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암 5:4-13)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하나님이 여러분과 항상 함께 하시기를 바랍니다.”
모세는 광야 40년을 정리하면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 그는 너를 돕는 방패시요 네 영광의 칼이시로다 네 대적이 네게 복종하리니 네가 그들의 높은 곳을 밟으리로다”(신 33:29)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하나님은 애굽에서 430년 동안, 종살이하고 있던 이스라엘을 찾아오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구원하여 주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홍해를 육지처럼 건넜습니다.
매일 아침마다, 들녘에 나가면, 만나와 메추라기가 있었습니다.
목이 마르면, 반석에서 나오는 물을 마실 수 있었습니다.
더운 낮에는 구름기둥으로, 추운 밤에는 불기둥으로 하나님은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광야 40년의 세월은 하나님이 그들과 항상 함께 하시는 축복의 시간이었습니다.
이제 그들은 요단강을 건너, 젖과 꿀이 흐르는 약속의 땅으로 들어갈 때가 되었습니다.
모세는 더 이상 앞으로 전진할 수가 없습니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지 못합니다.
모세는 요단강을 건너, 가나안에 들어가야 할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한 사람이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 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냐”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구원을 받았습니다. 죄사함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죄악으로부터, 저주와 사망으로부터 구원을 받았습니다.
우리는 말로 표현할 수 없는 하나님의 은혜를 받았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세상에서 가장 행복한 사람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내가 오늘 하늘과 땅을 불러 너희에게 증거를 삼노라 내가 생명과 사망과 복과 저주를 네 앞에 두었은즉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고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그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그를 의지하라 그는 네 생명이시요 네 장수이시니 여호와께서 네 조상 아브라함과 이삭과 야곱에게 주리라고 맹세하신 땅에 네가 거주하리라”(신 30:19-20)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닏. 여러분! 하나님은 생명과 사망을 우리 앞에 놓아 두셨습니다.
무엇을 택해야겠습니까? 당연히 생명을 택해야 합니다. 사망을 택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다.
하나님은 복과 저주를 우리 앞에 놓아 두셨습니다.
과연 무엇을 택해야겠습니까? 당연히 복을 택해야 합니다. 저주를 택하는 것은 어리석고 미련한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많은 사람들이 어리석고 미련한 일을 행하고 있습니다.
생명과 복을 택하는 대신, 그들은 사망과 저주를 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선택은 자유라고 말합니다.
그들에게 믿음을 강요하지도, 간섭하지도 말라고 말합니다.
여러분! 생명과 사망 가운데, 왜 생명을 택해야 합니까?
복과 저주 가운데, 왜 복을 택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와 네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을 택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우리와 우리 자손이 살기 위하여, 생명과 복을 선택하고,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청종하며, 또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살기 위해서는 생명이신 하나님을 택하고, 의지해야 합니다.
생명의 근원이신 하나님께 뿌리를 두고 있어야, 생명력 있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내가 곧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니 나로 말미암지 않고는 아버지께로 올 자가 없느니라”(요 14:6)고 말씀하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길이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진리가 되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의 생명이 되십니다.
길이 되시고, 진리가 되시고, 생명이 되시는 분은 오직 예수님밖에 없습니다.
다른 길이 없습니다. 다른 생명이 없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하나님을 버렸습니다. 그들은 하나님이 없이 살았습니다. 하나님의 함께 하심이 간섭이라고 생각했습니다. 자유라는 것은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떠나는 것이 자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은 자기들이 하고 싶은 대로 살겠다고 말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없는 삶이란, 생명이 없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이란, 행복이 없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없는 삶이란, 죄사함이 없는 삶이요, 구원이 없는 삶입니다.
반면에, 하나님이 있는 삶이란, 생명이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삶이란 행복이 있는 삶입니다.
하나님이 있는 삶이란 따뜻한 아침이 있는 삶이요, 여유로운 저녁이 있는 삶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문이니 누구든지 나로 말미암아 들어가면 구원을 받고 또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으리라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9-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생명을 주시고자, 십자가에서, 주님의 생명의 피를 우리 대신 흘려주셨습니다. 한 방울의 피도 남기지 않고, 다 쏟아 부어 주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은 우리를 구원하시려고 오셨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을 수 있도록 하기 위하여 오셨습니다.
우리는 살기 위하여, 생명을 얻기 위하여, 행복을 누리기 위하여, 영원한 삶을 살기 위하여,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여러분!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나면 살 수 있습니다. 누구든지 예수님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우리는 반드시 예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들어가며 나오며, 꼴을 얻기 위하여, 주님을 만나야 합니다.
