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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룅슈비끄

수4권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대중판]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06|조회수106 목록 댓글 0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3권 무한소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1] 문제의 제기 La position du problème 253

[2] 수학들의 기술적 개념작업 La conceptions technique des mathématiques 257

[3]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 Les formes de l’espace et du temps. 262

[4] 선험적 연역과 도식주의 La déduction transcendentale et le schématisme 265

[5] 수학적 인식의 상대성 La relativité de connaissance mathématique 269

[6] 수학들과 자연의 형이상학 Les mathématiques et la métaphysique de la nature 276

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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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1, 문제의 제기 La position du problème 253

§148. [기하학(추리) 대 물리학(경험)의 대립과정에서, 1756(서른둘)년 칸트는 두 방향의 화해시키려 한다.]

   칸트가 수학적 철학에 집착했던 중요성, 그가 수학철학으로부터 제안했던 이론의 성격, 이것들은 이해하기 어려울 것이다. 만일 사람들이 근대 사유의 도래에서부터 자연에 대한 합리적 과학의 구성작업이 들어 올렸던 문제에 참조하지 않는다면 말이다. 수학적 물리학은 두 가지 다른 형태들 하에서 전개되었다. 두 형태들은 우선 데카르트의 프랑스 학파와 갈릴레이와 토리첼리의 이탈리아 학파에서 파악되었고, 다음으로는 라이프니츠의 찬성자들과 뉴턴의 찬성자들에서 파악되었다. 전자들은 순수 기하학자들로서, 선천적인 연역에 의해 진행하였다. 후자들은 무엇보다도 관찰자들로서, 경험으로부터 유래한다고 주장했다. (253)

   이 두 경향성들의 대립은 일찍이 칸트의 주의를 끌었다. 칸트는 자연철학에서 기하학과 결합된 형이상학의 사용: 그 제일예시는 물리학적 단자론을 포함하고 있다(1756)의 시작에서 증언하고 있다. 여기서 사람들은 이율배반들(antinomies)의 학설이 진행할 독창적 정신의 여행을 마치 그의 사상의 배아처럼 흘낏 들여다볼 수 있다. “선험적 철학과 기하학을 함께 다루는 것보다, 말들과 독수리들(griffons)을 함께 수레에 연결하는 것이 더 쉽다. 하나는[선험철학은] 공간을 무한으로 분할가능성을 절대적으로 부정하는 반면에, 다른 하나는[기하학은] 그 학문의 습관적 보장으로 분할가능성을 긍정한다. 하나는 마치 운동의 자유에게 필연처럼 빈 것을 요청하며, 다른 하나는 그것을 추방한다. 하나는 보편 인력 또는 보편 중력이 역학적 원인들에 의해 전혀 설명될 수 없다는 것을 제시한다. 그것은 정지된 물체와 거리상으로 작용하는 물체에 내재하는 힘들로부터, 즉 상상작용의 공상 괴물들 중에서 다른 하나가 쫓아내버린 힘들로부터, 보편적 중력을 도출한다.” (254)

게다가 1756년에 칸트는 두 주제를 화해시키는 것이, 독단론의 지평위에 남아있으면서, 뉴턴의 개념작업들을 라이프니츠의 언어 속에 옮겨놓으면서, 모나드들에게 데카르트주의의 너비의 불가침투성에게 보태진 인력(끌어당기는 힘)을 부여하면서, 말하자면 보스코피치(Boscovich, 1711-1787)보다 3년 앞서 원자론적 동력학의 계획을 묘사하면서, 가능하다고 평가한다. 그의 성찰의 진행은, 충돌이 다른 방법들에 의해 얻어진 결과들 사이에 사실로서 대립일 뿐만 아니라 진리의 두 가지 전형에 이의(문제)를 제기한다는 것을, 조금씩 인정하는 데로 그를 이끌었다. 수학적 진리의 전형과 물리학적 진리의 전형이라는 이 두 가지 전형의 근원과 범위를 깊이 탐구해야 한다. (254)

§149, [1791(예순일곱)에 칸트의 두 주제, 형이상학적 악과 형이상학적 선의 통합을 시도했다. - 흄의 의심을, 칸트는 선천적 인식을 인정하면서, 착각이라 여겼다.]

    데카르트에 따르면, 그리고 라이프니츠에 따르면, 물리학은 수학의 확장(l’extension, 연장)일 뿐이다. 데카르트는 투박스럽게 감각적 재현들 일체 대신에, 그리고 상상작용의 우주 대신에 세계를 대채했다. 세계는 그것의 실재성에서 파악되어 사색적 기하학의 대상이외 다른 것이 아니었다. 라이프니츠는 무한의 분석에서 수학적으로 여러 덧없는 운동들에 도달할 수단을 발견했다고 생각했다. 감각적 성질들은 그 운동들의 표출이다. 라이프니츠는 추상적 진리들에게 착각들의 자료들과 잘 기초된 현상들사이에서 분간의 원리를 요구한다. 그런데 선천적인 원리로부터 진행한다고 이렇게 주장하는 철학은 지성적인 것과 감성적인 것의 일치를 정당화할 뿐만 아니라, 감성적인 것의 현존을 정당화한다. 만일 혼동이 제기되면, 사람들은, 이상토대(Idealgrund, 관념토대)의 질서 안으로 거슬러 올라가면서, 혼동이 명석함에 의해 설명된다고 잘 이해한다. 반대로 만일 명석함이 먼저 제기 된다면, 마치 명석함이 실재토대(Realgrund)의 질서 안에서 그렇게 되어야만 하는 것처럼, 사람들은 빛으로부터 멀어진 운동을, 즉 어둠 속에서 추락을 이해하지 못한다. (254)

    뉴턴의 실험(경험)적 철학은 수학들과 경험의 동맹을 아주 다른 방식으로 구상했다. 물리학의 수학적 정식들을 기초하고 정식화하는 것은 경험에 속한다. 그리고 경험의 가치는 정확히 말하자면, 그것이 형이상학적 명증의 너무 좁은 틀들을 폭발시키게 한다는 것이고, 그리고 그것이 순수 추론이 인도하지 못했을 법한 관계들의 전형들을 정립한다는 것이다. 그러면 합리주의적 독단론을 위하여 유사한 원리의 귀결들이 어떤 것인가? 흄의 󰡔인간 오성에 관한 시론들(1749)󰡕(독일어 번역은 1756)의 읽기에서, 칸트의 눈으로 보기에 귀결들은 뒤따르는 형식 하에서 표명되었다. 즉 관념들의 연결들은, 규칙적으로 증명작업의 결과로부터 나온 것으로, 이런 증명작업의 필연성에 참여한다는 것이 가능하고, 이런 연결들은 엄격한 연결들로 증명작업으로 이루어진 적용을 보존한다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필연성(nécessité)보편성(universalité), 사실의 계속들이 문제될 때, 내속적 기호작용[의미]로부터 박탈당했다 그리고 정해진 찰나에 그리고 특별한 상황들과 더불어 그것들이 분리될 수 없을 정도였던 그런 계속들로 등록되었다. 관계의 원초적 형식은 의식의 상태들 사이에 연합(association), 즉 장소, 시간 등등의 조건들위에 근거하는 연합이다. 이 연합에게 습관이 겉보기에 자연적인 믿음들을 생장하게 하는 힘을 겨나는 힘과 소통한다. (255)

      이리하여 흄의 철학은 인력의 학설이 될 것이다. 이는 그의 우주론적 적용을 심리학적 근원에러 귀착시키고, 양적인 형식을 박탈한다. 이 형식으로부터 그의 철학은 정확한 과학의 성격을 유지한다. 우연적이고 개별적인 겉모습, 즉 질적인 관계들만을 허용한다. 그러므로 낯선 귀결에 의해서 뉴턴 과학을 정신의 영역으로 확장은 과학을 확립할 역량[용량] 자체를 의심하게 되는 결과가 된다. 이어서 뉴턴의 구출물의 토대 자체를 흔들어 놓는다. 칸트가 흄의 󰡔시론󰡕에서 유지하게 될 것은, 이법상 진리들(les vérités de raison)사실상 진리들(les vérités de fait) 사이에 기본적 분리이다. “이법의 논리적 사용, 순수하게 분석적인 항들의 대체의 도움으로, 관념들의 관계들을 서로서로 연쇄로 묶는데 있다. 경험은, 라이프니츠가 이미 코기토를 가지고 첫째 사실의 진리로 만들었을 때 그가 그것을 이미 다루었던 심리학적 의미에서 이해되어, 전적으로 주관적이고 전적으로 지나가는[일시적인] 인상들과 다른 것을 제공할 수 없다. (256)

§150. [감각계와 지성계, 그러면 지각계는? - 지성계 위에 관념계, 감각계 안에 지각계 지각계 안에서 관념들의 연합에 관해 흄의 의심을, 칸트는 선천적(관념계) 인식을 인정하면서, 착각이라 여겼다.]

    이 조건들 속에서, 순수 논리학적 영역과 순수 감각작용의 영역 사이에서, 소위 말하는 과학을 위한 자리를 없을 것이다. 그 과학에 의해서 사유의 규칙들은 지각작용의 자료들(les données)에게 적용될 것이다. 합리적 물리학의 정당화는 절망으로 나타난다. 이 찰나에, 수학적 인식의 인식은 관계하기 시작한다(entrer en jeu). 적어도 󰡔1770년 교수 취임 논문󰡕(성계와 지성계의 형식 및 원리들에 관하여) 발표와 󰡔순수이성 비판(1781)󰡕 사이에 정교한 작업을 하는 시기에, 칸트는 알아챘다. 자연에 대한 과학에 상대적인 문제의 해결은 마치 유비적 문제의 해결의 보조명제였다는 것이고, 유비적 해결은 물리학으로 옮겨가는 대신에, 말하자면 수학에서 경험으로 적용에 근거하는 것이 아니라, 수학자체의 내부에 있었을 것이다. 그런데 수학들에 마주하여, 흄의 회의적 의심은 충분히 합법적으로 원인성의 분석에 연결될 수 있는 것으로 보일 수 있지만, 파라독사의 성격을 덮여져 있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칸트는 󰡔시론들[오성론]󰡕의 현명한 저자가 두려워했다고 가정했다. 그가 󰡔순비󰡕의 제2판에서 쓰기를, “데이비드 흄은 모든 철학자들 중에서 문제에, [어떻게 선천적 종합 판단들이 가능한가?]에 가장 접근한 자였다. 그럼에도 그는 충분히 규정된 방식으로 또한 문제의 보편성 안에서 그것을 생각하기는커녕 왜냐하면 그의 논증작업에 따르면, 그는 순수한 수학도 없듯이[논리학적] 주장도 더 이상 없을 수 없었다는 것을 인지했을 것이기 때문이다. 그 주장에 반대하여 그의 양식(bon sens)이 잘 수학을 잘 간직했을 것이라고 한다.” (256)

 

2, 수학들의 학술적 개념작업들 La conceptions technique des mathématiques 257

§151. [칸트철학의 주춧돌, 산술학과 기하학은 동일한 논리일까? 그는 무의식적으로 수학에서 물리학으로 진행했다. 수학들(산술학과 기하학)이 물리학에 응용될 수 있다.]

