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철학개념

시간성(Temporalité): 철학일반에서

작성자천야|작성시간21.06.09|조회수404 목록 댓글 0

시간성(Temporalité): 철학일반(philosophie générale)에서

J.-C. Fidel, Les Notions philosophique, Dictionnaire, PUF, 1992, p. 2566(P.3299)

피델(Jean-Luc Fidel, s.d.) 번역가,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번역.

 

  시간성(Temporalité, 이제)이란 용어는 독일어에서 시간성(Zeitlichkeit, 현세)일 것이고, 아마도 독일어에서 번역상으로 시간성(Temporalität)을 쓴 것 같다. 위키에서 찾아보면, 후설은 이 시간성(Temporalität)을 쓴 것 같지 않고, 하이데거가 󰡔Kant und das Problem der Metaphysik󰡕(GA 3, 218 f.)을 해석하면서 이 시간성(Temporalität)이란 용어를 썼다고 한다.

   그리고 내가 읽었던 바로는 벩송은 시간성(Temporalité)이란 단어를 쓰지 않았다. 내가 보기에, 벩송은 시간을 범주론에 소속하여 양상으로 보는 것이 지속(시간)에 대한 이해의 부족으로 보았을 것이다. 왜냐하면 지속을 세 가지 정도로 분류해보면, 하나는 영원이란 시간은 상징 또는 기호화일 뿐으로서 현존에서 문제거리가 아니기 때문이고, 둘째로 물리학에서 다루는 시간은 공간화하여 세고 잴 수 있는 것으로 보는 것도 아니며, 좀 더 나아가 의식의 사실들로 보아 고정화한 것을 병치하는 것도 의식 상태의 흐름을 파악하는 방식이 아니라고 보기 때문이다. 셋째로 의식, 생명, 기억의 흐름을 단절하여(자르고 재단하여) 사고하는 것이, 엘레아의 제논의 분할의 논리처럼, 불합리에 빠지기 때문에, 자르지 않은 총체적 경험으로 다루어야 하기 때문이다.

결국 벩송의 지속(시간)은 살아있다는 것을 의미한다. 죽은 소크라테스 2천5백년 전에 있었다고 하는 것은 공간화의 나열의 한 단면에 불과하다. 그럼에도 소크라테스를 다루는 것은 의미화에서 매우 중요하다. 2천5백년이 지난 사실들(상태들이 아니라)의 나열에서 비교, 관계, 대비, 유사 등을 다루는 것을 사람들이 좋아하고 즐긴다. 그렇다고 다루다고 해서 철학이 되는 것은 아니다. 벩송은 말한다. 철학은 제반 과학이 그은 경계(한계, 선긋기)를 한 발자국 더 나아간다고. 나로서는 소크라테스의 의식 상태들을 다루는 한에서 그 의식 상태는 현전하고 또한 감화를 미치고 있다. 이 감화는 단절된 것을 거꾸로 거슬러 올라가는 것이 아니라, 그 상태의 원인과 귀결들이 현재까지도 삶에서 연관이 있을 때에야 그리고 삶을 이어갈 때야 지속이 있는 것이다. 지속에는 기억이 포함되어 잊고 있었지만 지속하고 있는 수억 년의 과정을, 아직도 과학적으로 다 파악할 수 없지만, 그 흐름의 지속은 부정할 수 없다. 그 흐름이 없으면 현재하는 그 현존자는 살아있지 않기 때문이다. 기나긴 과정에서 결과와 이익을 추구해왔던 주지주의적 사고에서 과거를 자기 이익에 맞게 재단하고 배열하는 것을 학문으로 여기는 시대는 지나갔으나, 여전히 AI가 기승을 부리고 있는 것은 그래도 이익이 삶이라고 여기는 이기주의가 팽배하기 때문이다.

    다시 돌아가, 사람들은 시간성이란 용어를 삶의 현실에서 일정한 과정(평생)이란 단위과 비슷하게 여기며 쓸 수 있다. 그 시간성을 단위로 삼는 추상은 이미 지속을 떠난 대상화된 시간이다. 말하자면 이야기로든 토론으로든 다룰 수 있는 대상이다. 개인은 삶의 총체는 대상이 아니라 살아가면서 풀어야 할 문제거리를 해소하는 데 있다. 그 해소가 개인만으로 되지 않아서 가정과 공동체를 만들고, 도덕과 종교를 논한다. 이것은 편리와 안녕을 위하여 법과 제도를 만드는 것과 차원이 다르다. 철학은 사회학이나 법학과 다르다. 그럼에도 철학이 삶의 터전(생태, 지구)와 더불어 생각해야 한다는 것을 벗어나지 않고 있다.

