축복의 사람, 이삭(창 26:12-22)
어느 시골에서 있었던 일입니다. 해산일이 다가온 산모가, 갑자기 급하고 너무 아파서, 교회 사모님을 불렀습니다. 사모님이 찬송을 불러야 하는데, 어느 찬송을 불러야 할지 캄캄했습니다. 아이 낳을 때 부르는 찬송으로 어떤 것이 있을까요? “에라 모르겠다” 눈을 감고 찬송가를 착 펼쳤는데, 544장입니다.
산모는 너무 아파서 그저 웁니다. 이때 사모님이 찬송을 부릅니다.
“울어도 못하네 눈물 많이 흘려도 겁을 없게 못하고”
그래서 산모는 “울어도 안 되면, 힘을 써야 하나” 하고 힘을 씁니다.
이때 또 “힘써도 못하네” 이렇게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아파도 참자하고, 이를 악물고 참았습니다.
그런데 이때 또 찬송이 “참아도 못하네” 합니다.
그러면 “어쩌란 말인가” 하고 괴로워하는데, “믿으면 하겠네 주 예수만 믿어서 그 은혜를 힙입고 오직 주께 나가면”라고 찬송했습니다. 그래서 ‘주여! 믿습니다.’ 하는 순간 아이가 ‘응애’ 하고 나왔다고 합니다.
믿음이 중요합니다. 모든 복은 믿을 때 얻어집니다. 믿는 대로 되어집니다.
하나님의 큰 약속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으면 이루어지지 않습니다.
하나님의 풍성한 약속이라 할지라도 믿지 않으면, 누릴 수 없습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약속이 이루어집니다.
믿으십시오. 하나님의 풍성한 축복을 누릴 수 있습니다.
오늘 본문을 보면, 하나님이 이삭을 축복하심으로 그해 농사를 지어 30배, 60배가 아닌 100배의 축복을 받은 것을 볼 수 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했고, 양과 소떼 등 많은 종들을 거느리게 되었습니다.
하나님의 마음은 우리에게 복을 주시고 싶어 하십니다. 이삭처럼 창대하고, 왕성한 복을 주시길 원하십니다.
그런데 왜 우리가 복을 받지 못하고 살아갈까요? 왜 다른 사람들이 부러워하는 풍성한 삶을 살지 못하는 것일까요? 왜 만족하지 못하고, 하루 하루 염려 속에 살아가는 것일까요?
그것은 우리가 복을 받을 만한 삶을 살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삭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번성의 복을 받았습니까?
축복의 사람 이삭은 좀 다른 삶을 살았습니다.
첫째, 축복의 사람 이삭은 순종의 삶을 살았습니다.
1-2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아브라함 때에 첫 흉년이 들었더니 그 땅에 또 흉년이 들매 이삭이 그랄로 가서 블레셋 왕 아비멜렉에게 이르렀더니 여호와께서 이삭에게 나타나 이르시되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아멘.
지난 번 태풍 콘파스의 영향력이 매우 컸다는 것을 심각하게 경험했습니다. 얼마 전, 동기들 모임에 참석하기 위하여, 동기 목사님들에게 전화를 했더니, 대부도 근처에서 목회하시는 목사님 교회의 지붕이 날아가 버렸다는 것입니다. 모임 장소에 갔더니, 아름드리 은행 나무가 여기 저기 부러져 있었습니다. 그리고 목요일에 충주를 다녀왔는데, 가는 도중에 보았는데, 길거리에서 과일을 파는 가게들이 대부분 문을 닫고 있었습니다. 명절이라 일년 중 가장 큰 대목인데, 팔 수 있는 과일들이 없어, 가게를 열 수가 없는 것이었습니다. 아는 과수원을 잠깐 들려 이야기를 나누었는데, 콘파스의 영향으로 과일들이 다 떨어져 버리고, 냉해를 입어 상품 가치가 없다는 것이었습니다. 상품 가치가 없는 것도, 주문이 들어와 택배차가 와서, 과일 박스들을 내 보내고 있었습니다.
가을 들녘에 누런 물결이 넘실거리고, 과일 나무마다 아름답고 먹음직한 열매들로 가득하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늘 풍년을 소원하지만, 뜻하지 않는 여러 가지 일로 인하여, 흉년을 경험할 때가 있습니다.