    우리가 좀 전에 막 했던 암시로서 제기했던 이전(la transposition)은 어떻게 수학적 철학이 󰡔순수이성비판󰡕의 기초석이 되는지를 설명한다. 그 이전은 동시에 어떻게 칸트에게서 수학철학은, 데카르트주의와 라이프니츠주의에서 우리가 학술적 진보가 솟아나는 것을 보았던 수학적철학과 전혀 비교할 수 없는 것인지를 설명한다. 이 학술적 진보는, 정신이 그 자체로부터 그리고 그 자신의 소질로 우주를 소유하여 취급하게 하는 관념을 새롭게 할 수 있다. 칸트는 그 방법들이 칸트에게 인간 지성의 보다 깊은 통찰을 암시한다고 할지라도, 근대 수학의 독창적 방법들에 문의하지 않았다. 그의 성찰은 요소적인 부분들에 집중하였고, 그 부분들의 진리는 세기들 이래로 만장일치로 인정된 채 있고, 이 부분들은 잘 경계 지워진(bien délimité) 지평 안에서 사유를 유지한다. 완전수의 덧셈 또는 유클리드의 초기 명제들은, 7 + 5 = 12 또는 삼각형의 내각의 합은 2직각과 동일하다는 두 명제는, 그에게 습관적 참조 전형들을 제공한다. 칸트에게서 있어서 산술학과 기하학은, 그가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학에서 인정했던 완전성에 대한 동일한 성격을 갖는다. 추론작업은, 필연성과 보편성의 이의제기할 수 없는 가치를 이론의 모든 부분들에게 부여하면서, 이 두 학문을 구성한다. 그리고 추론작업이, 아리스토텔레스의 삼단논법과 동일한 자격으로, 그것의 요소들 각각의 표상[재현]을 경험 속에서 만나는 확실성을, 즉 그것의 접속들로부터 각각의 확정성을, 갖는다는 것을 그 추론작업은 그자체로부터 더 많은 보증을 이론에서 받는다. (257)

    심지어 더 멀리 가야 할 것이다. 비판적 철학의 쪼가리의(단편적인)” 형성작업은, 어떻게 수학의 관념이, 비판 철학이 합리적 가치를 나중에 정당화하는 데 사용해야만 했던 뉴턴 물리학의 영향 하에서, 칸트에게서 일종의 무의식적 미끄러짐(glissement inconscient)을 감당했는지를 깨닫게 하는 수단을 부여한다. 이 무의식적 미끄러짐은 수화된 사물들과 그려진 도형들에 근거하여 직접적으로 산술학과 기하학의 증명작업들을 실행하는 것을 결과로서 삼았다. 아마도 보다 나중에서 그가 󰡔순비(1781)󰡕 또는 󰡔미래 형이상학 서설들(1783)󰡕을 구상할 때, 칸트는 자신이 순수 수학으로부터 물리학으로 간다고 믿을 것이다. 그러나 문제가 남는다: 순수 수학적 용어 대신에 응용된 산술학과 응용된 기하학의 개념작을 대체해서 시작했었지 않는지를 아는 것이다. 그러한 방식에서, 산술학 또는 기하학으로부터 물리학으로 이행이 사실상 단순한 형식을 응용 수학의 보다 복잡한 형식으로 이행일 것이라는 것이다. (258)

§152. [칸트의 수학에서 물리학으로 현실적 사고에서 수학들의 체계 속에서 개념작업으로 전회. 수학들의 용어가 관념이 아니라 인간이 체계를 만드는 개념들이다. 즉 선험적 도식의 학설을 창안한다.]

    이러한 참고에서 사람들은 1763년의 중요한 논문을 마치 특성처럼 부각시킬(들어올릴) 수 있다. 그 논문 부정적 크기의 개념을 세계지혜 속에 도입, 시론(1763)은 칸트로부터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논리학과 단호한 단절을 표시한다. 만일 우리가 어떤 긍정적 양으로부터 감소하면서 나아가는 일련의 크기들을 고려한다면, 우리는 정신의 선형적 진행에 의해서, 또는 칸트가 1791년에 말할 것인 것처럼 빛의 단순한 약화에 의해서, 부정적 크기(la grandeur négative, [산술학의 음수(빼기)])를 얻는다. 그러나 그 당시에[1791] 우리는 부정적 크기들의 정태적 표상작업만을 소유하고 있었다. 그런데 만일 부정적 크기들이 전체적 결과를 변모하기 위하여 계산에 개입한다면, 그 부정적 크기들은 긍정적 크기들과 부재와는 다른 것이다. 그리고 이것들은 대립의 효과를 갖고 있으며, 이것들은, 마치 화면이 빛의 전파(transmission)실증적 장애물인 것처럼, 실증적 작용을 실행한다. 칸트가 자기 주제의 지지로서 소개한 예시들은 특별하게 의미 있다. 포르투갈에서 브라질로 가는 배 한척이 있다. 이 배는 7일간 19마일을 간다. 바람들은 배의 항해에 반대로 있을 수 있다. 바람들은 어떤 때는 서쪽으로 동쪽으로 배를 이끌고 갔다. 그런 방식으로 19마일의 마지막 항행을 측정하기 위해서, 배가 목적지로 접근하는 직접적 항적과 목적지로 멀어지는 반대 항적 사이에 차이를 만들어야 했다. 배가 8마일을 거꾸로 실행되었다고 가정해봅시다. 사람들은 이 항행거리가 부정적 크기의 자격으로 방정식 속에 들어가야 한다. 그러면 배는 서쪽 방향으로 27마일을 실행했을 것이며, 우리는 이렇게 쓸 수 있을 것이다. 278 = 19. 그러나 글쓰기로 수학적 번역과 기호들의 협약적 형식은 [이 둘은] 우리에게 이것들이 그려서 보여주는 크기들의 성격을 감출 수 있을 것이리라. 부정적 방향의 수 마일은, 마찬가지로 긍정적 방향의 수 마일만큼이나, 실재적으로 실행했던 항행 길에 해당한다. 부정적 방향은 한 상인의 부채들과 다른 것이 아니다. 부채들이란 상인의 소유에서 빼기(감산)이다. 인도인들이 산술적 계산의 확장을 위하여 이미 실행하고 이용했다고 하는 한 논평에 따르면, 부채들은 빼기 기호(-)와 더불어 그 상인의 한정된 재산의 계산에 들어가야 했다. 그러나 이로부터, 부채가 소유의 부족분일 뿐이라고 결론 내리는 것은, 또한 채권과 채무의 차이를 단순한 논리적 대립에 동화시키는 것이라는 것은 우스꽝스러울 것이다. 반면에 그 차이가 실재 상으로 마치 인력과 척력이 작용하는 것처럼 서로 반대 방향으로 작용하는 구체적인 두 실재성의 충돌이다. (259)

    매우 단순한 이러한 겉보기의 고찰들은 하나의 대체(une substitution)를 함축하고 있다. 대체의 과감함은 아마도 칸트가 몰랐던 것으로 남아있으며, 그러나 대체의 귀결들은 비판적 혁명을 지배하게 되었다. 산술학은 이상적 대상들인 한에서 수들의 과학이 더 이상 아니다. 산술학은 수로된 사물들의 과학이다. 그리고 수들 사이의 관계들을 결정하는 것은 사물들 자체들 사이의 관계들의 자연[본연]이다. 사실상 󰡔성계와 지성계의 형식 및 원리들에 관하여: 1770년 교수 취임 논문󰡕에서, 칸트는 (le nombre)를 마치 지적 개념 자체처럼 소개 했다. 무매개적으로 보태기 위해서, 수는 시간과 공간 용어들의 도움으로 구체적인 것 속에서 현실화된다. 그런데 선험적 도식(le scheme transcendental)의 관념을 맹아로서(en germe) 포함하고 있는 학설을 제시한다. (259)

§153. [칸트는 자연과학에 대한 수학적 원리(뉴턴)로부터 형이상학적(존재론, 우주론, 형식론) 근거 마련하려 하다. 칸트는 라이프니츠에서 멀어지면서, 자연배후학(자연론, 우주발생론, 생성론)에서 물자체(Ding an sich)를 버림으로써 선험적 도식을 만들었다.]

     다른 한편, 칸트는 자치적 학문의 자격으로 무한소 분석을 이전에 고려하지 않았던 것 같다. 1763년에 부정적 크기의 개념을 세계지혜 속에 도입, 시론(1763)에서 그는 무한소 분석을 시간과 운동의 연속성에 묶는데 만족했다. 만일 무한소 용어가 변증법의 중요한 찰나에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초기 근거(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 속에 도입되었다면, 칸트는, 수학적 적용으로 둘러싸여 있을 수 있었던 난점들을 구별하기 위하여, 곧바로 소위 말하는[아리스토텔레스] 용어의 형이상학적 성격을 강조한다. 역학의 진실한 보조물은 그의 눈으로 보기에 고대인들의 종합적 기하학을 남긴다. [보조물인] 파라독사는 뉴턴이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에 스스로 만족하여 부여한 형식 자체에 의해서 설명된다. “칸트의 눈에는 가장 실재적이고 가장 풍부하고 가장 완전한 수학을 실현할 수 있었던 그 책은 구체적 직관의 표상(재현)에 의해 진행하였지, 분석의 추상작업들에 의해서가 아니었다.” (260)

§154. [칸트는 공간의 4차원을 부정하고 형이상학적 모델(공간)을 수용하지만, 대상들(왼손과 오른손) 사이에 순수 수학에서 합동이 아니지만 동등성을 가질수 있다고 믿는다. 사유의 공간 안에서인데, 이 공간은 수학의 공간이 아니다. 수학의 공간은 3차원에 국한되지 않는다.]

     결국 기하학을 고려해보면, 동일한 고민이 칸트에서 발견된다. 사람들은 1747년에 쓰여진 논문 살아있는 힘의 올바른 측정에 관한 생각들(1746)에서, 자기 자신의 철학적 발전과 근대 기하학의 발전이 동등하게 유명하게 하는데 기여했던 구절[구문]을 잘 길어 올린다. “공간에 대한 가능한 모든 종류의 과학은, 어떠한 의심도 없이, 유한한 지성이 기획할 수 있었던 가장 상위의 기하학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또한 왜 칸트가 추상적 개념작업을 멀리했는지를 그리고 칸트가 순수 허구들에 서열에 속하는 4차원(das Unding, 혼돈)을 내버렸는지를 보아야만 한다. 그것은 논리적 요소 또는 적어도 순수하게 기하학적인 요소인 한에서 공간의 용어에 속하는 내속적 성격들의 이유에서가 아니다. 그것은 이런 이유에서 인데, 왜냐하면 공간은 물리적 조건들로부터 독립성 하에 있기 때문이고, 왜냐하면 공간은 힘들의 체계에 연결되어 있고, 힘들의 상호작용의 양식(le mode)에 연결되어 있기 때문이다. 물체들이 거리들의 세제곱의 반비례로서 서로 끌어당기는 세계에서, 우리들의 감성은 외부세계로부터 다른 인상들을 받아들이며, 그리고 차원들의 수는 변하게 될 것이다. (260)

    1764년의 그의 논문 자연신학과 도덕의 원칙들의 명료성에 대한 연구(Untersuchung über die Deutlichkeit der Grundsätze der natürlichen Theologie und der Moral, 1764)에서 그는 확실성의 조건들을 정확하게 제한할 것을, 그리고 자연과학 속에서 뉴턴의 실천적 방법에게 형이상학을 위한 유용한 모델을 빌려줄 것을, 제안하였다. 칸트는 한편으로 형이상학에게 자신의 정의들에 이르게 하는 종합적 과정을 강조하였다. 다른 한편 그는 그의 증명의 방법이 근거할 구체적 객관성을 밝혔다. 이리하여 공간의 정의되지 않는 [무한정한] 분할가능성을 정립하기 위하여, 기하학자는 구축작업에 도움을 청한다. 칸트에 의해 지적된 예시에 따르면(도형, 10), 기하학자는 AB라는 직선을 그리고, 이에 직각으로 뻗어있는 두 평행선들 CAD, EBF을 그린다. 이 평행선들 중의 하나인 점 C로부터, 그는 [CD의 직각인 AB선과 다른 평행선[EBF]를 자르는 직선들을 긋는다. 이 평행선 EBF는 무한히 이어질(연장할) 수 있어서, 사람들은 원하는 만큼의 할선들(les sécantes) 그을 수 있다. 따라서 AB[사이에] 유한한 선분(le segment)은 무한한 부분들로 분할될 수 있도록 허용할 수 있는 것으로 나타난다. 칸트가 결론 짓기를, “이 상징(ce symbole)에서, 기하학자는 분할작업이 유한한 [한계] 없이 이어져야만 할 것이라고 가장 큰 확실성으로 인정했다.” (261)

     칸트의 철학적 호기심은 그 기하학자를[상징을?] 대상의 자연[본연]에 더욱 가까이 검토하도록 밀고 가며, 이리하여 이 대상이 수학자들의 질문들에게 이 대상 자체로부터 대답할 수 있게 한다. 1768년에 그는 아주 특별하게 보이는 논평을, 그가 결정적 중요성을 부여한 논평을 한다. 그러니까 그가 그 논평으로 한 논문 공간에서 방향의 차이에 대한 첫째 근거에 대하여(1768)작성했다. 오른(droite)(gauche)이라는 용어가 중요하다. 우리 스스로가 상호 보충적이고 개입을 허용할 수 있는 용어들로 만드는 관념에게 처음에 더 잘 응답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는 용어는 전혀 없다. 그리고 공존의 이상적(idéal) 질서로 라이프니츠 개념작업을 더 잘 정당화하는 것으로 나타나지 않은 용어도 없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기에 이런 개념작업을 거짓이라 반박하는 한 사실이 있다. “하나의 구형의(공 같은) 삼각형(Un triangle sphérique)이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것을 다시 덮어버리지 않고서 다른 삼각형과 동등할 수 있고 또 닮을 수 있다.” 오른 손과 왼 손에서도 마찬가지이다. 그러한 예들은, 완전히 닮고 동등하지만 그럼에도 합동이 아닌(incongruents) 공간들의 가능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충분하다. (261)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두 이론들은 1716년 클라크(Clarke, 1675–1729)와 라이프니츠 사이의 논쟁에서 상당히 분명하게 부딪혔던 것이고, 그리고 18세기의 수학자들은 두 이론들에 대해 검토를 끊어지지 않고 추구하였다. 즉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이론들 사이에서, “대칭적인 대상들의 역설(paradoxe des objets symétriques)”이 일종의 교차 실험(experimentum crucis)을 구성한다. 공간의 타고난 자연(본연)은, 자연이 3차원 기하학에서 표출되는 대로, 공간을 순수하게 지적인 관계들 체계로 옮겨놓도록 허락하지 않는다. 그리고 공간은 장소들의 추상적 질서로 다시 데려오도록 허락하지도 않는다. 공간 안에서 우주의 자료(le donné)에 내재하는 어떤 것이 있다. 그것[자료]은 우리 신체의 부분들에 연결된 것으로 나타나며, 이 자료는 절대적이고 기원적인 공간의 관계를 깊이(심층)에서 인증한다. (262)

3, 시간과 공간의 형식[형상] Les formes de l’espace et du temps. 262

§155. [칸트에게서 개념적 사고에서 시간과 공간이 형식[형상]으로 지위를 차지하고, 이 형식을 (질적)관계에도 동등하게 적용하려 한다. 적용 불가능한 질적 변화의 삶의 부분을 쓸모없음(Unding, 비물질)으로 배제할 것이다.]

