I.1. 어느 엄격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Lettre à un critique sévère)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in Pourparlers 1972-1990, 1990, 11-23(P.250)
-원문, 1973년. 크레솔(Michel Cressole, 1948-1995)의 들루즈(Deleuze, 1973)
* 다시 읽어보니, 들뢰즈가 서방의 일반적 지식인이 갖는 양태에 대한 비판으로 보인다. 일반적으로 서구세계는 동방세계(중동과 페르샤)와 대결 의식이 있다고 한다. 두 가지 점을 잘 생각해야 한다. 하나는 그리스 또는 고대 문명의 기원에서 동방에 대한 서구의 관점이고 다른 하나는 아랍세계의 알라에 대해 그리스토스의 신앙이 근원적으로 뭔가 좀 모자란다는데 대한 성찰이다.
전자의 경우에서 극복은 신석기와 구석기에 그리고 인류의 종에 대한 차원을 연구하면서, 먼저 연구하고 있다는 자부심에서 그리고 고고학적 발굴의 정확성에 보태어 생명 종의 고생물학의 발전으로, 동방세계 뿐만이 아니라 지구상에서 자신들의 지적 상위 지위를 누리고 있다고 자신하는 것으로 보인다. 이것은 서구의 자만심으로 기울 수 있다는 위험도 내포하고 있다. 그럼에도 자연이 세계를 만들고 있고, 지구의 곳곳은 각각의 특이성을 가지고 변역과 진화를 해왔다고 생각한다.
후자의 경우는 인식론(에피스테메, 로고스 중심)에서 서구의 백인이 동방의 색깔 있는 종족과 다르다고 여기며 그 신앙으로 크리스토스를 내세운다. 크리스토스는 메시아도 알라도 아니다. 여기에 문제가 있다. 인식을 로고스 중심으로 과학 법칙들의 발견과 구성으로 설명하는 것은 대상에 대한 것이지, 대상이며 주체 자체이기도 한 인격에 대한 것이 아니다. 자연으로부터 형성중인 인격은 어쩌면 신앙과는 별개의 것, 즉 같지 않은 이야기일 수 있다.
** 들뢰즈는 자신의 저술에 비판적 시각을 갖는 젊은이인 크레솔에게 몇 가지를 이야기 한다. 그중에서 우리는 두 가지만을 강조하자. 젊은이가 철학사 또는 역사를 모른다고 한다. 이상하게도 종교인들(서구에서나 우리나라에서나 마찬가지인데)은 인식론 또는 주지주의 관점 에서는 크리스토스와 그의 신의 역사 이외는 모르는 척하거나 또는 알고자 하지도 않는다. 로고스중심 사고가 위계의 사고이며, 상하의 명령이 과도할 때 폭력의 모습을 띠고, 상층이 표면을 지배하는 식민지 체계와 같은 것이라는 점을 그들이 모른 척 하는 것이 아니라 유용(utile, 공리주의적이다)하다는 이름으로 다른 생각(같잖은 생각)을 배척한다. 그 배척에서 주지주의의 배중율이 들어있고, 악의 축이 자신들의 광기임에도 이것을 감추기 위해 힘없는 자들 악의 축으로 몬다. 이런 사고를 배운 일본이 어떠했으며, 근대화의 우리지식인이 일본에 대해 지금도 부일과 숭일에 빠져 있는 것을 비추어 보면 알 수 있는 것들이다.
