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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일낮 설교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사 43:18-21) - 20260607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26.06.10|조회수75 목록 댓글 0

광야에 길을 내시는 하나님(43:18-21)

할렐루야! 주님의 이름으로 축복합니다.

 

6월의 첫째 주일입니다. 새해를 시작한 것이 엊그제 같은데, 벌써 다섯 달이 지나고, 여섯 번째 달에 들어섰습니다. 어느덧 한 해의 절반을 향해 달려가고 있습니다.

우리는 지난 5개월을 달려오며, 때로는 기쁨의 열매를 맺기도 했지만, 때로는 실패와 좌절, 그리고, 막막한 광야와 메마른 사막과 같은 시간을 통과하기도 했습니다. 지난 시간을 돌아보면, 감사도 있지만, 아쉬움도 있습니다. 기도보다 걱정이 많았던 시간도 있었고, 믿음보다 두려움이 앞섰던 순간도 있었습니다.

 

인생을 오래 살아갈수록, 한 가지 사실을 깨닫게 됩니다. 세월은 흘러가지만, 상처는 쉽게 흘러가지 않고, 시간은 지나가지만, 후회는 마음속에 남아 있다는 것입니다.

어떤 사람은 지나간 영광에 붙들려 살아가고, 어떤 사람은 지나간 실패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하나님께서는 오늘, 우리를 과거라는 무덤에서 불러내어, 미래라는 은혜의 들판으로 인도하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도 살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믿음은 어제를 그리워하는 향수가 아니라, 오늘도 일하시는 하나님을 바라보고 따라가는 것입니다.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놀라운 약속을 주십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우리에게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라고 약속하신 하나님은 어떤 분일까요?

첫째, 하나님은 과거보다 크신 분이십니다.

18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

 

어제는 66일 현충일이었고, 25일은 우리나라에 씻을 수 없는 아픔을 가져다준 6·25전쟁일입니다. 대한민국 사람이라고 한다면, 항상 기억해야 하고, 절대 잊어서는 안되는 날들입니다. 역사를 기억하는 민족만이 미래를 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출애굽 사건을 결코 잊어서는 안 되었습니다. 홍해를 가르시고, 하늘에서 만나와 메추라기를 내리시고, 반석에서 물을 내신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해야 했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왜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라고 말씀하셨을까요?

 

칼빈은 이 말씀에 대해, “과거의 은혜가 현재 하나님의 역사를 제한하는 기준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하나님은 출애굽보다 더 크신 일을 행하실 수 있으며, 인간은 그 하나님의 손을, 과거라는 틀 안에 묶어 두려는 오류를 범해서는 안된다.라고 설명했습니다.

 

이전 일을 기억하지 말며 옛날 일을 생각하지 말라는 말을 잘못 이해하면 안됩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베풀어 주신 과거의 은혜를 잊어버리라는 뜻이 아니라, 오히려, 끊임없이, 하나님의 은혜를 기억하라는 뜻입니다.

과거에 매여 있지 말라. 과거의 성공이나 실패에 얽매여, 하나님의 새로운 일하심을 보지 못하는 눈먼 신앙을 버리라.”는 의미입니다.

과거의 영광에 취해, 현재의 하나님을 놓치거나, 과거의 상처와 실패에 묶여, 미래를 포기하는 것, 그 모두를 경고합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늘 말했습니다.

옛날이 좋았지”, “모세 때가 좋았지”, “출애굽 때가 좋았지

그들은 출애굽의 영광을 기억하며 살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내가 과거에 행한 일보다 더 큰 일을 행할 것이다.”고 말씀하십니다.

실제로 오늘 읽은 이 말씀은 이스라엘 백성들이 바벨론으로 끌려가, 고달픈 포로 생활을 하던 중에 주어진 말씀입니다. 바벨론에 의하여, 나라가 멸망했습니다. 예루살렘 성전도 무너졌습니다. 소망도 사라졌습니다. 그들은 모든 것들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끝났다고 생각하는 바로 그 자리에서, 새로운 역사를 준비하고 계셨습니다.

 

이스라엘이 홍해 앞에서, 진퇴양난에 빠졌을 때, 그들은 막다른 길이라 생각했지만, 하나님께서는 그곳을 새로운 길의 시작점으로 삼으셨습니다.

