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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성과 민중의 부상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23|조회수41 목록 댓글 0

젊마26Q통감MA백성

 

백성과 민중이 표면 위로

2026 06 24. 하지(夏至)로부터 이틀 지나

 

   우리나라도 19세기에 서서히 백성의 이야기가 수면 위로 떠오른다. 명나라는 멸망했고(1644년) 청나라가 들어선 지 150여년이 지난 정조 시기에도 숭정이란 명나라 년호로 책력을 썼다. 몰락 양반의 두 계열이 있다. 실학과 동학, 더하여 이들과 연관의 제도 속에 들어갈 수 없는 서얼이 있었다. 이들이 왕족도 훈구 귀족도 아닌 제3신분이, 원효의 육두품에서도 있었듯이, 새로운 세상을 만들자고 했다면 하는 아쉬움이 있었다. 이들은 일제 시대에 독립운동의 방식에서도 차히가 있다. 그럼에도 둘 다 백성과 민중 속에 들어가야 한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한 것은 맑스와 소비에트 사상이 들어온 1926년 이후였다. 백성과 민중 속으로, 즉 심층으로 들어간 운동은 우리 입말이 표면으로 나오는 시기가 되어야 겨우 수면 위로 오를 것이다.

    표면 위에서 입말이 소통하고 일반화하는 과정은 시간이 필요하다. 프랑스가 라틴어가 아닌 자국의 프랑스어로 말하고 글쓰기를 한지 200여년의 과정을 지나서야 세계사적인 프랑스대혁명을 이루었다. 우리 입말이 1446년에 발명했으나 왕족과 사대부에 눌려서 400여년을 수면 아래에 침잠하여 흘렀다. 그런데 나라가 위급할 때는 백성과 민중이 일어났고, 19세기 후반에는 온나라에서 들고 일어나기 시작했다. 그럼에도 상층의 저항(억압)은 여전하여 프랑스의 인민처럼 솟아나기(용출선 만들기)에 역부족이었다. 그런 시기에 일제가 침략하였다. 그리고 우리가 자치를 가지려 할 때 미제가 들어왔다. 미제는 일제를 내보내기 위한 방식에서 한글을 전면에 내세웠다. 그 기회로 우리 입말을 통한 사유를 전개하기 시작하여 80여년을 거치면서, 촛불시위와 불빛시위를 통해 민주제도를 확보하려고 하고, 이제 7공화정을 백성과 인민의 입말과 문자화로 이루고자 하는 시기에 도달했다.

   정치권에서, 혁명이 아니었지만, 수구파(훈구파)들은 그들의 잘못으로 스스로 엎드려 빌어야 하는 지경으로 만들었다. 그리고 표면의 세력으로 민주당과 진보계열이 있다. 그런데 집권한 민주당이 수구파로 회귀하려는 움직임과 진보계열과 연대하려는 세력 사이에서, 하버마스의 용어로 숙고, 또는 니체의 경합(아곤 ἀγών, Wettkampf), 루소의 사회권(정치권)의 담론방식들이 전개되고 있는 상황이다. 흥미롭게도 제도 속의 이원론을 전개했던 유시민이 어느 정당에 소속되지 않았다는 의미에서 3계열에 속할 수 있다. 프랑스 대혁명 전에 제3신분을 자칭했던 신부 시에예스(Sieyès)가 혁명에 가담하여 다양체(왕족, 성직자, 법관 귀족, 백과전서 지식인, 자유사상가) 속에서 제3신분으로 인민의 정부를 세우는데 기여했다. 유시민이 두 세력과는 다른 세력으로 등장할 때, 학계는 어떤 반응을 할까? 이미 흥미로운 반응이 나왔다. 한인섭 교수가 형사소송법을 제기하면서, 정부와 정당과 달리 시민사회에서 입법권을 제시하였다고 한다. 다음 공화정에서 중요한 것으로 인민의 발의권을, 그리고 공직자에 오류가 있을 때 국회가 청문회를 주제하기도 하지만 인민이 제기하는 소환권을 가지는 것이리라. 이번 진행과정에서 유시민이 15년 만에 나왔다고 하는데, 삼원의 벤다이어그램과 제3신분처럼, 혁명의 흐름에서 용출선을 만들 수 있을지는 시간을 기다려야 하겠지만, 그럼에도 백성과 대중은 입말로 소통하고 평결을 내릴 것이다. (59QMD)