크리스토스라는 명칭은 1세기 경에 정립한 개념으로 치자. 그 크리스토스가 위계적이고 명령의 체제이라는 것은 그 쓰여진 글에서도 분명하다. 그런데 이 사고는 그리스의 자연과 휠레의 사유를 배제하고, 상층와 이데아의 원리와 논리가 선도성과 우월성을 차지한 것이라 여긴다. 이런 논리적 동일성의 사고를 크리스토스에 맞추는 것으로만 생각하기에는 부족한 점이 많다는 것을 시대의 변화에서 점점 깨닫게 된다. 상층과 이데아 철학이 르네상스 이래 하늘에서 땅으로 내려와서, 1830년까지 서서히 상위라는 지위가 무너졌다. 게다가 내부로 라는 탐색과 더불어 특이성의 등장으로 개인의 위상이 달라진다. 사회적으로 개인은 체제 안에 있기보다, 서로의 연대가 더 넓다는 것, 생물학에서 생명체들은 생명 서로 간의 연대(동맹)이 더 중요하다는 것을 강조하기에 이르렀다. 19세기에는 상층을 중심으로 하는, 무너져가는 인식론의 사고 위에 크리스토스를 세울 수 없었는데, 상실되어 가는 지위를 다시 세울 수 있는 기회가 온 것이 외디푸스라는 신화와 더불어 정신분석학이 도래이다. 가정은 아버지와 어머니 자식(아들)이라는 삼원 도식으로 사고하고, 그 속에서 활동하는 인격을 체제 안에 묶을 수 있었다.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외디푸스(1972)는 가정의 삼원 도식이, 무너져 버린 삼위일체 도식 이상으로 허구이라는 점을 은연중에 드러낸 것이다. 이런 설명을 받아들일 수 없는 신앙자들은, - 스피노자에서와 벩송에서 반대자들과 마찬가지 – 악의적인 글을 쓴다. 이 젊은 크레솔(Cressole, 1948-1995)도 마찬가지인 것이다. 들뢰즈(Deleuze, 1925-1995)는 자신과 한 세대 차이나는 비평자에게 흥미롭게 대꾸한다. “너는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고의적인데, 심지어는 악의성을 지녔”다고 한다. 크리스토스의 신앙과 천국의 현존을 말하는 독단이 환상을 넘어서 망상이라고 하는데, 신앙자는 자신들의 신앙이 무너짐으로 상대를 악으로 모는 악의성으로 덤벼들 것이다. - 니체가 말하건데, 나는 선하다 너희는 서툴다 인민은 선하다 신앙자들은 사악하다 - 들뢰즈의 마지막 문장이 더 흥미롭다. “난,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아, 그러나 내가 너를 매우 좋아해 – 소란들을 끝내기 위하여.”이다.
이런 표현이 있다. 현자가 ‘신앙자와 토론하는 것은 어리석다’고 한다. 인식론자는 그렇지 않다면서 신앙자와 토론을 해야 한다고 한다. 이때 현자는 인식론자에게 ‘그럼 같이 토론하세요’ 나는 ‘호미로 김을 매겠습니다’라고 한다. (54RKE)
***
들뢰즈/가타리의 안티-외디푸스(1972)에 대한 엄격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
이 글은 미셀 크레솔이 쓴 들루즈(Deleuze, 1973)에 있다.
들뢰즈는 익명의 비평가에게 잘 못된 관점을 가지고 있는 두 가지, 하나는 푸꼬의 칭찬과 들뢰즈의 글이 끼리끼리 꽃을 주고 받으며 서로 찬사를 보내는 짓이라 하고, 다른 하나는 들뢰즈가 손톱을 깍지 않는 것에 대한 비판이다. 그런 비난은 우선 책의 내용을 모르는 것(철학사의 지식이 없어서)과 그것도 안되면 인신공격과 같은 것을 하는 쓰잘데 없는 것이라 한다.
그는 비평가가 모르는 것이 있다고 한다. 그는 헤겔주의와 변증법을 매우 싫어한다. 그 대신 두 가지를 알아야 한다. 너가 철학사를 좀스런 것으로 생각하기 때문이다. 예를 들어 벩송이 왜 대학가에서 증오를 받았는가. 철학사를 몰라서 그렇다. 다른 하 나는 맑스도 프로이트도 아니고 니체를 배워야 한다. 거기에는 자아가 아니라 개체를 말한다. 개체가 이미 다양체이다.
