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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설교

마른 뼈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겔 37:1-10) - 20210530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21.05.31|조회수290 목록 댓글 0

마른 뼈도 사랑하시는 하나님의 은혜(겔 37:1-10)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시편 23편을 보면, 다윗은 “여호와는 나의 목자시니 내게 부족함이 없으리로다 그가 나를 푸른 풀밭에 누이시며 쉴 만한 물 가로 인도하시는도다 내 영혼을 소생시키시고 자기 이름을 위하여 의의 길로 인도하시는도다”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고백은 여기서 끝나지 않습니다. 그는 계속하여,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 주께서 내 원수의 목전에서 내게 상을 차려 주시고 기름을 내 머리에 부으셨으니 내 잔이 넘치나이다 내 평생에 선하심과 인자하심이 반드시 나를 따르리니 내가 여호와의 집에 영원히 살리로다”라고 고백합니다.

 

우리네 인생에는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만 있는 것이 아니라, 우리가 별로 좋아하지 않는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도 있습니다.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만 있으면 좋을 것 같은데, 맑은 날씨만 계속된다면 좋을 것 같은데, 그렇지 않습니다. 여행을 가면, 험난한 골짜기로 여행을 갈 때가 있습니다. 그 계곡들을 보면서, “이렇게 멋질 수가 있을까?”라고 탄성을 지를 때가 있습니다.

 

에스겔 37장은 푸른 풀밭과 쉴만한 물가 이야기가 아니라, 마른 뼈가 가득한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에 관한 이야기입니다.

하나님은 에스겔 선지자를 마른 뼈가 가득한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화려한 왕궁이 아니라.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셨습니다. 에스겔이 찾아간 골짜기는 죽음의 골짜기였습니다. 그곳에는 마른 뼈들이 가득했습니다. 에스겔이 찾아간 골짜기는 어두움의 골짜기였습니다. 낮은 골짜기였습니다. 사람들이 찾지 않는 그늘진 골짜기였습니다.

사람들의 관심도, 사랑도 없는 버려진 골짜기였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권능으로 내게 임재하시고 그의 영으로 나를 데리고 가서 골짜기 가운데 두셨는데 거기 뼈가 가득하더라 나를 그 뼈 사방으로 지나가게 하시기로 본즉 그 골짜기 지면에 뼈가 심히 많고 아주 말랐더라” 아멘.

 

왜 하나님은 에스겔을 멋지고 좋은 들판이 아니라, 죽음이 가득한 음침한 골짜기로 인도하셨을까요?

왜 궁궐이나, 사람들이 좋아하는 화려하고 휘황찬란한 도시의 거리로 인도하시지 않고, 마른 뼈가 가득한 절망의 골짜기로 인도하셨을까요?

그 이유는 그곳에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 있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 마른 뼈가 되어 있었기 때문입니다.

에스겔 37장에 나오는 마른 뼈는 바벨론에 포로로 잡혀간 이스라엘 민족을 의미합니다. 그리고,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을 의미합니다. 하나님을 믿는 성도들을 의미합니다.

바벨론에 끌려간 이스라엘 백성들은 절망 중에 있었습니다. 그들은 소망이 끊어졌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생각했고, 그들 스스로가 그렇게 고백했습니다.

 

11절 말씀입니다.

“또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은 이스라엘 온 족속이라 그들이 이르기를 우리의 뼈들이 말랐고 우리의 소망이 없어졌으니 우리는 다 멸절되었다 하느니라” 아멘.

 

이스라엘 백성은 하나님이 선택하신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백성이었습니다. 하나님이 그런 그들을 골짜기에 두셨습니다. 그들이 머물렀던 골짜기는 바벨론이라는 골짜기였습니다. 그 당시 이스라엘 백성이 끌려간 곳은 바벨론입니다. 바벨론에 노예로 끌려간 그들은 그곳에서 말할 수 없는 고통을 받고 있었습니다. 정든 고향 땅, 예루살렘으로 다시 돌아갈 수 있다고 하는 그런 소망도 없이, 바벨론의 핍박과 아픔 속에, 하루하루를 보내야 했습니다. 그들은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처럼, 바벨론에 버려져 있었던 것입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이 버려진 골짜기는 하나님이 사랑하시는 자들이 통과해야 하는 골짜기입니다. 우리가 때로 통과해야 하는 골짜기입니다.

