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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룅슈비끄

수4권14장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대중판]

작성자천야|작성시간26.06.19|조회수59 목록 댓글 0

수학 철학의 여러 단계들(1912),

브륑슈비크(1869-1944), P. 592.

제1부 구성의 시대 Période de constitution 01

제1권 산술학Arithmétique. 03

2권 기하학 Géométrie 43

3권 무한소 분석 Analyse infinitésimale 153

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12장 칸트의 수학적 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e Kant 253

[1] 문제의 제기 La position du problème 253

[2] 수학들의 기술적 개념작업 La conceptions technique des mathématiques 257

[3] 시간과 공간의 형식들 Les formes de l’espace et du temps. 262

[4] 선험적 연역과 도식주의 La déduction transcendentale et le schématisme 265

[5] 수학적 인식의 상대성 La relativité de connaissance mathématique 269

[6] 수학들과 자연의 형이상학 Les mathématiques et la métaphysique de la nature 276

13장 오귀스트 꽁트의 수학철학 La philosophie mathématique d‘Auguste Comte 282

[1절] 칸트로부터 꽁트로 De Kant à Comte 282

[2] 분석적 역학 La mécanique analytique 286 .

[3절] 분석 기하학과 분석 열이론 La géometrie analytique et thermologie analytique 293

[4절] 추상 수학 La mathémitique abstraire 296

[5절] 실증주의에서 수학 La mathémitique dans le positivisme 299

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181.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182. §183. §184.

단원 B. 비유클리드 기하학들 Les géométries non euclidiennec 310 §185

  [1] 사케리의 선구자들 Les précurseurs de Saccheri 313, §186 §187.

  [2] 신부 삭케리 Le P. Saccher. 315 §188. §189.

  [3] 로바체프스키와 리만 Lobatchevski et Riemann 318 §190 §191

  [4] 메타기하학 Les métagéométries 321 §192 §193

단원 C. 분석학 과 연속성 L’analyse et la continuité 325

  [5] 18세기에서 문제 Le problème au XVIIIe siècle 325 §194

     [18세기 말에 데카르트와 뉴턴의 수학으로 해결할 수 없는 문제들이 제기된다.

    [19세기는 수학들의 다양한 발명이 있다. 4차원과 복소수(행렬) 등이 메타수학이라는 용어를 창안했을 것이다.]

  [6] 뽕슬레에게서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Poncelet 327 §195

  [7] 꼬쉬의 연속성 La continuité chez Cauchy 330 §196 §197 §198

  [8] 분석의 자치 L’autonomie de l’analyse 334 §199 §200. §201

제5권 산술학의 진화 L’évolution de l’arithmétique 341 §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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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부 근대 시대 Période moderne 251

제4권 비판철학과 실증주의 La philosophie critique et le posivitisme 253

14장 과학적 토대들의 변형 Transformation des bases scientifiques 302

§181. [칸트의 󰡔순비(1781)󰡕와 꽁트의 󰡔실증철학 강의󰡕(1830-1842) 사이에 철학자들의 고민은 도덕과 사회의 조직화의 설명도, 자연의 조직화를 설명할 수 있는가? 라마르크의 생물학에서 변형론이 사회학에서와 미시 물리학에서 변형론이 학문들의 모습을 새롭게 만들었다.]

     퓌파고라스학자들과 더불어, 데카르트학자들과 더불어, 라이프니츠와 함께, 수학철학은 수학주의(mathématisme)였으며, 다시 말하면 모델 위에서, 그리고 살아있고 풍부한 과학을 탁월하게 제공해왔던 틀들 속에서, 보편적 진리의 체계를 구성하기 위한 노력이었다. 󰡔순수이성 비판(1781)󰡕(재판, 1787)󰡔실증철학 강의󰡕(1830-1842)을 읽으면, 반대로 사람들은 수학의 역사적 역할이 끝났다고 말할 것이다. 수학은 자연적인 법칙들을 정립하기 위한 능력 있는 도구로 남는다. 그러나 도구의 사용은 도구 그 자체보다 철학자에게 더 중요하다. 그리고 아마도 용도보다 더, 즉 거기에 당연히 기여한 제한작업보다 훨씬 더 중요하다. 칸트와 꽁트가 철학적 사색들의 진보를 기대했던 것은 수학적 기술의 진보로부터가 아니다. 오히려 그들에게 관심은, 수학이 보조적 역할 속에 갇혀 있었다는 데에 있었고, 할당되어 있었던 경계들을, 뉴턴이 󰡔수학 원리󰡕의 제시에서 사용했던 계산의 종합적 절차들에 의해서든지, 라그랑쥬가 그 용법을 신뢰했었던 분석적 정식들에 의해서든지, 수학이 뛰어넘지 못했다는 것이다. 아마도 두 사상가의 초기 고민은 수학과학의 정확성을 형성하는 조건들을 규정하는 것이었다. 그러나 다음 세대들은 거기에 더 이상 되돌아갈 수 않으려는 것 같았다. 그들의 몰두하는 철학적 관심들의 중심은 다른 곳에, 즉 수학적 대상의 추상적 규정작업들과 대조를 이루는 분과학들 속에, 있었다. [그런데] 이런 수학적 대상의 추상적 규정작업들은 자연의 가장 깊고 가장 복잡한 자료들에 매여 있었고, 인류의 특징인 도덕적 또는 사회적 실재성에 매여 있었다. (302)

