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목수 이야기-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06.03.28|조회수228 목록 댓글 0
세상의 모든 크리스천을 위한 동화 목수 이야기

나는 벤 레바이라고 합니다.

이스라엘의 열 두 지파 중 선택된 짚인 베냐민의 자손이지요.
로마의 팔레스타인 정복 기간 내내 나는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십자가를 만드는 것은 당시 아주 번창한 산업이었습니다. 끔찍했던 그 금요일, 내 생애 소름끼치는 오점으로 남은 그날이 오기 전까지, 나는 십자가를 만들어서 윤택한 생활을 영위했지요.
그날을 생각하면서 요즈음에도 가끔씩 밀물처럼 밀려드는 죄책감에 휩싸이곤 합니다.

그렇습니다.
내가 바로 그 십자가, 예수님이 잔인하게 달려 돌아가신, 그 십자가를 만든 사람입니다.

지금도 전 세계에서 나의 간증을 듣기 위해 나를 초대하곤 하지요.

나는 이 간증을 “십자기를 만들던 어느 목수의 고백”이라고 부릅니다.
당시 나와 같은 일을 하는 유대인들은 별로 없었습니다. 헤롯 왕권과 결탁한 사람들은 로마 군대가 하는 일을 도와야만 했습니다. 경제적인 이유로 헤롯의 추종자가 된 몇몇 사람들은 유대 전통주의자들에게.....음.....그나마 좋게 말하자면 반역적인, 나쁘게 말하자면 악마의 앞잡이로 취급당했습니다.
수입은 괜찮았지만, 외로운 삶이었지요. 십자가를 만드는 유대인들은 세리들과 같이 배척당하고 낙인 찍혔으며, 나라의 치욕거리로 비난당하기 일쑤였습니다.

십대시절 나는 단 한 번도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이 되리라는 건 생각지도 못했습니다. 십자가를 만드는 일이란 근본 없고 타락한 사람들의, 죽음과 거래하는 혐오스런 일이라고 생각했던 것을 기억합니다.
내 부모님은 양을 사고 파는 일을 하셨는데, 가업을 더 발전시키고자 나를 봉제학교에 보냈습니다. 양모에서 얻은 옷감으로 옷 만드는 기술을 배우게 하려는 것이었지요.

어느 여름, 나는 예루살렘에 있는 샬롬 제재소에서 견습 목수로 일하게 되었습니다. 그곳에서 버는 돈으로 학교를 마칠 수 있을 것이라 생각했지요. 하지만 그렇게 시작한 일이 평생 직업이 될 줄 누가 알았겠습니까?

예루살렘의 경제는 나날이 번창하고 있었습니다. 목재의 수요는 많았고 비록 견습 목수라 해도 봉제학교로 다시 돌아가지 않아도 될 만큼 벌이가 매우 좋았습니다.

사실 나는 봉제학교의 바보 같은 선생들과 노동력만 착취하는 가게들을 좋아하지도 않았지요. 그런 반면 제재소의 벌목꾼들은 너무나 흥미로워서 그들과 함께 있을 수 있는 아침이 매일 기다려질 정도였습니다. 그들은 언제나 부채로 파리를 쫓으며 거짓말을 해댔습니다. 나는 특히 전쟁이야기에 매혹당했습니다. 상처에 얽힌 이야기와 부인들에 대한 이야기도 너무나 재미있었습니다.

내가 그동안 제재소에서 일했던 어느 젊은 견습 목수보다 뛰어나다는 것은 자타가 공인하는 사실이었습니다.

힘들게 일한 만큼 빨리 인정 받았습니다.

