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룹니다(롬 8:28)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어느 날 화가가 친한 친구를 만났습니다.
그녀는 깊은 시름에 잠겨 있었습니다.
그가 그녀에게 이유를 묻자, 그녀는 예쁜 손수건을 꺼내 보여주며, “사랑하는 사람으로부터 받은 선물인데, 실수로 잉크를 떨어뜨려, 얼룩이 생겼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녀가 내민 손수건에는 잉크가 번져 있었습니다.
화가는 그녀에게 “며칠 동안만 그 손수건을 빌려달라”고 했습니다.
그로부터 며칠이 지난 후, 화가로부터 그녀에게 소포가 배달되었습니다.
그녀는 자기의 눈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소포로 배달된 손수건은 화가가 그린 그림으로 가득 차 있었습니다.
화가는 실수로 생긴 잉크자국을 살려, 손수건 위에 멋진 그림을 그렸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 실수와 실패를 모아, 아름다운 작품을 만들기를 원하십니다.
2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아멘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
하나님은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불러 주신 것은 하나님의 뜻이었습니다.
우리가 우연이 하나님을 알게 되고, 하나님의 품 안에 안기게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선택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먼저 우리를 사랑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자녀 삼아 주셨습니다.
“야곱아 너를 창조하신 여호와께서 지금 말씀하시느니라 이스라엘아 너를 지으신 이가 말씀하시느니라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구속하였고 내가 너를 지명하여 불렀나니 너는 내 것이라”(사 43:1)
“사랑은 여기 있으니 우리가 하나님을 사랑한 것이 아니요 하나님이 우리를 사랑하사 우리 죄를 속하기 위하여 화목제물로 그 아들을 보내셨음이라”(요일 4:10)
“우리가 사랑함은 그가 먼저 우리를 사랑하셨음이라”(요일 4:19)
“너의 하나님 여호와가 너의 가운데에 계시니 그는 구원을 베푸실 전능자이시라 그가 너로 말미암아 기쁨을 이기지 못하시며 너를 잠잠히 사랑하시며 너로 말미암아 즐거이 부르며 기뻐하시리라”(습 3:17)
“하나님이 나를 부르셨다. 하나님이 나를 선택해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해 주셨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밖에 없게 됩니다.
“나 같은 죄인 불러주신 주님을 사랑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십니까?
우리는 마음을 다하고, 정성을 다하고, 목숨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우리는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해서는 안됩니다.
오직 하나님만을 사랑해야 합니다.
“이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지 말라 누구든지 세상을 사랑하면 아버지의 사랑이 그 안에 있지 아니하니 이는 세상에 있는 모든 것이 육신의 정욕과 안목의 정욕과 이생의 자랑이니 다 아버지께로부터 온 것이 아니요 세상으로부터 온 것이라 이 세상도, 그 정욕도 지나가되 오직 하나님의 뜻을 행하는 자는 영원히 거하느니라“”(요일 2:15-17)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란, 어떤 특별한 사건만을 말하는 것이 아닙니다.
“모든 것”이란, 하나님의 자녀인 우리가, 이 땅에서 경험하는 인생의 모든 것을 말합니다.
우리는 이 땅을 살아가면서 참으로 많은 것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우리는 성공할 수도 있고, 실패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대학이나, 시험에, 합격할 수도 있고, 떨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직장에서 승진할 수도 있고, 하루아침에 해고당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새로운 사람을 만날 수도 있고, 헤어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사업이 잘 될 수도 있고, 부도날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열심히 일하여, 집을 장만할 수도 있고, 새롭게 산 집이 지진으로 무너질 수도 있습니다.
우리는 근신하여 깨어 기도하므로, 영성이 살아 있을 수도 있고, 심지어는 유혹을 받아 쉽게 넘어지기도 합니다.
우리의 삶 속에 이런 일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우리는 매일 수없이 많은 것들을 경험하며 살아갑니다.
늘 반복되는 일들도 있지만, 때로는 전혀 새로운 일을 만나기도 합니다.
“모든 것”이란 이 땅을 살아가면서 경험하는 모든 것을 말합니다.
