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시 118:5-9)
할렐루야! 하나님께 예배드리기 위하여 주의 전에 나온 여러분! 은혜 받기 위하여 이 자리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에게 하나님께서 예비해 놓으신 풍성한 은혜가 임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성경의 장들 중에서 가장 짧은 장은 어디일까요? 시편 117편입니다. 2절밖에 안됩니다.
그럼 성경의 장들 중에서 가장 긴 장은 어디일까요? 시편 119편입니다. 176절까지 있습니다.
그럼 성경의 가장 중심 되는 장은 어디인지 아십니까? 시편 118편입니다.
시편 118편 이전까지의 전체장은 594장이고, 시편 118편 이후의 전체장은 594장입니다.
이런 이야기가 있습니다. 지어낸 이야기겠지만 한번 들어보십시오. 어느 부부가 있었습니다. 하루는 부인이 남편에게 뜬금없는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나, 어머니, 그리고 아들 셋이 물에 빠지면 누구부터 건져줄 거예요?” 남편은 한참 난감한 표정으로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했습니다. “그야 어머니부터 건져 드려야지.” 부인은 불만스러웠지만 반발할 처지가 아니라 다시 물었습니다. “그 다음에는요?” 남편은 한참 또 생각하더니 할 수 없이 대답을 했습니다. “아들을 건져줘야지” 그랬더니 부인이 속이 상해서 자기가 그런 존재밖에 안 되냐고 따졌습니다. 그 후 부인은 스스로 고민에 빠졌고, 나중에는 우울증 증세까지 보였습니다. 혼자 괴로워하다가, 정신과 의사를 찾아가, 자초지종을 이야기했습니다. 의사 역시 난감한 표정으로 한참 고민하다가, 이렇게 대답을 했답니다.
“부인, 좋은 생각이 있습니다. 차라리 수영을 배우시죠”
누구나 다른 이들이 자기 편이 되어 주기를 바라지만, 그게 쉬운 일이 아니라는 사실입니다.
우리가 살아가면서 가장 유치하고 보기 흉한 것이 있다면 무엇일까요? 그 중에 하나가 “내 편”, “네 편”하면서 편을 갈라서 싸울 때입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할 수 있으면 많은 사람들을 자기 편으로 만들려고 애를 쓰고 있습니다. 그래서 어떻게 해서든지 강한 배경과 후원자, 스폰서를 얻으려고 혈안이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우리가 아무리 강한 배경과 좋은 후원자를 가지고 있다고 할지라도, 정작 우리가 힘이 들고 어려울 때에, 우리 자신의 입장을 이해해 주고, 생각해 주고, 대변해 준다면, 힘이 저절로 나겠지만, 믿었던 사람이 돌아서는 것처럼, 비참한 일은 없을 것입니다. 내 편이 되어 나의 입장을 대변해 준다면, 큰 힘이 나겠지만, 상대방 편이 되어 나를 공격한다면, 두 어깨가 축 쳐질 것입니다. 있던 힘도 다 빠질 것입니다. 믿는 도끼에 발등이 찍히는 것이지요.
시대를 따라, 바람을 따라, 정권에 따라, 사람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인심은 변하게 되어 있습니다. 그러나 나를 사랑하시는 하나님은 결코 변하지 않습니다. 히브리서 13:8절을 보면 “예수 그리스도는 어제나 오늘이나 영원토록 동일하시니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우리의 마음은 바뀌어도 하나님의 마음은 변하지 않습니다.
그렇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다 변하고, 세상의 인심은 다 변해도 결코 변하지 않는 분이 계시는데 바로 그분이 우리 하나님이십니다. 그들은 영원토록 나와 함께 하실 뿐만 아니라 내 편이 되어 주십니다. 나를 편들어 주십니다.
이러한 측면에서 볼 때 본문의 말씀은 우리에게 많은 위로와 소망이 되는 말씀입니다.
