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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토 발제문

[한반도와 강대국의 국제정치] 제1부 한반도 분단

작성자조쉬버켓|작성시간21.11.27|조회수81 목록 댓글 0

1부 한반도 분단

 

제2장 한반도 분할 점령

 

제1절 미국의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

- 미국의 한반도 신탁통치구상은 한반도를 미소가 양분하기 위한 성격

- 루즈벨트와 미국의 입장에서 보면, 소비에트의 팽창저지와 유라시아 대륙을 겨냥한

  자국의 전력투사 차원에서 한반도를 소비에트와 분할점령할 필요가 있음

- 소비에트는 통일한국이 자연스럽게 소비에트로 올것이라고 판단함. 이유는 당시

  조선인들의 이념성향이 사회주의 내지는 공산주의를 선호함

- 1943년부터 미국무성의 기획가들은 한반도가 소비에트의 영향권으로 들어갈것을

  우려하여 이미 분할 또는 모든 점령을 방안을 구상함 

- 한반도에 단일 국가 출현시 한반도에 미군을 주둔 시키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함

- 한반도를 분할 점령해야 남쪽 지역을 미군이 주둔할수 있고, 아태지역을 겨냥한

  소비에트의 세력 팽창을 저지할 수 있을 것(미국의 세계패권전략)

 

제2절 특정세력 한반도 주도 저지

- 당시 미국은 조선의 해외 망명세력을 인정하지 않음. 한반도를 특정국가가 주도하면

  않된다고 주장함. 이같은 이유로 이승만과 임시정부를 인정하지 않음

- 1941년 12월22일 국무성은 진주만 기습이후 상해임시정부 상황, 시베리아의 조선인

  현황, 해외거주 조선인과 본국 주민의 관계등을 충칭주재 미국대사관에 확인을 요청함

- 미국은 러시아 지역에 조선인 30만명이 있으며, 이들 가운데 3.5만명이 공산주의 이념

  으로 무장되어 있다고 판단함. 임시정부는 상대적으로 매우 적으며, 이들이 분열되어

  있다고 판단함. 한반도에는 공산주의자들이 대거 상존한 것으로 판단함

- 한길수/김구/이승만 등이 인정 및 지원요청에 대한 미국은 거부함

- 루즈벨트행정부는 상해임시정부를 인정하면 추후 수용 불가능할 정도의 책임을 감당

  하게 될 것으로 생각함. 

- 특히 루즈벨트행정부의 한반도정책은 아시아 지역에서의 미국 안보이익과 관련이 있음

  전후 미국은 한반도를 기지로 하여 서태평양지역의 평화를 수호할 예정임

-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은 1942년에 출현함. 12월 한반도 신탁통치 방안을 언급함

- 1943년 3월27일 루즈벨트는 영국외무장관인 앤서니 이든에게 3국 또는 4국 신탁통치를

  제안함. 당시 원스턴 처칠총리는  대영제국 식민지 국가들이 전후 신탁통치 대상제외

 

제3절 신탁통치와 국익 : 카이로, 테헤란, 얄타 그리고 포츠담

- 38선 분할점령은 공식 합의사항은 없고, 구두합의만 있음

- 이유는 중국과 영국의 한반도 신탁통치를 반대했기 때문임

- 1944년 국무성은 구체적인 한반도통치 계획을 수립함. 특히 루즈벨트는 소비에트의

  대일 전쟁참전을 곤란하게 만들수 있는 조치는 취하지 않음

- 1944년 봄 미국의 태평양전략위원회에서는 한반도 점령과 구정과정에서 연합국 참여의

  필요성을 강조함. 소비에트의 태평양전쟁 참전시 4국 신탁통치를 제안함

- 소비에트와 중극은 한반도에 대한 자국의 상대적 영향력 확대를 원하고 있음

- 특히 스탈린은 루즈벨트가 소비에트군의 대일전쟁 참전을 요구하자 러일전쟁 당시의

  자국 권리 회복을 강력히 요구함(뤼순항 이양과 만주철도 등)