풍성할 때, 차고 넘칠 때,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습니다. 그런데, 흉년일 때, 먹을 것이 없을 때, 모든 것이 부족할 때, 정말 하나님을 잘 섬길 수 있을까요? 어려울 때 하나님을 섬길 수 있다는 것, 그것이 진짜 믿음입니다.
여러분! 이삭이 살고 있던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버티고 버티었지만, 이제 더 이상 버틸 수가 없었습니다.
“어디로 갈까? 어디로 가야 가족들을 굶기지 않고 먹여 살릴 수 있을까? 배부르게 하지 못할지라도 입에 풀칠을 할 수 있는 그런 곳은 어디 없을까?”
곰곰이 주변 나라들을 살펴 보았더니, 여기 저기 들려오는 소문에 귀를 기울여 보았더니, 애굽은 풍년이라는 소문이 들려왔습니다. 거기에는 먹을 것이 넘친다는 것이었습니다. 먹을 양식이 충분하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래서 이삭은 애굽에 가서 양식을 얻으려고 짐을 꾸렸습니다. 가족들과 함께 정든 고향을 뒤로 하고 떠났습니다. 애굽으로 가려고 ‘그랄’이라는 곳에 이르렀습니다. 그때 하나님의 말씀이 이삭에게 임했습니다.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지금 이삭이 머물러 있는 땅은 ‘그랄’입니다. ‘그랄’은 가나안 땅입니다. 그러나 조금만 더 가면 애굽입니다. 애굽은 먹을 양식이 풍성합니다. 부족함이 없습니다. 넉넉합니다. 사람들 얼굴에 웃음이 가득한 땅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멈춘 곳 ‘그랄’은 가나안 땅입니다. 흉년이 든 땅입니다. 먹을 양식이 부족합니다. 없습니다. 여기 저기 끼니 걱정을 하는 소리가 들려옵니다.
애굽을 향하여 전진해야 합니까? 멈추어야 합니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고 내가 네게 지시하는 땅에 거주하라”
하나님께서는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분명하게 말씀하십니다.
훗날, 사사들이 치리하던 때에, 가나안 땅에 흉년이 들었습니다. 유다 베들레헴에 살고 있던 엘리멜렉이라는 사람이 그의 아내 나오미와 두 아들 말론과 기룐을 데리고, 모압 지방으로 내려갔습니다. 흉년을 피하여, 양식이 풍부한 모압으로 내려갔습니다. 그리고 그곳에서 두 아들을 결혼시켰습니다. 처음에는 모든 것이 잘 되는 것처럼 보였지만, 십년 후엔, 그도 죽고, 그의 두 아들도 죽고 말았습니다. 모든 것을 다 잃고 난 후에, 나오미는 다시 가나안 땅에 돌아올 수밖에 없었습니다. 돌아온 다음엔 그의 삶이 살아나기 시작했습니다. 다시 회복되었습니다.
하나님의 약속의 땅을 떠나면 안됩니다. 언제나 하나님의 약속 가운데 있어야 합니다.
여러분! 왜 하나님은 이삭에게 애굽으로 내려가지 말라고 하셨을까요?
애굽은 풍성한 양식이 있는 곳입니다. 나일강이 있어서 흉년을 피할 수 있는 곳입니다. 그런데 애굽은 양식이 풍부한 나라이지만, 우상의 나라입니다. 죄악의 나라입니다. 믿음의 사람들이 살 땅이 아닙니다. 머물러 있을 땅이 못됩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막으신 것입니다. 그래서 애굽으로 가지 말라고 하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믿음의 사람은 아무리 굶어도, 아무리 살기 힘들고 어려워도, 애굽으로 내려가서는 안 됩니다. 애굽은 우상 숭배의 현장이요, 애굽은 유혹의 현장이요, 결국은 죄와 마귀에게 노예 된 세상이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이 약속의 땅 가나안은 현재 배고픈 땅인데, 이곳에 머물러 있으면, 하나님께서 무엇을 주십니까? 무슨 유익이 있단 말씀입니까?
3-4절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이 땅에 거류하면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고 내가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리라 내가 네 아버지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며 이 모든 땅을 네 자손에게 주리니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으리라” 아멘.
하나님은 이삭에게 무수히 많은 약속을 하고 계십니다. 구체적인 축복의 내용이 무엇입니까?