“합력하여”라는 말은 “함께 일하다”는 의미입니다.
누가 나와 함께 일하십니까? 내 인생의 배후에 누가 계십니까? 바로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내 인생의 배후에서 나와 함께 하신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위하여 일하신다는 것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사 41:10)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사 41:14)
여러분! 나 혼자가 아닙니다. 나는 외톨리가 아닙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십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볼지어다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
하나님은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항상 나와 함께 계십니다.
시편 139:7-10절을 보면, 다윗은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버려진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있으나 마나 한 존재가 아닙니다.
우리는 쓸모없는 존재가 아닙니다.
“네가 내 눈에 보배롭고 존귀하며 내가 너를 사랑하였은즉”(사 43:4)
우리는 하나님의 눈에 보배롭고 존귀한 존재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는 귀하고 소중한 존재입니다.
“여호와 그가 네 앞에서 가시며 너와 함께 하사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시리니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 놀라지 말라”(신 31:8)
여러분! 하나님은 내 인생의 배후에서 언제나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내 든든한 배경이 되어 주시고, 동반자가 되어 주십니다.
“선을 이룬다”라는 말은 “값진 열매를 맺게 한다”, “옳고 유용하게 만든다”, “좋은 결과를 이룬다”는 뜻입니다.
“우리가 알거니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느니라”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
“모든 일이 서로 작용해서 좋은 결과를 이룬다”
여러분! 좋은 일이 있었습니까?
우리에게 일어나는 좋은 일들이, 운이 좋아서, 어쩌다 그렇게 되어지는 것이 아니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의 모든 배후에서, 그들과 함께 일하심으로, 모든 것이, 그 영혼에 유익되는 방향으로 인도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무엇이 내 영혼에 유익되고, 복이 되는지, 잘 모릅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무엇이 내 영혼에 유익이 되는지 너무나 잘 아십니다.
나를 나보다 더 잘 아시는 하나님께서, 우리 인생의 배후에서 역사하심으로, 우리의 실수와 허물까지도, 가장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인도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에게, 모든 일들을 가장 좋은 것으로 바꾸어 주십니다.
요셉을 살펴 보십시오.
요셉은 형들의 미움을 받아, 애굽에 종으로 팔려갔습니다.
애굽으로 팔려간 요셉은 시위대장 보디발의 집에서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주인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가정 총무가 되었습니다.
그는 보디발의 아내의 유혹을 받았습니다. 그는 그 유혹을 물리쳤습니다.
그런데 그는 그 유혹을 물리친 것 때문에, 억울한 누명을 쓰고, 감옥에 갇히게 되었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도 열심히 일했습니다. 그는 간수장의 인정을 받았습니다.
그는 감옥 안에서, 술 맡은 자와 떡 굽는 자의 꿈을 해석해 주었습니다.
그리고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했습니다. 그는 하루아침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형들에게 배신을 당하였습니다. 그는 억울한 누명을 썼습니다.
그는 종이었고, 죄수였습니다.
창세기 39:2-3절을 보면,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 있을 때,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므로 그가 형통한 자가 되어 그의 주인 애굽 사람의 집에 있으니 그의 주인이 여호와께서 그와 함께 하심을 보며 또 여호와께서 그의 범사에 형통하게 하심을 보았더라”고 했습니다.
창세기 39:23절을 보면, 요셉이 감옥에 있을 때, “이는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심이라 여호와께서 그를 범사에 형통하게 하셨더라”고 했습니다.
요셉이 보디발의 집에서 종살이를 할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이 감옥 안에 죄수로 갇혀 있을 때에도, 하나님은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요셉의 배후에, 하나님이 늘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요셉의 배후에서, 그의 생애를 붙드시고, 그와 함께 하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그를 만들어 가셨습니다.
여러분! 깊이 있게 생각해 보십시오.
요셉이 형들의 미움을 받지 않았다면, 형들이 요셉을 미디안 상인에게 팔지 않았다면, 그는 애굽에 갈 수 없었을 것입니다. 애굽으로 팔려가지 못했다면, 그는 보디발의 집에 갈 일이 없었습니다.