 

# 시간성(Temporalité) 철학일반에서 philosophie générale.

[개요]

   넓은 의미에서 시간성은, 시간이 기원의 양상들에 따라서 생각되는 한에서, “시간(le temps)”을 의미한다. 예를 들어 사람들은 “의식의 시간성”에 대해 말할 것이고, 따라서 그 의식의 시간성은, 시간이 의식[삶]에 연관되면서 또 이런 기원을 함수로 해서 양상화 되면서 의미를 갖는 한에서, “시간”을 의미한다. 시간성의 학설은 이런 양상(cette modalité)을 묘사하고 이해하는 데 있는 학설이다. (C. Dubois)

   최근 사용되는 용도로, 이 용어는 현상학과 더불어 상당한 발전을 이룩한 것으로 알려졌다. 시간성에 의해, 우선 사람들은, 시간이 의식 속에서 또 의식을 위하여 구성되는 그 대로 살아본 시간, 즉 시간의 주관적 구성을 이해할 수 있다. 그러나 심리학적인 살아본 시간으로부터, 시간에 대해 살아본 것으로부터, 시간의의식으로부터, 마치 시간처럼의식으로 가야 하는데, 이는 마치 주관성의 존재 자체처럼, 즉 그것의 시간적 존재처럼 시간성을 발견하기 위해서 이다.

 

[본문]

     후설(Husserl, 1859-1938)은 자신의 1905년 강의 󰡔현상학을 위한 시간의 내밀한 의식에 관한 강의(Leçons pour une phénoménologie de la conscience intime du temps, 1905)󰡕에서, 시간의 우주론적이고 객관적인 개념작업을 거부하는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us, 354-430)의 고백록에 존경을 표하면서, ‘영혼의 분산(distentio animi)’에서 이미 시간을 주관적 기원을 폭로한다.

  마찬가지로 벩송(Bergson, 1859-1941)의 내재적 지속(la durée)은 살았던 시간의 독창성을 드러나게 한다. 그 시간은 의식의 “실체” 자체이며 물질적 공간에도 “공간화된” 시간에도 대립된다.

   칸트(Kant, 1724-1804)는 󰡔순수이성 비판󰡕(1781, 수정판 1787)에서 시간을 순수 직관, 즉 내적 의미를 위한 모든 직관들의 형식으로 소개한다. 그러나 주관성에 의해 또 안에서 구성된 시간에 마주하여, 이미 내재적이고 기원적인 시간성이, 즉 종합하는 자발성의 시간이, 나타난다. 이 종합하는 자발성이란 시간적인 한에서의식이다.

     객관적 시간/ 주관적 시간 이란 대립은 구성된시간/ 구성하는또는 구성적 시간과 대립으로 스며든다. 이것은 후설의 분석을 보다 충만하게 거주하게[활동하게] 하는 것이다. 현상학적 환원은, 시간적 겉보기(l’apparaître, 현상)만을 그 양상 속에서 있는 그대로 고려하기 위하여, 또한 시간의 자동구성에서 시간의 객관적 기원을 폭로하기 위하여, 객관적 시간을 회로 밖으로 내놓는다. 객관적 시간을 떼어내는 것이 중요한 것이 아니라, 있는 대로 나타나는 시간만을 유지하지 위하여 구성된 시간을 거부하는 것이다: 여기서 객관적 시간이란 의식 속에 시간의 출현을 묘사하기 위하여 미리-주어진 것이리라. 지향성(l’intensionnalité) 속에서 시간적 대상들의 구성의 양태들을 가로질러, 시간적인 한에서(en temp que temporel) 조준된[지향된] 의식의 존재 자체가 있다. 내재적 시간성을 구성하는 의식은 그 자체 시간성이고 자기구성적(자동구성적)시간이다.

   후설에서 의식의 주관성에 제한된 시간-존재(cet être—temps)[;] 하이데거(Heidegger, 1889-1976)의 실존적 분석틀(l’analitique existentiale)은 시간 존재의 개념을 급진화한다. 다자인(Dasein: à sa Zeitlichkeit 다자인의 시간성에서)의 존재 양태들의 구성적 시간성에 존재의 시간성(Temporalität)이 응답한다. 다자인의 에크 시스텐스(ek–sistence[바깥에 두다. 바깥으로 나오다]는 마치 세계에서 존재(être-au-monde)인 것처럼, 자기의 존재 자체가 시간이라는 것을 폭로하고 드러내며, 따라서 존재의 시간적 본성을 폭로하고 드러낸다.

