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께서 나를 아시나이다(시 139:1-14)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가을빛으로 물들기 시작한 황금 들녘을 보게 되는 계절, 간접적으로, 코스모스가 핀 들녘의 사진들을 볼 때마다, 직접 가서 그 아름다운 꽃들을 직접 보고 싶다는 그런 생각이 드는 계절이라고 생각했는데, 가을은 사라지고, 겨울이 다가와 버렸습니다.
가을의 정취를 느끼기도 전에, 겨울의 추위를 맛보게 되었습니다.
예수님께서 “오늘 있다가 내일 아궁이에 던져지는 들풀도 하나님이 이렇게 입히시거든 하물며 너희일까 보냐 믿음이 작은 자들아 그러므로 염려하여 이르기를 무엇을 먹을까 무엇을 마실까 무엇을 입을까 하지 말라 이는 다 이방인들이 구하는 것이라 너희 하늘 아버지께서 이 모든 것이 너희에게 있어야 할 줄을 아시느니라”(마 6:30-32)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는 아름답게 핀 꽃들보다도 더 소중하고 아름다운 존재입니다.
하나님의 세밀한 손길로 아름답게 다듬어져 가는 귀하고 복된 존재입니다.
여러분! 시편 139편을 보면, 다윗은 하나님을 향하여, 매 구절마다 “하나님께서 나를 살피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 하나님께서 나를 감찰하신다.”라고 고백합니다. 바로 이것이 다윗의 신앙이고, 이것이 다윗 인생을 지탱하고, 힘을 주었던 하나님의 모습입니다. 또한, 이것이 오늘, 힘들고, 어려운 이 시대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의 신앙의 고백이어야 합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어떤 하나님이십니까?
나를 아시는 하나님이십니다. 나를 살피시고 돌보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은 나의 일상생활의 모든 것을 다 아시는 분이십니다.
1-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여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 주께서 내가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시오며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 보셨으므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시오니” 아멘.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것을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겉모습만을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속마음도 잘 알고 계십니다. 겉으로 드러난 행동에 대해서만 아시는 것이 아니라, 우리의 감추어진 내면에 대해서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다윗은 “주께서 나를 살펴 보셨으므로 나를 아시나이다”라고 말했습니다.
주님은 우리를 살펴보셨습니다. 지금도 우리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주님은 우리에게 무관심하지 않으십니다. 멀리 계시지 않습니다. 숨어 계시지 않습니다.
주님은 늘 우리 가까이에서, 우리에게 관심을 쏟고 계십니다. 우리를 살펴보고 계십니다. 바로 우리 곁에 계십니다.
“열 길 물 속은 알아도, 한 길 사람 속은 알 수 없다.”고 하는 속담이 있습니다.
사실 우리는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알 수 없습니다. 물론, 내 마음 속도 내가 잘 모를 때도 있습니다.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하는 그런 마음이 들 때도 있습니다. 갈팡질팡할 때가 있습니다.
다른 사람의 마음 속을 알지 못하기에, 그 사람의 마음을 잘 이해해 주지 못할 때도 있습니다. 그래서, 피차 오해하기도 하고, 섭섭해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우리 주님께서는 우리 마음과 생각을 우리 자신이 아는 것보다 더 잘 아십니다. 주님은 나를 나보다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 누구보다도 나를 더 잘 알고 계십니다.
그렇습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앉고 일어섬을 아시고, 멀리서도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나의 모든 길과 내가 눕는 것을 살펴보고 계심으로, 나의 모든 행위를 익히 아십니다. 주님께서는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십니다.