그리고 들뢰즈는 차이와 반복(1969)과 의미의 논리(1969)를 썼다. 이 글들은 코드(규준)에 맞춘 것이 아니라, 들뢰즈 자신 안에서 움직이지만 흐름을 쓴 것이다. 그리고 가타리를 만나서 안티 외디푸스(1972)를 썼다. 당신은 15세-20세의 유형에서 기관없는 신체와 욕망하는 기계를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하나는 내부(dedans)로 되돌아가서 보자는 것이고 상자와 같다. 다른 하나는 외부(dehors)와 연관 없이 이루어질 수 없다. 기존의 방식이 아니면 온갖 도착처럼 보인다. 도착은 수많은 종류가 있다[수많은 종류들은 질병이 아니다, 배제하면서 경계밖으로 몰아내어 악한 것으로 만드는 것이 정신분석학이다]. 같지 않은 것을 꿈꾸기 때문이다.
들뢰즈와 가타리가 하부학파의 부두목처럼 보인다고 비평가가 느끼는 모양인데, 그렇지 않다. 안티외디푸스는 가정과 연관이 없고 인형놀이도 아니다. 동일성의 철학은 성령수태(15)와 같은 것처럼 하는데 비해, “안티외디푸스” 괴물스럽고, 운수적이고, 아자르적이다. 스키조를 다룬다고 해서, 분열증 환자가 아니며, 그리고 그의 견해로는 분열증환자를 보지 못했다고 한다. 새로운 생성은 분열증일지라고 정신분열증환자는 아니다.
비평자에게 너는 아랍인은 아니지만 너는 자칼이다고 한다. 너는 나를 영화의 주인공이 되도록 너가 만들었을 뿐이다. 그런데 우리는(들뢰즈/가타리) 다른 작업을 하고 있다(“천개의 고원”이겠지.). 즉 우리는 정신분열증환자가 분열자로서 새로운 생성을 만들어가고 있다. (54LKH)
탈주라는 개념은 달아나다는 뜻이 더 많다. 그러지 않고 무의식의 흐름에서 용출, 또는 출현에 닮았으면서, 니체와 불교와 더불어 생각한다면 난바다에 해인(海印)과 같은 비유로서 새로운 주사위 던짐과 같은 실재성에서 사건의 형성과정이다. 이 형성체를 들되즈/가타리는 고리(les anneaux), 고원(les plateaux)라 하는데, 난바다에 생긴 결[파 波]와 같은 것이다. 이 결들은 과정 중에 솟아나는 것이지 위에서 개념 또는 관념을 던져서 모방체를 만드는 복사하여 만드는 도장찍기와는 다르다. (54LLC) [도장찍기에 따르는 모방자는 투항자이며, 도장찍기를 사고의 방향으로 믿는 자들과 논의와 분석을 하는 자들은 포로된 자들이 벗어나려는 노력보다 현상에 안주하는 자들이다. (54QMJ)]
목차(Table des matières 249-250).
I. 안티외디푸스에서 천개의 고원으로: De l’Anti-Oedipe à Mille Plateaux 9.
1. 어느 엄격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 Lettre à un critique sévère 11
2. 안티외디푸스에 관한 대담: Entretien sur L’anti-Oedipe (avec Félix Guattari) 24
3. 천개의 고원에 관한 대담: Entretien sur Mille Plateaux39.