- 얄타회담에서 참석안 애버럴 해리먼 소비에트주재 미국대사는 루즈벨트와 스탈린의

  한반도 신탁통치를 구두 합의했다고 확인해줌 

- 기광서교수가 찾은 소비에트의 자료에 따르면, 루즈벨트와 스탈린은 1945년 5월 맥아더의

   38선 이남 점령계획, 1945년 7월 미국합참의 미소경계선 38선이남 등으로 분할통치에 합의함

- 한반도의 운명은 대일 전쟁 승리 차원에서 미국이 동원 할수 있는 군사력, 그리고 적용 

  가능한 군사전략과 긴밀히 연계됨.

- 당초 미국은 핵무기를 이용하면 태평양 전쟁의 조기 종전으로 소비에트의 참전이 차단 될

  것으로 기대하면서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을 포기하기로 결심함. 소비에트의 참전하는 경우에는

  트루먼대통령이 한반도 신탁통치가 아닌 영구 분단을 추구함

- 7월26일 포츠담 선언에도 일본의 무조건 항복이 없음. 그러자 미국은 원자탄을 투하함

   8월8일 소비에트군이 포츠담선언을 지지하며 대일 전쟁에 참전한 것. 

 

제4절 38선 분할의 진실

- 루즈벨트는 당초 4국이 일정기간 신탁통치 이후 한반도를 독립 시켜야 할 것이라고 주장함

  그러나 미국은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가능성이 농후함.

- 따라서 한반도의 분할 점령을 추구함. 특히 이남지역을 미군이 점령함

- 이완범교수에 따르면, 38선 분할은 오랜 깊은 연구의 산물임. 이미 38선 분할은 미소는 오래전

  상의 했음

- 콜린스참모총장도 포츠담회담에서 38선을 잠정적인 분할선으로 했을 것

- 정한경 초대주일대표와 외교관 조지 맥큔도 1945년 밀약설

- 즉 루즈벨트대통령은 소비에트의 대일 참전 조건으로 얄타와 큐릴열도의 소비에트 이양, 몽골의

  독립국유지, 남사할린 이양, 다렌항의 국제도시화, 뤼순항 임차 복원, 만주철도 공동운영

  그리고 한반도의 38선 잠정 분할 점령

- 1945년 2월11일자 국무성의 소비에트 대일전쟁 참전에 관한 협약의 내용과 일치함 

- 기광서교수가 발굴한 소비에트 1945년 6월 29일 한반도 이북은 소비에트, 이남은 미군 주둔을 합의함

- 맥아더장군은 1단계 서울-인천 점령, 2단계 부산점령, 3단계 군산점령임

 

분석

1) 포츠담회담에서 미국과 소비에트 참모총장 수준에서 38선 분할 점령이 결정됨

2) 한반도가 공산화되면 일본도 공산화 될것으로 우려함. 한반도 점령이 일본 점령과 동일한 우선순위임

3) 한반도 분할에는 얄타밀약이 있음. 즉 남과 북을 미국과 소비에트가 분할 점령함

 

제5절 결론

- 루즈벨트의 한반도 신탁통치 구상은 자치 능력 부족이 아닌 미국의 안보 측면에서 대단히 중요한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 확보하기 위한 방안

- 38선 분할 점령은 1945년 7월 포츠담회담에서 결정됨

- 한반도 신탁통치가 4국이 국익이 서로 다름. 4강  이익이 교차하는 한반도에 대한 영향력을 확보하기 위함

- 한반도가 소비에트의 영향력에 넘어가면 아태지역 안보 및 미국의 안보가 위험해질 것

- 오늘날도 미국은 남북통일을 원하지 않음. 원인은 통일한국이 중국가 가까워질 가능성 때문

- 문서상 합의하지 않은 이유는 합의하는 경우, 한반도가 독립할 것이고, 통일한국은 미국이 영향력을

  행사하지 못할 것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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