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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사116, 자의식의 배태: 몽테뉴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16|조회수63 목록 댓글 0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로비네(AndréRobinet, 1922-2016), PUF, (1966) 1977.

류종렬, 서광사, (1987) 수정본.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 1장 중세 철학 / 2장 근세 철학 / 3장 현대 철학 / 결론

1장 중세 철학

101, 샤를마뉴시대의 철학, 알퀭: 문화적 세계

102,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철학: 자연의 세계

103, 안셀무스의 지성의 인식: 지적인 인식

104: 이법의 뿌리: 영혼, 빅토리아학파

105, 아벨라르 변증론: 분할과 결합, 개별과 보편.

106, 베르나르의 반(反)변증론: 신앙으로 회귀

107,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플라톤주의 부활,

108, 프란체스코파: 플라톤주의, 지혜의 추구

109, 도미니크파: 아퀴나스주의, (논리학을 통한) 신앙의 체계.

110, 중세의 중간 평가: 원시에서 근대로 이행에서 중간참(中間站)

111, 플라톤 철학의 탐구 : 13세기 프란체스코파의 확장 [제1기 르네상스]

112, 플라톤주의 확장: 프란체스코파의 명증성 추구

113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재등장 그리고 발전

114.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이탈: 자유사상가로 [제2기 르네상스]

115. 제3기 르네상스(15-16세기): 그리스 문화에 주목

116 자의식의 배태: 몽테뉴

* * *

제1장 중세 철학

[§16. 자아의 태동(출산은 데카르트에 이르러서)

몽테뉴

르네상스의 마감, 고전주의 여명.

*

   󰡔수상록(Essais)󰡕(초판 1580)의 문화적 성공은 종교가 수천 분파로 나누어진 분할과 혼동의 와중에 이루어졌으며, 16세기의 프랑스를 두 개의 진영으로 나누었다. 비록 인쇄술과 종교개혁이 사상에 대한 교학 분리의 전부가 아니라고 하더라도, 그것들은 필연적인 부분들일 것이다. 브룅슈비끄가 흑백으로 진행시킨 몽타쥬는 몽테뉴(Montaigne, 1533-1592)를 중세의 어두운 배경으로부터 분리하고자 한다. 몽테뉴는 이미 준비되어 있다. 즉 전통을 강조하지 않는 문화의 모든 형태에 대항하여 대단한 열성을 가지고 크리스트교의 권위를 불어 넣는다. “나는 무질서가 야만인들의 모든 적들보다 문자의 뉘앙스에 더 많이 있다고 생각한다.” 종교 재판소의 장작들은 아직도 타고 있다. 그러나 자기의 의식은 자신의 권리를 되찾는다. 사유는 소크라테스적인 전통과 다시 관계를 맺는다. 아벨라르(Abélard, 1079-1142)가 크리스트교적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었다면, 몽테뉴는 크리스트교 이전의 소크라테스와 같은 사람이다. 확실히 그의 법적인 문서에는 소크라테스나 아벨라르의 것처럼 수학이라는 충격적인 도구가 없다. 그러나 퓌타고라스가 나왔던 것처럼 데카르트(1596-1650)가 나올 것이다. (56)

    16세기의 “합리론” 속에서 프랑스의 사상이 몰두한 내재적 치료 요법은 신의 섭리에 위임된 것과는 다르게 운명지워진 인간에게 맡겨진다. 이제 이론과 독단에 대해 살펴보자. 최고선에 대한 288개 종교적 정의가 있다.달리 말하면 전심전력에도 불구하고 이성이 발견할 수 있는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왜냐하면 이성은 하찮은 일을 정당화하고 있기 때문이다. 정신이 왜곡되는 것을, 그리고 문화를 변형하는 반성 없이 자연이 우리에게 행하는 대로 우리 스스로가 받아들인다는 것을 회피하는 편이 더 낫지 않는가? 기억의 지지를 받는 이성은 자기 자신의 원천 때문에 멸망한다. 몽테뉴의 회의주의는 서로 존중하는 모든 이성주의를 위하여 회피할 수 없는 전통이 된다. 누적된 문화는 우리를 갈라놓고 부수어 버린다. 모든 이성이 출발했던 그 원천으로 되돌아가자. (57)

    파스칼(Pascal, 1623-1662)이 가증스러워하고 말브랑쉬(Malebranche, 1638-1715)가 거만하다고 할 자아는 몽테뉴가 근세를 불러일으키게 하는 지렛대이다. 모든 문화는 자아에 근거를 두고, 모든 판단은 자아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데카르트(Descartes, 1596-1650)는 자아에서부터 출발한 것이다. 몽테뉴는 자아에 충실 한다. 인간은 중세의 초월적 우주론 속에서 하나의 층일 뿐이었다. 이제 인간은 한 단계인데, 그 주위에 자연과 신이 배열되어 있다.인간적 시각의 능력은 모든 방면에서 자신으로부터 출발한다! 몽테뉴가 “의식의 힘”이라고 부른 것을 말브랑쉬는 “병약한 정신”이라고 불러 줄 것이다. 몽테뉴는 인간을 금속과는 다르게 “분석 시험한다.” 대장간의 주인이 이성 없이 [금속을] 모든 이성에 반대로 다룬다. (57)

    본성적으로 자신으로 회귀와 자신에 만족은 건강한 인간의 두 젖줄이다. 우리들은 우리의 사유와 행위 속에 있는 한 “내적 후원자”의 지류이다. “겉모양”과 “크기”라는 것은 인간성 자체에 반대되며, 인간성과 인간 그 자체를 구분하는 것이다. 한 시각만이 인간에게 도달하고, 자기 자신의 비밀 속에서만 스스로 알 뿐인 그 살아 있는 인간은 아무 가치도 없다. 인간은 불규칙하며 순결을 지닌 향락주의 속에서 시기적절하게 살아가고, 시간을 보낼 줄 알고, 자기의 육체적 기쁨을 조절하는 기교를 부려야 한다. 데카르트가 “성찰하자!”라고 쓸 것처럼 몽테뉴는 “심사숙고해 보자!”라고 소리친다. (57)

