권능의 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Conclusion sur la volonté de puissance et l’éternel retour, 1964년 발표) 화요몽 수도원에서.
du 4 au 6 juillet, 1964 dans l’Abbaye de Royaumont,
“Conclusion sur la volonté de puissance et l’éternel retour” Cahiers de Royaumont, n.VI: Nietzsche, Paris, Minuit, 1967. pp. 275-287.
in L’Ile déserte et autres textes (1953-1974), édition préparée par David Lapoujade, 2002, chap. 15, pp. 163-177. 재수록
in 들뢰즈가 만든 철학사(박정태, 이학사, 2007) pp.218-245.(P. 606)
권능의 의지와 영원회귀의 문제를 힌두교와 불교 사이의 연관들로 보면 어떨까? 달마가 동쪽으로 간 것은 새로운 깨달음이나 깨달음을 전파하러 간 것이라기보다 힌두교의 과거관례에 대한 보수(힌두이즘)의 보존의 논리와 전파에서 불교가 밀려난 장면이라 한다. 그 불교가 밀려난 것은 상좌부가 아니라 대중부를 강조했기 때문이란다. 나가르주나의 대중부의 전승이 구마라습에 의해 중국에 어느 정도 심어져 있었다. 그래서 달마가 그리로 간 것이다. 그런데 먹물들이 또아리를 틀고 있었다. 그래서 달마 이래 6조선사, 까막눈 혜능이 다시 대중부의 의미를 되살리는 것이다. (52RMJ)
첫 부분, 니체에게서 문제거리가 되는 감추어져 있거나 오해하고 있는 부분들에 대해, 출판상, 병리상 더하여 심리학상, 방법론상 혼란과 혼동을 가려내야 한다. 둘째 부분, 니체의 깊이(심층) 속에서 구출해야 할 것이 가치에 관한 것이다. 가치전환의 깊은 심급으로서 권능을 주시해야 할 것이다. 심금의 힘은 권능이다. 셋째 부분에서는 긍정과 부정에 관한 논의가 있다. 넷째부분에서 예!라는 깊은 긍정으로서 영원회귀가 심층권능의 차원에서 우러나오는 것이며, 그 차원은 n 차원(다양체)이다. 다섯째 부분에서는 예술가들 또는 사상가들과의 연관들이다. 푸꼬가 네체를 프로이트와 맑스에, 슐레제는 니체를 도스토에프스키에, 가에드는 니체를 프랑스 문학에, 라이헤르트는 니체를 독일 문학과 헤르만 헤세에, 글릭은 니체를 예술과 시에 만나게 했다.
이중에서 우리가 우선 권능에 관해서 주목하는 것은 들뢰즈가 니체에 의해 출판된 작품이 아닌 권능의 의지를 잘 설명했다는 점이다. 권능은 스피노자의 자연처럼, 벩송의 기억처럼 개별의 것이 아니라 생명전체 또는 온영혼이라고 읽으면 흥미있을 것이다. 이것을 플라톤에서는 아페이론이며 움직이는 것으로서 개념을 붙이면 플라노메네 아이티아이다. 들뢰즈과 차이와 반복에서 왕관을 쓴 괴물(폭군)처럼 이유한 것은 루소의 정열이 독일 낭만주의에서 질풍 노도와 같은 정념과 같이 쓰이는 것과 닮았다. 이 내재성의 등장은 프랑스 혁명에서 역사상으로 인민에 의해 처음 등장하였고, 우리나라에서는 긴 촛불시위에서 그 모습을 드러냈다 프랑스 혁명은 국가 권력과 종교권력을 제거하면서 혁명을 수행했는데도, 4년 후에 반혁명의 반동은 거세었다. 이에 굴하지 않은 인민은 약간 소외자처럼 지내는 것이 병리적이다. 우리나라는 행정수반을 퇴위시키는 것으로 마무리 되면서, 곳곳에 반혁명 반동들이 숨어있었다. 그런데 이들은 일본의 경제적 압력과 무역 폭거를 시행할 때, 그 모습을 드러냈다. 반동은 촛불을 빨갱이로 몰수도 없고, 게다가 숭일파 또는 종일파로 몰 수 없는 지경이다. 그들이 부일파의 잔재이기 때문이다. 인민들 사이에 친일은 문제거리가 아니다. 일본제품 불매 운동에서 친일이든 지일이든 인민들 사이에는 오가는 것이 무엇이 문제이겠는가? 부일자들이 인민을 개돼지 취급하고 빨갱이 몰듯이 극일파로 몰아야 되는데, 극일 지일 친일에 대비는 부일 숭일 종일이라는 점이다. 부정이나 부정의 부정으로 이기려고 했던 파랭이의 논리가 자기 불합리 또는 자가 당착에 빠지게 되었다. 지금까지 적대적 대상을 설정하고 인민을 적대적 대상과 동일시 할 수 있는 대상이, 인민에게는 없다는 점이다. 숭일에 젖은 몇몇 학자들이 지일하고 있다고 환상에 빠져 배달의 역사를 비판하겠다고 하는 것을 보면, 이들 부일파의 잔재인 이영훈(1951-)의 학술은 자신은 우월한자로 느끼는지 알 수 없지만, 니체식으로 보면 무거운 짐을 지고 나르는 당나귀와 같다고 하지 않겠는가. 웃음거리일 뿐이다. (52RMI)
서지(書誌) 상으로 보면, 들뢰즈는 니체 전반에 대한 이해를 쓴 연구서로서 니체와 철학(Nietzsche et la philosophie, 1962)을 썼다. 그리고 그는 연구의 귀결로서 아드리아네와 니체의 관계를 주목했을 것이다. 그는 「아리아드네의 불가사의(Mystère Ariane, 1963)」을 프랑스 니체 연구 회보에 발표했다. 그리고 니체의 마지막 저술로서 시집인 디오니소스 찬가이지만, 그 깊이에 흐름은 권능이며 권능의 발현을 쪽지로 모아 놓은 것이 권능의 의지라는 것을 눈치 채게 한 것은 이탈리아 연구가들, 콜리(Giorgio Colli, 1917-1979)와 몬티나리(Mazzino Montinari, 1928–1986)이다. 이 둘에 대한 평가는 화요몽 수도원(l’Abbaye de Royaumont)의 학회에서 발표자들의 내용을 종합한 「권능의 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Conclusion sur la volonté de puissance et l’éternel retour, 1964년 발표)」에서 높이 평가하고 또한 개론서로서 니체(Nietzsche, 1965)에서도 언급하였다. 아마도 이쯤에서 니체에 관한 내용이 정리되었을 것이다. ,
