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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설교

놋뱀을 쳐다본 자는 살았습니다(민 21:4-9)-20100214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10.04.20|조회수605 목록 댓글 0

놋뱀을 쳐다본 자는 살았습니다(민 21:4-9)

 

옛날 어느 나라에 늘 불평이 많은 청년이 있었습니다. 늘 원망 불평이 많으니 되는 일이 없었습니다. 어느 날 임금을 찾아가 인생을 성공적으로 사는 법을 가르쳐 달라고 졸랐습니다.

왕은 잔에 포도주를 가득 부어 청년에게 주면서 말했습니다.

“이리 오너라, 내가 주는 포도주 잔을 들고 시내를 한 바퀴 돌아오면 성공비결을 가르쳐 주겠다. 단, 포도주를 한 방울이라도 엎지르면 네 목을 베어 버리겠다. 알겠느냐?”

그 청년은 성공의 비법을 알려다 죽게 생겼습니다. 그래도 청년은 땀을 뻘뻘 흘리며 시내를 한 바퀴 돌아왔습니다. 그러자 왕이 물었습니다.

“시내를 돌며 무엇을 보았느냐? 거리의 장사꾼들을 보았느냐? 혹시 술집에서 나오는 노래 소리를 들었느냐?”

청년이 대답했습니다. “그런 말씀 마세요. 저는 포도주 잔에 신경을 쓰느라 아무 것도 보고 듣지 못했습니다.”

그러자 왕이 말했습니다. “그래 바로 그것이 성공의 비결이다. 인생의 목표를 확고하게 세우고 일에 집중하면 주위의 유혹과 비난이 들리지 않을 것이고 그러면 성공할 것이다”

그렇습니다. 일 못하는 사람은 불평이 많습니다. 반대로 분명한 인생관을 갖고 일에 집중하는 사람은 불평할 틈이 없는 것입니다. 우리도 원망 불평하지 말고, 오직 주님에게만 집중하시기를 축원합니다.

 

오늘 본문의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나와 40여년을 광야에서 방황한 뒤 약속의 땅 가나안으로 가는 도중에 생겼던 일입니다. 그들은 에돔 땅을 통과해야 했지만 에돔 왕이 허락하지 않았습니다. 결국 에돔 땅을 돌아가게 되었습니다. 그때 이스라엘 백성은 물 한 모금 얻을 수 없는 삭막한 광야로 돌아가게 되자, 그만 마음이 상했습니다. 그래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기 시작했습니다.

여러분! 이스라엘 백성은 작은 어려움이 닥치자 이제까지 베풀어 주신 하나님 은혜를 다 잊고 하나님께 원망 불평만 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그 이스라엘 백성의 모습을 보고는 진노하셨습니다. 결국 하나님께서는 불 뱀을 보내셔서 원망 불평하던 자들을 물어 죽게 하셨습니다. 그러자 뒤늦게 죄를 뉘우친 이스라엘 백성은 모세를 찾아와 하나님 앞에 기도해 달라고 간청을 합니다. 매를 맞고서야 자신들이 잘못된 것을 깨달은 것입니다.

여러분! 지도자 모세는 하나님 앞에 중보기도 했고, 하나님께서는 불 뱀을 만들어 장대 위에 높이 매달라고 하셨습니다. 모세는 하나님의 말씀대로 즉시 놋으로 뱀을 만들어 장대에 높이 매달고 그 놋뱀을 쳐다본 자는 자는 살리라고 선포하였습니다. 그래서 모세의 말대로 장대에 달린 놋뱀을 바라본 사람은 생명을 구했습니다.

그러나 끝까지 원망·불평하며, 땅만 쳐다본 사람은 불 뱀에 물려 죽게 되었습니다.

 

여러분, 이 말씀이 오늘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입니까?

첫째, 원망과 불평은 반역 행위라는 것입니다.

하나님이 제일 싫어하는 것 중에 하나가 우상숭배요. 그에 못지않게 싫어하시는 것이 원망불평입니다.