몇 년 후, 제재소의 소유주인 실버스타인시는 내 능력을 인정하고 나를 수제자로 삼아주었습니다.
실버스타인씨는 내 혁신적인 아이디어 덕분에 생산성도 높아지고 수입도 늘어 제재소에 아주 많은 이익을 가져다 주었다고 말했습니다. 그 때문에 나는 제2인자 자리에 설 수 있었던 것입니다.
얼마 지나지 않아 실버스타인씨가 갑자기 돌아가셨습니다. 그런데 불행히도 그에게는 상속인이 없었지요. 두 아들은 일찍이 갈릴리의 투다와 유다가 로마에 대항해 일으킨 봉기에 참가했다가 목숨을 잃었고, 그의 아내도 상심도 나머지 그로부터 일년 후쯤 세상을 떠났습니다.
실버스타인씨가 그의 번창한 사업을 내게 양도했다는 소식을 유언 집행자에게 들었을 때 나는 너무나도 놀랐습니다. 그것은 충격 그 이상의 것이었습니다.

몇 가지 변화를 겪은 뒤, 나의 사업은 이스라엘에서 수익률이 높은 사업이 되었습니다.
그후 곧 나는 지역 상인들의 모임에서 회장으로 선출되었습니다.
그러나 생활이 어려워진 것은 그때부터였습니다.
경제적인 어려움은 그 분야의 학자들이 예상한 것보다 훨씬 오래갔습니다. 많은 사람들이 일자리와 보금자리를 잃었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은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 또한 파산의 끝에 매달려 있었고 점점 더 절망할 수밖에 없었습니다.
행운이 찾아온 것인지 섭리였는지는 모르겠지만 로마의 한 군인이 내 모든 목재들을 사겠다고 제의해 왔습니다. 그는 나사렛에서 대규모의 반란이 일어났다고 설명하며 급히 2,000여개의 십자가가 필요하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내게 얼마나 많은 십자가를 만들 수 있겠느냐고 묻더군요.
물론 그 계약서에 서명을 하는 것이 어떤 의미인지 나는 알고 있었습니다. 하지만 서명을 하지 않았다면 모든 것을 잃게 될 수도 있었습니다.
결국, 나는 재빨리 이름을 서명란에 써 넣었습니다.
곧 마음 속에서 기쁨과 슬픔이 엇갈리게 시작했습니다. 쇠락한 사업에 다시 활력을 불어넣을 수입이 생기게 된다는 것은 기쁜 일이었지만, 몇 단의 목재에 내 영혼을 팔아버린 것 같아 슬펐습니다.
내가 어떤 궁지에 몰렸었는지 이해하십니까? 내가 어떤 상황이었는지 아시겠습니까?
나는 가족을 부양해야 했습니다. 그것만이 살 길이었단 말입니다.
아, 압니다. 내가 또 변명을 하고 있지요. 처음에 나는 경기가 나아질 때까지만 십자가를 만들려고 했습니다. 하지만 회복기는 결코 오지 않았습니다. 나는 꼼짝없이 로마정부에 십자가를 공급할 수밖에 없었던 것입니다.

로마인들에 대해 얼마나 알고 있습니까?
간단히 말하자면, 그들의 통치는 거의 500년간이나 지속되었습니다. 그 강력한 세력은 인도의 갠지스강부터 영국의 해안까지 뻗어나갔습니다. 로마의 무적군대는 북으로는 아시리아, 남으로는 바빌론까지 정복해갔지요. 나의 조국 팔레스타인은 그 두 나라를 이어 주는 작은 반도에 불과했습니다.
우리 중 누구도 로마군대의 위엄 앞에 대적하지 못했습니다. 우리는 들판의 메뚜기처럼 먹혀들어갔고, 로마군대가 지나가는 곳에는 죽음과 파괴만이 남겨질 뿐이었습니다.

로마인들은 그들의 법을 형언할 수 없을 만큼 무자비하고 잔인한 방법으로 실행했습니다.
만약 누군가 감히 그들의 미치광이 황제나 악명 높은 헤롯의 음흉한 법에 대항했다면 아마 내가 만든 십자가 하나에서 생을 마쳐야 했을 것입니다. 나는 수많은 십자가형을 목격했기 때문에 처형되는 사람들의 고통과 비참함에 점점 무뎌졌습니다. 범죄자들이 십자가에 달려 죽는 것은 이제 예루살렘 풍경 중의 하나가 되었습니다.
나 역시 이 사업이 흉측하다는 것은 알고 있었지만, 누군가는 해야 할 일었습니다. ‘내가 이 악마 같은 제도를 만든 건 아니니 십자가에 달려 죽는 사람들의 죽음을 내가 책임질 필요는 없어. 로마군이 십자가를 만들라고 돈을 주니까 나는 만들 수밖에...’라고 속으로 되뇌었습니다.
십자가를 만드는 일은 어렵지 않았습니다.

