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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시편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시 1:1-6)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09.06.02|조회수2,409 목록 댓글 1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시 1:1-6)

 

미국의 벡만 장자였던 제이 구울드는 세상을 떠나던 날, 이렇게 한탄했다고 합니다.

“나야말로 이 세상에서 가장 바보였구나”

영국의 시인 바이런도 자신의 마지막 생일날, “나의 인생은 말라버린 노란 낙엽 같구나! 내게 남은 건 오직 슬픔 뿐이구나!”라고 비통해 했다고 합니다.

또 당대 최고의 권세를 풍미했던 프랑스의 나폴레옹도 역시 유배지인 세인트 헬레나 섬에서 이렇게 절규했습니다. “알렉산더, 시저, 그리고 나는 힘으로 대제국을 건설했다. 하지만 그것은 아무 것도 아니었다. 그러나 사랑으로 제국을 세운 예수 그리스도의 깃발은 영원히 온 세상에서 빛나고 있구나”

 

인생이란 무엇이며, 인생에게 있어 진정한 행복이 무엇일까요?

잠언 10:22절에 “여호와께서 복을 주시므로 사람으로 부하게 하시고 근심을 겸하여 주지 아니하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여호와께서 복을 주신다”는 말씀과 같이 참된 축복은 하나님으로부터 나옵니다. 다시 말하면, ‘진정한 복’이란 하나님을 떠나서는 없다는 것입니다.

 

한자어로 복(福)이란 글자를 보면 ‘옷(示)’ 옆에 ‘입(口)’ 그리고 ‘밭(田)’, 맨 위의 ‘한(一)’자로 되어 있습니다. 결국 인생의 행복이란, 옷 한 벌과 입에 풀칠할 수 있는 밭이 있으면 된다는 소박한 뜻을 담고 있습니다.

그런데 성경에 나타난 복의 개념은 영적인 축복과 현세적 축복, 그리고 내세의 축복을 함께 포함하고 있습니다.

 

본문은 ‘복 있는 사람’에 대해 말하고 있습니다. 하나님께서는 인간을 축복하시되, 특별히 복 받을 만한 사람을 축복하신다는 말씀입니다.

본문에서 보면 복 있는 사람, 즉 하나님께 축복을 받을만한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좇지 아니하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않으며,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않고, 하나님의 말씀을 밤낮으로 묵상하는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또한 본문은 복 있는 자의 결말과 악인의 결말을 분명히 구분하고 있습니다.

그래서 본문 말씀을 통하여 ‘하나님의 축복을 받는 비결’을 네 가지로 나누어 생각해 보려고 합니다.

 

1. 악인의 꾀를 좆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악인의 꾀/ 의인의 지혜

“복 있는 사람은 악인의 꾀를 좆지 아니하며”(1절)

 

성경이 말하는 ‘복’은 ‘하나님의 축복에서 오는 행복한 상태’를 의미합니다. 동시에 ‘건강, 성공, 장수와 자손의 축복’까지도 포함합니다.

이것은 모두 하나님께서 주시는 선물입니다. 그러므로 진정한 복은 하나님께 속한 백성만이 누릴 수 있습니다.

참된 행복을 얻기 원하십니까? 하나님께서는 우리가 ‘참된 행복’을 얻기 위해서는 악인의 꾀를 좇지 말고, 악한 사람들의 방법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여러분! “악인”은 어떤 의미가 있을까요? ‘악인’의 히브리어 단어 ‘라솨’는 ‘죄를 지은 자, 또는 법정에서 유죄 판결을 받는 사람’을 의미합니다. 동시에 ‘하나님을 믿지 않은 자, 하나님을 경외하지 않은 자’를 뜻하기도 합니다.

본문에서 말하는 악인은 ‘죄를 짓고, 탐욕스럽고, 불의하여 가난한 사람들을 함정에 빠뜨리고, 살인과 폭력으로 사람들을 위협하며 불순하여 진리를 떠난 사람’을 말하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목적과 방법이 불순한 이런 사람들을 따라가지 말라고 말씀하십니다. 악인을 따라가지 말라고 하십니다. 악인의 꾀를 좇지 말라고 하십니다.

