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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설교

하나님이 돌보신다 하십니다(시 8:1-9)-20120219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12.02.20|조회수1,434 목록 댓글 0

하나님이 돌보신다 하십니다(8:1-9)

 

할렐루야!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시편 8:1-9 말씀으로, 하나님이 돌보신다 하십니다.”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선포하겠습니다.

오늘 저와 여러분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은혜와 축복의 강이, 여러분의 심령 가운데 흘러넘치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사랑하는 효성선교교회 성도 여러분!

오늘은 참으로 귀하고 복된 날입니다. 좋은 주님의 날입니다. 하나님께서 은총을 내리어 주시는 복된 날입니다. 하나님의 크신 사랑과 은혜와 축복이 예비된 복된 날입니다.

지난 주간 마지막 한파가 이어짐으로 많이 추웠습니다. 낮에 햇볕이 있었지만, 바람이 분 탓에 몹시 추웠습니다. 그리고 아침 저녁으로 얼마나 불편하고 추우셨습니까? 어늘 새벽에 눈이 내렸습니다. 불편하시지요?

혹시 추운 날씨 탓에, 고생하고 힘들어 하신 분은 안 계십니까? 밤에 주무실 때에는 따뜻하게, 포근하게, 평안하게 주무셨습니까? 전기값과 기름값이 많이 올랐기 때문에, 온도를 높이는 것이 부담될 수도 있지만, 건강을 생각하셔서, 집에 계실 때에나, 밤에 주무실 때에는 보일러 온도를 조금만 더 올리고, 따뜻하게 주무시기를 바랍니다.

겨울이 가고, 봄이 다가오는 환절기에 각별히 몸 건강 주의하시기 바랍니다. 홀로 계실 때에는 더욱더 따뜻하게 겨울을 보내시기를 바랍니다. 이제 겨울의 찬바람도 얼마 남지 않았습니다. 가로수의 나무들을 보면서, 향긋한 봄바람이 불어 오는 것을 느껴봅니다. 눈 쌓인 골목에 햇빛이 비취어, 금새 녹아내리는 것을 보면서, 그래도 봄이 다가오고 있음을 느낍니다.

오늘 이 시간에는 성령님께서, 우리 예배 가운데 임재하셔서, 여러분의 얼어붙은 몸과 마음을 따뜻하게 어루만져 주시고, 따뜻하게 감싸주시며, 위로해 주시고, 복 내려 주실 것입니다.

 

이런 저런, 여러 가지 형편들을 뒤로 하고, 살아계신 하나님, 전능하신 하나님, 돌보시는 하나님께 예배드리고자, 이 시간 주일예배에 참석하신 여러분을, 주님의 사랑으로 환영합니다. 축복합니다. 서로 축복하겠습니다.

하나님이 돌보아 주십니다.” “건강하세요. 축복받으세요. 은혜 받으세요.”

 

오늘 읽은 시편 8편은 다윗의 시, 인도자를 따라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제목을 가지고 있습니다. 이 시편은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함을 드러내는 시로 유명합니다. 그러나 깃딧에 맞춘 노래라는 말이 무엇을 의미하는지는, 잘 모릅니다. 깃딧이란 피아노, 바이올린 등과 같이 어떤 특별한 악기를 말하는 것인지, 아니면, 포도를 수확하면서 추수 때에 부르는 노래일 것이라고, 단지 추측할 뿐입니다.

 

오늘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께서는 우리를 돌보아 주시고, 우리는 그에 합당한 삶을 살아야함을 말씀해 주고 있습니다. 우리가 주님 앞에 살아야 할 합당한 삶은 무엇일까요?

첫째,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둘째,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셋째, 우리는 피조물로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우리를 돌보시는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돌보시는 하나님의 품 안에 푹 안겨서, 졸기도 하고, 만사 편하게 잘 수도 있습니다.

이 시간 선포되어지는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돌보심을 맛보아 알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첫째, 우리는 창조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 이는 원수들과 보복자들을 잠잠하게 하려 하심이니이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아멘.

 

여러분! 지난 한 주간 동안 시간을 내어 하늘을 쳐다본 적이 있습니까? 하늘을 쳐다보아야, 여러분의 마음이 순수해질 수 있고, 영성을 회복할 수 있습니다. 그러고 보니, 저도 하늘을 쳐다본 적이 별로 없었습니다. 낮에는 바람이 불어, 고개를 숙이고 걷다보니, 하늘을 보지 못했습니다. 밤에는 도시의 휘황찬란한 불빛을 보는 동안, 하늘을 쳐다볼 정신이 없었습니다.

