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 1- 에베소 교회(계 2:1-7)
할렐루야! 새해 첫주일입니다. 축복합니다. 사랑합니다.
하나님이 원하시는 교회는 어떤 교회일까요?
어느 부흥집회에서 목사님이 설교 도중에 질문을 했습니다.
“세상에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입니다. 그럼 세상에서 가장 따뜻한 바다는 어디일까요?”
성도들이 머뭇거리자 목사님께서 말씀하시길 “그 곳은 ‘사랑해’입니다. 우리 모두의 마음이 항상 따뜻한 바다와 같이 사랑하는 마음이길 원합니다.”
집회가 끝나고 어느 여자 집사님께서 평소 남편으로부터 사랑한다는 말을 한번 듣는 것이 소원이었습니다. 그래서 집에 가서 남편에게 온갖 애교를 부리면서, 목사님과 같은 질문을 했습니다.
“여보 , 내가 문제를 낼게 한번 맞추어 봐요.”
“세상에서 가장 차가운 바다는 ‘썰렁해’래요. 그럼 세상에서 가장 뜨거운 바다는 어디일까요?”
남편이 머뭇거리며 답을 못하자, 온갖 애교 섞인 소리로 힌트를 주면서 말을 했어요.
“이럴 때 당신이 나에게 해주고 싶은 말이 있잖아!”
그러자 남편이 의미심장한 표정으로, 웃음을 지으며 자신있게 아내에게 하는 말, “열~바다”
사랑하는 여러분! 첫 사랑은 떨림이 있고, 기대가 있고, 감동이 있습니다. 때묻지 않은 순수함과 아름다움이 있습니다. 오랫동안 그 느낌과 기억들을 간직하고 싶습니다. 이런 첫 사랑의 애틋함과 풋풋한 마음은 하나님과 우리 자신과의 관계도 마찬가지입니다.
여러분! 예수님을 처음 나의 구주, 나의 하나님으로 고백할 때, 가슴이 벅차오르지 않았습니까?
예수님의 십자가만 생각해도, 눈가에 눈물이 흐르지 않았습니까?
때로는 주님 앞에 예배드리는 것이 좋아서, 주일이 기다려지지 않았습니까?
사랑하는 교회 식구들과의 만남이 그리워지고, 가장 소중한 만남이 아니었습니까?
내가 누군가를 위해 섬기고, 봉사한다는 것이, 기쁨이요, 감격이 아니었습니까?
교회에 나올 때, 마냥 가슴이 설레이지 않았습니까? 예배드릴 때, 떨림과 흥분이 있지 않았습니까?
일본의 여류작가인 미우라 아야꼬의 수필집 가운데 “사랑한다는 것과 믿는다는 것”이란 책이 있습니다. 그 책에서 그녀는 이 세상에서 가장 두렵고 무서운 것이 있다고 말했습니다. 그것은 바로 ‘자신의 생활이 습관화되는 것’ 이라고 지적합니다. 이것은 흘러가는 세월 속에서 처음의 순수한 마음과 감동이 사라져 버린 것을 의미합니다. 그녀는 13년 동안 지병으로 병원에 있었습니다. 처음에는 자기를 찾는 모든 사람들에 대해서, 무조건 고맙고 감사했습니다. 그런데 병원생활을 오래하는 과정에서, 사람들이 찾아올 때마다, 들고 오는 선물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자기는 그것을 당연히 받아야 하는 것처럼 생각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먹을 것이나 꽃을 사오기도 했습니다. 어떤 이들은 책이나 위로금을 가져오기도 했습니다. 오랜 시간이 지나다 보니, 이젠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이 반갑기도 하지만, 그 손에 어떤 선물을 들고 왔는가에 대해서 더 큰 관심을 가지게 되었습니다. 한 번은 몇 년만에 반가운 친구가 문병을 왔습니다. 그런데 병실을 들어오는데 그 친구의 손엔 아무 것도 들려 있지 않았습니다. 반갑게 대화를 하면서도 속으론 ‘어쩌면 문병 오는데 빈손으로 오나’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러다가 ‘그렇지 아마 이 친구는 시간이 없어서 봉투를 가지고 왔나보다’ 생각했습니다. 그런데 그 친구가 작별인사를 하고 그냥 가는 것이었습니다. 속으로 섭섭한 마음이 들었습니다. 그러면서 ‘아마도 친구가 깜박 잊어버렸겠지. 잠시 후면 다시 찾아 올거야’라는 기대를 하였습니다. 그런데 아무리 기다려도, 그 친구는 다시 오지 않았습니다. 그때 마음속에 ‘어쩌면 몇 년만에 병문안 오면서 빈손으로 올 수 있어. 참 시시한 사람도 다 있군’ 속으로 중얼거리는 자신을 보았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자신의 모습을 보며 너무 놀랐습니다. 이제는 자신의 몸 뿐만 아니라, 정신마저 병들어 있는 모습을 깨닫고, 두려워 떨게 되었습니다. 그 순간 그녀는 하나님 앞에 두렵고 떨리는 마음으로 엎드렸습니다.
