수한 하나의 수이다. 예컨대 3같은 것이 그러한 예이다. 그리고 3같은 특수한 예가 특수한 세 낱(a particular triad, 3)이다. 이 세 낱은 하나의 다수이다. 그러나 모든 세 낱의 집합이 아니다. (497) [정삼각형의 세변과 곡식 세 알, 삼이란 숫자의 지시와 의미는 다르다]

프레게의 노작으로 말미암아 산수나 순수수학은 일반적으로 연역적 논리학의 연장에 지나지 않는다는 결론이 나게 된다. 이것은 산술 명제는 종합적이며 시간의 관계를 갖는다는 칸트의 주장을 반증하는 것이다. 논리학에서 순수성에로 발전하게 된 경위에 대한 상세한 것은 화이트헤드와 나의 공저 󰡔수학의 원리(Principia Mathematica, 19101913)󰡕(with Alfred North Whitehead, 3 vols)에서 서술하였다. (479)

철학의 주요 부분을 구문론으로 부를 수 있게 환원할 수 있다는 것이 점점 명백하게 되었다. 여기서 말하는 구문론이란 말은 지금까지 흔히 써온 것보다 좀 더 넓은 의미로 사용할 수밖에 없다. /... 카르납(Carnap, 18911970) 같은 사람은 모든 철학적인 문제는 실로 구문론적이라고 주장하였다. (479-480) [구문론 또는 통사론(syntactic): In linguistics, syntax is the set of rules, principles, and processes that govern the structure of sentences in a given language, specifically word order and punctuation. ]

나는 여기서 기술론(記述論)[theory of description]에 대하여 간단히 설명하고 그 유용성을 지적하고자 한다. “기술(description)”이란 미국의 현 대통령같은 하나의 구절을 의미한다. / 예컨대 황금산은 존재하지 않는다.”[(The golden mountain does not exist)”] (480) [“존재하지 않는 것은 황금산이다처럼 역은 거짓이다. 그럼에도 황금산은 문장 속에서 의미가 있다. ‘대머리 프랑스 왕은 현존한다는 거짓이지만, ‘대머리 프랑스 왕이란 현존과 관계없이 의미있다.]

가령 스코트는 󰡔웨이벌리(Waverley)󰡕를 쓴 사람이다라는 진술에서, ... / ..보다 충실하게 표현하여 “X󰡔웨이벌리(Waverley)󰡕를 썼다는 진술이 XC일 때는 사실이고, XC가 아닐 때는 사실이 아닌 그러한 C가 있다. 그리고 그 C가 바로 스코트이다” (480)

이 학설에 의하면 존재(existence)”란 단지 기술(記述)에 관해서만 주장할 수 있을 따름이라는 것이다. 우리는 󰡔웨이벌리(Waverley)󰡕의 저자는 존재한다고 말할 수 있지만, “스코트가 존재한다고 말하는 것은 온당치 못한 문법이며 오히려 구문론에 있어서는 그릇된 것이다. (481) [의미(sense)와 지시체(reference)를 구분 한다.]

우리가 22을 더하면 4임을 믿는 것은 우리가 관할에 의해 한 쌍과 또 다른 한 쌍이 합쳐서 넷이 되었다는 발견에 의해서 얻게 되는 것은 아니다. 이러한 의미에서 수학[산술학]의 지식은 역시 경험인 것은 아니지만 또한 세계에 관한 선험적(a priori)인 지식도 아니다. 사실상 수학의 지식은 단지 언어의 지식에 지나지 않는 것이다. (481)[러셀은 이런 지식이 논리학으로 환원된다고 보았다. 그러나 그렇게 되지 않았다.]

