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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토 발제문

[부분과 전체] 4~5장

작성자님프|작성시간22.11.08|조회수53 목록 댓글 0

 

부분과 전체

 

4장.  정치와 역사에 대한 교훈 1922~1924

 

▷ 베르너 하이젠베르크는 '양자역학을 창시한 공로'로 노벨 물리학상를 수상한 학자이다.

양자역학은 분자, 원자, 전자, 소립자와 미시적인 계의 현상을 다루는 즉, 작은 크기를 갖는 계의 현상을 연구하는 물리학의 분야다. 세상의 무든 것은 원자로 이루어져 있고, 원자의 세계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을 설명하는 것이 바로 양자역학이다. 양성자 하나와 전자 하나로 된 수고 원자 하나를 알기 위한 역사가 양자역학을 낳았다. 우주와 지구, 자연과 인간의 기원을 이해하려는 지속적인 탐구를 통해 인류가 쌓은 최고의 지식이 바로 양자역학이라 할수 있다.

 

▷ 그는 행렬역학과 불확정성 원리를 발견하여 20세기 초 양자역학의 발전에 공헌을 했다.

이외에도 난류의 유체역학, 원자핵, 강자성, 우주선, 소립자의 연구에 지대한 공헌을 했다.

단순히 학문적 이력을 넘어 당대 양자역학의 발전에 기여한 수많은 과학자들과의 일화가 기록되어 있다.

선지자적인 분위기를 풍기면서도 유머러스한 멘토 닐스 보어,

십대 때 상대성이론에 대한 논문을 발표한 수학 천재 볼프강 파울리,

상대성이론으로 과학자들의 상상력을 자극한 아인슈타인,

플랑크 상수로 유명한 독일 과학계의 정신적 지주 막스 플랑크,

양자역학의 난제를 우아한 수학으로 정식화한 슈뢰딩거,

 

 

▷ 상대성이론에 정치적 수단을 이용해 대항하려 했던 학자들을 목격했던, 라이프치히 학회에서 있었던 그 씁쓸한 경험을 이야기했다. 당시 보어와 나는 이렇듯 별로 중요하지 않아 보이는 정치적인 일탈로부터 나중에 얼마나 끔찍한 일이 벌어질지 꿈에도 몰랐다

 

※ 1941년 하이젠베르크는 핵무기 연구에 따른 윤리적 문제에 대한 조언을 구하고자 보어를 방문하는데, 하이젠베르크는 독일에서 핵무기를 만들 수 있는 상태지만 만들지 않을 것이니 연합국쪽도 핵무기를 포기하기 위한 의도였던 것 같다.

 

 

 

5장.  양자 역학과 아인슈타인과의 대화 1925~1926

 

 

 

아인슈타인은 하이젠베르크에게, 원자 안에 전자가 있다고 가정하면서 전자의 궤도를 전적으로 무시하려는 기이한 가정의 근거를 명확하게 설명해달라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관찰가능한 양들만으로 이론을 받아들이는 것이 합리적이기 때문에, 관찰할 수 있는 양들을 전자궤도의 대표로서 도입하는 것이 자연스럽게 생각되었다고 답한다.

이에 대해 아이슈타인이, 관찰 가능한 양만을 물리학 이론으로 받아들일 수 있다는 것을 진지하게 믿어서는 안 된다고 하자, 하이젠베르크는 놀라면서 되물었다고 한다.

“바로 선생님이 그런 생각을 상대성이론의 토대로 삼지 않으셨나요? 선생님은 절대시간은 관찰할 수 없으므로 절대시간을 이야기해서는 안 된다고 강조하셨습니다. 움직이는 계든 정지해 있는 계든 시계가 표시하는 것만이 시간 결정의 기준이 된다고요

그러자 아인슈타인은 이렇게 답했다고 한다.

“그래요” 나는 그런 식의 철학을 활용했어요. 하지만 그럼에도 그것은 말도 안되는 것이예요. 좀 더 신중하게 말하자면 그런 철학은 정말로 관찰하고 있는 것에 대해 주목하도록 돕는 역할을 해요. 하지만 원리적으로 보면 관찰할 수 있는 크기만을 토대로 이론을 만들려고 하는 건 잘못 된 거예요. 실제로는 정반대니까요. 사실은 이론이 비로소 무엇을 관찰할 수 있을지 결정해요. 관찰은 일반적으로 아주 복합적인 과정이예요. 그러므로 관찰하고자 하는 현상이 비로소 우리의 측정 도구에 영향을 미쳐요. 그러면 그 결과로 이런 도구에서 계속적인 과정이 진행되고, 우회를 거쳐 우리의 의식 속에서 감각적인 인상을 불러일으키고, 결과를 확인시켜주지요