니체는 니체를 통하여 영역의 확장시키는 작업이 필요했을 것이다. 우선 신체와 언어에서 클로소프스키를 주목했을 것이다. 「클로소프스키 또는 언어-신체들(Klossowski ou les corps-lanage 1965)」, 그리고 니체의 내면 또는 권능이 수평적이고 평등이라는 점에서 유목적이라는 점을 적용한 것이 「유목적 사유(Pensée Nomade, 1972)」일 것이다. 그리고 더 나아가 니체에서 존재론적이고 형이상학적인 안티크리스트적 사유를 국가적이고 사회적인 것으로 옮겨갈 수 있는 것은 안티외디푸스일 것이다. 유목적 또는 반제국적 사유로 넘어가는 과정에는 1969년에 만난 카타리의 힘이 컷을 것이다. 그런데 우리가 잘 알지 못하는 것 중에 하나가 영국 문학과 접목인데, 그 접목에는 그의 부인이 있다는 점이다. 그 부인은 로렌스 전문가이다. (52RMJ)
# 권능의 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Conclusion sur la volonté de puissance et l’éternel retour, 1964년 발표) ***내용
[첫째주제: 니체에게서 감춰진 것이 많은 이유]
이번 논문 발표 및 토론회를 통해 우리가 우선적으로 알게 된 것은 니체의 너무나도 많은 것이 숨겨지고 가려져왔다는 사실이다. 그렇게 된 이유에는 여러 가지가 있다. / 먼저 출판상의 이유들을 지적할 수가 있다. ... 사실 그녀의 중요한 잘못은 텍스트의 날조에 있지 않다. 그보다는 오히려 니체에 관한 현존하는 출판물들은 잘 못된 독해 내재 변경, 특히 그의 막대한 유고 노트들에 가해진 자의적인 뜯어 맞춤이라는 해악에 시달리고 있다. 기러한 해악 중 유명한 예가 바로 권능의 의지(La volonté de puissance)이다. (163, 218-219)
콜리(Giorgio Colli, 1917-1979)와 몬티나리(Mazzino Montinari, 1928–1986)의 기획은 그만큼 우리에게 중요한 의미를 지닌다. 따라서 1872년의 사유와 1884년의 또 다른 사유와 연속이 끝날 것이다. (163, 220)
하지만 니체의 많은 것이 숨겨지게 된 것은 병리적인(pathologiques) 이유들 때문이기도 하다. .. 이와 관련하여 영원회귀와 권능의 의지라는 두 근본 개념이 니체 자신에 의해서는 거의 소개된 바 없다는 점이다. (163-164, 220)
이점에 있어서 니체의 노트들은 우리로 하여금 그가 도대체 어떤 방식으로 미래의 발표를 조직하였을까에 대해 예측하는 것을 허용하지 않는다. 이렇게 볼 때 니체의 작품은 니체 자신이 보기에 본질적인 것을 적을 수 있기 전에 병에 의해서 갑작스레 중단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164, 221)
또 우리는 1888년과 1889년의 광기 어린 편지들을 한편으로는 그의 작품의 일부를 이루는 것으로 보지만, 또 다른 한편으로는 오히려 그의 작품을 가로막으며 중단시키는 것들로 보기도 한다(이 편지들 중에서 그가 부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에게 쓴 편지는 잊을 수 없는 것으로 남아있다). (164, 221)
클로소프스키(Klossowski, 1905–2001)는 신의 죽음 또는 죽은 신이 자아(Moi)로부터 자아의 동일성과 관련하여 지니는 유일한 보증을, 말하자면 통일 이루는 자아의 실재적 기반을 빼앗아버린다고 말하였다. (164, 221)
이미(발Wahl, 1888-1974)은 니체의 다원주의(le pluralisme)를 형성하는 것들에 대하여 일람표를 만들었던 것이다. 왜냐하면 니체는 자신을 대상으로 니체 자신이 직접 실시한 니체의 모든 심리학(psychologie)은 일종의 가면의 심리학, 가면의 유형학에 해당하며, 따라서 여기에서는 각각의 가면 뒤에 언제나 또 다른 가면이 존재하기 때문이다. (164, 222)
그러나 니체와 그의 작품 속에 그토록 숨겨진 것이 많게 된 가장 일반적인 이유는 방법론적인 이유이다. .. 이러한 사실을 푸꼬는 다음과 같이 보여준다. 니체는 새로운 개념과 새로운 해석 방법을 발명한다. 즉 우선은 기호들(signes)이 분배되는 공간을 바꿔버리면서, 그리고 이전의 깊이가 이제는 더 이상 아무 것도 아닌 것으로 드러나게 되는 그런 새로운 “깊이”(profondeur 심층)를 발견하면서, ... (165, 222)
그리고 해석은 이제 기준으로서 참된 것과 거짓된 것을 소유하기를 멈춘다. .. 말하자면 논리학이 위상학과 유형학으로 대체되는 것이다. .. 또 그런 이유로 해석은 “누구?”라는 질문을 제기하기 위하여 “무엇”(qu’est ce que?)이라는 질문은 포기한다. (165, 223) [감추어진 것을 관념론자들은 너울을 벗기면 된다고 하는데, 자연론자는 깊이 파고 들어가 기억(진화)의 과정을 더듬어보아야 한다. 그래서 시간이 필요하다.]