주님께서 나의 생각을 밝히 아신다는 것은 나의 속 마음을 훤히 알고 계신다는 것입니다. 주님께서 나의 중심을 보신다는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끝으로 형제들아 무엇에든지 참되며 무엇에든지 경건하며 무엇에든지 옳으며 무엇에든지 정결하며 무엇에든지 사랑 받을 만하며 무엇에든지 칭찬 받을 만하며 무슨 덕이 있든지 무슨 기림이 있든지 이것들을 생각하라 너희는 내게 배우고 받고 듣고 본 바를 행하라 그리하면 평강의 하나님이 너희와 함께 계시리라”(빌 4:8-9)라고 말했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의 중심을 보고 계시기에, 우리는 참되고 경건한 생각을 해야 합니다. 깨끗하고 거룩한 마음을 품어야 합니다.
우리에게 주어진 삶을 살면서, 이 세상에 살면서, 필요한 것들을 추구하면서 살아야 하겠지만, 세상적이고, 물질적이고, 향락적인 것에 흠뻑 취해 사는 것이 아니라, 때로는 잠시 멈추어 서서, 하나님을 깊이 생각할 줄 아는 시간을 가져야 할 것입니다.
우리의 생각이 올바를 때, 우리는 올바른 길을 가게 될 것입니다.
사도 바울은 “육신을 따르는 자는 육신의 일을, 영을 따르는 자는 영의 일을 생각하나니 육신의 생각은 사망이요 영의 생각은 생명과 평안이니라”(롬 8:5-6)라고 말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사망’을 추구하지 않습니다. 죽음을 원하지 않습니다. 죽음과는 멀리 하기를 원합니다. 어떻게 해서라도, 죽지 않기 위하여, 몸부림치면서, 살아갑니다. 잘 먹고 잘 살기 위하여, 살아갑니다. 그러나, 그들이 가는 길의 끝에는 죽음이 그들을 기다리고 있습니다. 죽지 않기 위하여 사는 길이, 죽음으로 달려가는 길이라고 하는 사실을 알지 못한 채, 살아갑니다.
하나님을 믿고 따라가는, 지금 우리가 가고 있는 이 길은 죽음의 길이 아니라, 생명의 길입니다. 영원한 생명을 추구하는 길입니다. 하나님 나라에 가는 길입니다.
가을은 코스모스, 해바라기, 국화, 들꽃 등, 아름다운 꽃들이 피는 계절이기도 하지만, 열매 맺는 계절이라는 것을 알아야 합니다.
며칠 전, 감나무에 주렁주렁 달려 있는 감들을 보면서, “좋다”라는 생각을 했습니다.
여러분! 세상 사람들도 “열매”를 얻기 위하여, 살아가고 있음을 부인할 수 없습니다. 뭔가를 얻고자, 밤을 새우며, 시간을 아껴가며, 주어진 삶에 최선을 다하고 있습니다. 대충 대충 사는 사람은 별로 없을 것입니다.
하나님을 믿는 우리는 영원한 것이 있음을 알기에, 이 세상적인 것을 추구하면서도, 영원한 것을 생각해야 합니다. 단지, 세상적이고, 육신적이고, 물질적인 것만이 전부라고 생각한다면, 잘못된 결과를 얻게 될 것입니다. 우리에게는 영원한 것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이 세상의 생명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이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우리에게 보이는 이 나라만 있는 것이 아니라, 영원한 생명의 나라, 아들의 나라가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보이는 육적인 것만 있는 것이 아니라, 보이지 않는 영적인 세상을 있음을 알아야 합니다. 그래야,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삶을 살 수 있습니다.
여러분! 다윗은 “여호와여 내 혀의 말을 알지 못하시는 것이 하나도 없으시니이다”(4절)라고 고백했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형편을 헤아리고, 파악하고 계십니다. 우리가 하나하나, 구체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우리의 모든 형편을 너무나도 잘 알고 계십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말도, 다 알아들으십니다. 왜 잠을 못 이루는지, 왜 뒤척거리는지, 왜 우는지, 왜 아파하는지를 다 아십니다. 직접적으로 말하지 않아도, 아십니다. 우리의 몸부림을 아십니다. 우리의 신음 소리를 알아 들으십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 기도해야 합니다.