그저 톱을 이용해 십자가의 긴 기둥부분과 좀 더 짧은 가로부분을 자른 다음, 수직의 나무가 가로로 놓일 짧은 나무를 관통하도록 두 개의 나무를 묶으면 되었습니다.

좋은 십자가에는 안장을 만들어 달기도 했습니다. 세로로 세울 나무에 가로 6인치, 세로 4인치 정도의 구멍을 뚫고 죄수가 않을 수 있도록 판판한 나무 조각을 끼워 넣었습니다. 안장은 여러 가지로 쓸모가 있었습니다. 십자가에 달려 세워질 때 죄수가 잘 매달려 있을 수 있도록 했고, 십자가에 못 박힌 죄수의 손이 실제로 찢겨나가는 일이 없도록 도와주었지요. 안장은 또한 십자가형이 오래 지속되도록 하기도 했습니다.

이런 것들이 내가 만든 최고의 십자가였습니다.
다량의 주문이 있을 때마다 나는 조금 더 싼 종류의 십자가를 만들었습니다. 그것들은 아주 간단하게 만들 수 있었습니다. 그저 두개의 나무를 십자가 모양으로 붙이면 되었으니까요. 싼 십자가들은 한번 쓰고 나면 그만이었습니다. 한번 쓰고 태우거나 버렸습니다. 그러나 좋은 십자가들은 깨끗이 씻어 여러분 쓰곤 하였습니다.

어떤 죄수든지 못 박히기 전에 채찍질을 먼저 받아야 했습니다. 채찍질은 죄수들의 죽음을 앞당겼지요. 로마인들은 가장 몸집이 크고 잔인하며 힘이 센 군인을 고용했습니다.
‘스코지’라고 불리는 긴 채찍은 깨진 뼈 조각이나, 날카롭게 갈아놓은 돌 조각, 혹은 금속 조각들을 끝에 매단 가죽 끈으로 만들어져 있었습니다.
채찍질은 39번으로 제한되어 있었는데 그중 삼분의 이는 등을, 삼분의 일은 가슴을 때리도록 했습니다.
금속과 돌과 뼈 조각들은 말 그대로 죄수들의 살점을 뜯어내었고 그들의 몸은 피범벅이 되었습니다.

어떤 이들은 십자가에 달리기도 전에 채찍질로 인해 죽음을 맞이하기도 하였습니다.

일년에 한번 로마인들은 자신들이 마치 문명이라도 되는 듯 가증스런 시도를 했습니다. 유월절 축제기간 동안에는 삼백 만명이 넘는 유대인들이 도시로 몰려들었습니다. 유월절은 우리 유대인들이 애굽의 포로생활에서 풀려난 것을 기념하기 위한 날이었죠. 로마인들은 폭동이 일어나는 것을 우려해서 유대인들을 달래려고 유월절에 정치 사범을 풀어주곤 했습니다.

그 해에 사람들은 바라바를 놓아주고 예수를 십자가에 못 박으라고 소리쳤습니다.

목요일 늦은 저녁이었습니다. 가족들이 모두 잠자리에 든 지 오래되었을 때, 갑자기 난폭한 노크소리가 온 집안을 흔들어 깨웠습니다. 몹시 크고 성난 목소리가 울렸습니다.
“레바이, 레바이! 로마 정부의 이름으로 명하노니 문을 열어라”