[둘째주제: 누가?, 심층심급으로서 가치개념으로서 권능이 존재론인가?]
[벩송은 권능의 개념을 존재론적으로 보는 측면이라면, 니체는 권능의 개념을 윤리적으로 보았다. 이는 스피노자와 비슷하지만 다르다. 스피노자는 인간의 영혼의 자연성으로부터 출발하여 온영혼의 권능을 지닌 각자의 영혼의 권능의 발현을 사유했다면, 니체는 종교와 사회에서 권능이 발현되지 못하여 허무주의에 빠진대 대해, 허무주의의 극복으로 권능의 자기 발현을 사회에서 그리고 역사에서 이루어지게 하는 전망을 제시한다. 그 전망이 다음 인간에서 이며, 부정으로 여기거나 단순한 반작용이 아닌 권능의 실현을 노래한다.]
이것이 바로 우리로 하여금 어떻게 보면 진리를 “물리치도록(juguler)”해주며, 참된 것 또는 거짓된 것의 배후에서 그보다 훨씬 더 깊은 심급(une instance)을 발견하도록 해주는 니체적 가치의 개념이다[가치전환]. .. 새로운 존재론을 여는가? .. 이번 논문 발표 및 토론회의 둘째 주제였다. ... 가면을 씌울 그 어떤 것도 없는 최종심금에는 도대체 무엇이 있는가? 권능의 의지를 제외하면 하무 것도 없다. (165, 224)
[이 가치전환에 대해서, 혜능의 게송 “거울도 없고, 받침대도 없고, 먼지도 없다”처럼 니체는 기존의 가치는 가치가 아니다. 새로운 가치의 전환 창조는 권능의 의지에 의해서 이다. 이번 학회에서 이런 논의에는 보프레(Jean Beaufret, 1907-1982), 바티모(Gianteresio Vattimo, 1936-), 비로(Henri Birault, 1918-1990) 등이다.]
권능의지(la volonté de puissance)를 권능을 원하는(vouloir la puissance) 것으로 해석할 경우, 실제로 우리는 이러한 해석이 갖는 두 가지 불편함을 보게 된다. 하나는 만약 권능의지가 권능을 원한다를 의미한다고 한다면, 이 경우 권능의지는 분명 기존의 가치, 명예, 부, 사회적인 능력에 의해 좌우되는 것이 되고 말 것이다. .. 더하여 누가(qui) 이런 방식으로 권능을 원하는가? 누가 지배하기를 욕망하는가? 정확히 말해서 니체가 노예들, 약자들 이라고 부르는 자들이다. 권능을 원한다는 것, 그것은 무능자들이 권능의지로 이루어져 있다는 이미지이다. ... 그것은 가장 낮은 정도이다[이미지에 불과하다]. (166, 226)
가장 높은 정도에서 권능의 의지는 강열하고 또는 강도있는 형식으로 주는(donner) 것이고 창조하는(créer)데 있지, 탐내거나 자기 것으로 하는 데 있지 않다. 그리고 가면이 가장 좋은 주기(le plus beau don)라는 것은 권능의 의지를 가소성있는 힘으로써 즉 예술의 가장 높은 권능으로써 증거한다. 권능은 의지가 원하는 무엇이 아니라, 오히려 무엇이 의지 속에서 원하는 것, 다시 말하면 디오니소스이다. (166-167, 226-227)
[비로든 푸꼬든 운동이 위에서 아래로 이루어진다. 플라톤도. 운동의 근원은 권능이지 상부가 아니다.] 그리고 이때 밑바닥들이 잘 해석된다. 이 바닥들이 파헤쳐지고, 다시 말해 높이에서 오는 운동에 의해 밑바닥들이 관통되어지고 되돌려지고 다시 포착되어질 때 제대로 해석된다. (167, 227) [사실은 거꾸로이다. 밑바닥에서 운동이 올라간다. 에피스테메를 중요시 여기는 자들은 위에서 밑으로(안으로) 파헤쳐진다고 하지만 그들은 그들의 방식만으로 파헤치지 운동자체(다양체)를 모른다. 플라톤의 이데아의 존재론과 달리 다양체가 존재론이다. (52SKB)]
[셋째주제(167, 227): 부정과 긍정의 관계: 부정의 자기발현. 부정을 허무로 여긴 것은 상층의 견해이다. 이 부정은 권능으로서 긍정으로서 활동의 과정에서 우선 위상적이고 다음으로 유형적이다. - 이런 설명은 이미 니체와 철학(Nitezsche et la philosophie, 1962) 제4장에서 잘 다루었다.]