여러분! 이웃을 착취하고 속이는 사람, 도적질하는 사람들은 인간의 눈으로 볼 때 일이 잘 되어가는 것 같이 보여도, 결국에는 하나님의 심판을 면하기 어렵습니다.

잠언 15:26절에 “악한 꾀는 여호와의 미워하는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악’이라는 것은 겉으로 보기에 아름답게 느껴질 때도 있습니다. 그러나 악은, 전염병이 있는 사람과 같은 방을 쓰게 되면 같은 병에 걸리게 되는 것과 같이 강한 전염성을 가지고 있습니다. ‘악’이라고 하는 것도 결국 ‘사랑의 결핍’에서 온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래서 사랑이 있는 자는 결코 악하게 살 수 없습니다.

 

유능한 건축가가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오랫동안 한 회사에 근무하다가 은퇴할 준비를 하고 있었습니다. 그즈음 하루는 회사의 사장이 그를 불렀습니다. 은퇴하기 전에 마지막으로 집을 한 채만 더 지어달라는 부탁을 하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는 사장의 부탁이었으므로 집을 짓기는 하였지만, 그만 둔다는 생각 때문에 별로 좋지 않은 재료를 사용하고 세심하게 살펴야 할 부분도 잘 살펴보지 않고 그냥 지나갔습니다. 그리고 마침내 집이 완공되었을 때 사장에게 가서 집을 다 지었다고 보고하였더니 사장은 이렇게 말했습니다.

“이 집은 내 것이 아니라 당신 것입니다. 당신의 은퇴를 기념하기 위한 나의 선물입니다”

그제서야 건축가는 질 나쁜 재료를 쓰고, 고급 기술자를 고용하지 않은 것을 후회했습니다.

세상 사람들은 탐욕과 물질 때문에 눈이 멀어서 자기만의 이익을 채우기에 여념이 없습니다. 그래서 입에 올리기도 끔찍한 강도짓을 서슴없이 저지릅니다.

돈에 눈이 어두워져서 남에게 해를 끼치면서까지 번 돈은 그 사람에게도 유익을 줄 수 없습니다. 그런 돈은 결국 자신에게도 해가 되어 돌아오는 것입니다.

사람은 자기가 뿌린 대로 거두기 때문입니다. 바로 이것이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르쳐 주신 교훈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악인의 꾀를 좇아가서는 안될 것입니다. 대신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을 따라감으로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크신 은혜와 사랑을 듬뿍 받을 수 있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2.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 죄, 죄인의 길 / 의, 의인의 길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며”(1절)

 

여러분! 성경이 말하는 ‘죄인’은 ‘하나님께 순종하지 않는 사람’, ‘삶의 목표와 방향을 그릇되게 잡는 사람’, ‘하나님의 말씀대로 살지 않는 사람’을 뜻합니다.

‘죄’ 역시 ‘악’과 마찬가지로 하나님을 저버린 불신앙입니다. 하나님을 떠나서 죄 가운데 있는 사람은 결코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없습니다. 참된 행복을 누리고자 한다면 죄 강누데 있어서는 절대 안됩니다.

 

창세기 3장을 보면 아담과 하와가 하나님의 말씀을 거역하고 선악과를 따먹었습니다.

창세기 3:5절을 보면 “너희가 그것을 먹는 날에는 너희 눈이 밝아 하나님과 같이 되어 선악을 알 줄을 하나님이 아심이니라”고 말씀합니다. 이 말씀을 통하여 아담과 하와, 두 사람이 선악과를 따 먹은 근원에는 하나님과 같이 되고자 하는 욕심과 교만, 그리고 불순종의 마음이 있었다는 것을 알 수 있습니다. 결국 그들은 교만하고 불순종하여 하나님께 버림받아 에덴동산에서 쫓겨났습니다.

이와 같이 하나님 앞에 교만과 불순종의 죄를 짓는 사람은 있는 것조차 빼앗기는 불행한 결말을 맞게 됩니다.

독일의 종교개혁자 마틴 루터는 “죄는 본질적으로 하나님을 떠나는 것이다”라고 말했습니다.