    1768[마흔넷]년 논문과 더불어 칸트에게서 수학 과학의 집적적인 탐구가 완성된다. 이제부터 요소적 산술학의 명제들은 또는 유클리드 기하학적 명제들은 과학적 인식 이론의 정립에서 참조들(références)로만 쓰인다. 또한 칸트의 사유는 잘 구별된 두 단계들(phases, 1770, 1781)에 의해 일어났다. 1770[마흔여섯]년에 시간과 공간에 대한 순수직관들의 발견은 역학과 기하학의 적용을 감각적 세계에 제한하는 것을 귀결로서 삼았다. 이 발견은 순수 오성의 개념들에게 열린 지성적 세계의 장[영역]을 남긴다. 반대로 1781[쉰일곱]년에, 오성 개념들의 효과적인 적용을 토대로 삼은 것은, 그리고 추론적 과학 전체의 실증성을 보장해 주는 것은, 감각적 직관의 선천적(a priori) 형식에 의해 제안된 제한(restriction)이다. 1770년의 취임논문의 본질적인 정식들을 재생산하는 선험적 감성론선험적 분석론을 덧붙여서, 칸트는 수학의 선천적 종합 판단들을 소개한다. 칸트는 마치 양의 질서 속에서 정확하게 평행하는 것처럼 수학의 선천적 종합 판단들이 있고, 관계의 질서 속에서도 선천적 종합판단들이 있을 수 있다는 것으로 소개한다. 수학적 인식의 이론은 󰡔순수이성비판󰡕 속에서 새로운 체계의 요청들에 따라, 재편성되고 재조정된다. 이로부터 그 이론이 제공하는 복잡한 성격이 나오며, 이는 칸트에 의해 불려온 예들의 거의 근본적인 단순성(simplicité)과는 특이한(singulier, 단일한) 대조를 이룬다. (262)

§156. [1770년 취임논문에서 공간을 개념으로, 그런데 1769년에 뉴턴과 라이프니츠를 동시에 놓고서 보면서 새로운 형식을 구상했다.]

    1770년 취임논문에서 시간에 관계하는 진술이 공간에 관계하는 진술에 앞선다고 할지라도, 그것은 아마도 칸트의 해법을 자극해 왔던 기하학에 정당화에 알맞게 난점들을 해소하려는 욕망일 것이다. 만일 사실상 1768년의 [공간에 관한] 논문에 의해서, 공간이 이상적 체계에 환원할 수 없다는 의미에서 공간은 절대(un absolu)이라고 확립했다고 할지라도, 사람들이 공간적 관계들을 실재적 항목들로부터 그 항목들 사이에 관계들이 확립되어있지만 - 분리하여 떼어낼 수 있다는 결과가 전혀 나오지 않는다. [한편으로] 공간의 내재하는 자연에서 파악한다면, 공간은 비존재(un non être)이다. 칸트는 󰡔비판론󰡕에서 공간을 유클리드기하학의 대상에 적용하기 위하여, 운딩(das Unding, 혼란)의 동일한 표현을 다시 다룬다. 그는 이 표현을 30년 전에 3차원보다 더 큰 공간을 지시하기 위하여 사용했었다. 다른 한편 공간은 개념(un concept)이 아니다. 만일 공간이 감각적 경험의 추상이었다면 사람들은 기하학적 명제들의 필연성과 보편성에 모순되게 말할 것이라는 것 이외에도, - “예를 들어, 현재까지 관찰을 실행할 수 있었던 만큼이나 또한 사람들은 3차원 이상을 갖는 공간을 발견하지 못한다고 말하기에 만족해야만 할 것이다.” - 아무것도 공간의 자연(본연)에게 더 이상 혐오감을 주지 않듯이(내치지 않듯이), 칸트가 그 단어를 사용하는 의미에서, 그리고 그가 추론적(discursif)이고 보편적(universel)인 형용사구들에 의해 정확히 한다는 의미에서, 개념의 고유한 기능도 혐오감을 주지 않는다. 공간의 규정작업들은 공간의 부분들이지 공간의 종별화들(specifications)이 아니다. 따라서 공간만이 있다. 그 안에는 사물들의 총체성이 포함되어 있다. (263)

    따라서 경험적 자료(la donnée)와 추상적 개념의 전통적 반명제(안티테제)는 공간의 자연(본연)을 회피하게 내버려둔다. 그에게 있어서 시민권[시민신분]의 새로운 형식을 창조해야한다. 그리고 그에게 커다란 빛을 가져다준 것은 1769년에 칸트가 뉴턴 학설과 라이프니츠 학성의 동시적인 성찰에 의해서 도달한 새로운 형식에 있다. (263)

§157. [칸트는 뉴턴의 신의 감각작용을 인간의 감각작용으로 변환하다. 즉 신의 보편공간을, 친족성 덕분으로, 인간 지성의 공간으로 변환한다. 지성의 공간: 도식(schema)의 발명.]

    칸트 자신이 쓰기를 뉴턴에 따르면, 공간은 신적인 편재의 감각기관/장소(sensorium omnipraesentiae divinae)이다. 그런데 신의 감각기관(sensorium Dei)과 같은 이런 용어 안에는 형이상학적 독단론이 포함되어 있다. 그것을 검증하는 것은 어렵고, 아마도 심지어는 명석하게 생각을 품는 것도 어렵다. 그러나 라이프니츠는 클라크가 말하는 뉴턴의 정식들을 비판했다. 게다가 라이프니츠는, []로부터 주어진 초기 (내적) 자료(la donnée)가 필연적으로 있어야 했던 그 무엇에게, 말하자면 인간의 감각기관(sensorium hominis)에게 신의 감각기관용어 되돌려줄 수단을 제공한다. 모나드인 한에서 인간의 정신은 재현작용의 우주에 공연적(coxtensif)이다. 뉴턴이 사물들의 실재성에 마주한 신에게 속성으로 부여한 편재(omniprésence, 유비쿼터스)의 관계를 사물들의 이미지들을 가지고 주장하는 것은 있을 수 없을 것인가? 1770󰡔교수취임논문󰡕은 명석하게 응답한다. “spatium, quod est conditio univeralis et necessaria compresentiae sensitive cognitae, dici potest Omnipraesen tia Phaenomenon” [공간은 감각적으로 알려진 사물들의 온편재(공현존)의 보편적이고 필연적인 조건이기에 현상의 온편재(총현존)로 불릴 수 있다.] (264)

    표현들의 유비는 개념작업들과 동족성(la parenté, 친척관계)을 표시하며, 동족성은 게다가 칸트의 동시대인들을 벗어나지 못했다. 바이힝거(18521933)가 뽑아낸 한 논문에서, 슈밥(Schwab, 1743-1821)은 이미 쓰기를, 칸트가, 뉴턴의 신적 감각기관(sensorium)을 인간 정신에게 전송하면서, 공간에 대한 자신의 개념을 형성했던 것으로 보인다고 한다. 왜냐하면 신의 내재성과 공간 속에 피조물[창조물]의 제한 사이에 라이프니츠주의는 전체부분(pars totalis)이라는 모나드의 개입시켰기 때문에, 공간은, 󰡔순수이성비판󰡕 속에서 칸트가 재생산한 라이프니츠의 표현에 따르면, 인간의 관점에서 상대적이라고 말하는 것이 가능하다. 그러나 또한 공간의 고찰은 절대의 질서로부터 상대의 질서로, 실재성의 영역으로부터 재현[표상]의 영역으로 되돌리는 것이기 때문에, 신에 의한 뉴턴의 공간구성이 제공할 모델에 근거하여 인간에 의해 공간의 구성을 생각하는 것이 가능하다. 동시에 수학적 명제들의 선천성을 그리고 우주의 현상들에게 명제들의 적용을 확립하기 위하여, 아직은 충분하지 않더라도 필연적 조건들이 보장되어 있다. (264)

    그러한 것이 1770년이래로 공간을 기하학의 토대로 정의하는 (평행하여 시간을 역학의 토대로 정의하는) 정식들 속에 집적되었던 사유의 노력이다. “Conceptus spatii est intuitis purus, cum sit conceptus singularis, sensationibus non conflatus, sed omnis sensationis externae forma fundamentalis Spatium non est aliquid objectivi et realis, nec substantia, nec accidens, nec relatio; sed subjectivum et ideale et e natura mentis stabili lege profisciscens veluti schema omnia omnino externe sensa sibi coordinandi.” - [공간 개념은 순수직관이다. 왜냐하면 감각작용으로 혼합되어 있지 않은 단일한 개념이 문제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외부 감각작용의 근본적인 모든 형식 공간은 객관적이고 실재적인 것이 아니고, 실체도 우발도 관계도 아니다. 그러나 그것은 주관적이고 이상적이고, 그리고 모든 외적 감각작용들 일반 사이에 배열하기 위하여, 마치 도식처럼, 안정된 법칙에 따라서 정신의 자연[본연]을 진행한다.] (265)

 

4절 선험적 연역과 도식주의 La déduction transcendentale et le schématisme 265

§158. [선험이란 흄의 경험주의도 아니고, 라이프니츠의 주지주의도 아니며, 현상과 존재사이의 차이확립이라 한다. 말 그대로 보면 표면의 차이를 탐구한다. 이 표면이 대략적으로 삼원론이다. 그래서 범주도 판단도 세 가지이지만, 범주의 단위는 자연의 단위인데 비해 판단의 단위는 인식론의 도식 속에 있다.] - [도식 속에서 개념의 논리학]

    1770󰡔교수취임논문󰡕의 끝을 장식하는 정식들과 선험적 감성론이 있는데, 이것들은 수학과학의 문제를 전적으로 해결해주지 못한다. 이러 이유에서 한편으로, 감각적 직관의 형식들은, 형식들이 경험을 앞서고 또한 가능하게 한다는 의미에서, 선천적이라는 것을 증명하는 것이 하나이다. 다른 한편으로 어떻게 형식들이 선천적 직관의 재료[질료]가 되는지를, 어떻게 형식들이 직관의 대상을 경험 없이 지내려는 과학에 가져가는지를 알게 하는 것은 다른 하나이다. (265)

    이 둘째 질문에게, 선험적 분석론은 지적 자발성의 이론에 의해 응답한다. 지적 자발성 이론은 선험적 감성론속에서 감각적 수용성 이론 위에 근거하여 투사되어 있다. 선험적 감성론은 상대성을, 즉 경험의 세계에 내재해 있는 현상성(la phénoménalité)을 명백히 밝혔다. 분석론은 이런 현상성에 지지를 받고 있는데, 그것으로부터 합리성(la rationalité), 합법성(la législativité)을 근거하기 위해서이다. 그런데 분석론은 인간정신이 정신자체로부터 질서의 원리를 규정할 수 있다고 이렇게 이해한다. 절서의 원리에게 과학은 감성의 자료들(les données)을 복속시킬 것이다. 여기에 󰡔순비󰡕의 비밀이 있으며, 이 비밀은 로크(16321704)와 흄(1711-1776)의 경험주의를 회피할 것이고, 그러나 라이프니츠의 순수 주지주의를 회피할 것이다. 그 이유로 단지, 절대 속에서 고려된 현상과 존재 사이에서, 근본적 차이의, 자연적 차이의 확립, 자기와 다른 사물과 모든 관계로부터 사유하는 주체를 해방시켜주기 때문이고, 그리고 주체의 기능들의 구조 속에서 과학적 공리들의 가치와 내용자체를 정덩화하는 하는 것을 탐구하기 때문이다. (265)