 

우리의 문제도 같습니다. 많은 성도들이 두 가지 과거에 붙들려 살아갑니다.

첫 번째는 성공의 과거입니다.

그때는 잘 나갔는데”, “그때는 건강했는데

과거의 영광에 머물러 있으면, 현재의 은혜를 놓치게 됩니다.

두 번째는 실패의 과거입니다.

그때 내가 잘못했어”, “그 상처 때문에 지금도 힘들어”, “나는 이미 늦었어

 

우리는 과거의 성공에 취해 안주하거나, 과거의 실패와 상처에 매여, 오늘을 포기하지 않아야 합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새로운 일을 행하려 하시는데, 우리가 낡은 과거의 기억에 사로잡혀 있으면, 하나님의 은혜를 받을 수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은 어제 역사하셨던 분이 아니라, 오늘도 역사하시는 분이십니다. 하나님은 과거의 기념비 속에 갇혀 계시는 분이 아니라, 끊임없이 새로운 은혜를 베풀어 주시는 분이십니다.

 

과거의 영광을 가슴에 품고 사는 사람은, 마치 지난해의 달력을 보며, 오늘의 날씨를 예측하려는 사람과 같다고 할 수 있습니다.

우리의 과거가 우리의 미래를 결정하지 않습니다.

뒤에 있는 것은 잊어버리고 앞에 있는 것을 잡으려고 푯대를 향하여 달려간다.”(3:13-14)라고 말했던 바울처럼, 우리는 성공했든, 아니면, 실패했든간에 상관없이, 과거에 매여 있는 삶이 아니라, 앞을 향하여 달려가야 합니다.

과거의 영광도, 과거의 실패도, 하나님의 새로운 시작을 막을 수 없습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저 멀리 흘러가 버린 과거형이 아니라, 지금도 흐르고 있는 현재진행형입니다. 하나님의 은혜는 지금도 역사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은 과거에,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어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지금도 우리에게 은혜를 베풀고 계심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둘째,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시는 분이십니다.

19절 말씀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 반드시 내가 광야에 길을 사막에 강을 내리니

 

광야는 어떤 곳입니까? 길이 없습니다. 아무리 길을 잘 찾는 사람이라고 할지라도, 광야 한가운데서는 방향을 잃어버립니다. 길이 없기 때문입니다. 광야는 낮에는 뜨겁고, 밤에는 춥습니다. 생존 자체가 어려운 곳입니다. 광야는 인간의 한계가 드러나는 장소입니다. 광야는 자존심이 무너지는 곳이요, 내 힘으로 살 수 없음을 배우는 학교입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백성은 광야에서 수없이 길을 잃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구름기둥과 불기둥으로 그들을 인도하셨습니다. 하나님은 그들을 길이 있는 곳으로 안내한 것이 아니라, 길이 없는 곳에서, 길을 새롭게 만들어 주셨습니다.

 

오늘 우리도 그렇습니다. 어떤 문제는 스스로 노력하면, 저절로 해결됩니다. 그러나, 어떤 문제는 인간의 힘으로는 답이 없습니다. 돈이 있어도, 경험이 풍부하여도, 인맥이 많아도 해결하지 못하는 문제들이 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여 주십니다.

내가 길을 만들겠다.”

인간은 길을 찾지만, 하나님은 길을 만들어 주십니다.

 

출애굽한 이스라엘 앞에는 홍해가 버티고 있었고, 뒤에는 애굽 군대가 쫓아오고 있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벼랑 끝에 서 있다고 생각했습니다. 길이 없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홍해 한가운데 길을 내셨습니다. 사람이 보기에는 막다른 길이었지만, 하나님이 보시기에는 시작점이었습니다.

 

우리 삶에도 홍해 같은 문제가 있습니다. 그러나, 믿음은 바다가 갈라진 뒤에 건너는 것이 아니라, 바다가 갈라질 것을 믿고 기다리는 것입니다. 홍해 앞에 선 이스라엘은 바다가 갈라질 것을 전혀 상상하지 못했습니다. 믿음은 하나님의 방법을 이해하는 것이 아닙니다. 방법은 몰라도 하나님을 알기에 기다리는 것이 믿음입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만 내시는 분이 아닙니다. 하나님은 내가 사막에 강을 내리라고 말씀하셨습니다. 광야에 길이 없다면, 사막은 물이 없습니다. 물이 없으면, 생명도 없습니다. 그래서, 성경은 종종 메마른 영혼을 사막으로 표현합니다.