주님을 만나면, 우리의 삶이 변합니다. 새로워집니다. 활력이 있고, 생명력이 넘치게 됩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나는 부활이요 생명이니 나를 믿는 자는 죽어도 살겠고 무릇 살아서 나를 믿는 자는 영원히 죽지 아니하리니 이것을 네가 믿느냐”(요 11:25-26)고 물으셨습니다.
우리는 “네, 믿습니다”라고 대답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를 향한 나의 생각을 내가 아나니 평안이요 재앙이 아니니라 너희에게 미래와 희망을 주는 것이니라”(렘 29:11)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재앙을 주시고자 하지 않습니다.
우리를 징계하시고, 심판하시는 것이 목적이 아닙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평안입니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시고자 하시는 것은 미래와 희망입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건강하고, 행복하고 풍성한 삶을 살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요즈음 우리들이 살아가고 있는 세상은 평안이 없습니다. 마음이 편할 날이 없습니다.
아무 데나 돌아다닐 수도 없습니다. 아무 데나 머물 수도 없습니다. 아무 사람이나 만날 수 없습니다.
언제 어떤 일이 일어날지 모릅니다. 생각지도 못한 사건, 사고가 너무 많습니다.
잠을 자는데 불이 날 수도 있고, 길을 걸어가다 납치를 당하거나, 폭행을 당할 수 있습니다.
하루하루 살아가는 것이, 두렵고 두려울 뿐입니다. 바람 잘 날이 없습니다.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습니다. 할 일도 없고, 하지도 못하고, 앞이 캄캄할 뿐입니다.
대부분의 사람들이, 고달픈 인생, 앞이 보이지 않는 캄캄한 인생, 병든 인생, 슬픔이 가득한 인생, 염려와 걱정과 근심에 사로잡혀 있는 인생을 그럭저럭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런데 여러분! 미래도 없고, 희망도 없고, 평안도 없는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하나님은 찾아오셔서, 희망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고, 그리고 미래를 주십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요 14:27)고 말씀하셨습니다.
이 힘들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행복을 주시고, 평안을 주시는 분은 오직 하나님밖에 없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하나님을 예배해야 합니다.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너희는 귀를 기울이고 내게로 나아와 들으라 그리하면 너희의 영혼이 살리라”(사 55:3)고 말씀하셨습니다.
어찌되었든 우리는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이 계시고, 하나님의 말씀이 계시기에, 이 견디기 힘든 험한 세상이라 할지라도, 기쁘게 노래 부르며, 살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진실로 진실로 너희에게 이르노니 내 말을 듣고 또 나 보내신 이를 믿는 자는 영생을 얻었고 심판에 이르지 아니하나니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겼느니라”(요 5:24)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영생을 얻습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심판에 이르지 아니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집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을 믿어야 합니다.
예수님을 굳게 붙들어야 합니다. 십자가를 단단히 붙잡아야 합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게 살아야 합니까?
이 세상에서, 우리는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살아야 합니다.
우리는 영원한 생명을 누리면서 살아야 합니다.
예수님을 믿으면 사망에서 생명으로 옮겨져, 영원한 생명을 누리며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어떻게 해야 구원을 얻을 수 있습니까? 죄 사함을 받을 수 있습니까?
“주 예수를 믿으라 그리하면 너와 네 집이 구원을 받으리라”(행 16:31)
주 예수를 믿음으로, 우리와 우리 자녀들이 구원 받아, 살기 힘든 이 험한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그리고 풍성하게 살아갈 수 있기를 소망합니다.
여러분! 아모스 선지자가 활동하던 시대를 보면, 하나님의 택함 받은 이스라엘 백성들은 감사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부귀영화를 누리면서도, 하나님께 감사하지 않고, 오히려 하나님을 떠났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의 여로보암 2세 때의 예언자였는데, 그때 나라가 대단히 강성했습니다. 국토는 넓었고, 경제적으로 번영했고, 주변 여러 나라에서 조공을 바쳐왔습니다. 통일왕국 시절, 다윗과 솔로몬 시대에 버금가는 국력을 가졌습니다.
그런데 그들은 방탕과 타락의 삶을 살뿐만 아니라, 우상숭배에까지 빠진 상태였습니다.
