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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설교

근신하라 깨어라(벧전 5:5-11) - 20210905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21.09.05|조회수994 목록 댓글 0

근신하라 깨어라(벧전 5:5-11)

할렐루야! 은혜의 자리, 축복의 자리에 나온 여러분 모두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 가장 기본되는 것은 무엇일까요? “어떤 모습일 때, 믿음이 좋다”라고 말할 수 있을까요? 우리는 어떤 모습을 추구해야 할까요? 우리가 추구해야 할 믿음의 모습은 바로 겸손입니다. 겸손이야말로, 믿음의 가장 기본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대적하시되 겸손한 자들에게는 은혜를 주시느니라”(5절)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은 교만한 자를 싫어하시고, 더 나아가, 그를 대적하십니다. 하지만, 겸손한 자들에게는 풍성한 은혜를 베풀어 주십니다.

하나님과 원수처럼 지낼 것인가? 아니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낼 것인가?

교만하면, 하나님과 원수처럼 지내게 될 것이고, 겸손하면, 하나님과 화목하게 지내게 될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교만이 아니라, 겸손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교만한 사람은 자존심이 강한 사람입니다. 자존심은 내 안에 무언가 숨겨진 능력이 있다고 생각하는 막연한 자신감과 오기입니다. 남을 얕잡아 보고, 우쭐대며, 무시하기 일쑤입니다. 자기가 생각하는 방법과 수단이 가장 좋다는 착각 속에 살아갑니다. 우리가 정말 정직하게, 우리 자신을 솔직하게 돌아보면, 우리 스스로가 무엇인가 해낼 능력이 없다는 것을 금방 알 수 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괜한 자존심을 내세워, 아무 도움이 없어도, 무엇이든지 다 할 수 있는 것처럼, 호기를 부리다가, 실패하고, 좌절하게 됩니다. 그렇게 자존심이 쌓이다 보면, 교만함으로 자라나서, 하나님을 대적하는데 까지 이르게 되는 것입니다. 하나님과 원수가 되고, 하나님을 떠나게 됩니다.

 

하지만, 겸손한 사람은 현실의 나의 모습을 있는 그대로 인정하는 사람입니다. 안 되는 것은 안 되는 것이고, 능력이 없는 것은 어쩔 수 없는 현실이기 때문에, 감추려고 하지 않고, 부끄러워하지도 않습니다. 내가 연약하고, 나약함을 인정하게 되면, 우리의 내면에서는 무한한 능력을 소유하고 계시는 하나님을 자연스럽게 찾게 됩니다. 하나님의 도와주심을 믿고, 의지하게 됩니다. 이렇게 하나님께 모든 행사를 전적으로 맡기는 것이 겸손한 마음입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께 나아오는 자는 반드시 큰 은혜를 베풀어 주시고, 자리까지 높여 주신다고, 하나님께서는 분명하게 약속하셨습니다.

나약한 인간이 전능하신 하나님 앞에서 살아가려는 기본자세가 겸손이기 때문에, 베드로 사도는 성도들에게, 무엇보다도 “겸손하라”고 권면한 것입니다.

 

잠언 18:12절을 보면, “사람의 마음의 교만은 멸망의 선봉이요 겸손은 존귀의 길잡이니라”고 했습니다. 이 구절을 현대인의 성경으로 읽어보면, “사람이 망하려면 먼저 교만해지지만, 존경을 받을 사람은 먼저 겸손해진다”고 했습니다.

존경 받으려고 겸손해지는 것이 아니라, 겸손해져야 존경 받을 수가 있습니다.

 

C.S.루이스는 “순전한 기독교”에서 “가장 핵심적인 악, 가장 궁극적인 악이 바로 교만이다.”라고 말했습니다. 뿐만 아니라, “교만한 자는 항상 밑을 보고 있다. 밑을 내려다보느라, 바빠서, 자기 위에 계신 분을 제대로 쳐다보지 못한다.”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을 바라보지 않는 사람은 겸손과는 거리가 먼 사람입니다.

항상 하나님을 바라보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하나님 안에 있는 사람은 겸손한 사람입니다.