“하나님! 내 안에 순수한 모습은 사라지고 어느덧 고등거지가 되고 말았습니다. 제가 어찌하여 다른 사람에게 사랑 받는 일, 선물 받는 일에 습관화가 되어 버렸습니까?”
그녀는 습관화된 자신의 거지 근성을 발견하고 철저하게 회개했습니다. 자기를 찾아온 것만으로도 감사하고 감격했던 첫사랑의 마음을 잊어버린 자신이 너무나 부끄러웠습니다.
오늘 여러분의 모습은 어떻습니까? 처음에 가지고 있던 감격과 감동이 사라져 버리고 습관화된 생활에 젖어 있지는 않습니까? 오늘 우리들이 두려워해야 할 것은 바로 우리의 신앙 속에 습관화되고, 경직되어 가는 자신의 모습입니다.
오늘 본문은 소아시아의 일곱 교회 가운데 중심이 되는 에베소 교회를 소개하고 있습니다. 에베소는 오늘날 터키의 항구도시입니다. 이곳은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입니다. 특별히 미의 여신인 아데미(다이아나)의 신전이 있습니다. 이곳을 중심으로 몸을 파는 많은 창기들이 있었습니다. 에베소는 음란의 도시였습니다. 또한 주문을 외우며 점을 치고, 마술을 하는 많은 사람들이 있었습니다. 그리고 니골라 당과 같은 영지주의 이단들이 있었습니다. 믿는 자들을 핍박하는 무리들이 있었습니다.
이런 열악한 상황 속에서도 에베소 교회는 주님으로부터 칭찬 받고, 인정받는 교회였습니다.
2-3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내가 네 행위와 수고와 네 인내를 알고 또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아니한 것과 자칭 사도라 하되 아닌 자들을 시험하여 그의 거짓된 것을 네가 드러낸 것과 또 네가 참고 내 이름을 위하여 견디고 게으르지 아니한 것을 아노라” 아멘.
에베소 교회의 교인들은 입술로만 주님을 고백하는 자들이 아니었습니다. 믿음의 행위 즉 믿음의 역사와 수고와 인내가 있었습니다. 여러 가지 핍박과 환란 속에서도 참고 견뎠습니다. 악한 자들을 용납하지 않았습니다. 그 당시 에베소 지역에서는 로마 가이사 황제를 숭배하는 것이 의무였습니다. 황제 숭배를 거부하면, 목숨을 잃는 위기 상황이었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에베소 교회 교인들은, 이 우상에게 절하지 않는 순교적인 신앙을 지켰습니다.