민수기는 출애굽 한 이스라엘 백성들이 약속의 땅, 가나안을 향해 걸어가는 일종의 신앙행전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런 면에서 민수기는 오늘날 죄와 사망의 길에서 벗에나 천국을 향해 걸어가는 성도들의 신앙 이야기를 미리 보여주는 책이라고도 할 수 있습니다. 그런데 그 광야 길은 거의 불평과 반역의 이야기로 얼룩져 있음을 보게 됩니다.

여러분! 특별히 민수기를 읽다보면 10장 이후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불평과 원망으로 넘쳐나고 있는 것을 봅니다.

11장에는 하나님을 원망하다가 행진 후미에 큰 불이 떨어지는 사건이 나옵니다.

12장은 미리암이 지도자 모세를 비방하다가 나병환자가 되는 이야기 입니다.

13장, 14장에는 열 정탐꾼의 원망이 나옵니다. 16장에서는 고라 일당이 반역하다가 지진을 만나 땅속으로 빠져 몰사합니다. 20장에 가면 마실 물이 모자란다고 불평합니다.

오늘 본문 21장에는 이스라엘 백성이 길로 인하여 마음이 상했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예외없이 그들은 하나님과 모세를 향해 원망 불평합니다.

4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이 호르 산에서 출발하여 홍해 길을 따라 에돔 땅을 우회하려 하였다가 길로 말미암아 백성의 마음이 상하니라” 아멘.

가나안 땅으로 지름길을 가면 좋겠지만, 에돔 족속이 길을 막으므로 갈수 없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은 그들과 전쟁하는 것을 원치 않았습니다. 그들은 에서의 후손들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이스라엘 백성들은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합니다. 그런 경우 인내가 필요하고 기다리면 되는데, 이스라엘 백성들은 그것을 참지를 못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에게는 하나님 시간표가 있습니다. 그 시간표가 나의 시간표와 맞지 않는다고 불평하며 원망하면 안 됩니다. 그냥 기다려야 합니다. 그러나 사람들은 나의 시간표가 중요하고 급하다고 하나님을 향해 원망 불평합니다. 참 어리석은 것입니다.

내 생각과 하나님의 생각, 분명이 다릅니다. 내 때와 하나님의 때 분명히 다릅니다. 그러기에 하나님의 때, 하나님의 시간에 맞추어 살아가시기를 축원합니다.

내가 아무리 급하고 내가 보기에 지금이 하나님의 때라 할지라도 그것은 내 시간표입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시간표보다야 앞 설수 없는 것 아닙니까? 하나님의 시간표를 이해하고 하나님의 때를 바라보시기를 축원합니다.

 

하나님에게는 시간표가 있는데, 그 시간표는 인내와 기다림으로 가득합니다.

믿음의 조상 아브라함을 보세요. 그를 갈대아 우르에서 불러내시면서 약속을 하신 하나님은 25년 후에 그 약속이 이루어지게 하십니다. 또 모세를 보세요.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에서 노예생활로 고생할 때 하나님은 그들의 부르짖음을 들으시고 일을 시작하셨습니다. 그리고는 모세가 태어나게 하고는 바로 왕궁에 들여보내 40년 동안 자라게 하십니다. 그리고 다 된 줄 알았는데 또 광야에 내보내어 40년을 지나게 하십니다. 모두 80년입니다. 그 후 이스라엘을 구원하는 일을 하십니다.

 

그러니 하나님의 시간표에는 급한 것이 없습니다. 그러니 인내, 기다림이 아주 중요합니다.

오늘 본문에서도 이스라엘 백성을 향한 하나님의 시간표는 참으로 무섭습니다.

민수기 14:34절을 보면, “너희는 그 땅을 정탐한 날 수인 사십 일의 하루를 일 년으로 쳐서 그 사십 년간 너희의 죄악을 담당할지니 너희는 그제서야 내가 싫어하면 어떻게 되는지를 알리라 하셨다 하라”고 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이 40일 동안 정탐한 땅에 못 들어가겠다고 원망 불평하니까, 1일을 1년으로 환산하여 40년을 광야에서 떠돌게 하셨습니다. 그러니 원망불평이 얼마나 무서운 행위인가를 아셔야 합니다. 받은 은혜가 크고 놀라운데, 그것은 다 잊고 원망불평만 가득하니 그게 배은망덕이고 반역 행위인 것입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엄청난 은혜를 잊어버리고 순간순간 원망불평에 사로잡혀 있기보다는 늘 감사하며, 찬양하는 은혜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둘째, 원망과 불평은 무서운 심판을 초래한다는 것입니다.