순수 수학과 마찬가지로 물리학도 논리적인 분석 철학을 위해 재료를 제공해 왔다. 특히 상대성 이론과 양자론을 통해서였다. (481-482)

철학과 물리학은 사물이라는 개념을 물리적인 실체라는 개념으로 발전시켰으며, 이 물질적 실체는 극히 작고 변치 않으며 존속되는 입자(particle)들로 이루어져 있다고 생각했다. 그러나 아인슈타인은 이 입자 대신에 사건(event)들을 대치하였다. / 이 사건들은 피차에 간격(interval)”이라는 하나의 관계를 갖는다. 그리고 이 간격은 시간요소(timeelement)와 공간요소로 다양하게 분석할 수 있다. (482)

이상의 모든 것에서 입자들이 아니라 사건들이 물리학의 재료”[une étoffe]가 되어야 한다는 결론이 나온다. 지금까지 하나의 입자로 생각해 온 것은 일련의 사건들로 생각해야 할 것이다. .. / 그런데 일련의 사건이 우리가 자유롭게 택할 수 있는 다른 일련의 사건들 보다 더 실체성을 갖지는 못한다. 그리하여 물질(matter)”이란 세계를 이루고 있는 궁극적인 재료의 부분이 아니라 단지 사건들을 묶음()으로 분류하는 편리한 하나의 방법에 지나지 않는다. (482) [사건을 묶음 또는 다양체로 보는 것은 후기구조주의의 특징 중의 하나이다., 왜 아톰이나 입자가 아니라 다양체로 보아야할 것인가? 최소 단위와 무한 단위를 정한 대상의 이름은 있을 지라도 상응하는 대응의 대상은 없다. 의식의 자료들(données)처럼 질료의 자료들(data), 즉 다발(묶음, 다양체)로부터 출발하지 않을 수 없다. (50WLB)]

양자론(量子論)도 이 결론을 강화시키고 있다. 그러나 양자론의 철학적인 중요성은 물리적인 현상이 불연속적일 수 있음을 인정하는데 있다. .. 흔히 가정해 온 운동의 연속성이란 단지 편견에 지나지 않았던 것 같다. ,, 내가 보기에는 상대성원리보다 더 시간과 공간에 대한 종전의 전통적 학설에서 급속히 떠날 것을 요구할 것 같다. (483)

이와 같이 하여 물리학과 심리학의 양극에서 서로 접근하여 윌리엄 제임스가 의식의 비판에서 암시한 중성적 일원론의 학설을 더욱 가능하게 하였다. (483) [러셀의 심리학에 대한 무관심한 태도이다.]

[지각과 감각을 물리학적으로 풀고자 하는 정신물리학의 방식은 의식의 내재성을 해결하지 못한다고 벩송이 DI에서 설명해 놓았다. 생명(심리)의 영역과 물리(신체)의 영역은 별개 즉 차히에 속한다. (50WLB)]

그러므로 물리학적 세계에 관한 우리의 지식은 오직 추상적이고 수학적인데 불과하다. / 내가 지금 객관적으로 설명한 현대의 분석 경험론(analytical empiricism)은 수학과 결합되어 있고, 강력한 논리적인 수법을 전개하고 있다는 점 등에서 로크, 버클리, 흄의 경험론과 다르다. (484) [물리적 현상을 수학적 법칙 또는 공식으로 바꾸어 설명한다고 해서 물리적 성질을 파악했다고 생각하는 순진한 경험론은 속좁은 이성으로 인간의 의식을 파악했다고 하는 신칸트주의와 다를 바 없다. 절단된(불연속) 단위로 설명할 수 있는 부분보다 덩어리(연속)로서 파악해야 될 부분이 아직도 더 많다는 것은 물질 영역이든 생명 영역이든 마찬가지이다. - 물론 사람들은 인공지능(AI)이 불연속 영역의 해결을 통해, 연속부분의 착각과 오류를 밝힐 것으로 생각하지만, 불연속으로 해결할 수 없는 내재적 연속은 여전히 남아 있고 있을 것이다. (50WLB)]