    그러한 탐구는 개체적 의식의 관찰에 만족하는 일상적 심리학과 공통점이 아무 것도 없다. 탐구의 목표는 권리상으로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이다. 그 조건들은 합리적 과학의 사실 속에서 함축되어 있다. 그 탐구[과학]은 모든 정신들에 공통하는 활동성을 (1765년에 출판된 󰡔오성 개선론󰡕의 영향을 드러내는 것이 편한 개념 작업에 따라서) 목적으로 삼는다. 그 활동성은 지각작용과 반성적 지성의 각성에서 정신들의 각각에 앞서는 활동성이다. 그리고 비시간적 각인으로부터 인류의 사변적 숙명들을 표시하는 선천적(a priori)이며 선험적(transcendentale)인 활동성이다. (266)

    무의식적 활동성의 영역은 이법[이성, 추리]의 통일성(l’unité, 단위)에 직관을 제공하는 잡다(le divers)의 재료로부터 펼쳐진다. 사유[생각된 것]의 모든 작동은 통각(l’aperception)의 종합적이고 기원적인 통일성을 가정한다. 그 통각 덕분에 판단의 항목들은 동일한 의식 안에 모아지고, 그리고 긍정작업[판단]의 유일한 작동의 일부를 이룬다. 이 적용 작업에서, 종합적 통일성은 판단 속에서 항들의 연결을 주재[지배]하는 개념(le concept)의 자연[본연]에 따라서 다른 국면들을 덮어씌울 것이다. 7+5=12이 양(la quantité)의 개념을 함축한다고 하는 것은, 마치 태양은 돌을 덥힌다가 원인성(la causalité)의 개념을 함축한다는 주장과 같다. 불행하게도 이런 용어를 이용한다고 그리고 범주들의 체계적인 목록을 세운다고 할 때, 칸트는 형식적 논리학의 전통에 도움을 청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1763년과 1764년의 그의 논문들은 합리적 과학의 풍부한 절차들과 근본적 양립불가능성을 고발했었다. 칸트는 범주들의 구별과 자연[본연]판단 속에서 사유의 논리적 기능들위에 근거하게 한다. 이로부터 비판적 반성의 경과에서 진솔한 일시중단이 나온다. 예를 들어 수학들에 관련 것에서, 양의 범주들, 단위성(unité), 복수성(pluralité), 전체성(totalité) 등은 논리적 양과는 다른 종류들에 상응한다. 이런 논리적 양에는 일반(généraux) 판단들, 개별(particuliers) 판단들, 단일(singuliers, 특이) 판단들이 있다. 그러나 양의 두 관념들 사이에 단순한 언어적 일치와 다른 연결을 통각하는 것은 어렵다. (266)

    게다가 칸트의 눈에, 본질적 질문은 실재적 통일화로 양태들을 규정하는 것이 아니라, 오히려 이것으로 객관성을 확립하는 것이리라. 어떻게 범주들이 대상을 갖는 것을 허용할 수 있을까? 어떻게 개념적 통일성[단일성]과 감각적 잡다성의 접근이 조작[성립]될 것인가? 이런 질문에 응답하기 위하여 칸트는 통합해야할 물질을 사로잡는 매개적 기능을 도입하고, 그리고 그는 그 기능에게 지적인 통합화의 가능성을 소통하게 한다. 이런 기능은, 지성에 속하는 선천적 활동에도 동시에 감성에 속하는 직관성에도 참여하지만, 상상작용과 다른 것이 아니다. 잡다(le divers)의 재료를 얻을 수 있게 하는 직관 속에서 이해(appréhension, 파악)의 종합과 선험적 통각의 통일성이 표출되는 개념 속에서 재인지의 종합사이에서, 칸트는 상상작용 속에 재생산의 종합을 삽입한다. 이리하여 과학적 개념들의 문제들에서 상상작용의 역할에 관하여 경험적 심리학의 평면으로부터 선험적 논리학의 평면 속으로, 마이어(Georg Friedrich Meier, 1718-1777)와 특히 테텐스(Johann Nikolaus Tetens, 1736-1807)와 같은 독일 심리학자들의 논평들을 통과하게 하면서, 그리고 지적 상상작용의 데카르트적인 개념작업을 훨씬 더 잘 볼 수 있게 재결합하면서, 칸트는 생산적 상상작용의 순수기능의 수학적 실재성을 태어나게 했다. 이 생산적 상상작용의 순수기능은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을 양의 개념들 아래에 종속시킨다. (267)

§159. [도식의 성립은 시간 경과도 공간 너비를 토대로 정립. ]

    칸트는 이런 기능의 메카니즘을, 공간에 되돌아가는 부분과 시간에 되돌아가는 부분을 주목하면서 정확히 하였다. “형식들의 놀이(le jeu des formes)”는 공간 속에서 펼쳐진다. 소위 말하는 이미지로서 스스로 표현되기 위하여, 너비의 공간 하에 우선 의식 속에 침투하는 실재성의 수용체[그릇]가 되기에 적합하기 위하여, 시간(le temps)은 공간의 형식을 덮어쓸 것이다. “우리가 내부 변화들을 생각할 수 있기 위하여, 우리는 시간을 선에 의하여 도형화된 방식으로, 그리고 내적 감관의 형식처럼 스스로 재현해야 했다.” 그러나 만일 순수 상상작용의 결과를 생각하는 대신에, 우리가 스스로 생산적 기능 그 자체에 결합한다면, 시간은 특권적인 상황을 획득한다. 사실상 칸트는 아마도 이런 개념작업에 인도되었는데, 그 개념작업은 개별적인 조건들에 의하여 선험적 분석론속에서 원인성의 문제에 근본적이다. 자연의 현상들에게 원인성의 범주의 적용은 시간의 특수한 성질을, 불가환원성 함축하고 있다. 권리상으로 칸트는 불가환원성을 정당화하기 위하여, 그것의 형상이 시간인 내부적 의미의 보편성을 환기시키고, 그것의 의미가 공간인 외적 의미와 연관하여 보편성을 환기시킨다.주체의 작동인 한에서(대상의 규정작용인 한에서가 아니라) 그 운동은, 이어서 공간 속에서 잡다의 종합은, 이런 공간을 추상화하면서 또한 단지 그 작동만을 그 작동에 의해서 우리는 그것의 형식에 따라서 내적 의미(le sens interne)를 규정하는데 - 고려하면서, 무엇보다도 계속의 개념을 생산한다.” 다른 말로 하면 공간 속에 진열되는 정태적 표상작용들은 시간 속에서 실행되는 동역학적 기능으로부터 나온다. 칸트가 응답하기를 내가 서로 서로의 연속으로 다섯 점을 위치하게 할 때 거기에 수 5의 이미지가 있다. 반대로 내가 단지 수 일반을, 5 또는 100이 될 수 있는 수를 생각할 때, 이런 생각은, 어떤 개념에게 부합하는 이미지 속에서 예를 들어 눈으로 따라가기도 어렵고 개념으로 비교하기에도 어려운 1000의 집합을 표현하기 위하여, 하나의 방법을 재현한다. 이것은 상상작용의 일반 절차의 재현작용이며, 개념에게 내가 개념을 위한 도식이라고 부르는 이미지를 제공하기 위해서이다.” 따라서 수의 용어는 소위 말하는 개념(un concept)이 아니다. 그 수의 용어는 선천적인 순수 상상작용의 단일글자(un monogramme)”, 도식(un schème)이다. (268)

     그러나 칸트의 사유는 훨씬 더 멀리 갈 것이다. 수는 단지 도식의 한 예일 뿐만 아니다. 수는 양의 질서 속에서 유일한 도식이다. 이런 이유에서 도식주의가 역동적 과정이 되고, 또 그것은 공간적 재현[표상]작용에 적용할 수 있고, 그런데 도식주의가 그 자체적으로 공간과 독립적이 되는 찰나로부터, 칸트는 수() 속에서 그것의 양적인 표현을 발견한다. 그 수는 공간적 도형작업으로부터 그것의 경험적 기원을 유지 하면서, 그것의 선험적생산작업 속에서 시간에 의해서도 정의된다. “크기(la gradeur, quatitas)의 순수 도식은, 이것이 오성의 개념인 한에서, 수이다. 이 수는 (동질적인, homogène) 단위에서 [동질적인] 단위로 계속되는 더하기를 포함하는 재현작용이다. 이리하여 내가 직관의 이해 속에서 시간 그 자체를 생산한다고 해도, ()는 동질적 직관으로부터 나온 잡다의 종합의 단위 일반 이외 다른 것이 전혀 아니다.” (269)

   이로부터 사람들은 마치 기하학이 공간의 과학인 것처럼, 산술학이 시간의 과학이라고 결론내릴 수 없다. 시간의 대상(un objet)이 아니다. 시간은 산술학의 조건이거나 또는 보다 정확하게 수학 일반의 조건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역시나 산술학은 칸트가 시간에 일치시키는 우월성(primat)에 관여하다. 시간적 도식, 즉 수는 또한 기하학을 위해서도 가치 있다. 인식의 순수 형식과 경험적 자료들을 따로 놓는 간격 속에서, 지성과 상상작용은 정상적 조화 속에서 서로 만나고, 산술학과 기하학은 두 가지 다른 장소를 차지한다. 천자는 도 난다. 전자는 나는 생각한다(je pense)’는 내적 활동으로 향하며, 보다 지적이다. 후자는 도형적인 종합으로 향하며, 보다 상상적(imaginative). (269)

 

5, 수학적 인식의 상대성 La relativité de connaissance mathématique 269

§160. [칸트의 산술적 계산(연결)은 도식 안에서 개념들로 성립한다. 개념론에 수는 산술학의 수와 달리 사칙연산 중 보태기와 빼기(+, -)에서 성립하는 개념과 같다.]

    도식주의의 학설은, 얼마나 깊이 선천적 종합의 관념이 칸트의 수학적 철학을 침투했는지를 보여준다. 이런 철학은 단지 감성의 형식들의 직관을, 라이프니츠가 생각했던 동시성 또는 계속성의 추상적 질서에 대립시키는데 있을 뿐만 아니라, 예를 들어 공간의 지성성에 반대하여 대칭적 대상들의 파락독사(역설)” 평가하는데 있다. 칸트가 자신의 󰡔미래 형이상학의 서설들(1783)󰡕로부터 대중적이기를 원했던 진술에서 그가 새로이 강조할 파라독사는, 󰡔순비(1781)󰡕 속에서는 이미 침묵하며 지나갔다. 󰡔순비󰡕는 논리적 판단들의 형식과 수학적 판단들의 형식 사이에 외적 비교로부터 결과를 낳지 않을 것이다. 분명하고 아주 분명한 것은, 만일 사람들이 볼프(16791754)의 합리주의의 틀들을 보존한다면, 만일 라이프니츠주의가 단어의 가장 좁은 의미에서 범논리주의(paslogisme)처럼 해석되었다면, 주어 속에서 술어의 무매개적 내속관계(l’inhérence, 속성)에 의해서만 문자 그대로 분석적 판단일 것이다. 수학의 가장 기본적인 명제들은 분석적 전형으로 귀착하지 않을 것이다. 산술적 합계 12, 그것의 부분들이 7+5가 주어이어야 할, 술어가 아니다. 그러나 동등성[등치]의 판단들은 이 판단 자체들로부터 논리적 내포의 틀들 안으로 다시 돌아간다. 거기서 아주 부정적 범위의 사실이 있고, 범위의 본질적 사용은 문제를 정의하는 것이다. (270)