    공화국이란 어떤 체제를 말하는가? 프랑스 대혁명 이전에도 루소의 󰡔사회계약론󰡕과 󰡔에밀󰡕을 인민이 주목하였으나, 왕권과 그에 붙은 여론주도자(법복지식인)들은 이 두 책을 파리에서 화형식에 처했다. 그럼에도 대혁명은 루소의 학설에 따라 인민의 “자연권”과 “정치권”을 실행하였다. 이런 전통에서 프랑스 인민에게 헌법 발의권, 공직자의 소환권 등이 있다. 앞으로 다음 선거까지 2년 동안에 잘못한 공직자 소환권과 헌법과 법률의 개정에서 발의권을 시험하는 노력과 과정이 있을 것이다. 이를 통해 백성이 민주주의를 더 잘 실행할 것이고, 제7공화국의 토대를 잘 만들 수 있을 것이다. (59QMB)

 

-*-

   왕정이든 절대[참주]정이든 백성의 동의를 받아야 한다는 것은 세종대왕이 잘 알았을 것이다. 그는 백성이 지닌 오랜 불교문화를 유교문화로 바꾸기 위한 토대로서 백성과 대화를 시도했다. 훈민정음(1446)이다.

    “나라의 말소리가 중국과 달라 문자(한자)로 서로 통하지 않아서

     그런 까닭으로 우리 백성이 말하고자 하는 바가 있어도

     그러나 그 뜻을 (글로) 완전히 표현하지 못하는 것들이 많다.

     내가 이에 대하여 딱하게 여겨 새로 스물여덟 자를 만드니

     사람마다 하여금 쉽게 익혀 나날이 쓰는데 편리하게 하고자 할 뿐이다.”

  그러나 왕정은 상층의 추리사고와 논리이지, 백성의 의견 수렴이나 평결은 아니었다. 프랑스 중세에 종교의 무오류 시절에도 신앙인들 사이에 평결이 있었다(13세기). 이를 주도했던 이들은 플라톤을 받아들이는 프란체스코파였다. 그러나 반동은 곧바로 카톨릭 교황[참주]제 중심으로 바꾸어 놓은데, 도미니크파의 아퀴나스를 끌어들여 다시 절대권을 행사하려했다. 그러나 이미 시대는 지나가고 있었다. .

    종교의 독단이 종교재판으로 딱지 붙이기가 심할 때, 프랑스가 흥미롭다. 인민의 의사소통이 프랑스어로 등장한 것은 몽테뉴(1533-1592)에서였고, 이어서 데카르트(1596-1650)가 등장하여 철학을 라틴어가 아닌 프랑스어로 쓰기 시작했다. 이로서 인민이 자각하기 시작하면서 ‘자아“의 개념이 태어났다. 그리고 “빛들세기(18세기)”에 백과전서파, 루소, 뷔퐁, 수학자들은 각자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들뢰즈가 말하는 생성의 시대). 특히 자아가 태어나 성장하는 과정을 루소는 “에밀”에서 교육론처럼 썼으며, 인민의 자연권, 정치권(조국이 사회권으로 번역했다)을 말했다. 그리고 1789년 대혁명으로 왕권과 교황권을 단두대에 이슬로 보내고, 공화정이 등장했다. 인류사의 사건이었다.

*

   이 시기를 우리나라와 유비적으로 비추어(감鑑)보자. 정치를 비평하기 위해, 유시민은 두 개의 원에 의한 벤다이어그램을 이용했다. 우리는 세 개 또는 여러 개 원의 벤다이어 그램을 생각한다. 우리 역사 속에서도 적용해 볼 수 있다.