요한복음 15:9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아버지께서 나를 사랑하신 것 같이 나도 너희를 사랑하였으니 나의 사랑 안에 거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사랑을 받은 사람들입니다. 그러므로, 주님의 사랑 안에 항상 거하여야 할 것입니다. 우리 안에 자리잡고 있는 교만을 내다 버리고, 솔직하게, 우리의 있는 그대로의 모습으로, 하나님 앞에 설 때, 우리는 겸손해질 수가 있습니다.

겸손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를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7절 말씀입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아멘.

 

우리는 우리가 가진 모든 염려를 맡겨야 합니다. 그런데,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는 말을 몰라서, 우리의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이 아니라, 맡긴다는 것 자체가 생각보다 잘 안됩니다. 마음에서 염려를 떨어내서, 하나님 앞에 내려놓아야 하는데, 그것이 말처럼 쉽게 되지 않습니다. 설교 말씀 들을 때는 조금 은혜가 되고, 위로도 되는 것 같은데, 교회 밖을 나가, 일상생활로 되돌아가면 잊어버렸던 염려가 슬그머니 다시 올라옵니다. 또 고민되고, 또 낙심되고, 또 좌절합니다.

염려라는 것이 찰거머리처럼 떼어내면 또 붙고, 떼어내면 또 붙습니다. 맡긴다고 애써보다가도, 또 다시 밀려오는 염려들로 인해, 질식할 것 같은 상황이 우리의 현실입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십시오” 아무리 선포해도 공허한 메아리로 들리기 십상입니다.

 

“조안나 위버”는 “일반적으로 우리가 하는 염려의 70%는 ‘절대로 일어나지 않을 것들’이거나, ‘이미 지나가 버린 것들’과 관련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덧붙여, “단지 8%의 문제만이 염려가 필요한데, 그 8%조차 해결책을 익히 찾을 수 있을 만큼 어렵지 않다”라고 말했습니다. 그럼에도, 우리가 자주 염려에 빠지는 이유가 무엇일까요?

염려와 가까운 말이 근심입니다. 근심의 원인은 불안과 공허함에서 옵니다. 곧 염려를 주님께 맡기지 못하는 것은 “맡기면, 정말 해결될까?”라는 불신하는 마음과 다 맡겨버리면, 내 안에서 무언가 남은 것이 하나도 없을 것 같은 왠지 모를 허전함을 느끼기 때문입니다.

 

그렇습니다. 염려를 다 주께 맡기지 못하는 가장 큰 이유가 불신하는 마음, 즉 믿음이 부족하기 때문임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가 근심의 짐, 염려의 무거운 짐을 지고, 혼자 끙끙거리며 고통스러워한다면, 주님은 우리가 주님의 능력을 믿지 못하는 것을 아시고, 대단히 싫어하십니다.

믿음이 부족하면, 염려와 근심이 차곡차곡 쌓이게 되고, 염려와 근심이 산더미 같이 높게 쌓였는데도, 믿음이 없어, 주님께 맡기지 못하면, 고통의 악순환에 빠지게 될 것입니다.

해답은 이미 나와 있습니다.

“너희 염려를 다 주께 맡기라 이는 그가 너희를 돌보심이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돌보아 주시기 때문에, 우리의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우리가 어떤 상황에 높여 있든지, 상관하지 않고, 우리를 돌보아 주십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십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께 모든 염려와 근심의 짐을 맡겨야 합니다. 그리고, 맡기기가 힘들 때,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내 모든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길 수 있는 큰 믿음을 주옵소서”

하나님께 염려를 맡길 수 있는 큰 믿음을 달라고 기도하면, 주님께서는 그 믿음을 주실 것입니다. 그 믿음을 가지고, 염려를 주님께 맡겨 버려야 합니다. 또, 시간이 지나, 믿음이 떨어지면, 또 기도하고, 믿음이 다시 충천 되면, 그때, 염려를 다 주님께 맡기면 됩니다. 이렇게 계속 반복하다 보면, 문제도 해결되고 염려와 근심도 사라지게 될 것입니다.

마태복음 6:27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너희 중에 누가 염려함으로 그 키를 한 자라도 더할 수 있겠느냐”고 말씀하셨습니다.

밤새워, 염려한다고 해서, 문제들이 해결되는 것은 하나도 없습니다. 우리가 염려할 것은 우리의 믿음 없음을 염려해야 합니다. 우리에게 말씀 없음을 염려해야 합니다.