누군가를 만나게 되면, 우리는 말을 하게 됩니다. 때로는 상대방의 말을 듣기도 하지만, 때로는 나의 속 마음을 털어놓기도 합니다. 이해해 주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나의 속마음을 털어놓지만, 털어놓고 나서, 후회하게 될 때도 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을 만나, 우리의 속마음을 털어놓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옹알이도 들어주시고, 우리의 작은 신음에도 응답하여 주십니다.
누군가, 나의 속마음을 들어주었을 때, 위로가 되기도 하고, 힘을 얻기도 하지 않습니까?
하나님 앞에 우리의 속마음을 가감없이, 털어놓을 때, 우리는 위로를 받을 수 있고, 힘을 얻을 수 있습니다.
다윗은 하나님 앞에 기도함으로, 위로와 힘을 얻었습니다. 그의 인생에, 칠흑같이 어두움의 때에, 그는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무엇을 어떻게 기도해야 할지도 잘 몰랐습니다. 하루도 눈물 없이는 지내기가 힘들었던 세월입니다. 원통하고, 분하기도 했고, 답답하고, 괴롭기도 했습니다. 그런 어렵고 힘든 때에, 다윗은 나를 살피시고, 나의 말을 들으시는 하나님께 기도로 나아갔던 것입니다.
하나님의 이름을 부르며, 하나님 앞으로 달려가, 때론 부르짖으며, 때론 조용히 하나님께 기도했습니다. 하나님은 다윗의 말, 다윗의 기도를 들으셨습니다.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다시 일으켜 세워주셨고, 힘을 주셨고,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나의 말을 아시고, 나의 기도를 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여러분!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들은 광야에서, 열두 지파의 대표를 뽑아, 가나안 땅을 탐지하게 했습니다. 그런데, 가나안을 정탐하고 돌아온 정탐꾼들의 보고가 달랐습니다. 특히, 열 지파의 대표들은 하나같이 부정적인 보고를 했습니다. 보고가 끝나자, 백성들은 아수라장이 되었습니다. 여호수아와 갈렙은 긍정적으로 보고하며, 백성들을 설득했지만, 그들의 마음은 진정되지 않았습니다. 그들은 하나님께 불평하기 시작했고, 지도자인 모세를 원망했습니다. “애굽의 매장지가 없어서, 광야에서, 우리를 죽게 하느냐”고 말했습니다. “도저히 들어가지도 못할 가나안으로 어떻게 들어가겠느냐? 다시 애굽으로 되돌아가자”라고 말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의 원망과 불평이 하늘에 사무칠 때, 하나님께서 그들에게, “너희 말이 내 귀에 들린 대로 내가 너희에게 행하리라”(민 14:28)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우리가 말한 대로, 우리에게 행하겠다고 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은 위로가 되는 귀한 말씀입니다. 하지만, 두렵고 떨리는 말이기도 합니다.
우리의 입에서 나온 말을 하나님께서 들으시고, 들은 그대로 행하겠다는 것입니다. 축복을 말하면, 축복을 주고, 만약, 저주를 말하면, 저주하겠다는 것입니다.
혀의 권세가 대단하다고 하는 것은 알아야 합니다. 때로는 살리기도 하지만, 때로는 죽이기도 합니다.
사도 바울은 “너희 말을 항상 은혜 가운데서 소금으로 맛을 냄과 같이 하라”(골 4:6)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될 수 있는 한, 우리의 입술에서, 원망과 불평의 말이 나오지 않도록 해야 할 것입니다. 저주의 말을 삼가야 할 것입니다. 가능한 한, 감사와 찬양의 언어가 터져 나와야 할 것입니다. 축복의 말이 흘러나와야 할 것입니다. 생명을 심는 말이 나올 때, 놀라운 일들이 일어나게 될 것입니다.
7-10절 말씀입니다.
“내가 주의 영을 떠나 어디로 가며 주의 앞에서 어디로 피하리이까 내가 하늘에 올라갈지라도 거기 계시며 스올에 내 자리를 펼지라도 거기 계시니이다 내가 새벽 날개를 치며 바다 끝에 가서 거주할지라도 거기서도 주의 손이 나를 인도하시며 주의 오른손이 나를 붙드시리이다” 아멘.
