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시 39:1-13)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다고 생각했는데, 어느덧 한 해를 마무리하는 12월입니다.
지금은 주님이 이 땅에 오심을 기다리는 대림절 기간입니다. 이번 주 토요일이 성탄절입니다.
한 해를 잘 마무리 하고, 또 다시 새로운 한 해를 준비하여야 하는 귀하고 소중한 시간입니다.
“우리에게 우리 날 계수함을 가르치사 지혜로운 마음을 얻게 하소서”(시 90:12)라고 기도했던 모세처럼, 지혜로운 마음을 가지고, 마지막 얼마 남지 않은 날들을 잘 마무리해야 할 것 같습니다.
예전 같지는 않지만, 성탄절이 다가옴에 따라서, 아기 예수님으로 오신 우리 주님을 기다리는 설레는 마음과 새로운 한 해가 하루하루 다가옴에 대한 소망이 교차하는 시간입니다.
오늘 설교 제목은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입니다. 한번 따라해 볼까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시편 146:3-5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로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했습니다.
올 한 해, 어디에 소망을 두고 살아 오셨습니까? 사람을 의지하셨습니까? 부모나 자녀를 의지하셨습니까? 재물을 의지하셨습니까? 권력을 의지하셨습니까? 아니면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 오셨습니까? “하나님에게 자기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다”고 했습니다.
사람에게 있어서 소망은 삶의 원동력이고, 역경을 이기는 힘입니다. 소망이 있기에, 때로는 힘들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다시 일어설 수가 있습니다. 낙심할 수밖에 없고, 주저앉을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 처해 있다 할지라도, 다시 일어설 수 있는 것은 우리에게 소망이 있기 때문입니다. 소망은 삶의 원동력입니다. 우리를 붙들어 줍니다.
사도 바울은 복음을 전파하면서 말로 다 할 수 없는 숱한 어려움을 겪었습니다.
고린도후서 11:24-27절을 보면, “유대인들에게 사십에서 하나 감한 매를 다섯 번 맞았으며 세 번 태장으로 맞고 한 번 돌로 맞고 세 번 파선하고 일 주야를 깊은 바다에서 지냈으며 여러 번 여행하면서 강의 위험과 강도의 위험과 동족의 위험과 이방인의 위험과 시내의 위험과 광야의 위험과 바다의 위험과 거짓 형제 중의 위험을 당하고 또 수고하며 애쓰고 여러 번 자지 못하고 주리며 목마르고 여러 번 굶고 춥고 헐벗었노라”고 했습니다.
이러한 숱한 어려움을 당하면서도, 굴복하지 않고, 포기하지 않고, 좌절하지 않고, 극복할 수 있었던 것은,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가 되신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었기 때문입니다.
디모데전서 4:10절을 보면, “이를 위하여 우리가 수고하고 힘쓰는 것은 우리 소망을 살아계신 하나님께 둠이니 곧 모든 사람 특히 믿는 자들의 구주시라”고 했습니다.
바울 사도는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았기에, 숱한 고난과 어려움을 당하였지만, 극복할 수 있었습니다.
왈츠라는 화가는 “소망”이라는 그림을 그렸습니다. 둥근 지구 위에 한 젊은 여인이 외롭게 홀로 앉아 있습니다. 그 여인은 앞을 보지 못하는 소경이었습니다. 그녀는 비파를 연주하고 있는데, 그 비파의 줄은 다 끊어지고, 오직 한 줄만이 남아 있었습니다. 여인의 뒤에는 희미한 별빛이 반짝이고 있습니다. 이 여인은 우주에 외로이 혼자 앉아, 보지 못하는 눈으로, 한 줄 남은 비파로 연주를 하고 있는 것입니다. 왈츠는 하나 남은 비파줄이야말로, 그녀의 소망임을 나타냈던 것입니다. 절망 중에 있던 사람들이, 이 그림을 감상하다가, 용기와 희망을 갖고, 새로운 삶을 시작했다고 합니다. 오늘 우리 삶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이 우리의 소망이 되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물이나, 권력이나, 사람이 아닌,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소망”은 “어떤 일을 바람 또는 그 바라는 것”을 의미합니다.
소망은 하나님을 믿는 사람이거나 믿지 않는 사람이거나, 모두에게 대단히 중요합니다. 무엇에 소망을 두고 사느냐에 따라, 그 사람의 삶의 방향이 달라집니다.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사는 사람은 무엇을 하든지, 그의 생각이나 행동은 온통 재물에 집중되어 있습니다. 재물을 얻으면 기뻐하지만, 재물을 얻지 못하거나, 재물을 잃어버리면, 세상의 모든 것을 잃어버린 것처럼, 낙심하고 좌절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그리스도인은 세상 사람들이 갖는 그런 소망을 가지고 있어서는 안될 것입니다. 그리스도인은 그리스도인다운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소망은 세상의 풍조와 죄와 유혹에서 우리의 신앙을 지킬 수 있는 힘이 됩니다.