     해결에는 또 다른 기호작용이 있다. 이 해결을 정확하게 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백과전서의 예비적 담론(Discours préliminaire de l'Encyclopédie (Discours préliminaire des Éditeurs, 1751)󰡕에서 (그리고 이것의 발전을 꽁디약은 그의 󰡔논리학(1776)󰡕에서 부여할 것이다) 달랑베르에 의해 제기된 질문들에 참조한다. “만일 두 가지 기호들 또는 다른 단어들에 의한 동일한 단순 관념의 표현이 아니라면, 이 공리에 대해 기하학은 매우 오만하다. 그런데, 이 공리들의 대부분은 무엇인가? 2 더하기 24(deux et deux font quatre)를 말하는 자는, 2 더하기 22 더하기 2(deux et deux font deux et deux)를 말하는 것에 만족하는 자보다 더 많이 인식하는가?” 그것[판결]의 뿌리들에서 󰡔순비󰡕의 근본적 주제를 진동하지 않게 하고서, 칸트가 달랑베르에게 유리한 결정[판결]을 내릴 수 있었다는 것이 분명하다. 만일 2+2 또는 7+5로부터 사람들은 분석적으로 4로 또는 12로 통과한다면, 의심없이 칸트 진술의 어떤 세부사항을 변경해야 할 것이다. 그의 진술 안에는 형식적 논리의 언어와 실증적 과학의 언어가 해결할 수 없는[풀 수 없는] 무질서 속에 뒤섞여 있다. 그러나 그 깊은 곳에서[그 바탕에서], 그러한 것이 비판적 문제를 건드리지 않은 채 남아있다. 선천적 종합의 자리는 판단의 항들의 연결 속에, 또는 개별적인 이런저런 숫적 정식속에 있지 않다. 그 자리는 개별적인 모든 수가 파생[도출]되는 일반적 과정 속에 있으며, 용어[숫자]들 자체들을 창조에 있다. 이런 점에서 󰡔순비󰡕독단적 사용에서 순수이성의 과목의 첫 쪽들은 명시적이고 단호하다. 만일 수학자들이, 경험의 도움들 없이 이성 그자체로부터 펼쳐지기에 성공했던, 순수이성의 가장 선명한 예를 제공한다면,” 그것은 수학적 인식이 개념들의 구축작업에 의해 합리적 인식이라는 것이다. 그룹(2+2)가 주어질 때, 4구축해야 할 , 그러한 것은 의심할 바 없이 증명될 수 있을 것이다. 그룹(2+2)는 한편으로 2의 단순 개념작업으로 환원될 수 없으며, 다른 한편 2로부터 환원될 수 없다. 정립되는 것, 그것은 시간 속에서 계속되는 동질적 단위들을 동일한 용어 속에 통합하는 것이 가능하다는 것이다. 그런데 그러기 위하여 적어도 선험적 연역이외 아무것도 필요하지 않다. 선천적 직관은 선천적 상상작용을 조건으로 삼는다. 선천적 상상작용은 그 자제가 오성의 종합적 단위[통일성]의 의존하에 있다. 다른 말로 하면 이런 정식의 독창성은 칸트의 수학철학이 일어나게 해던 모든 오해와 모든 반론을 확실하게 설명한다. - 칸트가 도식주의 속에 천재적인 측심추([le] coup de sonde)를 부여한 것은, 기호 +, 즉 현대 논리주의자들이 말하는 상수 더하기’(constante et)근거[이유]있게 하기 위해서 이다. 측심추, 인간 영혼의 심층들 속에 감추어진 것을 찾는 기술이며, 그리고 눈앞에서 그것을 발견으로 제시하기 위하여 자연에서 진실한 기계주의[메카니즘]을 이로부터[측심추로부터] 뽑아 올리는 것은 어렵다.” (271)

§161. [칸트 기념비적 발견, 1781(쉰일곱) 󰡔󰡕, 그 속에서 과학의 성립. - 이 과학이 앵글로 색슨의 논리분석학 또는 논리실증주의일 것이다.]

   이제 우리는 칸트의 수학 철학의 범위를 규정할 수 있다. 반드시 만일 과학의 철학이 이 과학의 전위대로 옮겨갈 것을, 그 철학은 기술자들이 나누어 다른 논쟁들을 해결할 것을, 그 철학이 새로운 정복을 향해 행진하기를 자극할 것을 사람들이 요구한다면, 우리는 󰡔순비󰡕에 관해 만들어야할 거대한 토대가 없다고 말할 것이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의 직관이 위치해 있었던 한계들 속에 그리고 지평들 위에 칸트가 수학 철학의 문제를 유지한다면, 만일 사람들이 수학적 지성이 합리적 연역과 경험의 내용 사이에 연결(connexion)의 새로운 전형을, 다시 말하면 진리의 새로운 전형을 정의하기를 요구한다면, 우리는 󰡔순비󰡕 속에서 수학 철학을 발견한다. 그리고 수학적 철학은 인류 사유의 역사에서 결정적인 날자를 표시한다. (271)

    이런 이유에서 처음으로 수학들에 관한 칸트의 학설과 더불어, 과학의 이론은 과학자체와 연관하여 (이유율을 신학에 걸어놓았던 데카르트주의자들과 라이프티츠주의자들의 수학자처럼)저너머(au delà)에 있는 것도, (수학의 용어들 속에서 경험의 근차치만을 보는 영국 경험론처럼) 저안에(en deçà)에 있는 것도 아니다. 과학에 대한 칸트의 이론은 정확하게 과학 그 자체의 수준에 속한다. (271)

§162. [선천적 상상작용의 대상, 선험적 형식의 대상, 외연적 양이라 한다. - 외연적 양은 공간화이며, 현상학의 토대이다. 시간과 지속은 외연적 영이 아니라, “내밀한 질이기 때문이다. 계속이 아니라 연속이 중요하다.]

    이 관점으로부터 칸트의 연약한 겉보기[현상]들은 아마도 힘들(des forces)이 될 것이다. 수학에 대한 칸트의 이론이 해결하지 못한 문제들은, 이 불가능성으로부터 모든 철학적 귀결들을 끌어내기 위하여, 그것들이 실증적 해결을 허용하지 못한다고 제시하는 것이 중요했다고 여기는 문제들이다. (272)

    여기서 그 결과로 칸트의 정식들에 내속하는 중대한 난점이 나온다. 만일 수가 양 일반의 도식이라면, 어떻게 의 겉보기 성격들이라는 유한(le fini)불연속(le discontinu)의 겉보기 성격들이라는 무한(l‘infini)연속(le continu)의 연관(le rapport)을 생각하는가? (272)

    이 질문은 󰡔순비󰡕에서 질문 자체로서 취급되지 않았다. 사람들이 직접적으로 모을 수 있는 지표들이 커다란 불확실을, 또는 커다란 무차별을 증거 한다. 우선 선험적 감성론의 학설에 따르면, 공간은, 게다가 시간과 마찬가지로, “무한한 크기처럼 재현된다. 그리고 칸트는 심지어 둘째 판본에서 [그것을] 마치 주어진 무한한 크기처럼 말할 것이다. 공또는 시간의 부분들은 부분들의 모임에 의하여 공간 또는 시간을 구성하지 않는다. 반대로 부분들은 그것(en lui)[공간 또는 시간] 속에서 생각될 수 있다. 그러나 이 형식들은 정신 속에서는, 실재적 대상으로부터 오는 경험을 또는 선천적 상상작용의 놀이를 구성하는 이상적 경험을 받아들이기 위하여 완전히 적합하다. 형식들은 그것들 자체로서 잠재성들(des virtualités)로 파악될 뿐이다. (272)

     「선험적 분석론에서 이런 이중적 잠재성은 흩어진 항들의 유한한 계열 형성하는 심정적(mentales) 종합들의 덕분으로 현실화된다. 칸트가 쓰기를 나는 직관의 공리들(les Axiomes de l’intuition)의 진술 속에서 선()을 스스로 표상할 수 없다. , 그 선이 아무리 작다고 할지라도, 사유에 의해 그것을 끌어내지 않고서, 다시 말하면 한 점에서 다른 점으로 그것의 모든 부분들을 계속해서 생산하지 않고서, 결국 그것의 종류로부터 직관 전체를 다시 그리지 않고서, ()을 스스로 표상할 수 없다.” 수학자들이 공간 속에서 또 시간 속에서 선천적으로 구축한 외연적인 양들은 이제 반대적 성격에 의해 선험적 감성론이 시간과 공간을 재인식했던 본질적 성격으로 정의 된다. “나는 부분들의 재현이 전체의 재현을 (그리고 귀결로서 후자의 재현은 필연적으로 전자의 재현을 앞선다) 가능하게 하는 양을, 외연적 양(quantité extensive)이라 부른다.” (273)

    정식들의, 거의 글자 그대로의, 대립은 직관의 형상들과 순수 상상작용의 과정 사이에 본질적 부적합을 강조한다. 그런데 전자에서 형상들은 단지 형이상학적 질서의 자료들인 수학의 구축작업들에서 수용체를 사용하고, 후자에서는 그 과정에 의해서 과학의 대상은 효과적으로 실현된다. (273)

§163. [외연적 양의 공리를 지속의 시간()에 적용, 즉 다음의 예상을 수의 나열처럼 생각하면서 적용한다. <(공간)에서 질(시간)로 적용하는 것이 오류일 뿐만 아니라 사고논리에 폭력과 강압성이 있다.> ]

     연속성의 문제는 덜 예리한 형식 하에서 제시된다[소개된다]. 공간과 시간은 본질적으로 흘러나오는(fluentes) 크기들이며, 말하자면 그것들의 생산작업에서 (생산하는 상상작용의) 종합은 시간 속에서 진행과정이고, 이 진행과정으로부터 흘러감(écoulement)의 표현에 의해서 연속성을 지칭하는 습관을 갖는다.” 따라서 공간 속에서 그리고 시간 속에서 측정된 모든 것은 연속성의 성격을 나누어갖는다(participer). 심지어 사람들이 13탈러가 돈의 양이라고 말할 때 조차, 칸트는 사람들이 흩어진[개별단위로 된] 한 꾸러미[13] 뒤에 동전들을, 즉 사람들이 원하는 만큼의 나눌 수 있는 금속의 연속적인 양을 재발견하기를 원한다. 이때부터 소위 말하는 수적 도식은, - 거기에서 연속성의 본질적 성격이 둘째 평면으로 쫒겨나서 잠재적(latent)으로 있게 되는데, - 양의 충만한 관념을 부여하지 못한 것이다. 직관의 공리들(les axiomes de l’intuition)에 연결된 이런 외연적 양 옆에, (la qualite)양의 질서 속에 순수 오성의 종합적 원리들, 지각작용의 예상참여들(les anticipations de la percption)은 외연적 양의 용어에게 자리를 만들어 준다. “감각작용 전체는, 따라서, 현상 속에서 모든 실재성은, 이것이 아미룰 작다고 하더라도, 정도[차원], 말하자면 항상 뺄 수 있는 내포적 크기를 갖는다. 그리고 실재성과 부정성 사이에 가능한 실재성의, 그리고 또한 가능한 보다 작은 지각작용의, 연속적 연쇄가 있다.” (273)

    이리하여 아마도 산술학과 기하학에 감각적 질(la qualite)의 수학이 병치되는 것 같다. 오로지 라이프니츠와 뉴턴의 무한소 분석에 결부되어 있는 비슷한 학과[분과]의 생산성을 또는 내속적 명석함을 깨닫지 못했다면, 칸트는 그것[분과학문]을 수학들의 자치를 부분적으로 구성하지 못한다. 그 결과로 체계적인 분류작업에 매우 열광한 한 사상가에게서는 확실하게 낯선 단일성(특이성)에 의하여, 그는 수학의 도식을 한정적인으로 조직화하는데 성공하지 못한다. 시간의 과학을 규정하기 위하여, 그는 역학과 수학 사이에 주저한다. 마치 󰡔서설들(1783)󰡕의 왔다갔다하는 정식이 이를 증거 하듯이 말이다. “기하학은 공간의 순수한 직관을 토대로 삼는다. 산술학은 그 자체로 시간 속에서 단위들의 계속적인 보태기에 의해서 자기의 개념들을 생산한다. 그러나 특히 순수 역학은 시간의 재현을 수단으로 해서만 자기의 운동개념들 생산할 수 있다.” (274)

§164. [시간과 공간의 연속과 불연속에 관한한, 오성과 과학은 계속성을 이어가고, 형이상학은 양의 이상성(관념성)을 인정하여 무한과 연속성을 사유한다. 안티노미: 테제의 실증성, 안티테제의 관념성(이상성)으로 대립이다. - 칸트에게 오성의 이중성: 실증과학의 규정성, 형이상학의 이상성, 그런데 심층의 비규정성은 이 양자에 속하지 않는다.]