그 골짜기는 흑암의 골짜기, 음침한 골짜기, 사망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 메마른 골짜기, 상실의 골짜기, 침체의 골짜기, 무력함의 골짜기, 실패의 골짜기, 질병의 골짜기, 가난의 골짜기, 거절의 골짜기, 배신의 골짜기, 버림받음의 골짜기, 잊혀짐의 골짜기입니다.

하나님의 마음과 관심과 눈은 어디에 있을까요? 하나님의 눈은 골짜기에 있었습니다. 하나님의 관심은 골짜기 안에 있는 마른 뼈들에게 있었습니다. 사랑은 관심입니다. 하나님이 마른 뼈들에게 관심을 가지셨습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그들을 사랑하셨기 때문입니다.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들은 말라 있었습니다. 잊혀진 채로 있었습니다. 아무도 돌아보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아무도 마른 뼈에게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 마른 뼈들을 사랑하셨습니다. 에스겔을 통해, 그 마른 뼈들을 돌아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들을 마른 뼈들로만 보지 않으셨습니다. 그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는 것을 보셨습니다. 마른 뼈들이 거대한 군대가 되는 것을 보셨습니다. 마른 뼈들이 다시 살아나서, 바벨론을 떠나, 이스라엘 땅으로, 예루살렘으로 돌아가는 비전을 보셨습니다. 절망 중에 있는 마른 뼈들 속에 담긴 희망을 보신 것입니다.

앤 모트는 “희망은 어둠 속에서 시작된다”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의 희망은 어둠의 골짜기에서 시작되었습니다. 지금 어디에 있든지 간에, 어떤 상황에 있든지 간에, 새롭게 시작하는 그 순간이 소망이 영글어가는 귀한 시간입니다. 그러므로, 끝나기까지는 끝난 것이 아닙니다. 포기하지 않고, 내일을 향하여 달려가는 자에게는 상급이 준비되어 있음을 알고, 끝까지 달려가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오늘날의 마른 뼈는 무엇을 의미할까요? 그것은 교회라고 할 수 있습니다. 에스겔은 마른 뼈에 대한 환상을 본 후에, 마지막 부분에서, 성전이 회복되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매우 놀라운 환상입니다. 오늘날 수많은 교회가 마른 뼈와 같은 모습이 되고 말았습니다. 무너진 예루살렘 성전처럼 되고 말았습니다. 돌아보는 사람도 없고, 관심을 가져 주는 사람도 없이, 그냥 내버려 둔 채, 버려졌습니다.

 

마른 뼈는 교회 안에 있는 성도들의 모습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성도들은 많아졌지만, 그들의 삶에는 생기가 없습니다. 힘이 없습니다. 무력합니다. 힘이 없습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아무 것도 하지 못한 채, 그냥 누워만 있습니다.

마른 뼈가 많이 있다고 한들, 골짜기에 누워만 있으면 아무 소용이 없습니다. 일어나야 합니다.

 

또한,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는 고통 중에 있는 성도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골짜기는 고통스런 장소지만, 아직 절망할 장소는 아닙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골짜기의 마른 뼈와 아직 함께 계시기 때문입니다. 골짜기는 하나님의 사랑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꿈이 있는 곳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를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와 같은 우리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인생의 어두운 그늘마저도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은 어두운 그늘을 축복의 그늘로 만드시는 분입니다. 그늘이 다 나쁜 것만은 아닙니다. 그늘이 주는 축복이 있습니다. 한 그루 나무가 만들어 주는 그늘은 사람들의 안식처입니다. 쉼터입니다. 사람들의 눈물을 닦아 주는 안식처입니다. 사람들의 피곤을 녹여주는 쉼터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그늘진 골짜기에 있는, 모든 사람에게 잊혀진 마른 뼈도 사랑하십니다. 골짜기에 던져진 버림받은 마른 뼈를 사랑하십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마른 뼈도 사랑하시는 은혜입니다. 하나님은 소망이 없는 마른 뼈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께 나아갈 수도 없는 마른 뼈에게 은혜를 베푸십니다.

 

하나님은 버려진 마른 뼈를 소생시켜, 군대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쓰레기를 비료로 사용하시는 분입니다.

하나님은 버려진 나무를 멋진 조각품으로 만들어 주시는 분입니다.