오늘 본문에 원망과 불평의 결과가 어떻게 되었습니까? 5-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이 하나님과 모세를 향하여 원망하되 어찌하여 우리를 애굽에서 인도해 내어 이 광야에서 죽게 하는가 이 곳에는 먹을 것도 없고 물도 없도다 우리 마음이 이 하찮은 음식을 싫어하노라 하매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 아멘.

노예생활에서 해방시켜 주신 하나님을 향해 자기들을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원망합니다. 기가 막힌 일입니다. 그리고 40년간 얻어먹은 만나를 하찮은 음식이라 합니다. 결국 어떻게 되었습니까?

 

6절 말씀을 보면, “여호와께서 불뱀들을 백성 중에 보내어 백성을 물게 하시므로 이스라엘 백성 중에 죽은 자가 많은지라”고 했습니다.

무슨 말씀입니까? 죽겠다고 원망하던 그들을 불뱀에 물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죽겠다, 죽겠다, 하니 뱀에 물려 죽게 하신 것입니다.

여기 불뱀들은 이스라엘 백성이 지나던 아라바 광야 지역에 많이 서식하던 독사입니다. 등에 불타는 듯한 붉은 반점이 있는 맹독성의 뱀을 불뱀이라 합니다. 또 이 뱀에 물리게 되면 그 강력한 독성으로 인해 즉시 온몸에 높은 열이 생기며 죽어가기 때문에 불뱀이라는 이름이 붙여졌습니다. 하나님은 이 불뱀을 보내어 물게 하신 것입니다. 동물까지도 주관하시는 분이 하나님이십니다.

광야에서 죽게 한다고 원망하던 그들, 그 말대로 되었습니다. 원망의 말이 씨가 되어 재앙의 열매를 맺었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러기에 성도는 어떤 경우에서도 원망이 아니라 감사의 말을 해야 합니다.

원망의 말은 재앙을 가져오지만 감사의 말은 행복을 가져다줍니다. 힘든 상황, 불평할 수밖에 없는 상황 속에서도 우리 믿는 자는 하나님의 섭리와 인도를 믿고 늘 감사하며 살아야 합니다.

왜 하나님은 원망과 불평을 이다지도 싫어하실까요? 원망불평은 하나님을 향한 불신앙이고 공동체에 치명적인 해가 되며, 개인의 심령을 낙담케 하는 무서운 독이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이 사람에게 주신 최고의 선물이 ‘말’(言)인 동시에 가장 무서운 독이 또한 ‘말’입니다.

 

그래서 야고보서 3:2절“우리가 다 실수가 많으니 만일 말에 실수가 없는 자라면 곧 온전한 사람이라”고 했습니다. 그러면서 말을 한번 잘못하면 “온 몸도 굴레 씌우리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기에 불신앙의 말을 버리고 믿음의 말을 합시다.

저주의 말을 버리고 축복의 말을 합시다. 부정적인 말을 버리고 긍정적인 말을 합시다. 절망의 말을 버리고 소망의 말을 합시다. 원망과 불평의 말을 버리고 감사의 말을 하는 여러분 되시기를 바랍니다.

 

셋째, 살기 위해서는 놋뱀을 바라보아야 한다는 것입니다.

불뱀으로 인한 그 죽음의 현장, 말로 표현할 수 없는 고통의 현장일 것입니다.

그 고통이 얼마나 무서웠으면 즉시 모세에게 달려와 죄를 범하였다고 자백하고 기도를 요청했겠습니까?

7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백성이 모세에게 이르러 말하되 우리가 여호와와 당신을 향하여 원망함으로 범죄하였사오니 여호와께 기도하여 이 뱀들을 우리에게서 떠나게 하소서 모세가 백성을 위하여 기도하매” 아멘.

