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요 14:27)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백신 접종이 이루어지고 있음에도 불구하고, 코로나19 확진자가 줄지 않고, 계속 발생하고 있습니다. 이런 와중에도, 김포공항은 비행기를 타려는 사람들이 너무 많고, 수속이 너무 느려서, 비행기를 제 시간에 타지 못하고, 놓치는 경우가 종종 있다고 합니다.
지금은 다들 “나는 언제쯤 백신 주사를 맞을 수 있을까?” 하는 생각을 하게 될 것입니다. 며칠 전, 실내 체육관 앞을 지나가는데, 백신을 맞기 위하여, 줄을 서 있는 사람들을 보았습니다. 어제 뉴스를 보니, 백신을 충분하게 확보하였다고 하는데, 정말 언제쯤 백신을 맞을 수 있을까요? 백신접종을 하게 되면, 마스크를 쓰지 않고, 자유롭게 다닐 수 있게 될까요? 어떤 나라는 백신 접종 후, 코로나 확진자가 나오지 않아, 마스크를 벗었다고 하는데, 또 어떤 나라는 백신 접종을 했지만, 코로나 확진자가 계속 나와, 다시 통제를 하게 되었다고 합니다.
백신이 만병통치약이 될 수 없다고 하는 것입니다.
현대인들은 코로나19로 인한 두려움 속에 살아갑니다. 항상 조심한다고 하지만, 가족이든, 타인이든, 가장 가까운 사람들을 통하여, 코로나가 전염이 되기 때문에, 웬지 모를 두려움 속에 하루하루를 살아가고 있습니다. 가고 싶은 곳이 있어도, 자유롭게 돌아다니지도 못하고, 만나고 싶은 사람이 있어도, 마음 놓고, 만날 수도 없는 그런 나쁜 환경 속에 살아가고 있습니다.
그러나, 언젠가는 지나간 추억으로 되돌아볼 수 있는 그런 날이 속히 다가올 것이라고 생각됩니다.
이사야 41:10절을 보면,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오른손으로 너를 붙들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오늘날에도, 하나님께서는 두려움에 떨고 있는 우리들에게,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고 말씀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의지할 때, 우리는 두려움을 이겨낼 수 있습니다.
두려움은 언제나 우리를 찾아옵니다.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두려움은 항상 우리 가까이에 있습니다. 깜짝 깜짝 놀랄 때가 있습니다. 두려움은 멀리 있지 않습니다.
하지만, 두려움이 우리에게 갑작스럽게 엄습해 온다 할지라도, 우리와 함께 하시는 임마누엘의 하나님을 믿는 믿음으로, 두려움을 물리쳐야 할 것입니다.
모든 사람들은 두려움이 없는 평안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아프지 않고, 다치지 않고, 항상 건강하기를 원합니다. 불행에 고통스러워하기보다는 행복하기를 원합니다. 언제나 웃을 수 있기를 원합니다.
가진 것이 없어, 힘들고 고달픈 삶을 살기 보다는 넉넉함으로, 여유로운 삶을 살기 원합니다. 하고 싶은 것 마음껏 하고 싶고, 가고 싶은 것은 언제든지 찾아가고, 먹고 싶은 것은 비싸지라도, 전혀 구애 받지 않고, 마음껏 즐길 수 있는 그런 여유롭고 풍요로운 삶을 살기를 원합니다.
이것은 모든 사람들의 작은 바램일 것입니다. 작은 소망일 것입니다.
다윗은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7-8)고 말했습니다.
하루를 마감하고, 평안히 누워 잠을 청할 수 있다고 하는 것, 행복입니다.
하루를 살아가는 동안, 안전하게 살 수 있다고 하는 것, 큰 행복입니다.
여러분! 열두 명의 제자들은 예수님을 3년 동안, 따라다녔습니다. 그런데, 어느 날, 예수님께서 제자들 곁을 떠나야 한다고 말씀하시니, 제자들은 두려웠습니다.
“앞으로 어떻게 살아야 하는가? 누가 나를 도와줄 수 있을까? 누구를 의지해야 안전할 수 있을까?”
그런 염려와 근심거리가 갑자기 그들에게 밀려왔습니다. 제자들은 두려움 속에 빠져 버렸습니다. 믿음이 흔들렸습니다. 예수님은 제자들의 동요를 아셨습니다.