    이런 개념작업은 칸트 또는 꽁트의 계승자들이 취했던 태도를 설명한다. 그들은 변증법에 힘을 빌러갈 것이고, 또는 그들은 실증적 방법을 요구할 것이다. 그들은 과학들의 일반 체계를 거쳐 가도록 강요되었다. 과학들의 각각에 알맞은 원리들을 규정해야 하고, 또 과학들이 서로 서로들 사이에 지지하는 연관들을 규정해야 하는데, 과학들은 특별하게 수학 과학들에 관계하는 문제들을 만났다. 그들은 공간 또는 시간과 같은 양들과 같은 범주들을 다루었고, 그들은 다른 과학들에 전념하고 있는 경험적 탐구들에 대립에 의해 수학적 추론의 진행방식을 정의했다. 19세기에 일반적 철학의 역사는 주장되고 연속된 노력에 주의를 과도하게 부여할 수 없을 것이다. 이 노력은 우리 시대에서 마치 아믈랭(Hamelin, 1856-1907)의 󰡔표상의 중요 요소들에 관한 시론(1907)󰡕 또는 나토릅(Natorp, 1854-1924)의 󰡔정확한 과학의 논리적 기초(1910)󰡕와 같은 작품들에 이른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가 이런 작업에서 자리하였던 관점에서, 우리는 동일한 항목들 속에서 완전하게 수학철학의 현대 문제를 제시할 수 없다. 우리의 앞선 연구들은 어떤 점에서 철학적 체계들이 과학 그 자체의 진보에 연결되어 있는가를 우리에게 보게 했다. 이로써 이 연구들은, 일단 기술적 토대에서 분리되었던 그리고 자치적인 분과들을 세웠던 체계들은, 처음에는 이것들을 정당화하였고 이제는 넘어서게 되었을, 과학의 규정된 상태를 번역하는데 지체하지 않았다는 것을 우리에게 주의하게 했다. (303)

    칸트에게서 또 꽁트에게서 수학철학과 소위 말하는 수학 사이의 구별은 과학의 형상과 질료 사이의, 그리고 일반적 결과들과 특별한 탐구들 사이의 구별에 상응한다. 이러한 분리의 이유에서 원리들의 고려를 마치 철학적 반성의 대상처럼 유보하는 것이 합법적인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 원리들은 어느 정도로는 세부 사항의 진리들을 돌출하게 하고, 기술자들의 특별한 탐구들은 흔들어버릴 능력을 가지지 못할 것이다. 방법을 정의 하면서 과학의 영역의 한계를 제한하면서, 철학자는 과학의 숙명을 고정시켰다. 이어서 수학을 마치 다른 과학들을 - 물리학적 우주의 과학 또는 사회적 실재성의 과학을 - 특징화하기 위하여, 그리고 과학들이 실증적이고 구체적인 인식들을 수학의 형식적 추상작업들에게 첨가하는 것을 제시하기 위하여, 기준점처럼 사용하는 것이 철학자에게 여유로울 수 있다. (303)

    그러나 만일 우리가, 과학들을 그것들의 시대와 연관하여, 형상과 질료의 칸트적인 구별이라고 또는 일반성과 특수성의 꽁트적인 구별을 설명했다면, 우리는, 비판론과 실증주의의 용청들의 지지를 받는 철학적 모든 노력 앞에서, 선결되어야할 일종의 질문이 제기되기에 이른다. 형상인 한에서 형상의 용어는 일반성인 한에서 일반성의 용어는 또한 현실과학의 상태를 정확하게 표현하는가? (304)

