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교를 다닌 사람이라면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모르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학교에서는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하라」 이런 뜻으로 배웠다. 그러나 다르게 해석해보려고 한다. 넓을 홍(弘)은 활궁(弓)과 아무모(厶)의 조합으로 되어 있다. 활궁은 활의 모양을 따왔다고는 하나 관심에 집중하는 모습이라고 하고 아무모는 팔로 끌어안는 모습이라고 볼 때 깊은 관심으로 껴안는 것을 표현한 글자로서 넓고 큰 사랑을 의미한다고 볼 수 있다.
그러므로 익(益) 넘치다는 충만하다라는 뜻으로 해석하고 사람인(人)자는 사람도 홀로 있을 수 없고 다른 생명체와 의지하는 관계라는 뜻으로 봤을 때 홍익인간이란 사랑으로 충만한 생명관계 라는 의미가 되고 사랑으로 대하라 즉「사랑으로 충만하라」로 해석되는 것이다. 재세이화(在世理化)란 재(在)를 살피다 화(化)를 가르칠 화로 해석하여 세상의 이치를 살피고 가르쳐라 라고 해석한다.
우주의 속성은 생명을 살리는 것이다. 즉 재세이화란 우주의 생명을 살리는 이치대로 생명을 살리라는 의미인 것이다. 홍익인간 재세이화를 연결하면 「넓은 사랑으로 생명을 살리도록 하라」이런 해석이 되겠다. 그런데 우리는 고기의 맛에 빠져 마구잡이로 아무런 죄의식 없이 살상을 하고 있다. 원래 신성성을 찾으려면 인간의 주식인 곡물(열매)로 돌아가야 한다. 그것이 인간 본연의 인성을 되찾는 길이다.
고기 먹지 않아도 우주는 무한으로 생명작용물질을 공급하고 있다. 고기 먹지 않아도 영양에서 치우침이 없는 것이다.
-------------실수로 글이 날라가 다시 썼더니 좀더 의미가 깊어졌네요.---------이하 펌
한공대학교 최봉영 교수는 그의 논문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육목적에 대한 검토」중에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바른 의미' 다음과 같이 밝혔다.
우리가 弘益人間에서 '弘'을 '널리'로 새겨서 '널리 이롭게 한다.'로 풀이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인은 '弘'을 본디 '클 弘'으로 새겨왔다.『新增類合』에서는 弘을 '클 弘'으로 새겼고,『全韻玉篇』에서는 弘을 '大也, 含容'으로 풀이하고 있다. 그럼에도 사람들이 홍익인간에서 홍익을 '크게 이롭게 한다.'로 하지 않고, '널리 이롭게 한다.'로 풀이한다. 이렇게 하는 것은 사람들이 크게 하는 일과 널리 하는 일이 한국인의 삶 속에서 어떠한 차이를 갖는지 잘 알지 못하기 때문이다.
한국어에서 '널리 이롭게 한다.'는 利害를 기준으로 나를 이롭게 하는 것과 너를 이롭게 하는 것을 나누어 놓은 상태에서, 내가 너를 이롭게 하는 것으로 나아감을 말한다. 따라서 널리 이롭게 하는 일에는 나를 이롭게 하는 일이 어떠해야 하는지에 대해서는 아무런 언급도 들어있지 않다. 이런 까닭에 극단적인 경우에는 나를 해치면서 널리 이롭게 하는 일로 나아갈 수도 있다.
한국인이 弘益을 '크게 돕는다.'라고 하지 않고 '널리 이롭게 한다.'라고 풀이한 것은 益을 '利'로 새긴 것과 연관되어 있다. 利는 일의 결과에 따라 利害를 판가름하는 기준인 까닭에 益을 利로 새기게 되면, 나를 이롭게 하는 일과 너를 이롭게 하는 일이 분명하게 나뉘게 되어, '함께 고루 하는 일'이 어려워진다.