그들은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고 작은 어려움에 원망불평 하였지만 불뱀의 공격 앞에서는 어쩔 도리 없이 두 손 바짝 들었던 것입니다. 이러한 모습이 인간적으로 보면 얄팍하고 염치없는 것처럼 보이지만, 그러나 하나님 앞에서는 무척이나 현명한 일입니다.

우리도 이 장면을 주목해야 합니다. 혹시 우리가 하나님께 잘못된 것이 있어서 하나님의 징계 속에 있다면, 그것을 깨닫는 즉시 속히 회개해야 합니다. 하나님께서 원하시는 바는 우리가 회개요, 하나님과의 관계를 회복하는 것이지, 결코 불뱀을 통하여 우리를 죽이시는 것이 아닙니다. 아멘.

그런데 그때 놋뱀을 바라보라는 모세의 소리를 들었을 때 그에 대한 사람들의 반응은 다양했을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웃기고 있네, 불뱀에 물려서 독으로 죽어가고 있는데 장대에 매달린 놋뱀을 쳐다본다고 사는가?” 하면서 자기 고집을 부리다가 죽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도저히 믿지 못한 사람들이 상당수가 되었을 것입니다.

또는 “딱히 방법이 없으니 한번 해 보기나 해 보자. 밑져봐야 본전 아닌가” 하면서 그곳까지 반신반의하며 가서 바라보고 치료함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런 반면에 “지금까지는 불평과 원망으로 하나님과 지도자 모세를 대적했지만 이제는 내 생각을 버리고 말씀대로 순종해 보자”는 마음으로 겸손히 나가서 치료함을 받은 사람도 있을 것입니다.

그러기에 믿음의 사람은 놋뱀을 쳐다보아야 합니다. 놋뱀을 바라보기만 하면 살았습니다. 왜 그러냐? 어떤 원리냐? 따질 필요가 없습니다. 그것은 하나님의 명령이고 순종을 보기 위한 요구였습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그렇다면 장대 위에 달린 놋뱀을 무엇을 상징합니까?

요한복음 3:14절“모세가 광야에서 뱀을 든 것 같이 인자도 들려야 하리니 이는 그를 믿는 자마다 영생을 얻게 하려 하심이니라”고 하였습니다.

여기서 인자는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합니다. 그러니까 이 놋뱀은 장차 오실 예수 그리스도를 예표하는 그림자입니다. 주님의 말씀으로 보면, 이 놋뱀은 우리의 죄를 위하여 십자가에 못 박혀 죽으신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누구든지 놋 뱀을 쳐다보는 자는 살 수 있었듯이 오늘날도 누구든지 십자가에 달리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믿는 자들에게는 죄 사함의 은총과 영원한 생명을 선물로 주시겠다고 말씀하셨습니다. 할렐루야!

또한 이 세상에서 어떠한 문제와 절망 가운데 빠져 있다 할지라도 예수 그리스도를 바라보면 살 수 있는 길을 찾게 될 것을 약속하셨습니다.

그렇다면 왜 그 예수 그리스도를 상징하는 것이 놋뱀일까요? 왜 많고 많은 짐승 중에 하필이면 백성들을 물어 죽인 불뱀을 놋으로 만든 뱀이었을까요?

여기에 중요한 은혜가 있습니다. 왜 이스라엘 백성이 불뱀에 물려 죽었나요? 이 불뱀은 하나님의 징계의 도구인 동시에 이스라엘의 실존을 상징하는 도구였습니다.

 

여기서 그 놋뱀이 달린 이유를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먼저는 이스라엘 백성들의 하는 짓이 꼭 뱀 같은 짓을 한 것입니다. 혀를 낼름 낼름하면서 한 입술로는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 같으나, 한편으로는 하나님의 은혜를 망각하게 하고 원망불평에 사로잡히게 한 것입니다. 그러니 하나님이 사자나 짐승 같은 무서운 짐승을 동원해 짓밟아 버린 것이 아니고, 뱀같이 무서운 존재를 보내어 백성들을 물어 죽게 하신 것입니다.

범죄의 심판도 밤같이 어느 날 갑자기 찾아오듯, 하나님의 심판도 이와 같이 임하는 것입니다.