먹고 살기도 바쁜데, 하늘이 무엇이라고, 하늘에서 무엇이 떨어진다고, 하늘을 쳐다보느냐라고 말할 것입니다. 그런데 우리는 가끔 하늘을 쳐다보아야, 하나님의 창조의 위대하심을 노래하게 됩니다.

 

1을 보면,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말하고, 3을 보면,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보오니라고 하셨습니다.

우리는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어야 합니다. 그래야 주의 영광을 바라볼 수 있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할 수 있습니다.

주의 손가락으로 만드신 주의 하늘과 주께서 베풀어 두신 달과 별들을, 내가 직접 보아야,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할 수가 있는 것이 아닙니까?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보지 못하고, 어떻게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사랑을 경험하지 아니하고서, 어찌 하나님의 사랑을 노래할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의 은혜를 체험해보지 아니하고서, 어찌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말할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눈을 들어 하늘을 볼 수 있기를 바랍니다.

어떤 분이 이렇게 말했다고 합니다. 스카이에서 스타를 봤어

어떤 의미일까요? 스카이는 서울대, 연세대, 고려대, 세 학교를 합쳐 줄여서 말할 때, 주로 스카이라고 말합니다. 스타라는 것은 유명한 연애인들을 말할 때 쓰는 말입니다. 서울대에서 유명한 연애인을 봤다는 이야기일까요? 그런데 스카이에서 스타를 봤어라는 말을 그런 의미로 쓴 것이 아니라, 하늘에서 별을 봤어라고 쓴 것이었습니다.

 

하늘에 별이 있습니까? 며칠 전 밤에, 하늘을 올려 쳐다보았습니다. 반짝이는 별이 몇 개 보이지 않았습니다. 너무 오랫동안 하늘을 못 보고 살아왔습니다. 해와 달도, 별들도 보지 못하고 살아왔습니다. 오늘 밤, 밖에 나가, 하늘을 쳐다보시기 바랍니다. 하늘에 별이 보일 것입니다.

 

시편 8편을 쓴 다윗은 어려서부터 들판에서 양떼를 치면서, 산과 들로 돌아다녔던 사람입니다. 이웃나라들과 전쟁을 하면서, 산과 들에서 야영한 적도 많았습니다. 물론 사울왕에게 쫓겨 다니면서, 산과 들에 나가 숨어 지낸 적도 많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반역하여 도망칠 때도, 산과 들로 나가 지내야 할 때도 많았습니다.

다윗은 자기 자신이 원하든, 원치 않았든, 들과 산에서, 자연을 바라보며 창조주 하나님을 찬양하였고,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노래했습니다.

 

1말씀에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 주의 영광이 하늘을 덮었나이다라고 하였습니다.

자연을 보면서, 산과 들을 보면서,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체험하였습니다. 주의 영광이 하늘을 가득 덮은 것을 볼 수 있었습니다.

그렇습니다. 보는 것이 참 중요합니다. 보는 대로 되어집니다. 무엇을 보느냐에 따라 사람의 장래가 달라집니다. 인생이 달라집니다.

복 있는 사람이 어떤 사람입니까?

시편 1:1을 보면, 복 있는 사람은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의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도다라고 했습니다. 복 있는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을 보았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주야로 보시기 바랍니다. 백일 성경완독표에 따라, 시간을 투자하여, 성경을 보시기 바랍니다. 성경 안에 은혜가 있고, 성경 안에 축복이 있습니다. 성경 안에 우리들의 살 길이 있습니다. 생명이 있습니다.

 

출애굽기 13:21-22을 보면, 여호와께서 그들 앞에서 가시며 낮에는 구름 기둥으로 그들의 길을 인도하시고 밤에는 불 기둥을 그들에게 비추사 낮이나 밤이나 진행하게 하시니 낮에는 구름 기둥, 밤에는 불 기둥이 백성 앞에서 떠나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십니다.

애굽을 탈출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들판에서 눈을 들어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낮에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밤에도 하늘을 바라보았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늘을 바라보는 것, 그것이 바로 그들의 살 길이었습니다.

뜨거운 한 낮에 태양의 열기를 식혀 주는 것이 구름기둥이었습니다. 차가운 한 밤, 으스스 스며드는 찬 기운을 따뜻하게 해 주는 것이 불기둥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돌보아 주셨습니다. 광야 40년 동안 그들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떠나지 않았습니다. 늘 함께 하셨습니다. 그리고 그들에게 단 한 가지를 요구하셨습니다.