# I. 안티외디푸스에서 천개의 고원으로: De l’Anti-Oedipe à Mille Plateaux 9-.
1. 어느 엄격한 비평가에게 보낸 편지: Lettre à un critique sévère 11-23
너는 매력적이고, 지적이며, 고의적인데, 심지어는 악의성을 지녔다, 또한 노력도‥… 왜냐하면 너가 나에게 보낸 편지는, 때로는 누군가말한 것을, 때로는 너가 너 자신이 생각한 것을 떠올리게 하기 때문이다. 그리고 두 가지가 섞여 있는데, 그것은 가정된 나의 불행에 관한 일종의 큰기쁨(jubilation)이다. .. 너의 편지는 속임수로 된 연민과 복수라는 실질적 취향으로 가득 차 있다. (11)
나는 어떤 세대인데, 사람들인 철학사와 더불어 다소 살해했던 마지막 세대 중의 한 세대이다. 그 철학사는 철학에서 분명히 억압적인 기능을 행사했다. 그것은 소위 말하는 철학적 외디푸스이다. (14) [들뢰즈가 부들럽게 말해서 그렇지, 크리스토스(Χρίστος)의 억압과 명령이 철학사를 억압했다.]
(루크레티우스, 흄, 스피노자, 니체 사이에, 나로서는 부정적인 것에 대한 비판, 즐거움의 문화, 내재성의 반감, 힘들 관계들의 외재성, 권력들의 폐기‥…등에 의해 구성된 비밀스런 연결이 있다.) 내가 무엇보다 싫어하는 것, 그것은 헤겔주의와 변증법이었다. 칸트에 관한 나의 책, 그것은 다르며, 나는 그것을 매우 좋아한다. 나는 그 책을 마치 어떤 적을 향한 책으로서 만들었다. 그 적에 대하여 나는 어떻게 그가 기능하며, 그 책의 톱니바퀴가 어떤 것인지를 제시하고자 시도한다. (14-15)
벩송에 관한 나의 책은 나로서는 이런 종류의 표본이다. 오늘날 내가 벩송에 관해 썼다는 것을 비안하면서 조롱하는 사람들이 있다. 그것은 그들이 역사를 충분히 알지 못하고 있다. 그들은 벩송이 초기에 프랑스 대학에서 무엇을 반감으로 집중화할 수 있었는지를 모른다. 다는 것을 모르고, 그리고 벩송이 세속적이든 세속적이지 않던 모든 종류의 광인과 주변인들에게 결집을 어떻게 이용했는지를 모른다. (15)
나는 방랑하는 의미에서 두 권을 책을,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9)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1969)을 만들기 시작했다. 나는 착각하지 않는다. 그것은 아직도 대학 장치로 가득 차 있고, 무겁다. 그러나 내가 구출하고 시도하는, 나에게서 움직이게 하는, 글쓰기를 코드(규약)로서가 아니라 흐름(flux)으로 다루는, 어떤 것이 있다. 그리고 차이와 반복(1969) 속에는 내가 좋아하는 몇몇 쪽이, 예를 들어 피곤(la fatique)에 관한 쪽과 관조(la contemplation)에 관한 쪽이 있다. 왜냐하면 이 쪽들은 겉보기들[현상들] 임에도 불구하고 살아가는 체험(du vecu vivant)들로부터 이기 때문이다. (16)
안티외디푸스(1972)을 가능하게 한 것은 유통되는 현존 때문이다. .. 사람들이 말하듯이 정신분석가들은 “군중들(masses, 일군들)”, 작은 군중들을 고려해야 한다. 우리는 이런 의미에서 아름다운 문학들을, 비평들의 논문들 보다 훨씬 더 아름다운 정신분석학의 룸펜프롤레타이라로부터 온 문학들을 받아들인다. / 이런 읽기방식은 강도성을 지니고 밖과 더불어 연관을 지니며, 흐름에 반대한 흐름, 기계들과 더불어 기계, 실험들, 한 책과 더불어 보아야할 것이 전혀 없는 각각을 위한 사건들, 책을 조각내기, 다른 사물들과 그 어떤 것과도 기능하기‥…등등, 이것은 사랑하는 방식이다. (18)
우리는 다른 사물들을, 보다 은밀하고(clandestines, 몰래하는) 보다 유쾌한(gaies) 것을 꿈꾼다. 타협들로부터 사람들은 더 이상 아무것도 할 수 없다. 왜냐하면 사람들을 그것들로부터 행할 것이 작기 때문이다. 그리고 사람들은 스스로 바라거나, 또는 동맹들(les alliés)이 우리를 바라거나, 항상 동맹들을 발견하게 될 것이다. (19) [지하운동은 여전히 계속되고 유쾌하며, 그리고 연대(동맹)는 즐겁고 유쾌한 것이다. ]
