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사 12: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임마누엘의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축복합니다.”
오지 않을 것 같던 따뜻한 봄날이 성큼 다가왔습니다.
성질 빠른 사람이거나 아니면, 가슴이 뜨거운 사람인 줄 모르겠지만, 벌써 반팔로 거리를 활보하는 사람을 보았습니다.
보통 사람들도, 이제는 뜨거운 겨울 잠바를 벗고, 가벼운 옷차림으로 나들이 할 수 있는 봄날이 다가왔습니다.
벌써, 광양 매화축제, 구례 산수유축제, 양산원동 매화축제, 서천 동백꽃 주꾸미축제, 그리고 에버랜드 튤립 축제 등, 여기 저기서, 추운 겨울을 잘 버틴 꽃들이 사람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고 있습니다.
오늘은 이사야 12:1-6절의 말씀을 가지고,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는 제목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전하고자 합니다.
이 시간, 하나님의 말씀을 통하여, 여러분 모두, 큰 은혜 받을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어떤 사람을 평가할 때, “저 사람이 예수를 믿는 사람인가? 구원을 받은 사람인가? 하나님의 은혜를 받은 사람인가?”를 어떻게 하면, 알 수 있을까요?
우리는 그의 속마음을 정확하게 알 수 없지만, 곁에서 보여지는 “그가 어떻게 사는가?”를 보면, 그래도 어느 정도 알 수가 있습니다.
사도 요한은 “자녀들아 우리가 말과 혀로만 사랑하지 말고 행함과 진실함으로 하자”(요일 3:18)고 말했습니다.
말로 천냥 빚을 갚는다고 하지만, 행함과 진실함이 없으면 도루묵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 날에 네가 말하기를 여호와여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아멘.
“그 날에”, “그 날”은 어떤 날일까요?
지난 주일에 살펴본, 이사야 11:1절을 보면,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나며 그 뿌리에서 한 가지가 나서 결실할 것이요”라고 말했습니다.
“이새의 줄기에서 한 싹이 난다”고 하는 것은 장차 이 땅에 오실 메시야에 대한 예연의 말씀입니다.
가장 낮은 자리에서, 이새의 줄기로, 요셉과 마리아의 아들로, 예수님은 오셨습니다.
화려한 궁궐에서, 강한 왕으로, 예수님은 오시지 않으셨습니다.
이사야 11:10절을 보면, “그 날에 이새의 뿌리에서 한 싹이 나서 만민의 기치로 설 것이요 열방이 그에게로 돌아오리니 그가 거한 곳이 영화로우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그 날”은 예수님께서 이 땅에 오시는 날입니다.
“그 날”은 복된 날입니다.
“그 날”이 무슨 날입니까? 그 날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날입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나의 죄악으로 인하여 분노하시던 그 분노를 그치신 날입니다.
“그 날”은 내가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구원을 얻은 날입니다.
“그 날”은 내가 하나님을 아바 아버지라고 부르게 된 날입니다.
“그 날”은 내가 하나님으로부터 사랑과 축복을 받기로 약속이 체결된 날입니다.
“그 날”은 영원한 하늘나라가 내게 주어진 복된 날입니다.
“그 날”은 성도라는 거룩한 이름이 내게 주어진 날입니다.
여러분! “그 날”이 바로 그런 날이 되었습니까?
“그 날”은 주님께서 나를 반겨 맞으시려고 오시는 날입니다.
나를 심판하려고 오시는 날이 아니라, 나의 모든 죄를 용서하시고, 나를 품에 품어주시려고 오시는 복된 날입니다.
그러나 어떤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두렵고 떨리는 날이 될 것입니다.
제발 오지 않았으면 하고, 간절히 바라는 그런 날일 것입니다. 왜냐하면 그 날이 그 사람에게는 심판의 날이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모두 다 “그 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한 날이 있었기에, 오늘까지 주님의 사랑과 축복이 나와 함께 하셨고, 지금 하나님께 영광과 찬양으로 예배하는 성도가 되었습니다.
