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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나는 이런 생각-]31일 광화문게릴라 공연을 제의하며..

작성자밤락의 김밥~(*)))))))|작성시간03.02.12|조회수106 목록 댓글 0

[기고] 범대위, 네티즌을 믿어라!
- 광화문 신년-반미 촛불축제를 제안하며 -

2002.12.23.월요일
딴지 문화부

아래 글은 '앙마' 측근으로 알려진 모 인사의 기고문이다. 본지에 앙마 관련 기사가 실린다는 소식을 듣고 꼭 기사화해 줄 것을 당부했다. 본지는 그의 글을 가감없이 그대로 싣는다.

12월 31일의 집회가 네티즌들의 축제의 장이 되어야 하며, 만일 그것이 성사된다면 작은 이벤트를 하나 열겠다는 제안 되겠다. 일독을 권한다.

진짜 시청에 10만이 모였다. 좃선일보는 5만이라고 했지만 15만이라고 보도한 외신도 있었다. 전국 30만이 모였다고 한다. 87년 이후, 15년만에 처음 있는 일이다. 87년의 민주화투쟁이 한국사의 흐름을 바꾸었듯, 2002년 광화문의 군중이 앞으로 한국사의 흐름을  바꿀 것이라는 이야기도 있다. 12월 14일, 그 날은 참으로 감격스러운 날이다.

그런데, 싸움은 아직 끝나지 않았다. 범대위는 애초 31일 100만 시위만을 제시했지만 게시판에서는 19일도 24일도 28일도 하자는 의견들이 올라왔었다. 범대위는 의견을 받아들인 듯 하다. 이제 젊은 세대들에게 광화문으로 가는 것은 하나의 습관인가? 그렇다! 그것은 습관이 되어야 한다. 해방 이후 50년 넘게 한번도 광장을 가져보지 못한 우리들은, 이제 때로는 놀기 위해 때로는 우리의 주장을 알리기 위해 넓은 광장 하나쯤 가질 자격이 있다. 어쨌든 우리는 소파를 개정하고 부시의 정식 사과를 받기 위해서라도 광화문에 계속 모여야 한다. 더 많은 사람들이 모여야 한다.

 

범대위, 네티즌과 호흡하라!

그러나 문제가 있다. 아직까지 범대위와 네티즌의 결합이 성공적이지 않다.

물론 다행스럽게도 14일의 촛불시위는 7일과 같이 네티즌/시민들과 운동집단과의 구별 혹은 분리가 확연하지 않았다. 또한 범대위 쪽에서도 발언의 수위나 용어들을 조절하며 시민들의 정서를 고려하는 조심성을 보여주었다. 그러나 14일에도 광화문에 도착한 행렬들 중에서 꽤 많은 사람들이 광화문 집회 중간에 자리를 떠났다. 어느 쪽을 탓하고자 하는 것이 아니다. 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거리에 나와서 감동을 느끼고 앞으로도 지치지 않고 지속적으로 싸움을 벌이기 위해서 필요한 것이 무엇인가에 대해 이야기하자는 것이다.

원인을 이야기하자면 무엇보다 먼저 범대위와 평범한 네티즌/시민들 사이에 여전히 존재하는 정서적인 거리감이다. (이에 대해서는 '광화문의 두 흐름, 그 첫 만남에 대하여' 참조)

14일 광화문까지 온 범대위는 미대사관 쪽의 전경차들을 뚫고 미대사관까지 갈 것인지 말 것인지 분명하게 표명하지 않았는데 거기서 오는 청중들의 혼란도 있었을 것이다. 10년만에 처음 있는 대규모집회이니 범대위의 준비도 수월치 않았을 것이다. 그러나 무엇보다 큰 원인은 집회를 단일한 목소리로 이끌어가는 중앙집중식의 집회방식 아닐까?