아브라함의 여종 하갈이 임신을 했습니다. 하갈은 자기의 임신함을 알고 그의 여주인인 사라를 멸시했습니다. 그후, 아브라함의 허락을 받고, 사라가 하갈을 학대하였더니, 하갈이 사라를 피하여, 광야로 도망하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사자가 하갈에게 나타나, “사라의 여종 하갈아 네가 어디서 왔으며 어디로 가느냐?”라고 물으셨습니다. 그리고, “네 여주인에게로 돌아가라. 네가 임신하였은즉 아들을 낳으리니 그 이름을 이스마엘이라 하라 이는 여호와께서 네 고통을 들으셨음이니라”고 말씀하셨습니다.
하갈은 “내가 어떻게 여기서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뵈었는고”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래서, 자기에게 나타난 하나님의 이름을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브엘라해로이)라고 불렀습니다.
하나님은 하갈의 형편도 살펴보셨습니다. 그가 비록 잘못했지만, 하나님은 그의 고통까지도 보듬어 주셨습니다.
여러분! 사람에게서 도망칠 수는 있지만, 하나님 앞에서는 도망칠 수도 없습니다.
하나님은 교회 안에만 계시는 분이 아닙니다. 교회 밖에도 계십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과 다윗에게만 나타나신 분이 아닙니다. 여주인 사라를 피하여 도망친 하갈에게도 나타나셨습니다.
하나님은 아브라함만 돌보시는 분이 아니라, 하갈의 고통도 살피시고 보듬어 주셨습니다.
찬송가 337장입니다.
1절: 내 모든 시험 무거운 짐을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근심에 싸인 날 돌아 보사 내 근심 모두 맡으시네
2절: 내 모든 괴롬 닥치는 환난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넓으신 사랑 베푸시네
3절: 내 짐이 점점 무거워질 때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주께서 친히 날 구해 주사 내 대신 짐을 져주시네
4절: 마음의 시험 무서운 죄를 주 예수 앞에 아뢰이면
예수는 나의 능력이 되사 세상을 이길 힘주시네
후렴: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견디다 못해 쓰러질 때
불쌍히 여겨 구원해 줄이 은혜의 주님 오직 예수
여러분! 살다 보면, 하나님을 믿는 우리들도, 실수할 수도 있고, 큰 죄를 범할 수도 있습니다. 우리의 행위가 완전하지가 못합니다. 실수하고, 잘못하고, 죄를 짓고, 하나님을 실망시킬 수 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을 아프게 할 수 있습니다. 그렇다 할지라도,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멀어져서는 안됩니다. 하나님으로부터 도망치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있는 그대로의 우리의 모습을 인정하고, 하나님께로 더 가까이 나아가야 합니다.
무거운 짐을 지고 갈 때에도, 혼자 끙끙거리며, 그 짐을 지려고 해서는 안됩니다.
하나님께 맡길 줄 알아야 합니다. 나의 연약함을 인정할 줄 알아야 합니다.
여러분! 주님은 우리를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를 붙들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우리의 가는 길에, 친히 앞서 인도하여 주시는 분이 바로 우리가 믿고 있는 하나님이십니다. “가”라고 말씀만 하시는 분이 아니라, “나를 따라 오라”고 말씀하여 주시고, 직접 우리 앞에서, 앞서 가시는 분이십니다.
주님만 의지하고 따라갈 때, 우리 앞에 놀라운 일들이 펼쳐지게 될 줄로 믿습니다.
23-24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나를 살피사 내 마음을 아시며 나를 시험하사 내 뜻을 아옵소서 내게 무슨 악한 행위가 있나 보시고 나를 영원한 길로 인도하소서” 아멘.