내 일생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고, 예수 그리스도를 영접하고, 예수 그리스도를 믿고, 순종하기로 결단하는 “그 날”이 없었다고 한다면, 나는 여전히, “하나님의 분노로 인하여, 진노의 자리, 심판의 자리에 머물러 있는 자가 아닐까?” 생각만 해도, 아찔합니다.
그렇기 때문에, 우리는 이 세상에 대해서는 부족한 것이 많을지라도, 하나님께 대한 감사는 멈출 수가 없습니다.
“범사에 감사하라. 이는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를 향하신 하나님의 뜻이니라.”(살후 5:18)
하나님께 감사하는 것은 구원 받은 성도들만이 갖는 특권입니다.
“주께서 전에는 내게 노하셨사오나 이제는 주의 진노가 돌아섰고”
전에는 주님께서 내게 노하셨습니다.
이제는 주님의 진노가 내게서 돌아섰습니다. 주님의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전에는 주님께서 내게 노하셨지만, 이제는 주님의 진노를 내게서 거두셨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떠났을 때,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죄인이었습니다.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진노하셨습니다.
우리도 하나님을 알지 못할 때,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과 마찬가지였습니다.
우리는 그들과 똑같은 죄인이었습니다.
“전에는 우리도 다 그 가운데서 우리 육체의 욕심을 따라 지내며 육체와 마음의 원하는 것을 하여 다른 이들과 같이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더니”(엡 2:3)
전에는 우리도 본질상 진노의 자녀이었습니다.
여러분! 애굽을 떠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생활을 끝내고 가나안 땅에 들어갈 때, 그 가나안 땅에 살고 있는 사람들은 하나님 앞에 진노의 대상이었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을 부정할 뿐만 아니라, 온갖 더러운 성적, 도덕적, 종교적 죄악들을 범하며 살고 있었습니다. 죄악이 관영했습니다. 죄로 인해 멸망 받을 수밖에 없었습니다.
마찬가지로, 이스라엘 백성들이 하나님을 배신하고, 떠났을 때, 그들도 가나안 땅에 살던 사람들처럼, 하나님 앞에 진노의 대상이 되어 버렸습니다.
그런데 하나님께서 이스라엘을 향한 진노를 거두셨습니다.
이사야 10:21절을 보면, “남은 자 곧 야곱의 남은 자가 능하신 하나님께로 돌아올 것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앗수르에 포로로 끌려갔던 이들을, 하나님은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올 수 있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의 모든 죄를 다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그들의 허물을 다 덮어주셨습니다. 그들의 죄를 저 멀리 바다 반대편으로 던져버리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죄와 허물을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시편 30:4-5절을 보면, 다윗은 “주의 성도들아 여호와를 찬송하며 그의 거룩함을 기억하며 감사하라 그의 노염은 잠깐이요 그의 은총은 평생이로다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왜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죄를 용서해 주셨을까요?
왜 하나님은 나의 모든 죄와 허물을 용서해 주셨을까요?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은혜라는 것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이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나의 아버지이십니다.
우리의 행위가 아버지 하나님 보시기에, 진노의 대상이 되었지만, 그리하여, 우리를 징계하셨지만,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를 버릴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자녀인 우리들이 아버지 품으로 돌아오기를 기다리고 또 기다리셨습니다.
집 나간 둘째 아들이 돌아올 때까지, 마을 어귀에 나가셔서, 기다리고 기다리셨습니다.
또한 어떤 경우에는 집 나간 자녀를 기다리지 못한 아버지께서, 친히 그 자녀를 찾아 나셨습니다.
“아들아, 딸아, 어디 있니. 이제 집으로 돌아가자”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찾아내기까지 찾아다니셨습니다.
또 찾아낸즉 즐거워 어깨에 메고 돌아오셨습니다.
주님은 친히 이 땅에 오셔서, 우리의 연약한 손을 붙들고, “이제 일어나 함께 가자”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그 주님의 음성을 듣고, 그 주님의 손을 붙들고, 일어나, 주님과 함께 걸어가는 사람들에게는 “그 날”이 복된 날이 되는 것입니다.
