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호 10:9-15)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연일 무더위와 폭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럴 때, 특별히 몸 관리 잘 하셔서, 건강 잃지 않기를 바랍니다.
호세아 선지자는 예수님 오시기 750년 전의 북이스라엘 사람입니다.
호세아는 “여호와는 구원이시다”라는 뜻입니다.
호세아는 사랑의 선지자입니다.
호세아의 아내는 고멜입니다. 고멜은 창녀였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고멜과 결혼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너는 가서 음란한 여자를 맞이하여 음란한 자식들을 낳으라 이 나라가 여호와를 떠나 크게 음란함이니라”(호 1:2)
하나님이 말씀하신 대로, 호세아는 창년인 고멜과 결혼을 했습니다. 호세아는 결혼을 하고,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아들 이름을 “이스르엘”로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고멜이 임신하여, 딸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호세아에게 그의 이름을 “로루하마”라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루하마”는 “내가 다시는 이스라엘 족속을 긍휼히 여겨서 용서하지 않을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로루하마를 젖뗀 후에, 고멜이 또 임신하여 아들을 낳았습니다.
하나님께서 그의 이름을 “로암미”라 부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로암미”는 “너희는 내 백성이 아니요 나는 너희 하나님이 되지 아니할 것이다”라는 뜻입니다.
하나님은 호세아 선지자의 결혼과 가정사를 통하여, 이스라엘에 대한 하나님의 마음을 그대로 전하셨습니다.
호세아 선지자가 활동하던 당시 북이스라엘은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물질적으로는 부유했지만 영적으로는 굉장히 방탕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하나님은 이러한 이스라엘을 향해서, 호세아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셨습니다.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여러분!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는 말씀은 하나님의 사랑의 메시지입니다. 용서의 메시지, 위로의 메시지입니다. 구원의 메시지입니다.
우리는 호세아서를 읽으면서, 이스라엘을 향한 하나님의 사랑과 은총이 얼마나 큰가를 느낄 수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향한 하나님의 큰 사랑과 은총을 느껴야 합니다.
“에브라임이여 내가 어찌 너를 놓겠느냐 이스라엘이여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 같이 놓겠느냐 어찌 너를 스보임 같이 두겠느냐 내 마음이 내 속에서 돌이키어 나의 긍휼이 온전히 불붙듯 하도다”(호 11:8)
“에브라임아, 내가 어찌 너를 버리겠느냐? 이스라엘아, 내가 어찌 너를 원수의 손에 넘기겠느냐? 내가 어찌 너를 아드마처럼 버리며, 내가 어찌 너를 스보임처럼 만들겠느냐? 너를 버리려고 하여도, 나의 마음이 허락하지 않는구나! 너를 불쌍히 여기는 애정이 나의 속에서 불길처럼 강하게 치솟아 오르는구나”(호 11:8), 새번역)
여러분! 묵은 땅이란 무엇입니까?
묵은 땅이란 버려진 땅입니다. 농사하지 않는 땅입니다. 잡초가 무성한 땅입니다.
지금 농촌에는 사람이 살고 있지 않는 버려진 집들이 많이 있다고 합니다. 흉물스러운 폐가, 다 쓰러져버린 가옥들이 많고 마당에는 잡초만 무성하다고 합니다.
하나님이 이스라엘을 보실 때, 그들의 모습이 바로 묵은 땅과 같았습니다.
이스라엘은 물질적으로는 풍요했지만, 영적으로는 타락했습니다.
호세아 4:11-13절 말씀입니다.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가 마음을 빼앗느니라 내 백성이 나무에게 묻고 그 막대기는 그들에게 고하나니 이는 그들이 음란한 마음에 미혹되어 하나님을 버리고 음행하였음이니라 그들이 산 꼭대기에서 제사를 드리며 작은 산 위에서 분향하되 참나무와 버드나무와 상수리나무 아래에서 하니 이는 그 나무 그늘이 좋음이라 이러므로 너희 딸들은 음행하며 너희 며느리들은 간음을 행하는도다” 아멘.
묵은 땅은 이스라엘 백성의 죄악의 삶을 말합니다.
묵은 땅은 우상숭배의 삶을 말합니다.
