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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랑스 철학사201, 데카르트 : 자아의 성립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23|조회수52 목록 댓글 0

로비1922프랑1966철학201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로비네(AndréRobinet, 1922-2016), PUF, (1966) 1977.

류종렬, 서광사, (1987) 수정본.

프랑스 철학사(La philosophie française, 1966)

- 1장 중세 철학 / 2장 근세 철학 / 3장 현대 철학 / 결론

1장 중세 철학

 101, 샤를마뉴시대의 철학, 알퀭: 문화적 세계

 102, 요하네스 스코투스의 철학: 자연의 세계

 103, 안셀무스의 지성의 인식: 지적인 인식

 104: 이법의 뿌리: 영혼, 빅토리아학파

 105, 아벨라르 변증론: 분할과 결합, 개별과 보편.

 106, 베르나르의 반(反)변증론: 신앙으로 회귀

 107, 아리스토텔레스주의와 플라톤주의 부활,

 108, 프란체스코파: 플라톤주의, 지혜의 추구

 109, 도미니크파: 아퀴나스주의, (논리학을 통한) 신앙의 체계.

 110, 중세의 중간 평가: 원시에서 근대로 이행에서 중간참(中間站)

 111, 플라톤 철학의 탐구 : 13세기 프란체스코파의 확장 [제1기 르네상스]

 112, 플라톤주의 확장: 프란체스코파의 명증성 추구

 113 아리스토텔레스주의의 재등장 그리고 발전

 114. 아리스토텔레스주의에서 이탈: 자유사상가로 [제2기 르네상스]

 115. 제3기 르네상스(15-16세기): 그리스 문화에 주목

 116 자의식의 배태: 몽테뉴

2장 근세철학

 201. 데카르트 : 자아의 성립 

* * *

제2장 근세 철학

[§01. 데카르트: 자아의 성립

근대 철학을 열다: 프랑스 철학의 탄생

새로운 사유: 두 실체와 속성들.

분석기하학의 창안

*

    여러 세기 동안에 알퀭(Alcuin, 730-804)이 분류했던 대로의 백과 전서적인 지식을 상징적으로 개관하면서 테오뒬프(Théodulf, 755-820)는 자신의 노래들 중의 하나를 지식의 계통수를 묘사하는데 바친다. 세계의 모습대로 만들어진 큰 접시를 가정해보자. 날씬한 줄기를 가진 건장한 나무가 거기에 서 있다. 뿌리에 모든 지식의 수액이 올라간다. 사실상 자신의 왕관 아래에 많은 나뭇잎을 가진 지혜가 있다. 상식과 신앙이 지혜를 호위한다. 줄기로부터 오른편으로 수사학과 변증법이 뻗어 나간다. 수사학이라는 성벽의 총구들은 도시를 방어한다. 변증법이란 뱀은 자신의 또아리로부터 오른쪽 길로 뻗어 나간다. 왼편으로는 윤리학의 나무 가지가 네게의 덕목 – 신중, 용기, 정의, 절제–을 받들고 있다. 더 높이 올라가 보면 거기서도 줄기가 갈라진다. 거기에서 자연학이 발견된다. 기하학은 천체 순환 제도돠 하늘의 다섯 층을 측정한다. 음악은 리라의 재능과 고르지 않은 여섯 구멍을 가진 플루트의 기술을 과시한다. 천문학은 결국 땅을 하늘에 결합시킨다. 말은 잎사귀에서, 그뜻은 그 열매에서 알아라, … 우리의 삶은 가장 높은 지혜의 상태인 계통수의 열매에서 양분을 얻는다. (60)

   훌륭하게 그려진 이 상징도는 오를레앙 시학(詩學) 학교의 정열과 그 주교의 풍부한 교양을 동시에 증명해 준다.즉 테오뒬프가 9세기 초에 세웠던 제르미니 수도원의 어떤 모자이크에 사람들이 놀랄 수밖에 없는 것이 상세히 설명되었으리라. (60)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또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모든 철학은 한 그루의 나무와 마찬가지이다. 그 뿌리는 형이상학을 이루고 있으며, 줄기는 자연학이고, 그 줄기로부터 나온 가지들은 세 개의 주요 학문, 즉 의학, 역학, 도덕론에 이르는 다른 과학들이다. 나는 가장 높고 가장 완전한 도덕론을 염두에 두는데, 이 도덕론은 다른 과학의 완전한 인식을 전제하며 지혜의 마지막 단계에 놓인다.” (60)

   테오뒬프는 17세기 중안에도 아주 사라져 버리지는 않았다. 데카르트의 󰡔철학의 제원리(Principia, 1644)󰡕는 1644년에 나오고, 테오뒬프(755-820)의 시는 800년대에 구성되었음에랴! 그러나 󰡔철학의 제원리󰡕를 프랑스어로 번역하게 한 「편지」는 1647년초에 작성되었다. 1646년에 있어서 시르몽(Jacques de Sirmond, 1559-1651)은 그 세기 초 이래로 셋째의 테오뒬프였다.문화의 세계는 통시적일 뿐이다.즉 그것은 연속적 동시성을 갖는다. (60)

   테오뒬페는 지식의 상징도에 역동적 의미를 부여했다. 나무는 진보적 방법 서설로서 우리 눈 아래에서 성장한다. 밑바닥에 문법(la grammaire)이 게으름을 각성시키고 잘못을 고쳐 나간다. 그래서 잠정적인 지식론과 도덕론이 있다. 첫째 층계참에 있는 수사학-변증법과 윤리학의 상반된 가지들은 최고의 지혜를 구성하지 못한다. 정확한 여러 과학들의 지지를 받고, 그리고 자연을 다룬 손의 성과에 의해 개화된 자연학이 흡수 되어야 한다. 정상에, 즉 지혜의 책임하에 나무의 열매들이 달려 있다. 가장 겸손하고 가장 고상한 인식들이 끊임없이 성장한다.과하ㄷ.