.. 셋째 논의 주제로, 즉 앞의 토론에서 종종 언급되었던 니체에게서 긍정과 부정의 연관에 관한 논의에로 우리를 안내한다. 뢰비트(Löwith, 1897-1973)는 우리의 이번 모임 전체를 특징짓는 그의 훌륭한 발표[「니체 그리고 세계 회복을 위한 그의 시도」]를 통해서 허무주의의 본성을 분석하였으며, 또한 니체에게서 허무주의의 극복이 과연 어떻게 세계의 진정한 회복, 새로운 결연(une nouvelle alliance), 토지(땅)와 신체의 긍정을 불러오는지를 보여주었다. 뢰비트는 니체주의에 대한 그의 해석을 “세계 회복(la récupération du monde)”이라는 관념 속에서 요약했다. (167, 227-228)
마르셀(Gabriel Honoré Marcel, 1889-1973)
게루(Martial Gueroult, 1891-1976)
뢰비트(Karl Löwith [Karl Loewith], 1897-1973)
발은 니체로부터 끄집어내고 새롭게 할 줄 알았던 전망적인 방법(une méthode de perspectives)을 매우 훌륭하게 다루었다. (168, 228)
하나의 예를 들어보자. 짜라투스트라에서 당나귀는 이아, 이아(I-A, IA)하면서 예(Oui)를 말하는 동물임에 틀림없지만, 그의 예는 짜라투스트라의 예가 아니다. (168, 228) [이 긍정은 복종의 긍정이다. 짜라투스트라는 긍정은 부정되었던 것의 긍정이며, 스스로 생성하는 능동적 긍정이다. ]
[일반적으로] 우리는 여기서 니체가 말하는 허무주의의 세 단계, 즉 신과 관련된 허무주의, 인간과 관련된 허무주의, 인간들 중의 마지막 인간과 관련된 허무주의를 보게 된다. (168, 229)
하지만 짜라투스트라가 말하는 예는 이것과 완전히 다르다. .. 이제는 자신의 짐을 더는 짜라투스트라의 기호, 즉 익살광대만이 남는다. 여기서 짜라투스트라이라는 긍정이란 당나귀의 그것과 반대로 가볍게 하는 것, 살아있는 것의 짐을 덜어주는 것, 춤추는 것, 창조하는 것임을 안다. (168-169, 229-230)
왜냐하면, ... 짜라투스트라의 아니오가 [적극적] 공격성의 아니오라면 당나귀의 아니오는 [반응적] 원한의 아니오이기 때문이다. 이렇게 하여 여기에서 우리는 유형학, 더 나아가 위상학의 이론을 재발견하게 된다. (169, 230)
[넷째주제: 영원회귀] (169, 230)
[이 영원회귀는 두 가지가 있다. 저세상으로 가는 영원회귀가 있고, 생명체의 이질반복이 무한정하게 계속되는 것과 같은 영원 회귀가 있다. 순간과 순환이며, 이데아와 이질반복과 같다. 불교가 불이(不二)라고 하는 것은 현재와 저세상(죽음후)이 불이(不二)가 아니라, 어제와 이제가 불이(不二)라는 것이다. 전자의 논의는 분석적이고 주지주의적인데 비해, 후자의 지속은 생명의 과정이라는 점이다.]
[들뢰즈에 따르면 영원회귀들이 즉 (질적, 외연적) 반복에 대한 (체계있는 것이 아니라고 하더라도) 학설들이 많이 있어왔지만 각 견해는 그 복잡하다고 한다. 박홍규에 따르면, 벩송 이전까지는 우주론(cosmologie)이었다면, 벩송으로부터는 진정한 우주발생론(cosmogoni e)가 나온다고 한다. 인류가 이쯤에서 자연의 자기 생성과 자기 창조를 깨닫게 되는 실증적 시기였다는 것이다. - 나로서는 생명의 지속이 등장하기 이전까지는 불완전하고, 부조리하다. 상상을 넘어서 공상(空想)으로 그리고 망상과 착란으로 넘어간 것까지 말한다면 무수히 많은 견해가 있을 수밖에 없으리라. ]
그러나 디오니소스적인 예(oui)의 근본의미를 영원회귀의 수준에서 밝히는 작업은 오로지 이번 논문 발표 및 토론회의 넷째 논의 주제를 다룸으로써 가능했다. (169, 230)
먼저 고대인들에게 있어서 영원회귀는 .. 영혼이 보여주는 그 어떤 항구적인 것이 아니라는 사리이다. ...이에 따르면 영원획귀는 결코 단일한 방식으로 사유된 것이 아니라 문화화 학파를 따라서 매우 다양한 방식으로 받아들여졌으며, 또 어쩌면 회귀라는 것 또한 그 자체가 전체적이거나 영원한 것이 아니라 차라리 공통으로 헤아릴 수 없는 수많은 부분적인 순환들로 구성되어 있었다. (169-170, 231)
그런데 니체의 사유는 이 두 해석 중 어느 것에도 상응하지 않는다. ... 실재로 니체는 그가 영원회귀라고 부르는 것이 우리를 지금까지는 전혀 탐구되지 않은 차원 속으로 인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다. 즉 외연적 양이나 장소적 운동도 아니고 물리학적 질도 아닌, 순수 강도의 영역으로 우리를 인도한다는 사실을 잘 알고 있었던 것이다. (170, 232) [싯달다가 열반(니르바나)에 드는 것은 저세상으로 가서 그만두는 것이 아니라, 삶의 과정을 끝내고 실재성으로 돌아가는 것이다. 번뇌의 소멸이 아니다. 실재성(열반) 속에는 번뇌라는 것도 없고, 불성이라는 것도 업다. 열반이 영원회귀이다. 되돌아 올 것도(부활도) 없고 다시 태어날 것도(윤회도) 없으며, 영원회귀의 자기 발생과 자기 창조가 있을 뿐이다. 니체는 나가르주나의 중관을 알았을까? 니체의 친구이며 인도학 전공자인 파울 도이쎈(Paul Deussen, 1845-1919)에게는 불교에 관한 저술이 없고 베단타를 주로 보았던 것 같다.]
이 같은 순수 강도의 영역과 관련하여 이미 드 슐레제(de Schlözer 1881–1969)는 [다음과 같은] 매우 중요한 지적을 해왔다: 한번과 백번 또는 천 번 사이에는 할당할 차이가 있지만, 한번과 무한 번 사이에는 그렇지 않다. 이것이 지적하는 것은 무한이란 1의 n승(제곱)과 같은 것이고 또는 1에 해당하는 전개된 강도와 같은 것이다. 보프레(Beaufret, 1907-1982)도 [비슷한 생각으로 문제제기 했다.] (170, 233)
왜냐하면 권능의 의지는 ‘권능을 원하다’고 말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사람들이 뭘 원하든지 사람들이 원하는 것을 마지막 권능에까지 또는 n번째(énième) 승에 까지 끌어올리는 것이기 때문이다. 간단히 말해서 있는 모든 것으로부터 상위 형식(la forme supérieure)(강도성의 형식)을 분간해 내는 것이다. (171, 234) [다양체가 실현되는데까지 끌어올리는 것이다. 인민 각자가 부타가 되는 길로 끌어올리는 것이다. - 니체가 물리 과학과 에너지론에 관심을 가졌다는 것에 사람들은 가끔 놀란다고 한다. 우리로서는 그 시대에 그가 열역학 제2법칙(엔트로피)에 관심이 있었으리라고 본다.]