5세기의 교부 어거스틴은 “죄를 짓는 자에게 내려지는 가장 무서운 형벌은 그대로 내버려 두는 것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로마서 5:24절을 보면 “그러므로 하나님께서 저희를 마음의 정욕대로 더러움에 버려두사 저히 몸을 서로 욕되게 하셨으니”, 26절에는 “이를 인하여 하나님께서 저희를 부끄러운 욕심에 내어 버려 두셨으니”, 28절에는 “또한 저희 가 마음에 하나님 두기를 싫어하매 하나님께서 저희를 그 상실한 마음대로 내어 버려두사 합당치 못한 일을 krp 하셨으니”라고 말씀합니다.

 

 

역사학자 아놀드 조셉 토인비는 오랫동안 역사를 연구한 후, 다음과 같은 결론을 내렸습니다.

“인류 역사의 21개문명 중 19개의 문명은 외적인 공격에 의하여 사라진 것이 아니라 내적인 부패에 의해 죽어갔다”

인류 역사에 나타난 문명의 부패는 하루아침에 이루어진 것이 아니라 오랜 세월을 두고 조금씩 조금씩 진행되어 갔다는 말입니다.

‘죄’도 마찬가지입니다. 죄악이 우리의 마음에 들어오면 개인의 삶은 점점 허물어져 결국 파괴되고 마는 것입니다.

 

미국의 24대 대통령 클리블랜드는 학창시절에 친구와 저녁마다 술을 마시러 다니곤 하였습니다. 그날도 어느 때와 마찬가지로 술집을 향하여 가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두 사람이 얼마쯤 가다가 예배당이 있는 곳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그날따라 예배당에 불이 켜져 있는 것이 보였고, 예배당 게시판에 ‘죄의 삯은 사망’이라는 글자가 씌여 있는 것이 눈에 들어왔습니다. 두 사람 중 한 사람은 그 성경 구절에 큰 충격을 받아 예배당 안으로 들어갔습니다. 그러나 다른 한 친구는 여전히 술집으로 향했습니다. 교회로 들어간 청년은, 그 이후 자신의 인생이 얼마나 소중한 지를 깨닫게 되었고, 참된 삶의 의미를 찾아 진지하고 성실한 삶을 살았습니다.

그리고 오랜 세월이 흘렀습니다. 술집으로 가다가 발길을 돌려 교회로 들어간 청년이 대통령에 당선되던 날, 그의 친구는 감옥 안에서 그 소식을 들으며 눈물을 흘리고 있었습니다. 그날 대통령에 당선된 사람이 바로 클리블랜드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떠한 일이 있다 할지라도 죄인의 길에 서서는 안됩니다. 길이요 진리요 생명이신 하나님을 따라가야 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 말씀대로 살 때, 우리는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하늘의 신령한 복을 받아 누릴 수 있게 됩니다. 하나님을 따름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 속에 언제나 살아갈 수 있기를 바랍니다.

 

3.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는 자입니다. -오만, 교만 / 겸손

“오만한 자의 자리에 앉지 아니하고”(1절)

 

여기에서 ‘오만한 자’란 ‘조롱하는 자, 비웃는 자’라는 뜻으로 ‘하나님을 향하여 악한 말로 조롱하는 자’를 가리킵니다.

하나님을 모르는 사람, 하나님에 대해 무관심한 사람은 ‘교만’의 죄를 지을 수밖에 없습니다.

 

창세기 11장에 보면, 노아의 홍수 시대 이후 땅에 사람들이 많아지고 문명이 발달하기 시작하자 그들은 다시 교만해졌다고 기록하고 있습니다. 그때 사람들은 생각했습니다. ‘다시는 홍수와 같은 심판을 당하지 않으리라’

그래서 그들은 높은 탑을 쌓기 시작하였습니다. 그 탑이 하늘에 닿게 하여 자신들의 이름을 내고, 다시는 지면에서 흩어지지 않기 위해서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께서 그들의 교만한 마음을 아시고, 그들의 언어를 혼잡하게 하여온 땅으로 흩어지게 하셨습니다. 그들로 다시는 교만의 탑을 쌓지 못하게 하신 것입니다. 그들이 쌓았던 바벨탑은 인간이 허망한 것을 위해 수고하였다는 것을 말합니다.