많은 사람들은 연사의 말을 듣고 사회자의 말에 따라 구호를 외치는, 청중을 수동적인 관객으로 만드는 중앙집중적인 집회형식에 익숙하지 않다. 그것은 냉정하게 이야기하면 '재미없는' 집회형식이다.

물론 몇몇의 자유발언은 듣는 이의 심금을 울렸지만, 미대사관까지 갈 수 없다는 것이 점점 분명해지는 상황에서 계속되는 중앙집중식 발언대는 솔직히 말하면 지루하였다. 발언이 끝날 때마다 사회자가 유도했던 '다 같이 외쳐봅시다. 소파를 개정하라! 부시는 사과하라!'는 구호도 열번 넘게 반복되면 지겹게 마련이다. 운동권에서 굳어진 관성적인 집회방식은 네티즌들의 감수성과 너무나 거리가 멀다.

물론 10만이 만들어낸 엄청난 열기는 집회 내내 존재했지만, 집회 자체가 그 열기를 끌어올리는 역할을 하지는 못했다. 필자가 끝까지 집회장에 남아있었던 이유는 그 자리를 지켜야한다는 일종의 '의무감'이었다. 물론 그런 의무감은 필요하고 소중한 것이지만, 어떤 자발적인 행위가 의무감으로 변화되었을 때, 그 열기는 오래 가지 못할 것이다. 그리고 앞으로 매번의 집회마다 그런 의무감이 쌓이게 된다면, 광화문에 나오는 사람들의 숫자는 어느 새 줄어들게 될지도 모른다.

잘 알고 있다시피 이 거대한 싸움은 범대위를 위시하여 6개월 동안 치열하게 싸워온 운동집단과 인터넷을 중심으로 정보를 소통하고 분노를 삭이고 있던 네티즌들의 만남으로 시작되었다. 싸움의 성격은 그 이전 6개월과는 판이하게 달라졌다. 그러나 아직까지도 범대위는 네티즌과의 소통에 익숙하지 않은 듯하다.

예를 들면 7일 날 불거졌던 깃발논쟁에 대해서 범대위는 아무런 입장도 밝히지 않았다. 운동집단의 상징인 깃발을 내릴 수 없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고 차라리 모든 네티즌들도 각자 자신을 표현하는 깃발을 하나씩 만들어오면 어떻겠냐고 제안할 수도 있지 않았을까? 혹은 14일 광화문에서 전경차에 막힌 채 우왕좌왕하지 말고, 거기 있는 사람들에게 어떻게 할 것인가를 묻고 다수의 의견을 따를 수도 있었을 것이다. 아마도 그랬다면 거기 참석자들은 그 집회에 참석한 자신들의 존재의 무게감을, 그 자리를 지키는 자신의 소중함을 느꼈을 것이다. 네티즌들은 범대위가 훨씬 더 가깝게 느껴졌을 것이다.

그러나 아쉽게도 집회에서 범대위는 '어물쩍' 광화문에 머물러버렸다. 그리고 유일하게 네티즌들이 범대위의 움직임을 알 수 있는 범대위 홈페이지에서는 다소 일방적인 집회 공고만을 볼 수 있을 뿐이다.

이 싸움의 추이와 관건이 범대위와 네티즌들이 얼마나 잘 결합하느냐에 달려있다면, 그리고 이제 광화문의 촛불시위를 범대위 측에서 주도해나가는 만큼 그 상당한 권한과 책임이 범대위 측에 있다는 사실을 인식한다면, 범대위의 획기적인 인식의 전환이 시급한 상황이다.

다행히도 우리는 참고할만한 하나의 사례를 가지고 있다. 바로 월드컵의 거리축제 말이다.

 

월드컵의 거리축제에서 배운다!

이번 촛불시위는 여러 가지 측면에서 월드컵의 거리축제를 연상시킨다. 광화문이라는 상징적인 공간, 개개인들이 자발적인 의사로 준비해 온 촛불들, 한 살배기 갓난아이부터 나이 드신 어르신들까지 수십만에 이르는 거대한 인파, 경찰과의 충돌을 제외하면 스스로 질서와 안전을 지키는 평화로운 분위기 등등... 물론 '축제'와 '추모'라는 내용이 전혀 다르긴 하지만, 거대한 촛불의 물결을 보는 것만으로도 우리는 흥분할 수밖에 없기에 '추모'가 '축제'와 아주 거리가 먼 것은 아니다.

