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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룅슈비끄

수4권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대중판]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13|조회수79 목록 댓글 0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제2권 기하학Géométrie 43

제3권 무한소 분석Analyse infinitésimale 153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1절] 문제의 제기 La position du problème 253

[2절] 수학들의 기술적 개념작업 La conceptions technique des mathématiques 257

[3절]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 Les formes de l’espace et du temps. 262

[4절] 선험적 연역과 도식주의 La déduction transcendentale et le schématisme 265

[5절] 수학적 인식의 상대성 La relativité de connaissance mathématique 269

[6절] 수학들과 자연의 형이상학 Les mathématiques et la métaphysique de la nature 276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1절] 칸트로부터 꽁트로 De Kant à Comte 282

[2절] 분석적 역학 La mécanique analytique 286

[3절] 분석 기하학과 분석 열이론 La géometrie analytiqueetthermologie analytique 293

[4절] 추상 수학 La mathémitique abstraire 296

[5절] 실증주의에서 수학 La mathémitique dans le positivisme 299

 

-*-

제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제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1절, 칸트로부터 꽁트로 De Kant à Comte 282

§170. [칸트의 과학, 꽁트의 과학으로 이동. 꽁트는 학문의 권리를 다루기보다, 사실들을 등록한다.]

    우리는 󰡔순수 이성 비판󰡕을 마치 “자연 형이상학의 서설들”처럼 연구했다. 그러나 「선험적 감성론」이 그것의 토대인 본질적인 상대주의 덕분에, 󰡔순비󰡕는 “지식 대신에 신앙”을 대체하는, 또한 매우 다른 질서의 사색을 준비한다. 이로부터 실증적 경험의 영역이 나오며, 칸트는 종교의 상위-자연적 관념들을 믿는 그것들의 신뢰를 유지한다고 주장한다. 「선험적 변증론」의 마지막에, 진리들의 상위 질서가 존속한다. 그러나 이런 진리들의 고유함은 그 진리들이 검증작업의 모든 시도를 회피한다는 것이다. 반대로 스스로 검증되는 것은, 실재성 그 자체에 대해, 용어에 종속되어 있는 또는 신기루에 종속되어 있는, 경험적이고 현상적인 진리의 진실일 뿐이다. (282)

이런 역설적인 균형이 안정적이었는가? 자연철학과 정신철학 사이에 거리가 뛰어넘을 수 없는 것인가? 칸트에 의해 형이상학적 성찰에 각인된 도약(l’élan)은 - 󰡔판단력 비판(1790)󰡕은 그것의 첫째 증거이다. - 너무나 정력적이라서 질문이 대답 없이 남아있을 수 없다. 1794부터 피히테는 󰡔전체 지식학의 기초(1794, 1795)󰡕(1804 완전판)에서, 자연이론을 가지고 정도차를 만들면서 그리고 마치 정신이론의 근본적 조건처럼, 통일성을 재확립하였다. (282)

   단지 – 여기서 라이프니츠의 수학적 철학에 의해 감내했던 낭패의 범위 전체가 측정될 수 있는데, - 살아있는 과학과 정복하는 과학의 과정과 더불어 밀접한 접촉으로 수학에 대한 그들의 이론을 유지했다고, 그는 피히테를 소홀히 하며, 아마도 일반적 방식으로 그(il)가 후기칸트주의자들을 소홀히 했다. 그들(ils, 칸트주의자들)은 인간 지식을, 마치 일련의 틀들로 규칙적으로 분배되었던 광대한 백과사전처럼, 생각하는 것으로 스스로 만족했다. 철학은 그 틀들에게 이름을 할당하는 것을, 그리고 그 틀들에게 사물들의 보편적 체계에서 정확한 자리를 표시하는 것을 기능으로 삼는다. 따라서 형이상학적 순수 사색의 질서에서 이 찬탄할 만한 운동에게, 수학 철학의 진화에서 특수한 한 단계를 상응하게 하는 수단을 갖지 못한다. (283)

    우리가 위치한 관점에서부터, 칸트의 상속자는 피히테도, 헤겔도, 쇼펜하우어도 아닐 것이다. 상속자는 오귀스트 꽁트일 것이다. (283)

󰡔순비󰡕는 두 가지 요청들 위에 확립되었다. 한편으로 과학은 내적 확실성을 소유하고 있으며, 말하자면 과학은 진실한 진술들과 거짓 진술들 사이에서 출발하게 할 수 있다. 다른 한편으로 과학은 한정적인 구성작업을 소유하고 있으며, 말하자면 원리들의 체계는 고칠 수 없게확립되었다. 기술의 진보는 귀결들의 수를 증가하게 하는 효과를 가질 것이다. 그러나 초기의 명제들의 본연을 변하게 하는 효과를 가지지 못할 것이다. 비판의 고유한 역할은 과학의 유기적[조직적] 발전 속에 함축되어 있는 현존의 조건들을 탐구하는 것이다. 그리고 인간의 심정적 구조를 묘사하는 형식들과 범주들에 현존의 조건들을 묶으면서, 일종의 법적인 합법을 사실의 자료에게 덧붙이는 것이다. (283)

오귀스트 꽁트에게서, 마치 칸트에게서처럼, 진리는 과학의 내부에 있다. 그렇다고 증명의 방법과 기술적 인식들의 내용 사이에 분리작업을 실행하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 않고, 또 근본적 용어들의 확실성을 변증법적 토론의 출구에서 멈추는 것이 당연하다고 하지 않는다. 오귀스트 꽁트에게서, 마치 칸트에게서처럼, 수학은 구성된 분과[학문]이며, 이 학문의 일반적 모습은 변형 또는 변질을 걱정할게 더 이상 없다고 할 그 정도로 비난 받는다. (283)

    공통적 요청들에 의해서 꽁트의 저술을 칸트의 저술에 연결되어 있다. 그러나 공통적 요청들로부터 꽁트가 칸트와 동일한 귀결들을 끌어내지 못하였다는 것이다. 꽁트는 권리의 문제를 제기하기를 그치고, 사실을 등록하는데 만족한다. (283)

§171. [콩트, 라플라스와 라그랑쥬의 종합으로 칸트의 󰡔순비(1781, 재 1787)󰡕를 넘어서다.]

    과학적 철학의 대상과 기능에 변화를 주는 초기의 이런 태도의 대립은 오귀스트 꽁트를 위해서는 엄격한 판단들을 할 기회였다. 이런 이유에서, 실증주의가 거칠고 동시에 정당화되지 않는 거부[소송 불수리 사유]에 의해 문제를 멀리 했기 때문일 것 같다. 실증주의가 문제를 다루는 것은 철학자에 속하며, 그리고 이런 포기는 문제를 필연적으로 독단론의 악습에 떨어지게 한다고 철학자를 단죄한다. 리아르(Louis Liard, 1846-1917)의 정식에 따르면, 실증주의는 “비판 없는 독단주의”일 것이다. (284)

   그런데 우리가 여기까지 실행했던 방법에 따라서, 이런 자연에 대한 판단은 우리에게 앞서야할 의문을 일으킬 것으로 보인다. 칸트의 수학철학과 꽁트의 수학철학은 직접적으로 비교할 수 있을 것이다, 그리고 만일 수학이 󰡔순수이성비판󰡕에서는 [알려진] 시기였는데 비해, 그 수학이 아직 󰡔실증철학 강의(1830-1842)󰡕에서는 전날이었다고 하더라도, 그리고 만일 내가 수학 철학의 해결책들을 이라고 말하지 않지만, 오히려 문제들 그 자체들을 변모하게 하는 효과를 가졌던 중요 작품들이 출판되지 않았더라도, 어느 정도에서는 동일한 측정체계를 드러냈을 것이다. (284)

    오귀스트 꽁트가 속했던 세대의 스승들은 수학에서는 라그랑주(Lagrange, 1736-1813)와 라플라스(Laplace, 1749-1827) 이고, 그리고 백과전서파들의 사상의 계승자들이다. 이들은 몽쥬(Gaspard Monge, 1746-1818)와 함께 프랑스에서 과학적 교육의 재 조직화를 주도하였다. 그들은 “에꼴 폴리테크니끄”의 첫 교수들에 속하게 된다. (284)