   데카르트의 상징도의 일반적인 도식도 서로 다르지 않다. 그것은 우리가 만약 뿌리가 형이상학을 상징한다고 생각한다면, 󰡔철학의 제원리󰡕는 그 계통수의 모습이 솟아 나오기 전에 잘 준비된 토양으로서 󰡔방법서설(Discours de la méthode, 1637)󰡕을 넘어서는 입문적 학문에 상응하는 것이라고 좋게 생각하는 한에서이다. 확실히 진실한 철학은 “제1원인에 의한 진리의 인식”과 더불어 시작할 뿐이다. 그러나 우리는 우리 자신의 바탕에 무엇을 갖고 있는가? 얼마간의 분명한 개념들을 갖는다.우리는 감각적 경험에 의하여 사물들로부터 어떤 자연적 신뢰를 받아들인다. 우리는 타인으로부터 대화를 통하여, 강으를 통하여, 우리의 독서를 통하여 우리 문화로부터 행동이 뒤섞인 많은 지식을 얻는다. 생명의 위급함에 대답하기 위하여 우리는 잠정적 도덕론을 이용한다.모든 문제를 극복하기 위하여 우리는 수학적 모델에 따라서, 우리 스스로를 완전하게 하는 변증법의 영감을 받은 어떤 논리의 도움을 받는다. (61)

   간략하게 말해서 만약 데카르트의 상징도가 “형이상학”이 아니라면, 그것은 테오뒤플의 둘째 단계에 상응할 것이다. 즉 수학화된 자연학에 입각한 학문의 분과인 최고의 도덕론에 상응할 것이다. 그러나 줄기는 다른 가지로부터 나온다. 그 줄기는 이제 문법 속에서 더 이상 자기의 수액을 길어 올리지 않는다. 그 줄기가 수하학과 변증법으로부터도 또한 네가지 덕목의 도덕론으로부터도 자라나지 않는다. 그 줄기는 “형이상학”에 근거를 둔다. 알퀭과 그의 대부 테오뒬프의 백과사전에서도 나타나지 않는 새로운 의미를 갖는 용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백과전서에 있어서와는 반대로 자연학 앞에 나온다. 즉 선자연학(pro-physique)이다. (61)

   󰡔철학의 제 원리󰡕의 표지 가장자리에 그려진 삽화 아래 부분에 있는,생각에 잠긴 지혜의 여신은“과학들 속에서 더 나은 무엇이 있나를 매우 열심히” 연구했다. 그 여신은 “올바르게 행해야 할 항구적 의지”로부터 생기를 얻었다. 현학적이면서 완전한 정신을 소유한 수학자이자 형이상학자는 과학에 충만하고 믿음을 존중한다. 알퀭은 샤를마뉴에게, 데카르트는 엘리자베드에게, 그리고 그녀는 또한 팔라틴 선거후(選擧候)에게 호소하고 있는가? 윤리학의 네 가지 덕목들까지도 신의 은총과 닮은 인간의 모습을, 즉 자기의 “확고하며, 정의로우며, 용기있고 절제있는” 심성의 인간을 완성하게 하는 덕목들이다. 데카르트는 근세 인식론의 첫 장에 모습을 드러낸다. 그는 르와르 분지의 조상들과 똑같은 불안과 기대를 체험한다. “오직 이 지혜를 통해서만 우리는 미개인과 야만인들로부터 구분된다. 각각의 국가는 인간들이 그것을 이용하여 더 잘 철학하는 것만큼 더 문명화되고 개화된다. 이렇게 해서 진실한 철학자를 갖는다는 것이 바로 한 국가 안에서 있을 수 있는 최고의 선이다.” (62)

   그러나 어떤 철학자도 “참된 원인”을 찾는ㄴ데 성공하지 못했다. 감각적 인식에 따라 추론함으로써 철학자들은 참된 원리를 끌어낼 수 없었고, 세계가 불확실하다고 선언했다. 그렇지 않으면 확실한 근거 없이 원리를 독단으로 간주함으로써 이들은 지식을 그 독단의 씨앗으로부터 날조해 냈다. 편견에 대한 태만과 다음 행위의 요행 사이에서, 지각이라는 전(前) 세계와 행위를 위한 세계 사이에서 데카르트의 사유는 절대적 지식으로 가득찬 섬의 일람표를 작성한다. (62)