여러분! 여러분은 어떻습니까? 눈에 드러나는 바벨탑이 아니라 할지라도 혹시 교만의 탑을 쌓고 있지는 않는지요? 있다면 그것을 빨리 무너뜨려야 합니다.

 

시편 75:4절과 7절에 “내가 오만한 자더러 오만히 행치 말라 하며 행악자더러 뿔을 들지 말라 하였으니”, “오직 재판장이신 하나님이 이를 낮추시고 저를 높이시느니라”고 하였습니다.

인생의 마지막에는 모두가 하나님의 심판대 앞에 설 수밖에 없기 때문에 우리는 겸손한 마음가짐으로 살아야 합니다.

교만을 버리고 살아야 합니다. 나의 생각, 계획, 방법, 그리고 내 가정, 내 자녀만을 위하는 마음을 버려야 합니다. 교만의 탑을 쌓아서는 안됩니다. 낮아져야 합니다. 섬겨야 합니다. 예수님처럼 낮아져야 하고, 섬겨야 합니다.

 

 

 

영국의 유명한 설교가 스펄젼 목사님은 “교만하여지지 않을 수 있을 만큼 겸손한 영혼들만이 하나님의 온전한 보배를 누릴 수 있다. 하나님은 우리의 영적인 교만이 위험수위에 달하지 않는 선까지만 복을 허락하신다”고 말하였습니다.

사람들 가운데 어떤 이는 자기를 과대평가하는 사람이 있는가 하면, 반대로 자신을 지나치게 과소평가해서 낙담 가운데 사는 사람도 있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괴대평가나, 과소평가, 어느 것도 옳은 것이 아닙니다. 사람이 자신을 올바르게 평가하는 일은 참으로 중요합니다.

여러분! 하나님을 모를 뿐 아니라, 자신에 대해서도 잘 알지 못하는 사람은 교만에 빠지기가 쉽습니다. 의인은 자신이 의롭다고 하는 교만한 마음이 들기 쉽고, 학자는 자신의 지식으로 교만해지기 쉽습니다. 부자는 돈으로 자랑하고, 권력자는 권력을 과시합니다. 예술가는 그의 작품을 자랑하고, 웅변가는 그의 말을 자랑하고, 운동선수는 그의 특기 때문에 자만하기 쉽습니다.

사람에게 자만이나 교만이 생기기 시작하면 더 이상 성장이나 발전을 기대하기 어렵습니다.

잠언 11:2절을 보면 “교만이 오면 욕도 오거니와 겸손한 자에게는 지혜가 있느니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교만은 일종의 자기 숭배의 죄악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누군가가 교만을 정의하기를, ‘교만이라는 것은 자기 자신만이 즐길 수 있는 병이다’라는 아주 재미있는 말을 했습니다.

15세기 설교자 중 사보나 롤라라는 사람이 어느 날 아침에 산책을 하다 보니까 성당 마리아 상 앞에서 어떤 꽤 나이가 들어 보이는 부인 하나가 경건한 모습으로 참배를 하면서 아주 진지하게 기도하고 있는 모습이 보였습니다. 그 이튿날도 똑같은 시간에 그 부인이 와서 기도를 합니다. 그는 비가 오나 눈이 오나 바람이 불어도 봄, 여름, 가을, 겨울을 한결같이 같은 시각에 와서 마리아 상 앞에 참배하는 이 부인을 보았습니다. 그 모습에 그는 아주 깊은 감명을 받으면서 속으로 ‘아주 신앙심이 귀한 분이로구나’라고 생각했습니다.

그러던 어느 날 이 사보나 롤라는 자기 동료사제와 함께 산책하다가 그 부인을 가리키면서, “여보게 내가 저 부인을 가만히 관찰해 보니까 봄, 여름, 가을, 겨울 변함이 없소. 눈이 오나 바람이 부나 폭풍우가 몰아치나 똑같은 시간에 와서 저렇게 기도를 한단 말이야. 참 신앙심이 유별하지?”라고 말했습니다. 그랬더니 옆에 있던 사제가 껄껄 웃으면서 이렇게 말합니다. “자넨 모르는가 보네. 옛날 이 성당에 마리아 상을 처음 조각할 때, 그 조각가가 마리아 상의 모델로써 저 부인을 뽑았다고 하네. 바로 저 부인은 처녀시절에 마리아 상의 모델이 되었고, 조각이 완성된 그 다음 이튿날부터 출근해서 지금까지 한번도 빠진 일이 없다네”

그 부인은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마리아 상을 보면서 그 부인은 자신의 얼굴을 회상하고 만족하며 자기를 숭배하고 있었던 것입니다. 그것이 바로 원죄의 뿌리입니다.