여러분! 세상이 주는 염려와 근심을 다 주님께 맡기고, 믿음과 말씀을 내 안에 충만하게 채워서, 참 평안과 참 자유를 누리며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8-9절 말씀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 너희 대적 마귀가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나니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 이는 세상에 있는 너희 형제들도 동일한 고난을 당하는 줄을 앎이라” 아멘.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씀 중에, “근신하라”는 말은 “정신을 바짝 차리라”는 말이고, “깨어라”는 말은 “잠들지 말고, 깨어 있으라”는 말입니다.

 

여러분! 신앙생활을 하는데 있어서는 염려와 근심과 같은 내부의 적이 있습니다. 뿐만 아니라, 믿는 사람들을 넘어지게 하고, 쓰러지게 하려는 마귀와 같은 외부의 적이 있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굶주린 사자와 같은 마귀에 당해본 경험자입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주님이 베드로에게,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있으라”고 말씀하셨는데, 베드로는 피곤하여 잠이 들었습니다. 결국, 베드로는 주님을 세 번이나 부인하고 말았습니다. 베드로에게는 씻을 수 없는 아픈 과거가 되었습니다.

베드로는 자신의 아픈 경험을 토대로, 마귀의 공격에 대해, 철저하게 대응하지 않으면, 참혹하게 당하게 될 것이라는 것을 알기에, 간절한 마음으로, 그리고, 가장 강한 표현을 사용해서, “근신하라 깨어라”고, 성도들에게 권면을 하는 것입니다.

 

“근신하라 깨어라”는 말은 마귀의 시험에 들지 않도록, 깨어 기도하라는 것입니다.

마태복음 26:41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시험에 들지 않게 깨어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또한, 예수님께서 “우리를 시험에 들게 하지 마시옵고 다만 악에서 구하시옵소서”(마 6:13)라고 날마다 기도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매일 기도해야 합니다. “우리를 시험에 빠지지 않게 하여 주옵소서”

 

여러분! 주님이 잡히셨던 밤, 베드로가 많은 사람들 앞에서, “나는 예수님을 모른다”라고 말했던 것은 그의 결심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결단력이 부족했기 때문이 아니었습니다. 베드로가 기도하지 않았기 때문이었습니다.

베드로를 비롯한 모든 제자들은 “모두 주를 버릴지라도 나는 결코 버리지 않겠나이다. 내가 주와 함께 죽을지언정 주를 부인하지 않겠나이다”(마 26:33,35)라고 고백했습니다. 그들은 예수님을 부인하지 않겠다고 호언장담했습니다. 결단했습니다. 고백했습니다. 그러나, 베드로는 그 밤이 다 가기 전에, 예수님을 모른다고 세 번이나 부인했습니다.

베드로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겟세마네 동산에서, 그는 기도하지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는 믿음의 실패의 쓴잔을 마셔야만 했습니다. 그런 사실이 있기에, 베드로는 다른 성도들에게, “근신하라 깨어라”고 담대하게 외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지 않으면, 자신처럼, 믿음의 실패의 쓴잔을 마실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베드로전서 4:7절을 보면, 베드로는 “만물의 마지막이 가까이 왔으니 그러므로 너희는 정신을 차리고 근신하여 기도하라”고 외쳤습니다.

때가 때인만큼, 우리는 근신하여, 깨어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여러분! 제자들이 귀신들린 아이에게서 귀신을 쫓아내지 못했을 때, 예수님께서 오셔서, 더러운 귀신을 내쫓으셨습니다. 제자들이 예수님께 물었습니다.

“우리는 어찌하여 능히 그 귀신을 쫓아내지 못하였나이까?”(막 9:28)

그때, 주님께서는 “기도 외에 다른 것으로는 이런 종류가 나갈 수 없느니라”(막 9:29)고 대답하셨습니다.

 

신앙생활을 방해하는 온갖 시험을 이기려면, 깨어 기도해야 합니다.

야고보서 4:7절을 보면, 사도 야고보는 “마귀를 대적하라 그리하면 너희를 피하리라”고 말했습니다.

근심의 짐, 염려의 모든 짐을 안고 와서, 하나님께 맡겨야 합니다. 기도라는 것은 한 마디로 맡기는 것입니다.