요셉이 억울한 누명을 쓰지 않았다고 한다면, 그는 감옥에 갈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감옥에 가지 않았다면, 그는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할 일이 없었을 것입니다.
관원장들의 꿈을 해석하지 않았다면, 그는 바로의 꿈을 해석하려, 바로 앞에 나갈 기회도 없었을 것입니다.
하나님은 이 모든 것들이 협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형들이 기근을 맞이하여, 먹을 것을 사러, 애굽으로 내려왔을 때, 그의 어릴 적 꿈이 완전히 이루어졌습니다.
아득하고, 막연했던 꿈이 현실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요셉은 하나님을 사랑했습니다. 요셉은 늘 하나님과 함께 했습니다.
“내가 어찌 이 큰 악을 행하여 하나님께 죄를 지으리이까?”
이 한 마디 말 속에, 요셉의 믿음이 다 표현되어 있습니다.
요셉은 하나님의 섭리를 알았습니다.
식량을 구하러 왔던 형들이 자신을 알아보고 두려워할 때에, 요셉은 형들에게 “당신들이 나를 이곳에 팔았다고 해서 근심하지 마소서 한탄하지 마소서 하나님이 생명을 구원하시려고 나를 당신들보다 먼저 보내셨나이다”(창 45:5)라고 말했습니다.
훗날, 아버지 야곱이 죽자, 형들은 동생 요셉이 “혹시 우리를 미워하여 우리가 그에게 행한 모든 악을 다 갚지나 아니할까?”(창 50:15)라고 두려워했습니다.
그때 요셉은 형들에게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하나님을 대신하리이까 당신들은 나를 해하려 하였으나 하나님은 그것을 선으로 바꾸사 오늘과 같이 많은 백성의 생명을 구원하게 하시려 하셨나니 당신들은 두려워하지 마소서 내가 당신들과 당신들의 자녀를 기르리이다”(창 50:19-21)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 곧 그의 뜻대로 부르심을 입은 자들에게는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사실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신실한 목재소 직원이 있었습니다. 그는 40대 초반에, 회사로부터, 해고통보를 받았습니다. 극심한 불황이 계속되자, 회사는 더 이상 버틸 힘이 없어, 인력을 감축했습니다.
갑작스럽게 실직자가 된 중년 남성은 하나님께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해고에 담긴 진정한 의미가 무엇입니까?”
그는 직장을 구하려고, 여기 저기를 돌아다니는데, 믿는 사람들이 편히 머물 수 있는 숙박시설이 없다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래서 그는 건전한 사람들이 머물 수 있는 여관이 있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갖게 되고, 전혀 새로운 사업을 시작하였습니다. 그 사업이 점점 커져서, 세계적인 사업망을 거느린 호텔 “홀리데이 인”으로 성장하게 되었습니다.
그는 “케몬스 윌슨”입니다. 그는 눈앞에 해고통지서를 놓고, 절망의 늪에서 허우적거리지 않았습니다. 시련을 도약의 기회로 삼았습니다.
만약 “케몬스 윌슨”에게 “해고통보”가 날아들지 않았다면, 그는 목재소를 벗어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는 그곳에서 계속 일했을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십니다.
우리의 좋지 못한 과거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실수와 허물까지라도, 마침내 우리의 영혼에 유익하게 하십니다.
여러분! 우리 인생은 연약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뜻을 잘 모릅니다.
우리는 무지합니다. 아는 것보다는 모르는 것이 더 많습니다.
내일을 모르기에, 잘못된 선택을 할 때도 있습니다.
또 우리에게는 많은 실수와 허물이 있습니다.
사단은 우리의 실수와 허물을 놓치지 않고, 끊임없이 우리를 공격합니다.
“너의 인생은 이제 끝났어. 너는 이제 아무 것도 할 수 없어. 네가 살아온 과거를 한번 생각해봐? 네가 지금 무엇을 할 수 있다는 거야?”
