왕을 위한 노래(시 45:1-17)
시편 기자는 지금 “왕을 위한 노래”를 부르고 있습니다.
시인은 고백하기를, “내 마음이 좋은 말로 왕을 위하여 지은 것을 말하리니 내 혀는 글솜씨가 뛰어난 서기관의 붓끝과 같도다”(1절)라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그의 가슴 속에는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 대한 사랑과 존경이 넘쳐나고 있었기에, 시인은 “왕을 위한 찬가”, “왕을 위한 사랑의 노래”를 불렀습니다.
대부분의 성도들은 “교회 안에서는 하나님만을 칭송하고 높여야지 사람을 칭송하거나 높여서는 절대로 안 된다.”고 생각하는 성향이 있습니다. 일리가 있는 말입니다.
이 세상과 교회의 진정한 주인은 하나님이시기에 우리는 오직 하나님만을 높여 드려야 합니다. 그러나 그렇다고 해서, 사람을 칭찬하거나, 사람의 공로를 칭송하는 일까지 하지 못하는 것은 아닙니다. 성경은 하나님을 부각시키며, 하나님을 높이고 있지만, 하나님과 함께 일하며, 하나님의 뜻을 이루는데 앞장선 사람들의 공로도 함께 칭송하고 있습니다.
대표적인 것이, “다윗의 활의 노래”입니다.
사무엘하 1:17-27절을 보면, 다윗은 사울 왕과 요나단의 죽음을 슬퍼하며, 애가를 지어 불렀습니다.
“이스라엘아 네 영광이 산 위에서 죽임을 당하였도다 오호라 두 용사가 엎드러졌도다”(삼하 1:19)
훗날 사람들은, 그 슬픈 노래의 제목을 “다윗의 활의 노래”라고 불렀습니다.
다윗은 활의 노래를 통해서, 하나님을 위해 수고한 자들의 공로를 칭송하며, 하나님의 종들에게 용기를 북돋우어 주었습니다.
물론, 그 점에서는 바울도 마찬가지였습니다. 사도 바울은 자신과 함께 일했던 많은 사람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칭찬했습니다. 그러므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칭송하고 높이는 노래를 부르는 것이, 무엇이 문제가 되겠습니까?
여러분! 시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위한 노래를 불렀는데, 그는 왜 왕을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까? 왕의 어떤 모습이 시인으로 하여금, 왕을 위한 사랑의 노래, 왕을 위한 칭송의 노래를 부르도록 만들었을까요?
첫째,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어느 인생보다도 아름다운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2절 말씀입니다.
“왕은 사람들보다 아름다워 은혜를 입술에 머금으니 그러므로 하나님이 왕에게 영원히 복을 주시도다” 아멘.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참으로 아름다운 왕이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항상 입술에 머금고 살았습니다.
왕의 입에서는 은혜가 넘치는 말들이 쉴 새 없이 쏟아져 나왔습니다.
하나님께서는 그런 왕의 모습을 바라보시며, 왕에게 한없는 축복을 부어주지 않을 수가 없었습니다.
얼마나 아름다웠으면, 하나님께서 왕에게, 한없는 축복을 부어주셨겠습니까?
이것이 바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아름다운 모습이었습니다.
그러나 여기서 우리가 놓치지 말아야 하는 것이 있습니다. 그것이 무엇입니까?
왕의 아름다움은 보통 사람들이 생각하는 그런 아름다움은 아니었다는 것입니다.
그럼, 하나님이 세우신 왕의 아름다움은 어떤 아름다움이었습니까?
그것은 철저하게 육적인 아름다움이 아니라 영적인 아름다움이었습니다.
시인은 “왕이 하나님의 은혜를 입술에 머금었기에 아름다웠다.”고 노래하고 있습니다.
왕은 하나님의 은혜를 그의 입에 달고 살았으며, 그의 입으로 하나님을 칭송하고 있었기에, 그는 아름다울 수밖에 없었습니다.