나는 당신들에게 어떠한 것도 빚지지 않고, 당신들도 나에게 빚지지 않는다. 내가 당신들의 게토[영역]들에게 [들어]갈 어떠한 이유도 없다. 왜냐하면 나는 나의 게토들을 가지고 있기 때문이다. 문제는 이런 저런 배타적[독접적]그룹의 본성에 있는 것이 아니라 가로지르기 관계들속에 있다. 거기에서 이런 저런 것(동성애, 약물 등)을 생산하는 결과[효과]들이 여전히 다른 수단들에 의해 생산될 수 있다. (22) [나의 학문의 영역에는 탐험과 탐색과 즐거움, 그리고 새로운 만남과 창안 발명이 있기 때문이다. 즐거움과 환희는 새로운 창안과 발명에서. - 그 생산은 약물이나 동성애들 아니더라도 다른 방식을 통해서 생산할 수 있다는 것이다. 메를로퐁티도 메스칼린(마약)이란 방법을 포기하고 다른 길을 찾으려 했다. (54RKE)]
이것은 세속적 편지이며, 충분히 젠 체하는 편지이다. 너는 나에게 “비출판”을 요구한다. 왜냐하면 너가 나에게 악의성으로 썼기 때문이다. 나의 편지는 너의 편지 때문에 정당화하는 기분이다. 일이 순조롭지 못하다(Ça ne va pas fort.). 너는 아랍인이 아니고 너는 자칼이다. 너는 모든 것을 행한다. 너가 나를 비판한 무엇을, 즉 작은 배우, 주인공, 배우가 내가 되도록 모든 것을 행한다. 난, 나는 너에게 아무것도 묻지 않는다, 그러나 내가 너를 매우 좋아해 – 소란들(les bruits)을 끝내기 위하여. (21) (54R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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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9 루크레티우스(Titus Lucretius Carus, 기원전 99-기원전 55) 고대 로마의 시인, 철학자. 《사물의 본성에 관하여(De rerum natura)》
O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lat. Benedictus de Spinoza, 1632-1677)는 네덜란드 암스테르담에서 태어난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이다.
1711 데이비드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계몽주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인간 본성에 관한 논고 (1739년), 자연종교에 관한 대화 (1779년)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현재로는 폴란드보다 더 동쪽에 있는 쾨니히스베르그 출신의 프러시아 공화국의 철학자이다. 인간의 표상적 인식의 조건을 규정하고, 도덕적 이성의 신에게 종속을 요청하고, 미적으로 신의 작업의 숭고함에 경건하게 기도하는 듯이 긍정한 프로테스탄트 철학을 구성하였다.
1818 Karl Marx, 1818-1883) 독일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학자, 사회학자, 정치이론가, 언론인, 공산주의 혁명가다
1859 베르그송* (Henri Bergson, 1859-1941) 유태인 출신의 프랑스 본성내재주의 철학자. 훗설과 달리 현상보다 강도성의 근원에 대한 탐문을 철학의 주요 관심으로 보았다. 그는 철학의 방식은 (내재적) 체험의 정확성과 문제 제기에 있다고 보았다.
1862 다리앙(Georges Darien, né Georges Hippolyte Adrien, 1862-1921) 아나키스트 경향의 프랑스 작가. 비리비, 군사훈련(Biribi, discipline militaire, 1890),
1875 라이너 마리아 릴케(Rainer Maria Rilke, 1875-1926) 오스트리아 시인, 작가. 20세기 최고의 독일어권 시인 중 한 명이다.