오늘날 한국인은 弘益人間을 흔히 '인간을 널리 이롭게 한다.'로 풀이한다. 우리가 '弘益人間'의 '益'에 해당하는 본디 낱말을 생각하지 않고, '益'을 '利'로 새겨서 弘益을 '널리 利롭게 한다.'로 풀이하는 것은 문제가 될 수 있다.
한국인은 '益'을 흔히 '더할 益'으로 새기지만 有益, 國益, 益友 등에 쓰이는 '益'의 경우에는 '도울 益'으로 새겨야 한다. 有益은 '어떤 도움이 있음'을, 國益은 '나라에 도움이 됨'을, 益友는 '도움이 되는 벗'을 말한다. 이때 益은 단순히 어떤 것을 더하기보다는 더욱 좋아지도록 더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은 어떤 것이 더욱 좋아지도록 더하는 일을 '돕는 것'으로 말한다. 이런 까닭에 제헌절 노래에서 고조선의 건국정신을 기리는 부분에서 益을 '도우다'로 풀이하고 있다. 즉, '비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에서 '인간을 도우셨다'는 부분에 나오는 '도움'은 홍익인간의 '益'을 풀이한 것이다.
한국어에서 '돕다'는 '되게 하다', '답게 하다'의 뜻으로서 어떤 것이 본래의 속성을 다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것을 말한다. 나를 도우는 일은 나를 나답도록 만드는 일이고, 너를 도우는 일은 너를 너답도록 만드는 일이다. 홍익인간에서 益은 바로 사람이 사람다울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을 말한다.
사람들이 益을 利로 새기는 것은 利益, 즉 '利를 더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利益에서 益은 '돕는다'는 뜻이 아니라 '더하다'는 뜻을 지닌다. 따라서 홍익인간처럼 문장 속에서 益이 단독으로 쓰였을 때, 그것을 곧장 利益으로 풀이하는 것에는 많은 주의가 필요하다. 왜냐하면 어떤 것을 도우는 일과 달리 이익을 더하는 일은 반드시 옳은 일이라고 말할 수 없기 때문이다. 따라서 우리가 홍익인간의 益을 '利롭게'로 새겨서 弘益을 '널리 이롭게 한다.'로 풀이하면 본래의 뜻에서 크게 벗어나게 된다.
弘益이 본래의 뜻에 충실하기 위해서는 弘을 '클 弘', 益을 '도울 益'으로 새겨서 '크게 돕는다.'로 풀어야 한다. 이때 弘益人間은 나라는 주체가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그리고 너를 너다울 수 있도록 크게 도움으로써 나라는 주체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는 일을 말한다. 이런 까닭에 한국인은 사람을 사람답게 만드는 바탕인 德, 仁, 義를 모두 '큼'으로 보아서 '큰 德', '클 仁', '클 義'로 새겨왔다.
한국인에게 큰 사람은 仁, 義 등을 바탕으로 안팎에 德을 크게 쌓는 사람을 뜻한다. 즉, 큰 사람이 되는 일은 안으로 德性을 길러서 밖으로 德行을 베푸는 일을 쌓아나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 안으로 덕성을 기르는 일은 나를 도와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이고, 밖으로 덕행을 베푸는 일은 너를 도와서 너를 너답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나와 네가 모두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이 '크게 도우는 일'이고 나를 '큰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다.
이렇게 볼 때, 우리가 弘益人間의 뜻을 제대로 살려내기 위해서는 '크게 사람을 도우다'로 풀이해야 한다. 한국인이 크게 사람을 돕는 일은 곧 德, 仁, 義 등을 바탕으로 '큰 사람'으로 나아가는 것이고, 이는 弘益人間을 실현하는 일이다.
이상에서 밝힌 내용이 바로 한공대학교 최봉영 교수의 논문 「대한민국의 교육이념과 교육목적에 대한 검토」에서 발췌한 것이다.