그렇다면 그리스도인의 소망이 무엇일까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리스도인은 당연히 하나님께 소망을 두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재물이나 사람이나, 환경이나, 명예나 권력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주인되시는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만이 우리의 영원한 소망이 되실 수 있을까요?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살아계신 분이기 때문입니다
시편 62:5-6절에 “나의 영혼아 잠잠히 하나님만 바라라 무릇 나의 소망이 그로부터 나오는도다 오직 그만이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구원이시요 나의 요새이시니 내가 흔들리지 아니하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여러분! 천국과 지옥이 있는데, 지옥문 앞에 무엇이라고 쓰여 있을까요?
“이곳에 들어가는 자는 모든 소망을 버려라”
이 말은 단테의 ‘신곡’에 나오는 지옥문 입구에 쓰여진 말입니다. 단테는 ‘신곡’에서 소망이 있는 한‘ 지옥이 아니며, 지옥은 어떠한 소망도 없고’ 절망뿐이라고 했습니다. 키엘케골은 “절망은 죽음에 이르는 병”이라고 했습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소망은 이렇게 중요합니다.
2차 세계대전 당시 영국과 미국의 포로 2만명이 수용되어 있던 일본군 포로수용소에서 약 8,000명의 포로가 사망했는데, 대부분은 영양실조도, 질병도 아닌 순수 절망으로 죽었다는 사실이, 전후 조사에서 판명되었습니다. 절망은 살아갈 용기와 힘을 상실하게 만드는 것입니다.
오늘 우리 삶의 소망은 무엇입니까? 무엇을 소망하며 살아가는 것입니까?
여러분! 올 한 해 즐거웠습니까? 기쁘고 즐거운 일이 많았습니까? 아니면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더 많았습니까?
잠언 10:28절을 보면, “의인의 소망은 즐거움을 이루어도 악인의 소망은 끊어지느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면, 즐거움을 이룬다는 것입니다.
늘 기쁘고 즐거운 일만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하는 일마다 다 잘되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그러나 세상은 우리의 생각대로, 우리의 뜻대로 잘 되지 않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살아계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감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스라엘의 두 번째 왕이었던 다윗은 고난과 영광을 경험한 사람이었습니다. 이스라엘에 최고 통치자의 영광을 누리기도 했지만, 왕이 되기까지, 그리고 왕이 되고 난 이후에도, 그가 겪은 고통과 시련은, 다른 왕들에 비할 바가 아니었습니다.
사울왕의 끝없는 추적, 블레셋과의 멈추지 않는 싸움, 아들 압살롬의 반역 등, 헤아리기 어려운 시련과 고통이 그의 앞을 가로막았습니다. 그때마다 그 어려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낸 것은 무엇이었을까요? 고통을 이겨낸 비결은 과연 무엇이었을까요? 무엇으로 그 어려운 시련과 고통을 이겨낼 수 있었을까요?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아멘.
그렇다면 하나님은 왜 우리의 소망이 되실까요? 왜 다윗은 자신의 소망을 오직 하나님께 두었을까요? 본문 속에서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습니다.
첫째, 연약하고 허무한 존재임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4-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종말과 연한이 언제까지인지 알게 하사 내가 나의 연약함을 알게 하소서 주께서 나의 날을 한 뼘 길이만큼 되게 하시매 나의 일생이 주 앞에는 없는 것 같사오니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니이다” 아멘.
다윗은 4절에서 두 가지를 알게 해 달라고 했습니다.
첫째는, 자신의 종말과 연한입니다. 세계의 종말이 있고, 우주의 종말이 있고, 국가의 종말이 있는 것처럼, 개인도 종말이 있습니다. 그리고 그 햇수가 한정되어 있습니다.
시편 90:10절을 보면 “우리의 연수가 칠십이요 강건하면 팔십이라도 그 연수의 자랑은 수고와 슬픔뿐이요 신속히 가니 우리가 날아가나이다”라고 했습니다.
시간이 지나면, 권력도, 부귀도, 영광도, 세상도, 인생도 끝이 있다는 것이, 다윗의 고백입니다.
둘째는, 자신의 연약함입니다.