콜로소프스키가 그의 글에서 권능의 의지 속에서 일어나는 강도있는 변동의 세계를 우리에게 제시했던 것도 바로 이런 의미에서이다. (171, 235)
간단히 말하자면 영원회귀의 세계는 강도로 이루어진 세계, 차이들[차이]의 세계로서, 그것은 일자나 동일자를 가정하는 세계가 아니라, 반대로 동일한 자아의 폐허들 위에서, 유일신의 무덤 위에서 건설되는 세계인 것이다. 영원회귀 그 자체는 영원회귀로 “되돌아오면서(revenant)”만이 갖는 세계의 유일한 통일성[제일성]이며, [질적] 반복에 의해서만 “동일하게”(de “même”) 갖는[있는] 세계의 유일한 동일성[정체성]이다. (171, 235) [콜로소프스키의 영원회귀의 해석은 좀 불편하다. 온영혼에다 비추어서 해석하면 유리할 것이다. 온영혼이 다 알려진 것은 아니지만 언어(단어) 상으로 통일성이고, 또한 주체적(자기생성적)이란 의미에서도 언어(어휘) 상으로 정체성이리라.]
니체 자신에 의해 출판된 텍스트들 속에서 영원회귀는 결코 형식적인 또는 “정의(定義)상” 어떤 진술(exposé)의 대상이 아니다. 영원회귀는 단지 두려움 또는 도취감과 더불어 예고되고 예측될 뿐이다. .. 「비전과 수수께끼」에서도 ... 「회복기의 환자」에서도 ... (171-172, 236-237) [니체가 영원회귀가 해탈 또는 열반(nirvana)의 경지라고 생각했을까?]
우리는 니체가 그의 출판된 저술들에서 단지 영원회귀를 밝히기 위한 준비만을 하였을 뿐, 그것을 밝히지 않았으며 또 그것을 밝히기 위한 시간이 그에게는 없었다고 간주할 권리가 있다. 모든 전후의 사정이 말해 주듯이 1888년의 발작 직전에 그가 계획했던 작품 역시 영원회귀를 밝히는 방향과는 아주 멀리 떨어져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미 한편으로는 짜라투스트라의 텍스트들이, 그리고 다른 한편으로는 1881년[여명]에서 1882년[즐거운 지식]에 걸친 그의 노트들이 최소한 니체에 따를 경우 영원회귀가 무엇인지는 말해주고 있다. 영원회귀는 순환이 아니다. (172, 237) - [니르바나(Nirvana 열반 涅槃)을 쇼펜하우어는 그것을 “소멸”이라 설명하였다고 러셀이 “서양철학사”에서 말했는데, 니체는 쇼펜하우어 개념을 알았을 것 아닌가? 그런데 니르바나 개념을 소멸이 아니라 영원회귀로 보았던 것이 니체가 아닐까? - 그리고 나서야 열반의 경지에서는 경구가 아니라 시를 쓸 수 밖에(선승의 게송처럼), 달관한 사람으로서 니체에게는 마야(maya)의 막이 걷혔을 것이다(그리스어로 알레테이아ἀλήθεια). 그래서 디오니소스 찬가를 쓰지 않았을까? (52SKB)]
짜라투스트라를 병들게 했던 것은 영원회귀가 궁극적으로는 순환과 연계되어 있다는 관념이었다. .. 만일 짜라투스트라가 회복[치유]한다면, 그것은 그가 영원회귀란 이런 것이 아님을 이해하기 때문이다. 그는 마침내 영원회귀 속에서 동등하지 않는 것(l’inégal, 비동등)과 선별(la sélection)을 이해하기에 이른다. (173, 239)
사실상 영원회귀의 진정한 이유는 비동등, 즉 차이(같잖은)이다. “이것(cela)”이 되돌아오는 것은 그 어떤 것도 비동등이며 그 어떤 것도 동일자가 아니기(같지 않기) 때문이다. 달리 말하면 영원회귀는 오로지 생성을 통해서만, 오로지 다수를 통해서만 이야기된다. .. 따라서 온재로(Etre)로서 영원회귀의 기능은 결코 동일시하는(identifier, 신분증명하는, 정체화하는) 것이 아니라, 공증하는(authentifier, 진지하는, 솔직하는, 그대로 드러내는) 것이다. (173, 239)
이런 의미[기호]작용은 이중적인 것 같다. 영원회귀는 우선 사유에서 선별적이다. (172, 239)
왜냐하면 영원회귀는 언제나 상위 형식들을 창조하는(créer) 것이기 때문이다. 이런 의미에서 영원회귀가 곧 권능의 의지의 도구요 표현인 것이다. 영원회귀는 [인민들] 각각의 사물을 각각의 최상의 형식에로 다시 말하면 n승(énième)으로 올려놓는다[고양한다]. (174, 241)
이러한 창조적 선별[창조적 진화]은 영원회귀의 사유 속에서만 이루어지는 것이 아니다. 이 선별은 존재[영혼] 속에서도 이루어진다. 존재[영혼]는 선별적[선택적]이고, 존재는 선택이다. (174, 241) [벩송이 니체를 읽은 것은 아니지만, 인민편에서 심층편에서 읽으면 닮은 점이 많다. 니체가 심리학을 좀더 했더라면 벩송처럼 말했을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니체는 1890년에는 더 이상 글 쓸 수 있는 상태가 아니었다. 벩송의 “물질과 기억”이 1896년에 나온다.]