왕에게는 다른 사람들보다 키가 크다거나, 얼굴이 아름답다거나, 능력이나 지혜가 탁월하거나, 하는 것이 전혀 없었을 것입니다.
만약에 그런 모습이 왕에게 있었다면, 시인은 분명히 왕의 그런 모습을 노래했을 것입니다. 왜냐하면 외모의 아름다움은 누구나 좋아하는 아름다움이기 때문입니다.
그러나, 시인은 왕의 외적인 아름다움에 대해서는 하나도 칭송하지 않았습니다.
그렇다면, 왕에게는 그런 외적인 아름다움이 하나도 없었던 것입니다.
하나님이 세우신 왕에게는 그런 육신적인 아름다움은 없었는지 몰라도, 하나님이 넣어주신 영적인 아름다움은 넘쳐나고 있었습니다.
그것이 무엇이었습니까? 그것이 바로 하나님의 은혜를 입술에 담고 사는 것이며, 그 은혜를 입으로 나누는 것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이처럼 아름다운 왕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하나님이 세우신 왕을 칭송하는 노래를 부를 수밖에 없었습니다.
그 어떤 인생보다도 아름다운데, 그 어느 인생보다도 은혜로운 말들을 쏟아내는데, 어떻게 그를 높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우리가 믿는 주님이 바로 이런 분이셨습니다.
주님은 항상 입술에 하나님의 은혜를 머금고 계셨으며, 그 은혜를 사람들에게 아낌없이 나누어 주는 아름다운 왕이셨습니다.
그래서 사람들은 주님을 아름답고 존귀하신 왕 중의 왕이라고 칭송하는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는 어떻습니까?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다”(벧전 2:9)라고 말했습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지음을 받은 왕들인데, 여기 나오는 왕처럼, 항상 하나님의 은혜를 머금고, 그 은혜를 나누는 아름다운 삶을 살아야 하지 않겠습니까?
우리 역시, 왕처럼, 그렇게 살아야 합니k.
그러면, 우리도 다른 사람들로부터 칭찬을 받는 사람이 될 수 있습니다.
여러분! 시인은 왜 왕을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까?
둘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싸움에 능한 강인한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3-5절 말씀입니다.
“용사여 칼을 허리에 차고 왕의 영화와 위엄을 입으소서 왕은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왕의 위엄을 세우시고 병거에 오르소서 왕의 오른손이 왕에게 놀라운 일을 가르치리이다 왕의 화살은 날카로워 왕의 원수의 염통을 뚫으니 만민이 왕의 앞에 엎드러지는도다” 아멘.
여러분! 시인이 칭송하던 왕은 강한 전투력을 자랑하던 강인한 왕이었습니다.
그는 “용사여”라는 칭송을 들었으며, 허리에는 칼을 차고, 영화와 위엄으로 옷을 입고,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하여, 위엄 있게 말을 타고, 전쟁터로 달려 나가던 강인한 왕이었습니다.
왕에게는 제왕의 기상과 위엄이 넘쳐났습니다.
왕은 싸우는 것을 두려워하여, 뒤로 물러나거나, 적을 무서워하여, 비겁하게 피하는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의 오른손은 항상 그에게 승리의 영광을 안겨 주었으며, 그의 칼은 항상 날카롭게 준비되어 있었기에, 언제라도 적의 심장을 뚫기에 충분했습니다. 만인이 왕 앞에 엎드러졌습니다.
그는 원수와의 싸움에서 절대로 뒤로 물러나는 비겁한 왕이 아니었으며, 백성들을 위해서라면, 언제든지 출정할 준비가 되어 있는 용감한 전사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런 왕을 칭송하고, 높이는 노래를 부르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우리가 믿는 예수님이 바로 이런 왕이었습니다.
예수님은 싸움에서는 절대로 뒤로 물러나지 않았으며, 언제나 앞장서서 싸우며, 승리를 쟁취하는 역사상 가장 용감한 장수였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주님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주님은 진정 강하고 용감한 전사였습니다.