    󰡔실증철학 강의󰡕의 제1권의 출현[1830]을 앞서는 여러 해 동안에, 꼬쉬(Cauchy, 1789-1857), 로바체브스키(Lobatchevski, 1792-1856), 까르노(Sadi Carnot, 1796-1832) 는 추상수학의, 고전적 기하학의, 일반 역학의 기술(technique, 기예) 속에 깊은 변형[론]의 배아를 심었다. 그리고 우리는 이런 변형[론]들이 칸트와 꽁트에게 체계의 통일성 속에서 다양한 분과학들을 들어가게 하는, 수학적 추론에서 경험의 내용으로 이행을 보장하게 하는 평형을 중단시켰다. 이로써 변형론은 문제를 다시 제기했는데, 내가 수학의 이런 저런 원리가 아니라 사람들이 원리들로 만들었던 관념자체를 말한다. 말하자면 과학이 순수하게 논리적 귀결들로서 지지받았던 소위 말하는 초기 자료들의 단순성과 보편성을 말한다. 우리는 변형론이 비판적 영감의 파괴로 또는 실증적 정신의 파괴로 이끌었다고 말하지 않을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어떻게 변형론이 시대의 마지막을 표시했는지를 제시해야 한다. 그 시대의 마지막에 수학 철학은 [칸트의] 감성론선험적 분석론의 학설을, 또는 󰡔실증철학 강의󰡕의 첫 권을, 토론의 객관적 토대로서 삼을 수 있었다. (304)

 

단원 A. 합리적 역학의 개념작용. La conception de la mécanique rationnelle. 304.

§182. [19세기 말에 수학 철학과 역학 철학 사이에 대응 또는 평행이라 내밀한 연관이 없다는 것이 밝혀진다. 역학의 분과학들(파동역학, 열역학, 전자기학)이 성립한다.]

    제1회 철학 국제 회의(파리, 1900)에서, 쁘왕까레(Poincaré, 1854-1912)는 역학의 원리들관한 논문의 앞부분에서, “영국인들은 역학을 마치 실험과학처럼 가르친다. 그런데 대륙에서 사람들은 그것을 다소 여전히 마치 연역적이고 선천적인 과학처럼 제시한다. 이유가 있는 것은 영국인들이다. 그러한 것은 자명하다. 그러나 어떻게 사람들이 다른 악습들 속에 그렇게 오랫동안 오래 지속될 수 이었던가? 확실히 칸트의 사유에서도, 꽁트의 사유에서도 역학은 경험과 연결 없이 있지 않았다. 그러나 사람들이 오늘날 경험적 과학을 이해하는 것은 아주 다른 의미에서이다. 사람들은. 칸트가 행했던 것처럼, 과학의 원리들이 경험의 조건들이라고 제시하면서 과학의 원리들을 경험의 물질과 일치를 정당화하는 것으로 충분하지 않다. 말해야 한다. 경험과학은 경험의 원리들을 받아들여야만 한다. 게다가 여기에서 꽁트의 의도에 맞게, 원리들은 경험 그 자체로서 보증과 재검토를 요구하는 것으로 남아있다는 것을 덧붙여야만 한다. 우리는 원리들을, 마치 권리들이 그 자체들에서 그것들의 정당화와 그것들의 합법성을 허용했던 것처럼, 정의하는(définitif) 자격으로 발언할 권리가 결코 없을 것이다. 이것들은 완전히 부정적[음수] 질서의 잔여물들, 즉 구체적 자료들에 근거한 퇴행의 한계들이고, 또 연역적 종합을 위하여 다룰 수 있는 요소들에게로 분석의 길에 의해 이 자료들을 되돌려 놓는 퇴행의 한계들이다. 그런데 이것들은 가설들이며, 과학자가 실험실에서 가설들의 귀결들을 증거하고 검증하게 될 것이다. 즉 그러한 조절을 고려하여 원리들의 영속적 의존은 실험과학의 표시일 뿐이다. 그러한 것이 뿌앙까레의 선언에 의하여 제기된 것으로 우리에게 나타나는 문제이다. 여기서 우리는 그 문제를 그것의 일반성 속에서 생각하지 않는다. 합리적 역학이 수학적 고유한 질서의 과학들과 물리학적인 고유한 질서의 과학들 사이에서 차지할 수 있는 지위를 고정하기 위하여, 우리가 스스로 할당했던 한계들[극한들]을 벗어나야 할 것이다. 우리가 관심 갖는 것은, 오로지 합리적 역학이, 수학 철학의 확립에서 칸트와 꽁트가 그 역학에게 부여했던 역할을 아직도 할 수 있는지를 아는 것이다. (305)