두려움에 사로잡혀, 나는 재빨리 가운을 몸에 걸쳤습니다.
그 시간 대문 앞에 로마 백부장이 서 있다는 것은 분명 심상치 않은 일이 있다는 뜻이었지요.
나는 그저 이 일이 사업에 관한 것일 뿐이지 분노의 대상이 내가 아니길 바랄 수밖에 없었습니다.
백부장은 재판이 진행 중이라고 말했습니다. 그 밤의 재판이 불법적인 것이라는 생각이 스쳤지만 감히 누구의 재판이냐고 물어볼 수는 없었습니다. 백부장은 그 불쌍한 영혼에게는 안 된 일이겠지만 금요일에 십자가 처형이 있을 것이라고 하더군요.
나는 만약 한 사람뿐이라면 왜 십자가가 세 개나 필요하냐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그는 이미 유죄가 입증되어 사형을 선고 받은 두 강도들이 있다고 이야기해 주었습니다.
“십자가 두 개는 이미 만들었는데요”
“그렇겠지. 그렇지만 다른 하나는 자네의 십자가 중 좋은 것으로 해주게”
“예, 예, 그러죠”
나는 그에게 확실하게 대답했습니다.
“밤을 새워서라도 내일 아침 일곱시까지는 십자가를 모두 만들어 드리겠습니다”
금요일 이른 아침 해가 뜨기 전에 나는 성지 가까이에 있는 아토니오의 요새로 세 개의 십자가를 배달했습니다.

일 때문에 피곤했고 잠이 모자라서 그날은 영업을 한지 않기로 마음먹었습니다. 그날은 유월절이었습니다. 나는 비록 신앙심이 깊은 유대인은 아니었지만, 안식일만은 성수하려고 했습니다.
그래서 집에 돌아와 늘 먹는 생선과 누룩을 넣지 않은 빵을 먹고 나서 유월절을 축하하기 위해 성지로 들어가는 사람들의 행령에 끼어 들었습니다,
도시는 살아 움직였습니다. 거지들은 “가난한 자에게 자비를!”이라고 노래했고, 잡상인들은 온갖 물건들을 팔았으며, 성직자들은 찬송가를 불렀습니다.
사람들은 농담을 주고받았고 어디나 분주한 모습들이었습니다.

난폭한 사람들 사이를 헤치고 가다가 나는 성난 군중들로 에워싸인 사형수들의 행렬과 마주쳤습니다. 이 무리는 지금껏 십자가형에 몰린 그 어떤 사람들보다 거칠었습니다.
그들은 조롱하며, 침을 뱉고, 저주를 퍼붓고, 주먹을 휘둘러 댔습니다.

그것은 모두 예수라 불리는 한 사나이를 향한 것처럼 보였습니다.
가까이 가서 보니, 심하게 매질을 당한 듯 했습니다.
가시나무로 만들어진 관이 그의 머리에 씌워져 있었고 그의 머리와 머리카락은 피로 범벅이 되어 있었습니다. 찢겨진 옷은 그의 등에 착 달라붙어 있었고 내가 만든 십자가가 그의 어깨를 무겁게 짓누르고 있었지요.

예, 나는 그것이 내가 만든 십자가라는 것을 알아보았습니다.

사람들은 그렇게 저주와 조롱을 퍼부으면서도 분이 풀리지 않는 모양이었습니다. 그의 존재 자체가 그들의 내부에서 독을 뿜어내도록 하는 것처럼 보였지요.
십자가를 지고 가는 이들이 좁은 거리를 비틀거리며 지나갈 때 예수라 불리는 이가 갑자기 내가 서 있는 근천에서 넘어졌습니다.
내 안의 무언가가 도와주라고 속삭였지만, 로마인들의 잔인함을 잘 알고 있는 나로서는 그렇게 할 수가 없었습니다.
예수가 발을 끌며 일어났을 때 내 눈은 그의 눈과 마주쳤습니다.
나는 그렇게 단순한 시선에 사로잡혀 본 적이 없었습니다. 그의 시선에는 조용한 힘이 느껴졌습니다.

그의 육체가 가혹한 징계를 참아내는 동안에도 그의 눈은 심오한 평화로움으로 빛이 났습니다. 비록 그의 몸이 움츠러들고, 그의 어깨가 고통으로 내려앉았어도 말입니다.

비록 십자가 언덕으로 끌려갈지라도 그의 행동 어딘가에는 현재의 고난을 충분히 감내하고 있다는 듯한 단호함이 엿보였습니다.