첫째, 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게 복을 주겠다. 둘째, 이 모든 땅을 너와 네 자손에게 주겠다. 셋째, 아브라함에게 맹세한 것을 이루어 네 자손을 하늘의 별과 같이 번성하게 하겠다. 넷째, 네 자손으로 말미암아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것이다.
생각하면 할수록, 얼마나 놀라운 축복의 말씀입니까?
하나님께서 나에게 복을 주고, 나의 자손들에게 모든 땅을 주고, 하늘의 별과 같이 나의 자손들을 번성하게 하고, 나의 자손들로 인하여 천하 만민이 복을 받을 수 있도록 해 주시겠다는 것입니다.
이와 같은 복을 받으려면, 어떻게 해야 합니까? 당연히 순종해야 합니다.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애굽에 내려가지 않고 가나안 땅 그랄에 머물렀습니다.
여러분! 믿음은 순종하는 것입니다.
우리가 어떤 사람을 볼 때에, 그 사람이 믿음이 있느냐 없느냐 하는 것을 순종하는 것으로 알 수 있습니다. 순종하는 사람은 믿음이 있는 것입니다. 믿음이 있기 때문에 순종하는 것입니다.
축복의 사람 이삭은 순종의 삶을 살았기에, 백배의 번성의 복을 받았습니다.
우리도 축복의 사람 이삭처럼 하나님 말씀에 무조건 순종해야 합니다. 어려워도, 하기 싫어도, 내 맘에 안 맞아도 순종해야 합니다. 그래야 이삭과 같이 축복의 사람, 번성의 사람이 되는 것입니다.
이삭이 어떤 삶을 살았기에 번성의 복을 받았습니까?
둘째, 축복의 사람 이삭은 양보의 삶을 살았습니다.
14-16절 말씀입니다. 함께 읽겠습니다.
“양과 소가 떼를 이루고 종이 심히 많으므로 블레셋 사람이 그를 시기하여 그 아버지 아브라함 때에 그 아버지의 종들이 판 모든 우물을 막고 흙으로 메웠더라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이르되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아멘.
축복의 사람, 이삭이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였습니다. 애굽으로 내려 가지 않고, 가나안 땅 그랄에 머물렀습니다. 아직도 흉년은 계속 되고 있지만,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그랄에 머문 이삭은, 약속의 말씀을 믿고, 믿음으로 메마른 들판에 씨앗을 뿌렸습니다. 그해 추수 때가 되었을 때, 놀라운 일이 일어났습니다. 생각지도 않게 수확을 거두게 되었는데, 평상시 풍년 때보다도 백배나 얻었습니다. 말씀에 순종한 이삭에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입니다. 이삭이 땀방울 흘려가며, 열심히 일한 결과이기도 하겠지만, 하나님께서 복을 주셨기 때문에 그런 놀라운 수확을 거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백 배의 수확을 거둔 이삭은, 가족들이 먹고 남는 양식을 시장에 갖다 팔았더니, 하루 아침에 아주 비싼 가격에 팔려 버렸습니다. 이삭은 창대하고 왕성하여 마침내 거부가 되었습니다. 하루 먹을 끼니를 걱정해야 했던 이삭이, 하루 아침에 천석지기, 만석지기가 되었습니다.
그러자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그를 시기했습니다. 자기들은 동일한 환경에서, 동일하게 일하였는데, 왜 이삭만 축복받느냐 하면서, 이삭을 시기했습니다. 여러 사람들이 힘을 합하여 이삭의 집에 와서는 그의 우물을 메워 버렸습니다. 광야에서 우물이 얼마나 중요합니까? 삶에 있어서 아주 중요한 것이 우물입니다. 그런데 그 우물을 막아 버렸습니다. 먹을 양식이 있어도, 먹을 물이 없으면 살아가기가 매우 힘듭니다. 그런데 주변에 있던 사람들이 시기하여 우물을 메워 버렸습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블레셋 사람 아비멜렉이 대표로 이삭에게 말했습니다.
“네가 우리보다 크게 강성한즉 우리를 떠나라”
“너 잘 먹고 잘 사는 것 꼴보기 싫으니 멀리 떠나라”
그랄 사람들은 이삭이 100배를 거두고, 부자가 되고, 창대하고, 왕성하고, 거부가 되는 꼴이 보기 싫었습니다. 그래서 시기와 질투를 하는 것입니다.