 

겉으로는 웃고 있지만, 속은 말라 있습니다. 직장은 다니고 있지만, 기쁨은 없습니다. 기도는 하지만, 응답의 확신이 없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성령의 강물을 부어 주십니다.

 

갈멜산에서, 엘리야 선지자는 바알과 아세라 선지자 850명과의 영적 전쟁에서 승리한 후, “내가 가만히 놔두지 않겠다고 하는 이세벨의 말을 전해 듣고 도망쳤습니다. 그리고, 로뎀나무 아래에서 죽기를 구했습니다. 어찌 보면, 엘리야는 영적으로나 육적으로, 완전히 탈진한 상태였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셨습니다. 하나님은 까마귀를 통하여, 탈진한 엘리야에게, 떡을 주시고, 잠을 재우셨습니다. 그리고, 다시 일으키셨습니다.

하나님은 지친 엘리야를 책망하지 않으시고, 오히려 회복시켜 주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 안에 강물을 흘려보내십니다. 성령님께서 우리 마음에 임하시면, 놀라운 변화가 일어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그대로인데, 지쳐 있는 마음은 살아납니다. 우리를 힘들게 하는 문제는 그대로인데, 소망이 생기고, 평안이 찾아옵니다.

 

인간의 눈으로 볼 때, 광야는 길이 없는 곳이고, 사막은 물이 없는 죽음의 땅입니다. 그러나, 우리 하나님은 그곳을 이 흐르는 생명의 장소로 바꾸시는 분이십니다.

 

광야에 길을 내신다는 것은 도무지 해결 기미가 보이지 않는 우리의 막막한 현실에, 하나님께서 친히 길을 만들어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가 찾지 못한 출구를 하나님은 준비하고 계십니다.

 

사막에 강을 내신다는 것은 은혜가 메마르고, 기쁨이 사라진 우리의 심령에, 성령의 생수를 공급하여 주신다는 것을 의미합니다. 우리를 둘러싸고 있는 환경은 전혀 변하지 않았어도, 생명의 물을 마시면, 우리는 그곳에서 다시 살아갈 힘을 얻게 됩니다.

 

홍해 앞에서 이스라엘은 모든 것이 다 끝났다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은 바다 가운데, 길을 만드셨습니다.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길이 있는 곳으로 인도하시는 분이 아니라, “길이 없는 곳에, 길을 만드시는 분입니다.

 

영국의 선교사였던 데이비드 리빙스턴은 아프리카 정글을 탐험하다가, 길을 잃은 적이 있었습니다. 그때 동행하던 사람들이, “길을 찾을 수 없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러자, 그는 우리는 길을 찾으러 온 것이 아니라, 길을 만들러 왔습니다.”고 말했습니다.

그 말은 인간의 도전 정신이기도 하지만, 사실 신앙인의 삶을 보여줍니다. 왜냐하면, 하나님께서 이미 앞서 가시며, 길을 만들고 계시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 이제 나타낼 것이라 너희가 그것을 알지 못하겠느냐말씀하십니다.

하나님은 지금도 우리 삶의 현장에서 창조적인 역사를 계속하고 계십니다. 다만, 우리는 광야와 같고, 사막과 같은 눈앞의 환경만 바라보고, 낙심하고 좌절할 때가 많습니다. 그러나, 믿음이란 환경을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그 환경을 다스리시는 하나님을 바라보는 것입니다.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니라는 하나님의 말씀을 믿고, “이제 나타낼 것이라는 말씀대로, 하나님의 약속이 곧 이루어질 것을 기대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왜 이렇게까지, 광야에 길을 내시며, 사막에 강을 내십니까?

21절에 그 해답이 있습니다.

오늘 말씀의 결론입니다.

