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도르노에게서 탈야만화로서 성숙 (2025)
- 한상원, 시대와 철학, 2025, 겨울호 제36권 4(통권 113호), 187-20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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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계몽(die Aufklärung, the Enlightenment)”과 “빛들 세기(les Lumières)”를 글자그대로 받아들이는 방식이 다른 것 같다.
법정인가 어느 날 윤석열을 변호하였던 여성변호사 김계리가 ‘나는 계몽되었다고’하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일제(제국주의) 교육이 우리 법학에서 얼마나 오래 계속되고 있는지를 생각하게 한다. 칸트가 자신이 살아있었던 18세기를 계몽기(Aufklärung)이라 하고, 인간이 성인(16-18세)이 되는 시기쯤으로 여겼다. 이런 이야기를 헌법재판소의 주변 이야기에서 듣다니. …
그래도 헌법재판소에서 8명이 평결을 내렸다고 했을 때는, 13세기 프랑스 중세의 프란체스코 중심으로 평결론자들이 생각이 난다. 11세기에 유명론이 등장하면서 신은 이름뿐이고, 신의 문제는 존재[로고스]가 아니라 현존[에토스]에 관한 것이라는 관점이 바뀌면서, 현존론의 논의는 신에 관한 이야기를 평결로서 생각해보아야 한다고 한다. 이런 프란체스코파들의 담론이 르네상스를 연다. 신중심이 아니라 인간중심(인본)이 나온다. - 자연중심(생태론)은 21세기가 들어서 나온다. 인간은 느리지만 변역(變易)을 느끼고 산다.
이 때 평결론들이 중세의 억압적이고 맹목적 독단을 무너뜨렸기에, 꽁트은 신학의 시대가 지나간다고 했다. 그리고 데카르트에서 칸트에 이르기까지 아직도 신의 통일성과 완전성 아래서 오성(지성, 이성)이 세계를 체계화하고 합법적이라고 하였지만, 빛들의 세기에 자연을 주체삼은 유물론자(데카르트좌파, 자연론자)들 - “빛들세기에” 백과전서파, 박물학자(뷔퐁), 루서 등 다양하게 표출되었다.
들뢰즈가 “생성(되기)”의 세기로서 1730년을 꼽은 이유가 있다. 이미 자연을 논리와 달리 다루는 탐구방식은 1820년대부터 빛의 파동론, 열역학, 전자기학 등에서, 기존(신학과 형이상학에 종속된 학문)의 통일과 체계가 자연의 한 부분을 (칸트처럼) 도식화한 것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을 알렸다. 계몽이라니, (칸트주의자가) 바바리안들에게 하는 소리인가? 19세기 말에는 인간이 자연의 탐색에서 새로운 방법, 새로운 합의에 의한 개연성과 확률을 정리하는 시대를 열었다.
가끔 서울내기들과 부역파 수구언론들이 일제 치하를 개화시기 – 마치 계몽기처럼 - 라고 여긴다. 개화를 선점한 서울내기가 잘 산다고 한다. 이런 세뇌는 박정희-전두환-이명박-윤석열에 이어지는 사고방식에 일제가 넘쳐난다. 이에 비해 사림 계열들은 독립운동 하러 떠났다가 해방으로 돌아오니, 개화파가 인륜 지식과 후배 교육을 엉망으로 만들어 놓았다고 한탄했었다고 한다. 이들은 개장수가 되거나 각설이가 되었다고들 한다. 이재명은 독립운동하면 3대가 가난하고 부역하면 3대를 잘 먹고 산다고 했다던가? (59PNA,QA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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프로이트가 신경증과 정신병을 구별하면서, 전자에는 생리학적 관계들로, 후자에는 심리학적 연관들에 있다는 것으로 여겼다. 이로부터 심성에 관한 문제로서 정신병에는 크게 보아 스키조(분열증자)와 파라노이아(편집증자)가 있다. 심성에서 심정의 지각에는 한편으로 하나의 유일자(또는 최고 지도자)를 논리적으로 추론하는 쪽이 있는가 하면, 다른 한편으로 인민 대중의 발생과 생성을 사유하면서 원인의 발산이 빛처럼 퍼지는 것을 바라는 쪽이 있다.