신명기 8:14절을 보면 “두렵건대 네 마음이 교만하여 네 하나님 여호와를 잊어버릴까 하노라”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우리 주님은 죽기까지 낮아지셨습니다. 섬김을 받기보다는 섬기셨습니다. 오만과 교만의 자리, 높아짐의 자리가 아니라 섬김의 자리, 낮아짐의 자리를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크신 은혜와 사랑을 받을 수 있기를 바랍니다.

 

4.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주야로 묵상하는 자입니다. - 율법, 말씀을 묵상 / 말씀을 떠남

“오직 여호와의 율법을 즐거워하여 그 율법을 주야로 묵상하는 자로다”(2절)

율법은 보통 ‘모세 오경, 구약 율법’을 뜻하지만 여기서는 ‘하나님의 교훈, 훈계’를 의미합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여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사람, 그래서 그 말씀을 생활 속에서 늘 실천하며 사는 사람은 ‘행복한 사람’이라고 하였습니다.

시편 119:97-100절 말씀에 “내가 주의 법을 어찌 그리 사랑하는지요 내가 그것을 종일 묵상하나이다 주의 계명이 항상 나와 함께하므로 그것이 나로 원수보다 지혜롭게 하나이다 내가 주의 증거를 묵상하므로 나의 명철함이 나의 모든 스승보다 승하며 주의 법도를 지키므로 나의 명철함이 노인보다 승하니이다”라고 하였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은 어떤 훌륭한 학자보다도, 또 어떤 노인보다도 명철하고 지혜로운 삶의 길로 우리를 인도합니다.

성경은 말씀을 지키는 자가 받는 축복에 대해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의 말씀을 지킴으로 축복의 근원이 되고, 질병에 걸리지 않고, 번성하게 되며, 복을 받고, 세계 모든 민족 위에 뛰어나게 되고, 상을 받고, 영생을 얻으며, 하나님께서 함께하시며, 기도의 응답을 받으며, 마귀를 이깁니다.

 

반면,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사람에 대한 저주와 심판도 기록하고 있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을 저버리는 사람은 저주를 받고, 재앙을 당하고, 버림을 받고, 패망하며, 흑암과 사망의 줄에 매이며, 역경을 당할 때 넘어지고, 구원을 얻지 못하고, 마지막 날에 심판을 받습니다.

 

미국의 16대 대통령 링컨은 “성경은 하나님께서 사람에게 주신 가장 좋은 선물이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그리고 이어서 “만일 이 성경이 없었더라면 우리는 어떻게 옳고 그른 것을 구별할 수가 있겠는가”라고 덧붙였습니다.

그렇습니다. 하나님의 말씀인 성경은 하나님이 우리에게 주신 가장 귀하고 소중한 선물입니다.

 

세계적으로 유명한 사람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들 중 90% 이상이 성경을 깊이 읽는 사람이라는 통계가 나왔습니다.

여러분! 여러분들은 무엇보다도 먼저 성경을 읽는 하나님의 사람들이 되시기 바랍니다. 소설이나 드라마, 신문, 잡지를 보는 것보다 더욱더 하나님의 말씀에 관심을 가지십시오. 낮이나 밤이나 하나님의 말씀과 함께 하십시오. 말씀을 읽으십시오. 그리고 그 말씀대로 사십시오.

그래서 하나님이 주시는 행복한 삶을, 복된 삶을 누릴 수 있기를 바랍니다.

 

마지막으로 복있는 사람의 결말과 악인의 결말을 보도록 하겠습니다.