1896 아르토(Antonin Artaud, 1896-1948) 프랑스의 시인, 연출가. Le Théâtre et son double, 1938에서 잔혹극(« théâtre de la cruauté »)의 개념을 발명했다.
1896 피츠제럴드(Francis Scott Key Fitzgerald, 1896-1940) 미국의 소설가, 단편 작가. 《위대한 개츠비(The Great Gatsby, 1925)》/ 단편소설 「파열(The Crack Up, 1936)」과 1945년 에세이 유작집 「붕괴/ 파열(The Crack Up)」와는 다른 것 같다. 1935: 피츠제럴드가 병에 걸려, 휴양을 위해 트라이턴과 애슈빌에 머뭄. '붕괴'라는 에세이집에 실리게 되는 글을 이때 집필.
1905 그레타 가르보(Greta Garbo, 1905-1990) 본명: 그레타 로비사 구스타프손(Greta Lovisa Gustafsson), 스웨덴 태생의 미국의 배우, 영화계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배우들 중의 하나였다.
1925 들뢰즈(Gilles Deleuze, 1925-1995) 프랑스 철학자.
1926 미셸 푸코(Michel Foucault, 1926-1984) 프랑스 철학자.
1926 마릴린 먼로(Marilyn Monroe, 1926-1962) 미국 배우, 모델, 가수. 본명: 노마 진 모터슨(Norma Jeane Mortenson)이다.
1930 펠릭스 가타리(Félix Guattari 1930-1992) 프랑스 정신과의사. 공산주의자 들뢰즈와 함께 안티외디푸스, 카프카, 리좀, 천개의 고원, 철학이란 무엇인가(1991)까지 같이 작업하였다.
1948 크레솔(Michel Cressole, 1948-1995), 기자, 수필가, 동성애 운동가(Le Front homosexuel d'action révolutionnaire: FHAR, 1971-). 들루즈(Deleuze, 1973)
1971 파르(FHAR: Le Front homosexuel d'action révolutionnaire, F.H.A.R. ou FHAR) 1971년 성립한 영성 동성애와 남성 동성애의 접근에서 나온 운동. 참여자들로 Guy Hocquenghem, Christine Delphy, Françoise d'Eaubonne, Daniel Guérin, Pierre Hahn, Laurent Dispot, Hélène Hazera, Jean Le Bitoux, René Schérer, Patrick Schindler, Yves Hernot, etc.
“탐구(recherches)”지: 1966년 1월 1호에서 1983년4월호 49호까지 나온 것 같다. n° 12. mars 1973에는 제목이 <Trois milliards de pervers Grande Encyclopédie des Homosexualités>였다. - 참여자들로는 Participèrent notamment : Gilles Deleuze, Michel Foucault, Jean Genet, Felix Guattari, Daniel Guérin, Guy Hocquenghem, Jean-Paul Sartre, J.-J. Lebel … 등이다.
여성해방운동(Mouvement de libération des femmes: MLF) 1970년 창립. 이 운동은 1968년 미국의 미국여성해방(Women's Lib américain) 운동의 영향이 크다. 주요 인물로는 Annie Sugier et Anne Zelensky en 1977 (sous pseudonyme), Naty Garcia Guadilla en 19813 ou Monique Rémy en 1990 등이 있다.
「아랍인들과 우리(Les Arabes et Nous)」 1973년 탐구(Recherches) 12에 실린 것인데, 이 학술지의 제호(題號)가 Unsigned (1973)인 것 같다. 많은 저술가들이 글을 썼는데, 들뢰즈는 가타리와 더불어 “Sex-pol en acte.” 소 논문을 쓴 것으로 보인다.
- Unsigned (1973), Recherches12 (March 1973): 4. 21. ... Multiple unidentified authors, “Les arabes et nous,” p. 19. 35. Deleuze, “Sex-Pol en acte,” p. 29. 36. / [19] 'Sex-Pol en Acte' is not the only response to 'Les Arabes et Nous'. ...