성경을 보면, 정말 다윗처럼, 신실한 사람이 없었습니다. 그는 자기에 대해 신실했고, 다른 사람에 대해서도 신실했습니다. 그는 나라가 어려울 때, 죽음을 각오하고 싸웠습니다. 비겁하고, 도망가거나, 움츠려 들지 않았습니다. 당시, 사울 왕이 번민하고, 고민하며, 심한 우울증으로, 육체의 고통을 받을 때, 가까이에서 가장 큰 도움을 준 사람이 바로 다윗입니다. 어쩌면, 사울에게 다윗은 은인이나 다름이 없었습니다. 나라가 위급할 때, 블레셋의 골리앗을 물리치기도 하지 않았습니까?
그런데, 사울은 은혜를 원수로 갚았습니다. 사울은 광기가 발동하여, 독을 품고, 온 병력을 동원하여, 다윗을 죽이려고, 덤벼들었습니다.
다윗은 도망자의 신세가 되었습니다. 너무도 아쉬웠고, 속상했습니다.
다윗은 사울에게 선한 행위를 한 것밖에는 없었습니다. 그러나, 그에게 돌아온 것은 고통과 시련이었습니다. 그때가 참 힘들었던 생애였습니다. 많이 울었고, 많이 힘들었습니다. 아무도 알아주지 않았고, 자기 편에는 아무도 없는 것 같았습니다. 그럴 때, 다윗이 발견한 하나님이 있었습니다. 바로 하나님이 나를 살핀다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나를 아시고, 나의 행위를 아시고, 나의 사정과 형편을 익히 아신다는 것입니다.
다윗은 이런 믿음을 가졌습니다. 하나님만이 나의 중심을 아신다는 믿음이, 고통과 시련의 때를 이기고 감당할 수 있는 위로요 힘이었습니다. 그 믿음으로 지금 다윗은 하나님께 고백하는 것입니다. 나를 진정 살피시는 하나님을 알게 된 것입니다.
여러분! 어렵고, 힘드십니까? 속상하고, 답답하십니까? 아무도, 나의 사정을 몰라주는 것 같아, 외롭고, 고독하십니까? 그럴 때마다, 나를 아시고, 나를 살피시는 하나님을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나의 형편과 행위를 아시고, 눈물과 고통을 아시고, 나의 억울함과 곤란함을 기억하십니다. 그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하나님을 찾고, 부르고, 맡기고 기도하면, 하나님이 위로하시고, 힘을 주십니다. 돌보아 주십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우리가 처한 형편을 잘 아시며, 그에 따르는 필요도 잘 알고 계십니다. 그러므로, 염려하고 낙심하기보다는 나의 모든 형편을 아시는 하나님께 나아가, 기도로 나의 모든 짐을 맡겨버려야 할 것입니다. 나의 삶을 책임져 달라고, 아예, 나를 맡겨야 합니다.
기도는 나를 하나님께 맡기는 통로입니다. 기도는 하나님 앞에 나아가는 길입니다.
여러분! 하나님께서 나 자신을 단 한 순간도 놓치지 않고 보시며, 나의 모든 생각과 말을 아시며, 나의 행동을 아신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하나님께서 나를 아신다는 것은 “주님께 가까이 다가오라”는 신호이며, “염려하지 말고 맡기라”는 뜻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주님께 다가가며, 자신을 맡기는 사람들에게는 힘과 복을 주십니다.
우리의 있는 모습 그대로를 주님 앞에 내려놓고, 주님의 돌보심 속에 힘을 얻어야 합니다.
여러분! 나를 아시는 하나님께 가까이 나아가, 모든 것을 맡김으로, 하나님께서 주시고자 예비해 놓으신 복을 풍성하게 받을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주여, 주님 앞에 왔사오니, 우리를 받아 주옵소서.
우리의 모든 형편을 아시오니, 우리에게 필요한 것들을 공급하여 주옵소서.
우리를 아시오니, 우리의 나아가는 길을 인도하여 주옵소서.
우리 한마음교회를 붙들어 주셔서, 든든히 서 가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