     아마도 수학의 적분적인 부분처럼 가르쳐 질 수 있는 역학적 분과학도 있다. 쥘 따느리가 쓰기를, “그것의 적용[응용] 바깥에서, 합리적 역학은 마치 수의 과학의 특별한 장(chapitre, )처럼, 마치 미분 방정식들의 어떤 체계의 연구처럼, 간주될 수 있다. 훨씬 더 특별하게 천문 역학은, 사람들이 고려하는 힘들이 뉴턴의 법칙에 복종하는, 경우들을 다룬다. 그 역학은 보다 특별한 미분 방정식의 체계에 용무가 있다[상대해야 한다].” 수학의 형식에 완전한 투명성을 이유로 하여, 합리적 역학천체 역학은 우주의 완성된 과학이 될 수 있는 것의 모델들이 된다. 그렇다고 이 역학들은 우주의 일반과학으로부터 독립적이라는 귀결이 전혀 나오지 않는다. [이 역학들의] 원리들은 수학적으로 진술될 수 있으며, 이 원리들은 철학적으로 생각될 수 없다. 추상작업은 실재적인 것의 적용으로 만들어진다. 간단히 역학은 물리학의 부분이다. 물리학은 역학적인 완전성의 점에 이른 첫째 분과학문이다. 사람들은 역학의 철학과 수학의 철학 사이에, 후자가 전자의 수단으로 밝히려는 희망을 줄 수 있을 것이라는, 내밀한 연결을 더 이상 고려 할 수 없다. (306)

§183. [합리적 역학들의 성립: 역학에서 운동량 보존 법칙서 에너지 보존법칙으로 이행하면서 실증주의는 유물론의 태도를 취한다. 에너지 보존과 저하의 원리 덕분으로 19세기 후반의 역학은 여러 변형론(전자기학의 확장)으로 확장된다.]

    이런 결론의 지지를 받아서, 지난 100년의 과정에서 역학물리학(mécanophysique)의 과학들의 진화의 중요한 선들을 간단하게 상기하는 것으로 충분할 것이다. 사람들은 또한 여기서 문제가 라그랑쥬(1736-1813)와 쁘왕소(1777-1859)에 의해서 제기되었다고 말할 수 있다. 연역법의 완전히 수학적 형식과 그리고 경험만이 암시했던 원리의 내용을 해체하면서, 라그랑쥬는 기하학적이고 역학주의에 알맞은 재현이 합리적 역학에 부여했던 통일성(l’unité)을 부셔버렸다. 라그랑쥬에 의해 불려온 원리들의 표면상 단순성은 오귀스트 꽁트(1798-1857)에게 착각(illusion)하게 할 수 있었다[속일 수 있었다]. 그러나 쁘왕소는 거기에 속지 않았었다. 안깽(1856-1905)이 말하기를 쁘왕소의 작품은 라그랑쥬의 저술의 반작용으로 나왔다. 그리고 그는 말하자면 분석역학의 추상 방정식 대신에, 방정식과 운동의 구체적이고 직관적인 조건들로 대체하는 경향이 있다.” (306)

    그런데 비슷한 경향성은, 형식이 우주에게 수학적 적용을 입힐 것이라는 어떤 의미에서, 먼저 판단하고 있다고 이해하는 것은 쉽다. 이런 이유로 동등성 관계는, 기하학자에게 그가 앞의 찰나에 눈 아래 가졌던 것을, 정확하게 재발견하도록 가장 잘 허락할 관계이다.

그에게 고유한 밝고 깔끔한 방식으로, 쁘왕소는 󰡔태양계 적도의 이론과 규정(1828)󰡕에 관한 논문의 앞부분에서 이렇게 썼다. “우리는 알지 못한다. 유일한 법칙만을 완전히 빛으로 인식한다. 이것은 항구성과 획일성의 법칙사람들이 그것의 변수들의 법칙이라 부르는 것을 발견하기 위하여, 우리가 변화하는 사물들을 연구할 때, 우리의 유일한 대상은, 변화하는 사물들의 가운데에, 획일적이고 항구적인 있을 수 있다는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만일 시간을 가지고 또 새로운 검토에 의해서, 우리는 우리에게 항상 나타났던 연관들이 그 자체로 변할 수 있다는 것을 좀 전에 인정했다면, 우리는 새로운 발걸음을 내디뎌야만 한다. 그러나 우리들의 진행은 동일한 진행이다. 왜냐하면 그 당시에, 우리의 정신이 말하자면 정신의 초기 결론들을 회피했었던 항구적/일상 법칙(cette loi de constance)을 탐구하러 가는 것은, 이 연관들 속에서가 더 이상 아니고 오히려 연관들의 조합이라는 어떤 다른 형식 속에서이다. 내가 믿기로는 그러한 것이 인간 정신의 자연적 운동이며, 사람들이 기하학과 분석학 속에서 마찬가지로 주목할 수 있었을 운동이다.” 이리하여 기하학적 메카니즘을 매개로 해서, 합리적 역학은 우주 전체의 과학이 되기 위하여 이어져나갈 것이며 펼쳐져나갈 것이다. 1842년과 1847년 사이에, 에너지 보존 법칙의 발견은 오귀스트 꽁뜨의 예상들과 금지들에 불구하고 물리학에게 결국에는 그것의 통일성을 부여했고, 그리고 관점들에게 특이하게 값비싼 확정을 기여했다. (307)