촛불시위에 모인 사람들의 열기는 월드컵 때도 완전히 개방되지 않았던 광화문 사거리를 두 번이나 개방시켜 버렸다. 그리고 21일, 24일, 28일도 비슷한 규모의 집회가 잡혀있고, 범대위는 31일 백만명이 모이는 집회를 하겠다고 공언한 상태이다. 사실 100만이 아니어도 14일 집회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온다면 그것은 성공한 것이다. 그러나 지적했듯이 거리에 나온 사람들이 수동적인 청중의 역할 밖에 할 것이 없다면 열기는 금방 사그러들지도 모른다.

그런 의미에서 월드컵의 거리축제는 참고할만 하다. 거리축제는 사실 주최측이 없었다. 태극기패션도 페이스페인팅도 북, 장구와 같은 타악기들도 그 수많은 축제의 소품들도 모두 개인들이 준비한 것이었다. 경기가 끝난 후 승리의 거리축제에는 주최측도 메인행사도 없었다. 수백명씩 모여서 각기 자신들의 놀이를 즐겼던 것이다. 그래서 그 축제는 굳이 태극기패션을 하고 '대~한민국'을 따라하지 않아도, 굳이 붉은악마 티를 입지 않아도 단지 옆에서 보는 것만으로도 재미있었다. 적어도 거기서 자신이 수동적인 존재가 되었다는 느낌은 별로 없었다. 모두가 주최측이었고 모두가 관객이었다. 만약 거리축제가 누구의 주도로 진행되었다면 700만이 거리에서 즐기는 사상 초유의 일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다. (거리 축제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낸 그 열기와, 월드컵이 끝나고 정부에서 만들었던 7월 1일 광화문의 '월드컵 성공개최 자축공연'에 쏟아진 비판을 비교해보라.)

 

광화문 광장을 열어젖혀라!

모두 각자 자신의 놀이를 즐기는 축제처럼, 우리는 전혀 다른 형식의 추모제/시위를 생각해볼 수 있을까? 어떤 사람들은 자신들의 주장을 담은 거대한 깃발이나 플랭카드를 휘날릴 수도 있을 것이고 또 조각이나 성형예술을 하는 어떤 사람들은 거대한 장갑차를 만들어 부셔버리는 퍼포먼스를 할 수도 있을 것이다. 사진작가들은 지금까지 찍어온 사진들을 모아 거리 사진전을 해도 좋고, 가수들은 기타와 작은 앰프로 한쪽에서 추모의 노래를 부를 수도 있을 것이다. 춤을 추는 사람들은 춤으로 자신의 의견을 표현해도 좋을 것이고, 수백명씩 모여서 풍물패의 유도에 따라 '대~한민국' 박자에 맞춰 '소~파개정' '부~시 사과'를 외쳐도 좋을 것이다. 월드컵 때와 같이 '미군철수' 혹은 '전쟁 반대'와 같은 페이스페인팅을 해도 좋을 것이고, 열정이 넘쳐서 '미군철수'로 바디페인팅을 한다고 해도 누가 뭐라고 하겠는가? 파업중인 노조는 선전유인물을 뿌려도 좋을 것이고, 왜 우리나라의 외국인 탄압은 눈감고 있냐고 외치던 사람들은 소외받는 제 3세계 외국인들의 실상을 알려도 좋을 것이다. 지금까지 벌어진 미군들의 잔악한 범죄들을 낱낱이 고발하는 알리는 코너를 만들어도 될 것이다. 한쪽에서 자유발언대를 한들 무슨 상관인가?