‘시기는 남의 일에 괜히 성내고 분개하는 것’입니다.
‘시기’의 뜻은 ‘시들다. 상하게 되다. 타락하다. 멸망하다’라는 뜻입니다. 시기와 질투가 넘치면, 자신의 영혼이 시들시들해 집니다. 그리고 심령이 상하게 됩니다. 그러다가 타락하고, 결국 멸망하게 됩니다.
잠언 14:30절에는 “평온한 마음은 육신의 생명이나 시기는 뼈를 썩게 하느니라”고 했습니다.
시기는 자기를 죽이는 것입니다. 시기하지 마십시오. 다른 사람이 잘 되는 것을 부러워하십시오. 그런데 부러움에 그치는 것이 아니라, 왜 잘 되었는가를 생각해 보고, 여러분도 잘 되는 길을 걸어가십시오.
한국 사람만 사촌이 땅을 사면 배가 아픈 것이 아니라 그랄 사람들도 배가 아팠습니다.
여러분의 마음속에 시기심 때문에 누구를 미워하는 사람이 있습니까?
다른 사람이 잘 되는 모습 때문에 배 아픈 사람이 있습니까?
여러분! 시기하지 맙시다. 질투하지 맙시다. 다른 사람이 잘 되면 축하해 줍시다. 그래야 내가 복을 받는 것입니다.
이삭이 잘 되는 것을 시기, 질투하여, 이삭의 우물을 메워 버린 그랄 사람들을 향하여, 이삭은 어떻게 반응했습니까? 똑같이 반응하면, 똑같은 사람이 됩니다. 이삭은 정면 대응을 피했습니다. 그 자리를 피했습니다. 양보했습니다.
우물을 메워버린 돌을 종들을 시켜 다 끄집어 낸 것이 아니라, 그 우물 곁을 떠났습니다.
왜 우물을 메워 버려겠습니까? 바로 그 우물 때문에 이삭이 잘 되었다고 생각한 것입니다. 메마른 광야에서, 물이 부족한 지역에서, 물이 풍부한 우물을 갖고 있는 이삭이 당연히 잘 될 수밖에 없다는 것입니다. 우물을 아예 사용하지 않으려고 메운 것이 아니라, 이삭을 쫓아버리고, 그 우물을 차지하고자 하는 것이었습니다. 그렇기에 우물을 메운 돌을 끄집어내고, 다시 우물을 살린다면, 큰 분쟁이 일어날 수밖에 없는 상황입니다. 그 모든 돌아가는 상황을 파악한 이삭은 정면대결을 하지 않고, 그 우물을 그대로 내버려 두고 다른 장소로 이동합니다. 그 우물을 포기합니다. 풍부한 물을 가지고 있는 우물을 포기합니다. 양보합니다. 다투지 않습니다. 그리고 나서 다른 장소로 이동하여,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그랬더니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들이 다시 쫓아와서 시비를 겁니다.
“이 우물은 우리 것이다”
그들의 말도 되지 않는 주장에 이삭은 정면대결하지 않습니다. 이삭은 다투지 않고 그곳을 떠났습니다. 다시 우물을 팝니다.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그들이 와서 또 시비를 겁니다. 이삭은 아무 말 하지 않고 그곳을 떠납니다. 그리고 다른 장소에 이동하여, 우물을 다시 팠습니다.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이삭이 우물을 파는 곳마다 물이 쏟아져 나옵니다. 시비를 걸어도 다투지 않으니까, 그들이 포기하고 맙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삭은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여 애굽으로 내려가지 않고, 그랄 땅에 머물렀습니다. 순종의 삶을 살기로 결단한 이삭에게 좋은 일만 일어나야 하는 것이 아닙니까? 그런데 계속 문제가 발생합니다. 어려움이 다가옵니다. 살고 있던 장소를 계속 빼앗깁니다. 힘들어 우물을 파 놓으면, 다른 사람들이 달려들어 빼앗아 버립니다. 양보하고, 또 양보하고, 그러면서 이 자리에서 저 곳으로, 저 곳에서 또 다른 곳으로 계속 장소를 옮겨갑니다. 가만히 한 곳에 머물러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우물도 있고, 농사도 잘 되고, 계속 그 곳에 머물러 있으면 얼마나 좋습니까? 그런데 여러 가지 어려움 때문에, 자꾸 이동하게 됩니다. 고생을 하게 됩니다. 순종의 삶을 살고자 했으면, 평안하게 살아야 하는데, 더욱더 힘든 삶을 살게 된 것입니다.