- 훈구파 ‥‥ 사장(詞章)파 ‥ 서인 ‥ 노론 ‥ 주자학 - (외세 의존파)

-신진사류 ‥‥ 사림(士林)파 ‥ 동인 ‥ 남인 ‥ 실학 - (자주 독립파)

-- (니르고자 홀배 있어도) 백성 대중 인민 민중, 국민 (3중으로 그린다면)

--- 심층의 다양체. (벤다이어그램을 4중으로 그린다면, 포함되어야 한다.)

여기서 한편에서는 셋째부류로 동학을 넣어서 민중의 등장을 이야기 한다.

∴∴ 넷째 부류는 남녘, 북녘, 여러 재외 동포들, 국적취득자들 합하여, 다발(la gerbe)이다.

∴∴∴ 21세기에 이 다발이 인민들의 입말의 소통, SNS소통이다.

   일제가 바이마르 헌법을 모방하고, 그것을 일제에 심고, 해방 후 남녘을 지배하기 위해 일제부역자를 이용하여 그 뼈대를 남겨두었다. 이제 백성의 발의권에 의해 새로운 공화국을 만들어야 할 것이다.

*

    프랑스의 “빛들세기”의 학문인 서학(西學)을 받아들였다고 하는 사림파의 남인들이 조선 왕정에 들어갔으나, 서학(西學)을 천주학(天主學)으로 딱지를 붙여서, 마치 마녀사냥(종교재판)하듯이 악마화하여 제거하려 했다.

이 흐름은 일제 시대에 조선인의 억압과 통제에도 있었다.

+++일제부역자 ‥‥ 일제에서 미제로

+++ 독립운동가 ‥‥ 공화제와 민중운동

그리고 미국의 지배하에서도 두 개의 원으로 설명할 수 있다..

--- 이승만 ‥ 박정희 ‥ 전두환 ‥ 이명박 ‥ 윤석열

--- 조봉암 ‥ 인혁통혁 ‥ 김대중 ‥ 노무현 ‥ 이재명

*

   프랑스에서 대혁명 이래로 여러 차례 혁명을 거쳐서 파리꼬뮌(1871년)까지 거쳐 간다. 그 파리꼬뮌 시절에 우리나라에서 동학이 2대 교주 최시형에 의해 민중 속으로 퍼져나갔다. 파리 꼬뮌은 인민이 성장하는 시기인데, 입말이 살아 있는 곳에서는 바로 회복되었고, 게다가 맑스가 전하기도 하였지만 세계사의 한 사건이 되었다. 입말이 소통되지 않고 일제 지배를 받은 땅에서는 한 세기가 지나서야, 인민의 입말로 퍼지기 시작하면서 조명되었다.

내가 프랑스철학사와 수학사를 읽으면서 느낀 것이 있다.

    “경세유표(經世遺表, 1818-1827)”를 쓴 정약용(丁若鏞, 1762-1836)과 “임원경제지(林園經濟志, 1824? 초고)”를 쓴 서유구(徐有榘, 1764-1845)이다. 서학을 받아들인 실학파라 한다. 하나는 유배로 열여덟 해를 유배지에서, 다른 하나는 권력에서 밀려나 열여덟 해를 초야에 있다가 다시 정승으로 등장했다. 실학을 프랑스 철학의 실증주의에 비추어 보면, 우리에서 관학을 하는 쪽이 독일에서 칸트의 비판론과 헤겔의 절대주의와 상층 이기론과 연관이 클 것 같다. 그 관학이 일제의 독일철학의 수용을 받아들인 것은 서울의 노론이었다.

   박정희가 총맞아 죽고, 민주화를 하려는 대중들은 노력했지만 암초에 부딪혔다. 박홍규 선생님이 1980년 전두환이 들어서는 시기에 수업을 하면서, 시대에 대한 제자의 질문에, “학자들이 공부를 안 해서 그렇다”고 한탄하였다. 어쩌면 지금도 그럴 지도 모른다.