여러분! “그 날”이 어떤 날입니까?
주님이 오시는 그 날이, 여러분에게 어떤 날입니까?
나에게, 그 날이 복된 날이 되어야 합니다. 은혜의 날이요, 구원의 날이요, 축복의 날이 되어야 합니다.
“꽃이 피었다”고 하는 것은 “봄이 왔다”는 것입니다.
“그 날이 왔다”고 하는 것은 “주님이 오셨다”라는 것을 이야기 합니다.
“또 주께서 나를 안위하시오니 내가 주께 감사하겠나이다 할 것이니라”
주님께서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주님은 우리를 안위하여 주셨습니다.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주님의 용서하심도 받았고, 주님의 위로도 받게 되었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내가 주님께 감사하겠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의 눈물을 닦아 주셨습니다.
내 삶이 어렵고 역경과 고난이 있을 때, 하나님은 나를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나를 내버려 두지 않으셨습니다. 나를 찾아오셔서, 나를 따뜻하게 품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버지와 형을 속이고, 도망치는 야곱을 찾아오셨습니다.
“나는 여호와니 너의 조부 아브라함의 하나님이요 이삭의 하나님이라 네가 누워 있는 땅을 내가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이 땅의 티끌 같이 되어 네가 서쪽과 동쪽과 북쪽과 남쪽으로 퍼져나갈지며 땅의 모든 족속이 너와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복을 받으리라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창 28:13-15)는 말씀으로, 하나님은 그를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로뎀 나무 알에서 죽기를 바라는 엘리야를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쳐 있는 그에게 떡과 생수로 위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광야에서 목말라 죽어가는 하갈과 이스마엘을 찾아오셨습니다.
우물을 주심으로, 그들의 목마름을 해결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예수님을 부인하고, 갈릴리에서 고기를 잡고 있던 베드로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직접 생선을 구워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뽕나무 위에 올라간 삭개오의 이름을 부르며, 그를 맞아주셨습니다. 아무도 들어가지 않던 삭개오의 집으로, 주님은 들어가셨습니다.
여러분! “저녁에는 울음이 깃들일지라도 아침에는 기쁨이 오리로다”
하나님은 언제나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고, 우리를 위로하여 주십니다.
그 주님의 따뜻한 위로에, 우리의 얼어 붙은 마음은 녹아내립니다.
막혔던 것이 뻥 뚫릴 때, 얼마나 속이 시원한지 모릅니다.
죄로 말미암아, 하나님과 우리 사이에 막혔던 모든 것들이, 주님이 이 땅에 오셔서, 십자가 지시고, 보혈을 흘려 주심으로, 해결되었습니다.
너무 추워서인지 얼어 붙어 꽉 막혔던 것이 이것 저것 다 해보아도, 안되던 것들이 따뜻한 봄이 오자 저절로 녹아 뻥 뚫렸습니다.
예수님이 오시면, 모든 문제들이 해결됩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주님을 생각할 때마다, 감사해야 합니다.
여러분! 늘 하나님의 용서하심과 위로하심을 생각하면서, 감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나의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십니다.
2절 말씀입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내가 신뢰하고 두려움이 없으리니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나의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심이라” 아멘.
2절은 “보라”라는 단어로 시작됩니다.
이 단어를 칼빈은 이렇게 해석했습니다.
“구름 속에 숨겨졌던 태양이 구름 사이에서 나오자 그 빛을 볼 수 있게 된 하나님의 은혜를 지칭하는 말이다”
영적인 눈을 가지고 하나님을 보라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영적인 눈을 떠서,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그렇습니다. 어떤 고난과 실패와 역경에 부딪혀도, 그 문제보다, 그 절망보다, 크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절망적인 환경에 처하든지, 천지만물을 지으시고, 지키시고, 보호하여 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두렵고 깜짝 놀랄 말한 일을 당할 때에도, 우리는 주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어떤 위급한 상황에서도, 그 문제만을 바라보지 말고, 얼른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갑작스러운 문제를 만났을 때, 낙심하거나, 좌절하지 말고, 즉시 하나님을 바라볼 수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영안의 눈을 떠서, 하나님을 볼 때에, 하나님은 우리의 힘이시며, 노래시며, 구원이심을 발견할 수 있습니다.