그때, 예수님은 제자들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27절 말씀입니다.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 너희는 마음에 근심하지도 말고 두려워하지도 말라” 아멘.
누군가에게 뭔가를 주고 싶어도, 내 수중에 가진 것이 없으면, 줄 수가 없습니다.
뭐든지, 가진 것이 있어야,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줄 수가 있습니다.
요즈음 ‘당근마켓’을 둘러볼 때가 있습니다. ‘무료나눔’이라고 자신이 가진 것을 공짜로 나누어주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예를 들면, 두릅이 생겼는데, 다 먹을 수 없는 양이라, 나누고 싶다고 하는 사람도 있었습니다.
이와 같이, 뭔가를 아무런 조건없이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다고 하는 것, 얼마나 좋은 일입니까? 이런 일들이 많아져야, 살만한 세상이 될 것입니다.
우리 한마음교회도, 그리고, 우리 한마음교회에 속한 여러분 모두, 가진 것이 넉넉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줄 수 있는 행복한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예수님께서 “도둑이 오는 것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뿐이요 내가 온 것은 양으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라”(요 10:10)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결코 있어서는 아니될 그런 일들이 종종 일어날 때가 있습니다. 누군가의 것을 빼앗아가는, 그중에서도, 소중한 생명을 빼앗아가는 그런 악한 일들이 일어나곤 합니다. 가슴 아픈 일들입니다.
내 것이 아닌 다른 사람의 소중한 생명을 해한다고 하는 것은 아주 나쁜 일입니다. 이런 일들은 결코 일어나서는 안됩니다.
코로나19로 인하여, 비대면 활동이 많아지다 보니, 보이스 피싱이 활개를 치고 있습니다. 가장 먼저,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걸려오는 전화는 받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전화가 왔는데, 받아 보니, 몇 번을 누르라고 하면, 절대 눌려서는 안될 것입니다. 모르는 사람으로부터 오는 문자를 보다가, 인터넷 주소 같은 것, 눌려서도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지금 다른 사람의 것을 빼앗아가려는 악한 사람들이 많은 그런 어둡고 암울한 세상을 살아가고 있습니다.
도둑은 도둑질하고 죽이고 멸망시키려는 것이 그들의 목적입니다. 그러나, 우리가 믿는 예수님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한 생명을 얻게 하고, 더 풍성히 얻게 하려는 것이, 우리 주님께서 이 땅에 목적이셨습니다. 우리는 예수님의 마음을 품고, 예수님을 닮아가야 합니다.
야러분! 예수님은 우리를 위하여, 이 땅에 오셨습니다. 죄 많은 나를 살리시려고, 나를 찾아오셨습니다. 예수님은 나에게 영원한 생명을 주시려고 찾아 오셨습니다.
뿐만 아니라, 이 악하고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에, 갑작스럽게 찾아오는 모든 두려움을 이기고, 평안의 삶을 살기를 원하셔서,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여 주셨습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뭔가 주기를 원하십니다. 이미, 예수님은 우리에게, 영원한 생명도 주셨고, 지금뿐만 아니라, 앞으로, 우리 인생에 평안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비록 남들처럼, 넉넉한 삶을 살지 못한다 할지라도, 주님의 주시는 평안을 누릴 수만 있다면, 가장 행복한 삶을 살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엄청나게 많은 것을 가졌다 할지라도, 평안이 없이, 늘 두려움 속에 살아간다면, 그 인생은 불행한 것입니다.
평안이라고 하는 곳은 가진 것이 많다고 저절로 주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힘있는 사람들을 많이 안다고 저절로 얻어지는 것이 아닙니다.
예를 들면, 내 곁에서, 나를 지켜주는 경호원들이 많다고 해서,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는 것이 아닙니다. 경호원이 많다고 하는 것은 역설적으로, 뭔지 모를 두려움 속에 살아가고 있다는 것을 말해주는 것입니다.
경호원들이 없을지라도, 주님이 나와 항상 함께 하심으로, 우리는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닏.
여러분! “평안을 너희에게 끼치노니 곧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신 예수님께서 “내가 너희에게 주는 것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아니하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전혀 다릅니다. 같지 않습니다.
