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사 41:8-16)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전혀 생각지도 못했던 일들이 갑작스럽게 일어나고 있습니다.
아침에 눈을 뜨면, 오늘은 “도대체 어떤 일이 일어날까?”라고 하는 염려와 근심, 그리고 불안과 두려움에 사로잡히기도 하고, 저녁에 누웠을 때, “내일은 무슨 일이 일어날까?” 염려되어, 제대로 잠을 이루지 못하고, 밤잠을 설칠 때도 있습니다.
지금 우리 주변을 둘러보면, 일어나지 말아야 할 일들이 너무 많이 일어나고 있습니다.
염려하고 걱정할 수밖에 없는 세상이요, 불안하고, 두려움이 가득한 세상입니다.
그러나, 여러분! 우리가 잊지 말고 늘 기억해야 할 것은,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이 세상의 모든 역사를 주관하시는 분이시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개인적인 일이나 국가적인 일이나 사회적인 일이나, 그 모든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하나님은 역사를 주관하십니다. 과거나 현재나 미래나 모두 다 주님의 손 안에 있습니다.
역사를 주관하시는 하나님께서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어떻게 하실까요? 하나님은 어려움과 고통 가운데 있는 하나님의 백성들에게 무관심할까요? 아니면, 그냥 내버려 두실까요? 모른 척 하실까요? 우리에게 관심이 없으실까요?
결코 아닙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에게 큰 관심을 갖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떠나거나 버리지 않으십니다. 우리와 늘 함께 하여 주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광야 생활 40년을 마치고, 요단 강을 건너기 전, 하나님은 모세를 통하여, 여호수아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너희는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라 그들 앞에서 떨지 말라 이는 네 하나님 여호와 그가 너와 함께 가시며 결코 너를 떠나지 아니하시며 버리지 아니하실 것임이라”(신 31:6)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히브리서 13:5절을 보면, 하나님은 “내가 결코 너희를 버리지 아니하고 너희를 떠나지 아니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지 아니하고, 우리를 떠나지 아니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와 늘 함께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은 이미 이사야 선지자를 통하여,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께서 친히 징조를 너희에게 주실 것이라 보라 처녀가 잉태하여 아들을 낳을 것이요 그의 이름을 임마누엘이라 하리라”(사 7:14)고, 말씀하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택하셨고, 그의 자손들인 이스라엘을 택하셨습니다.
세상에 수많은 민족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하나님의 백성으로 택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는 마음을 다하고 뜻을 다하고 힘을 다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사랑하라”(신 6:5)고 말씀하셨습니다.
온 마음을 다하여 여호와 하나님만을 사랑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을 택하신 하나님은 그들에게서 다른 것을 원하지 않으시고, 그들이 오직 온 마음을 다하여, 하나님만을 사랑하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은 애굽을 탈출하여, 홍해를 건너 광야에 들어온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시내산에서, 십계명을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나를 사랑하고 내 계명을 지키는 자에게는 천 대까지 은혜를 베푸느니라”(출 20:6)고 말씀하셨지만, 그들은 하나님의 계명을 범했습니다.
모세가 시내산에 올라가 있는 동안, 송아지 형상을 만들어 놓고, 아론은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이스라엘아 이는 너희를 애굽 땅에서 인도하여 낸 너희의 신이로다”(출 32:4)라고 외치며, 그 송아지 앞에서 춤추며, 우상을 섬겼습니다.
출애굽하는 동안, 엄청난 기적과 능력을 직접 눈으로 보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들은 어뚱한 짓을 했습니다.
훗날에도,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의 모든 명령을 버리고, 자기들을 위하여, 송아지 형상을 부어 만들고, 아세라 목상을 만들고, 하늘의 일월성신을 경배하며, 바알을 섬기고, 자기 자녀를 불 가운데로 지나가게 하며, 복술과 사술을 행하였습니다.(왕하 17:16-17)
그들은 하나님 보시기에 악을 행하여, 하나님을 격노하게 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범죄한 이스라엘 백성들을 가만히 놔둘 수가 없었습니다.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하여금, 이스라엘을 침략하도록 하셨습니다.
바벨론을 징계의 막대기로 사용하셨습니다.
이스라엘은 바벨론의 침략을 받아, 나라를 빼앗기고, 백성들은 포로가 되어, 바벨론으로 끌려갔습니다. 포로로 끌려간 그들에게 나라를 잃은 정신적인 슬픔과 고통은 이루 말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은 바벨론 사람들의 심한 핍박을 받고, 자유를 누리지 못하는 얽매인 삶을 살았습니다. 그들의 생활은 비참했습니다. 소망이 없었습니다. 늘 불안했습니다. 늘 고통의 연속이었습니다.
조금만 환경이 변해도 어떻게 될 것인가? 공포와 불안이 늘 그들을 따라 다녔습니다.