음행과 묵은 포도주와 새 포도주에 마음을 빼앗겨 버렸습니다.
좋은 나무 아래에서 우상 앞에, 제사드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다른 신을 섬겼습니다.
9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스라엘아 네가 기브아 시대로부터 범죄하더니 지금까지 죄를 짓는구나 그러니 범죄한 자손들에 대한 전쟁이 어찌 기브아에서 일어나지 않겠느냐” 아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품어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용서해주시고, 그들을 사랑해 주셨습니다. 그러나 그럼에도 불구하고, 지금까지도 그들은 죄를 짓고 있습니다. 돌이켜야 하는데, 돌이키지 않습니다.
호세아 2:19-20절을 보면, “내가 네게 장가 들어 영원히 살되 공의와 정의와 은총과 긍휼히 여김으로 네게 장가 들며 진실함으로 네게 장가 들리니 네가 여호와를 알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내가 나를 위하여 그를 이 땅에 심고 긍휼히 여김을 받지 못하였던 자를 긍휼히 여기며 내 백성 아니었던 자에게 향하여 이르기를 너는 내 백성이라 하리니 그들은 이르기를 주는 내 하나님이시라 하리라”(호 2:23)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에게 장가를 들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들과 함께 살겠다고 선언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들을 얼마나 사랑하고 계시는가를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죄를 지었습니다. 타락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버리고 멀리 떠나버렸습니다.
하나님은 호세아에게 집 나간 고멜을 데리고 오라 하시면서, “이스라엘 자손이 다른 신을 섬기고 건포도 과자를 즐길지라도 여호와가 그들을 사랑하나니 너는 또 가서 타인의 사랑을 받아 음녀가 된 그 여자를 사랑하라”(호 3:1)고 말씀하셨습니다.
호세아는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고멜을 찾아가, “너는 많은 날 동안 나와 함께 지내고 음행하지 말며 다른 남자를 따르지 말라 나도 네게 그리하리라”(호 3:3)고 말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사랑하셨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이 아닌 우상을 숭배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버리지 못하고, 그들을 품으시고, 사랑해 주셨습니다.
호세아서를 읽어보면, 죄악 속에 살고 있는, 우상숭배하는 이스라엘의 모습을 너무나도 쉽게 만날 수 있습니다.
“이 땅에는 진실도 없고 인애도 없고 하나님을 아는 지식도 없고 오직 저주와 속임과 살인과 도둑질과 간음뿐이요 포악하여 피가 피를 뒤이음이라”(호 4:1-2)
“그들은 번성할수록 내게 범죄하니 내가 그들의 영화를 변하여 욕이 되게 하리라”(호 4:7)
“그들이 먹어도 배부르지 아니하며 음행하여도 수효가 늘지 못하니 이는 여호와를 버리고 따르지 아니하였음이니라”(호 4:10)
이스라엘의 삶은 죄악의 삶이었습니다. 우상 숭배의 삶이었습니다.
잘 살면 살수록, 번성하면 할수록, 하나님을 찾고, 하나님께 감사하는 삶을 살기보다는 교만해져, 하나님을 버리고, 하나님을 멸시하는 삶을 살았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믿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우리의 죄와 허물을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의 보혈로 씻어주셨습니다. 우리는 구원받았습니다. 우리는 죄 용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과 구별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는 죄가 없는 삶을 살고 있을까요?
“나는 거룩하다”고 자신있게 말할 수 있을까요?
“나는 이스라엘 백성들과는 전혀 다르다”고 말할 수 있을까요?
이스라엘 백성들은 세상과 구별된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을 버리고, 죄악의 삶을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는 구별된 사람들입니다. 죄가 없는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우리에게 죄가 있습니다. 하나님을 믿으면서도, 죄를 짓고 살아갑니다. 죄를 짓지 않고,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하는 것이 마땅한 일임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크고 작은 죄를 범하며 살아갑니다. 죄 속에 파묻혀 살아갑니다.
그러나 우리는 죄를 이기며 살아가야 합니다. 죄를 멀리 해야 합니다. 거룩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죄를 이기지 못하고 살아가는 모습은 바로, 영적으로 묵은 땅의 모습입니다.
무성한 잡초만 우거진 삶을 살아가고 있을 뿐입니다.