한 나라의 왕이 왜 연약합니까? 강자 중에 강자, 가진 자 중의 가진 자, 누리는 자 중의 누리는 자, 지배자를 지배하는 자가 왕입니다.
여러분! 롯데마트에서 5,000원에 판매했던 ‘통큰치킨’ 사 드셔 보셨습니까? 보통 치킨 가격이 15,000원 정도 하지 않습니까? 그런데 5,000원에 판매를 했습니다. 아침부터 줄을 서서, 번호표 받아 가지고, 기다려야 한다고 했습니다. 주변에 있는 소상인들을 비롯한 여론의 비난 소리에 판매를 중단했지만, 이명박 대통령이 한 마디 했습니다. 뭐라고 했습니까?
“치킨 가격이 비싼 것 같다”
그 한 마디로, ‘한국프랜차이즈협회’에서도 기업비밀에 속하는 구입원가를 공개하고, “우리는 폭리를 취하지 않는다”고 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은 결코 연약하지 않습니다. 한 마디에 산천이 떨지 않습니까? 그런데 다윗은 자신을 연약한 자라고 고백합니다. 다윗은 “사람은 그가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다”라고 했습니다.
누구에게나 든든하게 서 있는 것 같이 늙지도 않고, 실패하지도 않고, 잘못되지도 않을 것 같은 전성기가 있습니다. 그때가 “든든히 서 있는 때”라고 말할 수 있습니다. 청춘을 자랑하는 때일 수도 있습니다. 건강을 과시할 때일 수도 있습니다. 성공하여 명성을 떨칠 때일 수도 있습니다. 그런데 그렇게 든든히 서 있는 때에도 진실로 모두가 허사뿐이라는 것입니다.
다윗은 자신을 연약한 존재로 보았기 때문에, 자신을 손 넓이만한 존재, 없는 것 같은 존재로 보았고, 모든 것이 허사뿐임을 알았기에, 교만해지지 않고 겸손해질 수 있었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하나님께 소망을 둘 수 있었습니다.
여러분! 다윗처럼 파란만장한 삶을 산 사람이 어디 있습니까? 베들레헴의 작은 농가에, 이새의 여덟 번째 아들로 태어났습니다. 어릴 적에는 목동으로 지내다가, 사무엘 선지자에게 기름부음을 받고, 블레셋의 골리앗을 무찌르는 등, 온 이스라엘 백성들의 인기를 독차지하였습니다. 그러다가 사울 왕의 미움을 사서, 20여 년의 세월을 쫓겨다니기는 했지만, 마침내 이스라엘의 왕이 되었습니다. 또한 수많은 전쟁을 치르면서도, 한번도 진 적이 없는 용맹스러운 왕으로 한 시대를 살았던 사람입니다. 이처럼 인생을 살면서, 당대 최고의 권력을 누려본 인생이지만, 그 역시 하나님 앞에서는 연약한 한 인간에 불과함을 깨달았습니다. 이에 다윗이 진지하게 고백합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둘째, 재물에 소망을 두면 안된다는 것을 알았기 때문입니다.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진실로 각 사람은 그림자 같이 다니고 헛된 일로 소란하며 재물을 쌓으나 누가 거둘는지 알지 못하나이다” 아멘.
다윗은 인간이란 그림자 같은 존재, 헛된 일로 소란스러운 존재임을 알았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 손에 있는 재물, 내가 왕으로서 쌓아놓은 부귀와 보화, 사실 이것들이 내 손에 있지만 언제 내 손을 떠날는지 모르는 것들이구나” 바로 이러한 사실을 다윗이 깨닫게 되었습니다. 그리고는 이런 결론을 내렸습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그렇습니다. 사람은 헛된 일로 분주합니다. 재물을 쌓고, 명예를 얻고, 권력을 거머쥐는 일에, 사람은 자기 생명까지 겁니다. 그리고 탐욕으로 시작된 명예와 부와 권력에 대한 집착은, 아무리 채우고 채워도, 채울 수가 없습니다.