    확실하게 독단론의 관점에서, 모든 비결단성[우유부단]은 파멸로 나타난다. 수적 종합의 유한성과 불연속성은 공간적 크기의 무한성과 연속성과 양립불가능하다. 이로부터 르누비에(1815-1903)의 우호적 표현에 따르면, 그 철학자가 죽음(사형)후에 해결해야만 하는 딜레마(dilemme, δίλημμα)가 나온다. 그러나 비판적 사유는, 칸트가 대립의 항들 중에 하나를 제거하도록 전혀 강제하지 않는다고 하는 장점을 갖는다. 그는 대립을 마치 인간 정신의 자연[본연]에 본질적인 것처럼, 마치 그것으로 얼굴을 특징지우는 것처럼, 고려했다. 반대로 만일 칸트의 [사유의] 진화가 한결같이 그 자신이 말했듯이, 안티노미의 관념에 의해 지배되었다면, 이것은, 이런 대립의 지성이 실증과학의 영역과 형이상학의 영역 “분수계(分水界)(ligne de partage, 나누어가지는 선, 경계선)”을 발견하는데 사용한다는 것이다. 실증과학은, 이것을 감성의 영역으로 제한하면서 이것의 합리성을 기초하는 이런 상대성 덕분에, 선택한다(choisir)는 필연성을 회피한다. 산술학자는, 계속적인 항들의 전체를 다 써버린다는 걱정함이 없이, 무한정하게 수나열의 절차를 이어갈 수 있을 것이다. 왜냐하면 그는 시간으로 실재성을 만들 필요가 없기 때문이다. 마찬가지로 기하학자는 공간적 대상들의 동시성을 제거하지 않을 것이다. 왜냐하면 대상들은 선들과 면들을 계속적인 종합의 도움으로 구성하기 때문이다. 그것과 더불어 선택(choix)의 요청에 기여한 것은, 형이상학이며, 즉 형이상학의 일부처럼 고려된 “합리적 우주론”이다. 왜냐하면 공간과 시간은 그 때에, 사물이 아닐지라도 적어도 사물들의 틀이 있어야만 하기 때문이다. 유한과 무한 사이에, 불연속과 연속 사이에, 대안을 가지고[선택하는] 해결하는 것은 필연적이 될 것이고, 그럼에도 불구하고 불가능한 것으로 보인다. 절대적인 대상의 전체 입장은 공간과 시간에 상대적 규정작업을 함축하고 있다. 우주가 실재하는 것이기 위하여, 우주를 부분적으로 구성하는 종합은 완성될 수 있어야 하고, 사물들의 계열은 시간의 질서에서 또한 공간의 질서에서 어떤 크기(un certain quantum)를 형성해야 한다. 그런데 시간과 공간의 이상성[관념성]은 정신이 이 크기의 형성작업에서 어느 부분에서 멈추는 것을 금지한다. 문제는 존재의 전체성을 싸안는 것이거나 또는 단순한 요소에 도달하는 것이냐 이다. 시간과 공간 속에 궁극적 규정작업이 있을 수 없다. 왜냐하면 규정작업 전체는, 시간에서도 공간에서도 계열을 이어가는 새로운 규정작업에 필연적으로 상대적이기 때문이다. 반명제의 이상주의(l’idéalisme, 관념론)는 정명제의 독단주의를 궁지에 몬다. (275)

§165. [칸트의 이상성, 신에 의존하는 관념성이라기보다 인간의 추론활동의 확대로서 이상성, - 어쩌면 칸트는 스피노자주의의 영원성을 감성 속에서 현존의 보편성(일반성)으로 바꾸어 생각했을 것이다.]

    이러한 것이 안티노미들의 학설인데, 이것을 그의 초기 주제에서 다룸에 있어서, 학설은 합리적 우주론전체의 파괴를 소모할 운명에 처해있었다. 어떤 스피노자(un Spinoza)수학주의[칸트로서는] 거기서(안티노미) 반박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관찰하고 싶어 하는 이데아들(관념들)의 회귀에 의해, 칸트의 논증작업은 라이프니츠가 가치있게 했던 논증작업과는 거꾸로 이다. 공간의 지적 해석을 함축하는 󰡔윤리학󰡕의 일원론에 대해, 󰡔단자론󰡕은 실체들의 다수성을 대립시킨다. 라이프니츠가 스피노자에 대해 말하면서 부르게(Louis Bourguet, 16781742)에게 편지 쓰기를, “만일 모나드들이 없다면, 그가 이유 있을 것이다. 그때 신 밖에 전체는 단순 우발 사건들로 또는 단순 변모들로 덧없이 지나가거나 사라질 것이다. 왜냐하면 온모나드들의 현존 안에 있는 사물들 속에 토대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상호외재성의 가운데서 공현존하지 않을 수 없는 실체들의 다수성과 더불어, 라이프니츠는 공간적 실재론에게 내속하는 모든 난점들을 다시 태어나게 했다. 반대로 칸트에 따르면, 실체의 단위[통일성]을 제시하기를 금지한 것, 그것이 선험적 감성론의 발견이다. 공간과 시간은 지적 질서가 아니기 때문에, 존재 그 자체로서 표현할 수 없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순비󰡕 속에 쓰기를, “만일 사람들이 시간과 공간의 실재성을 인정하지 않는다면, 스피노자주의만 남을 것이다. 스피노자주의에서 시간과 공간은 존재 그 자체의 본질적인 규정작업들이다.” (275)

이제부터 스피노자와 라이프니츠는 똑 같이 놀이의 바깥에 있을 것이다. 이 철학자들은 창조자[]원형적인 지성(l’intellectus archetypus)에 통합하기 위하여 효과적[현실적]으로 인간의 관점을 넘을 설 수 없을 것이고, 그리고 우리가 창조작업의 생산물이기에 창조작업 자체에 참석할 수 없을 것이다. 도약[충력]은 부셔졌고, 17세기 동안에 과학을 절대[][완전자, 영원자]로 인도했으며, 절대[]는 정신에게 적용으로서 순수수학들을 신에게 적용을 정립하도록 허락했다. 우주의 과학을 선천적으로 세우기를 허락하는 조건들은 실재성 자체에 대한 사변적 인식을 금지하는 조건 자체들이다. 수학적 추론들을 합법적이게 하는 원리들은 신 현존의 증거들 안에 감추어져 있는, 특히 존재론적 논증 안에 있는, 소피즘들(le sophismes, 궤변론들)을 고발하게 허락한다. [그런데] 데카르트는 그 존재론적 논증에 기하학적 증명작업의 정확성과 엄격성을 기여했다고 자화자찬하였다. (276)

 

6, 수학들과 자연의 형이상학 Les mathématiques et la métaphysique de la nature 276

[자연의 형이상학, ‘타 메타 타 퓌지카’, - 그런데 칸트는 자연의 현상에 머물렀다.]

§166. [칸트의 현존철학은 (인간의 추론의 조건 안에서) 실증적이다. 이런 의미에서 자연에 대한 실증이 아니다. 그러면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적 가능성을 칸트는 형이상학이란 생각하는 조건들 안에서 수학적 가능성. - 이 수학적 가능성이 원과 타원의 기하학 안에서 이다. 포물선과 쌍곡선의 무한대는 무한대 이면서 사유가 접근가능하다.]

    앞선 형이상학의 단죄에 의해, 수학에 대한 칸트의 철학은 이미 실증적(positif) 성격을 가졌다. 그러나 그 철학은 오귀스트 꽁트가 우리에게 친숙하게 했던 것과 다른 의미에서 실증적이다, 그리고 그 철학이 소위 말하는 과학적 영역을 제한하는 것을 결과로서 삼는다는 의미에서 그 틀 안에서 과학, 심지어 미래과학으로 되돌아 올 과학이라는 불리게 되는 그 일반적인 틀들을 선천적으로 확립한다는 의미에서 여전히 실증적이다. (276)

    수학에 대한 데카르트의 개념작업은 인식의 형식들의 위계질서를 통하여 내적 적합(“adéquation”)과 외적 실재성 의 평행하는 발전을 따르도록 허락하였다. [이에 비해] 칸트의 개념작업은 순수 사유와 외적 자료들(les données) 사이에 매개적인 이중 형식을 삽입 하면서, - 이 이중형식은 오성의 법주 하에 포섭되었고, 이번에는 그 형식 하에 감각적 현상들이 포섭될 것이다. - 관념(l’idée, 이데아)이데아트(l’idéat) 수준의 동등성 모두를, 정확한 상응성 모두를 제외한다. 그러나 동시에 그의 개념작업은 지성과 상상작용 사이에, 연역의 형식과 실재적인 것에 무매개적인 적용 사이에, 연결의 새로운 형식을 규정하게 해준다. 그리고 우리가 이미 그것을 말했던 대로, 진리의 새로운 전형을 창조하게 해 준다. 진리는, 본질적인 부적합(inadéquation)의 체제에서, 이질적인 실재성들의 두 질서 사이에 일종의 타협에 의해, 󰡔순비󰡕가 그것들의 법적인 토대를 규정하려고 대상으로 삼았던 그 모방과 상호 조정에 의해, 규정되어만 한다. 모순율에 의해 그 자체로 정의된 논리적 가능성(la possibilité logique)에 대해, 경험적 실재성을 가지고 연결로 정의된 진리 수학적 가능성(la possibilité mathématique)을 대립시키고 대체 한다. (277)

§167. [가능성의 실현으로서 기적, 칸트는 가능성의 현존 또는 사실을 방법과 요청을 통해 해결하려 했다. - 가능성의 지위를 설정: 양상에 관하여]

     이런 대체의 범위에 무게를 두면서, 칸트는 비판 철학의 도래[미래]를 코페르니쿠스의 천문학적 체계에 의해 일어난 혁명에 합법적으로 비교할 수 있다. 그런 이유로 모순율은 어떠한 차원에게도 과학적 질서와 비과학적 질서 사이에 기준을 제공하지 않는다. 게다가 모순율의 명백함은 실체와 목적성에 대해 형이상학의 동시대적이라는 것을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아리스토텔레스의 과학은 일반(le général)의 과학이다. 이 과학은 과학의 정의 자체에서 예외의 부분, 아자르(le hasard)의 부분, 초월적(transcendante) 의지의 부분을 유보하고 있다. (277)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와 더불어, 과학적 지식의 도구라는 것은 삼단논법의 조합(la combinaison)이 아니라, 공간과 시간 속에서 척도이다. 사람들은 그 도구에게 또한 그것의 한계에 대해 물을 수 있는가? 사람들은 조건들에게 모순으로 말할 것 같은 주장의 사실들을 배제할 수 있는가? 이 조건들에 따르면 공간 속에서 그리고 시간 속에서 연결이 확립된다. 데카르트주의자들의 응답은 의심스럽지 않으나, 오히려 과잉적(surabondante)이다. 왜냐하면 그 응답은 신의 지혜 이론을 함축하고 있기 때문이다. 스피노자가 말하기를 그 학파의 경향성을 어    떠한 유보도 없이 표현하는 기적의 확정은 무신론의 반박할 수 없는 증명작업일 것이다.” (277)

흄의 응답은 더욱더 의심스럽지 않다. 그러나 응답이 결함에 의해(par défuat) 죄를 짓는다는 것은 볼 수 있는 것이다. 진리의 근거에 대한 주장을 비판하면서, 흄은 토론의 역량을 권리상으로 잘라내었다. 라이프니츠의 단어를 다시 빌려온다면 사실을 제거한재원이 그에게 남을 것이다. 그는 역사적 섭리의 규칙들을, 또는 자연의 과정의 획일성을 환기시킬 것이다. 그는 일상의 질서에 위반을 범할 지도 모를 사건의 실재성에 대하여 일종의 증거(preuve)”를 끌어낼 것이다. 그러나 분명한 것은 기적의 가능성은 배제가 아니다. 경험의 획일성에 대한 흄의 신뢰[믿음]은 표면적 관찰의 생산물일 수 있을 것이고, 경험 자체에 깊은 적용은 그것에게 거짓말하게 하는 수단을 제공할 것이다. 이것이 주관적 인상일 것이며, 예전에 기적을 믿어왔었던 집단적 신앙들 속에서 변이를 증거할 것이다. 게다가 증거[기적]에 대해 부셔지기 쉽다고 가장 많이 고발했던 기적 그 자체에 관하여 18세기에 소중한 합리주의의 증가를 증거 할 것이다. 이러한 이유로, 만일 필연 연결의 편견이 진실로 뒤바뀌어 진다면, 습관으로부터 태어나는 불분명한 일반성을 향해, 그리고 자연적 연속성들이 제공하는 어림짐작의 획일성을 향해 그 바탕에서부터 행해야할 것이 없다. 게다가 기적들에 찬성자들은 거기에 속지 않는다. 그리고 그들은 동일한 판들에서 일치한다. 원리 없이 주정하는 자는 찬성자들로부터 멀리 있기보다 원리에 의해 부정하는 자로부터 더 멀리 있다. 빠스칼(Pascal, 1623-1662)기적들의 의심들에 대해 몽테뉴의 아이러니를 찬양했다. 그리고 사람들은 우리 시대에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볼 것인데, 그는 흄을 관심 있었던 동일한 투시자(clairvoyance)와 함께 다루었다. 스웨덴보르(Emanuel Swedenborg, 1688-1772)의 신비학에 아주 가까운 학설들을 공언할 자유를 얻으면서, 제임스는 󰡔순비󰡕의 방법들과 요청들과 단절했다. 수학이 그것의 형식을 갖고 있는 합리적 과학에 반대하여, 제임스는 앵글로색슨의 전통에 회귀에서 자기의 지지점을 이런 근본적 경험주의(cet empirisme radical)로부터 찾았다. 그 경험주의에 따르면, 아무것도 선천적으로 우주의 법칙들에 반대로 고려될 수 없다는 것이다. 그것에 따르면 그 어떠한 것도 그 어느 것을 생산을 수 있다.” (278)