야고보서 4:4절을 보면, “간음한 여인들아 세상과 벗된 것이 하나님과 원수 됨을 알지 못하느냐 그런즉 누구든지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 되는 것이니라”고 말했습니다.
세상과 벗이 되고자 하는 자는 스스로 하나님과 원수가 되는 것입니다.
우리의 마음은 오직 예수님만을 품어야 합니다. 예수님으로 가득차야 합니다.
우리의 발걸음은 오직 주님이 가신 길만을 따라 걸어야 합니다.
우리의 눈은 십자가의 주님만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우리는 손은 주님의 손을 붙잡아야 합니다.
우리의 귀는 언제나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의 삶은 하나님 중심, 교회 중심의 삶이어야 합니다. 십자가 중심의 삶이어야 합니다.
우리의 마음에 딴 마음을 품으면 안됩니다.
우리의 발걸음이 세상을 향한 발걸음이 되어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눈은 세상의 화려함을 바라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손은 세상을 붙잡아서는 안됩니다. 물질을 붙들고, 권력을 붙잡으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환경을 붙잡고, 사람을 붙잡고, 그것이 전부인양 살아가서는 안됩니다.
우리의 귀는 달콤한 세상 소리에 귀를 기울여서는 안됩니다.
감미로운 유혹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세상 중심, 물질 중심이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죄악 중심의 삶을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뜻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마음에 품고,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뢰하여야 합니다.
“아침에 나로 하여금 주의 인자한 말씀을 듣게 하소서 내가 주를 의뢰함이니이다 내가 다닐 길을 알게 하소서 내가 내 영혼을 주께 드림이니이다”(시 143:8)
주님을 의지하면, 내가 가야 할 길을 알게 됩니다. 주님께서 인도하여 주시기 때문입니다.
“너희 중에 여호와를 경외하며 그의 종의 목소리를 청종하는 자가 누구냐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는 자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뢰하며 자기 하나님께 의지할지어다”(사 50:10)
흑암 중에 행하여, 빛이 없을지라도, 여호와의 이름을 의지하면, 하나님께서 바른 길로, 생명의 길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예레미야 선지자는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 가에 심어진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지라도 두려워하지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렘 17:7-8)고 말하였습니다.
뿐만 아니라, 하나님은 예레미야 선지자를 통하여, “무릇 사람을 믿으며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이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살지 않는 땅에 살리라”(렘 17:5-6)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죄악으로 가득찬 이 세상을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사람을 믿고, 육신으로 그의 힘을 삼고, 하나님에게서 떠난 삶을 살아야 할까요?
아니면, 하나님을 의지하며, 의뢰하는 삶을 살아야 할까요?
어떻게 살아야 하나님의 복을 받을 수 있을까요?
하나님을 의지하면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가까이 할 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멀리 하면, 어떻게 하나님으로부터 복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께 가까이 함이 내게 복이라”(시 73:28)고 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가까이 하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악을 밭 갈아 죄를 거두고 거짓 열매를 먹었나니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아멘.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우리는 누구를 의지하고 살아야 할까요?
우리는 하나님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믿음의 사람들입니다. 하나님으로부터, 죄와 허물을 용서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와 사랑을 듬뿍 받은 사람들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말로 다할 수 없는 큰 은총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당연히 우리는 하나님을 의지하고 의뢰하며 살아야 합니다.
그런데,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며 살아야 하는데, 자신의 길과 자신의 용사의 많음을 의지하였다는 것입니다.
“이는 네가 네 길과 네 용사의 많음을 의뢰하였음이라”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자신을 의지하는 것은 교만입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을 의지하지 않고, 자기 힘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용사의 많음을 의지하였습니다.
그들은 자기 자신의 힘과 지식과 능력과 소유의 많음을 의지하였습니다.
이것이 교만이요, 이것이 바로 묵은 땅입니다.
“어떤 사람은 병거,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하나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하리로다”(시 20:7)
어떤 사람은 병거를 의지하고, 어떤 사람은 말을 의지한다 할지라도, 우리는 여호와 우리 하나님의 이름을 자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의지해야 합니다.
“내가 주를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리며 내 하나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나이다” (시 18:29)
우리는 주님을 의뢰하고, 적군을 향해 달려야 합니다.
