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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사115, 제3기 르네상스(15-16세기): 고대 그리스 문화에 주목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09|조회수92 목록 댓글 0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로비네(AndréRobinet, 1922-2016), PUF, (1966) 1977.

류종렬, 서광사, (1987) 수정본.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 1장 중세 철학 / 2장 근세 철학 / 3장 현대 철학 / 결론

1장 중세 철학

101, 샤를마뉴시대의 철학, 알퀭: 문화적 세계

102,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철학: 자연의 세계

103, 안셀무스의 지성의 인식: 지적인 인식

104: 이법의 뿌리: 영혼, 빅토리아학파

105, 아벨라르 변증론: 분할과 결합, 개별과 보편.

106, 베르나르의 반(反)변증론: 신앙으로 회귀

107,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플라톤주의 부활,

108, 프란체스코파: 플라톤주의, 지혜의 추구

109, 도미니크파: 아퀴나스주의, (논리학을 통한) 신앙의 체계.

110, 중세의 중간 평가: 원시에서 근대로 이행에서 중간참(中間站)

111, 플라톤 철학의 탐구 : 13세기 프란체스코파의 확장 [제1기 르네상스]

112, 플라톤주의 확장: 프란체스코파의 명증성 추구

113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재등장 그리고 발전

114.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이탈: 자유사상가로 [제2기 르네상스]

115. 제3기 르네상스(15-16세기): 고대 그리스 문화에 주목

* * *

제1장 중세 철학

[§15. 제3기 르네상스(15-16세기):

고대 그리스 문화로부터 영향을 받음,

피치노, 에라스무스, 미란돌라, 포스텔, 다빈치

르네상스를 마감과 더불어: 뭉테뉴 등장.

*

    15-16세기의 르네상스, 즉 우리가 흔히 말하는 르네상스는 시기적으로 제3기 일 것이다.사실상 각 세기는 다른 세기와 관련하여 다시 태어나는 것이다. 후퇴와 중간 단계는 어떤 시기에도 없었다. 인간성은 자기 미래를 증가시키는 것만큼 자기의 과거를 감추면서 이루어진다. [역사가인] 페브르(Febvre, 1878-1956)는 [이 시기를] 인간성으로 은총이 넘치고 영감을 부여 받은 세기를 만든다. [문학사가인] 뷔송(Henri Busson, 1886–1971)은 무신론과 감추어진 자유 사상만을 볼 뿐이다. [한편으로] 사람들은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94경-1553경)를 무신앙으로부터 끌어냈거나 또는 그를 시복(諡福)하였다. 달리 말하면 우리의 개념들이 우리의 관점에 따라서 표현되지 않았던 어떤 역사의 이해에 잘못 적용된 것일 뿐이다. 르네상스적인 것들이 이렇다는 것을 무시하고서, 있는 그대로의 르네상적인 것들을 찾아보자. 다른 한편 만일 중세가 몽매주의의 심연이 아니라면, 즉 아벨라르(1079-1142)나 스코투스(1266-1308)에서 인문주의자와 자연주의자가, 샤르트르학파에서 문학의 재연이, 그리고 물리학에 대한 유명론자의 주목이 중세세 부채골로 문화를 꽃피우게 한다면, 르네상스와 그보다 앞선 시기와 사이에 생긴 고전적 대립은 주장될 수 없다. 르네상스가 우리가 태어났던 그 장소에서 다시 태어나야 한다고 메나르(Pierre Mesnard, 1900-1969)가 “페트라르카(1304-1374)에서 데카르트까지” 자신의 연구를 확장할 때, 이 확장은 르네상스를 이해하기 위하여 1300년대로 거슬러 올라가야 하고 1650년에까지 그 결과들을 추적해야 한다는 것을 의미한다.생존 시간이 지남에 따라 “세기”라는 칸막이 안에 심각한 틈이 있도다!

    르네상스는 플로렌스-파리 지방의 민속적 표현은 아니다. 르네상스는 다른 계기적 측면에서, 그리고 여러 정도에 따라 유럽의 모든 나라에 영향을 준다. 새 소식을 인쇄술의 발명에 의해 시작된 거대한 문화적 확장으로 훨씬 더 빠르게 전파된다. 손쉽게 다룰 수 있는 많은 개인적 인쇄물들은 지식과 정신의 급진적인 질적 변화를 수도원이나 대학의 도서관으로부터 결정적으로 뛰쳐나오게 한다. “박식한 자들”은 국가의 교회 조직에 힘입을 필요가 없다. 이제 그들은 인쇄 인가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통치권이 무너짐으로써 한 국가에서 금지되는 문화가 다른 국가에서는 인정되어 다양한 문화를 자유롭게 이룩할 수가 있게 되었다. 즉 여기에서 말할 수 없는 것을 거기에서는 말할 수 있다. 동시에 신적 권능의 단일성과 크리스트교 문화의 단일성이 국가 속에서, 그리고 개혁된 지역에서 시들어 간다.