또 하나는 십자가는 내가 죽어야 할 자리입니다. 그런데 나를 대신하여 예수 그리스도가 죽은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는 주님의 죄가 아닌 우리의 죄 값으로 세워진 것입니다.

그러기에 십자가에 달리신 분은 엄밀히 말하면 예수님이 아니라 곧 우리 자신입니다. 아멘.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주님을 보지 말고 거기에 달린 나를 보아야 합니다. 그러기에 모세가 매단 놋뱀은 십자가에 죽은 옛사람인 ‘나’로 보아야 합니다. 그래서 갈라디아서 2:20절“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리고 갈라디아서 5:24절에는 “그리스도 예수의 사람들은 육체와 함께 그 정욕과 탐심을 십자가에 못 박았느니라”고 하셨던 것입니다. 그러니까 놋뱀은 예수님을 말하기 보다는 늘 하나님 앞에 원망불평하며 하나님을 불신앙했던 사악한 나를 상징하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이 뱀의 특징을 열거 해 놓았습니다. 19가지가 있답니다. 그중에 몇 가지만 살펴보면, 뱀은 언제나 머리를 들고 다닙니다. 이처럼 사단은 교만합니다. 뱀은 순수한 색이 하나도 없습니다. 어느 뱀이든지 알록달록 합니다. 뱀은 차가운 냉혈동물입니다. 인정사정없습니다. 뱀은 음란한 동물입니다. 성욕의 심벌입니다. 뱀은 약한 것들을 공격하여 통째로 삼켜 배를 채웁니다.

이와 같은 속성이 다 우리 속에 있습니다. 이것을 다 죽여야 합니다. 십자가에 매달아야 합니다.

그러니 그 놋뱀 장대를 쳐다보는 사람은 옛사람인 자아가 죽고 이젠 주님이 사는 사람이 되었기에 그것을 쳐다본 사람은 살아난 것입니다. 할렐루야!

그러기에 우리는 ‘나’라는 존재는 이미 십자가에 못 박혀 죽었음을 선포하셔야 합니다.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런즉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오직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시는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사랑하사 나를 위하여 자기 자신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그렇습니다. 내가 나를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합니다.

내가 죽지 않음으로 문제가 생긴 것입니다. 가정의 갖가지 문제 원인은 나를 못 박지 못하였기에 생긴 것입니다. 죽여야 합니다. 꽝꽝 못 박아야 합니다. 그래서 주님이 친히 하신 말씀이 그것입니다.

누가복음 9:23절“아무든지 나를 따라오려거든 자기를 부인하고 날마다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를 것이니라”고 하셨습니다.

날마다 제 십자가를 져야 합니다. 여기서 자기를 부인하는 것은 바로 나를 십자가에 매다는 것입니다. 그리고 나의 주인이 내가 아니고 주님임을 선포하여야 하는 것입니다. 정권교체를 해야 합니다.

다시 말하자면 놋뱀은 나를 대신해서 죄인으로 죽으신 예수님도 상징하지만 늘 무서운 독을 내뿜고 남에게 수많은 아픔과 상처를 주었던 나를 의미하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그 옛사람, 그 못된 자아를 매달고 주님을 향해, 주의 종을 향해 다시는 원망불평하지 말고 감사와 기쁨으로 순종하시기를 축원합니다.

나를 사랑해 무거운 십자가를 지신 예수님을 바라보세요.

그러면 문제는 해결됩니다. 십자가가 모든 문제의 열쇠입니다.

그리고 뱀같이 사람에게 상처와 고통을 주었던 나를, 그 옛 자아가 매달아야만 주님이 일하시는 것입니다.

그러기에 우리는 십자가를 볼 때마다 나를 위해 죽으신 주님도 봐야 하지만 내 옛 사람도 보아야 합니다. 그것이 하나님의 치유와 회복을 누리게 하는 열쇠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날마다 자기 자신을 부인하고 십자가를 바라보고 온전히 주님을 따라감으로 생명의 삶, 축복의 삶, 은혜의 삶, 승리의 삶을 살아갈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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