철학은 그 역사를 통하여 조화가 되지 않는 혼합된 두 가지 부분을 형성해 왔다. 하나는 세계의 성질에 관한 이론이고 다른 하나는 가장 훌륭한 삶의 방법으로서 윤리적 및 정치적 학설이다. 이 두 가지를 충분히 그리고 분명히 분리하지 못하였기 때문에 많은 사고(思考)에 혼란을 일으키는 원인이 되었다. (485) [사고가 사유에도 적용 가능할 것으로 보는 인식론자의 한계이다. 사유는 온사건, 다양체, 질료형이상학처럼 단순한 단위로부터 출발하지만, 그것이 요소 또는 입자들로 절단되었을 것이라고 간주하지 않는다. / 물리와 화학 등의 과학과 도덕과 정치 등의 윤리라는 이분법 이상으로 다양한 과학들과 문화들이 현존하고 또한 생성할 것이다.(50WLB)]

나로서는 .. 도덕적으로 볼 때 진리에 관한 공정한 탐구를 할 수 없은 문제에 대해 전문적인 권한을 행사해 온 철학자들은 일종의 반역죄를 범한 것이다. // 지적으로 ... 철학에 대한 그릇된 도덕적인 배려로 인하여 발전을 놀랄 만큼 가로 막아왔던 것이다. (485-486) [인류의 인식은 시대별로 각 시대의 한계를 드러내고 또한 그 한계를 넘어 가고 있다. 맑스가 말하는 물질적 생산관계가 다르면 의식의 구조도 달라진다. 열역학 제2법칙이나 비유클리드 기하학의 등장, 진화론과 유전법칙의 발견은 인간의 의식의 변화를 초래했다. 1953DNA의 나선구조나 반도체의 등장은 의식의 확장을 가져다 주었다. 21세기에 유전자지도의 그리고 각 부분의 계열의 작동방식에 대한 지식과 이해가 공유화되면 생명계 전체를 바라보는 의식도 달라질 것이다. 즉 지금까지의 생명은 그 꼭지점(첨점)에 인간을 만들려고 한 것이 아니라 생명의 다양성을 만들려고 했다고 주장할 지도 모르고, 그 생명에 대해 무어라고 대상화하지 못하고 또한 논리분석학파에서 말하는 의미 있음도 차원을 달리 할 지도 모른다. - 물론 이런 이야기를 하는 것은 러셀의 1945년도가 아니라 21세기이기 때문일 수 있다. (50WLB)]

논리적으로 분석하는 것을 철학의 주요한 업무로 삼고 있는 철학자[논리분석철학자]들은 이와 같은 모든 것을 부인한다. 그들은 인간 지성이 인류의 가장 심오한 여러 가지 문제에 결론적인 해결을 줄 수 없다는 것을 솔직히 고백하고 있다. (486) [논리분석학파가 장점이 있다고 하더라도 근본적 문제를 아직도 해결할 수 없다는 것도 알고 있다. 겸손해야지..., 게다가 두 번의 전쟁으로 세계는 전혀 다른 모습으로 향한다. 1953년에 유전자 나선구조의 발견, 반도체의 등장, 새로운 구조 없는 구조의 다양체의 시대, 게다가 물질의 변화가 의식의 변화를 이끌어가는 시대가 열린다. 1859년과는 차원이 다른, 단위의 위상이 다른, 차히의 시대를 이끌어 간다는 것이다. 아직도 우주든 생명이든, 이것들에 대해 인간이 아는 것은 매우 적은 부분일 뿐이라는 점이다. (50WLB)]