코로나19가 활개를 치는데, 백신을 맞으면, 평안이 찾아올까요? 코로나19가 사라지면, 평안할까요? 간혹, 들려오는 소식들을 보면. 그렇지만도 않습니다. 백신을 맞아야 하나, 맞지 말아야 하나? 걱정이 되기도 합니다만, 전문가들의 말을 들어보면, 안 맞는 것보다는 백신을 맞는 것이 더 낫다고 합니다.
그러므로, 백신을 맞을 차례가 되면, 독감 주사 맞듯이 얼른 맞으면 될 것 같습니다.
캐나다는 자기 나라로 여행을 오는 모든 사람들에게, 코로나 백신을 접종해 주겠다고 합니다. 캐나다로 지금 당장 가서, 백신을 맞을 수는 없지만, 때가 되면, 모든 사람들이 백신을 맞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런데, 또 중요한 것은 그 효력이 얼마나 가게 될지, 전혀 모른다고 하는 것입니다. 이러한 일들이, 웬지 모를 두려움을 갖게 만듭니다.
하나님의 택함을 받은 다윗은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시 4:7-8)라고 말했지만, 그의 삶은 그렇게 평탄하지만은 않았습니다.
어릴 적, 다윗은 형들에 비해, 아버지의 사랑을 받지 못하고 자랐습니다.
시편 27:10절을 보면, 다윗은 “내 부모는 나를 버렸으나 여호와는 나를 영접하시리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부모의 사랑을 받지 못했다고 하는 다윗의 고백입니다.
사무엘 선지자가 이새의 집을 찾아왔을 때, 아버지 이새는 형들이 해야 하는 양들을 돌보는 일들을 다 다윗에게 맡겼습니다. 형들은 좋은 옷을 입고, 상에 둘러앉아, 맛있는 것을 먹고 있는데, 가장 막내인 다윗은 들판에서, 일곱 형들이 해야 할 일을 혼자서 도맡아 하고 있었습니다. 자기만 쏙 빼놓고, 온 가족이 둘러 앉아, 밥 먹는 장면을 멀리서, 들판에서, 양을 치면서, 추위에 떨면서, 바라보게 된다면, 그 마음이 얼마나 아파겠습니까? 그래서인지, 다윗은 부모로부터 자기는 버림받았다고 생각했을 것입니다.
다윗이 골리앗을 물리치고 나서는 어떠했습니까? 누구든지, 골리앗을 죽이면, 왕의 사위를 삼겠다고 약속한 사울이었지만, 골리앗을 물리친 다윗은 사울 왕으로부터 죽임을 당할 처지가 되어 버렸습니다. 어찌어찌하여 왕의 사위가 되었지만, 그럼에도 불구하고, 다윗은 사울 왕의 칼을 피하기 위하여, 도망치는 도망자의 신세가 되고 말았습니다. 사위 다윗을 죽이려고, 칼 들고 쫓아오는 장인 사울, 생각하기도 싫은 장면입니다.
다윗이 왕이 되고나서는 어떠했습니까? 그의 삶이 평안해졌습니까? 모든 일들이 마음먹은 대로 형통해졌을까요? 그렇지만도 않았습니다. 자녀들간의 살인, 자녀들의 반역, 그의 삶에는 평안이 찾아들 기미가 전혀 보이지 않았습니다.
아들 압살롬이 아버지인 다윗을 죽이고, 스스로 왕이 되고자 반역을 했을 때, 다윗의 마음은 어떠했을까요? 왕을 지키는 수많은 병사들이 있었지만, 그의 안전을 책임져 주지 않았습니다. 다윗은 맨발로, 궁궐을 도망쳐야만 했습니다. 줄행랑을 쳤습니다.
왕이 되기 전이든, 왕이 된 후이든, 도망을 쳐야만 살 수 있는 다윗이었습니다. 편안하지가 않았습니다. 다윗은 도망자의 삶을 살았습니다. 하지만, 살기 위하여, 맨발로 도망치지만, 그의 평안을 그 누구도 빼앗아갈 수가 없었습니다.
크고 화려한 궁궐 안에 있을 때에만, 평안히 누워 잘 수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많은 병사들이 밤새도록 다윗을 지켜 주었을 때에만 그에게 평안이 있었던 것이 아니었습니다. 맨발로 도망쳐, 바람 부는 광야에 누워 잠을 청할 때에도 평안했습니다.