    라플라스의 󰡔천체 역학󰡕은 뉴턴의󰡔원리들󰡕을 현대의 분석 언어로 번역하는 동시에, 가장 정확한 관찰들을 가지고 그 귀결들과 일치에 의해, 또 수학적 천문학과 물리학적 천문학 사이의 밀접하고 영속적인 연결에 의해, 중력의 법칙에 대해 검증한다. 푸리에(Fourier, 1768-1830)의 주목할 만한 표현에 따르면, 꽁트가 그 표현에 내밀하게 고정시켰는데, 라플라스는 18세기 내내 토론과 깊은 탐색으로 채워졌던 중대한 문제들을 “말하자면 마감했다.”. 이렇게 마감되었던, 천문학은 실증성의 모델이 되었다. 오귀스트 꽁트는 대중적 천문학에 관한 공공의 강의에 대한 출판에서 “자신의 중요한 철학적 정교화 작업을 부정기적인 방식으로” 헌신했다. 그의 목적은 라플라스(1749-1827)의 󰡔세계 체계의 제시(1796)󰡕를 다시 쓰는 것이었다. 이 저술은 한 철학자의 저술이 아니고, “소위 말해서 수학적 논문에 대한 재료들의 목록이다.” “천체의 문제들은 각각의 본질적 변형작업을 기하학적 또는 역학적 탐구들로” 특성화하면서, 또 그의 독자들에게 “다양한 계념작업들과 천문학적 연구들에 대해 필연적으로 진실한 계보의 깊은 감정”을 소통하면서, 꽁트는 “필수불가결한 전조[머리말]를 구성할 의도를 가졌고, 또는 오히려 충분히 동질적인 새로운 철학적 체계에, - 이제부터 지속적이고 만장일치의 확신들로 조직화할 것을 오로지 허용하는 새로운 철학적 체계에 - 가까운 확립의 정상적 일차원을”구성할 의도를 가졌다. (285)

    따라서 이미, 만일 칸트에게서 철학 문제가 뉴턴 과학의 현존 조건들을 권리 상으로 확립하는데 있다면, 라플라스의 기술적 작품은 문제의 항들을 바꾸는 데 효과가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점에서, 라그랑쥬의 작품은 라플라스의 작품 자체보다 훨씬 더 의미 있다. 칸트는 산술학과 기하학의 무기들만을 가지고 뉴턴의 󰡔원리들󰡕의 앞에 마중 나갔다. 간격 전체는 인식이론이 제공할 수 있었던 자원들의 도움으로 채워져야만 했다. 그런데 만일 후기 칸트주의자들의 상상적 변증법에 모델로 쓰일 비슷한 구축작업이 꽁트에게 잉여 또는 위험으로 나타난다면, 그것을 이해하기 위하여 반(反)형이상학적 선입관을 환기시키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을 것이다. 하나의 사실을 법적으로 등재하는 것이 필요하다. 칸트가 책임지고 받아들인 임무를, 꽁트는 한 작품 속에서 과학의 내부에서 전적으로 완수된 것이라 보았다. 그 한 작품은 󰡔순비(1781, 재1787)󰡕 이후 몇 년 만에, 라그랑쥬의 󰡔분석역학(1788)󰡕에 나타난 저술이다. 그 철학자[꽁트]는, 라플라스의 󰡔천체역학(1798-1825)󰡕을 읽었던 찰나로부터, 󰡔자연의 일반역사와 하늘 이론(1755)󰡕의 비밀을 자기 자신의 성찰들 속에서 더 이상 탐구하지 않았다. 일단 그가 라그랑쥬의 󰡔분석역학󰡕을 알고서, 그는 칸트의 󰡔형이상학적 제1원리들(1786)󰡕를 사변적으로 더 이상 기초하지 않았다. 여기서 또한 사람들은 프리에(Fourier, 1768-1830)에게서 결정적 단어를 발견할 것이다. 라그랑쥬는 담론의 공식적 영웅에 관해 매우 분명한 호의를 가지고 고양되었던, “라플라스에 대한 찬사”에서, 그는 󰡔분석역학󰡕에 대해, 그 작품이 “철학적 역학(Mécanique philosophique)”라고 이름 붙일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이런 말투로 설명하는 것, 그것은 라그랑쥬와 꽁트 사이에 영향관계를 단지 정확하게 하는 것일 뿐만 아니라, 아마도 또한 수학 철학과 과학사 시대 사이에 필연적인 연결을 확립할 것이다. 여기서 수학 철학은 실증주의의 토대에 속하며, 과학사 시대는 라그랑슈의 수학적 작품에 의해 지배되는 시기이다. (286)

 

2절, 분석 역학 La mécanique analytique 286

§172. [󰡔실증철학 강의󰡕 제1권에서, 라그랑쥬 역학의 철학에서 역학의 역사를 이어받는다.]

    󰡔실증철학 강의󰡕의 제1권(1830)의 특징은, 합리적 역학이 거기에서 기하학과 동일한 자격으로, 마치 수학의 일부로서 고려된 것이 아니다. 오히려 그것은 합리적 역학이 기하학과 독립적으로 수학의 순수하게 추상적인 일부로서 결부될 수 있다는 것이고, 그리고 거기에서 자연에 대한 과학들과 수학이 구성한 논리적 도구 사이에 연결을 경이로운 방식으로 이렇게 표시할 수 있다는 것이다. (286)

    그런데 [한편으로] 이런 합리적 역학에 대한 생각은 라그랑쥬의 힘을 입었다. 그는 󰡔분석역학(1788)󰡕의 「일러두기」에서 이렇게 썼다. “사람들은 이 작품에서 도형을 전혀 발견하지 못할 것이다. 내가 여기서 제시한 방법들은 구조작업들도 기하학이나 역학의 추론작업을 요구하지 않는다. 그러나 단지 규칙적이고 획일적인 방식에 종속된 대수학적 연산[계산]작업을 요구한다. 분석학을 좋아하는 자들은 새로운 분과를 생성하는 역학을 볼 것이다. 그리고 이것의 영역을 이렇게 넓혔다난 것에 대해 나에게 감사하 것이다.” (286)

   여기에서, 다른 한편으로, 오귀스트 꽁뜨의 개념작업에 대해, 그리고 우리의 동시대에 맞는 개념작업들에 대해, 고려하기 위하여 그래도 중요한 것이 있다. 역학을 추상적 연역작업들의 체계로 환원은 라그랑쥬에 의하면 선천적관점에 결부되어 있지[매여있지] 않다. 반대로 그 환원은 과학적 탐구들의 지평이 확장됨에 따라, 역사 그 자체로부터, 즉 완성되는 점진적 단순화 작업으로부터 결과로 생겨날 것이다. 역학의 철학은 역학의 역사위에 근거할 것이다. 오귀스트 꽁트가 말하듯이, 󰡔분석 역학(1788)󰡕의 첫 페이지들로부터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보다 후배인 모든 기하학자들 보다 더 라그랑쥬의 철학적인 탁월한 우월성이” 표출된다. 그가 말하기를 그것들 중에 가장 결정적인 증거들은 “여러 섹션들의 탁월한 예비적인 장(章)들 속에 있는데 …과학의 기원에서부터 우리 시대에까지 인간 정신의 중요한 개념작업들의 찬탄할 계보를 제시하면서, 천재 라그랑쥬는 역사적 방법에 대한 진실한 일반정신을 확실하게 예감했다. 단지 이러한 것에 의해서, 그는 자신의 고유한 과학적 사색들의 일체에 대한 예비적 토대를 위하여, 그러한 근본적 평가 작업을 선택했다.” (287)

§173. [라그랑쥬의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의 창안. 물체들은 여러 운동들의 평형[균형]을 이룬다. 꽁트가 이를 선택한다. ]

    이런 역사로부터, 라그랑쥬의 작품과 꽁트의 작품 사이에 연결을 이행하기 위하여 유지해야할 본질적 특징이, 즉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의 운수[요행수]가 나온다. 라그랑쥬는 ‘정태학(la Statique)’의 첫 색션에서 쓰기를 “사람들은 가상적 속도에 의하여 평형인 물체가 받아들일 수 있는 잠재적 속도를, 즉 평형이 중단되러 오는 경우에 물체가 자기 운동의 첫 순간에 실재적으로 취하는 속도를, 이해야만 한다. 이 [작동 중인] 중요한 원리가 잠재력들이 균형을 이루는 경우에 있게 되는데, 이때는 잠재력들의 방향들을 따른다고 평가되는 그것들의 가상적 속도들에 잠재력들이 반대 이유[방향]일 때이다.”라그랑쥬에 따르면, 고대인들은 이것[가상적 속도의 원리]을 알지 못했을 것이다. 그는 정역학(la Statique)에서 갈릴레이와 더불어 나타난다. 이것은 해석의 새로운 양식의 모래를 표시한다[알린다]. 왜냐하면 요소적이고 거의 물질적인 해체작업(la decomposition) 대신에 이상적분석(l’analyse idéale)으로 대체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인데, 해체에 대해서는 고대인들이 거의 만족했었다. 그리고 또한 정지 자체 속에, 이것의 조건들을 고정시키기 위하여, 무한히 작은 위치 이전의 용어를 도입하는 것이 중요하기 때문이다. 우리는 갈릴레이와 데카르트의 직관적 형식 하에서 이런 개념작업이 태어나는 것을 이미 보았다.이 개념작업은 차이나는 알고리듬 속에서 그것의 적합한 표현을 발견한다. 따라서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는 현대 수학의 자원들을 균형[평형]의 연구에 적용할 가능성을 제공한다. (287)