   데카르트의 형이상학은 그로 하여금 그가 이전의 시대를 수식적으로 지배한다는 인상을 얻게 한다. 1915년에 벩송(Henri Bergson, 1859-1941)은 프랑스 철학에 관한 간결한 논문을 작성했다. 1933년에 그는 소논문의 개정 2판을 내면서 몇 마디를 덧붙이고 있다. “확실히, 어떤 역사적 관점으로 보면, 데카르트의 저작은 분할선을 표시한다. 그 선분으로부터 쌍방으로 두 개의 둑이 펼쳐지는데, 그 하나는 중세 전성기로 연장된다. 그러나 그의 저작이 가파른 절벽에서 시작하지 않았다는 것이 실제로 정확하더라도, 데카르트가 제일 꼭대기에 있는 창조적 천재, 즉 새로운 정신의 원천이라는 것은 사실이다. 데카르트로부터 모든 근세의 철학이 시작되고, 특히 오직 그로부터만이 프랑스적이라고 말할 수 있는 철학이 존재한다.” 이 소논문이 두 번 편집 출판되는 사이에 질송(Étienne Gilson, 1884-1978)의 저작이 나왔다! (63)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주제는 이 논평이 완화시킨 근본적인 확신을 유지하고 있다. 즉 데카르트의 저작은 어머니 없이 창조된 말씀이다. 그의 철학은 아버지도 어머니도 없다. (1936년에 데카르트 연구 협회에서 이 확신은 그의 수학에 대해서만 주어졌을 것이다.) 그 절벽은 여전히 지속하고 있다. 고대 과학과 근대 과학 사이에, 즉 플로티노스(Πλωτῖνος, 205경-270경)와 데카르트 사이에는 브룅슈비끄(Brunschvicg, 1869-1944)가 그것을 지적했던 대로 아무런 관련도 없다. 프랑스 철학은 데카르트에서 시작한다. 왜냐하면 프랑스 철학에 관한 이 아주 짧은 책자가 데카르트로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이 프랑스 철학에서 벩송은 데카르트 속에 있는 다섯 가지의 특징을 인정했다. 즉 그것은, 권위의 명증에 반대하는 명석 판명한 관념들의 철학, 기하학에 의해 영감을 받은 지성으로 일반적 진행절차를 삼는 방법론, 기계론적 모델은 근거로 해서 수학적으로 지배되는 자연의 일반 이론, 두 개의 실체, 즉 물질 연장과 정신 사유를 구분한 후에 사유를 단순한 요소들로 해결하고자 하는 노력, 그리고 자유와 직관의 철학을 불러일으키는 의지의 밑바탕에 있는 영혼의 내적 관계를 말한다. 프랑스 사상은 자율적 반성과 과학적 접촉에 취미가 있다. 프랑스 사상은 방법(론)적 정신을 퍼뜨렸고, 과학의 정복을 옹호했다. 그렇다고 해서 인식 없이는 결코 나아갈 수 없는 이 의식이 데카르트 철학의 지성성의 이상을 유지했던 것은 아니다. 바로 말하자면, 벩송은 나름대로 과거 여러 세기의 맨 꼭대기에서 자신의 철학을 본다.탈레스(Θαλῆς, 전625경-전548경)로부터 [벩송의] 󰡔의식의 무매개적 자료들에 관한 시론(ssai sur les données immédiates de la conscience, 1889)󰡕에 이르기까지[2500여년 동안] 철학의 눈가림만있었다. (63)

 

   우리가 이제 제기한 것 중에 하나는 데카르트 저작에 대한 우리의 이해와 관련되고, 둘째 그의 저작과 이것보다 앞서 나온 저작들 사이의 관계이다. (64)

우리들 시대는 스스로를 데카르트 철학의 시대라고 생각한다. 벩송은 스스로 데카르트적이라고 판단한다. 이것은 이 용어가 매우 넓은 의미로 사용되었음을 나타내고 있다! 마치 사람들이 [플라톤의] 󰡔향연(Banquet)󰡕에 수록되지 않은 사랑을 플라톤적인 것으로 다루지 않듯이, 에피쿠로스가 공격했던 향락주의자를 에피쿠로스주의로 다루지 않는다. 오늘날 어떤 데카르트적인 합리주의자󰡔형이상학적 성찰(Méditations métaphysiques, 1641)󰡕의 계획 속에 들어갈 것인가? 신의 존재를 논증하고, 영혼의 불멸성을 증명하고 있다니! 형이상학의 이러한 목적은, 사람들이 정신의 실체가 물질과 공통성이 없는 순수 사유라는 것과 물질은 역동적이 아니라 기하학적 본질이라는 것을 인정하고 있음을 가정하고 있다. 그래서 정신의 측면에서 본유관념들, 즉 이성적 지식의 획들을 인정하는 개념들, 정신적 실체의 관념도 아니고 물질적 실체의 관념도 아닌 객관적 실재로부터 부여받은 관념들을 소유한다고 인정하자. 물질적 측면에서 무기물이 기계적인 법칙에 따라 정돈된다면 동물은 기계일 뿐이고, 인간은 기계 장치처럼 다루어야 한다는 것을 시인해야 한다. 정신적 실체의 존재와 선회[회오리] 이론, 신의 존재와 미세한 물질의 존재, 영원한 진리의 창조와 분석적 기하학의 비초월성, 색채에 대한 주관적 이론과 전적으로 기하학적인 굴절 광학 이론을 동시에 주자해 보자. 우리 시대의 어떤 데카르트주의자는 데카르트의 물리학의 최소한의 주제를 인정하고 그의 수학에 만족하고, 동물은 느끼지도 생각하지도 못한다고 생각하고, 색체는 영혼 속에 있다고, 의식은 물질과 다른 본성이라고, 이성[이법]은 본유적이라고, 등등 으로 판단한다. 데카르트는 결코 그랬을 리가 없다고 해서 여기서 우리는 데카르트주의자가 아닌가! 더 좋게 말하자면, 의식 부대 현상과 경험에 의해 드러난 관념들과 개관적 감각들과 감각을 갖는 동물들 등등에 대한 데카르트주의는 데카르트를 공격했던 사람들의 이론과 일치하고, 공격자들이 그의 저작을 알았다 하더라도 데카르트주의는 데카르트가 공격했던 주제들과 일치한다. 데카르트는 우리들 스콜라적 학자들의 아리스토텔레스가 되었다. 우리는 그가 말했던 바를 더 이상 알지 못하고, 또 우리는 그가 거부했던 것을 옹호하기 위해 그의 권위를 덮어쓰고 있다. (65)