훌륭한 목수의 손길에 들어가면, 어떤 나무라도 아름다운 조각품이 되는 것처럼, 하나님의 손에 붙잡히면, 마른 뼈와 같은 버려진 인생도, 보배롭게 쓰임 받게 됩니다.

 

하나님은 절망의 골짜기에서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죽음의 골짜기에서 환상을 보여 주십니다. 비전을 보여 주십니다. 꿈을 갖게 하십니다. 장래 일을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골짜기에서 질문하십니다.

 

3절 말씀입니다.

“그가 내게 이르시되 인자야 이 뼈들이 능히 살 수 있겠느냐 하시기로 내가 대답하되 주 여호와여 주께서 아시나이다” 아멘.

 

하나님이 에스겔에게 던진 질문은 도전의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의 질문은 믿음, 비전, 소망, 하나님의 능력, 그리고, 하나님의 사랑에 대한 질문이었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에, 비전을 갖고 계십니다. 마른 뼈에, 소망을 갖고 계십니다. 마른 뼈에 하나님의 성령을 부어주기를 원하십니다. 마른 뼈를 회복시키기를 원하십니다. 마른 뼈에게 지극한 사랑을 베풀기를 원하십니다.

 

하나님의 선하심은 거기에만 머무는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슬픔, 고독, 실패, 절망의 어두움 가운데서도 함께 하시는 좋으신 분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성공, 성취, 기쁨, 풍성함, 능력, 강함, 젊음, 그리고 형통의 밝은 빛을 주시기를 원하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에스겔을 데려가신 골짜기는 낮고 낮은 골짜기입니다. 골짜기는 낮은 곳에 있습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는 낮습니다. 하나님은 지금 이스라엘 백성들을 바벨론이라는 낮은 골짜기에 던지셨습니다. 낮고 낮아 무덤에 있는 것과 같았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이 있는 곳을 무덤이라고 말씀하십니다. 그리고, 그 무덤에서 나오게 하겠다고 말씀하십니다.

 

13절 말씀입니다.

“내 백성들아 내가 너희 무덤을 열고 너희로 거기에서 나오게 한즉 너희는 내가 여호와인 줄을 알리라” 아멘.

 

하나님은 사랑하는 사람을 낮추십니다. 낮은 곳에 임하게 하십니다. 하나님이 높이 세우기를 원하시는 사람일수록 낮추십니다. 낮은 곳으로 떨어뜨리십니다. 산이 높을수록 골짜기는 깊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애굽의 국무총리로 높이시기 전에, 철저하게 낮추셨습니다. 하나님은 요셉을 구덩이에 던지셨습니다.

예수님은 스스로 자신을 낮추셔서 낮은 골짜기에 임하셨습니다. 예수님은 말구유에 임하셨습니다. 십자가에 이르기까지 자신을 낮추셨습니다. 예수님이 못 박혀 돌아가신 골고다는 에스겔이 보았던 골짜기와 같은 곳이었습니다.

사도 바울은 예수님의 낮추심에 대하여, “사람의 모양으로 나타나사 자기를 낮추시고 죽기까지 복종하셨으니 곧 십자가에 죽으심이라”(빌 2:8)라고 노래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먼저 낮추십니다. 그리고, 서서히 높이십니다. 이것은 하나님의 변함없는 원리입니다. 나무를 통해, 하나님의 원리를 배워야 합니다. 높이 올라갈 나무일수록, 뿌리를 깊이 내리는 법입니다. 뿌리가 깊지 않은 나무는 높이 올라섰을 때, 시련을 견디지 못합니다. 쉽게 쓰러지고 맙니다.

 

나무가 뿌리를 깊이 내릴 때는 고통의 때입니다. 가무는 해에, 산불이 났을 때, 폭풍우를 통과할 때, 나무는 뿌리를 깊이 내립니다. 뿌리를 깊이 내려, 깊은 땅 속에 있는 물을 빨아들입니다. 밖에서 공급되는 물로만 의존하는 것이 아니라, 깊은 곳에 감추어진 물을 끌어 올려 생존하는 것입니다. 그때, 나무는 강해집니다. 뿌리 깊은 나무가 됩니다. 뿌리 깊은 나무는 흔들림이 없습니다. 쓰러지지 않습니다. 어떤 시련이 와도, 굳게 서 있습니다.