    그러나 순수 메카니즘의 승리는, 1860년과 1890년 사이 [분과학들이] 넓혀진 시대에, 유물론적 일원론의 재탄생에 원인이 되어야 했고, 그리고 그 승리는 단지 우발사고(un accident)일 뿐이었고, 우발사고일 수도 있었다. 왜냐하면 열역학의 근본적인 두 가지 원리, 에너지 보존의 원리와 까르노의 원린인 에너지 저하의 원리 중에서 하나만이 일반적 순환 속에서 일어났다는 것이 발견되었기 때문이다. 아마도 물질의 통일성과 영원성 위에 토대를 마련했던 것은, 아마도 그 원리가 어떤 민중철학의 열망에 더 잘 맞았기 때문일 것이다. (307)

    그런데 열역학의 기술적 발전의 전체(l’intégralité)에서 열역학을 다룬다면, 사람들은 경제적(économique)이고 실용적(pragmatique) 의미에서, 라그랑쥬가 이 양자를 이해했다고 우리가 말했던 의미에서, 기하학의 메카니즘과 분석적 방법의 용어 사이의 대립을 그려보여줄 수 있다. 예를 들어 깁스(Gibbs, 1839-1903) 같은 미국 물리학자는 본질적으로 대수학자이다. 뒤앙이 덧붙여서 말하기를, 사람들이 그를 기하학자로 발견하기를 기대할 수 있었던 것과 같은 대수학자이다. 두 편의 논문에서, 그는 유체들의 열역학적 성질들과 유체들의 변형론들을 재현하기에 알맞은 여러 디아그램들을 연구하는데, 그 기하학적 증명은 거의 어떠한 역할도 하지 못한다. 이런 디아그램들의 대부분 성질들이 학립했던 것은 대수적 분석의 고찰들에 의해서이다.” 이렇게 생각된 현대 과학은 물체들의 성질들을 도형에 그리고 운동에 환원하는 시도를 마치 이상적인 거짓처럼 포기한다. 이로써 아마도 현대 과학은 수학적 물리학의 구성작업을 부인하는 것을 전혀 이해하지 못하고 있다. 만일 현대 과학이 기하학적 재현에 의하여 제공된 용이함을 포기한다면, 대수적 상징[기호]들의 역할을 펼치기 위해서, 바로 거기에서 공간적 이미지들이 우리에게 더 이상 제공될 수 없을 것이리라. 오로지 그러한 개념작업에서 역학은 우주의 인식에 필연적인 입문이기를, 즉 정신의 선천적 형식들 위에 세워진 또는 자연의 일반적 사실들(les faits généraux)에 연결된 입문이기를 그만두었다는 것은 분명하다. 역학은 단지 분석 물리학의 추상적이고 개별적인 경우이고, 분석 물리학은 그것의 과학의 가치를 전체이기 위하여 그것의 일체 속에서 파악되어야만 한다. (308)

§184. [합리적 역학(동역학)은 데카르트에서 뉴턴까지 운동양 불변법칙에 문제삼는다. 새로운 물리학은 이제까지 인간이 설명할 수 없는 사물의 내부 운동을 파악하는 도구와 실험방식을 만들었다. 학문의 한계와 조건의 틀이 부서지고 더 넓은 더 먼 관계로 간다.]