   정확히 말해서 그는 뒤섞인 것”(le mixte)으로부터 고무된 모든 이론, 즉 아리스토텔레스로부터 벩송에 이르기까지 정신 또는 물질로 환원되는 모든 단면적인 철학을 거절했다. 의심할 바 없이 그는 라플레쉬 학교의 예수회 회원들에게서 받은 형식을 지니고 있었다. 예수회 회원들은 그들이 오래 전부터 중세철학의 개념을 잃어버려서, 데카르트가 중세 철학의 정체를 폭로하는데 주의하지 않았다. 코페르니쿠스(Copernicus, 1473-1543)가 지구는 태양의 둘레를 돈다고 선언했을 때, 그가 천체를 창안하지 못했던 것처럼 데카르트도 그의 철학이 담당했어야 할 중대한 개념들을 창안하지 못했다. 그러나 전수된 아리스토텔레스 철학의 의미에 맞서서 개념을 이해하면서, 그는 자발적으로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 354-430) 철학의 전통을 되찾고 있다. 토마스주의 신학자들의 물체관에 대하여 자기를 방어하면서, 그는 관념론 철학의 새로운 창을 연다. 즉 비판적 관념론의 창을 연다. 그렇다고 해서 어린 지성이 존재에 입힌 금박들을 벗겨 버린 그 존재에 접근하는 것이 거부되지는 않는다. (65)

   라이프니츠(Leibniz, 1646-1716)와 질송은 중세 저작들과 데카르트의 저작들을 동시에 이해하고 있기에 절벽의 모습에 대하여 수정적인 관점을 끌어내는 데 어려움이 전혀 없었다. 라이프니츠는 데카르트주의를 사용하여 철학의 부속실을 만들었고, 질송은 그것으로써 무기고를 만든다. 양자에게 있어서 방들은 따로 있다. 주제들을 모아서 조망해 보면, 사람들은 앞의 여러 세기 동안에 데카르트를 부스러기로서, 가끔은 작은 알맹이로서 발견하기조차 한다. 누룩(새로운 생각을 일으키는 원인)이 부족하다. 구획선의 관점에서 보면 데카르트의 사유가 갖는 중세적 기원들은 부정할 수 없다. 인간과 신의 자유, 의지주의, 악의 이론, 오류의 기원, 판단의 원천, 코기토, 존재론적 논의 등에 대해 모든 사람들이 말했다. 그러나 사람들은 이렇게 조직적으로말하지는 않았다. 지금 여기에서처럼 이렇게 긴장하면서 거부하지도 않았고, 이렇게 집중적으로 핵심을 말하지도 않았다. (66)

 

   이 형이상학이 인간 지식의 근거에서 다시 무엇을 발견하는가? 창조되거나 혹은 창조하는 자연에 입각한반성이 아니다. 왜냐하면 데카르트는 우주적인 혹은 신학적인 독특한 인과성의 언어를 포기하기 때문이다. 산술 언어로 된 “물질적 실체”로서 완전히 무장되어 나온 자연에 관한반성이다. 알퀭과 같은 철학자는 창시자에 의해 시작된 작품의 창작자일 뿐이었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마치 창작자의 작품을 철학자의 증인으로 삼듯이, 알퀭을 창시자로 임명하게 하는 작품의 창시자이다. 중세 철학자들은 고학의 역할을 무시하지 않았고, 수학적 지성의 역할도 무시하지 않았다. 그들은 그것을 수단으로 삼는다. 데카르트는 그것을 목적으로, 즉 제2의 감각에 의해 알려지고 순화된 물체들의 “영역”에서 절대적으로 유효한 모델로 삼는다. 데카르는 수학적 지식을 그것보다 앞선 역사에서 분리한다. 그는 당장에 수학적 지식으로부터 시작한다. (66)

 

사람들은 중세 철학자들이 그 당시의 수학자들에 의해 제시된 보잘 것 없는 수단만을 그들 마음대로 다룰 수 있다는 것을 주목함으로써 브룅슈비끄에게 불리해질 수 있었다. 그리스 수학들은 (왜냐하면 문명의 역사 속에 무미건조한 손실들이 있기 때문에, 그것들이 전체적으로 복원된다 하더라도) 그리스 철학만을 불러일으킬 수 있었다. 중세 철학자들은 그들의 형이상학을 위한 수학을 가지지 못했다. 무한자의 신학을 위하여 그들은 한정자의 수학만을 다룬다. 에리우게나(Scotus Eriugena, 810877)가 소중히 한 무한과 차별[차이]의 철학은 미분과 적분 수학의 출현을 벌써부터 앞섰다. 게다가 유비적인 무한성은 사유를 유혹하여 한정자가 만든 상대적 무한성 속에 정도의 차이를 삽입하게 한다. 신학은 철학자들에게 무한한 무한자의 관념 능력을 부여한다. 신학은 과학이 존경할지도 모를 현상들을 더 이상 구원하지 못한다. 감각할 수 있는 것과 지각된 것에 밀접한 철학은 시각(visible, 볼 수있는것)을 인정함으로써 이미 붕괴를 표시하고 있다. 현상들의 침범은 내재성이란 이름으로와 마찬가지로 초월이란 이름으로 계속된다. (67)