물론 소파개정 이외의 정치적인 구호들에 거부감을 갖는 일부의 사람들도 있겠지만, 그것이 광장 전체를 지배하는 일방적인 목소리가 아니라 그 광장을 수놓는 여러 개 중 하나의 색깔이라면 '똘레랑스'의 정신을 발휘하는 사람들이 훨씬 더 많을 것이다. 광화문 광장은 넓고, 인파는 많다. 촛불 하나 들고 거리를 활보한들 무슨 상관인가? 코스프레 한 사람들이 기괴한 복장으로 거리를 돌아다닌다고 누가 무서워 할 것인가? 각자 다른 모습으로 각자 다른 행위를 하더라도 미선이/효순이를 추모하고 전쟁미치광이 부시를 성토하는 마음은 다 똑같은데 말이다. 월드컵 때 보았던 철가방들의 오토바이 퍼레이드를 다시 보고도 싶고, 풍물패들의 신나는 가락에 'down down USA'를 외쳐보고도 싶다. 퍼포먼스를 하면 거기가 무대이고, 공연을 하면 거기가 공연장이 된다. 말 그대로 광화문 사거리는 광장이 되고, 거대한 축제의 장이 된다.

물론 일부 운동집단에서는 단결된 모습으로 결연한 모습을 보여주어야 하지 않겠냐는 반문도 있겠지만, 또는 추모의 자리에 무슨 축제 분위기냐라고 반문하는 시민분들도 있겠지만, 그 분들은 또 그 분들대로 광장의 한 영역을 차지하고 자신들만의 색깔을 만들면 되지 않을까? 단지 차들만이 다닐 수 있었던 광화문 사거리에 촛불을 든 수십 만명이 모여있는 것만으로도 미국이나 외신에 보여줄 수 있는 것은 다 보여주는 셈이다. 우리는 풍물패와 함께 '소~파개정'을 밤새도록 외칠 수도 있고 사진작가들의 현장사진을 보며 그 날의 울분을 되새길 수도 있을 것이다. 굳이 범대위에서 하나의 흐름으로 조직하지 않아도, 모두가 하나의 목소리로 '소파개정'을 소리치지 않아도, 사람들은 거리 곳곳에서 자발적으로 만들어지는 작은 행사 하나하나에서 충분히 의미를 새기고 새로운 결의를 다질 수 있을 것이다. 우리가 축구를 가지고 놀 수 있다면 '반미'를 가지고 노는 것은 불가능한 것인가? '재미있는 반미'는 추모의 자리에 어울리지 않는 것인가?

 

 

신년-반미촛불축제를 제안하며...

결론은 간단하다. 2002년 마지막 날부터 2003년 1월 1일까지 신년-반미촛불축제를 광화문 광장에서 하자는 것이다. 미대사관 앞이면 더욱 좋겠지만, 14일과 같이 무력충돌 없이는 갈 수 없는 상황이라면, 굳이 '가자! 미대사관으로...'라는 공허한 구호를 외칠 필요는 없을 것이다. 광화문은 미대사관 바로 앞이다. 광화문에서 수십 만명이 '반미'를 주제로 2003년을 맞는 다는 것은, 우리는 이 사실을 결코 잊지 않겠다는 의지를 전 세계에 보여주는 것이고, 이 사건이 해결될 때까지 싸움을 멈추지 않을 것이라는 결의를 미국에게 분명하게 경고하는 것이고, 미국이 여전히 고압적이고 독선적인 점령군의 자세를 보일 때 우리는 그에 항의하기 위해 또 다시 광화문에 모일 것이라는 사실을 분명하게 선언하는 것이다. 그래서 광화문에서 신년-반미촛불축제를 제안한다.