우리 의식 속에 결과가 확정되기까지의 이런 긴 과정에서 우리는 자연이 어떻게 기능하는지를 알아야 해요. 우리가 뭔가를 관찰했다고 주장하려면 최소한 그와 관련한 자연법칙을 알아야 하지요. 따라서 이론, 즉 자연법칙을 아는 것만이 우리로 하여금 감각적 인상을 토대로 배후의 과정을 추론할 수 있게 해줘요. 따라서 뭔가를 관찰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면, 그것이 기존의 자연법칙과 일치하지 않는 새로운 자연법칙을 정리해 내는 작업이라해도, 관찰할 수 있는 과정에서 시작하여 의식에 이르는 길에서 기존의 자연법칙이 정확히 기능하여 우리가 그 법칙을 신뢰할 수 있고 그럼으로써 관찰에 대해 이야기 해도 된다는 의미예요

 

※ 이후 하이젠베르크는 1927년 안개상자 안에서 전자의 궤도가 수학적으로 어떻게 표현될 수 있을까 하는 물음에 모든 노력을 기울였다. 이러던 어느 날 밤, 극복할 수 없는 매우 어려운 고비에 부딪히며 혹시 문제를 잘못 제기하고 있는 것이 아닌가 하는 생각이 희미하게 떠올랐다고 한다.

하이젠베르크는 계산을 통해 그런 상태를 수학적으로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바로 이 부정확성은 뒷날 양자역학에서 불확정성 원리로 불리게 된다.

 

 

 

 

 

상대적이며 절대적인 지식의 백과사전

 

제7장 우리는 신

 

 

 

243 야훼를 숭배한 카인족의 혁명

그들의 신은 권능을 가지고 지배하는 신이 아니라 <촉매> 역할을 하는 신이었다. <야훼>-대장간의 풀무가 내는 소리-라는 이름의 이 신은 존재와 사물에 <숨>을 불어넣어서 그것들의 힘을 드러낼 수 있었다. 신이 숨을 불어넣어 만물을 창조한다는 이런 개념은 오랜 세월이 지난 뒤에 성서에서 다시 나타나게 된다.

 

244 개미

인간이 지구에 나타난 것은 3백만년전이지만, 개미는 1억년 전부터 도시를 건설하기 시작했다

- 암수 구별이 없다

- 수 개미는 결혼 비행을 하면서 암개미에게 정자를 주고 나면 모두 죽고, 정자를 받은 암개미가 여왕개미가 된다

- 각각의 개체는 역할이 미리 정해진 채로 태어난다

- 실업이나 가난, 사유재산, 경찰이 존재하지 않는다. 위계 제도나 정치권력도 없다

- 전체 구성원중 1/3은 한가로이 돌아 다니며 빈둥거리고, 1/3은 쓸데없는 일을 벌이고, 1/3은 사고뭉치들의 실수를 잡고, 도시를 건설하며 관리한다

- 히로시마와 나가사키에 원자 폭탄이 떨어졌을 때도 살아 남았다. 개미들은 저희들끼리 방해하지 않고 지구와 완벽한 조화를 이루면서 살아간다

 

245 쥐 세계의 계급 제도

쥐 6마리를 한 우리에 넣어서 문이 하나뿐인 수영장으로 통하게 하여 먹이를 건너편에 넣어 두는 실험을 하였다. 두 마리는 수영을 해서 구해 온 먹이를 빼앗기는 피착취형이었고, 다른 두 마리는 헤엄을 치지 않고 가만히 있다가 남이 구해온 먹이를 빼앗아 먹는 착취형이었으며, 한 마리는 헤엄을 쳐서 구해 온 먹이를 빼앗기지도 않고 남의 것을 빼앗지도 않는 독립형이었고, 마지막 한 마리는 헤엄을 치지도 않고 먹이를 빼앗지도 못하는 천덕꾸러기형이었다. 20개를 만들어 같은 실험을 했으나 똑같은 방식으로 나뉘어져 있었다. 이 쥐들의 뇌를 해부해 보았다. 가장 스트레스를 많이 받는 쥐는 천덕꾸러기나 피착취형이 아니라 착휘형 쥐들이었다.