우리는 주님을 의지하고, 담을 뛰어넘어야 합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아가야 합니다.
그리할 때, “승리는 내 것일세”라고 외칠 수 있습니다.
“네 길을 여호와께 맡기라 그를 의지하면 그가 이루시고”(시 37:5)
우리의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주님을 의지하면, 주님께서 친히 모든 것을 이루어 주십니다.
여러분! 힘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나에게는 힘밖에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재물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나에게는 돈밖에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사람을 의지하지 마십시오. “나의 인맥은 많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가진 것밖에 없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나는 아는 사람이 많다”고 말하지 마십시오.
시편 146:3-5절을 보면, “귀인들을 의지하지 말며 도울 힘이 없는 인생도 의지하지 말지니 그의 호흡이 끊어지면 흙으로 돌아가서 그 날에 그의 생각이 소멸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야곱의 하나님을 자기의 도움으로 삼으며 여호와 자기 하나님에게 자기의 소망을 두는 자는 복이 있도다”라고 말하였습니다.
우리는 하나님만 의지하여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께만 소망을 두고 살아야 합니다.
여러분, 묵은 땅의 모습을 한 번 상상해 보십시오.
본래는 부드럽고 기름진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오랫동안, 그냥 내버려두었습니다. 땅이 굳어지고, 잡초가 우거졌습니다.
비가 내리고 햇볕이 쪼이면, 버려진 땅은 더욱더 굳어만 갑니다.
본래 이 땅은 아름다운 곡식이 자라 많은 열매를 맺는 땅이었습니다. 그런데 곡식은 보이지 않고, 보기 싫은 잡초만 우거져 있습니다. 쓸모없는 땅이 되어버렸습니다.
곡식으로 덮인 옥토야 얼마나 아름답습니까? 그런데 묵은 땅, 잡초로 우거진 땅은 보기도 싫습니다. 혹시 곡식 씨앗을 뿌려서 싹이 난다고 해도, 무성한 잡초 때문에, 열매를 맺을 수가 없습니다. 묵은 땅은 버려진 쓸모없는 땅입니다.
그러나 한번 생각해 보십시오.
이 묵은 땅도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을 매일 받고 있습니다. 하나님이 밤마다 주시는 이슬도 받고 있습니다. 때로는 흠뻑 땅을 적셔 주는 비를 받기도 합니다.
그런데 묵은 땅은 받기만 할뿐입니다. 거기에 대한 아무런 보답이 없습니다.
햇빛도 거저 받습니다. 이슬도 거저 받습니다. 비도 거저 받습니다. 안 받은 것이 아닙니다. 다 받았습니다. 그런데도 아무 쓸모없는 땅이 되어 버리고 말았습니다.
이스라엘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도 받고, 사랑도 받고, 긍휼하심도 많이 받았습니다.
에스겔 11:19-20절을 보면, “내가 그들에게 한 마음을 주고 그 속에 새 영을 주며 그 몸에서 돌 같은 마음을 제거하고 살처럼 부드러운 마음을 주어 내 율례를 따르며 내 규례를 지켜 행하게 하리니 그들은 내 백성이 되고 나는 그들의 하나님이 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사랑을 많이 받았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의 마음은 부드러워지지 않았습니다. 더욱더 굳어만 갔습니다.
그들의 마음 속에 하나님이 아닌 다른 우상이 자리 잡았습니다. 죄 가운데 빠졌습니다. 교만으로 가득 찼습니다. 그들의 마음은 굳어져만 갔습니다. 그들 마음에 쓸모없는 잡초만 자라게 되었습니다.
그들 마음 속에는 세상의 생각과 사상,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 그리고 이생의 자랑으로 가득 차게 되었습니다.
이와 같이 묵은 땅과 같은 마음은 하나님이 주시는 햇빛이 아무 소용없습니다.
하나님이 날마다 주시는 새벽 이슬도, 은혜의 단비도 아무 쓸모가 없습니다.
그렇습니다. 굳어진 마음은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을 읽어도 아무런 느낌도, 감동도 없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도 아무런 은혜를 받지 못합니다. 더 나아가 열매를 맺지 못합니다. 그의 삶에 아름다운 결실이 없습니다. 주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말라”(고후 6:1)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아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이렇게 묵은 땅과 같은 우리의 마음은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고 말씀하십니다.