에베소교회의 감독이었던 폴리갑은 너무 훌륭한 인물이라, 군인들이 죽이기를 원치 않았습니다. 그래서 그를 살리기 위하여, “한 번만 예수님을 모른다”고 말만 하면 살 수 있다고 설득했습니다. 그러나 그는 “86년 동안 주님은 나를 모른다 하신 적이 없는데, 내가 주님을 어찌 모른다 할 수 있겠습니까?”라고 말하고는 순교를 당했습니다.
그리고 에베소 지역에는 니골라당이 있었습니다. 이들은 율법을 거부하며, 죄를 두려워하지 않았습니다. 영지주의의 영향으로, 육적인 것은 모두 악하고, 영적인 것만 선하다고 믿었습니다. 따라서 예수님의 성육신을 부인했습니다. 예수님이 아기 예수로 오신 것을 철저하게 부인했습니다. 믿지를 않았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사도 바울이 전도하여 교회를 세우고, 목회를 한 곳입니다. 그리고 그 뒤를 이어 믿음의 아들인 디모데와 사도 요한의 신앙 지도를 받았습니다. 따라서 거짓 지도자들의 잘못을 분별할 줄 아는 영적으로 실력이 있는 교회였습니다. 주님을 위해 모든 시련을 견디며, 부지런히 충성을 다한 열심 있는 교회였습니다.
이쯤 되면 어디나 내놔도 손색이 없는 모범적인 교회입니다. 그런데 한 가지 책망할 것이 있다고 말씀하십니다.
4-5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그러나 너를 책망할 것이 있나니 너의 처음 사랑을 버렸느니라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 만일 그리하지 아니하고 회개하지 아니하면 내가 네게 가서 네 촛대를 그 자리에서 옮기리라” 아멘.
아무리 인내하고, 이단을 몰아내고, 많은 수고를 했다 할지라도, 첫사랑, 첫 행위를 다시 찾지 않으면, 에베소 교회에서 생명의 촛대, 사명의 촛대를 다른 곳으로 옮겨 버리시겠다고 책망하고 계십니다.
이것은 우리 자신의 모습을 되돌아 보게 하는 참으로 중요한 말씀입니다. 첫사랑을 잃어버렸다는 것은 무슨 의미일까요? 이것은 형식적이요, 외식적이요, 습관화된 신앙으로 변질되었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에베소 교회에 결정적인 문제가 무엇입니까?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다는 것입니다. 모든 것이 다 훌륭한데, 모든 것에 있어서 전혀 나무랄 때가 없는데, 결정적인 한 가지, 처음 사랑을 잃어버린 교회가 되었을 때에, 하나님을 기쁘시게 할 수 없는 교회가 된 것입니다. 그런데 이 에베소 교회가 처음부터 사랑이 없는 교회가 아닙니다. 냉냉했던 교회가 아닙니다. 사랑이 충만했던 교회입니다. 사랑의 사도 요한이 목회했던 곳이니 얼마나 사랑이 충만했겠습니까? 사도 요한이 노년에 도저히 말씀을 전할 수 없을 때에도, 오직 한 마디만 하였던 곳입니다. “서로 사랑하라”
사도행전 20:36-38절에 읽어보면, 이러한 상황이 소개되고 있습니다. 바울이 밀레도 섬에서 에베소 교회의 장로들을 불러다가, 하나님의 말씀을 증거합니다. 그리고 헤어질 때, 먼저 장로들과 바울이,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고 기도를 하였습니다. 그들은 크게 울며, 바울의 목을 끌어 안고 입을 맞추며 눈물의 이별을 했습니다. 에베소 교회는 특별히 목회자를 깊이 사랑했습니다. 성도들의 관계와 이웃과의 관계에 있어서, 사랑이 충만한 교회였습니다. 그런데 오늘 본문의 말씀은, 그때로부터 40년이 지난 후에 기록되었습니다. 그렇게 사랑이 충만한 에베소 교회가 40년이 지나서는, 따뜻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차디찬 얼음같은 교회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들이 진리를 사수하고, 믿음으로 행동하고, 순교적인 헌신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이 사랑을 망각해 버린 교회가 되었습니다. 따라서 하나님을 기쁘시게 하는 교회가 아니라, 심판의 대상이 되는 교회가 되었습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새롭게 시작된 한 해를 힘차게 달려가기 위하여 잠시 되돌아봅니다.
