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절(拜), 지극정성(至極精誠), 지성감천(至誠感天)
내가 1차 100일 절 수련을 결심하고 시작한 것은 2007년 4월 8일부터이다.
저녁 10시 이후에 108배로 시작했었다.
시작한지 41일 째인 5월 19일부터 153배로 절 회 수를 늘렸고,
45일째인 5월 23일부터 다시 155배로 늘렸다.
150배 절을 한 후에 처음에는 天, 地, 人으로 마무리 호칭 수련을 하다가 天, 地, 人, 家, 貫으로 정했다.
그러다가 68일 째인 6월 17일부터 저녁 수련에서 인시수련(寅時修鍊)으로 시간을 바꾸었다.
그리고 7월 20일로 1차 100일 수련을 마무리 하고 다시 2차 100일 수련으로 들어갔다.
2차 100일 수련은 역시 인시수련이 될 것이고
절의 횟수를 더 늘려 갈 지는 아직 좀 더 두고 볼 일이다.
사람들은 절 수련이라고도 하지만 절 수련을 정성수련(精誠修鍊)이라고도 한다.
나는 100일 절 수련을 하는 동안 왜 절 수련을 정성수련이라고 해야 하는 지를
몸과 마음으로 깊이 그 뜻을 체득할 수 있었다.
절을 가끔 최고의 운동요법이라고 나 스스로도 말 하지만,
절은 결코 운동의 개념으로 바라보아서는 안 되는 매우 귀중한 수련법이다.
절 수련의 횟수를 늘리고 시간을 바꾸어가면서 깊이 몰입할수록
그 깊은 뜻이 나의 몸과 마음속으로 다가왔다.
절은 정성(精誠) 그 자체이다.
정성이 깃들지 않은 절은 수련이 될 수 없다.
1차 100일 수련에서 하루가 다르게 몰입하면서 바라 본 절은
그 끝 무렵에 지극정성(至極精誠), 지성감천(至誠感天)이라는 느낌을 내게 화두로 던져 주었다.
정(精)은 몸 즉 육신을 이름이요,
성(誠)은 말씀 언(言) 변에 이룰 성(成)자가 붙어 있어 <말이 이루어짐>을 뜻한다.
정성은 살아 있는 몸을 통해 말을 이루어내는 것을 일컫는다고 해석하고 싶다.
마음 속 생각으로 그치는 것이 아니라 몸으로 직접 실천하는 것이 정성이다.
성경에도 “말씀이 이루어졌다”는 구절이 있다.
성(誠)은 곧 하늘이 감응하는 것을 말한다.
하늘이 감동을 해서 이루어지는 것이 성(誠)이다.
지성(至誠)이면 감천(感天)인 것이다.
지극정성이라야 한다. 정성이 더 없는 다함에 이를 때 지극정성이라 한다.
이런 마음으로 몸을 움직여 절을 해야 한다.
정중동(靜中動)이요 동중정(動中靜)이다.
새벽의 적막을 깨뜨려서는 아니 된다.
숨소리 하나 흐트러짐이 없도록 정갈하고 동작 하나하나가 새벽의 고요를 깨어나게 해서는 안 된다.
오직 온 마음을 하나로 기우려 고요함이 지극함에 이른 가운데
절제된 동작 부드러운 동작으로 절을 해 나가야 한다.
그러자면 내가 깨어 있어야 한다.
동작 하나 하나를 바로 바라보면서 집중해 있어야 한다.
새벽은 새벽에 눈뜬 자만이 볼 수 있다고 했다.
첫 새벽에 나의 첫 깨달음이 이루어지는 것을 보는 것이야 말로 진정한 새벽을 보고 맞는 것이다.
첫 절을 바라보던 마음 그대로 마지막 절이 보여야 한다.
155배 절을 했지만 절을 마치는 순간 꼭 한 번 절을 한 것과 같은 느낌이어야 한다.
하늘이 보살펴 주지 않고는 도저히 느낄 수 없는 깨달음인 것이다.
이러한 느낌이야 말로 바로 하늘과 통하는 것이다.
하늘이 나이고 내가 하늘이 될 때 지성이 감천이 된다.
그것은 지극정성을 모아야 가능해 지는 일이다.
처음 절 수련을 시작했을 때 첫 시련은 다리아픔이었다.
스무 번 절 한 후에 다리가 아파 쉬어야 했었다.
다리 아픈 것이 조금 나아지자 기침이 나기 시작했다.
동작과 호흡이 함께 어우러지지 않았다.
더군다나 과거에 앓았던 폐 속에 남아 있는 상처에 깊은 호흡으로 새 공기가 닿으면서
자극을 받아 기침이 쉴 새 없이 터져 나왔다.
이렇게 시작한 기침은 잠자리에 누우면 더 심하게 나를 괴롭혔다.
기침은 두 달이 넘게 내가 잠이 들 수 없도록 나를 괴롭혔다.
기침을 잠재우기 위해 대학병원 호흡기 내과에 가서 약을 처방받았지만 듣지 않았다.
그 기침은 감기나 다른 병원균에 의해 발생되는 것이 아니었기 때문인 듯 했다.
호흡이 조금씩 동작과 어우러지면서 익숙해지고 기침이 서서히 멎기 시작하면서
이번에는 허리가 끊어지는 듯 아팠다.
허리 아픈 증세는 상당히 오랜 동안 계속되었다.
허리가 끊어질 듯 아플 때 남아있는 절을 바라보면 그저 아득하기만 했다.