계속 밀어닥치는 낯선 경험들, 해결하기 어려운 배고픔, 언제 어느 때 죽음이 닥칠지 모르는 불안한 상황들, 매일 매일 공포에 떨어야 하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마음은 한마디로 두려움과 불안의 연속이었습니다.
그런데, 국제정세가 급변하여, 세계를 지배하고 있던 바벨론과 신생국가인 바사 제국이 전쟁을 하게 되었습니다. 엄청난 전쟁이 일어났습니다. 전쟁 결과, 바사 제국이 바벨론을 이겼습니다. 고레스가 통치하게 되었습니다. 바벨론의 고레스는 주변의 여러 나라와 왕들을 정복했습니다. 작은 신생 나라인 바사가 세계를 지배하고 있는 강대국 바벨론을 멸망시키는 이변이 발생했습니다. 그리하여, 바사의 고레스 왕이 세상의 새로운 지배자로 등장했습니다. 세계의 지배자가 바뀌었기 때문에, 이스라엘 백성들은 앞으로, 어떤 일이 그들에게 벌어질지 몰라, 몹시 불안하고, 두려웠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무엇이라고 말씀하셨습니까?
2-4절을 보면, 하나님은 그들에게 “누가 동방에서 한 정복자를 일으켰느냐? 누가 그를 가는 곳마다 승리하게 하였느냐? 누가 민족들을 그에게 굴복하게 하였느냐? 누가 그를 왕들의 통치자로 만들었느냐? 누가 이런 일을 일어나게 하였느냐? 누가 역사의 흐름을 결정하였느냐? 태초부터, 나 주가 거기에 있었고, 끝날에도 내가 거기에 있을 것이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한 마디로, 하나님은 역사의 주관자는 하나님이라고 하는 것을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말씀하셨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은 바벨론 제국처럼 새로운 지배자인 바사왕 고레스를 두려워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에게 “고레스를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하나님이 하실 일을 위해, “내가 고레스를 친히 세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실제로 고레스는 바벨론을 정복한 그 해에, 이스라엘 백성들을 고국으로 돌아갈 수 있도록 해방령을 내렸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자유를 주었습니다. 마음대로 살고 싶은 데서 살 수 있다고 했습니다.
그때, 70년 만에, 바벨론에서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온 사람들이 누구입니까? 느헤미야가 돌아왔습니다. 스룹바벨과 제사장 여호수아, 그리고 에스라 선지자가 돌아왔습니다. 그들을 통하여, 처참하게 파괴된 예루살렘 성전이 재건되고, 무너진 성벽을 다시 쌓게 되었습니다.
이스라엘의 재건과 회복으 역사가 시작되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결코 버리시지 않으셨습니다.
애굽에서 종살이하던 이스라엘을 유월절 어린 양을 통하여, 구원하여 주셨고, 홍해를 건너, 광야를 지나, 가나안 땅으로 인도하여 주셨습니다. 또한, 하나님은 바벨론으로 포로로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을, 애굽의 노예로, 바벨론의 노예로, 가만히 놔두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은 젖과 꿀이 흐르는 가나안 땅으로 다시 부르셨습니다.
하나님게서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주신 약속의 땅인 가나안에서 살 수 있도록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8-9절 말씀입니다.
“그러나 나의 종 너 이스라엘아 내가 택한 야곱아 나의 벗 아브라함의 자손아 내가 땅 끝에서부터 너를 붙들며 땅 모퉁이에서부터 너를 부르고 네게 이르기를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 하였노라” 아멘.
하나님은 땅 끝에서부터, 이스라엘 백성을 가나안 땅으로 다시 데리고 왔으며, 세상의 가장 먼 곳으로부터, 그들을 불러내었습니다. 그 당시, 땅 끝, 세상의 가장 먼 곳이 어디겠습니까? 바로 바벨론입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세상의 가장 먼 곳, 땅 끝, 바벨론에서,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은 그들에게 “너는 나의 종이라 내가 너를 택하고 싫어하여 버리지 아니하였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 백성들을 미워하지 않으셨습니다. 그들을 싫어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습니다. 그들을 너무 사랑하셨기에, 징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에게 사랑의 매를 때리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미워하기에, 매를 드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죽이고자 회초리를 든 것이 아닙니다. 그들을 바르게 인도하고자 징계하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다. 왜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인 이스라엘을 징계하셨습니까? 하나님은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사랑하시기에, 그들을 징계하셨습니다. 잘못된 길로, 죽음의 길로, 나아가는 그들을 그대로 두고만 볼 수 없었습니다.
선한 길, 생명의 길로 인도하고자, 그들을 징계하셨던 것입니다.
10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아멘.
이사야 43:10절 말씀은 성경에서 찾을 수 있는 가장 은혜로운 말씀입니다.