필자는 전적으로 최 교수의 이론에 뜻을 같이 하면서 '弘益人間'을 '크게 사람을 돕는다'로 새겨야 하는 또 다른 까닭을 밝히고자 한다. 《맹자(孟子)》양혜왕(梁惠王) 조에 보면, 맹자와 양혜왕이 '이(利)'를 주제로 나누는 다음과 같은 대화가 나온다. 우리는 여기에서 '익(益)'자의 해석에 대한 도움을 받을 수 있다.
맹자가 양혜왕을 만났는데 왕이 말했다. "어르신께서 천리를 멀게 여기지 않고 오셨으니, 또한 장차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
맹자가 말하였다. "왕은 하필 이로움을 말씀하십니까? 오직 인의(仁義)가 있을 뿐입니다. 왕께서 어떻게 하면 내 나라를 이롭게 할까 하시면, 대부들은 어떻게 하면 내 집안을 이롭게 할까 하며, 사.서인들은 어떻게 하면 내 몸을 이롭게 할까 하여, 윗사람과 아랫사람이 서로 이를 취한다면 나라가 위태로울 것입니다. 만승(萬乘)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천승(千乘)을 가진 공경의 집안이요, 천승의 나라에서 그 군주를 시해하는 자는 반드시 백승(百乘)을 가진 대부의 집안이니, 만승에 천승을 취하며, 천승에 백승을 취함이 많지 않은 것은 아니지만 만일 의를 뒤로 하고 이를 먼저 하면, 빼앗지 아니하고서는 만족해 하지 않을 것입니다. 어질고서 그 어버이를 버리는 자는 있지 않으며, 의롭고서 그 군주를 뒤로 하는 자는 있지 않습니다. 왕께서는 오직 인의를 말씀하실 따름이니,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
위의 글에서 맹자는 '내 나라를 이롭게 함이 있겠습니까?'라고 묻는 양혜왕의 질문에 '이로움'을 추구하면 '빼앗지 않고는 만족할 수 없는데, 하필 이익을 말씀하십니까?'라고 반문하고 있다.
단군의 건국이념이자 오늘날 대한민국의 교육이념인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널리 인간을 이롭게 한다'로 해석하게 될 때, 사람들이 저마다 이익을 추구하게 될 것이다. 부자간에도 이익으로 서로 다투게 되고, 형제자매간에도 이익을 앞세워 더 많은 유산을 차지하려 혈안이 되어 남보다 못한 관계로 잘하게 될지도 모른다. 관리들도 저마다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리사욕에 눈이 어두워 정경유착과 뇌물이 만연하여 국가경제가 파탄에 빠지게 될 것이 뻔하다. 사용자와 고용인이 서로 이익을 추구하다 보면, 사용자는 고용인을 착취하게 되고, 고용인은 불법 노조활동으로 사용자를 곤란에 빠뜨려 종국에는 회사가 망하게 되지 않는다는 보장이 없다. 국가 간에도 자국의 이익만을 추구하다 보면 전쟁도 불사하게 되어 선린우호의 국제관계는 결국 파국으로 치닫고 말 것이다.
그러므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올바른 해석은 최 교수의 견해처럼 '크게 사람을 돕는다'로 해야 한다. 아버지와 아들이 서로 돕고, 형제자매가 서로 돕고, 이웃 간에 서로 돕고, 사용자와 고용인이 서로 돕고, 관리와 국민이 서로 돕는 관계가 성립될 때, 그 나라는 전 국민이 일치단결하는 총화를 이루어 복지국가의 이상을 실현하게 될 것이다. 이웃나라와도 서로 돕는 선린우호의 관계가 확립될 때 영원한 평화가 정착될 것입니다.
구한말까지 서당에 다니며 글줄이나 읽은 분들, 특히 맹자를 읽은 분들은 양혜왕(梁惠王) 조의 내용을 통해서 '이익(利益)'을 추구하는 것이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을 대체로 알고 있을 텐데, 도대체 그 누가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이렇게 해석하여 대한민국의 건국이념 내지 교육이념에서부터 초중고의 교과서에 이르기까지 이런 잘못된 해석이 범람하고 있으니, 안타까울 따름이다.