안티 프로이트학자들은 파라노이아가 정신분석학의 토대이라 보고, 편집증자들이 심정(머리)이 아프면 경찰을 불러들인다고 농담한다. 마치 우리나라 극우매국이 성조기와 이스라엘 깃발을 흔드는 것도 심성에 깊이 병들어 있다는 징표이다. 깊이(심층)의 여러 발현을 억누르고 하나의 길만이 있다는 이들이 편집증의 환자인 셈이다.
이러한 편집증의 기원 또는 원인은 종교만이 아니다. 자국 또는 자기 종족의 우월성을 강조하는 것에서도 있었다. 부모가 여섯일곱의 꼬마에게 ‘너가 최고’ ‘너가 왕이로 소이다’라고 하는 것(착각)과 같은 유대의 선민사상에서도 다른 나라는 야만 또는 바바리안인 셈이다. 잘났다는 소수 민족의 이런 착각은 주변국을 어린애 취급하였으나, 초기의 지중해 연안 도시국가들은 그리스인의 식민지의 도시들이라 그나마 조용하였지.
점점 지역이 넓어지면서 페르샤 또는 그리스반도같이 참주(황제)적 제국주의에서는 자국중심 이외는 적이나 바바리안이 된다. 국경을 맞댄 페르샤와 인도의 전쟁에서 각자가 기원한 신은 같은 이름인데, 한쪽에서는 선신(善神)이 되고 다른 쪽에서는 악신(惡神)이 되는 것과 같다. 그리스에서 자기와 같은 그리스 언어와 문화를 사용하지 않는 이들을 바바리안이라고 하는 것과 같다.
요상하게 성립한 크리스토스교에서 자기와 같은 독단을 믿지 않은 이를 이방종교인(un païen)이라 한다. 그리고 자기 안에서 자기 독단의 조직화를 따르지 않은 이를 이단(une hérésie)이라 하는데, 착각을 넘어서 망상의 수준이다. 조직화에 따라 달라진 이단이 종파(une secte)라고 하는 경우는 망상을 넘어서 치매(광란)와 같다(생각나나요, 말세 시대라며 집단자살한 종파들). 이런 편집광(광란) 주체가 악마사냥, 종교재판(좌표찍기)해도 구원받고 하늘나라로 올라갔다는 사건들과 추억들이 너무 많아서, 이 주체가 현재도 양산되는데, 악플로 사는 유투버들이 그들이다.
달리 사유하기, 달리 말하기, 달리 살기로 세상을 보는 눈이 필요하다. 그런데 분단으로 걸어서 여행을 막는 데서, 그리고 날아서 떠도는데서, 젊은이들을 편집증자를 만들고 게다가 망상과 광란으로 만든다. 그 장면을 송파지구 투표소에서도 겉모습으로 등장하는 것이 아닐까? 12월 3일 여의도 과정이 아니라, 지금 젊은이가, 우리나라에서 탐욕의 광기(편집)의 중심인 강남에서 송파에 모이다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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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말을 쓰고 있는 동안에 용어는 생명력과 활동성을 갖는다. 그런데 그 입말이 문자로 쓰여지는 한에서 고정과 고착은 공간상의 지위와 시간상의 찰나를 갖는다. 입말이 당시 그 자리에서 쓰인 용어는 활동하고 변하고 움직이는 대상에 대한 용어라고 보는 생각은 19세기 말에 심성의 심정역할을 다루면서 일 것이다. 왜 그 이전에서 심성의 심정 안에서 추억들, 지각작용, 감동, 감명을 철학적으로 또는 학문적으로 다루지 못했던가.
고대철학이래로 플라톤이 설명의 도구로서 사용한 선분의 비유에서 인식(에피스테메)과 믿음(추측, 독사)의 이분법의 영향이라고 한다. 인식은 원리와 추리로서 다루어 체계 또는 도식(질서)을 갖춘다고 여겼다.