정말 그렇게 생각하십니까? 이삭의 고백을 한번 들어 보십시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22절)
이사를 자꾸 다니다보니까, 알게 모르게, 살림살이도 늘어나고, 평수도 늘어났다는 것입니다.
이사 다니는 것은 고생이었는데, 나중에 뒤돌아보니, 계속 평수를 늘리면서 이사를 다닌 것이었습니다.
다른 사람들의 시기와 질투로 살던 정든 땅을 버리고, 다른 곳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그곳에 까지 따라와 힘들게 하면, 또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갔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쉽게 올 수 없는 다른 지역으로 이사를 가다보니, 주변에는 아무도 살지 않는 것입니다. 멀리 멀리 이사를 했더니, 쉽게 따라오지도 못합니다.
엣날에는 말뚝만 박으면, 줄만 치면, 자기 땅이 되지 않았습니까? 이삭의 경우가 그렇습니다. 다른 사람들이 따라오지 않는 아주 먼 곳으로 이사를 갔더니, 바로 그곳이 이삭의 가족들이 살 수 있는 아주 넓은 땅이었습니다.
“이제는 여호와께서 우리를 위하여 넓게 하셨으니 이 땅에서 우리가 번성하리로다”
“지금껏 살아온 모든 것이 다 하나님의 은혜였습니다”
바로 이것이 이삭의 신앙고백이었습니다.
여러분! 이삭은 참을 줄도 알고, 기다릴 줄도 알고, 양보할 줄도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맞서면 싸워야 하고, 싸우면 득보다 실이 많기 때문에 양보한 것입니다. 양보해서 결과적으로 졌습니까? 이겼고 결국 번성의 복을 받았습니다.
훗날 아비멜렉이 이삭을 찾아옵니다. 군대장관까지 데리고 왔습니다.
“너희가 나를 미워하여 나에게 너희를 떠나게 하였거늘 어찌하여 내게 왔느냐”(27절)
아비멜렉이 이삭에게 말합니다.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우리 서로 맹세하여 계약을 맺자. 이제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은 자다”
이삭이 그들과 다투었다면, 그 다툼 가운데 누군가 승리했을 것이고, 그리고 그들은 완전히 갈라졌을 것입니다. 그런데 이삭이 다투지 않았더니, 훗날 아비멜렉이 직접 이삭을 찾아와, “여호와께서 너와 함께 계심을 우리가 분명히 보았다. 우리 서로 맹세하여 계약을 맺자. 서로 다투지 말자”고 먼저 제안을 합니다. 그러면서 던진 말이 “너는 여호와께 복을 받는 자다”라는 것이었습니다.
여러분! 복 받기를 원하십니까? 복의 근원은 하나님이십니다. 하나님이 주셔야 복을 받을 수 있습니다.
순종의 삶을 살 때, 양보의 삶을 살 때, 하나님께서 하늘 문을 열어, 복을 쏟아 부어 주실 줄 믿습니다.
포항제일교회 유금순 권사님의 이야기입니다.
아들 둘을 데리고 노점에서 생선 장사를 하였습니다. 어느 비 오는 날, 생선은 안 팔리고, 두 아들을 품에 안고 졸고 있는데, 선교사님이 권사님을 깨우면서, 생선을 자기에게 다 팔라고 했습니다.
“이 많은 생선을 가져다 뭐 할 것입니까?”
선교사님이 동전 두 개를 주면서, “애들 데리고 노점에서 고생하지 말고, 이 동전으로 가게 얻어 장사하라”고 했습니다.
집사님, 그때는 젊은 집사님이었지요. 동전 두 개를 가지고 목사님한테 갔습니다.
“목사님! 이 동전 가지고 교회 지으세요”
동전 두 개를 건축헌금으로 드렸습니다. 그때 집사님은 노점에서 생선을 팔지만, 늘 이런 마음의 소원이 있었습니다. “하나님! 나를 통해서 교회를 지으세요. 그렇게 축복해 주세요.”