    확실히 여러 번 토론이 된 정식에 따르면, 칸트가 흄에게 응답하지 못했다고 주장하도록 허용된 채 남아있다. 되었다. 적어도 흄 이후에 하나의 응답이 행해지면서 확실한 것이 있는데, 데카르트의 신학과 현상학자의 해결 사이에 매개하는 한 장소는 실증과학의 학설의 확립을 위하여 다루는 장소가 되었다는 것이다. 칸트는 자신이 믿었던 이 장소를 가능성의 용어의 개선 덕분에 독점하게 되었다. (278)

§168. [현상에서 가능적인 것의 여러 상태들, 불가사의한 미래, 예기치 않은 창조들이 인식가능하다. 이런 의미에 선험적 대상들을 구성할 수 있다고 한다. 가능적인 것이 현실에서 성립하며, 실재적이라고 하는 것은 외연적 의미에서보다 내포적 의미를 지닌다.]

    이러한 고려에서, 그의 정신의 독창적인 경향은 초기 저술들에서 드러났다. 실재적인 것은, 볼프(Wolff, 16791754)가 원했던 것처럼 가능적인 것의 보충이 아니다. 모순의 원리는 논리적 원리가 아니다. 그런데 내적 가능성은 실재근거(Realgrund)인데, 실재근거는 하나의 실재성이다. 이런 초기 관점으로부터 경험적 사유의 요청들(Postulats de la pensée empirique)의 학설이 나온다. [그런데] 이것들에 내속하는 성질들의 유일한 검토가, 이 개념들에게, 단어의 객관적이고 충만한 의미[기호작용] 속에 가능성을 부여하게 허용하는, 그런 개념은 없다. 삼각형의 개념은 확실하게 경험과 독립적이다. 그러나 형식적 구축은 상응하는 대상의 현존을 의심 밖에 놓은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다른 것이 필요하다. 공간은 외적 경험들의 선천적인 형식 조건이라는 것, 그리고 우리가 상상작용에서 삼각형을 구축하는 이 도형적인 종합은, 현상의 경험적 개념을 우리에게 기여하기 위하여, 현상의 이해 속에서 실행되는 종합과 절대적으로 동일하다는 것이 필요하다. (279)

만일 경험의 고려가 수학적 용어들에게 그것들의 범위 전체를 부여하는 것을 완성한다면, 보다 더 많은 이유에서 이런 고려는 물리적 질서의 개념들을, 실체들, 힘들, 상호성들을 위하여 요구되었을 것이다. 사람들은 공간 속에 여전히 현재하는, 그럼에도 그것을 채우지 못하는, 실체를(마치 어떤 이들이 도입하고자하는 물질과 사유존재 사이에 매개물처럼) 또는 이미 미래를 본다(voir)(그리고 단순히 미래를 결론짓는) 우리 정신이 가졌을 개별적 역량을 또는 마지막으로 다른 사람들이 얼마간 멀리 떨어져 있을지라도 그들과 거래교환에 있었을 역량을상상할 수 있다. 그러나 만일 사람들이 경험 자체에게 그것들의 연결의 예를 빌려주지 않는다면, 사람들은 이 개념들이 가능하다고 말할 권리를 갖지 못한다. “때로는 그것들의 가능성은 후천적으로 그리고 경험적으로 당연히 알려지고, 때로는 그 가능성은 전체로부터 알려질 수 있다.” (279)

    경험주의의 결론은, 그럼에도 경험주의가 논쟁[소송]에서 이기지 않는다고 하더라도, 정당화된다. 이런 이유로 󰡔순비󰡕의 독창적 노력은 후천적인 가능성이, 마치 후천적 가능성이 마땅히 경험주의에서 가능성이 되어야 하는 것처럼, 비결정적인 가능성이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게 해주었다. 여기 비결정적 가능성에는 불가사의한 미래를, 단독적인 출현들을, 예기치 않은 창조들을 예약했을 것이다. 이 가능성은 공간과 시간 속에서 표출되도록 운명지워진 것으로, 공간과 시간 속에서 직관의 조건에 예속되었다. 이때부터 만일 이런 연결들이 이런 직관의 필연성과 모순으로 상상되었다면, 이 연결들이 후천적으로도 가능할 수 있게 된다는 것은 선천적으로 불가능하다. (280)

    경험적 실재론은 칸트 학설의 본질적인 단편 조각(une pièce)이다. 그러나 이 경험적 실재론은 인식의 획득의 질서에, 이상토대(Idealgrund)의 질서에 적응될 뿐이다. 실재토대(Realgrund)의 질서인 진실한 질서에 따르면, 경험적 실재론은 선험적 관념론(l’idéalisme transcendental, 선험적 이상론)을 함축하고 있다. 사유는 사물들의 현상과는 효과적인 다른 대상을 갖는다. 그러나 사물들의 현상은 동시에 사유의 고유한 현상이다. 만일 경험적 자료들(les données)이 단어의 과학적 의미에서 경험을 구성하는 데 알맞다면, 그것은 사물들이 사유하는 주체의 의식에 스스로 현재하는 그 찰나 자체에서, 사물들은 이미 무의식인 정교화 작업을 이미 감당했다는 것이다. 무의식적 정교화작업은 순수오성의 원리들로부터 사물들을 정당화할 수 있게 한다. 공간과 시간의 형식들은 생산적 상상작용의 놀이에게 무대[극장]을 제공하며, 그 자체로 파악된 실재성에 대해 구성적(constitutives)이지 않다. 그러나 사물들이 조건들을 규정하는 한, 우주의 재현작용은 조건들에게 복종해야 하고, 사물들은 경험적 실재성에 대해 조절적(régulatrices, 규제적)이다. (280)

    선험적 관점으로부터, “직관과 개념, 이것들이 경험의 형식적 조건들을 표현한다는 한에서, 가능적인 것(le possible)을 정의한다. 칸트의 형이상학은, 마치 볼프의 독단론이 그렇게 행한 것처럼, 가능적인 것에서 실재적인 것으로 새로이 나갈 것이다. 그러나 논리적 가능, 즉 실재의 영역 보다 더 광대한 범위를 감싸 안는 외연 (en extention) 가능이, 수학적 가능에게, 즉 실재상의 정확한 틀을 규정하는 내포 (en compréhension) 가능에게 자리를 양보했다. (280)

§169. [‘가능을 수학과 물리학이 아닌, 사유의 조건들로 대체했다. 칸트는 조건들의 경계 안에서 합법칙적 체계(법전)를 만들었다.]

    따라서 칸트는 자신의 철학적인 첫째 꿈이었던 것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칸트는, 󰡔자연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1687)󰡕이 충분하게 마무리하는 데 성공할 수 없었다고 여기고, [자신의 작품에서] 작업을 완성할 것이다. 1775년에 그는 과학 자체의 지평 위에 자리하고 있었고, 그리고 그는 우주적 체계의 형성 작업을 재구성하고자 애썼다. 연대기적으로 앞선 시기에, 󰡔순비󰡕는 천체운동 또는 지상운동의 과학 대신에 선험적 기원(l’origine transcentale)으로 대체하였다. 다시 말하면 최종분석에서 수학의 형식들을 응용하게 허용하는 조건들로 대체하였다. “절대적이라 말하는 자연의 순수 철학은, 다시 말하면 자연 일반의 개념을 구성하는 것만을 탐구하는 순수 철학은, 진리라는 면에서 수학없이 가능할 것이다. 그러나 규정된(déterminéas) 자연적 대상들(신체의 이론과 영혼의 이론) 위에 옮겨 놓은 자연의 순수 이론은 수학들을 수단으로서만 가능하다. 그리고 자연의 이론 전체 안에서처럼, 거기에 선천적으로 인식이 있는 만큼만 진실한 과학이 있다. 따라서 자연의 이론은 소위 말해서 수학들이 거기에 적용될 수 있는 정도에서만 포함할 것이다.” 그런데 내밀한 의미에서 연속성은 영혼에 대하여, 수학적 인식을, 말하자면 단어의 고유한 의미에서 과학적 인식을 기초하기에 충분하지 못할 것이다. 물질과 운동의 용어들 만이 수학적 규정작업을 받아들일 수 있었다. 어떤 형식 하에서 우리는, 󰡔순비󰡕 속에 제시되었던 범주들의 목록을 적용하면서 그것을 선천적으로 알 수 있다. (quantité), (qualité), 관계(relation), 양상(modalité)의 논리적 분할들에서, 차례로 물체운동론(la phoronomie), 잠세운동론(la dynamique), 기계론(la mécanique), 현상론(la phénoménologie)의 원리들이 다시 들어갈 것이다. (281)

    우주의 과학적 인식을 사유의 법칙들 위에 근거하게 하면서, 󰡔순비󰡕는 이런 인식을 변화하지 않는 경계들에 묶어놓는다. 칸트가 보기에, 아리스토텔레스(전384-322)의 논리학은 형식적 조합들의 과학을 철저히 고찰했다. 그리고 마찬가지로, 퓌타고라스(전580-495)의 산술학, 에우클리데스(전300년경 활동)의 기하학, 뉴턴(16421727)의 물리학은 자연의 합리적 과학을 철저히 고찰한 것 같다. 이는 마치 지식을 합법화하기 위하여, 지식을 정신의 권리(le droit)에 묶는다는 것뿐만 아니라, 또한 지식을 경전(un Code)의 문자 속에 가두는 것이 필연적이었다는 것과 같다. (281)

(29:17, 59PLJ)(23:20, 59Q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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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의 중요작품들.

1747(스물셋) 살아있는 힘의 올바른 측정에 관한 생각들(Gedanken von der wahren Schätzung der lebendigen Kräfte 1746)- 이 논문은 라이프니츠학파의 활력(lebendigen Kräfte, mv2)’과 데카르트학파의 운동량(mv)’ 사이의 논쟁에서 운동 에너지가 힘을 측정하는 진정한 척도임을 옹호하는 자연철학적 논문.

[1749 (1756 독일번역) 흄의 󰡔인간 오성에 관한 시론들(Essais de Hume concernant l’entendement humain, 1749)󰡕]

[1755(서른하나) 박사학위 논문의 제목은 De igne(불에 관하여)

1756(서른둘) 자연철학에서 기하학과 결합된 형이상학의 사용: 그 제1예시는 물리학적 단자론을 포함하고 있다(Metaphysicae cum geometria junctae usus in philosophia naturali, cujus specimen primum continet monadologiam physicam, 1756). [약칭 [Dissertation, oft kurz „Physische Monadologie“ genannt.]

1763(서른아홉) 부정적 크기의 개념을 세계지혜 속에 도입, 시론(Versuch, den Begriff der negativen Größen in der Weltweisheit einzuführen, 1763). fr. Essai pour introduire en philosophie le concept de grandeur négative. 독일에서 세계지혜(Weltweisheit)18세기까지 철학(Philosophie)과 동의어이라 한다.

1764(마흔) 자연신학과 도덕의 원칙들의 명료성에 대한 연구(Untersuchung über die Deutlichkeit der Grundsätze der natürlichen Theologie und der Moral, 1764) - 이 논문은 1761년 베를린 왕립학술원 현상논문 공모에 제출한 것이라 한다.