    라그랑쥬는 동력학(la dynamique)의 문제들에게 이 원리를 적용한다. 그러기 위하여, 그는 달랑베르가 1743년에 그의 「동역학론(1743)」에서 진술했던 중요한 명제를 이용한다. 달랑베르는 이 원리를 마치 “서로 서로 어떤 방식으로 작동하는 여러 물체들의 운동을 발견하기 위한 일반적 원리처럼”소개했다. 그러나 “원리”라는 명칭부여에도 불구하고, 여기서 아직도 초기 진리라기보다는 이상적 해체의 방법을 중요시 했다. 게다가 라그랑쥬는 그가 이에 대해 부여한 진술에서 이 방법을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간결하게 밝혔다. “만일 사람들이 여러 물체들에게 운동을, 즉 그 운동들이 물체들의 상호작용 때문에 변하도록 강요되었던 운동을 각인한다면, 사람들은 이 운동들을 마치 물체들이 실재적으로 취할 운동들과 파괴되었던 다른 운동들로 복합된 것들처럼 바라 볼 수 있다는 게 분명하다. 여기에서부터 이 후자의 운동들이 마치 유일한 운동들로부터 활성화된 물체들이 평형을 이룬다는 것과 같이 되어야 한다는 것이 나온다.” (288)

    꽁도르세(Condorcet, 1743-1794)가「달랑베르에 대한 찬사(1783)」에서말하기를, “운동의 모든 법칙들을 균형[형평]의 고려로 귀착했던 매우 단순한 이 원리는 물리학-수학 과학들 안에서 위대한 혁명의 시절의 것이었다.”그리고 이런 혁명은 라르랑쥬의 작품에 이른다. 라르랑쥬는, 오귀스트 꽁트의 호기심 가득한 단어에 따르면,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를 마치 전체 역학의 원초적(primitive) 법칙처럼 “선택하면서”, 그는 “이제부터 역전불가능한 단위의 성격을 이런 과학의 일체에게 알렸다.” (288)

§174. [라그랑쥬는 여러 운동들의 법칙들 사이의 균형을 찾아서, 중량의 영역로부터 역학의 보편적 영역으로 이행에서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를 적용한다.] .

    우리는 󰡔분석 역학󰡕 속에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에게 유보되었던 원본적(primordial) 역할을 강조했다. 왜냐하면 그 역할은 우리에게 조건들을 정확히 하는 수단을 제공하는데, 그 조건들 안에서 수학의 소위 말하는 실증적 개념작업이 분간되고 구성되었기 때문이다. (288)

    이런 이유로 라그랑쥬는 역학과 신학 사이의 연관에 대한 데카르트와 라이프니츠 이래로 항상 걸려있던 문제를 결정적 방식으로 멀리했다.그러나 새로운 빛 아래 과학과 형이상학 사이의 연관의 문제를 제시한다. 그가 정역학과 동역학을 공통의 평면위에 조직화하기 위하여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를 “선택하는” 것과 동시에,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가 원초적 원리로 세워질 수 있에는 그 자체에 의해 충분히 명증하지 못하다는 것을 라그랑쥬는 받아들인다. 따라서 그는 그것으로 증명을 부여하고자 애쓴다. 그러나 그의 방법은, 겉보기에 삐까르(Picard, 1856-1941)의 표현을 다시 취한다면, 특이한(singulière) 방법만큼이나, 󰡔분석적 함수들/기능들론󰡕(1권 1797, 2권 1813)의 초기에 도움을 받았던 방법이다. (289)

    이것이, 왜냐하면 라그랑쥬가 [기계들을] 생각하기를 요구했던 것이기 때문이다. 고정 도르래(une moufle fixe)와 동적 도르래의 조합들이며, 하나의 끈으로 감겨져 있는, 기계들이 있는데, 이것들은 두 극단들 중의 하나에 고정되어 묶여있고, 다른 극단에는 무게를 지탱한다. 고정 도르래 줄들과 동적 도르래 줄들을 증가하면서 사람들은, 하나의 무게에 의해 대체되었다고 상상할 수 있는 잠재력들의 체계를 얻는다. 이런 도르래 줄들의 일체에 관계하는 균형의 조건을 설명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체계에 대한 무한히 작은 어떤 이전(un déplacement, 위치변경)을 가정할 것이다. “무한히 작은 공간들을 α, β, γ,… 라 지칭해보자. 이런 이전[위치변경]이 여러 다른 점들을 끌어내는 잠재력들의 방향에 따라, 이 작은 공간들을 체계의 다른 점들에게 거쳐 가게 한다. 그리고 동일한 잠재력들을 생산하기 위하여 [이 다른] 점들에 적용된 도르래들의 꼰줄들(les cordons)의 수를 P, Q, R,…라 지칭하자. 볼 수[알 수] 있는 것은, 공간들 α, β, γ,…가 또한 공간들이 될 것인데, 이 공간들에 의해 동적 도르래들은 이것들에 응답하는 고정 도르래들에 가까워질 것이다. 그리고 이런 접근들은, 이것[도르래]들을 Pα, Qβ, Rγ,…라는 양들로 감싸는, 끈(la corde, [줄]의 길이를 줄일 것이다. 따라서 끈의 불변하는 길이 때문에, 무게(le poids)는 Pα + Qβ + Rγ +… 공간으로 내려갈 것이다. 따라서 수들 P, Q, R,…에 의해 재현된 잠재력들의 균형[평형]을 위하여, 사람들은 방정식을 가져야만 할 것이다

Pα + Qβ + Rγ +… = 0

이것은 가상적 속도들의 일반 원리의 분석적 표현이란 것이다. (289)

   그러한 증명작업은 파라독사의 국면[모습]을 띤다. 한편으로 증명작업은, 마치 합리적 역학을 정의 자체에 의한 사실처럼, 관찰의 효과적인 조건들 바깥에서 곰곰이 생각하는 위치를 차지한다. 그리고 라그랑쥬는 그의 논증작업의 시작에서 “끈(la corde)의 마찰과 팽팽함(roideur)을 추상해야 한다.”라고 각주를 달았다. 다른 한편 그 증명작업은 추론 속에 이성의 선천적 원리들에 동화될 수 없는 요청을 도입한다. 반대로 원리들에서 사람들은, 부아스(Bouasse, 1866-1953)가 그것을 주목했던 대로,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의 “무매개적 귀결”을 인정한다.라그랑쥬가 말하기를, “체계가… 균형[평형]으로 남아있기 위하여, 무게는 체계의 점들의 무한히 작은 어떤 이전[이동]에 의해서 내려갈 수 없다는 것은 분명하다. 왜냐하면 무게는 항상 내려가려는 경향이 있기 때문이, 만일 무게에게 내려가게 허용하는 체계의 이동이 있다면, 무게(le poids)는 필연적으로 내려갈 것이고, 그리고 체계 속에서 이동을 생산할 것이다.” (290)

    그 명증은, 아무리 명증하다고 할지라도, 물리학적 질서일 수 있을 것이다. 명증은 중량(la pesanteur)의 실험적 연구에 연결되어 있다. 그리고 게다가 라그랑쥬가 이렇게 그것을 이해하는 것은 추측하기에 속한다. 일반화는 명제의 정당화에 있으며, 그는 정의된[한정된] 영역에서 이 명제를 확립하기 시작하며, 그 영역에서 전적으로 확실함을 얻는다는 것이 가능하다. 일단 진리의 지평 위에 자리 잡게 되면, 그로서는 절차의 확장이, 과학적 연역의 길을 열기 위하여, 어떠한 이론적 반대도 일으키지 않는다는 것을 알게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 그리고 과학적 연역의 성공은 합법성을 한정적으로 표출할 것이다. 적어도 라그랑쥬가 뒤따르게 된 그러한 방법이우리에게 나타나는데, 그가 대수적 계산으로부터 소위 말하는 분석적 계산으로 이행했던 테일러(Taylor, 1685–1731)의 급수[계열]로 된 함수들의 발전을 위해서 만큼이나, 또한그가 중량의 영역에서 역학의 보편적 영역으로 이행하는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를 위해서이다. (290)

§175. [꽁트가 라그랑쥬의 방법(분석적 계산작업과 역학의 보편성)을 쁘왕소(1777-1859)를 통해서 이어받음, <신학을 폐기하고 사회학에서 적용.>]

    오늘날 우리는 실천적 가치와 비슷한 방법의 풍부성을 인정하는 것이라 배웠다. 우리는 이 방법을 다음과 같이 잘 이해한다: 이 방법은 라그랑쥬의 동시대인들이 원리의 증명작업을 스스로 행할 수 있다는 생각으로부터 어떤 점에서근본적으로 멀어져 있는지를 잘 이해하는 만큼이나, 그리고 이 방법은 역학의 철학에서 거의 두 세기 이래로 열려진 “위기”를 왜그들이 해결할 수 없을 것 같은지를 잘 이해한다. (290)

라그랑쥬와 꽁트 사이에 자리를 차지한 과학자들의 세대를 위하여, 어떤 항목들로서 이런 “위기”가 밝혀지게 되는가? 어떻게위기가 실증주의의 토대에 있는 사변적 관점들을 형성하는데 기여했는가? (290)