많은 재물을 가져도, 높은 자리에 올라가도, 만족하지 못한 채, 사람은 계속 분주하게, 허탄한 것들을 추구하게 됩니다. 이처럼 세상 일에는 만족함이 없습니다. 아무리 높은 권세를 가진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내심 불안하고 안식이 없습니다. 평안이 없습니다. 이들이 평생을 걸쳐 이룬 업적과 명성이, 하루 아침에 허사가 되고 말 때가 많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잃었을 때, 인생의 무상함을 맛봅니다. 건강을 잃고 죽음 앞에 섰을 때, 권력을 하루아침에 잃어버리고 초라한 모습이 되었을 때, 재물을 잃었을 때, 사랑하는 자녀를 잃었을 때, 내가 사랑하고 믿었던 그 무엇을 잃었을 때, 청춘을 바쳤던 직장으로부터 내쫓김을 당했을 때, 노력과 땀과 눈물로 일으켰던 사업장이 한 순간에 무너졌을 때, 우리는 슬픔과 비애, 더 나아가서는 절망에 빠지기도 합니다. 그러나 시인은 슬퍼하지만 않고, 하나님을 향하여 나아갑니다.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이 말은 이 세상 것에서는 바라고 의지할 것이 하나도 없다고 하는 말입니다. 오직 하나님께만 기대할 것이 있다고 하는 말입니다. 하나님 없는 인생이란, 유한하고, 헛되며, 별 것이 아님을 절실히 깨달았습니다.
블레셋의 골리앗 장군도 물맷돌로 쉽게 이겼었고, 수많은 전쟁에서 승승장구했던 장군이요, 왕이지만, 이제 돌아다보니, 그런 싸움이 부질없는 헛된 것들이었음을 알았던 것입니다.
그래서 다윗은 세상에서 얻는 행복을 단념하고, 세상으로부터의 모든 기대도 포기했습니다.
다윗이 고백하기를 “주여 이제 내가 무엇을 바라리요. 감각과 시간에 속한 것들로부터는 아무 것도 기대할 것이 없습니다. 나는 이 땅으로부터는 아무 것도 소원할 것이 없으며, 희망할 것도 없습니다. 내가 비록 지금까지는 어리석게도 세상으로부터 이런저런 일을 즐겨 기대하던 적이 이따금 있었지만, 이제 내 마음이 달라졌습니다”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다윗은 세상에서 찾던 행복을, 하나님 안에서 찾고 붙잡겠다고 결심하는 것입니다.
어떤 순례자가 순례의 길을 가고 있었답니다. 광야 길을 가고 있는데, 인가는 눈에 뜨이지 않고, 해는 뉘엿뉘엿 기울어지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드디어 멀리 인가가 한 채 보였습니다. 순례자는 그 집 쪽으로 허겁지겁 나아갔습니다. 그 집은 사람이 살지 않고, 여기저기 벽이 허물어지고, 거미줄이 처져 있었습니다. 그래도 밤이슬을 피하기 위해, 순례자는 한 방을 대충 치우고, 피곤한 몸을 눕혔습니다. 그런데 막 잠이 들려고 하는 순간, 옆방에서 웅성거리는 소리가 들려왔습니다. 깜짝 놀라 문틈으로 옆방을 들여다보니, 광야에 살고 있는 도깨비들이, 다 옆 방에 모여, 무슨 의논들을 하는 것 같았습니다. 놀란 순례자는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기 시작했습니다.
“주님! 저 도깨비들을 좀 쫓아 주시옵소서!”
그 소리를 들은 도깨비들은 도망가기는 커녕, 순례자 옆에 다가와, 그의 흉내를 내며, 기도를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더욱 놀란 순례자는, 성경을 꺼내어 큰 목소리로 읽기 시작했습니다. 그랬더니 도깨비들도 어디서 성경을 가져오더니, 따라서 성경을 읽기 시작하는 것이었습니다. 이번에는 순례자는 찬송을 부르기 시작했습니다. 그러나 도깨비들도 순례자를 따라, 찬양을 부르는 것이었습니다. 도깨비들을 쫓아야 되겠는데, 쫓을 방도가 없었습니다. 그런데 그때, 그에게 한 가지 생각이 떠올랐습니다. 순례자는 큰 목소리로 말했답니다.
“지금부터 헌금을 하겠습니다”
그랬더니 옆방에 있던 도깨비들이 모두 도망가 버리고 말았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여러분은 어떠십니까? 무엇을 위해 달려 왔습니까? 무엇에 소망을 두고 지금껏 살아 오셨습니까? 이 땅에 평화의 왕으로 오신 예수님을 만남으로 기쁨과 즐거움으로 살아가십니까?
아니면 아직도 세상 사람들의 행복과 기쁨을 위해, 그 귀한 생명을 살아가십니까?
하늘을 바라보며 살다가, 큰 별을 발견한 동방박사들은 만사를 제쳐두고, 예수님이 계신 그 머나먼 길을 달려와서 경배했습니다. 예수님의 사랑을 보는 맑은 눈이 열려졌기 때문입니다.
우리 교회 성도님들은 오직 주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가시기를 바랍니다.