집사님이 동전 두 개를 목사님에게 주면서, “교회 지으라”고 했다는 소리를 들은 장로님, 그리고 모든 교인들이 “교회는 우리가 지을 테니, 당신이나 잘 살아라”고 비웃었습니다.
어느 날, 목사님이 서울 갔다 올 일이 생겼는데, 문득 그 동전이 생각났습니다. 장롱 밑에 굴러다니는 동전을 찾아가지고, 인사동 골동품 가게에 가서, 그 동전을 보여 주었습니다. 그랬더니 주인이 반색을 하면서, 절을 합니다.
“우리 집에 오신 것을 감사합니다. 얼마 드리면 될까요? 1억이면 되겠습니까?”
값으로 환산할 수 없는 아주 귀중한 옛날 골동품이었습니다.
목사님이 1억을 받아 가지고 내려왔습니다. 옛날 시골 교회는 보통 벽돌로 짓지 않았습니까? 그 돈으로 2층짜리 교회를 짓고도 돈이 남았습니다. 목사님이 남은 돈을 가지고 집사님에게 갔습니다.
“선교사님이 그 돈으로 가게를 얻어서 고생하지 말고, 자식들하고 살라고 했으니까, 돈이 남았으니 이 돈으로 가게를 얻으라”고 했습니다.
집사님은 “그 돈은 이미 헌금한 돈인데, 왜 나를 주느냐. 나는 하나님께 다 드린 것이라 받을 수가 없다”고 했습니다. 그러자 목사님이 “어디 가서 눈먼 땅이나 사라”고 하시면서 돈을 그냥 놓고 갔습니다.
그뒤 집사님이 어떻게 했을까요? 목사님 말씀대로 눈먼 땅을 사기 위하여 복덕방을 돌아다녔습니다. 그런데 정말 눈먼 땅이 있었습니다. 집사님이 살던 곳은 포항입니다. 포항은 바다가 있지 않습니까?
바닷물이 나가면 땅이 보이고, 물이 들어오면 땅이 안 보이는 그런 땅이 있었습니다. 그 땅이 눈먼 땅이라고 해서 그 땅을 샀습니다.
여러분! 그 땅이 어느 땅인 줄 아십니까? 지금 현재 포스코, 바로 포항제철이 서 있는 땅입니다.
그래서 그 땅을 팔아서, 교회를 더 크게 짓고, 지금은 권사님이 되셨고, 포항에서 큰 부자로 살고 있답니다.
여러분! 복은 우리가 열심히 일한다고 얻어지는 것은 아닙니다. 힘쓰고 애쓰고, 눈물 흘리며 일한다고 해도, 아무 것도 손에 쥐지 못하고, 무일푼일 때가 있습니다.
복은 하나님이 주셔야 합니다. 하나님이 하늘 문을 활짝 여시고, 쏟아부어주시고, 지켜주시고, 붙들어 주셔야 우리가 복을 누릴 수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의 말씀에 순종하십시오. 힘들고 어렵다 할지라도, 하나님의 약속의 땅에 머무십시오. 약속의 땅이 어디입니까? 바로 교회입니다. 교회 생활이 힘들고 어렵더라도, 교회에 머물러 있다 보면, 하나님이 복 주심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다른 사람들을 시기 질투 하지 마십시오. 똑같이 신앙생활하는데, 왜 다른 사람들은 복을 받고, 나는 복을 받지 못하는가, 시기 질투할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시기 질투하지 마십시오. 부드러운 마음, 너그러운 마음, 양보하는 마음을 가지고, 주님 안에서, 교회 안에서, 말씀 안에서 살다 보면, 하나님의 놀라운 축복을 누리고 있음을 체험하게 될 것입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하나님께서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에게 이삭에게 주셨던 백 배의 번성의 복을 주시기를 주님의 이름으로 간절히 축원합니다.
기도합니다.
은혜가 풍성한 하나님 아버지!
언제나 주님만 바라보기를 원합니다.
말씀에 은혜 받게 하시고, 말씀에 순종하게 하시고, 말씀대로 부드러운 마음을 가짐으로
하나님의 주시는 모든 복을 맘껏 누릴 수 있는 삶을 살게 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감사하며 기도드립니다.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