이 고백은 모세와 이스라엘 백성들이 이미 고백한 노래의 한 구절입니다.
출애굽기 15:2절을 보면,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육지처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은 “여호와는 나의 힘이요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 그는 나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찬송할 것이요 내 아버지의 하나님이시니 내가 그를 높이리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근심과 두려움으로 가로 막혀있던 홍해가 나뉘어지고, 그 홍해를 건넌 이스라엘 백성들과 모세는 하나님을 향하여 “여호와는 나의 힘이시며, 노래시며, 나의 구원이시로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힘이십니다.
이사야 40:31절을 보면 “오직 여호와를 앙망하는 자는 새 힘을 얻으리니 독수리가 날개치며 올라감 같을 것이요 달음박질하여도 곤비하지 아니하겠고 걸어가도 피곤하지 아니하리로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시편 18:1-2절을 보면, 한평생 하나님의 힘을 체험하며 살았던 다윗은 “나의 힘이신 여호와여 내가 주를 사랑하나이다 여호와는 나의 반석이시요 나의 요새시요 나를 건지시는 이시요 나의 하나님이시요 내가 그 안에 피할 나의 바위시요 나의 방패시요 나의 구원의 뿔이시요 나의 산성이시로다”라고 노래했습니다.
다윗은 고독할 때마다, 힘들 때마다, 시련이나 환난이 앞을 가로막을 때마다,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힘을 구했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주시는 그 힘으로 승리했습니다.
찬송가 85장 1절 가사입니다.
“구주를 생각만 해도 이렇게 좋거든 주 얼굴 뵈올 때에야 얼마나 좋으랴”
주님을 생각만 해도,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주님을 사모할 때, 예배 할 때, 기도할 때, 찬양할 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십니다.
오직 주님을 앙망하는 사람은 새 힘을 얻게 되어, 독수리가 날개를 치며 솟아오르듯 올라갈 것이요, 뛰어도 지치지 않으며, 걸어도 피곤하지 않을 것입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노래이십니다.
찬송가 288장, “예수로 나의 구주 삼고” 등 우리에게 익숙한 찬송을 많이 쓴 크로스비는 생후 6개월만에 시력을 잃고, 맹인이 되었습니다.
어느 날, 친구가 그녀에게 “하나님은 왜 너 같이 착하고 재주 많은 사람을 맹인이 되게 하셨을까?”라며 한마디 했습니다.
크로스비는 웃으며 대답했습니다.
“만일 하나님께서 내가 태어나는 순간 네 소원이 무엇이냐고 물으셨다면 나는 맹인이 되게 해달라고 부탁 했을거야. 왜냐하면 천국에 가서 맨 처음 눈을 뜨고 주님을 볼 수 있기 때문이야”
그녀는 일생 동안 2000여개의 찬송시를 썼습니다.
우리 찬송가에도 24편이나 수록되어 있습니다.
우리가 당면한 현실은 각각 다릅니다.
두 눈을 뜬 사람도 있고, 감은 사람도 있습니다.
성공한 사람도 있고, 실패한 사람도 있습니다.
행복한 사람도 있고, 불행한 사람도 있습니다.
건강한 사람도 있고, 병든 사람도 있습니다.
아무 문제가 없는 사람도 있고, 문제 투성이인 사람도 있습니다.
그러나 크로스비는 두 눈을 감을 채, 2천 여개의 감사와 감격의 찬송시들을 썼습니다.
그에 비하면, 우리는 얼마나 큰 은혜를 받았습니까?
우리는 말로 다할 수 없는 놀라운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원망과 불평이 아닌, 늘 감사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노래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시편 119:164절을 보면 “주의 의로운 규례들로 말미암아 내가 하루 일곱 번씩 주를 찬양하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46:2절을 보면, “나의 생전에 여호와를 찬양하며 나의 평생에 내 하나님을 찬송하리로다”라고 말했습니다.