1768(마흔넷) 공간에서 방향의 차이에 대한 첫째 근거에 대하여(Von dem ersten Grunde des Unterschiedes der Gegenden im Raum, 1768), fr. « Du premier fondement de la distinction des régions dans l'espace »

1770(마흔여섯) 󰡔1770년 교수 취임 논문(Dissertation)󰡕(성계와 지성계의 형식 및 원리들에 관하여) - De Mundi sensibilis atque intelligibilis forma et principiis, fr. De la forme et des principes du monde sensible et intelligible. - 산술학의 수를 시간과 공간에서 다룬다고 한다. “순비의 토대가 될 것이다. / 왼손과 오른손의 닯았으나 합동이 아니다: “대칭적인 대상들의 역설(paradoxe des objets symétriques)”

1775 󰡔인간의 여러 다른 종족들에 관하여(Von den verschiedenen Rassen der Menschen (1775)󰡕(Des différentes races humaines (1775).

1781(쉰일곱) 󰡔수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1783(쉰아홉) 󰡔미래형이상학의 서설들(Prolégomènes à toute métaphysique future qui pourra se présenter comme science, 1783)󰡕

1786(예순둘)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초기 근거(Metaphysische Anfangsgründe der Naturwissenschaft, 1786)󰡕(fr. Premiers Principes métaphys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 (1786).

1787(예순셋) 2, 󰡔순수이성 비판(Kritik der reinen Vernuft, 1781)󰡕수정판 출판.

[1789(예순다섯) 프랑스 대혁명]

1791(예순일곱) 신학에서 모든 철학적 탐구의 좌초(Über das Mißlingen aller philosophischen Versuche in der Theodicee (1791) (Sur l'échec de toute tentative philosophique en matière de théodicée (1791). [형이상학의 불가능: 빛의 영원성에 대한 탐구에서 신학의 좌초. 빛이 점점 희미해 진다.]

# 학문의 영역의 구별: 수신, 제가, 치국, 평천하 처럼- 우리역사(요하로부터), 철학사(브레이어), 수학사(브룅슈비끄), 생물학사(끄세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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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384 아리스토텔레스(Aristote, Ἀριστοτέλης, 전384-322), 고대 그리스의 철학자. 플라톤의 제자. 󰡔형이상학(La Métaphysique, τὰ μετὰ τὰ φυσικά)󰡕

360? 에우클리데스(Euclide, Εὐκλείδης, 기원전 300년경 활동), 알렉산드리아 수학자. 󰡔원론(Éléments, Στοιχεία)󰡕(전300년경, 13권). - p.37 주1) Elém., IX, 36, éd. Heiberg, t. II, Leipzig, 1884, p. 408.

O

598 브라마굽타(Brahmagupta, 598-668), 인도 수학자, 천문학자. 저술로 󰡔브라마스푸타싯단타(Brāhmasphuṭasiddhānta)󰡕(21권) 여기에 4칙연산의 방법이 있다. 이 저술은 이슬람 세계와 유럽에 인도 수학이나 천문학을 전하는 역할을 했다.

750? 바스카라(Bhāskara, 8세기-9세기) 인도 철학자. 베다베다(Bhedabheda)학파 창설자.

[1501 카르다노(Gerolamo Cardano 1501-1576)는 자신의 책 󰡔위대한 기법󰡕(1545) 음수의 사용을 제기하였다.]

1473 코페르니쿠스(Nicolaus Copernicus, poli. Mikołaj Kopernik, Nikolaus Kopernikus, 1473-1543), 폴란드의 로만 가톨릭 성직자, 천문학자. 태양 중심설

1533 몽테뉴(Michel Eyquem de Montaigne, 1533-1592), 프랑스 철학자, 휴머니스트, 도덕론자, 작가. 󰡔Essais󰡕 - douteurs de Miracles

1564 갈릴레이(Galilée, it. Galileo Galilei, 1564-1642) 피사(Pisa)에서 태어나, 피렌쩨의 아르세트리(Arcetri) 동네에서 세상을 떴다. 이탈리아 수학자, 기하학자, 천문학자.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08 토리첼리(Evangelista Torricelli, 1608-1647), 이탈리아 물리학자, 수학자, 기압계(baromètre) 발명. 󰡔Opera Geometrica, 1644󰡕.

1623 파스칼(Blaise Pascal, 1623-1662)[서른아홉],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발명가, 철학자, 신학자. 도덕론자.

1632 로크(John Locke, 16321704) 영국 철학자, 의학공부(의사).

1632 스피노자(Baruch Spinoza, 1632-1675),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태생, 포르투갈계 유대인 혈통의 철학자. 영원의 상하에서.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54 버넷(BURNET, Thomas 2nd of Kemnay, 1654(1657세례)-1729), 정치철학자, 신학자, 시인, 외교관, 하노버에서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1695 to 1714). 로크와, 소피아 선제왕후와도 서신교환.

1675 클라크(Samuel Clarke, 1675–1729), 영국철학자, 영국국교 목사. 로크와 버클리 사이 중요 인물. 라이프니츠와 서신교환은 주로 자연철학과 종교에 관한 것이다.

1678 부르게(Louis Bourguet, 16781742), 스위스 지리학자, 자연학자, 수학자, 철학자, 고고학자.

1679 볼프(Christian (von) Wolff ou Wolf, 1679-1754), 보헤미아 출신 프러시아인, 철학자, 법률가, 수학자. 역사적으로 라이프니츠와 칸트 사이에 있다.

1688 스웨덴보르(Emanuel Swedenborg, Emanuel Svedberg, 1688-1772) 스웨덴 과학자, 신학자, 철학자.

1711 보스코피치(Roger Joseph Boscovich, en it. Ruggiero Giuseppe Boscovich, en lat. Rogerius Iosephus Boscovicius, 1711-1787) 크로티아 출신 이탈리아 활동, 제수이트 신부,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외교관. 시인 철학자.

1711 (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1712 가르베(Christian Garve, 1712-1798) 독일 철학자. 󰡔Rezension von Kant’s 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2󰡕(Examen critique de la raison pure de Kant Göttingen, 1782

1714 꽁디약(Étienne Bonnot de Condillac, abbé de Mureau, 1714-1780) 프랑스 철학자, 작가, 아카데미 회원, 경제학자.

1717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 Dalembert », 1717-1783)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백과전서파. ]

1718 마이어(Georg Friedrich Meier, 1718-1777), 독일 철학자. Metaphysik (4 Bde. Halle 1755–1759)]

1719 케스트너(Abraham Gotthelf Kästner 1719-1800), 독일 수학자, 격언시 작가(Epigrammdichter). .위키에 칸트와 연관을 표현하지 않았다. 그러나 AI는 케스트너가 간트와 연관이 있으나(다른 사람들을 통해 서로가 알았다), 칸트 추종자가 아니며, 케스트너는 라이프니츠철학에 공감하고 있다고 한다.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36 테텐스(Johann Nikolaus (Nicolaus ou Nicolas) Tetens, 1736-1807), 독일 철학자, 과학자, 별명 “독일의 로크” Philosophische Versuche über die menschliche Natur und ihre Entwickelung, vol. 1 [archive] and vol. 2 [archive] (1777),

1739 슐츠(Johann Friedrich Schultz, 1739-1805) 독일 복음신학자. 수학자, 철학자. 칸트와 편지교환.

1743 슈바브/슈밥(Johann Christoph Schwab, 1743-1821), 독일 철학자. 저술: Prüfung der Kantischen Begriffe von der Undurchdringlichkeit der Körper. Schwickert, Leipzig 1807.

1749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 marquis de Laplace, 1749-1827),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정치가. Exposition du Système du Monde et Mécanique céleste. 1796, 61835]

1765 콜브룩(Henry Thomas Colebrooke, 1765-1837) 영국 법관, 인도학 연구자, 식물학자. Algebra with arithmetic and mensuration from the Sanskrit of Brahmegupta and Bhascara (1817).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1801 꾸르노(Antoine Augustin Cournot, 1801-1877), 프랑스 경제학자, 수학자, 철학자.

1808 하르텐슈타인(Gustav Hartenstein. 1808–1890), 독일 철학자. [1868년 편집 책이 나오지 않는다.]

1815 르누비에(Charles Renouvier, 1815-1903) 프랑스 철학자. 철학사의 작품이 있다. Les Dilemmes de la métaphysique pure (1901)

1818 바르니(Jules Romain Barni, 1818-1878) 프랑스 철학자, 정치가, 솜(la Somme)의 의원. 칸트 번역자.

1825 라이케(Rudolf Reicke, 1825-1905), 독일 역사가. 철학자.

1830 필롱(François Pillon, 1830-1914), 프랑스 철학자, 흄 번역자.

1833 딜타이(Wilhelm Dilthey, 1833-1911) 독일 신학자. 철학자. war ein deutscher Theologe, Gymnasiallehrer und Philosoph.

1835 에블랭(François Evellin, 1835-1910), 프랑스 철학자, 형이상학과 비판철학 전문가. 벩송은 EC에서 그의 󰡔Infini et Quantité (1880)󰡕의 논증을 결정적(décisive)이라 한다. La raison pure et les antinomies : essai critique sur la philosophie kantienne, Paris, Alcan, 1907.

1836 그린(Thomas Hill Green, 1836–1882)과 그로스(Thomas Hodge Grose, 1845–1906), 둘 다 영국 관념론 철학자. 흄의 철학 작품(The Philosophical Works of David Hume) 1874년 편집 – 프랑스 번역 Renouvier-Pillon, 1878, p. 23.

1842 제임스(William James, 1842-1910) 미국 심리학자, 철학자.

1844 릴(Alois (auch Aloys) Adolf Riehl, 1844-1924), 오스트리아 철학자, 신칸트학파의 대표자.

1845 그로스(Thomas Hodge Grose, 1845–1906), 흄의 철학 작품(The Philosophical Works of David Hume) 1874년 편집

1850 트렘세그(André Tremesaygues, 1850–1950), 프랑스 번역가, 칸트 순비 번역. / * 공동 번역자 파꼬(Bernard Pacaud, 18..-19... s.d.), 칸트 순비 번역가.

1851 에르트만(Benno Erdmann, 1851-1921), 독일 철학자, 논리학자, 심리학자. Kant’s Kriticismus in der ersten und in der zweiten Auflage der Kritik der reinen Vernunft. 1878.

1851 삐까베(François Picavet, 1851-1921), 프랑스 철학자, 소르본 교수, 칸트 번역가. 중세와 이데올로그들 전문가.

1852 바이힝거(Hans Vaihinger, 18521933), 독일 철학자. 칸트 전문가. 󰡔Philosophie des Als Ob (La philosophie du « comme si »), 1911,󰡕

1858 밀오(Samuel Milhaud, Gaston Milhaud, 1858-1918), 프랑스 철학자, 과학사가. 수학자. Leçons sur les origines de la science grecque, 1893. Les philosophes géomètres de la Grèce. Platon et ses prédécesseurs, 1900[Vrin, 1934.]

1862 델보(Victor Delbos, 1862-1916), 프랑스 역사 철학자. 박사논문 󰡔Essai sur la formation de la philosophie pratique de Kant, 1903󰡕

1863 바쉬(Victor Basch, 1863-1944), 유대계 헝거리 출신 프랑스 철학자, 인권 동맹 회장, 암살당했다.

1865 샤반(Édouard Chavannes, 1865-1918), 프랑스 고고학자, 중국학 전문가, 사마천의 사기[(Shiji (史記, Shǐjì) de Sima Qian)] 번역. Andler와 같이 번역한 인물이 맞을까? 맞다.

1866 안들러(Charles (Philippe Théodore) Andler, 1866-1933), 프랑스인 게르만 연구자. 사회주의 전사, 맑스 주석가. <Premiers principes métaphys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 (1786), traduits pour la première fois en français, et accompagnés d'une introduction sur la philosophie de la nature dans Kant, avec Édouard Chavannes, 1891 첫 번역자.>

1868 꾸뛰라(Louis Couturat, 1868-1914) 프랑스 철학자. 논리학자, 수학자.

1873 들라크르와(Henri Delacroix, 1873-1937) 프랑스 철학자, 심리학자.

1874 카시러(Ernst Cassirer, 1874-1945), 스웨덴 출신 유태계 독일 철학자, 나토릅, 코헨과 같은 마르부르크학파. Das Erkenntnisproblem in der Philosophie und Wissenschaft der neueren Zeit, 2권, 1906, 1907.

1874 비에마(Emile Van Biéma, 18741955), 프랑스 철학자, 문학박사, 교사. L'éspace et le temps chez Leibniz et chez Kant, 1908.

(33:37, 59PLJ) (27:40, 59QKF)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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