본문의 말씀은 정확하게 누가, 언제, 어떤 배경과 상황 가운데 기록한지는 잘 알려져 있지는 않지만 성경학자들은 대략 다윗이 온갖 시련을 극복하고, 마침내 왕위에 오르게 되었을 때에, 지금까지 지켜주신 하나님의 구원의 은총과 능력을 찬양한 것으로 추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가 기억할 것은 누가 언제 왜 기록했는지는 분명히 알 수는 없지만, 본문 6-7절에서 반복되고 있는 기자의 고백이, 우리의 마음을 뭉클하게 만들고 있다는 사실입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고 반복해서 고백하고 있습니다.
대부분의 성경학자들은 본문의 기자가 다윗이라고 말하고 있는데, 만약 다윗이라고 가정한다면, 본문의 말씀이 더욱 더 생생하게 이해가 됩니다. 다윗은 참으로 많은 사람들로 인하여 큰 어려움과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 모든 어려움과 고통들을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극복하였습니다. 다윗은 자신의 삶 속에서 늘 함께 하시는 하나님을 체험하였습니다. 다윗은 내 편이 되어 주시는 하나님을 통하여 삶의 승리를 경험했습니다. 그러기에 다윗은 “여호와는 내편이시라”고 고백하지 아니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런데 이러한 다윗의 고백은 우리에게 필요합니다. 오늘 예배를 드리는 우리에게 다윗과 같은 고백이 있어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라는 고백을 할 수 있어야 합니다. 나를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을 온전히 신뢰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과 온전히 동행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 하나님을 온전히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자이며 목회자인 챨스 스펄전 목사님은 “150개 시편의 모든 시가 다 아름답고, 큰 영적 의미가 있지만, 시편 118편이야 말로 나의 가슴에 가장 많이 와 닿고, 용기를 주고, 힘을 줍니다. 시편 118편의 시는 나의 시입니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옥같은 시편이 150편이나 있는데, 여러분이 가장 사랑하는, 좋아하는, 마음에 와 닿는 시편은 어떤 시편입니까?
사랑하는 여러분! 오늘 본문의 말씀은 다른 사람을 향한 메시지가 아니라, 바로 우리 자신을 향한 메시지입니다. 그런데 무엇보다 중요한 것은 하나님을 머리로만 만나지 말아야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서 하나님을 만나고, 체험하고, 경험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할 때에 다윗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스펄전 목사님과 같은 고백을 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 여러분은 하나님은 내 편이신 것을 믿습니까? 그분을 확신합니까? 그분을 의지하십니까? 그분을 사랑하십니까? 그분의 인도하심에 만족하십니까?
사람들은 어떤 어려움에 직면하면 당황하게 됩니다. 그래서 어쩔 줄을 모르고 “그 일을 어떻게 대처할까?” 하면서 몸들 바를 모르게 되어, 아무런 행동도 할 수가 없을 때가 있습니다. 살다보면 이러지도 못하고 저러지도 못하는 경우가 있다는 말씀입니다. 그럴 때는 단 한 가지 방법밖에는 없습니다. 무조건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입니다. 하나님께 나아가는 것이, 가장 안전하고 좋은 방법입니다. 하나님 편에 서야 한다는 말씀입니다.
사실 “어느 편에 설 것인가” 하는 것은 매우 중요한 문제입니다. 왜냐하면 잘못된 쪽에 서 있음으로 해서, 거기서 모든 문제가 발생하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여러분, 진리 편에 서야 합니다. 진리가 우리를 죄에서 자유케 하고, 죄에서 자유케 되는 것이 세상의 문제를 해결할 수 있는 중요한 열쇠이기 때문입니다. 줄을 하나님 편에 서야 합니다. 줄 잘 서야 합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한 번 따라해 볼까요?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는 무엇인지에 대해서 함께 생각해 보면서, 하나님이 오늘 우리에게 주시는 은혜를 나누고자 합니다.
첫째,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응답하여 주십니다.