    우리는 여기서 경이로운 투명성을 지닌 증인, 즉 쁘왕소(Louis Poinsot, 1777-1859)를 불러올 수 있는 행운을 가졌다. [쁘왕소의] 󰡔체계들의 균형과 운동의 일반이론(1806)󰡕에 관한 논문의 시작 부분은 󰡔분석역학(1778)󰡕의 훌륭한 검토이다. “이 당시에 마치 하나의 공리처럼 그리고 그 원리를 자체로서 고려하는 장점에 머물지 않고서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의 영역에서 출발하는 것은, 그리고 가능한 모든 체계 안에서 균형과 운동의 방정식들을 형성하기 위하여 그것[원리]으로부터 계산의 획일적 방법을 끌어낸다고 생각하는 것은, 행복한 생각이었다. 이리하여 사람들은 온역학(la Mécanique)의 모든 난점들을 뛰어 넘는다. 말하자면 과학 그 자체를 만들기를 회피하면서도, 사람들은과학을 계산의 문제로 변형한다. 󰡔분석역학󰡕의 대상이자 결과인 이런 변형, 마치 온분석학(l’Analyse)의 거듭제곱(la puissance, 冪멱)의 놀라운 예처럼 나타난다. 그럼에도 이 작품에서처럼, 사람들은 우선 온역학의 아름다운 발전을 고려하는데 주의를 기울이며, 이 온역학은 유일하고 동일한 정식으로부터 전적으로 벗어나는 것 같이 보인다. 사람들은 과학은 이미 만들어져 있다고, 그리고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의 증명의 탐구에 남아있다고, 자연히 믿었다. 그러나 이런 탐구는 사람들이 원리 자체를 통해 뛰어넘었던 모든 난점들을 다시 데려왔다. 매우 일반적인 이런 법칙 안에는 무한히 작은 운동들과 균형의 교란[섭동]에 대한 낯설고 모호한 관념들이 섞여 있다. 그런데 그 당시 라그랑쥬의 책은 계산들의 전진방식을 명석하게 할 어떠한 것도 제공하지 못했기에, 사람들은 흐릿한 것들(nuages, 구름들, 성운들)을 온역학의 강의에서 걷어내지 못했다는 것을 잘 알았다. 그리고 왜냐하면 구름들은 말하자면 이런 과학의 기원자체에서 모여져 있었기 때문이라는 것도 잘 알았다.” (291)

    “[한편] 그 만큼 풍부하고 또 보다 더 분명한 어떤 법칙을 발견하면서 이든지, [다른 한편] 평형[균형]의 일반 이론을 – 가상적 속도들의 성질은 이 때에 이 균형일반이론의 단순한 보조명제가 될 뿐인데, - 일상적 원리들 위에 근거하면서 이든지” 간에 이런 구름들을 흩어버리려 애쓰는 시도가 있는가? 말이다. 쁘왕소는 이것을 생각하였다: 과학의 토대에서 그 증거들(lespreuves)은 충분하지 못하다. [그래서] “진실한 증명작업(une véritable démonstration)”이 필요하다. 또한 그는 논리학적으로 완성되었고 나무랄 데 없는 역학을 생각한다. 그리고 그는 이 역학을 라그랑쥬의 구성된 과학에 대립시켰다. “󰡔분석 역학󰡕은, 저자가 그렇게 생각했던 대로, 깊이[토대]에서 사실상 그 학문이 있어야만 하는 학문이다. 그리고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의 증명[작업]은 그 학문에 부족하지(manquer) 않다. 왜냐하면 만일 사람들이 일반적 방식으로 그리고 잘 발전된 방식으로, 이 책의 앞부분에 증명을 보여주기를 시도했다면, 이 책은 두 번 만들어진 것으로 발견될 것이다. 내가 말하고자 하는 것은 이런 증명이 이미 역학 전체를 이해하게 했다는 것이다. 따라서 온역학의 모든 문제들을 해결하기 위한 또한 방정식으로 만들기 위한 어떤 일반적 규칙을 발견하기 위하여, 사람들은 라그랑쥬가 과학의 높은 점들 중의 하나 위에 단번에 위치했다는 것을 고려해야 한다. 이런 목적은 완전히 채워졌다. 그러나 과학 그 자체를 형성하기 위하여, 사람들이 그걸 생각하게 할 수 있는 모든 관점들을 동등하게 지배하는 이론을 세워야 한다. 가상적 속도들의 모호한 원리로가 아니라, 오히려 문제들의 해결을 위해 사람들을 끌어낼 수 있는 분명한 규칙으로 직접적으로 가야만 한다.” [규칙의 일반화를 구해낸다]

§176. [꽁트 등장: 라플라스, 라그랑쥬, 쁘왕소의 설명을 거쳐서. 일반적 사실들의 수식화의 가능은 데카르트에서 칸트까지의 역학(정역학)과 달리, 무매개적 자료들을 수학으로 번역(열역학).]

    사람들은 보다 깊은 그리고 보다 정확한 언어를 바랄 수 없었을 것이다. 꽁트는 쁘왕소와 반대 방향에서 대안을 해결해야만 했다. 그 대안을 쁘왕소는 실증주의자의해석을 정의하기 위하여 제시했었다. 사람들은 과학에 대해 실용주의자라고 말하고자 아마도 시도했을 것이다. 󰡔실증철학 강의󰡕의 제6강의에서(1842), 그는 가상적 속도들의 공리에 대한 직접적 증명에 의해서든, 또는 보다 일반적인 원리들의 정리를 대체하는 것에 의해서든, 라그랑쥬의 작품을 완전하게 하기 위한 이루어진 모든 시도들을 멀리했다. 그러한 시도들은 단지 효과적인 유용성을 갖출 수 있을 뿐일 것이다. 이것은 “과학이 이제 환원했던 분석적 탐구들을 상당히 단순하게 할 것이다. 꽁트는 덧붙여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가상적 속도들의 원리가 어떤 감탄할 만한 용이함으로 라그랑쥬에 의해 수학적 분석의 획일적인 적용에 채택되었는지를 생각할 때, 그것은 당연히 거의 불가능한 것으로 나타났던 것이다.” 따라서 “라그랑쥬의 논문에서 수학적 분석학이 배치될 수 있는 만큼이나 견고하게 좌표로 배치된, 합리적 역학의 근본적이고 철학적인 성격을”완전하게 하는 것을 희망하지 못한다. (292)

   사람들이 󰡔분석 역학󰡕의 기원에서 깨달았다고 믿었던 이 “구름들”은 형이상학적 상상작용의 착각에 기인한다. 사람들은, 그것이[역학] 과거 속에서 배제하고 거부하는 효과로서 삼는 철학적 이상(l’ideal)을 라그랑쥬의 작품에 부과하였다. 반대로 합리적 역학의 진실한 특성을 이해하기 위하여 있는 그대로 이런 작품을 다루는 것으로 충분하다. 합리적 역학은 가상적 속도들의 정리로부터 전적으로 연역된다. 이 일반적 정리는 운동의 근본적 법칙들의 필연적인 귀결이다. 즉 관성(inertie), 작용과 반작용의 동등성(égalité de l’action et de la réaction), 운동들의 독립과 공존(indépendance ou coexistence de mouvements)이 있고, 그리고 다음 차례로 근본적 법칙들은 “마치 관찰의 단순한 결과들처럼 고려되어야만 한다. 사람들이 그것을[관찰을] 자주 시도했다고 하더라도, 그관찰로부터 실재성을 선천적으로 확립하기를 원하는 것은 부조리하다.… 합리적 역학의 실재성을 확립한다는 것, 그것은 … 관찰에 의해 무매개적으로 제공된 어떤 일반적 사실들 위에 토대가 이루어졌다는 것이다. 그리고 진실로 실증적인 철학자 전부는, 내가 보기에, 그것을 마치 어떠한 약간의 설명도 허용할 수 없는 것처럼 고려해야만 한다.” (293)

   이리하여 데카르트의 󰡔철학의 원리들(1644)󰡕에서 칸트의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제1원리들(1786)󰡕에까지 역학이 대상으로 삼았던 이제 사변적 작품은 유통기한이 지난 것이 된다. 형이상학은 과학을 확립하기 위하여 어떠한 도움도 어떠한 범위도 없다. 경험론은 승소하였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과학이 순수하게 경험적이라는 것도 아니다. 무매개적인 관찰이 제공한 일반적 사실들(les faits généraux)은, 이 사실들이 수학적 관계들로 번역되는 그 만큼 단순성이다. 그리고 그처럼 사실들은 “논리학”의 모든 성격들을 갖는 추상적 학문의 구성을 허락한다. (293)

 

3절, 분석 기하학과 분석 열이론 La géometrie analytique et thermologie analytique 293

§177. [라그랑쥬의 분석역학의 혁명적 방법에서 꽁트의 일반화 방법으로 계승. ]