원심적 운동은 망각의 세기 동안 떨어져 있는 많은 이론들이 서로 충돌하게 한다. 지혜에 대한 중세의 개념이 정확하게 단일화되지 않는다면, 다시 태어난 개념을 분명히 다수가 된다. (54)

    더 은폐되었던 철학은 플라톤 학파의 운동 속에, 그리고 알퀭의 백과 전서적 지식을 따라서 연속된다. 피치노(Marsilio Ficino, 1433-1499)는 토마스 아퀴나스(1224년/1225-1274)가 아리스토텔레스(전384-322)를 강조한 것처럼 플라톤(전428-348)을 강조한다. 그는 아우구스티누스의 종합에로 되돌아왔다. 즉 철학은 인간에 의해 주장이 바뀌게 되는 신적 발명이다. 변증법과 신학은 신적 발명의 완성이다. 소위 철학적 여정은 크리스트교의 상징에 의해서보다도 플라톤 학파의 상징에 의해서 이행된다. 이 지혜는 중세의 비유가 인간에게 이해시킨 것보다 훨씬 더 인간에 접근한다. 신화는 지혜를 지상의 모험들 속에서 단련시키면서 자기의 역할을 표현한다. 에라스무스(1466/1469-1536)는 자신의 주위에 그리스적인 것이 많은 만큼 크리스트교적인 것이 적은 것을 놀라서 아벨라르를 모방했다. 첫째 천년 동안의 문화는 고대 무놔에서 얻어진 다양한 것을 그 후부터 완전하게 했다. 즉 프랑스 철학이 그 과거와의 결합을 성취하고 있다. (54)

    그런데 지혜는 드러나 있다. 이론적 정신에 있어서 지혜는 완전한 과학의 진리에 귀착한다. 피코 미란돌라(1463-1494)는 자연적 사물들에 관심을 나타낸다. 그는 피치노의 비교(秘敎)주의를 완성시킨 신비적 종교 해석자의 착상으로부터 알파와 오메가를 되찾는다. 진리란 인식의 펼쳐진 층이다.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의 “박학”은 이런 류의 정신의 마지막 표상인 것이다. 자연주의 경향의 극단에 있는 포스텔(Guillaume Postel, 1510-1581)은 환상적 계시주의 속에서 자연과 신을 혼동하고 있다. 지혜는 파우스트 박상의 영원한 여인이며, 이 새로운 이브는 삼위일체와 결혼한다. 비교(秘敎)적이고 우상 숭배적인 신비를 분류하기 위하여 괄호까지 쳐가면서 “이성주의”의 용어를 적용시키는 것은 아주 어렵다. (55)

    실재로 지혜로운 덕의 모델을 생각하게 한다. 레오나르도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는 관념들의 힘도, 그리고 전통의 가치도 믿지 않는다. 역학은 가장 고상하고 가장 유용한 과학이다. 역학은 “수학의 천국”이다. 자연은 척도에 따라 일람표로서 응답하는 장치이다.인식한다는 것은 제작할 수 있다는 것이고, 제작하는 것은 활력할 수 있다는 것이다. 정력적인 창조 때문에 기술자는 도시에 주목한다. 전반적으로 쇠퇴된 기호는 이제 기하학적 설계도에 제한된다. 데카르트(1596-1650)는 그 기호로부터 출발할 것이다. 미와 유용성은 기술에 의존한다. 자연적인 것들은 무시된 채로 있는 인공적인 것들이다. 다빈치의 신은 조콘타(Joconda, 모나리자)를 미소짓게 하기 위하여 “선을 긋자”라고 말한다. 라이프니츠의 신은 “계산하자”고 말할 것이다. (55)

    인간의 행복은 인간 활동의 완성이다. 철학은 지혜를 인간적인 것에 대한 생각으로 끌고 간다. 그러나 잘 이끌기 위해서는 잘 알아야만 한다. 신 중심주의에서 서서히 인간중심주의로 바뀐다. 지혜는 샤롱(Pierre Charron, 1541–1603)에 의해 정의되고, 기욤 뒤 베르(Guillaume du Vair, 1556-1621)는 스토아주의의 정신에 따라서 크리스트교적으로 죽기보다 오히려 잘 살아가기를 가르친다. 도덕적 학문은 경제적이고 자연적인 학문에로 발걸움을 내딛는다. 구원과 학문은 노사분쟁 조정위원회의 판결권과 대체하기 위해 물러난다. 몽테뉴(Michel Montaigne, 1533-1592)는 이미 인간 각자는 인간 조건의 완전한 형식을 지니고 있다“고 말했다. (55)

(3:23, 59Q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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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28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전428-348) 고대 그리스 철학자. 󰡔폴리테이아(La République, Περὶ πολιτείας)󰡕.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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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54 아우구스티누스(Augutinus Hipponensis, 354-430) 북아프리카인 알제리 및 이탈리아에서 활동한 기독교 신학자이자 주교로, 개신교, 로마 가톨릭교회 등 서방 기독교에서 교부로 존경받는 인물이다.