눈을 들어 하늘을 보라

눈을 들어 하늘을 보십시오. 하늘의 별과 달을 보십시오.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바라보십시오.

 

시편 121:5-8을 보면, 여호와는 너를 지키시는 이시라 여호와께서 네 오른쪽에서 네 그늘이 되시나니 낮의 해가 너를 상하게 하지 아니하며 밤의 달도 너를 해치지 아니하리로다 여호와께서 너를 지켜 모든 환난을 면하게 하시며 또 네 영혼을 지키시리로다 여호와께서 너의 출입을 지금부터 영원까지 지키시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출입을 지켜주십니다.

 

시편 100:3-4을 보면, 여호와가 우리 하나님이신 줄 너희는 알지어다 그는 우리를 지으신 이요 우리는 그의 것이니 그의 백성이요 그의 기르시는 양이로다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는 그의 기르시는 양입니다. 이 말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목자이신 하나님이 어리석고 미련한 양들인 우리를 돌보신다는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보살펴 주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자유를 원합니다. 내 인생은 나의 것이라고 소리쳐 노래합니다. 내 몸이 내 것입니까? 내 몸을 내가 만들었습니까? 내 몸을 내가 만들었다면, 어디 아플 때, 금방 고쳐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내 몸을 내가 모릅니다. 손도 대지 못합니다. 아프면 무조건 다른 사람들한테 내맡기는 것이 우리의 몸이 아닙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목자이십니다.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을 찬양하며, 감사하며 사십시오.

 

2을 보면, 주의 대적으로 말미암아 어린 아이들과 젖먹이들의 입으로 권능을 세우심이여라고 했습니다. 이 말의 뜻은 어린이와 젖먹이들까지도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합니다.”라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 특별히 젖먹이들이 무엇을 알 수 있습니까? 아는 것이 별로 없습니다. 모르는 것이 당연한 것입니다. 그런데 젖먹이들이 그 입술로 주님의 위엄을 찬양한다는 것입니다.

어린이와 젖먹이들이 똑똑합니까? 아니면 어른들이 더 많이 알고, 더 똑똑합니까?

지난 주 월요일에 대전선창교회에서 세미나가 있었습니다. 그곳에서 아는 분들을 많이 만났습니다. 이전교회 집사님들을 만났는데, 함께 커피를 마시면서, 이야기를 나누다가, 한 집사님이 자기 딸이 이런 질문을 했다고 합니다.

엄마, 성경에 보면, 하나님은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한다고 했는데, 왜 예수님은 배에서 주무셨어

몇 살짜리 딸의 질문일까요? 올해 초등학교 1학년에 들어가는 여자애의 질문입니다.

어른들이 똑똑한 것 같지만, 애들은 어른들보다 더 똑똑할 때가 많습니다. 어른들이 더 많이 배워, 더 많이 알 것 같지만, 애들이 어른들보다 더 많이 알 때가 많습니다. 때로는 애들이 어른들보다 더 똑똑합니다. 똑같은 성경을 읽으면서도 때로는 어른들이 생각하지 못하는 것을 아이들이 생각합니다.

 

시편 121:4을 보면, 이스라엘을 지키시는 이는 졸지도 아니하시고 주무시지도 아니하시리로다라고 했습니다.

마태복음 8:24을 보면, 바다에 큰 놀이 일어나 배가 물결에 덮이게 되었으되 예수께서는 주무시는지라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예수님은 하나님이십니다. 그리고 하나님의 아들이십니다. 사람으로 이 땅에 오셨습니다. 사람으로 사셨습니다. 그럼으로 피곤하실 때, 주무셨습니다. 음식을 드셨습니다. 눈물을 흘리셨습니다. 고난을 당하셨습니다. 그리고 죽기까지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이 땅에 사람으로 오셔서, 주무셨다는 것은 무엇을 의미합니까? 우리의 힘들고 어려운 일들, 걱정거리, 피곤함, 지치고 쓰러지는 것, 병들어 고생하는 것, 고난당하는 것, 죽는 것 등을 다 이해하고,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모든 것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의 살아가는 삶의 여정을 다 아신다는 것입니다.