2천년 기독교 역사에, 가장 많은 사람들에게, 가장 큰 은혜를 끼친 말씀입니다.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하나님은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리고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내가 너와 함께 하기 때문에, 어떤 어려운 일을 만나도, 너는 두려워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임마누엘의 하나님이십니다.
우리에게 좋은 일이 있을 때에만,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실까요?
나쁜 일이 있을 때에는,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지 않는 것일까요? 저 멀리 계실까요?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기에, 나에게 나쁜 일이 일어난 것일까요? 그렇지 않습니다.
예수님께서 십자가를 지실 때, “엘리 엘리 라마 사박다니”라고 크게 소리 지르셨습니다. “나의 하나님, 나의 하나님, 어찌하여 나를 버리셨나이까?”(마 27:46)
아버지 하나님이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버리셨습니까?
아버지 하나님과 아들 예수 그리스도는 한 분 하나님이십니다. 아들이 십자가에서 고난 당하실 때, 아버지 하나님도 그 십자가에서 함께 고난당하셨습니다. 함께 십자가를 지셨습니다.
어찌 보면, 아버지 하나님은 아들 예수 그리스도보다 우리를 더 사랑하셨습니다.
로마서 5:8절을 보면, “우리가 아직 죄인 되었을 때에 그리스도께서 우리를 위하여 죽으심으로 하나님께서 우리에 대한 자기의 사랑을 확증하셨느니라”고 했습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십자가에서, 아들 예수님이 죽으실 때까지, 참으셨습니다.
왜 그래야 했습니까? 아들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셔야, 우리가 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아버지 하나님은 우리를 살리시기 위해, 아들 예수님과 함께 십자가의 그 고난과 고통을 함께 참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버리신 적이 없습니다. 우리를 떠나신 적이 없습니다. 늘 우리와 함께 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문제는 우리가 하나님을 밀어내고, 하나님으로부터 멀리 떨어져 있었다는 것입니다.
무슨 일이 있다고 해도, 하나님을 멀리 하면 안됩니다. 밀어내면 안됩니다.
어떤 일을 만나든지, 하나님을 가까이 해야 합니다.
여러분! 누가복음 15장을 보면, 집 나간 둘째 아들 이야기가 있습니다.
아버지는 부자였습니다. 둘째 아들은 아버지에게 유산을 미리 나눠달라고 했습니다.
지금도 마찬가지이지만, 아버지가 살아 있는데, 유산을 미리 달라고 하면, 아버지 마음이 좋을까요? 그것만큼 아버지 마음을 아프게 하는 것이 없을 것입니다.
아버지는 아무 말 안 하고, 아들이 해 달라는 대로 해 주었습니다. 둘째 아들은 큰 돈을 가지고 떠나버립니다. 돌아올지도, 안 돌아올지도 모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아버지는 아들을 기다리고 또 기다립니다. 돌아온다는 소식이 없어도, 비가 오나, 눈이 오나, 아버지는 매일 기다렸습니다. 이것이 아버지의 마음입니다.
여러분! 아들을 기다리고 기다린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습니까? 아버지의 돈을 가지고 나가, 그 돈을 허랑방탕하게 다 써버린 아들에게 잘못이 있습니까?
돼지를 치면서, 쥐엄 열매마저 먹을 수 없어, 다 죽게 된 것이 아버지의 잘못입니까? 아들의 잘못입니까? 아들이 돌아왔을 때, “제일 좋은 옷을 내어다가 입히고 손에 가락지를 끼우고 발에 신을 신기라 그리고 살진 송아지를 끌어다가 잡으라 우리가 먹고 즐기자”(눅 15:22-23)고 말한 아버지에게 잘못이 있습니까?
잘못이라고 한다면, 아버지가 아들을 사랑한 죄밖에 없습니다.
여러분! 아버지 하나님은 가장 멀리 떨어진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 간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을 다시 예루살렘으로 돌아오게 하셨습니다. 다급하게 돌아가고 있는 국제 정세 앞에서, 어떻게 해야 할지 몰라, 불안과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우리는 누구 편에 서야 합니까? 누구 말을 믿어야 합니까? 누구를 의지해야 합니까?
하나님은 우리에게 “두려워하지 말라”고, “매일 매일” 말씀하여 주십니다.
리챠드 범브란트 목사님은 나치 점령 기간 동안, 감옥에 투옥되어 있었습니다.
루마니아의 공산 치하에서 14년간 감옥생활을 하며, 고난을 받았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의 간증을 읽다가, 이런 글을 보았습니다.
“거꾸로 매달아 채찍으로 때리는 고문 정도는 예사입니다. 저는 지금도 냉장고 문을 열기를 꺼리는데, 속옷만 입고 냉동실에 끌려갔던 고문의 후유증 때문입니다. 냉동실에 들어간 우리는 얼어 죽을 것 같으면, 다시 따듯한 방으로 옮겨졌고, 몸이 풀리면, 다시 냉동실에 잡아넣는 고문을 반복적으로 당했습니다. 더 이상의 것들은 차마 언급할 수조차 없습니다.”