그 점에서는 우리도 마찬가지입니다. 우리가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사람들의 칭송을 들으려면, 적어도 이 정도는 되어야 합니다.
영적으로, 어떤 전투가 벌어지더라도, 용맹스럽게 전쟁에 나가 싸우며, 하나님을 의지하고, 당당하게, 칼을 휘둘러야 합니다. 물론 내 실력만 믿고 나가서는 안 되고, 하나님이 입혀주시는 영화와 위엄으로 옷을 입고 나가서, 싸워야 합니다. 물론 내 이익과 명예를 위해서 싸우는 것이 아니라, 하나님이 제시하신 진리와 온유와 공의를 위해서 싸워야 합니다.
무슨 일이 있어도, 절대로 비겁하게 물러나서는 안됩니다. 그러면 분명히 하나님의 인정을 받고, 주변 사람들의 칭찬을 받는 용감한 전사가 될 수 있습니다.
우리는 선한 싸움을 싸우고, 달려갈 길을 마치고, 믿음을 굳게 지켜야 합니다.
여러분! 시인은 왜 왕을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까?
셋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공명정대하신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6-7절 말씀입니다.
“하나님이여 주의 보좌는 영원하며 주의 나라의 규는 공평한 규이니이다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시니 그러므로 하나님 곧 왕의 하나님이 즐거움의 기름을 왕에게 부어 왕의 동료보다 뛰어나게 하셨나이다” 아멘.
우리가 믿는 하나님은 공평하신 분이십니다.
시인은 “하나님의 보좌는 영원하며, 하나님의 홀은 공평하다.”고 노래하였습니다.
하나님은 어느 쪽으로도 치우치지 않고, 항상 공평하시고, 공명정대하신 공의로운 분이십니다.
그러므로, 그런 공평하신 하나님께서 세우신 왕은 어떤 모습을 가지고 있겠습니까?
당연히 하나님이 세우신 왕도, 하나님의 형상을 따라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공명정대한 왕이어야 하지 않겠습니까?
여러분! 시인이 노래하는 이스라엘의 왕은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공명정대한 왕이었습니다. 그래서 하나님께서는 왕에게 즐거움의 기름을 부어 그의 동료들보다도 뛰어나게 하셨습니다.
이 세상에 존재하는 것들 가운데, 어떤 것이, 세월이 지나도 망하지 않고, 오래 갈까요?
악하고, 질기고, 독한 것들은 크게 번성하며, 오래 갈 것 같은데, 절대로 그렇지 않습니다. 착하고, 순하고, 의로운 것들이 오래 갑니다.
사자나 호랑이나 곰처럼 사나운 것들은 멸종의 위기를 맞고 있지만, 약하고 순한 짐승들, 곧 양들이나 염소들이나 소들은 그런 위험이 전혀 없지 않습니까?
그 점은 기업도 마찬가지입니다. 지독하게 이익만 추구하는 기업은 오래 갈 것 같은데, 이상하게, 어느 날 갑자기 망해 버립니다.
왜 그런 것입니까? 정의가 뭔지, 악이 뭔지 모르고, 행동하다가, 하나님이 어느 날 갑자기 심판해 버리시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가 속한 가정이나 기업이나 사회에도, 인격이 있다는 것을 명심하고,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공동체를 만들어가야 합니다. 그러면 그 가정과 기업과 사회는 큰 복을 받게 됩니다.
그러므로 여러분! 어떻게 정의를 사랑하고, 악을 미워하는 왕들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여러분! 시인은 왜 왕을 위한 노래를 불렀습니까?
넷째로,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주변에 있는 사람들에게 복을 나누어주는 왕이었기 때문입니다.
8-17절 말씀입니다.