지난 한 해 동안, 하나님을 향한 뜨거운 사랑의 열정이 있었습니까?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하는 따뜻한 사랑의 가슴이 있었습니까? 이웃을 섬기고, 봉사하고자 하는 뜨거운 사랑의 마음이 있었습니까?
한 해를 지나오면서 기쁘고 신나는 일도 있었습니다. 때로는 가슴 아픈 일들도 있었습니다. 그런 과정을 통해서 하나님은 효성선교교회를 이곳까지 이르게 하셨습니다. 에벤에셀의 은총으로, 지키시고, 보호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완전하신 분이지만, 우리는 미련하고, 부족한 점이 많습니다. 따라서 우리 효성선교교회 공동체 안에는, 아직도 부족하고, 약한 부분들이 있습니다. 이제 그 약함들이, 약점이 되고, 불평거리가 되서는 안됩니다. 약함 속에 임하시는 주님의 강함을 바라보며, 더욱 무릎을 꿇어야 합니다. 더 기도해야 합니다. 더 겸손하게 하나님의 뜻을 구하며 전진해야 합니다. 그리고 물같이 쏟아 부어주시는 주님의 사랑과 긍휼을 덧입어야 합니다. 성도의 가슴마다, 사랑의 불이 임해야 합니다. 첫사랑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해야 합니다. 뜨거운 열정이 회복되어야 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예수님 당시에 유대교의 열심파인 바리새인을 왜 예수님께서 책망하셨습니까? 그들만큼 안식일을 잘 지키고, 십일조 꼭 바치고, 금식기도하고, 구제도 정규적으로 하면서, 열심히 회당에서 율법을 배우며, 하나님을 누구보다도 잘 믿는다는 것이, 조금도 예수님께 책망 받을 일이 아닙니다.
그런데 예수님은 마태복음 23장에 거듭 책망하시기를, “화 있을진저 외식하는 서기관들과 바리새인들이여 회칠한 무덤 같으니 겉으로는 아름답게 보이나 그 안에는 죽은 사람의 뼈와 모든 더러운 것이 가득하도다 이와 같이 너희도 겉으로는 사람에게 옳게 보이되 안으로는 외식과 불법이 가득하도다”라고 했습니다.
그들이 하나님을 향한 첫사랑을 떠나, 습관화되어 버린 그들의 종교생활을 책망하셨습니다. 결국 이 유대교의 서기관, 바리새인, 제사장들은 하나님을 겉으로만 믿었지, 하나님의 참 뜻을 깨닫지 못했습니다.
하나님이 보내신 예수 그리스도를 반대하고, 시기하다가, 결국 십자가에 못박아 버리는 무서운 죄를 범하고 만 것입니다.
오랫동안 병석에 누워 있다 보니, 자기를 찾아오는 사람에 대한 첫사랑을 잃어버리고, 선물에만 마음을 쏟아버린 미우라 아야꼬만, 그 생각이 습관화 된 것입니까?
예수님 당시에 있던 바리새인들만, 그들의 신앙이 겉으로만 익숙해져서, 습관적인 기도, 습관적인 종교행위만 가지고 있는 것입니까?
오늘 우리들에게도 에베소 교회 성도들처럼, 다른 것은 잘하는데, 첫사랑, 첫열심, 첫행위가 사라져 버린 것은 아닙니까?
오늘 저나 여러분들이 이 설교를 들으면서, 나는 아직 내 가슴 속에 첫사랑이 남아 있다고 생각되시면, 잘 유지하시기 바랍니다. 그 순수한 주님을 향한 뜨거운 열정과 첫사랑을 빼앗기지 않도록, 더욱더 자신을 지켜 나가시기를 축원합니다.