종려주일에 다윗의 도신 예루살렘에 승리의 입성을 할 때 “호산나!”로 응답하던 사람들에게 둘러싸여 환호를 받던 남자에게서는 예상할 수밖에 없었던 이상한 결말이었습니다. 지금은 그 사건이 마치 아주 오래된 일인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와 마주친 순간은 아주 짧고 간접적인 것이었지만 왜 그렇게 많은 사람들이 그에게 끌렸었는지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그의 얼굴에는 거부할 수 없는, 사람을 끌어들이는 힘이 있었습니다.
나는 왜 사람들이 그가 자기들을 구원할 수 있을 것이라 믿었는지도 이해되었습니다.
그에게는 무언가가 있었습니다. 매혹적이고, 신비한 힘이었지요.

군인 한 명이 놀란 구경꾼 하나에게 칼을 들이대며 십자가를 지고 가는 것을 도와주라고 시켰습니다. 잠시 후 알았지만 그 구경꾼은 구레네의 시몬이었습니다. 시몬은 북아프리카의 작은 도시에서 온 고상한 외모를 지닌 흑인이었는데, 나중에는 예수를 따르는 사람들의 지도자가 된 사람이었습니다. 후에 그의 아들들은 훌륭한 설교자가 되었지요.
조금 전 그 군인이 죄수들에게 빨리 움직이라고 다그쳤습니다, 죄수들의 행렬이 사람들을 헤치고 예루살렘의 좁은 거리를 지날 때, 성난 얼굴들은 마지막 운명을 향해 비틀대며 걸어가는 세 명의 남자들을 바라보았습니다.
나는 설명할 수가 없었습니다.
왜 내가 그 무리들을 따라갔는지......

로마 군인들은 사람들의 행렬 가운데 있었습니다. 그들의 무자비함은, 로마제국의 뒷골목에 자리 잡은, 파리가 들끓고 무더운 이 황무지의 악조건 때문인지 더욱 극에 달한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그곳에는 즐길 거리가 있다면 어디든지 찾아가는 호기심 많은 구경꾼들이 있었습니다. 또한 종교 지도자들과 성직자들도 있었는데, 그들의 가장 큰 관심사는 사람들에게 권력을 행사할 수 있는 기득권을 지키려는 것이었지요.
한쪽에는 두려움에 떨며 거리를 두고 따라오는 몇 명의 사람들도 있었습니다.
나는 그들의 얼굴을 살피다가 문득 우리가 이제 도시의 외곽까지 나오게 된 것을 알았습니다.
내가 그들을 본 것은 그때였습니다!

마치 땅 속에서 솟아나듯 금빛으로 물든 아침하늘을 배경으로 그들의 실루엣이 비추어졌습니다.

골고다 언덕이 어렴풋이 보였습니다.
로마군인들은 모든 죄수를 땅에 눕혔습니다. 곧 그들의 빗겨진 어깨는 거친 십자가 나무에 고정되었고 팔은 양쪽으로 벌려졌습니다.
나는 분노의 대상인 예수를 뚫어지게 바라보았습니다. 그의 오른손이 처음으로 날카로운 못이 박혔고, 망치소리에 그의 피가 흩뿌려지며 나무가 쪼개졌습니다. 그의 손은 파자에 박혀 마치 붙은 것처럼 보였습니다. 그의 왼손도 곧 붉게 물들었습니다.
그의 폐는 신음을 토해냈고, 얼굴은 고통으로 창백해졌습니다.
군인은 예수의 한 발을 들어 다른 발 위에 놓고 눌렀습니다. 그리고는 그의 한 발뒤꿈치를 관통하여 다른 발에 박히도록 못질을 했습니다. 그의 얼굴에 나타난 고통은 어떻게도 표현할 수 없는 것이었습니다.
대제사장이 그를 조롱하기 시작했습니다.
“너는 다른 사람들을 구원하였다. 이제 거기서 내려와 네 자신을 구원해 보시지”
다른 군인이 소리쳤습니다.
“그래, 네가 만약 왕이라면 내려오라구. 그렇다면 믿어주지”
그때였습니다. 나는 울부짖는 소리를 들었습니다.