   만일 존재에게 열림[개방]이 있다는 것(d’etre couverture)이 다자인에 속한다면, 만일 이 열림이 – “시간 안에서” 일어나기보다 열림 자체가 시간이라는 의미에서 - 시간적이라 한다면, 그러면 시간은 존재의 지평이며, 그러면 “존재가 시간처럼 있다”는 것이 시간이다. 시간성은 – 다자인의 존재에 대해 구성적인 - 시간을 존재의 시간성에게 연다[개방한다].

      시간성(Temporalité, 이제)와 시간성(Zeitlichkeit, 현세)은 󰡔존재와 시간(Sein und Zeit; Être et Temps, 1927)󰡕에서뒤죽박죽이며, 하이데거가 “시간의 통속적 개념작업”이라고 부르는 것을 다시 읽게 한다. “시간의 통속적 개념작업”은 형이상학을 포함하고, 존재와 시간을 대립시키고, 존재의 문제를 폭로한다. 만일 이런 의문이 제기되고 여전히 남아 있다면, 그것은 시간성의 관점이며 시간성의 덕분이다. 이는 또한 역사성(Geschitlichkeit; historialité)의 관점이며, 덕분이다.

  따라서 시간성의 분석은 시간의 주관적 체험[살아온 것]을 넘어서는데, 이른 주관성의 구성적(constituitive) 시간의 본성에 도달하기 위해서 이며, 또한 세계에서 존재(être-au-monde)로서 다자인의 시간적 존재를 향하여 주관성을 회피하기 위해서 이며, 시간적인 한에서(en temp que temporel) 존재 자체에 닿아가기 위해서 이다.

   시간에 대립하면서 “시간 속에서(dans le temps)” 존재 자체를 사유하는 것이 아니라, 시간화로서(comme temporalisation) 존재, 즉 시간-존재를 사유하는 것이다. 그러한 것이 존재가 존재자(un étant)에게 열리고, 그 존재자의 존재 그 자체는 시간적이다. (J-L. Fidel)

*

35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 Augustinus, 354-430), 신학자, 성직자로서 주교, 교부철학자. 󰡔고백록(Confessions: lat. Confessiones)󰡕(397년과 401년 사이, 자서전적 작품)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프러시아(독일) 철학자. 비판철학과 선험적 관념론(déalisme transcendantal)을 창안했다.

1859 베르그송(Henri-Louis Bergson, 1859-1941) 유대계 프랑스의 철학자

1859 후설(Edmund Husserl, 1859-1938) 유대계 독일 철학자. 현상학을 창안하였다. 󰡔현상학을 위한 시간의 내밀한 의식에 관한 강의(Leçons pour une phénoménologie de la conscience intime du temps, 1905)󰡕.

1889 하이데거(Martin Heidegger, 1889-1976) 메스키르히에서 출생한 독일의 철학자.

*피델(Jean-Luc Fidel, s.d.) 철학교수자격.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번역가, 󰡔Les grands philosophes: Hegel. Religion et philosophie󰡕(Raymond Plant (Auteur), Jean-Luc Fidel (Traduction), 2000)

*뒤브와(Christien. Dubois, s.d.) 독일어를 프랑스어로 번역가. 󰡔Heidegger, introduction à une lecture (2000)󰡕

*기체(s’hypostasie) : 자기 밖에 그리고 자기 저 아래(au dessous, hypo-)에서 생산된 이 실재성(la réalité, -stases)의 수준들 또는 상태들은, 혜지(온지성)이며 온영혼이다.

* existence: ek–sistence. 바깥에 두다. 바깥으로 나오다.

exister – exsistō 있다. 나오다 생기다, 싹트다, 기원이 되다.

sistō 서다 멈추다, 그만두다, 정지하다, 가만히 있다. ex- 출발, 벗어난, 밖으로 .

참조

*뢰머(Inga Römer, 1978-), 「Heidegger: Zeitlichkeit des Daseins und Temporalität des Seins, 2010」. [이 논문의 제목이 흥미롭다. 현존재에게는 현세계라(크로노스, Χρόνος)고 그리고 존재에는 영원성(아이온)이라는 개념으로 쓴 것 같이 보인다. / 뢰머(Inga Claudia Römer, 1978-)독일 여성 철학자. 프랑스 보르도 대학에서 학사, 독일에서 석.박사를 하였다. 프랑스 그르노블 대학에서 독일철학을 가르치고 있다.

- 주의: 시간의 의미로 그리스어 크로노스(Χρόνος)와 그리스 신화에서 거인족을 지칭하는 크로노스(Κρόνος)는 다르다.

(4:22, 54Q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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