이 백성은 내가 나를 위하여 지었나니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하나님께서 우리를 구원하시고, 인도하시고, 돌보시는 목적은 단순히 광야와 사막과 같은 이 험하고 거친 세상에서, 고생을 면하여, 편안하게 살게 하려는 것만이 아닙니다.

나를 찬송하게 하려 함이니라

우리를 통해 하나님의 영광이 드러나게 하시기 위함입니다. 광야의 끝에서,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노래하게 되고, 사막의 끝에서, ‘강물을 내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게 됩니다.

 

오스왈드 스미스는 내 생애에서 가장 깊은 찬양은 가장 어두운 밤을 지나온 뒤에 나왔다. 광야를 지나지 않고 나온 찬양은 피상적이다. 광야를 통과한 자만이 광야에서 역사하신 하나님을 찬양할 수 있다.”고 고백했습니다.

 

스펄전은 하나님께서 성도에게 광야와 사막과 같은 시련을 허락하시는 이유는 그 시련을 통해 찬송을 만들어 내시기 때문이다.”고 말했습니다.

그렇습니다. 우리의 눈물은 찬양의 가사가 되고, 우리의 아픔은 간증의 내용이 됩니다. 하나님은 시련을 통해, 우리의 삶을 하나님의 영광을 선포하는 거룩한 무대로 변화시키십니다.

그러므로, 광야의 길을 걷고 있다면, 곧 열리게 될 새 길을 기대하십시오.

사막을 걷고 있다면, 곧 흐르게 될 생명의 강물을 기대하십시오.

 

 

여러분, 오늘, 하나님은 우리에게 말씀하십니다.

과거에 매여 있지 말라.”, “보라 내가 새 일을 행하리라.”

 

혹시, 지금 광야에 계십니까? 길이 보이지 않습니까? 하나님은 길을 만들고 계십니다.

혹시, 지금 사막에 계십니까? 은혜가 메말라 있습니까? 하나님은 강물을 준비하고 계십니다.

 

지금은 보이지 않아도, 지금은 들리지 않아도, 지금은 느껴지지 않아도, 하나님의 역사는 이미 시작되고 있습니다. 우리 하나님은 어제 역사하셨던 하나님이 아니라, 오늘도 역사하시는 하나님이십니다. 그러므로, 낙심하지 마십시오.

하나님은 우리를 위하여, 지금도 광야에 길을 만들고 계십니다.

지금도 사막에 강을 흘려보내고 계십니다.

지금도 새 일을 시작하고 계십니다.

문제는 하나님이 일하시는가가 아니라, 우리가 그것을 믿음의 눈으로 바라보는가입니다.

 

이번 한 주간 어떤 상황을 만나든지, 이렇게 고백할 수 있기를 바랍니다.

하나님은 광야에 길을 내신다.”, “하나님은 사막에 강을 내신다.”, “하나님은 지금도 내 삶에 새 일을 행하고 계신다.”

 

여러분! 이 믿음의 고백이 우리의 가정과 일터와 자녀들의 삶 가운데, 살아 있는 간증이 되며, 하나님을 찬양하는 새 노래가 되며, 생명력이 넘치는 축복의 통로가 될 수 있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광야에 길을 내시며, 사막에 강물을 내시는 살아 계신 하나님 아버지,

오늘 주신 말씀을 통해, 지나간 과거의 상처와 실패에 묶여 있던 우리의 눈을 열어 주시니 감사드립니다.

6월의 새로운 시작 앞에 선 저희가, 이제는 뒤를 돌아보며 낙심하는 자가 아니라, 지금 광야와 같은 우리의 삶에, 친히 길을 만들고 계시는 하나님의 역사를 기대하는 믿음의 사람이 되기를 원합니다.

주님, 우리가 도무지 출구를 찾을 수 없는 막막한 벽 앞에 섰을 때, 오히려 그곳이 하나님의 새 일이 시작되는 은혜의 자리가 되게 하옵소서. 은혜가 메말라 갈급한 우리의 일터와 가정 위에, 성령의 생명수가 강물처럼 흘러 넘치게 하옵소서.

우리의 삶이 고난으로 끝나는 인생이 아니라, 그 고난을 뚫고, 길을 내시는 하나님을 노래하는 영광스러운 간증의 통로가 되게 하옵소서.

우리의 영원한 길과 생명이 되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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