여러분! 도망칠 때, 어디 편안히 쉴 수 있는 곳이 있었겠습니까? 환경에 전혀 구애받지 않고, 바람을 피할 수 있는 동굴이면, 그 안에서, 평안히 누워 잠을 청하였습니다. 바람 부는 들판에서도, 그는 평안하게 누워 잠을 청할 수 있었습니다.
다윗의 생명을 빼앗고자 추격하는 무리들의 함성소리가 저 멀리서 들려온다고 해도, 그는 모든 것을 주님께 맡기고, 평안히 누워 잠을 청하였습니다.
화려한 궁궐 안에 있을 때에도, 다윗은 평안했습니다.
맨발로 궁궐에서 도망칠 때에도, 그에게는 평안이 있었습니다.
여러분! 주님이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 같지 않습니다.
세상이 주는 평안은 어느 날은 주었다가, 어느 날은 빼앗아 가버립니다.
영원하지가 않습니다. 금방 왔다가, 금방 사라져버립니다. 순간적입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우리에게 주시는 평안은 세상이 주는 것과는 차원이 다릅니다.
우리의 형편이 넉넉하지 않아, 사는 것이 몹시 불편하고, 많이 어렵더라도, 평안을 누릴 수 있습니다. 주님을 신뢰할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주님과 함께 할 때, 평안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직접 경험하면서 세상을 알아갈 수 있지만, 간접 경험을 통하여도, 우리는 세상을 조금씩 알아갈 수가 있습니다.
예를 들면, 드라마를 통하여, 우리가 경험해 보지 못한 일들을 알게 됩니다. 세상 사람들은 저렇게 살아가는 구나 하는 것을 간접적으로나마, 알게 됩니다.
어떤 사람은 어떤 무리에 들어가기 위하여, 온갖 나쁜 방법을 동원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다른 사람들보다 위에 있기 위하여, 다른 사람들을 멸시하고, 빼앗는 것을 보게 됩니다.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지키기 위하여, 다른 사람의 생명마저도, 가볍게 여기는 것을 보게 됩니다.
모든 사람들이 그렇지 않다고 해도, 그런 나쁜 사람들이 있다고 하는 것을 보게 됩니다.
우리가 살아가는 세상에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 무료로 나누어주는 사람들이 있는 반면에, 자기가 가지고 싶은 것을 다른 사람들에게서 빼앗는 사람들도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우리는 다른 사람들에게 나누어 줄 수 있는 삶을 살아야 할 것입니다.
평안을 나누어 줄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우리는 예수님처럼, “나의 평안을 네게 주노라”고 말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예수님의 사랑을 전함으로, 다른 사람들에게 예수님의 참된 평안을 나누어 줄 수 있을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예수님의 제자로서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누군가로부터 “나도 너처럼 예수님을 믿고 싶다”는 말을 들을 수 있다면, 그것보다도 더 큰 복이 없을 것입니다.
나의 삶에서, 예수님의 흔적이 나타날 수 있어야 할 것입니다.
이 세상이 어둡다고, 어둠에 묻혀 지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빛이 되어야 합니다.
이 세상이 썩었다 할지라도, 함께 구린내 나는 삶을 살아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세상의 소금이 되어야 합니다.
여러분! 가까이 다가가면 갈수록 코끝을 간지럽히는 진한 향기가 나는 꽃이 되어야 합니다. “어디서 이런 향기가 나지” 더 가까이 다가가, 그 향기를 맡고 싶어지는 그런 향기로운 꽃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예수님은 지금도 우리에게, “나의 평안을 너희에게 주노라”고 말씀하고 계십니다.
지금 어떤 환경에 처해 있다고 할지라도, 오직 예수님을 믿는 믿음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맛보며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은총을 베풀어 주옵소서.
이 험한 세상을 살아가는 동안, 오직 예수님을 내 마음에 모심으로, 주님이 주시는 평안을 누리며 살아가게 하여 주옵소서.
내가 가진 것을 아낌없이 나누어 줄 수 있는 복된 삶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이 험한 세상의 어둠을 밝히는 세상의 빛이 되게 하여 주시고,
이 썩고 부패한 세상을 건강하게 만드는 세상의 소금이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디서 무엇을 하든지, 나의 삶을 통하여, 그리스도의 향기가 전해지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의 지경을 넓혀 주옵소서.
우리 교회에 속한 모든 성도들과 가정에 평안이 가득 넘쳐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