   그런데 내재성은 앞으로 굉장한 도약을 한다. 그것은 아베로에스주의의 압력하에 철학으로, 실험주의의 압력하에 과학으로, 국가가 종교에서 해방됨으로 역사에로 도약한다. 철학자가 자문할 때, 그는 분파로 나누어진 사회에서 스스로를 재발견하는데, 거기에서 각자 자기 문화의 토템을 숭배한다. 크리스트교의 사상이란 때때로 사회를 무시하고 도 자주 사회를 부정하는 전체성으로의 경향일 뿐이다. 과학적이고 간결하고 설명적인 시각은 지식이 명석판명한 지성의 이상에 일치하도록 그 지식을 주위에 분배할 확고한 점들을 추구한다. 신성한 결정론의 통일성은 깨진다. 결정론은 물체적 실체의 영역에서만 완전하게 작용한다. 심리학에서는 무질서가 자의 자유를 지배하고, 신학에서는 질서가 감춰진 신에게 자리를 양보한다. 통치권에서 나온 강제력은 사회적 통일성도 문화적 통일성도 유지할 수 없다. 물리학의 제거는 지식인의 추방과 어깨를 나란히 했다. 철학이 신학을 섬기는 것과는 다른 임무를 재인식하자마자 국가는 자기의 임무를 과연 포기할 수 있었을까! 신은 기술자들의 정신에 반영된다. 철학자는 신을 시계 공장에 있는 노동자를 본 따서 상상한다. 일상의 집합적인 조직화에서 신의 실체적 현존은 신학과 더불어 신학교의 도서관 속에 갇혔다. 여러 문화의 붕괴는 데카르트가 한 작업이 아니라 오히려 그것이 데카르트를 만들어 냈다. (67)

보편적 설명을 열괴로 하여 신의 현존을 구출하기 위하여 그는 최고의 창조자와 일치하면서 자신의 능력을 활용하거나, 또는 세계의 통치 속에서 자인의 지혜의 기획을 완숙하게 하는 수단을 발견해야 한다. 데카르트의 신은 원인-결과 관계의 효과적인 모델을 부흥시키는 모든 능력을 해사한다. 말브랑쉬(Malebranche, 1638-1715)의 신은 수단과 목적의 관계 내부에서 작용한다. (67)

 

[신]

   데카르트의 신은 자신의 통치의 열쇠를 쉽게 내맡기지 않는다. 만일 17세기에 “변증법론자들”이 있다면, 말브랑슈와 라이프니츠의 측면에서 그들을 찾아야 한다. 사람들이 파스칼을 반변증법론자들의 계열에 포함시킨다는 것은 자명한 일이다. 철학자들의 신이 있고 그 보다 앞서 아브라함(Abraham, 전1530?)의 신도 있다.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의 진영에서 데카르트를 거부한 것은 상식 밖이다. 그러나 데카르트는 13세기에 이미 신앙과 이법 사이에 만족스런운 결별을 도입했다. 신앙의 사건들을 기록하기 위하여 “인간 그 이상”이어야 한다. 데카르트의 신은 파스칼(1623-1662)과 아르노(1612-1694)의 신처럼 우리가 무한한 “속성들에 의해서만 도달할 수 있는 숨겨진 신”, 즉 전지전능이다. (68)

[코기토]

   만일 신앙의 진리들이 악령의 손아귀에서 벗어난다면, 그 진리들은 합리적 형이상학을 구성하는 일에 아무 소용이 없다. 형이상학이 관계하는 전통적 진리가 아닌 경험의 진리를 생각하는, 심지어는 의심하는 사유가 태연하게 확인하는 그러한 현존의 진리이다. 신앙의 진리들은 제1원리의 확신 – 나는 의심한다, 나는 생각한다, 나는 현존한다 –에는 아무 관련이 없다. 데카르트는 우리가 중세에 형성된 것으로 보았던 일련의 사유를 아우구스티누스(354-430)의 문맥 속에서 뽑아낸다. 즉 그는 그 일련의 사유를 따로 떼어내서 그것을 강조하고, 신학적 문맥에서 그것을 제거하고 넘어서 버리기는커녕 그것에서 출발한다. 간단히 말하면 그렇게 행해지는 사유를 근거로 하여 형이상학과 인간학에 대한 최초의 확신이 서게 된다. 코기토의 뗄 수 없는 세 가지 의미 (나는 무엇이며, 나는 어떻게 존재하며, 내가 존재하므로 무엇을 행하는가)는 여기에서 삼위일체의 방식이 아니라 일원적 방식으로 된다. 이 세 가지 의미는 단지 사유하는 주체에게만 돌려보낼 뿐이다. 이 의미들은 삼위일체와 관계없는 신에로, 계시와 무관한 진리의 기초에로 나아간다. (68)

   악령[malin génie]의 가설은 대상의 지각 속에서 기초된 진리를 거부하도록 한다. 사유하는 주체의 진리만이 고려할 만한 것이며, 모든 진리는 그러한 사유의 진리에 매여 있다. 만일 형이상학이 물리학의 기초라면, 그것은 바로 형이상학이 연구하는 진리들은 대상의 진리보다 더 명증적이고 더 직접적이기 때문이다. 과학적 인식의 모델은 정신에로의 자기 부과에 대해서가 관념의 명증성 이외에는 더던 것도 인정하지 않으려는 사유를 고취시킨다. 명증성은 정신이 사실상 그 자체적이고 그 자신의 실제적 현존이고, 또 자신의 순간적 진리인 만큼만 반복된다. 사람들이 삼단논법의 대전제(“생가하는 모든 것은 존재한다”)가 내재되어 있을 삼단논법의 결론을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부터 이끌어 내기 위하여 “그러므로”를 강조하면서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라는 말을 설명하든, 또 사람들이 사유의 원리 (“생각하기 위해서 존재해야 한다”)를 “나는 생각한다. 그러므로 나는 존재한다”로부터 끌어 냄으로써 이 선결해야 할 원리가 사실의 확증에 자신의 필연적 진리를 부여하도록 하든, 이와 반대로 사람들이 그 말에서 추론이나 사유의 법칙을 보는 것이 아니라, 존재론적 요구를 드러내는 직관을 보든, 그 모든 경우에 있어서 데카르트적 형이상학의 고고학은 코기토의 두 가지 측면을 전달하고 있다. 즉 그것은 존재와 진리이다. 이 코기토가 단지 심리학적이라면, 나의 확신에 모슨 소용이 있을까? 무엇보다도 그것이 나에게 나 자신의 현존을 결코 의심할 수 없다는 사실을 증명해 주지 못한다면, 실재적 현존들에 대한 나의 탐구에 그것이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신(神)]