그들에게 있어서, 하나님께 드리는 제사는 형식적이었습니다. 아무런 감동도 없고, 감사도 없이, 형식적으로, 그들은 하나님께 제사를 드릴 뿐이었습니다.
힘있는 자들은 힘없는 자들을 처참하게 짓밟았습니다. 갑질 중에 갑질을 했습니다.
권력자들은 힘없는 자들에게, 부당한 세금을 거두었습니다. 가진 모든 것을 빼앗아갔습니다. 그들은 의인을 학대하고, 뇌물을 받고, 가난한 자를 억울하게 했습니다.
이렇게 죄에 깊이 빠져있는 북이스라엘을 향하여, 아모스 선지자는 하나님의 심판이 임박하였음을 경고했습니다.
요나 선지자가 앗수르의 수도인 니느웨에 가서, “사십 일이 지나면 니느웨가 무너지리라”(욘 3:4)고 선포하였던 것처럼, 아모스 선지자는,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하나님을 버리고, 우상을 섬기고, 예배를 형식적으로 드리고, 힘없는 자를 짓밟고, 의인을 학대하는 이스라엘은 반드시 망한다.”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는, 정의가 사라지고, 타락과 여러 가지 범죄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심판을 받아, 멸망할 수밖에 없는 이스라엘에게, 아모스 선지자는 살 길을 제시하였습니다.
여러분! 살 수 있는 길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찾는 것입니다.
니느웨 백성들이 하나님을 찾고, 회개했을 때, 하나님은 뜻을 돌이키사 니느웨 백성들을 살려 주셨습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여호와께서 이스라엘 족속에게 이와 같이 말씀하시기를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아멘.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나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더 나아가, 하나님은 그들에게 “벧엘을 찾지 말며 길갈로 들어가지 말며 브엘세바로도 나아가지 말라 길갈은 반드시 사로잡히겠고 벧엘은 비참하게 될 것임이라”(암 5:5)고 말씀하셨습니다.
아모스 선지자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그렇지 않으면 그가 불 같이 요셉의 집에 임하여 멸하시리니 벧엘에서 그 불들을 끌 자가 없으리라”(암 5:6)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살기 위하여,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하나님을 찾지 않으면, 마지막 날, 비참하게 될 것입니다. 멸망의 불이 임하게 될 것입니다.
노아 시대 때, 하나님은 사람의 죄악이 세상에 가득함과 그의 마음으로 생각하는 모든 계획이 항상 악할 뿐임을 보시고, 땅 위에 사람 지으셨음을 한탄하사, 마음에 근심하시고, 지면에서, 모든 것들을 물로서, 쓸어 버리셨습니다.(창 6:5-7)
아브라함 시대 때, 하나님은 아브라함의 조카 롯이 살고 있던, 우상 숭배와 죄악으로 가득한 소돔과 고모라를 불로 심판하셨습니다.(창 19장)
우리는 하나님이 만드신 이 아름다운 세상에서, 건강하고, 행복하게, 풍성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죄악 가운데 살아서는 안됩니다. 우상숭배에 빠져서는 안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에게 “벧엘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벧엘이 어떤 곳입니까?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곳입니다.
광야에서 홀로 잠을 자다, 꿈 속에서 하나님의 사닥다리를 보고, “내가 너와 함께 하리라”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은 야곱이, 잠에서 깨어나, “여호와께서 과연 여기 계시거늘 내가 알지 못하였도다. 두렵도다 이 곳이여 이것은 다름 아닌 하나님의 집이요 이는 하늘의 문이로다”라고 말하면서, 그곳 이름을 “벧엘”이라고 불렀습니다.(창 28:10-22)
훗날, 야곱에게 큰 위험이 닥쳐왔을 때, 하나님은 그에게 “벧엘로 올라가라”(창 35:1)고 말씀하셨습니다. 야곱은 다시 벧엘에 올라와서, 하나님 앞에 제단을 쌓았습니다.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을 처음으로 만난 곳, 고향으로 다시 돌아온 야곱이 하나님을 예배한 곳이었습니다.
벧엘이란 가장 힘들고 어려울 때, 두렵고 떨릴 때, 큰 생명의 위협을 느낄 때, 하나님께서 야곱을 만나 주신 곳입니다.
야곱에게 있어서, 벧엘은 하나님의 은혜의 장소요, 축복의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왜 하나님은 북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벧엘을 찾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여러분! 이스라엘이 북이스라엘과 남유다로 분열되었을 때, 북이스라엘을 통치하게 된 여로보암 왕은 예루살렘에 있는 여호와의 성전에 제사를 드리려 가는 백성들을 붙잡아 두고자, 금송아지를 두 개를 만들었습니다.