사도행전 16장을 보면, 빌립보 감옥에 갇힌 바울과 실라는 깊은 밤에, 기도하고, 하나님을 찬송하였습니다. 그 한 밤 중에, 옥문이 활짝 열리는 기적이 일어났습니다.
여러분! 힘들고 어려운 일들이 산처럼 쌓여 있더라도 감사하고 찬송합시다.
감사함으로, 주님을 찬양할 때, 우리 앞에 놓여 있는 문제들이 다 떠나갈 줄 믿습니다.
막혔던 문이 활짝 열리게 될 줄 믿습니다.
염려와 걱정거리들이 다 사라질 줄 믿습니다.
모든 아픔과 질병들이 깨끗하게 치료될 줄 믿습니다.
시편 100:4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그의 문에 들어가며 찬송함으로 그의 궁정에 들어가서 그에게 감사하며 그의 이름을 송축할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시편 147:7절을 보면, “감사함으로 여호와께 노래하며 수금으로 하나님께 찬양할지어다”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늘 주님께 감사함으로 찬양하며 사시기 바랍니다.
주 여호와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십니다.
“보라 하나님은 나의 구원이시라. 나의 구원이심이라”
예수님께서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구원받을 수 있는 다른 길이 없습니다.
오직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를 통해서만, 우리는 구원받을 수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바울 사도는 과감하게 “다른 복음은 없다”(갈 1:6)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바울 사도는 “우리나 혹은 하늘로부터 온 천사라도 우리가 너희에게 전한 복음 외에 다른 복음을 전하면 저주를 받을지어다”(갈 1:7)라고 말했습니다.
바울은 도량이 크고, 마음이 넓은 사도였습니다.
그는 잘못한 사람들도 용납하고 포용했습니다. 그러나 다른 복음은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로 주신 예수 그리스도의 십자가 없이는 구원이 없습니다.
여러분! 주 여호와는 나의 힘이십니다.
곤고하고 연약한 인생일지라도, 힘되신 하나님이 함께 하실 때에, 그들은 모두 위대한 일을 감당했습니다.
우리는 연약하나, 만유를 창조하신 주님이 나의 힘이시기 때문에, 우리는 이 험한 세상을 넉넉히 승리할 수 있습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노래이십니다.
하나님은 나의 기쁨의 이유가 됩니다.
홍해를 건너, 죽음의 위기를 벗어난 이스라엘 백성들은, 저절로 입술마다, 찬송으로 가득했습니다.
모든 슬픔의 근원들이 다 없어졌습니다.
저주와 죽음이 떠나갔습니다.
우리는 평생 주님의 은혜에 감사하며, 노래하며, 찬양하며 살아가야함이 마땅합니다.
주 여호와는 나의 구원이십니다.
하나님 밖에는 나의 구원자가 없습니다. 다른 복음이 없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죄와 허물을 깨끗하게 용서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절망과 죽음 가운데에서, 건져주셨습니다. 구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나를 기억하시고, 나의 곤고함과 슬픔 속에서, 나를 선한 길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항상 담대해야 합니다.
오늘도 캄캄하고, 물론 내일도 캄캄하다고 하여도, 우리는 담대할 수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우리는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러므로 너희가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아멘.
“그러므로”라는 접속사로 시작되고 있습니다. 그것은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으로 믿고 산다면”이라는 뜻입니다.
이사야 8:6절을 보면, “이 백성이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리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느니라”라고 말했습니다.
“천천히 흐르는 실로아 물을 버렸다”고 하는 말은 하나님을 버렸다는 말이고, “르신과 르말리야의 아들을 기뻐하였다”고 하는 말은 앗수르를 의지한다는 말입니다.