 

1.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 - 형통

저는 시냇가에 심은 나무가 시절을 좇아 과실을 맺으며 그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함 같으니 그 행사가 다 형통하리로다”(3절)

 

팔레스틴 지역은 물이 참 귀한 곳입니다. 그곳은 사막과 광야가 많습니다. 그래서 팔레스틴 사람들은 ‘물이 고인 샘’이나 ‘물이 흐르는 시내’를 ‘성공’, ‘승리’, ‘축복’의 의미로 받아들였고, 동시에 ‘생명과 기쁨의 원천’으로 여겼습니다.

그들에게 있어 물은 ‘복의 근원이 됨’을 뜻하였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시냇가에 심은 나무와 같이 영원히 번성하고 풍족함을 누리는 축복을 받는다고 하신 것입니다. 그뿐 아니라, 하나님과 함께 하는 사람은 형통하며, 과실을 맺으며, 잎사귀가 마르지 아니하는 것과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예레미야 17:7-8절을 보면 “그러나 무릇 여호와를 의지하며 여호와를 의뢰하는 그 사람은 복을 받을 것이라 그는 물가에 심기운 나무가 그 뿌리를 강변에 뻗치고 더위가 올찌라도 두려워 아니하며 그 잎이 청청하며 가무는 해에도 걱정이 없고 결실이 그치지 아니함 같으리라”고 말씀합니다.

 

미국에 스텐리 탐이라는 사람이 있었습니다.

이 사람은 청년 시절에, 최선을 다했는데도 어떻게 된 일인지 사업에 크게 실패하고 말았습니다.

그는 하나님께 ‘왜 이런 실패를 겪게 하고, 혹독한 시련을 당하게 하느냐’고 물었습니다. 그리고 계속해서 기도를 하는 중에, 만약 앞으로 성공하면 모든 면에서 오직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약속을 하였습니다.

그리고 사업을 다시 시작하면서 그는 이런 서원을 했습니다. ‘이제부터는 주님이 나의 동업자가 되시므로 회사 수입 중 50%를 주님의 것으로 드리겠습니다’ 그 후 놀라운 일이 벌어졌습니다.

그는 재기에 성공하여 사업이 점점 왕성하여졌는데, 너무 급속히 성장하는 바람에 미국 연방 재무당국에서 10년 동안 계속하여 세무조사를 할 정도였습니다.

사업이 더욱 번창하자 그는 60%의 이익을 하나님께 드렸고, 나중에 100%를 모두 하나님께 바치고, 자신은 봉급을 받는 그 회사의 고용인이 되었습니다.

여러분! 오늘날 사람들은 믿음을 잃어버렸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이 우리의 창조주로서 행복한 삶의 원천이 되신다는 믿음을 가질 수 있다면, 또한 우리의 몸과 마음과 진심을 다하여 하나님을 경외한다면, 하나님도 우리를 위하여 역사하실 것입니다.

그러므로 살아계셔서 축복의 근원이 되시는 하나님 앞에 자신을 드리고, 하나님의 의를 구하는 사람은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습니다.

 

2. 악인의 심판을 견디지 못하리로다 - 심판

악인은 그렇지 않음이여 오직 바람에 나는 겨와 같도다 그러므로 악인이 심판을 견디지 못하며 죄인이 의인의 회중에 들지 못하리로다”(4-5절)

 

여기서 ‘바람에 나는 겨’는 ‘쓸모없는 불완전한 상태’를 뜻합니다. 또한 이것은 ‘악인’이 추수기인 ‘심판의 날’에 멸망에 이르게 됨을 말합니다.

‘심판’이란 말은 ‘하나님의 공의’를 드러내는 것을 의미합니다.

하나님께서는 의인에게 번영과 성공으로 상급을 주시지만 악인은 심판하십니다.

영국의 역사가 토마스 카알라일은 “결코 심판의 날을 잊지 마십시오. 인간에게 죽음이 있는 것처럼 분명히 심판이 있습니다”라는 말을 했습니다.

전도서 12:14절에도 “하나님은 모든 행위와 모든 은밀한 일을 선악간에 심판하시리라”고 말하면서, 인간은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을 지켜야 한다고 교훈하고 있습니다.