이 말은 “우리 마음을 갈아 엎으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헛되이 받지 않기 위해서는 우리 마음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하나님의 복을 제대로 받으려면 우리 마음의 묵은 것을 시원하게 갈아엎어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우리 마음 밭에서, 잡초를 뽑아버려야 합니다. 가시덤불도 제거해야 합니다. 뿌리까지 뽑아 불태워버려야 합니다. 얕게 갈면 안됩니다. 깊이 갈아서, 속에 있는 뿌리까지 뽑아서, 얼른 불살라 버려야 합니다. 시원하게 정리정도해야 합니다.
여러분! 호세아 선지자는 여로보암 2세가 북이스라엘을 다스릴 때, 활동하였습니다.
그때 북이스라엘은 정치적으로 안정되고, 경제적으로 부유하였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우상숭배와 물질주의의 죄악에 빠졌습니다. 그들은 교만해져서, 하나님의 은혜를 잊어 버렸습니다. 그들은 물질만능주의에 빠져서, 오직 재산을 쌓는 일에만 힘을 썼습니다. 그들은 부정부패하였고, 공의를 행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이방의 바알과 금송아지 우상을 섬겼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선지자들을 보내어, 그들이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것이라고 경계하며, 회개하라고 책망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경고를 듣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을 의지하기는커녕, 인간의 힘으로 끝까지 살아 보겠다고, 강대국인 앗수르와 애굽에 뇌물과 조공을 바치며, 그들의 도움을 받고자 했습니다.
그러나 북이스라엘은 앗수르의 도움을 받고자 뇌물까지 바쳤음에도 불구하고, 앗수르는 오히려 뇌물을 받고, 북이스라엘을 돕기는커녕, 침략하여, 북이스라엘을 완전히 멸망시키고 말았습니다. 도움받기는커녕 멸망을 당했습니다.
여러분! 북이스라엘은 망하고, 백성은 다 포로로 끌려갔습니다. 가족들은 뿔뿔이 흩어지고, 재산도 모두 빼앗겼습니다. 하나님의 경고를 무시하고, 탐욕과 불신앙 가운데 살았던 북이스라엘은 비참한 최후를 맞이하였습니다. 세상 힘을 붙잡으려다, 제대로 뒤통수 맞았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너희 묵은 땅을 기경하라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아멘.
인생은 씨를 뿌리는 것과 같습니다.
“뿌린 대로 거둔다”는 말이 있습니다.
갈라디아서 6:7-8절을 보면, “스스로 속이지 말라 하나님은 업신여김을 받지 아니하시나니 사람이 무엇으로 심든지 그대로 거두리라 자기의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는 육체로부터 썩어질 것을 거두고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는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리라”고 했습니다.
우리는 무엇을 심어야 할까요?
우리는 육체를 위하여 심는 자가 아니라 성령을 위하여 심는 자가 되어야 합니다.
성령을 위하여 심을 때, 성령으로부터 영생을 거두게 됩니다.
무엇을 심든지 그대로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에스겔 36:24-27절을 보면, “내가 너희를 여러 나라 가운데에서 인도하여 내고 여러 민족 가운데에서 모아 데리고 고국 땅에 들어가서 맑은 물을 너희에게 뿌려서 너희로 정결하게 하되 곧 너희 모든 더러운 것에서와 모든 우상 숭배에서 너희를 정결하게 할 것이며 또 새 영을 너희 속에 두고 새 마음을 너희에게 주되 너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줄 것이며 또 내 영을 너희 속에 두어 너희로 내 율례를 행하게 하리니 너희가 내 규례를 지켜 행할지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 육신에서 굳은 마음을 제거하고 부드러운 마음을 심기를 원하십니다.
시편 126:5-6절을 보면, “눈물을 흘리며 씨를 뿌리는 자는 기쁨으로 거두리로다 울며 씨를 뿌리러 나가는 자는 반드시 기쁨으로 그 곡식 단을 가지고 돌아오리로다”라고 했습니다.
씨를 뿌리면 반드시 열매를 거두게 되어 있습니다.