결국 영원회귀가 생산하는 것, 영원회귀가 권능의 의지에 상응하는 것으로써 되돌아오는 것, 그것은 다음인간(Surhomme), “현재 있는 모든 것의 상위의 형식”에 의해 정의된 다음인간이다. 이 다음인간은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에 따르면 시인에 닮았다. “인류와 심지어 동물들조차도 책임진” 시인, 모든 것에서 상위의 형식과 극단적 권능만을 소유하는 시인과 닮았다. (174-175, 242)
[다섯째 주제: 니체가 예술가들과 사상가들과의 만남] (175, 242)
따라서 비로가 그의 글에서 니체에 따르면, 극단적인(extrêmes) 형식들과 중간의(moyennes) 형식들 사이에 일종의 본성상 차이가 있다고 상기시킨 것은 옳았다. (175, 242) [중간의 형식이란 단어에서 나가르주나의 중론을 내가 떠올렸구나.]
“통용되는 가치들을 속성으로 만드는 것”과 “새로운 가치들을 창조하는 것” 사이에는 본성의 차이가 있다. 이 본성의 차이가 영원회귀의 차이 자체이며, 영원회귀의 본질(l’essence)을 구성하는 차이이다. (175, 242-243)
오로지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만이 역사를 넘어선(trans-historique) 가치들이며, 상부-역사적(supra-historique) 가치들이며, 이러한 새로운 가치들 만이 천재적 혼돈을 증거하고 또 그 어떤 질서로도 영원회귀에 환원이 불가능한 창조적 무질서를 증거한다. (175, 243) [하늘의 그 많은 번개도 동일한 것이 없다고 한 들뢰즈의 표면이 적절하다. 번개들이 많은 만큼이아 창조적 혼돈이다. - 그러나 그 창조적 일회성은 지구 역사 45억년을 지속하고 있고 35년 생명역사에서 이질적 반복을 하고 있다.]
.. 역사 상부적인 바탕 또는 혼돈스런 깊이의 차원에서 과연 어떻게 예술가들이나 사상가들이 서로 만날 수 있는지, .. 이번 논문 발표 및 토론회의 다섯째 논의 주제였다. (176, 244)
푸꼬가 .. 니체를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와 맑스(Karl Marx, 1818-1883)에 대조 ... , 슐레제는 니체를 도스토에프스키(Dostoïevski, 1821-1881)에, 가에드는 니체를 프랑스 문학에, 라이헤르트는 니체를 독일 문학과 헤르만 헤세(Hermann Hesse, 1877-1962)에, 글릭(Danko Grlić, 1923–1984)은 니체를 예술 그리고 시에 만나게 했다. (176, 244)
골드백(Fred Goldbeck, 1902-1981) 덕분에 그리고 [니체가 작곡한] “만프레드((Manfred-Meditation, 1872)” 악보를 연주한 드 사르랑 양(Mlle de Sabran, s.d) 덕분에 .. 음악가로서 니체의 일면을 보았다. .. 사실 우리는 얼마나 많은 니체의 경구가 그것이 마치 연극 연출가의 원칙이나 평가인 것처럼 이해되어야 하는지 모른다. (176, 245)
니체는 바그너(Wagner, 1813-1883)식의 연극에 대한 조롱을 계획하면서 비제(Bizet, 1838-1875)의 음악으로 공연 주인 짜라투스트라를 꿈꾼다. 그 자체가 이미 잔인함 연극이자, 권능의지와 영겁회귀의 연극인, “그 자신의” 철학적 연극을 위하여 가면처럼 연극의 음악을 니체는 꿈꾼다. (177, 245)
(9:12, 52SKB) (9:25, 52SL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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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00 조로아스트르(Zoroastre, Zarathushtra ou Zarathoustra (en persan : زرتشت ; en avestique : Zaraϑuštra ; en grec: Ζωροάστρης, en kurde Zerdest, 기원전 11세기) 이란 북부 Ray 태생. Il est un « prophète », fondateur du zoroastrisme.
544 헤라클레이토스(Héraclite, Ἠράκλειτος, 기원전 544-480) 이오니아 에페소스 출신, 불(le feu), 투쟁의 변증법. fr.Wiki, 전544경/541 Éphèse –전480경 Éphèse.
O
1813 바그너(Richard Wagner, 1813-1883) 독일의 피아노 연주자 겸 작곡가이자 지휘자,
1818 맑스(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사회학자, 혁명가.
1818 야코프 부르크하르트(Jacob Burckhardt, 1818-1897) 스위스 역사학자. 예술사학자. 니체에게 중요한 영향을 끼친 스승이다.
1821 도스토에프스키(Fiodor1 Mikhaïlovitch Dostoïevski, 1821-1881) 러시아 작가.
1838 비제(Alexandre-César-Léopold Bizet, Georges Bizet, 1838-1875) 프랑스 작곡가. “카르멘(Carmen)”작곡. ,
1844 니체(Friedrich Wilhelm Nietzsche, 1844-1900) 독일 문헌학자. 철학자, 시인, 피아니스트, 작곡가. .
1854 랭보(Arthur Rimbaud, 1854-1891) 프랑스 시인.
1856 프로이트(Sigmund Freud, 1856-1939) 오스트리아 신경학자, 정신분석학 창설자.
1877 헤세(Hermann Hesse, 1877-1962) 독일 소설가, 시인, 화가, 수필가. 1946 괴테상, 1946년 노벨 문학상.
1881 슐뢰쩌(Boris Fyodorovich Schlözer (Schloezer) 1881–1969), 러시아 출신 프랑스 작가, 음악학자, 번역자 « Nietzsche et Dostoïevski »
1888 발(Jean André Wahl, 1888-1974) ENS, 1910교수자격시험 1등, 유대인, 프랑스 철학자, 소르본 교수. Le Malheur de la conscience dans la philosophie de Hegel, 1929.
1889 마르셀(Gabriel Honoré Marcel, 1889-1973) 프랑스 철학자, 극작가, 문학비평가, 음악가, 크리스트교 실존주의.