이것은 31일, 14일보다 더 많은 사람들을 모일 수 있게 하는 방법이다. 또한 모인 사람들이 소외되지 않고 모두가 집회의 주최자가 되는 방법이다. 31일 100만 인파가 모인다면, 아니 20만의 인파만 모여도 광화문 사거리부터 시청 근처까지 사람들의 행렬로 가득차게 된다. (14일 10만의 인파는 광화문 사거리를 모두  채우고 종로 1가쪽까지 가득 찼었다) 그 거대한 거리를 하나의 목소리로 끌고 간다는 것은 재미없을 뿐만 아니라, 현실적으로도 불가능하다. (집회를 하나의 흐름으로 끌어가기 위해 광화문에서부터 시청까지 앰프와 스피커를 설치한다고 생각해보라. 그것은 사실상 불가능하다.) 그렇다면 차라리 광화문 광장을 네티즌들에게 전면 개방하라. 거기서 모두가 주최측이 되고 모두가 관객이 되는 6월의 거리축제를 전혀 다른 방식으로 다시 재연하자. 거기서 우리는 2002년을 마감하고 2003년에도 결코 물러서지 않을 것이라는 사실을 보여줘라. 그것만이 실질적으로 100만 명이 모이게 만들 수 있는 유일한 방법이다. 그리고 사람들이 그 집회에서 한아름의 감동을 가지고 돌아간다면, 우리는 2003년에도 이 싸움이 결론이 날 때까지 계속 해나갈 수 있을 것이다.

 

범대위, 네티즌을 믿어라!

그런 의미에서 범대위의 역할은 아주 중요하다. 범대위가 시청에서 광화문까지 모일 모든 인파를 하나로 만들 수도 없고, 2002년에서 2003년을 넘어가는 긴 시간의 프로그램을 채우는 것도 결코 쉬운 일이 아니다. 물론 전체가 하나되는 상징적인 의식은 필요할 것이다. 2003년 자정, 새해에도 계속 될 2003년 소파개정 선포식 정도로 전체의 의지를 모아내고, 그 이후의 '신년촛불축제'는 광장에 모인 군중들에게 맡겨두는 것은 어떤가? 그러기 위해서는 범대위가 광장을 네티즌들에게 열어주어야 한다. 범대위가 중앙의 마이크를 놓아야 한다.

범대위, 네티즌들을 믿어라. 그들은 700만의 거리축제를 만들어내고 30만의 촛불시위를 사고 없이 만들어낸 사람들이다. 광화문에서 새로운 반미투쟁이 시작되는 것은 전적으로 범대위가 얼마만큼 기존의 운동권적 관성을 벗어나느냐에 달려 있다. 네티즌들, 혹시나 집회가 하나의 목소리로 진행되는 것이 재미없다면, 차라리 광화문 광장을 자신들의 색깔로 장식하자! 우리가 아니면 광화문 광장을 채울 사람은 아무도 없다.

2002년, 우리는 세가지 큰 일을 해냈다. 우리 스스로도 놀라운 700만의 거리축제를 만들어냈고, 광화문 광장을 10만이 넘는 촛불로 채웠고, 19일엔 50년 동안 한반도를 지배해왔던 수구냉전 세력들의 재집권을 저지했다. 이제 반미-신년촛불추모식으로 2002년의 대미를 장식하자. 그리고 반미-신년촛불축제로 2003년을 맞이하자. 만약 범대위에서 광화문을 열어준다면 필자도 뜻을 같이 하는 이들과 함께, 그곳에 모인 분들과 어울릴 수 있는 작은 이벤트를 만드는데 일조할 것이다.

PS
제발 우리들의 이 신성한 싸움을 '민족주의'라는 좁은 틀에 가두지 마라. 우리의 싸움은 작게는 소파를 개정하고 부시의 공식사과를 받는 것이지만, 세계사적으로는 명분도 없는 이라크 전쟁을 획책하며 한반도를 위시한 전세계를 전쟁의 도가니로 몰고가려는 지구상의 악의 축, 사우론 부시에 대항하는 지구적인 양심들의 싸움이다. 조망간에 지구의 양심들은 광화문을 주목하며 우리에게 연대의 손길을 내밀 것이다.  

(2002년 12월 21일 울카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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