     에너지 역학과 기하학적 메카니즘 사이에 대립을 일으킨 문제는 현재 시대에도 해결되지 않았다. 인간 진보의 리듬에 본질적이라고 하는 찬성과 반대의 전복들 중의 하나에 의해, 여기에서, 오스트발트(Ostwald, 1853-1932)가 현대 원자론의 일탈을 이라고 유명하게 했던 그날 다음날에, 전자기학의 영역에서 폭발적인 발견물들은, 분자들로부터 양전기든 음전기든 전기성의 띠고 있는 소립자들로 해체에서, 물리적, 화학적, 심지어 중력적 현상들의 근거(la raison)를 탐구하는 데로 이끌었다. 아마도 그 문제는 정의상으로 해결될 수 없었다. 그 문제의 조건들에 따라서 물리학자는 차례차례로 대수적 기호의 자원들과 기하학적 직관의 자원들을 이용하는데, 그에게 선택하도록 부여된 철학에 선입견을 가짐이 없이, 그리고 마치 법정앞에서처럼, 그는 에너지학과 메카니즘을 비교하고 있다. (308)

그러나 이제부터 마치 획득인처럼 고려될 수 있는 것이 있고, 이것은 과학이 뒤로 되돌아가지 않을 것이라는 것이다. 과학은 역학과 물리학의 연결을 생각하는 어떤 방식으로부터, 과학은 마치 실증주의의 소위 변할 수 없는 틀들을 깨뜨리는 것처럼 비판주의의 선천적 범주들을 넘쳐날 것이다. (308)

    확실히 까르노-클라우지우스의 원리가 에너지학[열역학]에게 칸트가 자연 과학을 위하여 증거했던 외모(la physionomie)를 부여하는 것을 주목하는 것이 유용하다. 이때에 그 원리는 시간의 원인성과 불가역성의 원리에 연결되어 있다. 거기에 원리의 합리주의 또는 반합리주의의 범위를 결정하기 위한 중요한 논증이 있다. 그러나 더 멀리 가는 것은, 즉 철학적 개념작업과 원리 사이에 상호 정당화의 연결을 확립한다고 주장하는 것은 위험하다. 여기서 개념작업은 이법[이성]의 필연적 요청을 표현하는 것일 것이고, 원리는 물리학자들이 우주의 일반적 문제로 확장과 메카니즘의 원리들의 관계를 오늘날까지도 토론 하는 경험으로부터 분명하게 나온 것이다. (309)

    마찬가지로 만일 전자들의 이론으로부터 나온 새로운 역학은 인력과 척력의 용어를 물리학적 제시의 초기 평면으로 데려간다면, 그리고 칸트가 󰡔자연 과학의 형이상학적 기초 원리들(1786)󰡕에서 묘사했던 계획(프로그램)에 이렇게 일치된다면, 이 사실의 범위를 제한하기 위하여, 다음 사항을 덧붙이는 것으로 충분할 것인가? 즉 역학이, 말하자면 가장 단순한 방식으로 지성적 진리의 관념에 만족하게 보이는 것 같은 원리를, 그리고 순수 오성의 범주들의 도움으로 가장 쉽게 증명되는 원리를, 질량(la masse)의 항구성[불변성]을 문제 삼기에 이른다는 것이다. (309)

    어쨌든 이 귀결로서, 수학들의 물체로 안정성의 중심을 가져가기 위하여 또 추론의 과학들과 실험의 과학들 사이에 연결을 보증하기 위하여, 우리가 물리학의 합리적 합법화를, 그리고 메카니즘의 추상적 체계화를 더 이상 신뢰하지 않아야 한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합리적 역학의 혼합자연(la nature mixte)은, 자연 그 자체에 의해서 과학적 철학의 난점들에게 해결책을 가져다주기는커녕, 예비적이지도 않고 단순하지도 않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왜냐하면 실재적인 것에 그것[문제]들의 적용의 바깥에서 조차, 혼합 자연은 필연적으로 용어들과 방법들의 가치를 문제 삼기 때문이다. 그리고 합리적 역학은, 확장해나가는 분석학 또는 기하학인 한에서, 소위 말하는 수학으로 용어들을 받아들인다. (309)

    만일 우리가 칸트주의에서와 실증주의에서 반대 주제들을 만났다면, 우리는 이 주제들을 마치 역사적 방법에 의해 해결된 것처럼 다시 말하자면 과학의 특별한 상태에 연관된 것처럼 고려할 수 있다. 그런데 그 상태가 과학의 출현을 합법화하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상태에게 주제들이 따라가야 할 숙명에 있지 않다는 것이다. 수학 철학의 한단계가 현존했는데, 거기에서 마치 아르키메데스와 갈릴레이이래로 보조물들처럼, 마치 발견을 위하 동인들처럼, 이용되었던 정역학적이고 동역학적인 고찰들은 구성된 과학의 해석 안에 도입되었다. 이런 단계는 경험의 개입 덕분에 오늘날 정의상으로 뛰어넘은 것 같다. 원초적 중요성이 확실히 경험의 개입에 대해 칸트도 꽁트도 회피하지 못했는데, 오히려 아마도 이들은 도구들의 진보와 더불어 증가하는 복잡성도 근본적 가소성(la plasticité)도 충분히 예견하지도 못했다. (310)

(8:26, 59QKE)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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580 퓌타고라스(Pythagore, Πυθαγόρας, 전580-495, 85 ans) 고대 그리스 철학자. 사모스섬 출생, 이탈리아 남부의 메타폰티온(Métaponte, Μεταπόντιον)에서 세상을 떴다. - 메템프쉬코시스(métempsychose, μετεμψύχωσις) 영혼의 이동, 이전, 윤회 사상을 가졌다.