    마지막 정력에 이르기까지 성찰하자. 베르나르 드 끌레르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가 명성의 공시대(公示臺) 설치를 예측하며 기대했던 효과와 비슷한 이상한 효과가 있다. 과시에 따라 제공된 이 세계에서 인간들은 바람에 부풀어서 풍선처럼 다루어진다. 기술과 과학으로부터 빌어올 것은 아무 것도 없다. 자! 가장 단순한 수단에 호소해 보자. 하늘로부터 인간적 지혜를 회복하기 위하여 “심사숙고해 보자!” (58)

    할 수 있다는 능력만이 남는다. 인간만이 즉자적으로 마음이 다시 가라앉을 수 있는가? 진실로 인간은 아무런 장애물 없이 있는가? 참으로 마음을 달래 주며 영양을 주는 관례적인 신앙이 있다. 그래서 우리는 페리고르지방처럼 기독교적이다. 분할하는 신앙보다 더 무서운 장애물이 있다. 따라서 이 장애물은 여러 악을 제거할 수 없기 때문에 악을 살찌게 하는 결과가 된다. “크고 아주 능력있는 수여자(受與者)”앞에 놓인 진지한 신앙이 아마도 있을 것이다. 그 신앙은 포기를 요구한다. 자신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자신이란 더 이상 존재하지 않는다. 그래서 그것은 [빠스칼의] 󰡔빵세(Pensées)󰡕(사후 1670)의 시론이 문제 삼는 것과 다른 종류의 [몽테뉴의] 󰡔시론(Essais, 1580)󰡕 이다. 몽테뉴는 삶 위에 죽음의 거룩함을, 정의 위에 완만한 죽음의 거룩함을, 그리고 행복한 의식 위에 문화적 죽음의 거룩함을 옮겨 놓았다. 그는 잘 행했다. 그는 이루었다. (58)

(3:04, 59Q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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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469 소크라테스(Socrate, Σωκράτης, 469-399; 70살) 아리스토파네스(Ἀριστοφάνης, 450-386)가 소씨를 아테네의 “등에”라고 불렀다.

O

1079 아벨라르(Pierre Abélard, (Petrus Abaelardus), 1079-1142) 프랑스 철학자, 변증론자, 신학자. 개념주의 발명자(inventeur du conceptualisme). 󰡔Epistolae duorum amantium (Lettres des deux amants), 1115󰡕 La romance d'Héloïse (1113-1115). 󰡔긍정과 부정(Sic et non, 1122)󰡕, 󰡔불행한 이야기(Historia calamitatum 1132), L'Histoire de mes Malheurs)󰡕, 편지 「Historia calamitatum. Epistola I) (« Histoire de mes malheurs. Lettre I », vers 1132)」

1090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 프랑스 수도사, 설교가. 십자군 독려, 시토파(l'ordre cistercien, ou ordre de Cîteaux)는 클뤼니 수도원과 달리 베네딕트파 규율을 유지. 베르나르는 신앙 우선으로 지식(변증법)을 주장하는 아벨라르에 반대했다.

[1398 구텐베르크(Johannes Gensfleisch zur Laden zum Gutenberg, 1398-1468), 본명: 요하네스 겐스플라이시(Johannes Gensfleisch). 1440년경에 금속 활판 인쇄술을 사용한 독일의 금(金) 세공업자이다. 본명은 이고,

[1483 루터(Martin Luther, 1483-1546) 독일 신부, 신학자, 종교개혁가. 루터파, 감리교파, 세레파들이 영향을 받았다.]

[1484 츠빙글리 (Huldrych Zwingli, 1484-1531): 카톨릭 신부로서 스위스 종교 개혁가. ]

[1509 칼뱅(John Calvin, Jehan Cauvin, 1509-1564), 프랑스 신학자. 스위스 제네바. 위그노파, 장로파. ]

1533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프랑스의 사상가, 모랄리스트. 프랑스의 르네상스기(期)를 대표하는 철학자, 문학자이며 󰡔수상록󰡕의 저자이다.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파스칼의 가명: Louis de Montalte, Amos Dettonville, Salomon de Tultie.]

1638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1638-1715), 프랑스 철학자, 신학자. 기회 원인론자, 오라토리오회(la congrégation de l'Oratoire) 신부.

1869 브룅슈비끄(Léon Brunschvicg, 1869-1944) 문학으로 에콜노르말에 입학, 철학교수자격시험 1등, 프랑스 과학철학자, 칸트와 스피노자 경향의 프랑스 관념론 철학사가,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

지명: 페리고르(Le Périgord (Peiregòrd ou Perigòrd en occitan), 누벨-아끼텐 지방의 도르노뉴 주의 지역. 보르도 북동쪽에 있는 도시지역이름이다. 중요도시는 베르제락이다. 중심 동네는 페리괴(Périgueux)이며 몽테뉴의 고향이다. 현재로 지역의회에는 좌파(공산당)보다 우파가 우세하다.

“최고선에 대한 288개”의 종교적 정의, “최고선(Summum Bonum)에 대한 288개”, 키케로(Cicéron, 전106-전43)의 󰡔아카데미카(Academica, 전45: Les Académiques)󰡕과 󰡔최고선악론(De finibus bonorum et malorum, 전45)󰡕 연관있따고 하나 정확하지 않다. -

(4:07, 59QL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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