내가 왜 이러고 있는가? 당장 그만 두어도 날 나무랄 사람 하나 없는데...
고통은 조금씩 기쁨으로 모습을 바꾸어 내게 다가오기 시작했다.
정성이 무엇인지를 깨닫기 시작한 것은 절 수련을 시작한지 94일이 넘어 서면서 부터다.
그 때부터 허리의 통증도 조금씩 줄어들기 시작했다.
이렇게 절 수련은 내게 많은 고통을 주면서 그러나 점차 변화를 일으키면서 이어져 갔다.
그러면서 절속으로 몰입하기 시작했고 절 수련의 참 뜻을 느끼기 시작했다.
마음으로 뜻을 느끼고 몸으로 절의 참 맛을 알기 시작한 것이다.
몸으로 표현하는 가장 간절한 언어가 바로 절이다.
처음 절을 하면서 그냥 아무 곳이나 향해 절하기가 뜻이 없다는 느낌이 들었다.
역사 앞에 부끄럽지 않아야 하고 천지만물과 화해함으로서 나를 깨끗하게 하고 싶었다.
우리 민족의 오랜 가르침을 떠 올리면서 천부경을 앞에 두었다.
그리고 오랜 동안 내가 보관해 오던 단군상(檀君像)을 함께 모셨다.
한국조폐공사에서 조각하여 제작한 청동주물의 부조 단군상이다.
민족의 최초의 지도자어른을 모시고 가르침을 받을 마음에서다.
그리고 조상을 함께 모시기 위해 대표로 돌아가신 아버님 어머님 영정도 함께 모셨다.
그 영정은 어머님이 돌아가시고 100일 기도를 올리면서 만든 내가 찍은 사진이다.
아내와 함께 구라파 성지순례를 다녀 올 때 모시고 갔었고,
큰 아이가 미국 유학동안 모시고 있다가 가져 온 것을
책상 위에 두고 아침저녁으로 인사드리던 것이다.
그 앞에 커다란 촛불을 켜고 그렇게 마주하고 앉았으니 마음이 한결 정결해 지는 것 같았다.
우리 조상님들께서는 환인(天神) 환웅(地神) 단군(人神)의 삼신(三神)과 자기의 조상님들
그리고 그 어른들의 가르침 모두를 합쳐서 천지신명(天地神明)님이라고 불렀다.
천지신명은 우리민족의 하나님인 것이다.
나는 안다.
내가 원하던 원하지 않았던 간에 나의 세포 속에는 그 분들 천지신명님의 정보가 각인되어 있음을.
그럼으로 천지신명은 곧 나이고 나는 천지신명인 것이다.
이것이 바로 우리민족이 오랫동안 지켜 온 천손사상(天孫思想)이다.
동학(東學)에서도 인내천(人乃天) 곧 사람이 하늘이라 가르치지 않았던가?
우리 선조들께서는 다른 표현으로 우아일체(宇我一體)라 했고 아즉우주(我卽宇宙)라고도 했다.
얼마나 호기롭고 당당했던 모습인가!
이른 첫 새벽에 그렇게 나는 나와 나의 천지신명님과 절을 통해 만나고 있는 것이다.
그 높은 가르침을 돌아보고 어떻게 따를 것인가를 깊이 묵상한다.
절을 계속하고 인시수련으로 바꾸면서 단군상에 점안(點眼)을 했다.
그리고 매일 인시수련을 시작하기 전에 정안수 한 그릇을 떠 상 위에 올린다.
간절히 기도하는 마음이 바로 잡히는 것 같았다.
처음 절을 시작하면서 몇 가지 이상한 일이 발생했다.
내게 마음을 닫았던 친구로부터 전화가 오고 화해를 요청해 왔다.
처음 절을 시작하면서 천지만물과 화해하고 싶은 간절한 뜻을 천지신명님께 올렸었다.
그런데 그 뜻이 여러 가지 면에서 이루어지는 현상이 발생했었다.
그러나 개의치 않으려 일부러 의식에서 지우려 했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여러 가지 면에서 내가 간절히 바라던 징조들이
이루어지는 현상들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그러나 아직 아무에게도 그런 사실을 말하지 않고 있다.
아직 나의 절이 온전하게 잘 이루어지지 않고 있는 부족한 나를 보고 있기 때문이다.
내가 바라는 화해의 하나는 오랫동안 나를 괴롭혀 오던 협착증으로부터
나를 건져 주기를 바라는 마음도 들어 있다.
매일 산을 오르내리면서 너무나 고통이 컸었기에 절을 시작하면서 산행을 그만 두었다.
그런데 요즈음 다시 산에 오르고 싶은 충동이 일어난다.
그러나 참고 있다.
첫 아이가 금년 여름휴가는 산으로 가자고 했다.
나는 백두대간의 한 가운데 축인 오대산으로 들어가고 싶다.
큰 아이가 미국으로 유학의 길을 떠나기 전 여름에도 함께 갔었던 곳이다.
아름 들이 전나무 숲길을 거닐고 싶고 오대산 정상에도 오르고 싶다.
가슴 속 응어리들을 다 털어 놓고 참 가르침을 가득 담아 오고 싶다.
첫 새벽을 여는 나의 절이
나를 다시 하는 절이기를 간절히 바란다.
나의 절은 지극정성으로 지성감천의 참 뜻을 찾아가는 길임을 알기에.(20070722 和圓)