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고통 중에 여호와께 부르짖었더니 여호와께서 응답하시고 나를 넓은 곳에 세우셨도다” 아멘.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부르짖어 기도하면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기도응답은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기도는 하나님이 우리 믿는 자에게 주신 특별 열쇠 곧 만능열쇠와 같습니다. 그래서 예수님께서는 마태복음 7:7-8절에서 “구하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주실 것이요 찾으라 그리하면 찾아 낼 것이요 문을 두드리라 그리하면 너희에게 열릴 것이니 구하는 이마다 받을 것이요 찾는 이가 찾아낼 것이요 두드리는 이에게는 열릴 것이니라”고 약속하시고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기도는 하나님을 내 편으로 만드는 것이 아니라 내가 하나님의 편이 되는 것입니다. 내가 먼저 하나님 편이 되어야 합니다.
미국에서 남북전쟁이 한창 치열할 때의 일입니다. 노예 해방을 내건 링컨 대통령이 북군을 이끌며, 남군과 대치했지만 ‘로보트 리’ 장군이 이끄는 남군을 쉽게 굴복시키지 못하고, 오히려 남군에 의해 북군이 치명타를 입고 있었습니다. 죽어가는 병사들을 바라보며 가슴 아파하던 링컨은 이 전쟁이 사람의 힘으로 종식될 수 없다는 사실을 절감하고 하루 세 시간 이상을 하나님께 매달려 기도했습니다.
링컨 대통령이 기도에 매달리자 이를 본 측근의 각료들은 자신들도 “북군을 위해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달라는 기도를 하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링컨은 정색을 하고 그들의 제의를 거절하면서 오히려 그런 기도는 아예 하지 말아달라고 간곡히 당부하는 것이었습니다. 대통령이 흔쾌히 승낙할 줄 알았던 각료들은 어리둥절했습니다. 그러면 어떻게 기도하기를 원하느냐고 재차 묻자, 링컨은 “하나님이 우리 편이 되어 달라고 기도하지 말고, 우리가 하나님 편이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길이 없습니까? 사방이 막혔습니까? 눈을 들어 위로 난 길을 활용하시기를 바랍니다. 그 길은 언제든지 열려 있습니다. 그 길은 하나님이 만드신 길입니다. 그 길을 가려면 먼저 하나님께 무릎을 꿇고 기도하는 사람이 되시기를 바랍니다. 때로는 사람이 기도할 마음만 먹어도 응답이 될 때가 있습니다. 하나님은 기도를 작정만 해도 응답하여 주십니다.
“그들이 부르기 전에 내가 응답하겠고, 그 들이 말을 마치기 전에 내가 들을 것이며”(사 65:24)
우리가 부르기 전에 응답하시고, 우리가 말을 마치기 전에 들어주시는 분이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성경에는 수많은 곳에서 기도하라, 부르짖으라, 명령하고 계십니다. 그러면서 응답하시겠다고 약속하십니다. 그런데도 기도를 안 하거나 하지 못하는 이유는 우리가 하나님의 능력을 믿지 못해서입니다. 의심하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기도만이 우리의 문제가 해결 될 수 있는 열쇠임을 잊지 말아야 합니다. 기도 외에는 이런 유가 나갈 수 없다고 하신 예수님의 말씀을 명심해야 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기도를 통하여 하나님을 내편으로 만들려고 하지 말고 기도를 통하여 내가 먼저 하나님의 편이 되면 하나님께서 반드시 응답하여 주실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크고 은밀한 일을 경험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둘째,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아멘.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로 하여금 두려움이 없는 삶을 살게 하십니다. 다른 번역을 보면, “여호와께서 나를 돕기 위해 내 곁에 계시도다”라고 되어 있습니다. 이는 하나님이 친히 나를 도와주시기 위해서 내 옆에 계신다는 말씀입니다.
다윗은 자신이 아무리 어렵고 힘들더라도 두려움이 없다고 고백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편이시고, 나를 돕는 자 중에 계시고, 더 나아가 나를 미워하는 자에게 하나님이 반드시 대가를 치르게 하시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기억할 것은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결코 그냥 나온 것이 아니라 삶 속에서 하나님의 도우심과 보호하심을 체험하였기 나올 수밖에 없는 고백입니다. 사실 하나님께서 함께 하심을 굳게 믿는 성도라면 두려움이 없습니다.