이에 비해 믿음의 영역은 감각과 감정의 영역처럼 여겨서, 시간과 장소에 따라 그리고 사람에 따라 정도의 차를 가지는 것으로 일반화나 개념화하기 어렵기에 학문의 영역에서 배제되었다. 서양 역사를 보면 이것이 뒤집히는 장면이 크리스트교로 통일하는 과정에서, 중세 시대에는 요상하게도 믿음이 인식의 상위를 차지한다. 이런 지위의 전복은 에피스테메의 추상부분이 직관을 통한 인식이라고 하였듯이, 신앙의 대상 크리스트를 직관과 동등한 신앙에 의해 합일하는 것으로 착각하였다.
이 뒤집어진 인식의 방향은 중세 천년을 지나도 바뀌지 않았다. 과거에 자연에 대한 인식 또는 천문학이 경험적이었는데, 이런 신앙의 인식에 의해 천문학과 자연학이 신앙을 토대로 독사와 독단으로 바꾸어 놓았다. 땅은 평평하고 태양이 하늘에서 돌아가는 것이며, 땅은 가만히 있다고 하는 믿음이 진실한 인식이었다.
왜 이렇게 꺼꾸로 된 인식이 신앙의 토대가 되었을까? 자연을 다루는 방식이 일반인의 오감을 통해서, 상식으로 다루는 것이 사실 탐구의 토대였기 때문일 것이다. 그렇더라도 달리 생각하고, 고대의 이론들을 다시 점검할 수 있었을 것인데, - 왜, 거꾸로 된 믿음이 진리이고, 사실을 탐구하는 것이란 못된 짓거리, 또는 주술, 악마의 것으로 만들었을까? 이러한 것은 원리와 논리에서 온 것이 아니라, 권력의 탐만치에서 온 것이다.
크리스트교가 권세와 권력을 통해 인민을 지배하는 방식으로, 거짓도 진리를 만들 수 있는 강압과 세뇌를 하였다. 얼마나 많은 민중과 백성들을 죽이면서도 신의 완전성과 통일성을 진리라고 세뇌기키고 싶어겠는다. 이는 조직화가 탐만치에 빠진 것이다. 그리고 파라독사로서, 이에 저항하는 싸움에서 죽은 자들을 성자, 순교자로 만들고 받들지 않았던가.
고대의 그리스의 사유방식을 배우고 발전시키려는 방식이 등장한 것을, 서양사상사는 르네상스라 부른다. 그러나 르네상스는 고대 사유의 일부의 동경일 뿐이다. 감각적 상식을 통한 진리의 체계는 여전했다. 단지 감각을 벗어난 오성(지성)의 추론에 의한 자연(세계)은 종교가 강요했던 자연과 다르다는 것을 느끼기 시작했다.
그럼에서 논리(지성)에 대비되는 감각(감성)은 일반화가 어려웠다. 아마도 온도계가 발명되어도 어느 온도를 0으로 하고, 증기화 하는 온도를 100도로 하는 기준을 마련하는 것도 쉽지 않았지만, 그 이전에 피트(자, 척 尺)와 인치(치 寸) 등은 인간의 신체를 기준으로 하니 사람마다 달라서 기준을 마련하기 어려웠다. 그래서 프랑스 대혁명의 시기에 지구의 위도를 180등분하여 1미터를 만들었으니, 인류에 양식을 통한 기준점을 정하는 오랜 과정을 거쳐서 합의점을 찾아야 했다. 지식이라는 인식틀이 있기 전에는, 레비-브륄이 말하듯이 원리와 법칙, 기준과 순서는 협약이 우선이었으리라. (59QKKG)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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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68년 독일 학생운동은 그를 부르주아 권력과 음모를 함께 했다고 공격했다. 그는 이들을 반주지주의(비합리주의 또는 유치함)이라고 비판했다. 사건은 1969년 1월 31에 아도르노와 하버마스의 수업을 거부하고서 프랑크푸르트 연구소를 점령하려 하였다. 그는 주거침입이라는 이유로 경찰력을 불러들였다. - 프랑스에서 경찰을 불러들인 리쾨르는 그 다음해 사임하고 벨기에로 떠났다 - 이 사건으로 독일학생 운동가들에게 수업 중에 당한 스켄달이 있었다. 그리고 그는 여름 학기에 스위스로 휴가를 떠났고, 거기서 세상을 떴다. 그는 수업 중에 당한 수모를 견딜 수 없었다고들 한다. (3:31, 59QKC)
# 아도르노에게서 탈야만화로서 성숙 (2025)
목차 -
* 초록 187
1. 들어가며 189.