최 교수가 지적한 바와 같이 '제헌절 노래'에도 고조선의 건국정신을 기리는 부분에서 '益(익)'을 '도우다'로 풀이하고 있는데도 불구하고, 왜 이런 해석이 천편일률적으로 모든 교과서에 범람하여 국민정신을 제대로 고양시키지 못하고 있는 현실이 참으로 안타까울 따름이다. 1970년대까지만 하더라도 4대 국경일은 공휴일이 아니라 학생들이 '가방 없이 학교 가는 날'이었다. 그래서 전교생이 운동장이나 강당에 모여 국경일 기념식을 거행하곤 하였다. 필자는 초중고에서 12년 동안 제헌절마다 '제헌절 노래'를 제창한 덕분에 환갑이 다 된 지금도 제헌절 노래를 틀리지 않고 부를 수 있다. '비구름 바람 거느리고, 인간을 도우셨다는 우리 옛적, 삼백 예순 남은 일이, 하늘 뜻 그대로였다.' 이 노래의 가사에 나오는 '인간을 도우셨다'는 내용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을 뜻하는 것임에도 이런 잘못된 해석이 난무하는 까닭은 기본을 중시하지 않는 우리나라 학문의 풍토라고나 할까? 누가 한번 이론을 제기하면 그 잘잘못을 헤아려 따져보지 않고 무조건 답습하는 이상한 풍토의 영향이라고 밖에 볼 수 없다.
이제라도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올바른 의미가 초중고의 모든 교과서에서 바로 잡혀지고, 전 국민이 바로 알아 가족이 서로 돕고, 민족이 서로 돕는 상부상조의 전통을 되살려야 할 것이다. 우리 민족 본래의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참된 의미를 되살려 '동방예의지국'을 회복하고, 서로 돕고 도우면서 세계에서 가장 행복하고 부강한 나라를 이루어 가야겠다.
그 길을 앞당기는 첩경이 바로 홍익인간(弘益人間)의 의미를 제대로 아는 것이라고 거듭 주장하며 이 글을 맺는다. '크게 인간을 돕는' 단군조선 때의 전통을 회복하여, 홍익(弘益) 사상으로 새로운 한류의 바람을 일으키며 세계인이 상부상조하는 그 날을 기대해 본다.
'최봉영 교수 논문 요약'
1. 홍익(弘益)의 바른 해석
弘 : 클 홍
2. 홍익인간(弘益人間)의 '益'의 개념
가. 益을 利로 새기는 것은 利益, 즉 '利를 더하는 것'에 바탕을 두고 있다. 그런데 利益에서 益은 '더하다'는 뜻을 지닌다. 利益을 더하는 것은 반드시 좋은 일이하 할 수 없다.
나. '益'을 '도울 益'으로 새겨야 한다. 有益은 '어떤 도움이 있음'을, 國益은 '나라에 도움이 됨'을, 益友는 '도움이 되는 벗'을 말한다. 이때 益은 단순히 어떤 것을 더하기보다는 더욱 좋아지도록 더하는 것을 말한다. 한국인은 어떤 것이 더욱 좋아지도록 더하는 일을 '돕는 것'으로 말한다.
3. 弘益人間 : 크게 사람을 돕는다.
'나'라는 주체가 내가 나다울 수 있도록, 그리고 '너'를 너다울 수 있도록 크게 도움으로써 나라는 주체를 더욱 큰 사람으로 만들어나가는 일. 큰 사람이 되는 일은 안으로 德性을 길러서 밖으로 德行을 베푸는 일을 쌓아나감으로써 이루어진다. 이때 안으로 덕성을 기르는 일은 나를 도와서 나를 나답게 만드는 일이고, 밖으로 덕행을 베푸는 일은 너를 도와서 너를 너답게 만드는 일이다. 결국 나와 네가 모두 사람다운 사람이 될 수 있도록 도우는 일이 '크게 도우는 일'이고 나를 '큰 사람으로 키우는 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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