고린도후서 9:6절을 보면, “적게 심는 자는 적게 거두고 많이 심는 자는 많이 거둔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많이 심어야 합니다. 많이 심어야 많이 거둘 수 있습니다.
여러분! 씨를 뿌리고 거두는 것이 인생입니다.
우리는 무엇을 뿌려야 합니까?
“너희가 자기를 위하여 공의를 심고 인애를 거두라”
우리는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야 합니다.
“정의를 뿌리고 사랑의 열매를 거두어라. 지금은 너희가 주를 찾을 때이다. 묵은 땅을 갈아 엎어라. 나 주가 너희에게 가서 정의를 비처럼 내려 주겠다.”(새번역)
씨를 뿌리기 위해서,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묵은 땅을 갈아엎어야 합니다.
묵은 땅을 갈아엎기 위하여, 지금 우리들이 해야 할 일이 무엇입니까?
여호와를 찾을 때입니다. 지금 하나님을 찾을 때입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말씀을 들어야 합니다.
“나중에 시간 되면 하겠다.”고 미루어서는 안됩니다.
지금 변화되어야 합니다. 지금 새로워져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로 돌아와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께 회개해야 합니다.
지금 구원받아야 합니다. 지금 은혜 받아야 합니다.
“보라 지금은 은혜 받을 만한 때요 보라 지금은 구원의 날이로다”(고후 6:2)
지금 하나님의 일을 해야 합니다. 지금 하나님의 뜻을 받들어야 합니다.
괴테는 “우리는 변하고 새로워지고 젊어져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점점 굳어진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을 우리를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우리에게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을까요?
어디 가서 “나는 장로입니다. 나는 권사입니다. 나는 집사입니다. 나는 목사입니다.”라고 자랑하라고, 귀한 직분을 맡겨주신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하나님의 일을 하라고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교회 일을 하라고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세상일을 하라고 직분을 주신 것이 아니라, 하나님을 위하여, 교회 일을 하라고 귀한 직분을 맡겨 주셨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암 5:6)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지금이 곧 여호와를 찾을 때니 마침내 여호와께서 오사 공의를 비처럼 너희에게 내리시리라”
지금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만나 주십니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 곁에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을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찾아오셔서, 복을 비처럼 내려 주십니다.
신명기 28:12절을 보면, “여호와께서 너를 위하여 하늘의 아름다운 보고를 여시사 네 땅에 때를 따라 비를 내리시고 네 손으로 하는 모든 일에 복을 주시리니 네가 많은 민족에게 꾸어줄지라도 너는 꾸지 아니할 것이요”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은 우리에게 복을 주십니다.
시편 65:10절을 보면, “주께서 밭고랑에 물을 넉넉히 대사 그 이랑을 평평하게 하시며 또 단비로 부드럽게 하시고 그 싹에 복을 주시나이다”라고 말슴하셨습니다.
이사야 44:3-4절을 보면, “나는 목마른 자에게 물을 주며 마른 땅에 시내가 흐르게 하며 나의 영을 네 자손에게, 나의 복을 네 후손에게 부어 주리니 그들이 풀 가운데에서 솟아나기를 시냇가의 버들 같이 할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찾는 모든 사람들에게 은혜의 단비,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바로 내 마음의 문 밖에 서 계십니다.
요한계시록 3:20절을 보면, “볼지어다 내가 문 밖에 서서 두드리노니 누구든지 내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내가 그에게로 들어가 그와 더불어 먹고 그는 나와 더불어 먹으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 하나님은 문 밖에 서서, 우리 마음의 문을 두드리고 계십니다.
누구든지 주의 음성을 듣고 문을 열면, 주님께서 우리 마음 속으로 들어오십니다.
문을 열면, 주님께서 들어오셔서, 우리는 주님과 더불어 먹고 마실 수 있습니다.
이런 놀라운 주님의 은총이 여러분 모두에게 임하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하신 아버지 하나님!
우리의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을 찾습니다.
우리를 찾아오셔서, 우리에게 은혜의 단비, 축복의 단비를 내려 주옵소서.
우리의 묵은 땅을 기경함으로, 씨를 뿌리고, 수고함으로 풍성한 열매를 맺는 삶을 살기 원합니다.
주여, 우리 마음 가운데 오셔서, 우리를 부드럽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