2. 편집증적 주체 190
3. 민주주의 내부의 전체주의적 위험 193
4.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 197
5. 탈야만화와 성숙의 위한 교육 201
6. 나가며 205
* 참고문헌 208
* Maturity as debarbarization in Adorno 209.
*** 내용 중에서 ***
# 아도르노에게서 탈야만화로서 성숙. (2025)
* 초록 187
1. 들어가며 189.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가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 1944)에서 계몽이 신화로 퇴보한 것을 맹렬하게 비판했듯이, 오늘날 우리는 문명이 그 자체 야만으로 후퇴했다는 비판을 가할 수 있을 것이다. (189) - [제국주의 전쟁을 걸고 있는 독일의 나치 정권이 야만이었다. 마찬가지로 제국주의의 덕을 보고 있었던 서방이 야만이었다.]
한때 망명지식인이었던 아도르노는 아우수비츠라는 야만을 겪은 뒤의 독일사회를 민주적으로 재건하는 과정에서 ‘탈야만화(Entbarbarisierung)’라는 표현을 사용한다. 또 계몽주의자로서 칸트의 문제의식을 이어받은 “성숙(Mündigkeit)’이라는 개념을 사용한다.(189)특히 1959년 12월 쾰른에서 극우 성향 정당의 당원 두 명이 한밤중에 유대교회를 나치의 상징과 구호로 훼손한 이른바 ‘쾰른 유대교회 훼손사건’을 겪으면서 아도르노에게서 “교육적 전환”이라고 불릴만한 이론적, 실천적 관심의 변화가 생겨난다. - [육군 17사단 전차대대 불상 훼손 사건 (1992년), 김천 개운사 불상 훼손 사건 (2016년), 1999년을 전후하여 전국 360여 곳의 학교 및 공원 등에 단군상이 건립, 1999년 7월에서 12월에 훼손과 페인트 칠을 한 사건이 일어났다.].
2. 편집증적 주체 190
[이 소제목이 흥미롭다. 편집증적 주체와 푸꼬가 말하는 근대성의 광기는 같은 방향과 의미를 지닌다고 본다. 인식이 대상을 도구/무기화하는 지성(이성)은 편집증이자 광기였다. 이 광기가 두 차례 세계 대전을 치른다. 그래도 반성과 성찰 없이 자본주의는 제국을 형성하는 길로 갔으며, 세계 곳곳에 전쟁을 일으켰다.]
계몽의 변증법(1944)에 등장하는 ‘반유대주의적 요소들’에서 아도르노와 호르크하이머는 이렇게 서술한다. “반유대주의는 허위적 투사(falsche Projecktion)에서 비롯한다.” 투사란 나의 내면에 있는 것을 밖으로 꺼내 펼쳐내는 것을 말한다. (190) - [“빛들 세기”에 내면의 발산은 매우 다양하게 펼쳐짐을 알았다. 들뢰즈는 1730년을 다양체의 “생성(하기 만들기)” 시대로 보았다. 왜 내면이 밖으로 투사되는 것에 허위가 등장할까? 형상이 질료속에서처럼, 신적 자아가 주체에게 ‘거꾸로’ 투사한 것이 아닐까?]