   신의 존재에 대한 데카르트의 증명은 신의 관념과 신의 실재적 모델 사이의 연결의 진리 위에, 그리고 나에 있어서 무한한 관념의 결과와 그 실재적 원인을 연결하는 구체적 원리의 현존 위에 차례로 근거하고 있다. 사유에 의해 사유된 것들 중에는 그것의 실재성의 정도가 나의 자아의 완전함이 확신하지 못하는 그런 것이 있다. 나의 사유 양식의 이러한 실재성은 생각하는 실체의 단순한 양상이 아니다. 이런 관점에서 볼 때, 모든 관념은 구별되지 않는 같은 성질의 것이다. 왜냐하면 무(無)는 성질들을 갖지 않기 때문이다. 만일 관념들 사이에 차이가 있다면, 그것은 더 이상 대상들 사이의 차이 때문이 아니다. 왜냐하면 가지(可知)적 태양은 감각적 태양 혹은 천문학적 태양과 똑같은 크기가 아니기 때문이다. 표상은 제3의 실재성, 즉 사유도 아니라 대상도 아닌 반(半) 사유와 반(半) 실재성을 개입시킨다. 개입하는 그 존재는 인과성의 원리를 자신에게 적용할 수 있을 정도로 실재성을 충분히 갖는다. 신의 관념이 우리에게 신을 믿도록 하기 때문에 그 원리 덕분에 우리는 대상인 신이 존재하나는 것을 보증한다. 자연적인 빛 때문에, 나는 다음 사실을 알게 된다. 즉 “효과적이고 전체적인 원인 속에도 그 결과 속에서 만큼의 실재성이 최소한 있어야 한다. 왜냐하면 결과가 자기 원인으로부터가 아니라면, 자기의 실재성을 어디에서부터 끌어낼 수 있는가? 그리고 만일 원인이 그 자체 속에 실재성을 갖지 않는다면, 이 원인은 어떻게 실재성을 결과에 전달 할 수 있을까?” 무한히 완전한 존재의 관념은 보다 열등한 완전성을 포함하는 존재로부터 나올 수 없다. 그런데 신적 존재의 실재성은 나의 영혼의 개관적 실재성이라고 나의 이식이 나에게 말하고 있기에, 즉 표상적 실재성을 무한히 초월한다. 그러므로 신적 존재의 실재성은 자아가 아닌 원인을 가져하고, 무한한 실재성을 소유해야 하고, 따라서 자아의 바깥에 현존해야 한다. 무한히 실재적인 신만이 내가 자아 속에 현존하고 있음을 확인하는 표상적 실재성의 원인일 수 있다. 더나가가서 결과들에 의한 이 증명의 귀결로서, 만일 내가 신에 귀속시킨 이 완전함이 자아에 의한 증명이라면, 나는 그 완전함을 자아 자체에 반드시 귀속시킬 것이라는 것을 사람들은 알고 있다. (70)

[타고난 관념]

   토마스 아퀴나스의 둘째 증명은 지각적 도식으로부터 관념적 도식으로 나아간다. 이 증명은 자신에 열중한 사유의 끊임없는 운동으로 무장을 한다. 참된 신은 사물들이 아니라 자아로부터 회복되고, 악마는 그가 떠났던 하구의 세계로 되돌아올 뿐이다. 왜냐하면 완전하고 연존하며 모든 실재성을 포함하는 신만이 오직 진ㄴ실일 수 있기 때문이다. 신은 이 우주가 세척되어 새로운 존재로서 나타나는 것을 보증한다. 이성들의 질서는 구체적인 것의 지성을 생겨나게 하지만 그렇다고 해서 그 구체적인 것의 실재성의 원인은 아니다. 신을 받아들였다고 단언할 수 있는 능력(데카르트는 종교적이고 철학적인 중세의 전통이 그 개념(신) 속에 주입시켰던 창조적이고 무한한 특성을 어떤 순간에도 문제 삼지 않는다)이 신적인 완전성을 위반할 수는 없을 것이다. 잘못이란 나의 잘못이며, 그것은 나의 의지가 그 무한한 운동의 분명한 이해를 초월한다는 사실로써 나의 유한성을 증명한다. 결국 진실한 신은 나에게 질료적 사물의 본질을 보증한다.나로 하여금 물체의 본성을 형성하는 것으로 생각하게 하는 너비(연장, 延長)의 본성은 직접적으로 나에게 명백하게 알려질 수 있으며, 또 그것은 인식론적이고 존재론적인 근거를 그것에 부여하기에 앞서서 데카르트의 본유관념(l’idée innée)들이 규정했던 기하학적 모델에 따라 작품을 탐구하도록 나에게 허락한다. (71)

[물체: 신체]