여러분! 여러분의 근심, 두려움, 연약함, 지나친 욕심, 닥쳐오는 유혹을 하나님께 맡기십시오. 기도로 맡겨버리십시오. 그리고, 그 다음부터는 하나님이 해결해 주실 줄 믿고 감사하십시오. 그때부터, 하나님이 우리와 함께 하신다는 증거로 우리 마음에 평안을 허락해 주시는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기도를 반드시 응답해 주십니다.

빌립보서 4:6-7절을 보면, 바울은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다만 모든 일에 기도와 간구로, 너희 구할 것을 감사함으로 하나님께 아뢰라 그리하면 모든 지각에 뛰어난 하나님의 평강이 그리스도 예수 안에서 너희 마음과 생각을 지키시리라”고 말했습니다.

아무 것도 염려하지 말고, 모든 일을, 기도함으로, 하나님께 맡길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지켜 주실 것입니다. 우리의 삶을 책임져 주실 것입니다.

 

여러분! 기도함으로, 우리는 주님을 믿는 믿음 위에 굳건하게 서야 합니다.

대적자 마귀가 굶주린 사자처럼, 아무리 간교하게 우리를 공격한다고 해도, 두려울 것이 하나도 없습니다.

베드로 사도는 “너희는 믿음을 굳건하게 하여 그를 대적하라”고 말했습니다.

우리에게는 천하무적, 백전백승의 무기가 있습니다. 예수 그리스도, 승리하신 권세의 이름으로 선포하면, 사탄, 마귀, 귀신 가릴 것 없이 한 방에 물리칠 수 있습니다. 믿음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예수 이름으로 이기는 것입니다.

요한복음 16:33절을 보면, 예수님께서 “세상에서는 너희가 환난을 당하나 담대하라 내가 세상을 이기었노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이미 이긴 싸움을 하고 있는 것입니다.

요한일서 5:4-5절을 보면, 사도 요한은 “무릇 하나님께로부터 난 자마다 세상을 이기느니라 세상을 이기는 승리는 이것이니 우리의 믿음이니라 예수께서 하나님의 아들이심을 믿는 자가 아니면 세상을 이기는 자가 누구냐”고 말했습니다.

우리의 믿음으로 세상을 이길 수 있습니다. 사단, 마귀 권세를 물리칠 수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라는 복음성가가 있습니다.

예수의 이름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 주가 주신 능력으로 나는 일어서리라

원수가 날 향해 와도 쓰러지지 않으리

주가 주신 능력으로 / 주가 주신 능력으로 / 주가 주신 능력으로 일어서리

 

여러분! 오늘날도, 대적 마귀는 우는 사자 같이 두루 다니며 삼킬 자를 찾고 있습니다.

믿음이 큰 사람은 큰 데로, 믿음이 작은 사람은 그 나름대로 시험을 당합니다. 고난 당하는 것은 누구든지, 동일합니다. 마귀의 시험이나 고난으로부터 제외되는 사람은 없습니다.

 

여러분! 염려와 근심거리를 주님께 맡기십시오. 근신하고 깨어, 기도하십시오. 믿음에 굳게 서서, 우리를 미혹하고 위협하는 마귀를 대적함으로 영적으로 승리의 삶을 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10절 말씀입니다.

“모든 은혜의 하나님 곧 그리스도 안에서 너희를 부르사 자기의 영원한 영광에 들어가게 하신 이가 잠깐 고난을 당한 너희를 친히 온전하게 하시며 굳건하게 하시며 강하게 하시며 터를 견고하게 하시리라” 아멘.

 

하나님은 은혜의 하나님이십니다.

근신하여 깨어 있을 때, 하나님께서는 우리들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실 것입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온전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굳건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강하게 하여 주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터를 견고하게 하여 주십니다.

 

여러분! 근신하여 깨어 기도함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놓으신 풍성한 은혜를 받아, 누릴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우리에게 크신 은혜를 베풀어 주옵소서.

교만하지 않고 겸손한 삶을 살 수 있도록, 붙잡아 주옵소서.

어떤 상황에서도, 근신하여 깨어 기도할 수 있도록, 붙들어 주옵소서.

친히 우리를 온전하게 하시고, 굳건하게 하시고, 강하게 하시고, 터를 견고하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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