    실학은 백성의 의사를 그대로 표현하는 것이 아니라, 한문으로 기록하는 문자화였다. 불가에서 팔리어로 말한 부타의 입말을 산스크리트 언어로 바꾼 것이 문제라고 한다. 서양에서도 지식인이 르네상스 이후에도 라틴어로 글을 쓴 것도 인민을 배제한 것이었다. 푸꼬가 새로이 전한 “삐에르 리비에르”(1835)의 사건에서도 본인의 입말과 백성의 문자화가 아닌, 법원의 문서와 문헌화가 나은 오류를 지적한 것이다.

*

   어린 시절에 왜 농가월령가를, 그것도 정본도 아니고 동네에 맞게 부르는 노래처럼 알려졌는지 궁금했다. 공부를 해보니, 24절후가 주나라 시대의 태양력(太陽曆)이라 한다. 태양력을 중심으로 사유하자고 하면, 사람들은 서양의 지배에 벗어나지 못한다고 하며 태음력(太陰曆)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고 하는데, 이들은 태양력(太陽曆)을 양(陽)자를 서양(西洋)로 착각하는 것 같다. 문자화에 영향일까?

    우리말 농가월령가는 정약용의 둘째아들 정학유(丁學游, 1786-1855)가 지었다고 전해진다. 맏아들은 정학연(丁學淵, 1783-1859)은 의학을 배워서, 백성의 뜻을 파악하면서 왕권의 주요권력자의 사랑방을 기웃거리며 백성의 뜻을 전하기도 하고, 아버지의 유배해제를 위해 노력했다고 한다. 실학파에서 백성안으로들어갈 수밖에 없었던 것과 동학이 서학에 반대하여 백성 안으로들어간 것인데, 바깥으로 표출하는 원인 제공과 방향이 달랐더라도, 프랑스 철학사와 수학사가 전하듯이, 1830년 이후에 거의 모든 학문이 사물의 내부로들어갔다. 이 말은 칸트가 코페르니쿠스 혁명이라면서 사물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사물의 빙 둘러서 보았다고 자랑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이다. 우리에서 실학파와 동학파 이후에, 일제 강점기에는 소비에트 연방의 영향으로 인민 속으로, 민중 속으로 운동도 있었다.

    유시민은 노무현 이래로 15년을 스스로 야인이었다고 한다. 유배도 아니고 몰락도 아니다. 이미 김대중 시절에 IT를 기반으로 만들어, 인민의 입말의 소통시대가 열려있었다. 인민에게 행운이었고, 세종대왕 이래로 한글의 활성화, 팽창의 시기였다. 실학과 동학의 시대가 일제와 미제를 거치면서 새로이 얼굴을 내민 것, 자아의 자치적이고 자율적 모습을 표출한 것은 21세기 코로나 시기였다. 유시민은 오랜 기간 학습(열)과 붕우 속에서(열) 새로운 길을 모색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제 7공화국을 만들 시기에 등장했다는 점에서 기대해 보자.

***

    그는 유배도 감금도 아닌 15년을 지나 세상에 출사표를 던진 것 같다. 응원한다. 검찰개혁, 사법개혁, 언론개혁의 의지를 응원한다. 현 시점에서, 정치권력의 측면에서, 두 개의 원인 벤다이어그램 식으로 표현하면 아래와 같다. 2026년 6월 중순에 떠도는 소문이다. 믿을 것이 못되지만 그나마도 ‘안주가 있어야 술 맛이 나듯이’ 자료가 여러 방향과 방식으로 떠들 수 있다. 입말의 시대이다.

-*- 아래 분류에서 A(C)B 도표에 준해서 나누어 본 것이다.

검찰개혁을 보는 입장:

-- 추미애, 최민희, 박주민, 김기표 + 이성윤, 문정복

-- 이언주, 강득구, 황명선, 송영길, 한준호, 김종혁, 박원석, 전현희, 김남희, 이건태

합당 반대자: 정민철(한겨례: 하어영 권태호)

-*-

----이동형, 이상호, 함돈균, 김용민 목사 + 박진영, , 신인규, 강미정

---- (패널들) 오창석, 오창익, 전계완(스픽스) 장성철(국힘) 이정주,

+ 김진애

김어준, 최강욱, 박시영, 최욱,

- 장인수, 봉지욱, 이명수[욱수수], 강성범(1974) 김대호, 송명훈(송작가 TV, 새날)

- -제3의 지원 행보: 이병철

* 입말과 이미지가 그래픽을 그리듯이 변환하고 있다.