 

하나님이 에스겔을 데리고 가신 골짜기는 어두움의 골짜기, 흑암의 골짜기, 음침한 골짜기였습니다. 그리고, 낮고 낮은 골짜기였습니다.

우리는 정상을 좋아합니다. 낮은 곳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밝은 것을 좋아합니다. 어두움을 싫어합니다.

우리는 낮은 어두움의 골짜기를 싫어합니다. 어두움이 없는 높은 산을 좋아합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이스라엘 백성들에게, 그리고, 우리에게 약속하신 땅은 산도 있고, 골짜기도 있는 땅입니다.

 

신명기 11:11-12절 말씀입니다.

“너희가 건너가서 차지할 땅은 산과 골짜기가 있어서 하늘에서 내리는 비를 흡수하는 땅이요 네 하나님 여호와께서 돌보아 주시는 땅이라 연초부터 연말까지 네 하나님 여호와의 눈이 항상 그 위에 있느니라” 아멘.

 

하나님은 아무리 사랑하시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하게 하십니다. 다윗도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를 통과했습니다. 다윗은 “내가 사망의 음침한 골짜기로 다닐지라도 해를 두려워하지 않을 것은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심이라 주의 지팡이와 막대기가 나를 안위하시나이다”(시 23:4)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을 밝은 곳에 세우시기 전에, 어두운 굴에 갇히게 하셨습니다.

사무엘상 22:1-2절을 보면, “그러므로 다윗이 그 곳을 떠나 아둘람 굴로 도망하매 그의 형제와 아버지의 온 집이 듣고 그리로 내려가서 그에게 이르렀고 환난 당한 모든 자와 빚진 모든 자와 마음이 원통한 자가 다 그에게로 모였고 그는 그들의 우두머리가 되었는데 그와 함께 한 자가 사백 명 가량이었더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다윗이 숨어 있었던 아둘람 굴은 어두운 굴이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 어두운 아둘람 굴에서 다윗에게 말씀하셨습니다. 그 어두운 굴에서, 다윗을 성장하게 하셨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이 예비하신 어두운 골짜기는 지나고 보면, 은혜의 장소요, 복된 장소입니다.

 

요셉이 국무총리가 되기 직전에 머물렀던 곳은 어두운 감옥이었습니다. 그는 그곳에서 2년을 지냈습니다. 그런데, 신비롭게도, 바로 그 감옥에서도, 하나님은 요셉과 함께하셨습니다. 결코, 하나님은 요셉을 떠나지 않으셨습니다. 그 어두운 감옥 안에서도 하나님은 요셉에게 사랑을 더하셨습니다. 감옥의 책임을 맡은 전옥에게 은혜를 받게 만드셨습니다.

창세기 39:20-21절을 보면, “이에 요셉의 주인이 그를 잡아 옥에 가두니 그 옥은 왕의 죄수를 가두는 곳이었더라 요셉이 옥에 갇혔으나 여호와께서 요셉과 함께 하시고 그에게 인자를 더하사 간수장에게 은혜를 받게 하시매”라고 말하고 있습니다.

 

인생의 여정에서, 우리는 때로 다윗처럼, 아둘람 굴에 갇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요셉처럼, 감옥에 갇히는 경험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욥처럼 알 수 없는 고통을 당할 때도 있습니다. 그런데, 놀라운 것은 그 어두운 골짜기에서 하나님은 놀라운 일을 이루고 계신다는 사실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만드신 육신의 눈을 잘 관찰해 보십시오. 우리가 물체를 보는 것은 눈의 흰자위를 통해 보는 것이 아닙니다. 눈의 한 가운데 있는 검은자위, 곧 눈동자를 통해 보는 것입니다. 왜 하나님은 흰자위가 아니라, 검은자위를 통해, 사물을 바라보고, 사물을 식별할 수 있도록 만드셨을까요?

탈무드는 검은 눈동자의 신비에 대하여, “너의 인생이 아무리 어둡다고 할지라도, 너의 현실이 눈동자와 같이 캄캄하다고 할지라도, 낙심하지 말아라. 절망하지 말아라. 오히려 그 어두움을 통해서, 밝은 미래를 바라볼 수 있느니라.”라고 풀이하고 있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흑암 중에 있는 우리에게 큰 빛을 보게 하십니다.