하나는 벧엘에 두고, 하나는 단에 두었습니다.
여로보암 왕은 백성들에게, “너희가 다시는 예루살렘에 올라갈 것이 없도다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올린 너희의 신들이라”고 말했습니다.
모세가 하나님의 십계명을 받기 위하여, 시내산에 올라갔을 때, 산 아래에 있던 아론과 백성들이, 금송아지를 부어 만들고, 그것을 예배하며, 그것에게 제물을 드리며, 아론이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 신이라”(출 32:8)라고 말했던 것처럼, 여로보암 왕은 벧엘에 금송아지를 세웠습니다. 그리고 그 금송아지가 하나님이라고 말했습니다.
벧엘에 금송아지를 둘 수 있는 산당을 짓고, 제사장을 세워, 그 금송아지를 하나님이라고 하면서, 섬겼습니다.
그러므로 “벧엘을 찾지 말라”는 말은 “우상을 섬기지 말라”는 말입니다.
그렇습니다. 여러분! 본래 벧엘은 야곱이 하나님께 단을 쌓았던 곳입니다.
그러나 세월이 지나면서, 하나님의 단은 퇴락하고, 우상의 단이 들어섰습니다.
믿음이 변질되었습니다. 금송아지가 하나님을 대신할 수 없습니다.
하나님을 버리고, 금송아지를 찾으면 안됩니다. 우상을 찾으면 안됩니다.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찾아야 합니다. 금송아지를 찾으면, 살 수 없습니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여러분! 어떤 형편에 처하든지, 여호와 하나님만을 찾아야 할 것입니다.
그 길만이 이 힘든 세상에서, 살 수 있는 길입니다. 승리할 수 있는 길입니다.
그 길만이 행복해 질 수 있는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어떤 분이실까요?
8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묘성과 삼성을 만드시며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고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며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이를 찾으라 그의 이름은 여호와시니라” 아멘.
하나님은 묘성과 삼성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해와 달과 별들을 만드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천지 만물을 창조하신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사망의 그늘을 아침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낮을 어두운 밤으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에게는 못하실 일이 없으십니다.
하나님은 바닷물을 불러 지면에 쏟으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불과 물을 쏟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창조주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모든 만물의 주관자이십니다. 통치자이십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에게 달려 있습니다.
여러분! 만물의 주관자가 되시는 하나님을 찾으면, 과연 어떤 복을 받게 될까요?
다윗은 “너희는 여호와의 선하심을 맛보아 알지어다 그에게 피하는 자는 복이 있도다 너희 성도들아 여호와를 경외하라 그를 경외하는 자에게는 부족함이 없도다 젊은 사자는 궁핍하여 주릴지라도 여호와를 찾는 자는 모든 좋은 것에 부족함이 없으리도다”(시 34:8-10)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모든 좋은 곳에 부족함이 없게 됩니다.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시 23:1-2)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푸른 풀발과 쉴만한 물가로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부족함이 많은 세상입니다.
잡으려고 해도, 잡히지 않는 세상입니다.
가지려고 해도, 가질 수 없는 세상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솔로몬은 우리에게 “은을 구하는 것 같이 그것을 구하며 감추어진 보배를 찾는 것 같이 그것을 찾으면”(잠 2:4)라고 말했습니다.
이사야 선지자는 우리에게 “너희는 여호와를 만날 만한 때에 찾으라 가까이 계실 때에 그를 부르라 악인은 그의 길을, 불의한 자는 그의 생각을 버리고 여호와께로 돌아오라 그리하면 그가 긍휼히 여기시리라 우리 하나님께로 돌아오라 그가 너그럽게 용서하시리라”(사 55:6-7)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찾아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음성을 들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해야 합니다.
우리는 하나님 앞에 나아와,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려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찾으십시다.
“너희는 여호와를 찾으라 그리하면 살리라”
하나님을 찾으면, 살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행복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평안할 수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미래가 있고, 희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부족함이 없습니다.
하나님을 찾으면, 하나님이 우리에게 큰 복을 내려 주십니다.
기도합니다.
주님! 주님을 만나기를 원합니다.
우리를 만나 주옵소서.
주님! 우리를 찾아오셔서, 감사를 드립니다.
온 마음 다하여, 주님을 찾기를 원합니다.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