그래서 다윗은 시편 23:4절에서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라고 고백하였고, “군대가 나를 대적하여 진 칠지라도 내 마음이 두렵지 아니하며 전쟁이 일어나 나를 치려 할지라도 나는 여전히 태연하리로다”(시 27:3)라고 고백했습니다.
전지전능하신 하나님께서 불꽃같은 눈동자로 지켜주시고 보호하신다는 것을 깨닫는 성도라면 두려워해서는 안 됩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수 없이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세상 사람이 아무도 나를 알아주지 않고, 그 누구도 내 심정을 이해해 주지 않을지라도, 나를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께서는 나를 아시고, 이해해 주시고, 기꺼이 도와주십니다. 아낌없는 배려 속에서 주의 자녀들을 품안에 품으시고 그 넓으신 사랑으로 감싸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의 편이 되어 주시는 것은 그렇게 어려운 일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항상 우리 곁에 계시면서 우리를 유심히 살펴보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어려운 것은 내가 주님 편이 되는 것입니다. 항상 주님 편에 선다는 것이, 말처럼 그렇게 쉬운 일이 아닌 줄은 여러분도 잘 알고 계실 것입니다. 어떤 때는 주님 편에 서 있다고 생각했는데, 알고 보니 주님 반대편에 서 있을 때도 있었고, 주님 편에서 일한다고 여겨 왔는데 가만히 생각해 보니 나 자신을 위해 살아온 것이었음을 발견하게 됩니다. 주님만을 위해 살겠노라고 했지만 여전히 내 욕심만 채우고 있었던 나를 발견하고 놀랄 때도 있습니다. 또 일이 잘 풀릴 때는 주님이 내 편에 계시는 것 같지만, 일이 꼬일 때는 그렇지 않은 것 같아서, 우리의 마음이 종잡을 수 없는 경우가 얼마나 많습니까?
우리 예수님은 사람들처럼 아침에 다르고, 점심때 다르고, 저녁때 다르듯이, 그렇게 변덕스러운 분이 아니십니다. 하나님은 어제나 오늘이나 변함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한 치의 오차도 없으십니다. 실수도 없으시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침도 없으십니다. 일정하게, 정확하게, 균등하게 변함없이 섭리해 나가시는 분이십니다.
그런데 여러분은 이러한 하나님이 내 편이라는 확신을 갖고 계십니까? 혹시 아닐 수도 있다는 생각을 하고 계시지는 않습니까? 그런 생각을 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내 편이십니다.
아브라함이 그랄 땅에 가서 살게 되었습니다. 예전에도 그랬듯이 아내 사라를 누이라 속여 그랄 왕 아비멜렉이 사라를 왕궁으로 불러들여 아내를 삼으려 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아비멜렉의 꿈에 나타나 그를 죽이겠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아비멜렉이 항의합니다. 그때 하나님이 그 사라를 돌려보내라 하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 편이십니다. 아브라함이 아무리 시원찮아도 하나님은 아브라함은 한 번도 책망치 않고 아비멜렉만 책망합니다. 결국 아비멜렉은 아브라함의 기도로 살게 됩니다. 솔직히 누가 잘못 했나요? 아브라함이 잘못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누구 편입니까? 아브라함 편이셨습니다. 이러한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공평하신 하나님이 때로 공평하지 않을 때가 있습니다. 그때가 어느 때냐 하면 바로 “아버지”이실 때입니다.
판사는 공평해야 합니다. 그러나 아버지에게는 내 자식과 남의 자식을 놓고 공평을 요구할 수 없습니다. 아버지는 자기 자식과 남의 자식을 놓고, 공평에 대해 갈등하지 않습니다.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제 자식을 사랑하십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못났어도, 잘난 옆집 자식보다 못난 내 자식에게 사랑이 갑니다. 아무리 내 자식이 무능해도, 아버지는 일방적으로 한 편에 치우치십니다.
한 아버지가 있었습니다. 아들이 나이가 되어 군대가 가게 되었습니다. 훈련소에서 한 달간 훈련을 하는데, 면회를 가서 아들이 다른 군인들과 함께 훈련하는 것을 지켜보았습니다. 훈련 도중 자기 아들만이 틀렸습니다. 아버지는 뭐라고 했을까요? “우리 아들만 맞고 다 틀리네”
그런 분이 바로 여러분의 아버지이시며, 내 아버지이십니다. 그분은 항상 내 편이십니다. 하나님은 내 편이십니다.