 

3. 의인의 길은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 인정, 멸망

대저 의인의 길은 여호와께서 인정하시나 악인의 길은 망하리로다”(6절)

 

예레미야 17:5-6절을 보면 “나 여호와가 이같이 말하노라 무릇 사람을 믿으며 혈육으로 그 권력을 삼고 마음이 여호와에게서 떠난 그 사람은 저주를 받을 것이라 그는 사막의 떨기나무 같아서 좋은 일의 오는 것을 보지 못하고 광야 간조한 곳, 건건한 땅, 사람이 거하지 않는 땅에 거하리라”고 말씀합니다.

여러분! 역사적으로 보면, 하나님을 경외하였던 개인이나 민족은 복을 받고 흥왕하였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을 알지 못하고, 혹은 하나님을 저버린 사람이나 그 후손들은 고난을 면치 못하였던 것을 알 수 있습니다.

 

미국의 한 통계에 두 집안 사람들의 후손들에 관한 내력이 다음과 같이 나와 있다고 합니다. 맥스처스라는 사람과 조나단 에드워드라는 두 사람에 대한 기록입니다.

맥스처스라는 사람은, 술을 좋아하는 사람이었고, 신앙과는 무관하게 산 사람이었는데, 그 자손들을 조사해 본 결과 그의 후손 1026명 중, 감옥에 갇힌 자가 300명, 창기가 된 사람이 160명, 알콜 중독자가 100명이나 되었고, 그들 가족 중 가난한 사람들 때문에 정부가 600만불이나 되는 국고를 손해 보았다고 하였습니다.

반면 조나단 에드워드는 믿음의 사람으로 하나님을 잘 섬기던 사람이었는데, 목사님이셨는데, 그의 후손 729명 가운데 목사가 300명, 대학교수가 65명, 대학총장이 13명, 저술가가 60명, 국회의원이 3명, 부통령이 1명 나왔다고 합니다.

사람의 일생에 부모가 미치는 영향력은 대단한 것입니다. 더욱이 부모의 신앙이 자녀들에게 끼치는 정신적 자산은 어떤 물질적 유산보다 값진 것입니다.

어릴 때부터 신앙으로 잘 양육된 자녀는 도덕과 윤리를 존중하는 사람으로 성장할 수 있습니다. 따라서 그들은 다른 사람을 존중할 줄 알며, 사랑이 풍부한 사람으로 성숙하게 됩니다.

인생의 가치는 돈이나 세속적인 명예 따위에 있는 것이 아니라 오직 하나님의 말씀에 있음을 기억해야 합니다. 사람은 하나님의 말씀 안에 거하게 될 때에 참된 행복을 누릴 수 있기 때문입니다.

여러분 한 사람 한 사람이 하나님 안에서 진실로 행복한 사람이 될 때, 여러분의 자녀와 자손들도 행복한 삶을 누릴 수 있다는 것을 기억하시기 바랍니다.

 

사랑하는 여러분, 이제 말씀을 마치려고 합니다. 여러분들이 하나님의 복을 받고자 간절히 원한다면 이를 위해 먼저 해야 할 것이 있습니다.

악인의 꾀를 버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일어나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해야 합니다. 그리고 말씀의 시냇가에 믿음의 뿌리를 굳게 내리고, 신앙의 분량대로 열매를 맺어야 하며, 생활 가운데서 그리스도인임이 증거되어야 합니다. 그리하면 의인의 길을 걷는, 그리고 하나님께서 인정하시는 행복한 삶을 살게 될 것입니다.

오늘 예배에 참석한 여러분 모두 이러한 복된 삶을 사시기를 간절히 소원합니다.

 

기도하겠습니다.

 

참 좋으신 하나님 아버지!

이 땅에 살아가면서 행복한 삶을 살기 원합니다. 그 무엇보다도 하나님의 복을 받으며 행복하게 살기를 원합니다.

주님! 내 안에 아직도 남아 있는 악인의 꾀를 버리고, 죄인의 길에 서지 아니하고, 오만한 자의 자리에서 일어나게 하여 주옵소서.

더 나아가 하나님을 바라봄으로, 하나님을 사모함으로, 하나님의 말씀을 즐거워하고, 그 말씀을 주야로 묵상하는 삶을 살수 있도록 인도하여 주옵소서.

예수님의 이름으로 기도드립니다. 아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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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작성자온유와 겸손으로 | 작성시간 19.12.19 귀한 말씀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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