논쟁을 거듭하는 광신(狂信) 속에서 이를 종합하는 힘의 하나는 과학적인 진리성이다. 내가 말하는 과학적인 진리성이란 인간으로서 가능한 하나의 관찰 개인적이 아니면서 또한 지역적 및 기질적인 편견에서 벗어난 과 추리 위에 우리의 신조의 기초를 두는 습관을 뜻한다. / 철학에 이와 같은 덕()을 도입할 것을 주장하고 철학을 알맹이 있는 것으로 만들 수 있는 강력한 방법을 찾아낸 것이 내가 속해 있는 학파[논리분석학파]의 주요한 장점이다. 이와 같은 철학적인 방법을 실천에 옮길 때에 갖게 되는 사려(思慮) 깊은 진실(veracity)의 습관은 인간 활동의 모든 분야에 적용할 수 있는 것이다. / 그런 습관[신념]이 있는 곳에서 광신(狂信)을 감소시키고 동정[공감]과 상호이해의 힘을 증진시키게 될 것이다. 철학은 그와 같은 독단적인 주장의 일부를 버린다고 해서 삶의 길을 제시하고 격려하기를 그치지 않는다. (487, 마지막 세 문단) [이 습관은 신체적이고 형태 심리학에 연관이 있으며자본 제국의 방식에서 쓰이고 있다. (50WLE)]

= [러셀은 형상형이상학의 광기(파라노이아)를 지적하면서 표면의 표상(재현)을 언어로 다루는 것이 진실성을 지닌 철학으로 간주한다. 그 논리분석도 세계의 통일성(l’unité)을 선전제로 두고서 인간의 인식능력이 그 통일성의 부분들을 차이로서 다룰 수 있다는 것이다. 여기까지는 주지주의자의 논리이다. / 심층의 다양체는 통일성이라기보다 규정할 수 없는 온단위(l’Unité)이며, 이로부터 다양한 계열들을 다루는 것은 과학들의 차히 수학들, 물리학, 화학, 생물학, 심리학, 사회학, 인류학 등의 차히 가 생겨난다. 그 각각의 계열이 다른 계열에게 진리의 기준이 되는 것도 원본과 같은 모범이 되는 것도 아니다. 이 차히의 생성은 각 인격성이 다르듯이 세상에서는 문화가 다르다. 이 문화를 관습과 습관(신념)으로 간주한다면, 논리분석철학 또한 여러 계열 중의 한 계열의 신념에 지나지 않는다는 점이다. 각 계열이 어떤 삶의 위상에서 어떤 지위를 갖는지는 시대 발전과 인식(인지)의 확장의 양식에 따라 달리 전개되고 있다. 이런 발전(진화) 또는 확장(분화)의 양태가 어떠한 결과에 이를 지는 아직은 아무도 모른다. 즉 수학에서 무한의 다양성, 물리학에서 미시물리학과 거시물리학의 차히, 화학에서 요소 결합인지 전기 방식인지, 생물학에서 진화가 공생인지 군집인지 볼복스 인지, 박테리아처럼 계인지도 모르고 있다. 아직 인간의 인지능력은 발전과정에 있고, 진위를 판별하는 능력은 그중의 작은 부분이라고 자각하는 겸손과 새로운 발견과 발명에 대한 끊임없는 노력이 필요하다. (50WLB)]

(7:5, 50WLB) (7:15, 50WLE)

 

*** 이발사 파라독스: 지시론의 함정

* 제논의 파라독스(Le paradoxe d'Achille et de la tortue, formulé par Zénon d'Élée): 그리스 철학자 제노에 따르면 거북이가 경주 시작할 때 약간만 아킬레스보다 앞선 위치에서 출발한다면 아킬레스는 절대 거북이를 이길 수 없다. [파라독스라기보다 귀류법이다, 불교에서 무()자 화두, 또는 있는 것도 아니고 없는 것도 아니라는 논법과 닮았다. 선결문제 미해결의 오류이며, 순환논증(cercle vicieu)의 오류이기도 하다]

* 이발사 파라독스(Le paradoxe du barbier) est une illustration à but didactique du paradoxe de Russell, attribuée à Bertrand Russell lui-même.

* 거짓말장이 파라독스(Le paradoxe du menteur est un paradoxe dérivé du paradoxe du Crétois (ou paradoxe d'Épiménide). Ce paradoxe aurait été inventé par Eubulide, un adversaire d'Aristote.



첨부파일 책1945러셀17서양철최IV31.hwp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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