1891 마르샬 게루(Martial Gueroult, 1891-1976년 8월 13일) 프랑스의 철학자, 철학사가, 데카르트,말브랑쉬, 버클리 스피노자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는 철학에서 초월론을 거부하였다.
1897 뢰비트(Karl Löwith [Karl Loewith], 1897-1973) 독일 철학자. 니체 전문가, 철학사가. Nietzsches Philosophie der ewigen Wiederkehr des Gleichen, Berlin, Die Runde, 1935.
1902 골드백(Fred Goldbeck, 1902-1981) 네델란드 출신 프랑스 음악학 학자, 오케스트라 지휘자.
1905 클로소프스키(Pierre Klossowski, 1905–2001) 파리 태생. 프랑스 소설가, 수필가, 철학자, 번역가, 시나리오작가, 화가. 먼 가계 상으로 폴란드 출신이다. Gai Savoir(1954 번역), 니체와 순환논증의 오류(Nietzsche et le Cercle vicieux, 1969)(Mercure de France, 1969) 이 작품을 푸꼬가 찬사를 보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니체(, Nietzsche)(번역 1971). 비리길리우스(Virgile)의 L'Énéide,(번, 1964)
1907 보프레(Jean Beaufret, 1907-1982) 프랑스 철학자. 독일 철학전공. 하이데거 작업을 프랑스로 유입. .
1917 콜리(Giorgio Colli, 1917-1979) 이탈리아 철학자, 헬레니스트, 30년 동안 피사 대학 고대철학사를 가르쳤다.
1917 라이헤르트(Herbert William Reichert, 1917-1978.), The impact of Nietzsche on Hermann Hesse. 1972. [Hesse, Hermann, 1877-1962]
1918 비로(Henri Birault, 1918-1990) ENS, 프랑스 철학자. 칸트, 니체, 하이데거 전문가.「헤겔의 존재론적이고 신학적인 논리학과 변증법(L’Onto-theo-logique hegelienne et la dialectique」, in Tijdschrift vooz philosophie, 1958
1923 글릭(Danko Grlić, 1923–1984) 인문주의 맑스 주의자. 유고슬라비아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쳤다. Friedrich Nietzsche (1981)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 철학자. 내재성의 철학. .
1926 푸꼬(Paul-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사회이론가. 문학비평가.
1928 몬티나리(Mazzino Montinari, 1928–1986) 이탈리아 언어학자, 대학교수, 번역가. 1964년부터 독일에서 매년 게르만 문학 확장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주는 상(Friedrich- Gundolf) 수상 [군도르프(Friedrich Gundolf, 본명 Friedrich Leopold Gundelfinger, 1880-1931) 독일 시인, 문학전문가]]
뮈글러(Charles Mugler, s.d.), Platon et la recherche mathématique de son époque. 1950. Deux thèmes de la cosmologie grecque : Devenir cyclique et pluralité des mondes. Paris, C. Klinck-sieck, 1953. 1 vol. in-8°, 193 pp. / La Physique de Platon. 1962, / Les origines de la science grecque chez Homère. L'homme et l'univers physique. 1965. 원의 사각형화에도 관심을 가졌다. => La quadrature du cercle est un problème classique de mathématiques apparaissant en géométrie. Il fait partie des trois grands problèmes de l'Antiquité, avec la trisection de l'angle et la duplication du cube.
1936 바티모(Gianteresio Vattimo, 1936-) 이탈리아 철학자, 정치가. (1993) The Adventure of Difference: Philosophy after Nietzsche and Heidegger,
?? 가에드(Edouard Gaède, s.d.) / Nietzsche et Valéry: Essai sur la comédie de l'esprit 1962(국가박사학위 논문) 「Nietzsche et la littérature. 1964」
?? 사브랑 (Mlle de Sabran, 프랑스 음악 연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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샹비주 - Jean Chambige (XVIe siècle), architecte français / Léon Chambige (1853-1914), homme politique français / Martin Chambiges (ca1460-1532), architecte français / Pierre Chambiges (mort en 1544), architecte français
바딩게(Badinguet est un surnom satirique donné à l'empereur Napoléon III (son épouse, l'impératrice Eugénie, était surnommée Badinguette). [Charles-Louis-Napoléon Bonaparte1, dit Louis-Napoléon Bonaparte, 1808-1873]
프라도(Prado) 이름을 가진 사람은 많다. 스페인계에도 많다. 지명들도 있다.
The ORTF stereo microphone system, also known as Side-Other-Side, is a microphone technique used to record stereo sound. / It was devised around 1960 at the Office de Radiodiffusion Télévision Française (ORTF) at Radio France
니체의 작품은 모두 가곡이나 피아노곡이지만, 2인 연탄곡 작품 중에는 바이런의 동명 시에서 따온 《맨프레드 명상곡(Manfred-Meditation, 1872)》 교향시 《에르마나리히(Ermanarich, ??)》 등, 오케스트라를 염두에 두고 쓰여졌을 것이라 여겨지는 작품도 있다. / 《만프레드 명상곡》은 한스 폰 뷜로에게 혹평 받았다. / 한스 폰 뷜로(Hans von Bülow, 1830-1894)는 1857년 프란츠 리스트의 딸 코지마와 결혼했지만 1869년에 이혼했고 코지마는 리하르트 바그너의 후처가 됐다.