이는 [허의적 투사는] 오늘날까지 이어지고 있는 소수자에 대한 낙인찍기와 마녀사냥의 메커니즘을 보여준다. (191) [좌표찍기와 허위조작은 메카시로부터 숭미파인 이승만에게 그리고 지금도 민주당 안에 김민석-언주 계열들이 부역언론들과 합세하여 실행하고 있지 않는가? (59QLB)]
그런데 호르크하이머와 아도르노는 ‘허위적 투사’를 반복적으로 수행하는 근대적 주체를 편집증 환자(Paranoiker)로 부르고 있다. “편집증 환자는 외부 세계를 자신의 맹목적 목적에 맞게 지각[인식]하기 때문에, 언제나 그의 추상적인 탐욕으로 외화된 자아를 반복할 수 있다.” “(191) - [탐욕자를 분열증자로 부르지 않았군요. 유시민의 A(C)B론에서, B에 속하는 이들이 탐욕 편집증자이며 (현재로서는 이언주와 김민석쯤되고, A에 속하는 이는 공정을 주장하며 여러 부류를 인정하는 들뢰즈의 분열증자인데, (유시민과 조국, 정청래가 속할 것이다. (59QLB)]
그렇다면 편집증은 어째서 파시즘의 전조증상이 되는가? ... 편집증은 고립된 개인들의 특징이다.. 편집증 환자는 사적인[탐욕] 세계에 살고 있는 사람이다. (192) - [고립된 개인이란 분석은 아닐 것이다. 유일신앙자들에서 탐욕에 빠진 자들이지 프란체스코파 신앙자들이 다르다. 신앙에 제물[뇌물]을 자치는 종교들이 편집증에서, 산업화에서도 이익을 추구하는 파시즘의 광신도가 되었다. 현재 IT와 AI를 통해 탐만치를 채우려는 자들도 편집증이다. 이들 마치 암산[계산]을 잘하는 이를 수학을 잘하는 이로 착각하고 있다. 브룅슈비끄의 수학사를 들여다보면 전혀 다른 면들을 볼 것이다. 칸트와 꽁트가 왜 다를까? - https://cafe.daum.net/milletune/S7Vq/25 보시라.]
3. 민주주의 내부의 전체주의적 위험 193
[유일신앙 중에서 인간의 정신이든 영혼이든 하늘 나라로 올린다는 신을 설정하는 한, 민주주의를 위협하고 전체주의로 간다. 왜냐하면 추론이나 사유의 최상위를 우선 또는 진리로 삼기 때문이다. 민주주의는 민중 또는 백성의 연대와 합의에 의한 배열의 잠정적 결정이라 하나의 최상위란 있을 수 없기 때문이다. 이런 생각은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의 “정치”에 관한 분석에서부터 있어왔다. - 서방유럽과 달리 동방유럽이 늦게 크리스트교를 받아들인 후진국 또는 종교문화상으로 바바리안 취급을 받아서일까? 아니면 (시오니즘 주장들인) 아세키나제 유대계와 대립하면서, 니체가 말하듯이 괴물과 싸우면서 괴물을 닮는다고 하듯이 동유럽이 지도층(주류)는 아세키나제를 닮아 간 것이 아닐까? 니체가 구약의 복종과 신약의 원한을 본 것이 파라노이아의 두 성격을 분석해 낸 것이리라. (59QLC) ]
1959년 이뤄진 아도르노의 연설 「과거사 청산이란 무엇을 의미하는가?(Was bedeutet: Aufarbeitung der Vergangenheit?)」에서 독일 내에서 나치즘의 청산이 제대로 이뤄지지 않으며 오히려 극우적인 정치세력이 유지되고 강화되고 있는가를 묻는다. (193)
1967년 아도르노의 강의 「극우주의 양상(Aspekte des neuen Rechtsradikalismus)」에서도 드러나는데, 아도르노는 새로운 극우주의 부할에 대해 이렇게 평가한다. “공공연한 반민주주의는 사라졌다. 거꾸로, 참된 민주주의에 호소하면서, 다른 이드을 반민주주의라고 비난하곤 한다.” (194) - [1967년이면 세계사의 변환의 곡선을 그릴 때인데, 다음 해가 세계가 떠들썩한 1968년이잖아. - 독일의 시대 변화는 달랐을까? ]
의식적으로 기억을 지우려는 목소리들이 극우 단체들뿐만 아니라 소비자본주의 대중문화에서도 일어난다. (194)
과거사에 대한 기억은 독일에서 민주주의를 재건하기 위한 필수조건이다. (195) - [바이마르 공국의 괴테, 바이마르 공화국의 비스마르크, 20세기 히틀러 등을 독일에서 추억하는 이들이 많다. 무엇을 기억해야 하는가? - 북송 시대 사마광의 자치통감(資治通鑑, 1084)을 생각해보자.] [생물학적으로도(생명), 사회적으로도(삶의 터전)]