    “탁월한 철학적 혁명은 라그랑쥬에 의해 그의 󰡔분석 역학(1788)󰡕의 찬탄할 만한 논문에서 실행되었는데,” 그 혁명은 우리 눈에는 수학들의 실증주의적 개념 작업을 결정했던 “새로운” 사실이었다. 그러나 이 새로운 사실은, 아마도 꽁트의 정신 안에 최소한의 범위도 갖지 못했던 옛 사실과, 즉 “분석 기하학”의 구성작업과 결합한다. 기하학으로 순수계산을 했던 데카르트의 작품은 라그랑쥬가 역할을 위하여 실행했던 작품의 원형(le prototype)이다. (293)

    “기하학적 고찰들로부터 동등가인 분석적 고찰들로 변형[진화]은 … 자연적 현상들의 분석적 재현에 의하여, 추상에서 구체로 수학적 관계를 조직화하기 위해 사용하는 일반적 방법을 아주 명증하게 특징 지운다. 수학 철학에서 우리의 주의를 고정하게 하는 것이 칭찬 받을 만한 사유라는 것은 전혀 없다.” 사람들은 오귀스트 꽁트가 어떤 고집을 가지고 상기했는지를 안다. 그리고 사람들은 “기하학적인 모든 사색들을 무한히 인도하게” 되어있었던 “데카르트의 어머니 같은 위대한 관념”을 꽁트의 동시대인들에게 폭로했다고 거의 말할 수 있을 것이다. 그 동시대인들은 몽쥬(Monge, 1746-1818)의 작업에도 불구하고 그것의 의미를 회피하게 내버려 두지 않았던 것 같다. 그는 “철학적인 일시중단”을 이용했다. “적어도 수학적 주도권의 가장 중요한, 가장 어려운, 가장 불완전한, 정도[차원]에 연관하여 그의 강의들의 일부를 출판하기”위하여, 이 일시중단은 󰡔실증철학 강의(1830-1842)󰡕의 완성과 󰡔실증정치학 체계(1851-1854)󰡕의 정교화 사이에서매우 덧없는 일종의 여가가 그에게 있었다. (294)

    “추상과 구체의 사이의 이런 대안적인 이중 관계에 대하여, 데카르트의 사유는 근본적 원리를 구성한다.”또는 꽁트가 또 다시 말하는 것처럼, “선의 관념들과 방정식의 관념들 사이에서 …자연적인 내밀한 조화”는, “필연적으로 조화로운”관념을 매우 잘 암시하고 또한 검증하였기에, 사람들이 끝내는 “기하학에 필연적으로 내재하는(inhérent)자연 과학의 특성[성격]을 보기를”잃어버렸다. (294)

    그러나 정확히 말하자면, 기하학적 고찰들과 분석적 고찰들 사이에 “하나의…상호-관계의 변함없는 가능성”을 확립하면서, 데카르트는 수학은 마치 과학처럼 구성했던 두 특성들의 단위를, - 말하자면 하나는 계산의 내속적 명석함과 다른 하나는 실재적인 것으로 직접적인 적용 – 그것의 보다 높은 점에까지 옮겨놓기만을 행했을 뿐이다. 이때부터, 오귀스트 꽁트가 말하기를 “우리가 기하학을 마치 오늘날 본질적으로 분석적인 것처럼 여기서 더 많이 고려해야 하면 할수록, 더욱더 수학적 분석의 과도한 과장에 반대하여 정신들을 미리 보호하면 할 것이다. 사람들은 그 수학적 분석에 따라서, 소위 말하는 기하학적 모든 관찰을 면제해 준다고 주장할 것이고, [따라서] 대수적인 순수 추상작업 위에 이런 자연과학의 토대자체를 확립하게 된다.” (294)

§178. [꽁트의 시도]

    이미 18세기의 수학자들 중에, 특히 꽁트가 매우 깊이 여향을 입은 달랑베르도 있는데,이들은 궤추론(ratiocination)의 무용하며 불모인 노력에 반대하여 항의 했었다. 이 궤추론은 기하학의 근본적 명제들에 예속되어있었다. “직선의 정의와 성질[속성]들은, 평행선들과 마찬가지로, 암초(l’écueil)이며, 말하자면 기하학의 요소들의 추문[소동]이다.”그럼에도 불구하고 라그랑쥬는 경험주의에 반대하는 문제를 해결하기를 제안하였다. 그리고 사람들은 그의 고전적 논문의 여러 판본을 통하여, 평행론의 상대적적 요청의 끝에 이르기 위하여, 일련의 시도들을 따라간다. 기하학의 “철학적 성격을 진실로 완전하게 한다”고 주장했던 이런 시도들에서, 꽁트는 “형이상학적 상태로 회귀”를 알렸다. 계산은 수단이지, 토대가 아니다. 그런데, “단순한 논리적 추상작업들은” “실재적인 인식들을”제공할 없고, 무매개적인 관찰에 도움을 청하는 것을 피할 수 없을 것이다. (295)

   따라서 기하학의 기원에도 불가사의가 없듯이, 역학의 기원에도 불가사의란 없다. 일단 사람들이 두 가지 기원들을 일상적으로 감싸던 “존재론적 구름”을 흩어지게 했다면, 기하학의 초기 용어들은 쉽게 경험적 사실에 되돌아간다. 공간의 용어는, “우리가 물체가 이미 자리 잡았던 흐름 속에 있는 물체가 남긴 각인(l’empreinte)울 생각할 때, 우리에게 관찰에 의해 자연적으로 암시되었다.”마찬가지로 “표면들과 선들은 … 항상 실재적으로 3차원들로 생각된다. 왜냐하면 마치 극단적으로 얇은 단면과 같은 것과 달리 표면을 재현하는 것을 불가능하기 때문일 것이고, 마치 무한히 가늘어진 실과 같은 것과 달리 선을 재현하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295)

    이렇게 생각된 기하학과 역학 사이에, 따라서 평행론이 있으며, 더 좋게 말한다면 연속성이 있다. 라그랑쥬가 󰡔분석 함수들의 이론(2권 1797, 1813)󰡕에서 썼듯이, “사람들은 역학을 마치 4차원의 기하학처럼, 그리고 역학적 분석을 마치 기하학적 분석의 확장(une extension)처럼 간주할 수 있다.” (295)

    사람들은 훨씬 더 멀리 갈 수 있다. 󰡔열의 분석이론(1822)󰡕의 「예비적 담론」에서, 푸리에는 말하기를 “분석적 방정식들은 고대 기하학자들에서는 무시되었다는데, 데카르트는 이 방정식들을 곡선들과 표면들의 연구에 도입했던 첫째 사람이다. 그 방정식들은 도형의 성질들에, 그리고 합리적 역할의 대상인 성질들에 제한되지 않는다. 이 방정식들은 모든 일반적 현상들에 펼쳐진다.”이런 입장으로부터 푸리에는 부분적인 증명을 그러나 특이하게 선명한 증명을 제공했다. 그의 고유한 표현에 따르면, 열의 퍼짐 위에 근거하는 모든 물리학적 탐구들을 적분 계산의 문제들로 환원하는데, 그 계산의 요소들은 경험에 의해 주어진다.󰡔제3강의󰡕(1838)의 각주보다, 수학의 실증주의적 용어를 더 잘 이해하게 하는 것을 완성하지 못했다. “나는 현재부터 열역학을 다루는데 주저하지 않을 것이다. 만일 일상적 습관들을 너무 멀리하면서, 나는 이 작품의 유용성을 축소할 것이라는 두려움을 갖지도 않았다면, 이 열역학은, 마치 구체 수학의 중요한 셋째 가지[분과]처럼, 이렇게 생각했을 것이다.” (296)

 

4절, 추상 수학 La mathémitique abstraire 296

§179. [여러 분석학(산술학, 기하학, 열이론)을 넘어서는 것은 종합이 아니라 추상이다. 결국 선험성(근원, 토대)에서 초월성(원리, 선전제, 상징체계)으로 전개될 것이다. - (이 추상은 논리적 추상이 아니라 경험적 추상으로 보인다.)]