- 문조털래유 [이동형 킬러(사사건건)]

- 한강새똥돼주길 [한준호, 강득구, 김민석, 이동형, 김용민, 이언주, 송영길] (59QMA)

    앞에서 이야기 했듯이 2원 벤다이어그램이 있듯이, 공화국의 실질적 주인이 되는 백성들을 표면위에 올라오면 3원 벤다이어그램이 될 것이다. 다양체란 깊은 심성을 공유하는 흐름이 있다는 것을 느끼리라.

(3;27, 59QMA) (4:21, 59QMD) (4:34, 59QME)

 

행동하는 양심, 깨어있는 시민,

들뢰즈의 용출선: 솟아나는 인민

 

폭싹 속았수다”: - ‘수고하셨습니다또는 고생하셨습니다라는 뜻

우리나라 제6공화국(第六共和國)1987년의 6월 항쟁의 결실로 6.29 민주화선언에 의해 198710295년 단임의 대통령 직선제로, 민주적으로 개정된 헌법 제10호에 의해 성립되어, 현재까지 지속되고 있는 헌정체제이다.

이재명 대통령이 선거에서 진보진영에 있었다고 했다. 그런데 대통령이 되고서 좋은 수구세력을 데려다 쓰면서 진영을 확장하고자 하였다고 한다. 그런데 좋은 길동무를 받아들이면서 진영을 넓혀갔는데, 그 진영에 많은 사람들이 스물스물 들어와서 경계를 더 멀리 밀어내기보다 허물어 버린 것 같다. 이 새로 들어온 이들이, 이재명 주위를 에워싸기 시작하여 울타리 없는 내부가 위험하다고 경고음을 울리면서, 중심부분을 둘러싸는 내성을 만들고 있다. 이재명은 그들에게 선택된 인물이 되고자 포획되었고, 그리고 스스로 포로로 자임하면서 즐거움과 안락을 그들에게 맡기고 있다. 그 내성의 주변에는 많은 여치들이 진에 기대어 노래한다. 포로가 되기를 바라면서, 자유를 노래한다. - 시인 바라카(LeRoi Jones, 필명Amiri Baraka, 1934-2014)가 노래했던가? “노예가 노예로서의 삶에 / 너무 익숙해지면 / 놀랍게도 / 자신의 다리에 묶여있는 / 쇠사슬을 서로 / 자랑하기 시작한다. // 어느 쪽의 쇠사슬이 빛나는가, / 더 무거운가 등. ‥…”.

백성의 시대 입말과 이미지가 길거리의 방(대자보)보다 빠르게 흐르고, 게다가 문자화로 전파보다 더 넓은 방향(1224)으로 퍼지면서 새로운 사회 건설의 소문이 돌 것이다. 백성은 제7공화은 양파, 양당의 체제를 넘어서 백성의 체제가 도래하기를 바란다.

- 7공화국에서 꼭 들어가야 할 것으로,

헌법상으로 백성(국민)이 헌법에서 법률에 이르기까지 발의권을 있음을 표현해야 한다.

백성은 선출자든 임명직이든, 잘못된 일이 있을 때, 소환할 수 있어야 한다.

법률상으로 선출직에는 결선투표제를 도입해야 한다.

사법 심판에서 백성배심제를 도입해야 한다.

백성이 니르고자 홀배 있어도니르고자 할 때 한자(漢字) 문헌으로 500여년 이상 상호침투하지 못했으나, 이제 한글을 공식화한 후에 80여년 만에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의 인민보다 훨씬더 빠르고 넓게 자연권과 정치권을 만들고 있다. 역사는 백성이 근본임을 실재적이고 표면적으로 전개해 나가고 있다. (59QMB)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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