4.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 197
1966년 헤센 방송국에서 방송된 아도르노의 강연 「아우슈비츠 이후의 교육(Erziehung nach Auschwitz)」에서 아도르노는 다시 야만의 존속에 관해 말한다. (197)
1966년 헤센 방송국에서 대담인 「교육 무엇을 위해(Erziehung-wozu?, 1966)」에서 교육의 목적을 진술한다. (201)- ‘Erziehung-wozu?’ [1966] in: (Hg.) Gerd Kadelbach, Erziehung zur Mündigkeit, Vorträge und Gespräche mit Helmut Becker 1959-1960[1969]Frankfurt a.M. 1971.
5. 탈야만화와 성숙의 위한 교육 201
1968년 수행된 인터뷰 「탈야만화를 위한 교육(Erziehung zur Entbabarisierung)」에서 그는 야만을 “고도로 발전한 기술 문명 속에서 기이하게 형태화되지 않는 방식으로 그들 자신의 문명보다 뒤처지는 것”으로 정의한다. (201-202) -‘Erziehung zur Entbabarisierung’, [1968] Gerd Kadelbach, Erziehung zur Mündigkeit,
1969년 수행된 대담 「성숙을 위한 교육(Erziehung zur Mündigkeit)」에서 아도르노는 칸트의 계몽 기획을 옹호한다. “제가 보기에 칸트의 강령은 […] 여전히 현실적입니다.” (203) [정확한 날자가 없어서 그렇지 학생들에게 거부당한 이후일 것이다]
6. 나가며 205
그렇다면 오늘날 성숙[Mündigkeit]이란 어떤 내용이어야 할까? 첫째 그것은 거짓된 정보에 휩싸이지 않을 수 있는 판단의 능력이어야 한다. ... 둘째로 성숙한 주체는 반지성주의와 결별해야 하다. ... 셋째로 오늘날 주체란 타자와의 미메시스적 연대를 이루는 주체여야 한다. ... 마지막으로 전쟁과 폭력이 일상이 된 현재의 상황에서 성숙한 주체는 폭력에 맞서는 주체여야 한다. (206)
아도르노는 탈야만화와 성숙을 위한 교육의 역할을 강조하면서 독일에서 교육계혁을 이끌어낸 지식인이었다. (207) [독일 교육제도가 특히 철학에서도 도제 방식이라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프랑스에서는 고등사범출신들은 23살에 이미 교수자격시험을 치고 교수가 되고, 국가박사학위는 자기 뜻대로 쓴다. - 그보다 교육은 두 철학자에게 있다. 하나는 플라톤이이고 다른 하나는 루소이다. (59QKI)]
* 참고문헌 208
* Maturity as debarbarization in Adorno 209.
(4:33, 59QKI)
1982 한상원(1982-), 서울 시립대, 독일 박사, 충북대 교수, <Konstitutive Negativität. Zur Rekonstruktion des Politischen in der negativen Dialektik Adornos(구성적 부정성. 아도르노의 부정변증법에서 정치적인 것의 재구성), 2022, 독일, Humboldt - Univ. zu Berlin, Andreas Arnd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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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53 엄복/옌푸(嚴復, 1853-1921), 중국 사상가, 자는 기도(幾道), 1912년 국립 베이징 대학의 초대 교장을 역임. 영국에 해군 기술을 배우러 갔다가, 서양제도와 사상도 연구했다. 중국에 스미스, 스펜서, 몽테스키외를 소개했다. 그는 총장을 지내면서 전통사상을 보존하고 필요한 것은 과학기술이라 하여 공대를 강화하였고, 이 전통에서 칭화대학의 성장은 시진핑의 정책에도 연결된다고 한다.]