우리는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그 하나님의 위대하심을 찬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 어린이와 젖먹이의 심정으로 순수한 마음, 경이로움을 가지고 하나님을 예배하고, 하나님을 기쁘시게 해드려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세상에서 가장 위대하신 분을 예배하고, 찬양하고 그를 높여드리면 우리 자신도 따라서 위대해지고, 존귀하게 되고 순수한 마음으로 살게 됩니다. 이것이 예배드리는 사람에게 주시는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시시한 사람 앞에 서면 우리도 따라서 시시해지지만, 온 우주 만물을 지으신 하나님 앞에 서고, 그 하나님을 예배하면 우리도 존귀한 존재가 되고, 높아지는 것입니다.

위대하신 하나님을 찬양하는 존귀한 자가 되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우리는 인간을 창조하신 하나님을 찬양해야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사람이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인자가 무엇이기에 주께서 그를 돌보시나이까아멘.

 

무신론자인 쇼펜하우어라고 하는 유명한 철학자가 있습니다. 어느 날 복잡한 길을 가면서 어떤 생각에 골몰하고 있었습니다. 깊이 생각하면서 걸어가고 있으니, 앞에서 누가 오는지 가는지 생각할 겨를이 없었습니다. 깊이 생각하며, 길을 가다가, 앞에서 오는 사람과 정면으로 부딪혔습니다. 앞에서 오던 사람이 화를 벌컥 내면서 당신 누구요?하고 소리를 쳤습니다. 쇼펜하우어는 미안한 듯이 뒤로 물러서면서 바로 그것이 문제입니다. 내가 지금 누구인가 하고 생각하는 중입니다.”라고 했다고 합니다.

 

여러분! 나는 누구입니까? 한 여자가 남편이라고 하니 남편이요, 딸이 아버지라고 하니, 아버지이고, 우리 성도들이 목사님이라고 하니, 목사입니다. 그러나 깊이 생각해보면, 나 자신은 나일뿐입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하나님 앞에서 나는 누구냐고 물어보아야 합니다. 나는 누구입니까? 나는 죄인입니다.” 이것이 하나님 앞에 선 나의 모습입니다.

 

그런데 여러분! 사람이 무엇이기에 하나님께서 그를 생각하시며, 그를 기억하시며, 그를 돌보십니까?

하나님은 우리의 죄, 과거, 허물을 기억하지 않습니다. 그러나 연약함, 아름다움, 사랑은 기억하십니다.

이사야 49:15을 보면 여인이 어찌 그 젖 먹는 자식을 잊겠으며 자기 태에서 난 아들을 긍휼히 여기지 않겠느냐 그들은 혹시 잊을지라도 나는 너를 잊지 아니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그리고 16을 계속 보면 내가 너를 내 손바닥에 새겼고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왜 그토록 손바닥에 새기면서까지 나를 잊지 않으십니까? 그것은 사랑하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나를 사랑하시기 때문에 나를 잊지 않습니다. 내 이름을 잊어버리지 않습니다. 나는 하나님의 손바닥에 그 이름이 새겨진 귀한 존재입니다. 여러분은 하나님의 손바닥에 이름이 새겨진 귀하고 소중한 존귀한 사람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보시기에 귀한 존재일뿐만 아니라,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부모는 어린아이를 돌보아 줍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돌본다는 것은 무조건 감싸는 것만을 의미하지는 않습니다. 상처는 무조건 감싼다고 해서, 치료되는 것이 아닙니다. 닦아내고 치료하고, 꿰매고, 그리고 싸매야 합니다.

혹시 부모는 나를 잊을 수 있습니다. 혹시 자식은 부모를 저버릴 수 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나를 잊지 않으시고 나를 언제나 돌보십니다. 그래서 다윗은 사람이 무엇이기에”, “인자가 무엇이기에라고 감격하고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서 항상 부끄럽고 부족함을 느끼고, 죄인에 불과하고, 심판받아야 마땅한 사람들입니다. 하나님 앞에 설 때면, 사람이 무엇이기에라고 말할 수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사람은 무엇입니까? 진화론자들은 말하기를, 인간은 포유류에 속하는 것으로, 원숭이에서 진화한 것이라고 합니다. 엉덩이를 흔들며, 사람이 던져주는 비스켓을 주워먹고, 나무를 오르내리는 동물원의 원숭이가 인간의 조상이라고 합니다. 소름이 끼칩니다.