“왕의 모든 옷은 몰약과 침향과 육계의 향기가 있으며 상아궁에서 나오는 현악은 왕을 즐겁게 하도다 왕이 가까이 하는 여인들 중에는 왕들의 딸이 있으며 왕후는 오빌의 금으로 꾸미고 왕의 오른쪽에 서도다 딸이여 듣고 보고 귀를 기울일지어다 네 백성과 네 아버지의 집을 잊어버릴지어다 그리하면 왕이 네 아름다움을 사모하실지라 그는 네 주인이시니 너는 그를 경배할지어다 두로의 딸은 예물을 드리고 백성 중 부한 자도 네 얼굴 보기를 원하리로다 왕의 딸은 궁중에서 모든 영화를 누리니 그의 옷은 금으로 수 놓았도다 수 놓은 옷을 입은 그는 왕께로 인도함을 받으며 시종하는 친구 처녀들도 왕께로 이끌려 갈 것이라 그들은 기쁨과 즐거움으로 인도함을 받고 왕궁에 들어가리로다 왕의 아들들은 왕의 조상들을 계승할 것이라 왕이 그들로 온 세계의 군왕을 삼으리로다 내가 왕의 이름을 만세에 기억하게 하리니 그러므로 만민이 왕을 영원히 찬송하리로다” 아멘.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이스라엘의 왕은 자기밖에 모르는 이기적인 왕이 아니었습니다.
그는 자신이 받은 축복을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과 나누는 왕이었습니다.
자신의 소중한 아내와 나누고, 자신의 귀여운 딸들과 나누고, 자신의 분신과 같은 아들들과 나누는 왕이었습니다.
사실 왕의 아내나 아들들이나 딸들은 왕으로 인해 복을 누리는 사람들이었습니다.
좋은 옷에, 좋은 말에, 좋은 음식에, 좋은 자리에, 그 모든 것들은, 왕 때문에, 주어진 축복이었습니다.
물론, 왕의 주변에 있던 신하들이나, 그의 다스림을 받는 백성들도, 왕 때문에 복을 누리고 있었습니다.
만약에 그들에게 왕이 없었다면, 그들은 벌써 이방의 노예들이 되었을 것입니다.
왕이 그들에게 은혜를 베풀어주며, 그들을 대신하여 싸웠기에, 그들은 그 많은 축복을 누릴 수가 있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런 왕을 칭송하며, 노래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그래서, 시인은 왕의 주변에 있는 모든 사람들을 대신하여, 왕의 이름을 높이며, 왕을 칭송했습니다.
여러분! 하나님이 세우신 왕은 그의 곁에 머물러 있기만 해도, 복을 받게 하는 왕이었습니다.
그러므로, 어떻게 그런 왕을 칭송하지 않을 수 있겠습니까?
가까이 가기만 해도, 복을 주는 왕인데 그의 이름을 높이는 것이 당연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우리도 이 세상에서 복을 나누어주는 왕들이 되어야 합니다.
누군가 내 곁에 오면, 나로 인해 복을 누리게 해 주어야 합니다.
“누군가가 나 때문에 복을 받는다.”
이 얼마나 감격스럽고 감동적인 일입니까?
우리의 왕이신 주님께서 그렇게 하셨기에, 우리 역시 그렇게 해야 합니다.
베드로는 성도들에게, “그러나 너희는 택하신 족속이요 왕 같은 제사장들이요 거룩한 나라요 그의 소유가 된 백성이니 이는 너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신 이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게 하려 하심이라”(벧전 2:9)고 말했습니다.
여러분! 우리는 하나님께서 택하여 세워주신, 왕 같은 제사장들입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두운 데서 불러 내어, 그의 기이한 빛에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하나님께서 우리를 어둠과 절망과 죽음의 권세로부터 불러내어, 생명의 나라로 들어가게 하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우리에게 새생명을 주신 하나님의 아름다운 덕을 선포하며 살아야 합니다. 다른 사람들에게 칭찬을 듣는 덕스러운 삶을 살아야 합니다.
오늘 말씀을 생각하면서, 함께 기도하기를 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