그러나 정말 하나님 앞에서 우리 자신을 진단해 보면, 저나 여러분이나, 미우라 아야꼬처럼, 바리새인처럼, 그리고 초대교회 에베소 성도들처럼, 내 기도가 습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지금 드리고 있는 이 예배가, 습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내가 지금 하고 있는 봉사가, 아주 익숙해져서 습관화 되어가고 있습니다. 설교를 들어도, 내 가슴 속에 부딪히는 감동이, 점점 사라지고 있습니다. 나의 기도 속에, 회개의 눈물이 말라 버렸습니다. 교회에 와도, 주님을 만나는 감격과 주님만 알아주시면, 부러울 것이 없다는 순수한 생각보다는, 인간들의 칭찬에 예민해지고, 사람들의 소리에, 귀를 더 크게 기울이고 있지는 않습니까?
하나님이 나를 어떻게 생각하고 계시는가에 대한 관심보다, 목사님이나 다른 사람이, 나에 대해서 어떤 말을 하는가에 대해서, 내 기분과 마음이 좌우되고 있는 것은 아닙니까? 과거에는 조그만 사건에도, 주께 감사하고 감격했던 마음이, 지금은 과거보다 더 많은 좋은 조건 속에서 살면서도, 감사도 없고, 감동도 없는, 내 신앙이 되어 가고 있지는 않습니까?
과거에는 찬송가 305장, “나 같은 죄인 살리신 주 은혜 놀라와 잃었던 생명 찾았고 광명을 얻었다”고 하는 찬송만 불러도, 내 가슴이 뭉클해지고, 내 눈에서 눈시울이 뜨거워졌던 그 감격이, 이제 다 어디로 간 것입니까? 왜 우리의 신앙과 봉사가, 점점 기름이 떨어진 등불처럼, 희미해져 가고 있습니까? 기쁨과 감사가 넘치는 입술이 원망과 불평으로 점점 채워지는 이유가 무엇입니까? 그것은 바로 첫사랑의 감격을 잃어버렸기 때문입니다.
이제 우리는 이 첫사랑을 다시 찾아야 합니다. 이 첫사랑을 회복하지 못하고, 계속해서 형식화되고, 습관화된 신앙의 자리에 머문다면, 우리는 촛대를 옳기실지도 모른다는 주님의 말씀을 경청해야 합니다.
여러분! 어떻게 하면 주님과의 첫사랑을 회복할 수 있을까요?
5절 말씀을 보면 “그러므로 어디서 떨어졌는지를 생각하고 회개하여 처음 행위를 가지라”고 했습니다.
먼저 어디서, 내가 첫사랑을 잃어버렸는지 진단하라는 말씀입니다.
미우라 아야꼬는, 자신을 찾아오는 손님들에게서, 첫사랑을 떠나, 습관화되어 가는 자신에 대해서 몸서리치며, 두려워했다고 했습니다. 그리고는 그때부터 그렇게 습관화되지 않으려고 경계했습니다. 그리고 자기 남편에 대한 사랑을 별로 느끼지 못했는데, 자기 같은 병자와 살아 주는 남편에 대해, 뜨거운 고마움을 느끼게 되었습니다. 그 결과, 자신도 변하고, 남편도 더 새로워졌다고 고백하고 있습니다.
문제는 내 믿음이 습관화되고, 형식화되고 있다는 사실을, 무섭고 두려운 것으로 깨달아야 합니다. 이런 마음이 생기지 않는 한 첫사랑을 다시 찾을 수가 없습니다.
다음으로는 성령을 받아야 합니다. 내 인간의 생각, 내 인간의 기분과 감정으로는 자주 변질되어 갑니다. 열심도 식어지고, 사랑도 식어지고, 충성도 식어집니다. 성령의 불이 내 속에 임해야, 내 믿음도, 내 충성도, 다시 뜨거워질 수 있습니다. 성령 충만을 사모하시기 바랍니다. 냉냉한 가슴 속에 뜨거운 성령의 기름 부으심의 역사가 임하기를 축원합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 기도할 때도 첫사랑의 마음으로 기도하시기를 바랍니다.