예레미야 2:13절을 보면, 하나님은 “내 백성이 두 가지 악을 행하였나니 곧 그들이 생수의 근원되는 나를 버린 것과 스스로 웅덩이를 판 것인데 그것은 그 물을 가두지 못할 터진 웅덩이들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7:13절을 보면, “이스라엘의 소망이신 여호와여 무릇 주를 버리는 자는 다 수치를 당할 것이라 무릇 여호와를 떠나는 자는 흙에 기록이 되오리니 이는 생수의 근원이신 여호와를 버림이니이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생수의 근원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생명수”이십니다.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들에서 물을 길으리로다”
사막에서의 우물은 풍성함과 풍요로움의 상징이었습니다.
여호와 하나님을 나의 힘, 나의 노래, 나의 구원으로 믿는다면, 기쁨이 샘솟는 삶을 살게 될 것이라는 것입니다.
우리가 예수를 영접하고, 구주로 고백하는 순간부터, 마치 우물물이 솟아나듯 기쁨이 샘솟게 되는 것입니다.
물 없는 사막에서 오아시스를 만난 기쁨보다 더 큰 감격이, 신령한 우물을 만난 사람에게 넘치는 것입니다.
예수님은 수가성의 사마리아 여인에게 “내가 주는 물을 마시는 자는 영원히 목마르지 아니하리니 내가 주는 물은 그 속에서 영생하도록 솟아나는 샘물이 되리라”(요 4:14)고 말씀하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나를 믿는 자는 성경에 이름과 같이 그 배에서 생수의 강이 흘러나오리라”(요 7:38)고 말씀하셨습니다.
누굴 만날까봐, 뜨거운 한 낮에 물 길러 나왔던 사마리아 여인은 예수님을 만난 후 참 기쁨이 무엇인가를 발견하게 되었습니다.
기쁨으로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을 수 있게 된 것입니다.
우리가 참 기쁨, 참 행복, 참 만족을 얻으려면, 구원의 우물에서 물을 길어야 합니다.
구원의 우물가에서,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야 합니다.
구원의 기쁨은 결코 마를 수 없는 샘과 우물과 같은 기쁨입니다.
목마른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에서 목이 말라, 아우성일 때에, 하나님께서는 그들에게 반석을 쪼개어 물을 주셨고, 마라의 쓴물을 단물로 바꾸어 주셨습니다.
우리는 기쁨으로 우물의 풍요로움에 참여 할 수 있어야 합니다.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께 감사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해야 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그 날에 너희가 또 말하기를 여호와께 감사하라 그의 이름을 부르며 그의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하며 그의 이름이 높다 하라” 아멘.
우리는 여호와 하나님을 찬송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기 때문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여호와를 찬송할 것은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 이를 온 땅에 알게 할지어다” 아멘.
4-6절을 보면, “그 이름을 부르며, 선포하며, 알게 하라, 소리 높여 부르라”고 반복 강조하고 있습니다.
그 이유가 무엇일까요?
“극히 아름다운 일을 하셨음이니”(5절)
하나님께서 우리를 위하여, 극히 아름다운 일을 행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극히 아름다운 일은 무엇일까요?
하나님이 우리를 구원하여 주신 것입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죽으셨습니다.”
“예수님이 나를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예수님은 나를 위해 다시 살아나셨습니다.”
“예수님은 오늘도 나와 함께 계십니다.”
구원받은 사람은 감사해야 합니다. 그리고 그 행하심을 만국 중에 선포해야 합니다.
우리 가운데 계시는 하나님은 참으로 위대하십니다.
6절 말씀입니다.
“시온의 주민아 소리 높여 부르라 이스라엘의 거룩하신 이가 너희 중에서 크심이니라 할 것이니라” 아멘.
우리는 사람들 앞에서 구원의 하나님을 노래하고 자랑해야 합니다. 바로 우리가 복음을 전하는 증인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간증하고, 선포하고, 드러내야 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로우신 주님!
우리의 모든 죄를 용서하여 주시고,
우리를 구원하여 주시고,
우리를 위로하여 주시고,
우리에게 새 힘을 주시니 감사를 드립니다.
우리의 입술을 열어, 늘 주님을 찬양하며 살겠습니다.
주님이 우리를 위하여 행하신 아름다운 일들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주님의 구원을 증거하며 살겠습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