“주님! 내가 이 세상으로부터 무엇을 바라겠습니까? 오직 나의 소망은 주께 있나이다”
여러분! 소망을 주께 두고 살아갈 때, 우리들이 주장할 수 있는 것은 무엇입니까?
우리의 모든 죄에서 건져주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죄를 용서해 달라고 주장할 수 있습니다.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나를 모든 죄에서 건지시며 우매한 자에게서 욕을 당하지 아니하게 하소서” 아멘.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주는 나를 용서하사 내가 떠나 없어지기 전에 나의 건강을 회복시키소서” 아멘.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이유는 무엇입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때문입니다. 왜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셨습니까? 바로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시기 오셨습니다. 이것이 바로 기쁜 소식인 것입니다.
10-11절 말씀에 “주의 징벌을 나에게서 옮기소서 주의 손이 치심으로 내가 쇠망하였나이다 주께서 죄악을 책망하사 사람을 징계하실 때에 그 영화를 좀먹음 같이 소멸하게 하시니 참으로 인생이란 모두 헛될 뿐이니이다”고 했습니다.
그리고 시편 32:3-4절을 보면, “내가 입을 열지 아니할 때에 종일 신음하므로 내 뼈가 쇠하였도다 주의 손이 주야로 나를 누르시오니 내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나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 앞에 죄 문제가 해결되지 않았을 때, 다윗은 뼈가 쇠하였다고 했습니다. 진액이 빠져서 여름 가뭄에 마름 같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그러나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다음에는 복있는 사람이 되었다고 했습니다.
“허물의 사함을 받고 자신의 죄가 가려진 자는 복이 있도다 마음에 간사함이 없고 여호와께 정죄를 당하지 아니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시 32:1-2)
우리의 재물이 우리의 죄를 용서해 주지 않습니다. 우리의 권력이 우리의 죄를 없애주지 않습니다. 다 들춰냅니다. 높은 자리에 올라가는 사람들, 청문회 하는 것 보시지 않습니까? 아무 것도 없다고 했는데, 조사해보면, 별 것이 다 드러납니다. 권력이 죄와 허물을 감추지 못합니다.
사람들은 죄 때문에 괴로워하고, 죄책감 때문에 두려워합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우리를 죄와 허물에서 용서해 주셨습니다. 주님의 십자가의 보혈로 우리의 죄를 이미 용서해 주셨습니다. 우리의 죄를 이미 덮어 주셨습니다. 우리에게 이미 성령의 생명의 법을 허락해 주셨습니다. 죄와 죄책감이 아니라, 자유를 주셨습니다. 그래서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만 바라보고, 하나님께 나와서, 죄 문제를 해결한 사람들은 소망이 있습니다.
우리가 하나님께 소망을 두는 또다른 이유는 무엇입니까?
하나님께서 우리의 기도에 응답해 주시기에, 우리에게는 소망이 있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여 나의 기도를 들으시며 나의 부르짖음에 귀를 기울이소서 내가 눈물 흘릴 때에 잠잠하지 마옵소서 나는 주와 함께 있는 나그네이며 나의 모든 조상들처럼 떠도나이다” 아멘.
한번은 하나님께서 천사에게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을 가져오도록 명령을 내렸습니다.
세상으로 내려온 천사는 맨 처음 금 덩어리를 찾았으나 “아니야, 이런 것은 세상에 얼마든지 있는거야”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래서 다시 찬란하게 빛나는 다이아몬드를 움켜쥐었으나, 역시 잘 생각해 보니, 그것도 아닌 것 같았습니다. 세상에서 제일 귀한 것을 찾아, 세상을 두루 살폈지만, 가엾게도 찾을 수가 없었습니다. 그때 마침 어떤 곳으로부터 어떤 부르짖음이 들려 왔습니다. 소리나는 곳으로 가보니, 어떤 사람이 꿇어앉아 자기의 죄를 회개하고 있었습니다. 눈물을 흘리며, 아주 간절히 기도하고 있었습니다. 천사는 외쳤습니다.
“맞아. 바로 저거야. 회개의 눈물이야말로 가장 귀한 것이야”
천사는 금으로 만든 그릇에 그 눈물을 담아 하나님께로 가져갔다고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을 믿는 성도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세상의 권력이나 명예나 재물에 소망을 두고 살아가기보다, 영원토록 변함없으신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십시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갈 때,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시고, 덮어 주시고, 뿐만 아니라,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하는 모든 것마다 다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감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하늘의 복과 땅의 기름진 복을 다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소망이신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랑합니다.
오직 하나님만 바라보며, 하나님께 소망을 두고, 살아가는 주의 자녀 삼아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합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