여러분! 내 편이신 하나님 아버지를 신뢰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이제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어 주심을 굳게 믿고 두려워하지 말기 바랍니다. 그런데 우리로 하여금 두렵게 만드는 것이 무엇이 있습니까? 주변에 있는 사람들입니까? 물질입니까? 건강입니까? 죽음입니까? 또한 자녀들의 장래 문제에 대한 두려움입니까? 그러나 결코 두려워하지 마시기 바랍니다.
이사야 43:1-3절에서 말씀하고 있는 것처럼,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물 가운데 지나고, 강을 건너고, 불 가운데 행할지라도, 이것이 우리를 해하거나 침몰하지 못하도록 함께 하신다고 분명하게 약속해 주셨습니다. 왜냐하면 우리를 불러서 하나님의 것으로 만들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렇기 때문에 하나님은 물과 강과 불 같은 장애물이 있어도 절대로 두려워하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사도 바울은 로마서 8:31-32절에서 “만일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시면 누가 우리를 대적하리요 자기 아들을 아끼지 아니하시고 우리 모든 사람을 위하여 내주신 이가 어찌 그 아들과 함께 모든 것을 우리에게 주시지 아니하겠느냐”고 말했습니다. 그러면서 “누가 우리를 고발하겠느냐? 누가 우리를 정죄하겠느냐? 누가 우리를 그리스도의 사랑에서 끊을 수 있겠느냐? 사망이나 생명이나 천사들이나 권세자들이나 현재 일이나 장래 일이나 능력이나 높음이나 깊음이나 다른 아무 피조물이라도 우리를 우리 주 그리스도 예수 안에 있는 하나님의 사랑에서 끊을 수 없다”라고 담대하게 고백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삶의 모든 두려움을 벗어버리고, 용기를 가지고 날마다 승리의 삶을 사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 아멘.
내 편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도와주십니다. 그래서 시편 121편의 기자는 1-3절에서 “내가 산을 향하여 눈을 들리라 나의 도움이 어디서 올까? 나의 도움은 천지를 지으신 여호와에게서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실족하지 아니하게하시며 너를 지키시는 이가 졸지 아니하시리로다”라고 말씀하고 있습니다. 천지를 지으신 하나님이 나를 도와주십니다. 졸지도 않으시고, 주무시지도 않으시고, 두 눈을 크게 뜨고, 우리를 보시며 지켜 주십니다.
그런데 우리가 주목할 것은 내 편이신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대적하고 미워하는 것을, 곧 하나님을 미워하고 대적하는 것으로 여기십니다. 따라서 내 편이신 하나님은 자기 백성을 대적하는 자는 친히 보응하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아무리 힘들고 어려워도 나를 도와주시는 하나님께서 내 편이 되신다는 것을 굳게 믿고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참으로 안타까운 것은 우리가 정작 하나님의 도움이 필요할 때에는 하나님을 찾지 않고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할 때가 많다는 사실입니다. 오늘 우리의 도움이 되시는 하나님이 계시는데 왜 주변의 사람들을 의지하려고 합니까?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을 의지하는 자를 도와주십니다. 우리의 모든 어렵고 힘든 것을 가지고, 십자가 앞에 나와 “하나님! 도와주세요”라고 간절히 간구할 때 절대로 외면하지 않으시고 도와주십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오늘 우리가 하나님을 먼저 찾지 않고 사람을 찾고, 다른 방법으로 문제를 해결하려고 하고 있지는 않습니까?
다윗이 사울을 피하여 다닐 때, 또한 아들 압살롬의 반역으로 인하여 피하여 다닐 때에, 항상 하나님의 도우심을 요청했습니다. 그때마다 다윗은 하나님의 도우심으로 말미암아 죽을 고비에서 살아나는 역사를 체험하였습니다.