(11:23, 52SKB) (11:36, 52SLD)
*참조: 화요몽에서 발표자들과 제목들 *******
Avant-propos
Introduction : Résumé de l'allocution de Martial Gueroult
Première partie : L'homme et le monde selon Nietzsche
Henri Birault, « De la béatitude chez Nietzsche » – Discussion
Karl Löwith, « Nietzsche et sa tentative de récupération du monde » (traduction de Arion L. Kelkel) – Discussion
Jean Wahl, « Ordre et désordre dans la pensée de Nietzsche » – Discussion
Gabriel Marcel, « Notre point d'interrogation » – Discussion
Deuxième partie : Confrontations
Giorgio Colli et Mazzino Montinari, « État des textes de Nietzsche » (traduction de Hans Hildenbrand et Alex Lindenberg)
Edouard Gaède, « Nietzsche et la littérature »
Herbert W. Reichert, « Nietzsche et Hermann Hesse, un exemple d'influence »
Boris de Schloezer, « Nietzsche et Dostoïevski »
Danko Grlic, « L'anti-esthéticisme de Nietzsche » (traduction de Frano Gospodnetic)
Michel Foucault, « Nietzsche, Freud, Marx » – Discussion
Troisième partie : Expériences et concepts
Gianni Vattimo, « Nietzsche et la philosophie comme exercice ontologique » – Discussion
Pierre Klossowski, « Oubli et anamnèse dans l'expérience vécue de l'éternel retour du Même » – Discussion [anamnèse: 기왕증(旣往症)]
Jean Beaufret, « Heidegger et Nietzsche – le concept de valeur » – Discussion
Gilles Deleuze, « Conclusions sur la volonté de puissance et l'éternel retour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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머리말: 마르시알 게루
제1부: 니체에 따른 인간과 세계
니체에 있어서 도취에 관하여 (Henri Biraut)
니체 그리고 세계 회복을 위한 그의 시도 (Karl Löwith)
니체 사유에 있어서 질서와 무질서(Jean Wahl)
우리의 의문점 (Gabriel Marcel)
제2부 대조.
니체의 텍스트들의 상태 (G. Colli et M. Montinari)
니체와 문학 (Edouard Gaède) / Nietzsche et la littérature.
영향의 한 예: 니체와 헤르만 헤세(Herbert W. Reichert)
니체와 도스토예프스키 (Boris de Schloezer)
니체와 반탐미주의 (Danko Grlic)
니체, 프로이트, 맑스 (Michel Foucault)
제3부 경험과 개념
니체 그리고 존재론적 실행으로서 철학 (Gianni Vattimo)
동일자와 영원회귀에 대한 실제 경험 속에 나타나는 망각과 기왕증 (Pierre Klossowski)
하이데거와 니체: 가치의 개념(Jean Beaufret)
권력의 의지와 영원회귀에 대한 결론 (Gilles Deleuz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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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81 슐뢰쩌(Boris Fyodorovich Schlözer (Schloezer) 1881–1969), 러시아 출신 프랑스 작가, 음악학자, 번역자
1888 발(Jean André Wahl, 1888-1974) ENS, 1910교수자격시험 1등, 유대인, 프랑스 철학자, 소르본 교수. Le Malheur de la conscience dans la philosophie de Hegel, 1929.
1889 마르셀(Gabriel Honoré Marcel, 1889-1973) 프랑스 철학자, 극작가, 문학비평가, 음악가, 크리스트교 실존주의.
1891 마르샬 게루(Martial Gueroult, 1891-1976년 8월 13일) 프랑스의 철학자, 철학사가, 데카르트,말브랑쉬, 버클리 스피노자에 관한 전문가이다. 그는 철학에서 초월론을 거부하였다.
1897 뢰비트(Karl Löwith [Karl Loewith], 1897-1973) 독일 철학자. 니체 전문가, 철학사가. Nietzsches Philosophie der ewigen Wiederkehr des Gleichen, Berlin, Die Runde, 1935.
1905 클로소프스키(Pierre Klossowski, 1905–2001) 파리 태생. 프랑스 소설가, 수필가, 철학자, 번역가, 시나리오작가, 화가. 먼 가계 상으로 폴란드 출신이다. Gai Savoir(1954 번역), 니체와 순환논증의 오류(Nietzsche et le Cercle vicieux, 1969)(Mercure de France, 1969) 이 작품을 푸꼬가 찬사를 보냈다. 하이데거(Martin Heidegger)의 니체(, Nietzsche)(번역 1971). 비리길리우스(Virgile)의 L'Énéide,(번, 1964)
1907 보프레(Jean Beaufret, 1907-1982) 프랑스 철학자. 독일 철학전공. 하이데거 작업을 프랑스로 유입. .
1917 콜리(Giorgio Colli, 1917-1979) 이탈리아 철학자, 헬레니스트, 30년 동안 피사 대학 고대철학사를 가르쳤다.
1917 라이헤르트(Herbert William Reichert, 1917-1978.), The impact of Nietzsche on Hermann Hesse. 1972. [Hesse, Hermann, 1877-1962]
1918 비로(Henri Birault, 1918-1990) ENS, 프랑스 철학자. 칸트, 니체, 하이데거 전문가.「헤겔의 존재론적이고 신학적인 논리학과 변증법(L’Onto-theo-logique hegelienne et la dialectique」, in Tijdschrift vooz philosophie, 1958
1923 그르릭(Danko Grlić, 1923–1984) 인문주의 맑스 주의자. 유고슬라비아 대학에서 미학을 가르쳤다. Friedrich Nietzsche (1981)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 철학자. 내재성의 철학. .
1926 푸꼬(Paul-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사회이론가. 문학비평가.
1928 몬티나리(Mazzino Montinari, 1928–1986) 이탈리아 언어학자, 대학교수, 번역가. 1964년부터 독일에서 매년 게르만 문학 확장에 기여한 외국인에게 주는 상(Friedrich- Gundolf) 수상 [군도르프(Friedrich Gundolf, 본명 Friedrich Leopold Gundelfinger, 1880-1931) 독일 시인, 문학전문가]]
1936 바티모(Gianteresio Vattimo, 1936-) 이탈리아 철학자, 정치가. (1993) The Adventure of Difference: Philosophy after Nietzsche and Heidegger,
?? 가에드(Edouard Gaède, s.d.) / Nietzsche et Valéry: Essai sur la comédie de l'esprit 1962(국가박사학위 논문) 「Nietzsche et la littérature. 196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