“아버지여 저들을 용서하소서. 저들은 자기의 하는 것을 알지 못합니다”

나는 그에게 소리치고 싶었습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용서하지 말아요. 로마인들은 용서받을 가치도 없습니다. 차라리 저주를 퍼부으세요. 그들에게 침을 뱉으세요. 끝까지 당당하게 맞서란 말입니다”
증오심과 적개심이 내 가슴 속에 차오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를 똑바로 쳐다보았습니다. 난 그렇게 순전하면서도 동시에 지혜로운 눈빛을 본 적이 없었습니다. 대부분 많은 경험으로 현명해진 눈빛은 깨끗하지 못했고, 지나치게 순진한 사람은 현명하지 못했기 때문이지요.

나는 더 이상 바라볼 수가 없었습니다.
그의 무언가가 내가 오랫동안 잊고 살았던 것들을 상기시켰습니다. 마치 내가 저지른 과거의 모든 죄악들이 기억의 무재 위에서 행진하는 것 같았습니다. 그리고 내가 만든 십자가에 달려 죽은 사람들의 얼굴이 스쳐갔습니다. 나의 깊숙하고 음습한 무의식 속에서 그들이 외치는 소리가 들렸습니다.
“십자가를 만든 저 사람을 죽여라! 십자가를 만든 저 사람을 죽여라!”
나는 도망치고 싶었지만, 발이 말을 듣지 않았습니다. 온 몸이 발가벗겨지고 모든 치부를 드러낸 것 같았습니다. 죄의식은 나의 폐부에서 일어나는 불처럼 바짝 바짝 타올랐습니다.

갑자기 예수의 양쪽에 잇는 두 명의 죄수들이 서로비방하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다가 왼쪽에 있는 사람이 예수에게 화살을 돌렸습니다.
“당신이 구세주라고? 우리에게 희망을 주던, 로마의 굴레를 벗겨준다고 부추기더니...봐! 지금 당신 모습을 보라고! 이 사이에서 십자가에 매달린 꼴이라니! 그 허황된 꿈은 이제 끝이 나셨군. 그래”
오른쪽에 있는 강도는 그와 함께 매달린 다른 한 죄수의 모욕적이고 어리석은 행위에 소름이 끼치는 듯 말하였습니다.
“말 조심해, 이 교활한 강도놈! 하나님이 두렵지도 않나? 우린 죄를 지었고 당연히 벌을 받아야 하지만 이분은 잘못한 것이 하나도 없어!”

그리고는 죽어가는 예수를 보며 또 그가 말했습니다.
“주여, 저는 믿습니다. 주께서 주의 나라에 들어가실 때 저를 기억해 주세요”
그 믿음의 고백에 예수는 잠시 기력을 회복해 겨우 대답했습니다.
“오늘 네가 나와 함께 낙원에 있으리라”
나중에 시몬 베드로는 그 세 개의 십자가 위에서,

왼편에 있던 사람은
죄 속에서 죽었고

오른편에 있던 사람은
죄를 벗어버리고 죽었으며,

가운데 십자가를 진 사람은
우리 죄를 사하기 위해 죽었다.

......고 설명해 주었습니다.

갑자기 태양이 사라졌습니다. 어떤 사람은 일식이라고 이야기했지요. 공기는 숨쉬기조차 힘들만큼 무거워졌습니다. 한밤중의 어두움이 한낮에 찾아와 골고다의 언덕에 휘장을 드리운 것 같았습니다.

땅이 술 취한 사람처럼 어질어질 흔들렸고, 발작이라도 일으키는 듯 지진이 났습니다.
얼마쯤 시간이 지나자 예수가 울부짖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아버지여, 내 영혼을 아버지의 손에 맡기나이다”
그리고는 고개를 떨구었습니다.
내가 돌아와서 도망치려고 할 때, 모든 사람들 위로 한 소리가 들렸습니다.