 

252 장례

장례는 사후 세계에 대한 상상의 출발점이다. 여기에서 천국과 지옥과 이승의 삶에 대한 심판이라는 관념들이 나타났고, 나중에는 종교가 생겨났다. 인간이 다른 인간이 시신을 쓰레기터에 버리던 때에는 죽으면 모든 게 끝나는 것이었다. 인간이 먼저 세상을 떠난 다른 인간에게 특별한 대접을 해주게 되면서 종교심뿐만 아니라 경이로운 상상의 세계가 태어났다.

 

253. 침팬지들을 상대로 한 실험

257. 백과사전파의 흐름

- 최초의 대규모적인 백과사전 편찬 작업은 기원전 3세기에 중국에서 이루어졌다. 이재에 밝은 상인이었던 여불위는 막대한 재산을 모은 뒤에 진나라의 승상이 되자 3천명의 학자들을 식객으로 거느리고 그들에게 각자가 알고 있는 것을 모두 기록하게 했다. 그런 다음 여불위는 그들이 적은 것을 성문 앞에 내걸고 누구든 한 글자라도 고치면 포상한다는 내용의 방을 붙였다. 그리하여 수많은 사람들이 지식을 바로잡고 보태는 작업에 참여하였다.

- 서양에서는 세비야의 주교 이시도루스가 621년부터 중세 최초의 백과사전을 편찬하기 시작했다. 그는 고대로부터 자기 시대에 이르기까지 라틴어와 그리스어와 히브리어로 된 모든 지식을 20권의 저서에 집약하고 [어원지]라는 제목으로 출간하였다.

-10세기에 나온 작가 미상의 아랍어 백과사전을 12세기 번역가 요하네스 히스팔렌시스가 라틴어로 번역한 [비밀중의 비밀]은 아리스토텔레스가 페르시아 원정길에 올라 있는 알렉산드로스 대왕에게 보내는 편지 형식으로 되어있다. 정치, 윤리, 위생법, 의술, 연금술, 점성술, 식물과 광물의 마법적 특성, 수의 비밀 등 다양한 주제를 다루고 있는 이 책은 르네상스 시대까지 유럽인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13세기 파리 대학의 교수이자 토마스 아퀴나스의 스승이었던 알베르투스 마그누스는 동물학, 식물학, 철학, 신학 등 다양한 분야를 망라하는 백과사전적인 저작을 많이 출간했다

-르네상스 시대의 의사이자 작가였던 프랑수아 라블레 역시 당대의 지식을 한몸에 구현한 지적인 거인에 속한다. 매우 전복적이고 유쾌한 지식인이었던 그는 1532년 출간된 [팡타그뤼엘]을 비롯한 여러 저작을 통해서 문학, 역사, 철학, 의학 등 많은 주제를 다뤘다. 그는 알고자 하는 욕구를 자극하는 교육, 기쁨 속에서 배우게 하는 교육을 꿈꿨다.

- 이탈리아인 페트라르카와 레오나르도 다빈치, 영국 철학자 프랜시스 베이컨 역시 개인적인 백과사전을 집필했다

- 1747년 프랑스의 출판업자 르 브르통은 영국의 챔버스 백과사전을 번역 출간하려던 계획을 변경하여 프랑스 최초의 백과사전을 만들기로 하고 드니 디드로와 달랑베르에게 편집을 맡겼다. 두 사람은 볼테르, 몽테스키외, 장 자크 루소 등 당대 최고의 학자들과 사상가들의 도움을 받으며 20년이 넘는 작업 끝에 [과학. 예술. 직업 정해 사전]을 완성했다.

- 중국 청나라 강희제의 칙녕에 따라 진몽로 등을 중심으로 수많은 학자들이[흠정 고금도서집성]의 편찬에 착수했다. 고금의 문헌을 총망라하는 이 백과사전은 강희제의 뒤를 이은 옹정제의 명령을 받아 장정석 등이 개정하고 증보하여 1725년에 1만 권의 방대한 분량으로 완성되었다.

 

260. 벼룩의 자기 제한

벼룩 몇 마리를 빈 어항에 넣는다. 어항의 아가리를 막기 위해 유리판을 올려 놓는다. 벼룩들은 톡톡 튀어 올라 유리판에 부딪친다. 한시간쯤 지나면 단 한 마리의 벼룩도 유리판에 부딪치지 않는다. 그리고 나면 유리판을 치워도 벼룩들은 마치 어항이 여전히 막혀 있기라도 한것처럼 계속 제한된 높이로 튀어 오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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