소크라테스항상 자신을 탐구하는 존재라고 했고, 아리스토텔레스는 인간을 사회적 동물로 보았습니다. 그러나 다윗은 사람을 하나님의 피조물로 믿고 있습니다. 그리고 타락한 인간으로 보고 있습니다. 그러니까 아무 쓸모도 없는, 쓰레기더미 속에 나뒹구는 휴지같은 존재로 본 것입니다. 바로 거기에 다윗의 감격이 있습니다.

이처럼 쓸모없는 존재, 죄로 죽어야 할 존재, 영원한 멸망의 존재인 사람을 도대체 무엇이기에 이처럼 사랑하셔서 생각하시고 돌보아 주십니까?”라는 것이 다윗의 감격인 것입니다.

 

아 하나님의 은혜로 이 쓸데없는 자 왜 구속하여 주는지 난 알 수 없도다

이것이야말로 하나님의 무조건적 사랑이며, 크신 은혜요 축복인 것입니다.

주여, 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나를 생각하시오며, 내가 무엇이기에 이토록 돌보아 주십니까?”라는 다윗의 감격이, 오늘 나의 감격이 되어야 합니다. 이 감격이 내 가슴 속에서 사라지는 날, 내게서 감사가 떠날 것이고, 충성이 사라질 것이고, 주님을 향한 사랑이 식어지게 될 것입니다.

하나님의 사랑과 은혜, 돌보심을 늘 기억하면서, 하나님을 찬양하며 사십시오. 하나님께서 여러분을 높여 주실 것입니다.

 

셋째, 우리는 피조물로서 책임적인 존재로 살아가야 합니다.

5-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를 하나님보다 조금 못하게 하시고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우셨나이다 주의 손으로 만드신 것을 다스리게 하시고 만물을 그의 발 아래 두셨으니 곧 모든 소와 양과 들짐승이며 공중의 새와 바다의 물고기와 바닷길에 다니는 것이니이다 여호와 우리 주여 주의 이름이 온 땅에 어찌 그리 아름다운지요아멘.

 

도대체 인간이 무엇입니까? 인간이 무엇이기에 돌보아 주십니까?

우주 만물을 지으신 창조주 하나님께서 이 보잘 것 없는 인간에게 관심을 두시는 것입니까? 하나님은 부족한 인간에게 영화와 존귀로 관을 씌워 주셨습니다. 인간을 존귀하게 만들었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 인간을 생각하셨고, 왜 관심과 사랑을 가지고, 계속해서, 돌보시고 있는 것입니까? 왜 죄 많은 우리를 보살펴 주시는 것입니까?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대로 지음 받은 인간입니다. 그런데 하나님의 형상을 잃어버리고, 하나님을 대적하면서 살아가는 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만물의 으뜸으로, 만물의 영장으로, 지어주신 인간인데, 하나님을 영화롭게 아니하고, 자기가 신이라도 된 것처럼, 교만하고, 자만에 빠져 살고 있습니다. 이기적인 존재입니다. 욕심으로 뭉쳐졌습니다. 탐욕에 빠져 있습니다. 정욕과 쾌락에서 빠져나오지 못하고 살아가고 있습니다.

 

시편 139:13-14을 보면 주께서 내 내장을 지으시며 나의 모태에서 나를 만드셨나이다 내가 주께 감사하옴은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 주께서 하시는 일이 기이함을 내 영혼이 잘 아나이다.”라고 했습니다.

나를 지으심이 심히 기묘하심이라고 했는데, 예전 개역성경에는 신묘막측이라고 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만드셨습니다. 우리의 오장육부를 만드셨습니다. 우리에게 생명을 주셨을 뿐만 아니라, 우리에게 삶을 허락하여 주셨습니다. 가정을 주셨습니다. 자녀를 주셨습니다. 머물 수 있는 집을 주셨습니다. 예배드릴 수 있는 교회를 주셨습니다. 함께 예배드릴 수 있는 성도를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그 사랑과 은혜를 말로 다 표현할 수가 없습니다. 날마다 찬양하고, 날마다 감사하며 살아도, 그 은혜와 그 사랑을 다 갚을 길이 없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이 우리를 생각하여 주십니다. 돌보아 주십니다. 그럼으로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 찬양하며 살아야 합니다.

매일 매순간마다 하나님을 찬양하고, 감사함으로, 하나님이 저와 여러분을 위하여 예비해놓으신 풍성한 은혜를 듬뿍 받아 부족함이 없는 갑절 축복의 삶을 살아가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지으신 주님!

우리를 돌보시는 주님!

우리의 생명이 있는 동안 주님을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우리의 호흡이 있는 동안 주님께 감사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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