범브란트 목사님은 핍박과 고문 속에서도, 공산주의와 타협하지 않았습니다. 믿음을 버리지 않았습니다. 그분은 감옥 안에서, 핍박을 받으면서도, 성경을 읽었습니다. 그리하여,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366번 있다고 하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그렇습니다. 성경에는 “두려워하지 말라”는 말이 366번 있습니다.
여러분! 매일 삶 속에서,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오늘도 두려워하지 말라. 내일도 두려워하지 말라. 인생 마지막 날까지 두려워하지 말라.”
전혀 생각하지 못했던 일을 만나도, 두려워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이 나와 함께 하심을 믿고, 오직 믿음으로, 모든 역경들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우리에게 “내가 세상 끝날까지 너희와 항상 함께 있으리라”(마 28:20)고 말씀하셨습니다. 지금도 하나님은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임마누엘”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최고의 축복입니다.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얼마나 은혜가 되고 힘이 되는 말씀입니까?
이 말씀을 들으면, 두렵고 불안했던 마음이 차분하게 가라앉습니다. 안정이 됩니다. 주저 앉은 자리에서 다시 일어서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버러지 같이, 약하고 약한 우리를 도와주십니다. 붙들어 주십니다.
13-14절 말씀입니다.
“이는 나 여호와 너의 하나님이 네 오른손을 붙들고 네게 이르기를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할 것임이니라 버러지 같은 너 야곱아, 너희 이스라엘 사람들아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네 구속자는 이스라엘의 거룩한 이이니라 ”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를 도우리라”
“두려워하지 말라 나 여호와가 말하노니 내가 너를 도울 것이라”
하나님은 하나님의 백성들을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큰 곤경이 빠져있을 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외부의 압박과 압제를 당할 때, 도와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크고 작은 일들을 만날 때, 그냥 있지 않으시고, 도와주십니다.
힘들 때, 도와 주십니다. 쓰러져 있을 때, 일으켜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도우시되 어떻게 도우십니까?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하나님은 의로운 오른손으로 우리를 붙들어 주시겠다고 약속하셨습니다.
여러분!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살아 왔습니까?
내 힘으로 살아온 것일까요? 아닙니다. 하나님이 도와주셔서, 지금 살고 있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생각할 때, 얼마나 감사한 일입니까?
우리는 아무 힘도 없는 “버러지” 같은 존재입니다. “지렁이” 같은 연약한 존재입니다.
우리가 이 땅에서 승리할 수 있는 길은 오직 하나, “하나님의 도움”뿐입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도와주셔야 합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셔야 합니다.
그래야 이 험한 세상을 지혜롭게 잘 헤쳐 나갈 수 있습니다. 승리할 수 있습니다.
다윗은 “내가 아뢰는 날에 내 원수들이 물러가리니 이것으로 하나님이 내 편이심을 내가 아나이다”(시 56:9)라고 고백했습니다.
시편 기자는 “여호와는 내 편이시라 내가 두려워하지 아니하리니 사람이 내게 어찌할까 여호와께서 내 편이 되사 나를 돕는 자들 중에 계시니 그러므로 나를 미워하는 자들에게 보응하시는 것을 내가 보리로다”(시 118:6-7)라고 말했습니다.
그리고 더 나아가,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사람을 신뢰하는 것보다 나으며 여호와께 피하는 것이 고관들을 신뢰하는 것보다 낫도다”(시 118:9-9)라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 편이어야 합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이 내 편이기 때문입니다.
내 편이신 하나님은 끝까지 나를 도와주시고, 나를 붙들어주십니다.
내가 힘들고 어려운 일을 만났을 때, 세상은 나를 버리고, 친구도 나를 떠나고, 모른 척 하지만, 하나님은 끝까지, 내 곁에서, 나를 지지해 주고, 나와 함께 하여 주십니다.
우리가 지금까지 어떻게 이만큼 살았습니까? 하나님께서 도와주셨기 때문입니다.
내가 감당할 수 없는 것 같은 일이 일어날지라도, 우리에게 한 가지 소망이 있습니다.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신다는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지금까지 여러분과 함께 하셨습니다.
하나님이 지금까지 여러분을 도와주셨습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여러분과 계속 함께 하실 것입니다.
하나님이 앞으로도 여러분을 계속 도와주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늘 하나님을 사랑하며, 오직 믿음으로, 승리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임마누엘의 주님!
우리와 늘 함께 하시고, 우리를 도와주시는 주님.
주님 앞에 있사오니, 우리와 함께 하여 주시고, 우리의 편이 되어, 이 험한 세상에서 날마다 승리할 수 있도록, 우리를 도와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