    이리하여 오귀스트 꽁트에게서 구체 수학은 수학들의 체계의 “무게 중심(centre de gravité)”이다. 사람들이 그의 「예비적 담론」을 이러한 고려에서 상의하는 것인데, 푸리에(1768-1830)가 이 ‘담론’에 대해 ‘분석의 효능들(les vertus)’을 유명하게 했다: 삐까르(Émile Picard, 1856-1941)가 말한 것처럼, “사람들은 거기서 오로지 분석으로 만들고 있는 경향성이 뚫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 그리고 자연 과학들의 보조물이, 그 보조물이 아무리 비교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뚫고 나오는 것을 보았다.”푸리에의 작업들 자체의 의해 자극된 탐구들은 꽁트에게 이 경향성들을 강조할 기회를 당연히 제공하였다. 󰡔실증철학 강의󰡕의 제2권에서(1835)에서 천재적 창조자에 대해, 즉 위대한 푸리에에 대해, 그는 동시대의 기하학자들을 대립시켰다. 이 기하학자들은, 또한 대부분 그러하고 그 선두에는 쁘와송(Poisson, 1781-1840)이 있는데, “본질적으로 그러한 탐구들에서 분석적 연습들의 새로운 영역만을 보았을 뿐이다. … 이런 보조적 작업들은 매우 자주 수학적 진실한 철학의 깊은 감정을 지적하지 않는다. 이런 수학적 철학에 대해 푸리에서 아마도 다른 어떠한 위대한 기하학자보다 탁월하게 깊이 있었다. 그리고 그 수학철학은 특히 내밀한(intime) 관계 속에, 또한 추상에서 구체로 이어지는 연속적인 관계 속에 있으며, 이는 마치 내가 말끔하게 수학 철학을 확립하고 애썼던 것과 같은 것이다.” (297)

   따라서 추상수학은 구체 수학의 여러 다른 가지[분과]들에 의해 제공된 방정식들을 해결하기 위하여 구성되었다. 추상수학은 하나의 계산이며, 그것은 수적 가치들의 계산을, 즉 산술학을 기초로 삼고 있다. 그러나 수적 가치평가는 일반적으로 방정식들보다 앞선 변형작업 없이 계산될 수 없다. 이런 변형의 연구는 추상수학의 무한정한 확정으로 나갈 것이다. 직접적 함수들의 계산이 대수학이라면, 간접적 함수들의 계산은 선험적 분석학이다. (297)

   추상수학의 그런 개념작업은 수학적 분석에 맞는 명석함을 회복하기를 허락한다. 왜냐하면 꽁트가 깊이 있게 주목하기를, 분석은 “그의 자연[본연]에 의해, … 기하학자들 그 자체들이 분석을 공통적으로 믿었던 것보다 훨씬 더 명석하다. 그런데 기하학자들은 형이상학자들의 나쁜 반대 방식들에 의해 방황하고 있었다.”대수학에서는 음수의 양들(les quantités négatives)을 도입하는데 어떠한 신중한 난점들도 없다. 일단 사람들은 추상적인 기호화작업을 구체적 해석으로부터 신중하게 구별했고, 그리고 사람들은 빼기(moins) 기호의 감화된 양들의 사용의 사용에서 “정식들을 더 넓혀지기 위하여 인위적 분석”을 보았다. 게다가 어떠한 “특이한 기호들”의 이용 작업에서도, 마치 소위 말하는 허수 (imaginaire)이라는 표현법들처럼,난점들이 없다. 이때부터 사람들은 “마치 단순한 분석적 사실들처럼, 진실한 관점 하에서 비정상적 결과들을 고려할 수 있었다. 이것들을 이렇게 생각하면서, 이것들의 관계들의 유일한 관점 하에서 모든 규정된 가치의 관념과 독립적으로 크기들을 고려하는데 변함없는 수학적 분석의 정신이 있다는 것을 일반적 주제에서도 인정하는 것은 쉽다. 이로부터 분석가들에게서, 대수적 조합들이 생성할 수 있는 모든 종류의 어떤 표현들을 무차별적으로 인정하는, 변함없는 의무[강요]가 필연적으로 결과로서 도출된다.” (298)

   결국 제시와 입문의 잡다한 절차들에도 불구하고, 특히 라이프니츠, 뉴턴, 라그랑쥬에 힘입는 방법들은 발산에도 불구하고, 초월적 분석학의 확립에 어떠한 난점도 없다. 왜냐하면 “이 세 가지 방법들은, 이것들의 효과적인 행선지에 관한한, 예비적 관념들과 독립적으로 … 일반적 논리학의 동일한 인위성 안에 전적으로 그 방법들이 있다 … 즉 문제에 알맞은 대상인 크기들에 일정하게 상관관계가 있는, 보조적 크기들의 어떤 체계의 도입이 있고, 그리고 사람들은, 현상들에 대해 수학적 법칙들의 분석적 표현을 쉽게 다루기 위하여, 그 현상들이 특별한 계산의 도움으로 마지막에는 제거된다고 하더라도, 문제에 맞는 대상을 크기들로 대체한다. 꽁트가 덧붙이기를, 내가 보기에 초월적 분석학을 간접적 함수들의 계산이라고 규칙적으로 정의하기로 규정했으며, 이는 그것[분석학]의 진실한 철학적 성격 표시하기 위해서였으며, 그것을 생각하고 그것을 적용하는데 보다 알맞은 방식에 관한 토론 전체를 멀리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이런 분석의 일반적 효과는, 사용된 방법이 어떤 것이라 할지라도, 계산의 영역에서 수학의 각 질문에 훨씬 더 신속하게 되돌아가게 하는 것이고, 그리고 구체에서 추상으로 이행이 일상적으로 제시하는 중요한 난점을 이렇게 상당하게 줄이는 것이다.” (298)

    필연성 안에서 구체적 수학 위에 지지받는 추상적 수학이 있다. 따라서 이 필연성은 과학의 동질성을 전혀 단절하지 않는다. 반대로 특히 이것은 “수학적 과학에 의해 증빙되는 중요한 최종 완전함들”의 결과이다. 그 필연성은, “󰡔분석역학(1788)󰡕과 󰡔분석 함수들의 이론(2권 1797, 1813)󰡕의 불멸의 저자[라그랑쥬]의 작업들을 대해 정신을 따라서”,단위의 특성을 수학적 과학에게 각인하기에 기여하였다. 그 수학은 확실히 적분과학이 아니다. 거의 완전하게 될 뻔 했다. 그리고 󰡔실증철학 강의󰡕의 첫째 강의(1830)에서부터, 꽁트는, 그가 수학적 정신의 “수차들”(l’aberrations, 收差)이라 이미 불렀던 것에 대해 항의했다.그러나 수학은 전형의 과학이다. 수학은 실증적 합리성의 완성된 표본을 제공한다. 수학으로부터 우리에게 방법이 나온다. “따라서 수학들의 연구에 의해서, 즉 오로지 연구에 의해서, 사람들은 이것은과학이라고 하는 것의 정당하고 깊이 있는 관념을 만들 수 있다.” (299)

 

5절, 실증주의에서 수학 La mathémitique dans le positivisme 299

§180. [꽁트의 조직화: 자연의 조직화(physis+logique)와 사회의 조직화(socio + logique) => 정신의 조직화(psycho + logique), 칸트의 선천적 형식들에서 꽁트의 일반적 사실들로 변형론을 만들어가다. 변형론이 진화론으로 만들어진다.]

    꽁트의 수학 철학은 “과학으로서 소개될 수 있을 형이상학에 대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실증시대에서 인류의 정신적인 조직화(l’organisation)에 대한 서곡이다. 그의 일반적 체계를 수학의 해석 위에 지탱하면서, 꽁트는 철학적 사유를 지금까지 무능으로 환원했던 모순들을 끝장내기를 희망했다. 칸트처럼 그는 경험론과 합리론 사이에 100년간 토론을 표출했었던 대척적인 경향성들의 종합을 조작했다. 단지 칸트가 라이프니츠(1646-1716)와 볼프(1679–1754)로부터 유산 받았던 합리주의를 정의에 맞게[결정적으로] 굳건하게 하기 위하여, 그가흄의 회의적 의심들을 비판에 통합을 때, 콩뜨주의자의 종합의 실증적 기본은, 즉 “서방의 재생”의 원리는, 디드로(1713-1784)와 흄(1711-1776)의 학파이다. 󰡔실증주의 교리문답(1852)󰡕의 「전문(Préface)」에서 쓰기를, “서방의 재생 … 이런 역사적 거대한 층에, 나는, 신학적이든 형이상학적이든, 우리의 마지막 반대자들이 진실로 탁월하게 제공했던 것을 끈기있게 묶었다. 흄은 나의 중요한 철학적 예고자를 구성하는 반면에, 칸트는 그것에 부속물로서 연결되었다. 그[칸트]의 근본적 개념작업은 실증주의에 의해서만 진실로 체계화되고 발전되었다.” 다른 말로 하면, 칸트는 인간 지식의 상대적 형식을 깔끔하게 깨달았다. 그리고 그는 이런 관계가 변함없는 연결 속에, 주관적인 것과 객관적인의 상호 함축 속에, 논리적 법칙들과 물리적 법칙들의 상호 함축 속에 있다고 규정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칸트는 형이상학자로 남는다. 그리고 칸트에게서 경험은 선험성에 종속되며, 물리학은 형이상학이 물리학에 부여한 틀들을 채우면서 스스로 구성된다. (299)

이런 형이상학으로부터 승리하기 위하여, 경험론은 수학의 스승이 되어야만 했다. 거기에서 홉스(1588–1679) 또는 꽁디약(1714-1780)과 더불어 유명론적 변형주의[진화론] 놀이를 보는 대신에, 또는 흄(1711-1776)과 더불어 주어진 실재성에 대해 여전히 불확실한 근사치를 보는 대신에, 그는 경험론으로 “자연 과학들을”만드는데 성공했다. 이 자연과학들은 비난할 수 없는 엄밀함을 가지고 발전하면서, 일반적 사실들의 관찰에 지지를 받았다. (299)