O

1596 데까르트(René Descartes, 1596-1650),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1642 뉴턴(Isaac Newton, 16421727) 영국 수학자, 물리학자, 철학자, 구화학자, 천문학자, 신학자. 󰡔자연 철학의 수학적 원리들(Philosophiæ naturalis principia mathematica, 1687)󰡕(« Principes mathématiques de la philosophie naturelle »), 󰡔보편 산술학(Arithmetica universalis, 1707)󰡕(여러 수학적 개념들의 표기법들),

1646 라이프니츠(Gottfried Wilhelm Leibniz, 1646-1716), 독일 철학자, 수학자, 논리학자, 외교관, 역사가, 사서. 문헌학자. 󰡔Nouveaux Essais sur l'entendement humain, 1704󰡕(1765 출판)는 로크의 󰡔Essai sur l'entendement humain, 1689)󰡕에 대한 반박문이다.

1724 칸트(Immanuel Kant, 1724-1804), 독일 계몽기(Aufklärung) 철학자.

1736 라그랑쥬(Joseph Louis de Lagrange, en it. Giuseppe Luigi Lagrangia, 1736-1813), 이탈리아 수학자, 역학자, 천문학자. 사르데냐 왕국 출신 프랑스 귀화.

1777 쁘왕소(Louis Poinsot, 1777-1859) 프랑스 수학자. 합리적 역학(la mécanique rationnelle)의 기여자 이다.

1789 꼬쉬(Augustin Louis, baron Cauchy, 1789-1857) 프랑스 수학자, 과학아카데미 회원, 에콜폴리테크니크 교수.

1792 로바체브스키(Nikolaï Ivanovitch Lobatchevski, 1792-1856), 러시아 수학자. 비유클리드 기하학, Géométrie imaginaire, 쾨팅겐 아카데미 회원. 부인 (Varvara Alexeyevna Moiseyeva, 1812–1885)

1796 사디 까르노(Nicolas Léonard Sadi Carnot, 1796-1832) 프랑스 물리학자, 기술자.

1798 꽁트(Auguste Comte, Isidore Marie Auguste François Xavier Comte, 1798-1857), 프랑스 철학자, 사회학자, 실증주의 창시자. Cours de philosophie positive (1830-1842)

1820 랜킨(William John Macquorn Rankine, 1820-1872), 스코틀랜드 기술자, 물리학자.

1822 베르트랑(Joseph Louis François Bertrand, 1822-1900), 프랑스 수학자, 경제학자, 과학사가.

1822 클라우지우스(Rudolf Julius Emmanuel Clausius, 1822–1888), 독일 물리학자, 열역학제2법칙(deuxième loi de la thermodynamique (1850), 1865년 엔트로피(le concept d'entropie) 개념 창안.

1839 깁스(Josiah) Willard Gibbs, 1839-1903), 미국 물리 화학자. 열역학을 화학에 적용, 수학에서 벡터분석(l’analyse vectorielle) 창설자.

1844 볼츠만(Ludwig Eduard Boltzmann, 1844-1906), 오스트리아 물리학자, 철학자. 󰡔Vorlesungen über Gastheorie I. 1896, II. 1898󰡕(Leçons sur la théorie des gaz, 1902, 1905)

1848 딴느리(Jules Tannery, 1848-1910), 프랑스 수학자. 박사학위논문: <Propriétés des intégrales des équations différentielles linéaires à coefficients variables, 1874>. (Notions historiques à la suite des Notions de Mathématiques de Jules Tannery, 1903).

1848 라스비츠(Kurd Laßwitz, 1848-1910) (Carl Theodor Victor Kurd Laßwitz), 독일 (공상과학) 작가. 소설, 󰡔Auf zwei Planeten, 1897󰡕

1853 오스트발트(Wilhelm Friedrich Ostwald, 1853-1932) 독일-발트 화학자, 1909년 노벨화학상.