이사야 9:2절을 보면, “흑암에 행하던 백성이 큰 빛을 보고 사망의 그늘진 땅에 거주하던 자에게 빛이 비치도다”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흑암 중에서, 우리는 예수님을 만나게 됩니다. 하늘의 비전을 보게 됩니다. 하나님이 보여 주시는 환상을 보게 됩니다. 에스겔의 환상을 우리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흑암 중에 보화를 감추어 두십니다. 우리는 흑암을 싫어하지만, 하나님은 흑암 중에 보화를 감추어 두십니다. 이사야 45:3절을 보면, “네게 흑암 중의 보화와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주어 네 이름을 부르는 자가 나 여호와 이스라엘의 하나님인 줄을 네가 알게 하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보물은 땅 표면에서 쉽게 찾지 못합니다. 여기 저기, 땅 위에 굴러다니는 흔한 돌맹이를 보물로 생각하는 사람들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보물을 찾기 위해서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깊은 바다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은 흑암 중에 보화를 감추어 두시고, 은밀한 곳에 숨은 재물을 우리에게 주십니다. 그러므로, 보화를 찾기 위해서는 깊은 바다로 들어가야 합니다. 해변가에서 놀면서, 아름다운 보화를 찾으려는 것은 어리석은 일입니다. 금맥을 발견하기 위해서는 깊은 땅 속으로 들어가야 합니다. 하나님이 우리를 깊고 어두운 골짜기에 던지시는 이유는 그곳에 감취인 보화가 있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흑암 중에 있는 보물을 발견해야 합니다. 깊고 어두울수록, 그곳에는 값비싼 보물이 감추어져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흑암 중에 성장하게 하십니다.

나무의 뿌리는 어두운 데서 자랍니다. 뿌리는 흑암 중에 자랍니다. 보이지 않는 곳에서 자랍니다. 우리가 가꾸고 키워야 할 것은 보이지 않는 것입니다. 보이지 않는 뿌리가 우리가 키우고 가꾸어야 할 것입니다. 그곳은 흑암 중에 있습니다. 아무도 볼 수 없는 곳에 있습니다. 깊고 깊은 곳으로, 뿌리를 깊게 내릴 때, 믿음의 나무는 왕성하게 자라게 될 것입니다. 멋진 열매를 맺게 될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귀히 사용하시는 인물을 흑암 중에 키우십니다. 광야라는 흑암에서, 감옥이라는 흑암에서, 굴이라는 흑암에서 키우십니다.

요셉, 다윗, 바울, 그리고 예수님의 생애를 묵상해 보십시오. 그들은 한결같이 광야 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감옥에서 성장했습니다. 굴속에서 성장했습니다. 광야, 감옥, 그리고, 굴은 한결같이 흑암의 골짜기를 의미합니다.

욥은 어두움 가운데서 성장했던 가장 대표적인 인물입니다. 그런 까닭에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두움마저도 사랑하는 법을 터득해야 합니다.

잔느 귀용은 “나는 어두움을 좋아하도록 배웠다. 이는 처해 있는 환경이 어두울수록, 주의 얼굴은 더욱 밝게 빛나기 때문이다”라고 고백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골짜기에 있는 마른 뼈들을 결코 잊지 않으셨습니다. 바벨론에 끌려가 말할 수 없는 고통 중에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이 그들을 잊으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들을 버리셨을 것이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그들을 잊지 않으셨습니다. 버리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를 결코 포기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 처하게 된다 할지라도, “하나님이 나를 버리셨을까?”라고 고민할 필요가 전혀 없습니다. 하나님은 하나님의 사람들을 포기하지 않습니다. 다시 일어설 수 있도록 도와 주십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의 사람들은 어떤 상황에서도 결코 포기해서는 안됩니다. 항상 소망을 가져야 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를 사랑하십니다. 우리가 어떤 상황에 있는지를 아십니다.

하나님은 마른 뼈도 사랑하십니다. 마른 뼈에게도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마른 뼈에 임하시는 하나님의 크신 은혜를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마른 뼈와 같은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어둠의 골짜기에 있는 우리를 건져주옵소서.

하나님의 뜻을 알고, 그 뜻을 따라 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기억하여 주사,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소망이 가득한 교회가 되게 하여 주옵소서.

어두움의 골짜기, 절망의 골짜기에 있을지라도, 주님만 바라보게 하여 주옵소서.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선하게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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