   질료적 사물의 존재는 존속한다. 그 첫째 성찰이 거부되자 곧 여섯째 성찰이 첫째 성찰을 나에게 회복시켜준다.물리학[자연학]은 형이상학 다음의 것이다.왜냐하면 형이상학은 물리학에 앞서는 것이기 때문이다. 줄기는 뿌리로부터 나온다. 내가 물질의 본질로부터 얻은 명석 판명한 인식은 나의 정신 바깥에 있는 존재의 관념적 가능성을 표명한다. 왜냐하면 물체는 영혼과는 다른 본질이기 때문에 물체는 영혼 속에 공존할 수 없다. 감각적 존재의 필연서의 기준은 물체에 관한 관념들의 표상적 양에서 생겨날 수 없다. 왜냐하면 신의 관념만이 그것이 직접적으로 존재를 지시하는 바로 그런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감각적인 것은 자신의 존재론적 특권 속에서, 그러나 자신의 고유한 인식론적 정도에 따라 세워져야만 한다. 물체로부터 나에게 온 지식들은, 내가 원하는 바가 무엇이든, 내가 어쩔 수 없이 받아들이는 결과의 비결정적인 원인을 지시함으로써 강제적으로 자아에 작용한다. 이 물체들이 존재한다고 우리에게 믿도록 강요하는 물리칠 수 없는 성향은 데카르트가 제시한 둘째 이유이다. 그러나 신적 진실성은 또한 이 점에서도 작용한다. 이 신적 진실성은 원인과 결과 사이의 관계의 필연적 원리인 만큼 우리의 관념과 대상의 일치를 잘 보증한다. 확실히 사물과 물체의 자체의 물질성은 우리 인식의 첫째이며, 가장 분명한 것인 자아의 그것보다 덜 엄격하게 증명되고, 우리 인식의 둘째 것인 신의 그것보다 덜 필연적으로 증명되지만, 그러나 우리가 자아 이외에 기대할 수 있는 모든 확실성의 첫째 것이다. (72)

 

    아주 완전한 이 존재의 관념에는 그의 깊이를 잴 수 없을 정도의 전능함이 검토되어 있지만, 그렇다고 해서 변신론의 문제를 해결한 것은 아니다. 어떻게 신적 속성들이 그것들 사이에서 우세한가? 그리고 섭리의 지배를 위하여 유효한 지표들이 무한한 실체의 분명한 개념 속에서 이러한 속성들의 우세로부터 연역될 수 있는가? 성찰의 응답에 이르자마자 데카르트는 그가 전대의 사상 발전에서 획득하지 못했던 것을 부득이 삼사 숙고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즉 신은 자족적인 원인이라는 것이다. 이 정의(定義)는 원인과 결과 사이의 연결을 위하여 앞뒤를 잇는 시간적 상상력과 관계를 끊는다. “무한하고 불가해안 전능의 개념은 신의 개념 속에서 이해된다. 신은 스스로 존재한다. 왜냐하면 가능적 존재가 그에게 적합하기 때문이다. 이런 결론은 우리를 추상적인 결정의 영역 속에 남겨둔다. “동시에우리는 신의 무한한 능력을 주시한다. 그것이 바로 신이 자기 자신의 힘에 의하여 존재할 수 있게 하는 그 무엇이다. 바로 이것이 스스로 있는 존재의 긍정적 의미이다. 자기 자신을 보존하는 것”, “그렇게 크고 그렇게 무궁무진한 능력을 마음대로 다룬다는 것, 그것이 존재하기 위하여 어떤 도움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보존되기 위하여 조금도 도움을 필요로 하지 않는다는 것, 즉 다시 말해서 자기 원인인 것의 긍정적 의미이다. 신이 스스로 존재하게 하는 것은 무로부터가 아니고, 신의 능력의 실재적이고 진실한 내재성, 즉 유한한 정신[인간]이 이해할 수 없는 내재성으로부터 생겨난다는 사실에서 나온다. 이 자기 원인이 우리에게 있어서 하나의 원인이 된다는 것은 문제도 아니다. 사람들은 신의 개념으로부터 그의 행위의 순환을 연격할 수 없고, 역사의 그리스도교적 필연성을 선험적으로 증명할 수도 없다. 신은 그가 영원한 진리의 창조자이기 때문에 확실성을 보장해 주고 있으나, 영원한 진리는 신의 본질 속에 속하지 않는다. 그 진리들은 창조의 관점에서만 관여한다. 전지전능은 전지전능 제한하는 선, 진실, 정의에 복종하지 않는다. 이 전지전능에 기초된 신적 자유가 전체이다. 세계를 만들고 세계를 보존하는 작용은 절대적으로 우연적이다. 우리는 이성[이법]만으로 그 지배방식의 어떤 것에도 귀착시킬 수 없다. 그리고 신앙은 신적 동기들과 목적들을 해결할 수 없다고 선언한다. (73)

 

[* 이 긴(59-73쪽: 14쪽) 데카르트에 대한 설명은 프랑스 철학사에서 데카르트의 중요성과 그 지위를 알려준다. 그리고 저자의 문학적 표현으로 한 서술방식이 매력적이다. (59Q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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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1530? 아브라함(Abraham), 1400? 이삭(Isaac, Jishâq), 1300? 야곱(Jacob), 전1230년경 모세(Moïse, 1230?), 예수(Jesus, 전04-후30)]

625 탈레스(Thalès de Milet, Θαλῆς ὁ Μιλήσιος, 전625경-전548경), 그리스 철학자, 과학자. 기자 피라밑의 높이를 계산했다.