    그런데, 선천적형식들을 일반적 사실들로 대체하면서, 실증주의는 과학들의 체계와 더불어 수학의 연관을 완전히 변하게 한다. 사실상으로 만일 수학들이 소유했던 진리의 가치가 공간과 시간의 타고난 형식들에서 가상적으로 그려졌던 틀들의 고정성에 연결되어 있다면, 과학은 정확하게 거기서 멈출 것 같다는 것이 분명하다. 거기에서는 공간적 또는 시간적 척도들이 더 이상 도입될 수 없고, 또한 거기에서는 어떠한 내용도 수학적 형식들을 위하여 제공되지 않는다. 순수한또는 응용된[적용된] 수학은 필연적이고 보편적인 명제들의 영역을 고갈 시킨다. [한편] 하부 경계선에, 규칙성도 예측성도 허용하지 않는 개별적 사실들의 덩어리가, 즉 화학, 역사, 서술적 심리학의 경험론이 있다. [다른 한편] 상부 경계선에서, 도덕적 또는 종교적 질서의 주장들이 있다. 이것들은 확실히 이법[이성]에 전혀 낯설지 않다. 그러나 이것들은 개념들의 구축을 위하여 한정된 방법에 속하지 않고, 경험 속에서 실증적 조절에도 속하지 않는다. 이것들은 지식(savoir)의 대상들이 아니라 믿음(croyance)의 대상들로 남는다. (300)

    실증주의를 위하여, 과학의 원리가 일반적 사실들의 관찰 속에 있는 찰나로부터 수학의 성공은 아주 다른 기호작용(signification)을, 즉 영원한 기호작용을 갖는 것이 아니라 역사적 기호작용을 갖는다. 그 계산(le calcul)은 인간에 의해 가장 일찍이 완전하게 되었던 연구의 수단이었다. 계산은 실증과학의 구성을 허락한 첫째 수단을 갖는다. 왜냐하면 계산은 특별하게 가장 단순한 사실들의, 기하학적 또는 역학적 또는 천문학적 사실들의 인식에서 채택되었기 때문이다. 그러나 왜냐하면 계산은 사실들의 연결을 얻기 위하여 수단일 뿐이기 때문에, 다른 자연의 사실들에게는 다른 논리적 수단들이 상응할 수 있을 것이다. 이것이 진실로 일어나는 것[무엇]이다. 이미 사람들은 천문학의 영역에서 물리학의 영역으로 이행한다면, 과학적 방법은 관찰과 계산의 통합으로 더 이상 환원되지 않는다. 물리학의 잡다한 가지들이 특징화하는 것, 그것은 그 가지들이 실험의 절차에서 이루어지는 자리이다. 하물며, 유기적 현상들 또는 사회적 현상들의 법칙들은 과학적 방법들의 우월성에 의해 확립된다. 즉 생물학에서 비교의(comparative) 방법 사회학에서 역사적(historique) 방법이 있다. (300)

    이로부터 실증주의가 실증적 시대의 도래를 전혀 등록하지 않을 중요한 귀결이 나온다. 이런 도래의 과학적 예감은 탈레스와 퓌타고라스의 시대에까지 거슬러 올라간다. 실증적 철학의 역할을 능동적(actif)이지 수동적(passif)이지 않다. 그 역할은 실증적 시대의 한가운데에서 주도권의 운송[수단]을 조작[계산]하는 것이고, 수학적 실증주의 대신에 사회학적 실증주의를 대체하는 것이다. 󰡔실증철학 강의󰡕(1830-1842)의 마지막 강의(1842)는 의미심장하다. “어떠한 현상들 전체로부터 법칙의 유일한 질서로 향하는 악습의 환원 속에서, 억압적인 만큼이나 망상적이고, 생산성 없는 과학적 통일성을 맹목적으로 탐구하는 대신에, [실증주의 시대에] 인간 정신은 마지막으로 사건들의 다양한 분류들을 마치 분류들의 특수한 법칙들 을 갖는 것처럼 보게 될 것이다. 게다가 이 특수한 법칙들은 회피할 수 없을 정도로 수렴적 법칙들이고 또 심지어는 어떤 고려에서보아 유비적 법칙들이다.” (301)

이리하여 칸트가 17세기 데카르트 철학에 반대하여 이미 묘사했던 반작용의 운동이 완성되었다. 데카르트주의자들에게서 수학은 정신성을 함축했었다. 반대로 꽁트는 특수성 위에, 즉 다양한 과학적 분과학들의 불가환원성 위에, 새로운 정신주의를 세울 것이다. “진실한 철학자는, 계산에 의해서 기하학 또는 역학을 흡수하는 현실 수학자들의 통속적 경향성 속에서도 유물론을 인정한다. 그리고 수학의 일체가 물리학에 대해, 또는 물리학이 화학에 대해, 특히 화학이 생물학해 대해 보다 많이 발언했던 침탈 속에서도, 그리고 결국에는 사회 과학을 마치 생물학자들의 재량권의 단순한 부속물 또는 첨가물처럼 생각하는 가장 탁월한 생물학자들의 변함없는 재량권 속에서도 유물론을 인정한다. 특히 그것은 동일한 근본적 악습이며, 연역적 논리학의 남용(l’aubs)이다. 그리고 그것은 동일한 필연적 결과, 하등한 연구들의 맹목적 지배 하에서 상위 연구들의 절박한 조직파괴이다.”실증주의의 작품은, 정의상으로, 이런 상위 연구들의 재조직화였다. 꽁트의 영향은 과학자들에게서 무매개적이다. 이 과학자들은 생물학회(Société de Biologie)를 정초하기 위하여 모여 들었으며,이 학회는 보다 나중에는 리보(Théodule Ribot, 1839-1916)와 더불어 심리학을, 뒤르껭(Émile Durkheim, 1858-1917)과 더불어 사회학을 개선[개혁]하려고 실행했다. (301)

(59QKA) (16:14, 59QLC)

*

#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학문의 분류: 단순한 독립성 측면 대 복잡한 의존적 측면 사이는 방향의 반대이다.

수학들, 천문학, 물리학, 화학, 생물학, 사회학. - 영국 쪽에서 분류하여 표시.

1822 󰡔사회를 재조직화하기 위하여 필연적인 과학적 작업의 계획(Plan des travaux scientifiques nécessaires pour réorganiser la société (1822-1824)󰡕,

1830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Paris, Bachelier

1권. Les préliminaires généraux et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1830 ;

2권. La Philosophie astronomique et la philosophie de la physique, 1835 ;

3권. La Philosophie chimique et la philosophie biologique, 1838 ;

4권. La Philosophie sociale et les conclusions générales, 1839 ;

5권. La Partie historique de la philosophie sociale, 1841.

6권. Le Complément de la philosophie sociale, et les conclusions générales, 1842.

1843 󰡔분석기하학 원론(Traité élémentaire de géométrie analytique à deux et à trois dimensions, 1843)󰡕,

1844 󰡔실증 정신에 관한 담론(Discours sur l'esprit positif, 1844)󰡕, Paris, Carilian-Gœury et V. Dalmont, février 1844

1851 󰡔실증정치학 체계(Système de Politique positive (1851-1854)󰡕

- 여기서 무게중심(centre de gravité)이란 용어를 쓴다.

1852 󰡔실증주의 교리문답(Catéchisme positiviste, 1852)󰡕

1856 󰡔주관적 종합(Synthèse subjective ou système universel, 1856)󰡕

*- 인명록

625 탈레스(Thalès de Milet, Θαλῆς ὁ Μιλήσιος, 전625-전 548), 이오니아 밀레토스 출신 철학자, 현자.

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O

1588 홉스(Thomas Hobbes, 1588–1679), 영국 철학자, 󰡔Leviathan, 1651󰡕, 사회계약론과 근대정치학의 창설자들 중의 하나. De Cive (1642), De Corpore (1655), and De Homine (1658) / De Corpore, chap. VI, § 13, Op. Latina, éd. Molesworth, t. I, 1839.

1596 데카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철학의 원리들(Les Principes de la philosophie, 1644)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679 볼프(Christian Wolff, 1679–1754), 독일 철학자, 대학교수, 법학자, 수학자. 라이프니츠와 칸트 사이에 있다.

1685 테일러(Brook Taylor, 1685–1731), 영국 수학자, 법정 변호사. Methodus incrementorum directa et inversa, 1715. / 라그랑쥬가 1772년 그에게서 미분계산의 기초를 보았다고 한다.

1707 오일러(Leonhard Euler, 1707-1783), 스위스 바젤 태생, 수학자, 물리학자, 천문학자, 논리학자, 공학자. 미적분학, 그래프 이론, 위상수학, 해석적 수론 등 수학의 여러 분야에서 많은 업적을 남겼다.

1711 흄(David Hume, 1711-1776), 스코틀랜드 출신의 철학자, 경제학자, 역사가.

1713 디드로(Denis Diderot, 1713-1784) 프랑스 작가, 철학자, 백과전서파, 소설가, 극작가, 수필가, 예술 비평가, 번역가.

1714 꽁디약(Étienne Bonnot de Condillac, abbé de Mureau, 1714-1780) 프랑스 철학자, 감각주의자, 작가, 아카데미 회원, 경제학자.