여러분! 지금 여러분에게 도움이 필요합니까? 그렇다면 사람에게 도움을 구하기 이전에 먼저 내 편이신 하나님을 향하여 도움을 요청하시기 바랍니다. 그리하면 반드시 여러분을 하나님께서 도와주실 것입니다.
넷째, 내 편이신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피난처가 되십니다.
8-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 아멘.
다윗의 이러한 고백은 여호와 하나님밖에 피할 곳이 없다는 결론을 얻었기 때문입니다.
그 어디에도 안전한 곳이 없었고, 그 누구에게서도 평안을 보장받을 수 없었지만, 그러나 고통 중에 부르짖었더니 하나님이 버리지 않으시고, 응답해 주셨다는 겁니다. 그리고 자기 편이 되어주셨을 뿐만 아니라, 넓은 곳에 자기를 세워주신 것을 경험했기 때문에, 하나님만이 자신의 도움이시요, 하나님의 품만이 자신이 피할 수 있는 안전한 곳이라는 것을 절실하게 체험하고, 이렇게 고백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런데 사람들은 고난과 역경에 봉착하면 이리 뛰어보고 저리 뛰어보고 이것 해보고 저것 해보고 다 해보다가 안 되면 마지막으로 하나님을 찾아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것을 싫어하십니다. 심지어 사람이 자기 자신을 의지하고 신뢰하는 것도 싫어하십니다. 그러기에 위험이 닥칠 때 하나님께 피하고, 고난이 찾아 왔을 때 기도하여 부르짖어 기도해야 합니다. 이제까지는 사람을 의지하고 사람이 가진 재물이나 권세나 자식이나 지식이나 경험을 의지해서 살아 왔을지라도 지금부터는 하나님을 의지하며 사시기를 바랍니다. 먼저 하나님을 찾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여러분! 부모를 의지합니까? 자식을 의지합니까? 결국은 실망합니다. 혹 여러분에게 든든한 배경이 있습니까? 권력을 가진 자가 있습니까? 돈 많은 형제가 있습니까? 든든한 후원자가 있습니까? 경제적인 스폰서가 있습니까? 그들을 의지하고 싶습니까? 그러나 결국은 실망하게 됩니다. 하나님만이 우리의 힘이시고 소망이십니다. 그분이 우리 문제를 해결할 수 있도록, 모든 문제를 하나님께 맡기시기 바랍니다.
다윗은 말할 수 없는 어려움을 겪었던 사람입니다. 그러나 그는 승리의 사람이었습니다. 성공한 사람이었습니다. 그 비결이 바로 여호와 하나님께서 다윗의 편이 되어 주셨기 때문입니다. 그러기에 다윗이 부르짖어 기도할 때에 응답을 주셨습니다. 다윗은 두려워하지 아니했습니다. 다윗을 도와 주셨습니다. 다윗에게 피난처가 되어 주셨습니다.
우리도 다윗처럼 하나님을 의지하고 살아가야 합니다. 그럴 때 하나님은 우리를 위해 주시고, 도와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늘 여러분 곁에 계십니다. 단 한 순간도 여러분을 잊지 아니하시고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여러분들이 분주하게 살면서 잠시 하나님을 잊는다고 할지라도, 너무나 힘들고 어려워 한숨을 쉬고 있는 그 순간에도, 잠을 자는 그 사이에도, 절대로 하나님은 여러분을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그리고 내 편이신 하나님은 여러분에 곁에서 여러분의 작은 신음 소리에도 응답하여 주시고, 여러분의 두려움을 다 제거하여 주시고, 또한 삶의 모든 것을 다 도와주시고, 언제나 우리의 피할 피난처가 되어 주십니다.
여러분! 참 좋으신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깨닫고, 언제나 하나님께 감사하며, 찬양하며, 그리고 항상 곁에 계시는 하나님, 편들어 주시는 하나님으로 인하여 만족한 삶을, 평안한 삶을, 풍성한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의 도움이시요 피난처이신 하나님 아버지!
세상을 바라보며 세상으로 도움으로 살고자 애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바라보며 하나님의 도움으로 승리하는 우리의 믿음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언제나 내 편이 되어 주셔서 기쁨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