그러나 주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아니야, 너는 아직 끝나지 않았어. 네가 아무리 넘어졌고 망가졌고 잘못된 선택을 하였을지라도 네가 나를 사랑한다면 나는 너의 모든 인생을 합력하여 선을 이루도록 만들어 줄거야. 네 영혼에 가장 유익된 방향으로 너를 인도할 거야”
훗날, “그때 그 힘든 일이 없었다고 한다면, 지금의 내가 있었을까?”라고 생각하게 될 것입니다. 그때, 그 힘든 날을 아름다운 추억이라고 부르게 될 것입니다.
예수님은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에게 찾아오셨습니다.
“나를 따라오라 내가 너희를 사람을 낚는 어부가 되게 하리라”(마 4:19)
베드로는 그물을 버려두고, 예수님을 따랐습니다.
어느 날,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오늘 밤에 너희가 다 나를 버리리라”(마 26:31)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때 베드로는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오늘 밤 닭 울기 전에 네가 세 번 나를 부인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베드로는 예수님께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라고 자신있게 대답했습니다.
그러나 그날 밤, 베드로는 모든 사람들 앞에서, 예수님을 모른다고 부인했습니다.
“나는 그 사람을 알지 못하노라”
베드로가 예수님을 모른다고 저주하고 맹세할 때, 닭이 울었습니다.
베드로는 실패했습니다. 넘어졌습니다. 그는 심히 통곡했습니다.
예수님이 십자가에 죽으시고 부활하신 후, 갈릴리 호숫가에서 고기를 잡고 있는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베드로에게 “요한의 아들 시몬아 네가 이 사람들보다 나를 더 사랑하느냐”요 21:15)고 물으셨습니다.
베드로는 “주님 그러하나이다 내가 주님을 사랑하는 줄 주님께서 아시나이다”라고 대답했습니다. 예수님은 그에게 “내 어린 양을 먹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연약함을 아십니다.
실수하고, 실패한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끝까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요나를 찾아오셨습니다.
“너는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그것을 향하여 외치라 그 악독이 내 앞에 상달되었음이니라”(욘 1:2)
요나는 하나님의 얼굴을 피하여 도망쳤습니다. 요나는 풍랑을 만났습니다.
사람들이 그를 바다에 던졌습니다. 그는 물고기 뱃속에 들어갔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내가 받는 고난으로 말미암아 여호와께 불러 아뢰었더니 주께서 내게 대답하셨고 내가 스올의 뱃속에서 부르짖었더니 주께서 내 음성을 들으셨나이다”(욘 2:2)
하나님은 요나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이 두 번째로 요나에게 임하였습니다.
“일어나 저 큰 성읍 니느웨로 가서 내가 네게 명한 바를 그들에게 선포하라”(욘 3:2)
요나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일어나서 니느웨로 갔습니다. 그리고 선포했습니다.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
마침내, 니느웨에 회개의 역사가 일어났습니다.
하나님께서 니느웨에 내리고자 했던 재앙을 거두셨습니다.
요나는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쓰임받았습니다.
실패를 해도,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않습니다. 다시 기회를 주시고,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배후에서 역사하십니다.
우리는 자꾸만 잘못된 길로 나아가려고 하는데, 하나님은 우리들이 잘못된 길로 나아가고 있을지라도, 우리 안에 역사하셔서, 하나님의 귀한 도구로 사용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룬다”고 하는 것은, 우리 주변에서 일어나는 일들이, 우리에게 가장 유익이 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다”
“하나님이 나를 사랑하신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신다”
“모든 것이 합력하여 선을 이루게 하신다”
이 얼마나 큰 축복이요 은혜입니까?