“저는 실로 하나님의 아들이로다!”

모든 사람들의 희망이 사실이 아니길 바라며, 나는 중얼거렸습니다.

“그럴 리가 없어. 하나님의 아들일 리가 없어. 그냥 선한 사람이었을 뿐이야. 우리가 기다리던 메시야가 아니야. 만약 그가 하나님의 아들이라면....정말 그렇다면....오, 나는 얼마나 불행한 사람인가!”

“내가 진정
영광의 왕이 달려 죽을
십자가를
만들었단 말인가?”

한참 후, 나는 무기력함에서 벗어나 겨우 움직일 수 있었습니다. 나는 될 수 있는 한 빨리, 더 빨리 달렸습니다. 그렇지만 그렇게 달린다고 해서 죄의식에서 달아날 수는 없었습니다.


슬프게 울었지만, 눈물로는 죄를 씻어낼 수 없었습니다.

집의 대문을 걸어 잠가도 영혼을 사로잡은 고뇌를 닫아버릴 수는 없었습니다.
잠을 청했지만 잠으로도 그 고통을 묻어버릴 수 없었습니다.

금요일 하루 종일 그 비극적인 사건은 내 머리 속을 떠나지 않고 맴돌았습니다. 나는 십자가의 의미를 이해해보려 노력했습니다, 밤이 새도록 깊이 생각해 보아도 십자가의 사건은 내가 이해할 수 있는 범위를 넘어선 것이라는 결론밖에 나지 않았지요.
나는 십자가를 만들었고, 내가 만든 그 십자가에 예수가 달려 죽었는데, 도대체 그것이 무엇을 의미하는지 이해할 수가 없었습니다.

토요일은 고통의 날이었습니다. 금요일에 인간 마음 속의 악마를 보았다면 토요일에는 궁지에 몰린 인간의 절망을 보았습니다. 금요일이 산산이 부서진 꿈과 시들어버린 희망의 날이었다면 토요일은 하나님이 숨어버리신 날과 같았습니다.
금요일에는 적어도 반나절 동안 예수께서 살아 있었지만 토요일에는 그가 하루 종일 죽어 있었습니다. 그 끔찍한 날은 영원히 끝나지 않을 것처럼 느껴졌습니다.

감사하게도 일요일이 찾아왔습니다.
“얼마나 다른 하루였던지요!”
일요일 아침의 술렁거림은 평소와는 다른 데가 있었습니다. 무언가 억제된 듯한 흥분으로 들떠 있었지요. 사람들은 부드럽고 속삭이는 듯한 소리로 말했습니다. 나는 그들에게 이 조용한 소동의 원인이 무엇인지 말해달라고 사정했습니다.
내가 처음으로 들은 소식은 어떤 여자가 빈 무덤 때문에 붙잡혔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리고 다음으로 들은 소식은 시체를 훔친 자가 누구인지 밝히기 위해 로마인들이 예수의 제자들을 찾고 있다는 것이었지요.
묘지에서 멀리 떨어져 있었지만, 나는 어떤 노인이 말하는 것을 들었습니다.

“그가 말한 대로 그는 다시 살아나셨다”

곧 나의 이성은 그런 소문은 사실이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어쩌면 그것은 음모이거나 누군가의 장남임이 틀림없다고 말이지요. 그렇지만 사실이라고 믿고 싶은 마음도 있었습니다. 나의 회심하지 못한 믿음은 ‘서둘러 확인해 봐야 해’라고 속삭였습니다.
묘지 안에서는 군인들이 예수가 누웠던 곳에 아무도 가까이 가지 못하도록 지키고 있었습니다. 그러나 한 여인이 가증하기를 예수의 몸에 향유를 바르려고 갔을 떼에 무덤 문은 열려 있었고, 천사가 그 돌문 위에 앉아 이렇게 말했다고 했습니다.
“왜 사신 이를 죽은 자 가운데서 찾느냐? 그분께서는 여기에 계시지 않고 살아나셨느니라. 주께서 이미 말씀하시지 않았느냐?”