[427 플라톤(Platon, Πλάτων, 본명 아리스토클레스 Aristoclès 427-347; 80살) 플라톤이란 ‘어깨가 넓음’을 의미한다. 이데아의 철학자. (소크라테스 나이 42살이었고) [그리고 18세 이후에 배울 수 있을 있었다면, 소크라테스 나이 60살이었으며 10여년을 따라다니며 배울 수 있었을 것이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341 에피쿠로스(Epicure, Ἐπίκουρος, Epicuros. 전341-270; 71살) 탄생 플라톤이 죽은 후 6년이 지나 태어났다. 알렉산더가 죽을 때 18살이었다.

O

205 플로티노스(Plotin, Πλωτῖνος; lat. Plotinus, 205경-270경), 이집트 리코폴리스에서 알렉산드리아 학파. 알렉산드리아에서 신플라톤주의자.

354 아우구스티누스(Augustin d'Hippone ou saint Augustin, 354-430), 크리스트교 신학자, 철학자. 히포 주교,

740 카롤루스 대제(Carolus Magnus, Charlemagne 740/742-814)는 카롤루스왕조 제2대 프랑크 국왕, 초대 로마인의 황제.

730 알뀅/알쿠이누스(Alcuin, 730-804) 라틴어를 사용한 영국 신학자, 시인, 과학자. 영국서 태어나 프랑스 투르에서 죽었다. 샤를마뉴의 스승이자 자문이었다. [앙드레 로비에의 “프랑스 철학사”에서]

755 테오뒬페(Théodulf d'Orléans, ou Théodulfe, Théodulphe, lat. Theodulfus, 755-820), 카롤링조 시대의 종교인, 문인, 오를레앙 주교. 그는 800년에 샤를마뉴대관식에 참석했고 804년부터 알쾡을 이어받아 샤룰마뉴의 신학자문관이었다. 그리고 샤를마뉴를 위해 성서 번역도 하였다.

810 에리우게나(Jean Scot Érigène, Johannes Scotus Eriugena, 810경–877) 신부, 철학자, 번역가. / 아일랜드 신학자.(Irish theologian)

1090 베르나르(Bernard de Clairvaux, 1090-1153), 프랑스 수도사, 설교가. 십자군 독려, 시토파(l'ordre cistercien, ou ordre de Cîteaux)는 클뤼니 수도원과 달리 베네딕트파 규율을 유지. 베르나르는 신앙 우선으로 지식(변증법)을 주장하는 아벨라르에 반대했다.

1126 아베로에즈(Averroës, Ibn Rushd, 1126-1198) 스페인의 아랍계 철학자, 아리스토텔레스 저작 주석가. 알가잘리가 󰡔철학자의 부조리(تهافت الفلاسفة 타하풋 알팔라시파)󰡕를 쓴 데 대해 그 반론으로서 󰡔부조리의 부조리Incohérence de l'Incohérence)󰡕를 썼다. 󰡔Grand Commentaire du De anima󰡕, 󰡔Discours décisif󰡕.

1224/1227 토마스 아퀴나스(Thomas d'Aquin, Thomas Aquinas, it. Tommaso d'Aquino, 1224년/1225-1274), 로만 카톨릭의 신학자. 스콜라 철학자. 이탈리아 중부 아키노 출생, 이탈리아 중부에서 몰. 파리 대학 수학(1245-1248), 강의(1268-1272), 동 로마 귀족 가문의 출신으로 도미니크 수도원으로 갔다. 아랍-이슬람 문화에 시달리던 서구 기독교의 교리에 대한 정리를 하였다.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

1473 코페르니쿠스(Nicolas Copernic, Nicolaus Copernicus, 1473-1543), 폴란드의 로마 가톨릭 성직자, 천문학자, 태양중심설 주장.

1559 시르몽(Jacques de Sirmond, 1559-1651) 프랑스 제수이트 신부, 역사가, 성인전작가, 해석학자(exégète), 교부학자(patrologue), 루이 13의 고해신부.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596 프레데릭 5세, 팔라틴 선거제후(Frédéric V de Wittelsbach-Simmern, 1596-1632)의 딸이다.

1612 아르노(Antoine Arnauld, 1612-1694), 별칭 le Grand Arnauld, 신부, 신학자, 철학자, 수학자. 쟝세니스트.

1618 엘리자베스(Élisabeth de Bohême, princesse palatine, 1618-1680) 팔라틴 선거제후(Frédéric V de Wittelsbach-Simmern, 1596-1632)의 딸이다. 여성철학자, 작가. 데카르트와 편지교환. 󰡔Correspondance avec Élisabeth, 1643 à 1649󰡕 - Version rapportée par Pierre Chanut dans sa lettre du 19 février 1650 à la princesse Élisabeth de Bohême.

1623 빠스칼(Blaise Pascal, 1623-1662), 프랑스 박학다식(un polymathe),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도덕론자, 신학자. [파스칼의 가명: Louis de Montalte, Amos Dettonville, Salomon de Tultie.]

1638 말브랑슈(Nicolas Malebranche, 1638-1715), 프랑스 철학자, 신학자. 기회원인론자, 오라토리오회(la congrégation de l'Oratoire) 신부.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1859 베르그송(Henri Bergson, 1859-1941) 프랑스 철학자, 「플로티노스 강의록(1899)」(2000년 출판)을 남겼다.

1869 브룅슈비끄(Léon Brunschvicg, 1869-1944) 문학으로 에콜노르말에 입학, 철학교수자격시험 1등, 프랑스 과학철학자, 칸트와 스피노자 경향의 프랑스 관념론 철학사가, 󰡔Les étapes de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912󰡕.

1884 질송(Étienne Gilson, 1884-1978), 프랑스 철학자, 역사학자. 󰡔Études de philosophie médiévale, 1921󰡕. 󰡔Hommage à Bergson, 1967.󰡕

(12:14, 59QM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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