어떤 사람은 육체의 연약함을 통하여,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어떤 사람은 사업의 실패를 통하여, 또 어떤 사람은 인간관계의 아픔을 통하여,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러시아 육군 장교인 “알렉산드르 솔제니친”은 소련 공산당에 의해, 문서를 날조했다는 죄목으로 재판을 받고, 시베리아 정치범 수용소로 끌려가 8년 동안 감옥생활을 하였습니다. 그곳에서 죄수들의 참상을 생생하게 목격하였는데, 상상을 초월할 지경이었습니다. 심각한 고문과 고통을 목격하였는데, 자신도 그 고통을 당하였습니다. 그런 중에 예수를 영접하게 되었고, 그의 인생은 바뀌게 되었습니다. 이것이 가장 큰 변화요 은혜였다고 그는 회고하였습니다. 자신이 수용소를 가지 않았더라면 예수를 만날 기회가 없었을 것이라고, 훗날 솔제니친은 고백하였습니다.
그는 1970년 노벨문학상을 받았고, 1973년에 수용소 실상을 폭로하는 “수용소 군도”라는 책을 썼는데, 그는 그 책 첫머리에서 “감방이여 고맙소”라고 말하였다고 합니다.
1983년 솔제니친은 소련에서 종교를 부활시킨 개척자라는 점이 인정되어, 종교계의 노벨상이라 불리는 템플턴상을 수상하기도 했습니다.
솔제니친은 고통 속에서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여러분! 지금 우리는 이 자리에 나와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를 나의 구주와 나의 인생의 주인으로 고백하며, 하나님께 예배를 드리고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이 주시는 복을 받고자 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지금 우리는 하나님께 감사하는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는 마음으로, 이 자리에 나와 앉아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왜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있는 것입니까?
하나님이 우리를 하나님의 뜻 가운데서 불러 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내 발로 지금 이 자리에 나온 것처럼, 느껴집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불러 주시지 않았다고 한다면, 우리는 지금 이 자리에 나올 수 없습니다.
하나님이 나를 불러 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여러분을 불러 주셨습니다.
한 가지 매우 안타까운 일은, 하나님이 불러 주셨는데, 그 음성에 응답하지 않는 이들이 있다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불러 주시는데, 그 음성을 듣지 못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똑똑히 들으면서도, 응답하지 않는 이들이 있습니다.
자꾸만 다음으로 미루는 이들이 있습니다.
“다음에...다음에...시간이 나면, 성공하면, 일이 잘 풀리면, 나이 들면, 죽을 때가 되면,”
다음은 없습니다. 내일은 우리를 기다려 주지 않습니다.
11월 15일. 포항에서 지진이 발생했습니다. 역대 두 번째로 큰 지진이라고 합니다.
16일. 수능이 일주일 연기되었습니다.
많은 피해 상황이 지금도 보도되고 있습니다.
필로티 건물 기둥 철근이 엿가락처럼 휘어져, 위태로운 집을 보았습니다.
우리 주변에서 흔하게 볼 수 있는 1층이 주차장인 건물을 필로티 건물이라고 합니다.
다른 많은 피해당한 건물들도 있지만, 유독 그 필로티 건물만 방송에 자주 나옵니다.
자세한 것은 모르겠지만, 건물주인이 인터뷰한 내용을 보니까, 4개월 전에 건물을 구입하여 이사 왔다는 것입니다.
지진이 나서, 건물이 붕괴될 것을 알았다고 한다면, 그 집을 구입했을까요?
돈이 많아서, 쉽게 그 건물을 구입했을까요?
아마도 이것 저것 다 따져보고, 건물을 구입했을 것입니다. 그런데 지진이 날 것은 전혀 생각하지 못했을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우리는 내일을 알지 못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았습니다.
우리 가족들이, 우리 자녀들이, 다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응답하여, 주님 앞에 나오기를 소망합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속한 것들을 사랑하는 삶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의 부르심을 받고, 하나님 앞에 나와,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로서, 주님과 함께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연약과 실패와 실수와 허물까지라도 합력하여 선을 이루시는 좋으신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부르시는 그날까지, 마음을 다하여, 힘을 다하여, 정성을 다하여, 하나님을 사랑할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기도합니다.
우리를 불러 주신 주님!
우리를 변함없는 사랑으로 사랑하여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마음을 다하여, 뜻을 다하여, 주님을 사랑하겠습니다.
주를 위하여 헌신하며 충성하겠습니다.
주의 은혜에 보답하며 살겠습니다.
늘 우리를 붙들어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