1717 달랑베르(Jean Le Rond d'Alembert, « Dalembert », 1717-1783), 프랑스 철학자, 백과전서파. Mélanges de littérature, d'histoire et de philosophie (1753 1re éd. en 2 tomes, 1759 2e éd. en 4 tomes puis ajout d'un tome 5 en 1767.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 󰡔모든 사물들의 종말(Das Ende aller Dinge (1794)󰡕, 󰡔달이 날씨에 미치는 영향(Etwas über den Einfluß des Mondes auf die Witterung (1794)󰡕 - 칸트는달이 대기에 어느 정도 영향을 미칠 수는 있으나, 일상적인 기상 변화(비, 바람, 온도 등)를 결정하는 주된 요인은 아니라고 분석했습니다. 이런 분석은 점성술이나 민간 속설을 배제하기 위한 것이었다고 한다. - [“달무리가 지면 다음 날 흐리다”는 달의 영향이 아니라 대기의 수증기가 달빛과 관계이어서 달과 기후와 연관은 없다. 단지 주수간만의 차이에 영향이 있을 뿐이다.]

- Allgemeine Naturgeschichte und Theorie des Himmels: Histoire générale de la nature et théorie du ciel (1755).

- Kritik der reinen Vernunft, 1781, 수정판 1787.

- 󰡔자연과학의 형이상학적 제1원리들(Premiers Principes métaphysiques de la science de la nature (1786)󰡕

1736 라그랑주(Joseph-Louis Lagrange, it. Giuseppe Luigi Lagrangia, 1736-1813), 사르데냐 왕국 출신 프랑스 귀화. 프랑스와 프로이센에서 활동한 수학자, 천문학자. 해석학, 정수론, 고전역학, 천체역학 전반에 걸쳐 중대한 기여.

- 󰡔분석역학(Mécanique analytique, 1788)󰡕: 가상적 일(노동)의 원리에 관한 토대를 세우다.

- 󰡔분석 함수들의 이론(Théorie des fonctions analytiques, 2권 1797, 1813)󰡕

1743 콩도르세(Marie Jean Antoine Nicolas de Caritat, marquis de Condorcet, 1743-1794), 프랑스 수학자, 철학자, 정치인.

1746 몽쥬(Gaspard Monge, comte de Péluse, 1746-1818) 프랑스 수학자, 정치가, 에콜 폴리테크니크 창설자 중의 한사람.

1749 라플라스(Pierre-Simon de Laplace, marquis de Laplace, 1749-1827), 수학자, 천문학자, 물리학자, 정치가. 󰡔세계 체계의 제시(Exposition du système du Monde, 1796)󰡕

- Mécanique céleste, 1798-1825 (논문집이다)

1762 피히테(Johann Gottlieb Fichte, 1762-1814), 독일 철학자. 󰡔전체 지식학의 기초(Grundlage der gesamten Wissenschaftslehre, 1794, 1795)󰡕(1804완전판)

1768 푸리에(Jean Baptiste Joseph Fourier, 1768-183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열의 확산 계산

󰡔열의 분석이론(Théorie analytique de la chaleur, 1822)󰡕

1770 헤겔(Georg Wilhelm Friedrich Hegel, 1770-1831) 독일 철학자.

1777 쁘왕소(Louis Poinsot, 1777-1859) 프랑스 수학자. 합리적 역학(la mécanique rationnelle, [mécanique analytique?])의 기여자 이다. / Mémoire sur la Théorie générale de l'équilibre et du mouvement des systèmes, 1806.

1781 쁘와송(Siméon Denis Poisson, 1781-1840), 프랑스 수학자, 기하학자, 물리학자. 전기성과 자기성에 관한 연구. 1809 추론역학(la mécanique rationnelle) 교수가 되다.

1788 쇼펜하우어(Arthur Schopenhauer, 1788-1860), 독일철학자.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1819 세레(Joseph Serret, 1819-1885), 프랑스 수학자, 천문학자.

1838 마흐(Ernst Mach, 1838-1916),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인식론자. 의사이며 생리학자인 블뢰러(Josef Breuer, 1842-1925)처럼 6감을 의식의 방향정립으로 연구했다.

1839 리보(Théodule Armand Ferdinand Constant Ribot, 1839-1916), 철학자,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 심리학 창설자. 철학지(Revue philosophique, 1876) 창간.

1842 다르부(Jean Gaston Darboux, 1842–1917), 프랑스 수학자

1843 딴느리(Paul Tannery, 1843-1904), 프랑스 과학사가, 수학사가. Auguste Comte et l’histoire des sciences, Revue générale des sciences, 1905, p. 411b.

1846 리아르(Louis Liard, 1846-1917) 프랑스 철학자, 행정가. 󰡔La Science positive et la Métaphysique, 1879󰡕, 󰡔Descartes, 1882󰡕

1850 트렘세그(André Tremesaygues, 1850–1950), 프랑스 번역가, 칸트 번역.

?-? 빠꼬(Bernard Pacaud, 18..-19..) 칸트 번역가. Tremesaygues-Pacaud 번역.

1856 안깽(Arthur Hannequin, 1856-1905), 프랑스 철학자.

1856 삐까르(Charles Émile Picard, 1856-1941), 프랑스 수학자. 수학적 분석 전문가. « La science moderne et son état actuel » en 1905.

1857 레비-브륄(Lucien Lévy-Bruhl, 1857-1939), 알사스 유대계 출신 프랑스 사회학자, 인종학자. 인류학자.

1857 글레(Marcel Eugène Émile Gley, 1857-1930), 프랑스 생리학자, 내분비학자. 꼴레쥬 드 프랑스 교수. Essais de philosophie et d'histoire de la biologie, 1900.

1858 뒤르껭(David Émile Durkheim, dit Émile Durkheim, 1858-1917), 프랑스 사회학자, 현대사회학의 기초자.

1861 뒤앙(Pierre Maurice Marie Duhem, 1861-1916) 프랑스 물리학자, 화학자, 역사가, 현상론자. Les Origines de la statique, 1905–6(2권).]

1866 부아스(Henri Bouasse, 1866-1953) 프랑스 물리학자. 툴루즈 대학 교수. Introduction à l'étude des théories de la Mécanique, 301 p., Georges Carré Éditeur, 1895.

-*-

칸트-라플라스 가설 / 성운 가설(Kant-Laplace hypothesis, fr. L'hypothèse de la nébuleuse solaire)은 태양과 행성들이 거대하고 회전하는 가스와 먼지 구름(성운)의 붕괴와 수축을 통해 형성되었다는 태양계 기원설. 이 가설은 1755년 철학자 칸트(1724-1804)가 「Histoire naturelle générale et théorie du ciel」에서 처음 제안하고, 1796년 수학자 라플라스(1749-1827)가 「우주체계 해설(Exposition du systeme du monde)」에서 독자적으로 수정 및 발전시킨 이론

정태학, 정태역학(La statique, ou mécanique statique), 물리학의 한 분과. 갈릴레이 지표에서 균형을 이룬 역학 체계들을 연구한다.

라그랑주 역학(Lagrangian mechanics; fr. Mécanique de Lagrange)은 수학자 라그랑주가 기존의 고전역학을 새롭게 수학적 형식화하여 그의 논문 󰡔해석 역학󰡕을 통해 1788년에 발표한 이론이다. 라그랑주 역학은 수학자 피에르 드 페르마, 모페르튀 등으로부터 출발한 접근 방법인, 최소 시간의 원리와 최소 작용의 원리에 기반한다.

라그랑주 점(Un point de Lagrange, ou point de libration) (noté L1 à L5),: 은 태양과 지구가 만들어낸 중력과 위성의 원심력이 상쇄되어 실질적으로 중력의 영향을 받지 않는 공간상의 어떤 지점을 의미한다. (une position d'équilibre, 평형지위)

- L1, L2, L3 라그랑지 점들은 평형점(une position d'équilibre, 평형지위)에 있던 물체들의 위치가 약간만 벗어나게 되면 원래 있던 평형점으로 되돌아오지 못하는 불완전 평형점이고, L4, L5 라그랑지 점은 있던 물체들의 위치가 약간은 벗어난다고 해도 원래 있던 평형 점으로 되돌아오는 완전 평형점이다. 따라서 물체들은 자연스럽게 L4, L5 라그랑지 점으로 모이게 된다.

위상수학에서 올다발(en. fiber bundle, )은 국소적으로 두 공간의 곱집합처럼 보이는 위상 공간이다.

일반적인 올다발(Fiber bundle): espace fibré

벡터 다발(Vector bundle): fibré vectoriel

주다발(Principal bundle): fibré principal

정태학: la statique, 라그랑쥬의 정태학, étudie les conditions d'équilibre des systèmes matériels.

생물학회(La Société de biologie, 1848-), 해부 생리학자인 레이에(Pierre Rayer 1793-1867), 의사-생리학자인 베르나르(Claude Bernard, 1813-1878), 의사-생리학자(Charles Robin, 1821-1885)에 의해, 1848년 혁명의 와중에도 창설했다.

(22:20, 59QKA) (20:02, 59QL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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