하나님께 봉사할 때도 첫사랑의 마음으로 봉사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예배할 때도 첫사랑의 마음으로 예배하기 바랍니다.
하나님께 직분의 사명을 감당할 때도 첫사랑의 마음으로 감당하기 바랍니다.
그리고 서로 성도들끼리의 만남도 첫사랑을 가지고 대하며 교제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잃어버렸던 첫사랑을 회복하며, 하나님은 어떤 복을 우리에게 주실까요?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귀 있는 자는 성령이 교회들에게 하시는 말씀을 들을지어다 이기는 그에게는 내가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어 먹게 하리라” 아멘.
하나님의 낙원에 있는 생명나무의 열매를 주워 먹게 하신다고 약속하고 계십니다. 아담이 범죄함으로 먹을 수 없었던 생명나무의 열매를, 첫사랑을 회복하면, 우리들에게 먹게 하시는 축복을 주십니다.
여러분! 이것은 어떤 고난이나 질병이나 죽음이 없는 천국을 상징합니다. 첫사랑을 회복하고 하나님과의 바른 관계를 가지는 자에게 주시는 영생의 소망입니다. 영생의 축복입니다.
이 자리에 계신 여러분 모두,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는 영생의 축복을 누리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처음 만났을 때, 그 감격과 그 사랑을 늘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그리고 지금 나의 신앙이, 화석처럼 굳어진 습관화되어버린 신앙은 아닌지, 늘 돌이켜 보시기 바랍니다. 신앙을 점검하시기 바랍니다.
새로운 한 해가 시작되었습니다. 지난 과거는 다 잊어 버리고, 앞에 있는 믿음의 푯대를 향하여 힘차게 전진해야 할 때입니다. 이제는 다시 두 손을 마주잡고 일어서야 할 때입니다. 우리의 잃어버린 첫사랑을 회복할 때입니다. 서로를 돌아보고, 격려하며, 다시 사도행전의 비전을 품고 일어서야 합니다.
주님이 우리와 함께 하십니다. 성령님이 우리를 격려하고 계십니다. 황무한 이 땅을 새롭게 일구어 옥토로 변화시키는 비전을 품고 일어섭시다. 이 지역에 희망을 주고, 청주를 변화시키는 능력있는 교회로 만들어 봅시다.
그 출발은 내가 어디서부터 첫 사랑을 잃어버렸는지 깊이 생각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자복하고 회개하는 것입니다. 그리고 첫 사랑의 순수함과 열정을 회복하는 것입니다. 그곳에 생명나무의 열매를 먹게 하시는 놀라운 축복이 우리 모두에게 임하게 될 줄로 믿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주님을 향한 첫사랑을 회복함으로, 주님의 기쁨이 됨으로, 여러분의 삶과 가정, 더 나아가 우리 효성선교교회의 지경이 넓어지는 축복이 속히 임하게 되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사랑의 주님!
건강한 교회의 출발은 바로 첫 사랑의 기쁨과 감격을 회복하는 것임을 깨달았습니다.
그러나 점점 우리의 마음이 주님을 향한 애틋함으로부터 멀어지는 것을 느낍니다.
가장 가까이에 있는 사랑해야 할 사람조차 사랑하지 못할 때가 있습니다.
주님 우리의 연약함을 용서해 주세요.
우리의 부족한 모습 그대로 사랑해 주신 주님,
우리도 있는 모습 그대로 서로를 사랑하며 살아갈 수 있도록 사랑의 마음을 부어주세요.
우리 모두 건강한 성전으로 세워지게 하시고, 주님의 사랑을 널리 전하는 전도자자 되게 해 주세요.
언제나 사랑으로 품어주시는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