730 알뀅/알쿠이누스(Alcuin, 730-804) 라틴어를 사용한 영국 신학자, 시인, 과학자. 영국서 태어나 프랑스 투르에서 죽었다. 샤를마뉴의 스승이자 자문이었다. [앙드레 로비에의 “프랑스 철학사”에서]

1079 아벨라르(Pierre Abélard, Abelardus, 1079-1142), 프랑스 철학자, 인간이 학문을 스스로 할 수 있다고 여겼다.

- 󰡔재난의 역사/ 나의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 부재 Histoire de mes malheurs, 1132)󰡕(쉰셋): 그는 여기서 엘로이즈와 사랑, 거세, 그리고 1121년 스와송 공의회(concile de Soissons en 1121)에서 단죄, 그의 초기작품들의 파괴 등을 이야기한다. - 이 사건으로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는 아벨라르를 비난했다.

1224/1227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d'Aquin, Thomas Aquinas, it. Tommaso d'Aquino, 1224년/1225-1274), 로만 카톨릭의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 / 이탈리아 중부 아키노 출생, 이탈리아 중부에서 몰. 파리 대학 수학(1245-1248), 강의(1268-1272), 동 로마 귀족 가문의 출신(베네딕트파)으로 도미니크 수도원으로 갔다. 아랍-이슬람 문화에 시달리던 서구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정리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

1265 둔스 스코투스(Duns Scotus, 1265경, 1266-1308)[마흔셋] [섬세의 박사] 프란체스코파, 평결문들에 주석을 달다. 신으로 이행을 허용하는 유비적 연관에서 모든 토대를 걷어낸다.

[1398 요하네스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1468), 독일의 금(金) 세공업자, 1440년경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발명. ]

1433 피치노(Marsile Ficin, en it. Marsilio Ficino, 1433-1499). 인문주의 르네상스. 아르귀로풀로스(Jean Argyropoulos, Ιωάννης Αργυρόπουλος, v. 1395 –1487), 이의 후임으로 칼콘딜레스(Demetrios Chalcondyle, Δημήτριος Χαλκοκονδύλης, 1423-1511) 이 후자의 제자로 피치노.

1452 다빈치(Leonardo da Vinci, 1452-1519), 이탈리아출신, 1516년 프랑수아 1세의 요청으로 프랑스 루아르 강가의 앙부아즈 성에 기거하게 되고, 여기서 <모나리자>가 완성된다. 1519년 4월 23일 세상을 떠난다

- 조콘다/모나리자(La Joconde, it. La Gioconda [la dʒoˈkonda] ou Monna Lisa), 모나 리자의의 초상화, 다빈치의 회화 작품(entre 1503 et 1506 ou entre 1513 et 1516)

1463 피코 미란돌라(Pico della Mirandola, 1463-1494), 이탈리아 인문주의자.

1466 에라스무스(Erasme, Desiderius Erasmus Roterodamus, 1466/1469-1536) 네델란드 인문주의자 신학자.

1494 라블레(François Rabelais, 1494경-1553경), 프랑스 문학가, 르네상스의 중요인물.

1510 포스텔(Guillaume Postel, 1510-1581) 프랑스 동방학자, 문헌학자, 신지학자(théosophe), 크리스트교적 카발라의 대표자.

1533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프랑스의 사상가, 모랄리스트. 프랑스의 르네상스기(期)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자이며 󰡔수상록󰡕의 저자이다

1541 샤롱(Pierre Charron, 1541–1603) 프랑스 신학자, 철학자, 연설가, 주로 옥시타니(Occitanie)지역에서 활동하고, 몽테뉴를 만나 좋은 친구가 되었다.

1556 기욤 뒤 베르(Guillaume du Vair, 1556-1621), 고위 성직자, 정치가, 도덕론 작가. 루이 13세의 법무부 장관(un Garde des sceaux) 1591는 에픽테투스의 󰡔지침서(Le Manuel)󰡕를 번역했다.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의학자 철학자이다. 그는 새로운 철학의 방법을 제시하고, 당시 카톨릭의 비판을 피하여 네델란드에서 지냈다. 󰡔방법서설(Le Discours de la méthode (1637)󰡕

1646 라이프니쯔(Gottfrid Leibniz, 1646-1716) 이 다재다능한 철학자는 프랑스에 거주한 시간이 많아서 많은 작품을 프랑스어로 썼다. 그리고 그는 뉴턴과 서로 달리 미적분을 발명하였다.

1878 페브르(Lucien Paul Victor Febvre, 1878-1956) 프랑스 역사가. 1920년대 블로흐(Marc Bloch, 1886-1944)와 함께 아날학파 창설에 가담.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

1886 뷔송(Henri Busson, 1886–1971), 프랑스 소설가, 문학사가.

- Le rationalisme dans la littérature française de la Renaissance (1533-1601), 1922

- Les sources et le Développement du Rationalisme dans la Littérature Française de la Renaissance. 1923 - Journal of Philosophy 20 (25):697-69.

[뷔송(Julien Busson, 1717-1781), 프랑스 의사. 의학백과 사전 증보판을 만들었다.]

1900 메나르(Pierre Mesnard, 1900-1969) ENS, 프랑스 대학교수, 철학사가, 성격학자(caractérologue).

(5:10, 59QKH)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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