1854 나토릅(Paul Gerhard Natorp, 1854-1924), 신칸트 학파 철학자, 마르부르크 학파. 󰡔플라톤의 이데아론(Platos Ideenlehre, 1903)󰡕.

1854 쁘왕까레(Henri Poincaré, 1854-1912), 프랑스 수학자, 물리학자, 기술자, 철학자.

1856 아믈랭(Octave Hamelin, 1856-1907), 프랑스 철학자. 네오 헤겔리안의 대표자. Essai sur les éléments principaux de la représentation, 1907, 정확한 과학의 논리적 기초(Die logischen Grundlagen der exakten Wissenschaften. 1910), Le système de Descartes, Préface d'Émile Durkheim, Paris, 1911, F. Alcan, 392 p.

1856 안깽(Arthur Hannequin, 1856-1905) 프랑스 철학자. 1882년 교수자격1. 시작은 심리학을 했는데, 과학사로 방향을 잡은 것 같다. Introduction à l'étude de la psychologie, Paris, G. Masson, 1890, 138 p. Essai critique sur l'hypothèse des atomes dans la science contemporaine, 1908.

1861 뒤앙(Pierre Maurice Marie Duhem, 1861-1916) 프랑스 물리학자, 화학자, 역사가, 현상론자. Les Origines de la statique, 19056(2).

1867 브륀(Bernard Brunhes, 1867-1910), 지구 물리학자. 지구 자기장역 발견, La dégradation de l'énergie, 1909. La diversité de fortune des deux principes de la Thermodynamique, Scientia, 1910.

1874 베나르(Henri Claude Bénard, 1874-1939), 프랑스의 물리학자, 액체 대류 연구로 유명.

1892 갈로띠(Alexandre Gallotti, 1892–1924), 프랑스 물리학자, 번역가. [너무 어린 나이(열셋?)에 번역에 참여?] [서지상으로 A. Gallotti,인데 동명이인이 없는 것 같다.]

1849 젤리거(Hugo Johann Seeliger, 1849-1924), 독일 천문학자. Über die Anwendung der Naturgesetze auf das Universum. 1909.

*

  수학주의(Le mathématisme)는 수학들에 의해서 서술하고 정의하고 모델을 만드는 견해를 지칭한다. 우주와 실재성(물질적, 심정적, 정신적)이 근본적으로 완전히 수학적이라고여기는 관점이며, 모든 것은 수학이며, 논리, 이법, 사유, 정신에 필연적으로 호소하는 것을 의미한다.

   에너지 보존 법칙: 1831년에 프랑스 물리학자인 까르노(Sadi Carnot, 1796-1832)1842년에 영국의 물리학자인 줄(James Prescott Joule, 1818-1889)에 의해서 제시되었고, 1845년에 독일의 의사이며 물리학자인 폰 마이어(Robert von Mayer, 1814-1878)에 의하여 이 법칙이 정식화되었다. 그리고 1847년에 독일의 생리학자인 헬름홀쯔(Hermann von Helmholtz, 1821-1894)는 천문학과 물리학을 포함한 자연계 전체의 모든 힘(역학, 열, 전기, 자기 등)이 상호 전환에서 에너지 보존의 법칙의 성립을 알린다.

고전 물리학의 확장, 통계역학의 시대(1860-1890);

     - 스코틀랜드 수학자이자 물라학자인 맥스웰(James Clerk Maxwell, 1831-1879)[마흔여덟]은 통계역학을 통하여 분자의 속도와 분포를 밝힌 󰡔기체 동역학 이론에 대한 설명(Illustrations of the Dynamical Theory of Gases. 1860)󰡕, 전자기학의 기초를 세운 󰡔물리적 힘의 선에 대하여(On Physical Lines of Force. 1861)󰡕, 1890년까지는 전기와 자기의 통합으로 전자기학의 정립과 더불어 빛도 전자기파의 일종으로 다룬 맥스웰주의자들의 승리의 시기였다. 미국 물리학자인 앨버트 마이켈슨(Albert Michelson, 1852-1931)과 미국 과학자인 에드워드 몰리(Edward Morley, 1838-1923)는 빛의 간섭현상을 이용 빛의 속도를 잰다(1887).

    - 1895년 X선(1895년)의 발견을 독일의 물리학자인 뢴트겐(Wilhelm Conrad Röntgen, 1845-1923)이, 1896년 방사선(1896년)의 발견을 프랑스의 물리학자 앙리 베크렐(Henri Becquerel, 1852-1908)이 한 시대였다.

(11:02, 59QKE) (9:40, 59QL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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