부활의 소식을 들었을 때 나는 너무 기뻤습니다. 어쩌면 예수님은 진정 죽음을 이기고 다시 사신 하나님의 아들일 것이라는 커다란 희망이 생겼지요. 그러나 한편으로는 결코 끝나지 않는 악몽을 꾸고 있는 듯한 느낌도 들었습니다.
하나님께서 십자가를 만든 나에게 분노하지는 않으실지, 부활의 사건이 과연 모든 일들을 없었던 것처럼 되돌릴 수 있는지 확신할 수 없었기 때문이지요.

그 사건이 한 50일쯤 지난 후에 나는 예수의 제자들을 만났습니다. 예루살렘 주변에서 베드로와 다른 제자들이 활발하게 설교를 하고 있었지요. 나뿐만 아니라 전 세계에서 몰려든 사람들은 예수의 제자들이 제각기 자신들의 언어로 말하는 것을 보고 놀라움을 금치 못했습니다.
베드로가 “나사렛 예수, 하나님께서 그를 살리셨습니다”라고 말할 때 그것은 내 생애의 전한점이 되었습니다. 더 이상 나는 조용히 있지 못하고 그의 설교 중에 물었습니다.
“어떻게 예수가 거룩한 하나님의 아들이라는 것을 알 수 있습니까?”
그러자 그의 기적을 본 사람들이 저마다 간증을 하기 시작했습니다.

나인의 과부는 어떻게 예수께서 장례식에 들러서 그녀의 죽은 아들을 살려내셨는지를 말했습니다.
가나에서 혼인한 부부도 그들의 혼인잔치에서 포도주가 떨어졌을 때 예수께서 물로 포도주를 만드셨다고 간증했습니다. 여럿 귀신들렸던 자도 있었는데 그는 자신이 귀신들려 무덤 사이에서 살고 있었다고 말하면서 예수께서 귀신을 쫓아내 주셨다고 말했습니다.

어떤 병자는 천사가 내려왔을 때 물에 들어가기만 해도 병이 낫는다는 연못에서 38년 동안 있었지만 물 속으로 데려갈 이가 없어 절망하던 때에 예수께서 “네가 낫기를 원하느냐?”라고 묻고는 곧 병을 고쳐주셨다고 말했습니다.
바디매오라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그는 태어날 때부터 소경이었는데 예수께서 그의 눈을 낫게 하셨다고 했습니다.

나는 시몬 베드로에게 말했습니다.
“이 사람들이 말하는 것은 예수께서 살아계실 때에 위대함을 증명하는 것일 수 있어요. 하지만...”
베드로는 내말을 막으며
“그러나 주님은 오늘도 살아 계십니다”
그들이 예수님을 보았고, 만졌고, 그와 함께 먹었다는 것, 그리고 오백 명도 넘는 사람들이 부활한 후에 목격했다는 사실을 나는 믿기 어려웠습니다“
나는 베드로에게 내게도 희망이 있는지 물었습니다.
“저도 용서받을 수 있을까요? 영광의 왕이 달려죽은 십자가를 만든, 나 같은 사람에게도 하나님께서 자비를 베푸실까요?”

“당신의 죄가 주홍빛같이 붉을지라도 눈처럼 하얗게 하실 것입니다‘

베드로의 대답을 들었을 때 나는 뛸 듯이 기뻤습니다.
오늘 행복한 사람은 나뿐만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십자가를 만든 사람은 나만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모든 거짓말쟁이들은 십자가를 만든 사람입니다.
모든 도둑들도 십자가를 만든 사람입니다.
모든 간음한 자들도 십자가를 만든 사람입니다.
모든 교만한 자들은 십자가를 만든 사람입니다.
모든 비방하는 자들도 십자가를 만든 사람입니다.

그러나 주님이 주신 기쁜 소식은 당신이 더 이상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당신은 십자가를 만드는 사람이 아니라 십자가를 지고 가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예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만일 너희가 너희 죄를 자백하면 그는 미쁘시고 의로우사 너희 죄를 용서하고 너희를 모든 불의에서 깨끗하게 하실 것이라”

고백하게 하신, 고맙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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