1895 호르크하이머(Marx Horkheimer, 1895-1973), 독일 철학자.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 1947)(아도르노와 함께) 계몽의 변증법(Dialektik der Aufklärung, 1947), 김유동, 문학과 지성사, 2001,
1903 테오도어 아도르노(Theodor Ludwig Wiesengrund Adorno, 1903-1969), 아버지 유대인과 어머니 카톨릭교인 사이에서 카톨릭 세례를 받았다. 독일의 사회학자, 철학자, 피아니스트, 음악학자, 작곡가. [1968년 학생운동가에게 곤혹을 치루었다. 다음 해 세상을 떴다.]
- Dialektik der Aufklärung, 1944: fr. La Dialectique de la Raison. Max Horkheimer(1895-1973) et Theodor W. Adorno,
- Drei Studien zu Hegel. Frankfurt am Main 1963.
- Negative Dialektik (1966) [유태계이지만, 무슬림처럼 신의 본래모습이 없음(x 부정)]
- Anmerkungen zum sozialen Konflikt heute, [1957]
- Einleitung zum 「Positivismusstreit in der deutschen Soziologie」, [??]
- Reflexionen zur Klassentheorie, 1942
- Minima Moralia: Reflexionen aus dem beschädigten Leben; fr, Minima Moralia: réflexions sur la vie mutilée, 1944-1949 사이 작성.
- Probleme der Moralphilosophie <1963>. Hrsg. von Thomas Schröder. Frankfurt am Main 1996. (Nachgel. Schr., Abt. IV, Band 10. [2010])
- Erziehung nach Auschwitz, 1966, In: Zum Bildungsbegriff der Gegenwart. Hrsg. von Heinz-Joachim Heydorn u. a., Diesterweg-Verlag, Frankfurt/M. 1967, S. 111–123
- ‘Erziehung-wozu?’, [1966] in: (Hg.) Gerd Kadelbach, Erziehung zur Mündigkeit, Vorträge und Gespräche mit Helmut Becker 1959-1960[1969]Frankfurt a.M. 1971.
- Aspekte des neuen Rechtsradikalismus[신극우주의 양상]: Am 6. April 1967hielt Theodor W. Adorno auf Einladung des Verbands Sozialistischer Studenten Österreichs an der Wiener Universität einen Vortrag, der aus heutiger Sicht nicht nur von historischem Interesse ist.
- ‘Erziehung zur Entbabarisierung’, [1968] Gerd Kadelbach, Erziehung zur Mündigkeit,
- ‘Erziehung zur Mündigkeit’, [1969] in: (Hg.) Gerd Kadelbach, Erziehung zur Mündigkeit,
1960 김누리(金누리, 1960-), 서울대 학석사, 중앙대 교수, <1995, 독일, Univ. Bremen, Wolfgang Emmerich.> “심미적 인문성과 정치적 무의식의 양면성. 사회문화사적 맥락에서 본 독일교양소설”(1995), “독일 68혁명과 교육개혁”(2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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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바리안(Barbarian)'의 어원은 고대 그리스어 '바르바로스(βάρβαρος, barbaros)' 알아들을 수 없는 말을 횡설수설하다"라는 의미의 의성어에서 유래했습니다
la barbarie(1495) Du latin barbaria → voir Barbarie(« pays des barbares » « pays des Berbères [베르베르 종족]».).
1. (Péjoratif) Manque de civilisation, ignorance des arts, des lettres et des sciences chez un peuple, souvent étranger. 2. (Péjoratif) Cruauté, inhumanité.
* (Date à préciser) Du latin barbaria ou barbaries, ici au sens de « pays des Berbères(북아프리카 원주민) » 1. Barbarie (Histoire) Ancienne dénomination du Maghreb[북아프리카 마그렙 주민].
(6:03, 59QKI) (7:36, 59QKC)