/ 35. Deleuze, “Sex-Pol en acte,” p. 29. 36. “Les arabes et nous,” p. 17
- “Sex-pol en acte.”, In Grande Encyclopédie des Homosexualités: Trois milliards de pervers. Special issue of Recherches 12 (March, [1973]) : 28–31 . With Félix ... (Deleuze 1995) [이것이 그런대로 정확한 전거인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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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마흔셋) 박사학위 주 논문 차이와 반복(Différence et répétition, 1969)(PUF)을 발표하고, 학위 부논문 스피노자와 표현의 문제(Spinoza et le problème de l'expression, 1969)(Minuit)를 출판하였다. 주 논문은 강디악이, 부 논문은 알끼에가 지도하였다.
1969(마흔넷) 의미의 논리(Logique du Sens, 1969)(Minuit)를 출판하다. 이것은 1973년 10/19총서에서 다시 출간되었다.
1972(마흔일곱) 그는 가타리와 더불어 안티 외디푸스(L'Anti-Oedipe: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1972)(Minuit)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서구 기독교의 삼위일체의 도식이 가족에 덧 씌여진 것을 비판하는 것이며, 이 비판을 통해 사회의 형태에 대한 비판을 한다. 새로운 사회는 자기 분신을 새로이 만드는 자들이 각 부분의 혁명을 통해 생성해 나갈 것이다.
1980(쉰다섯) 안티외디푸스의 자본주의 비판과 분열 분석을 이어서, 가타리와 함께 천개의 고원(Mille Plateaux: Capitalisme et schizophrénie 2, 1980)를 출판(Minuit)하다. 들뢰즈는 이탈리아 판 서문에서 “앞의 책이 출간 된 시기는 68운동의 영향 아래 있었지만, 뒤의 책은 천박한 향상의 침체와 무관심의 시기에 출간되었다” 썼다.
(6:27, 54RKF)
# 참조: 벩송에 대한 평가
Dans La Gloire de Bergson(Gallimard, 2007), François Azouvia retracé cette ascension sans pareille et le brusque déclin qui suivit. Dans la France des années 1960 et 1970, à l'apogée du structuralisme, en effet, c'est le rejet. On écoute Paul Nizan ou Georges Politzer, qui le traitent de "chien de garde" et de "valet de la bourgeoisie". Alors que le marxisme triomphe et que le matérialisme domine sans partage, le malheureux Bergson passe pour un spiritualiste réactionnaire et obsolète. Mis à part quelques fidèles, personne ne le lit. Si... Gilles Deleuze.
1903 폴리쩌(Georges Politzer, 1903-1942), 헝거리 유대계출신 프랑스 철학자, 레지스탕스 맑스 이론가. 프랑스와 아루에(François Arouet)라는 익명으로 「Fin d’une parade philosophique : le bergsonisme」(1929)에 나왔으며, 거의 조금만 변경한 Le Bergsonisme, une mystification philosophique(1946)이 출간되었다. “부르주아의 하인”이라 칭한 것에 대한 출전이 불분명하다.
1905 폴 니장(Paul Nizan, 1905-1940) 프랑스 소설가, 철학가, 저널리스트. 왕당파 집에서 자라 프랑스 공산당에 가입했다가, 1939년 탈퇴하였다. 팜플렛 「(Les Chiens de garde, 1932)」 이 책자는 Bergson, Émile Boutroux, Brunschvicg, Lalande, Marcel, Maritain 등을 반대했다. 여기서 프롤레타리아와 브르주아의 대립을 놓고, 벩송 등은 부르주아의 “사냥개”라고 비판했다.
1945 아주비(François Azouvi, 1945-) 프랑스 철학자, 역사가. La gloire de Bergson. Essai sur le magistère philosophique ; Gallimard, 2007.
(7:19, 54RKF)