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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 시편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시 4:1-8)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21.12.13|조회수1,809 목록 댓글 0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시 4:1-8) 

시편 4편은 시편 3편과 짝을 이루는 시편입니다. 
시편 3편을 “아침의 시”라고 한다면, 4편은 “저녁의 시”라고 부를 수 있습니다. 
시편 4편은 시편 3편과 동일한 상황에서 기록되었을 것이며, 고난의 정원에서 꽃을 피운 아름다운 시입니다. 다윗이 고난을 당하지 않았더라면, 우리는 이처럼 아름다운 믿음의 노래를 들어볼 수 없었을 것입니다.  

1절 말씀입니다. 
“내 의의 하나님이여 내가 부를 때에 응답하소서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

하나님은 정의롭게 판단하시는 의의 하나님이십니다. 
다윗의 대적들은 다윗을 정죄하고 대적하는 반면에, 하나님께서는 다윗을 바르게 판단하셔서 오해와 누명을 벗겨 주십니다.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 내게 은혜를 베푸사 나의 기도를 들으소서”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과거에 다윗에게 베푸신 자비로운 구원을 근거로, 현재 당하는 어려움에서 구원을 베풀어 주실 것을 간구하는 것입니다. 
“곤란 중에 나를 너그럽게 하셨사오니”라는 말은 다윗이 대적들에게 둘러싸여 압박을 받고 있었을 때, 주님께서 대적들의 포위망을 깨뜨리시고, 다윗을 높은 곳에 두셨다고 하는 아름다운 믿음의 고백입니다. 
다윗은 이전에 받은 이러한 주님의 은혜의 체험에 근거하여, 장래에도, 역시 주님께서 자신을 반드시 도와주실 것을 확신하며 간구하고 있는 것입니다. 
하나님께서 과거에 여섯 번씩이나 구원을 베푸셨다면, 이제 일곱 번째 당하는 어려움에서 우리를 버리지 않으시고, 반드시 구원하여 주실 것이라고 상상할 수 있을 것입니다. 
주님은 우리가 고난에서 벗어날 때까지, 우리를 돕는 일을 결코 중단하지 않으십니다. 
주님은 우리의 도움이 되시며, 영원한 위로자가 되어 주십니다.  

곤란 중에 있을 때, 사람에게 먼저 말하기 전에, 하나님께 말해야 할 것입니다. 
사람들에게 하소연 하기 전에, 하나님께 먼저 기도해야 할 것입니다. 
“너희 중에 고난 당하는 자가 있느냐 그는 기도할 것이요”(약 5:13)

“주님은 나로 하여금 의로운 일을 시작하게 하시고, 나를 지켜보시고, 이 일을 하도록 도와주시고, 심판자가 되시고, 내게 상을 주시는 분이십니다. 이제 사람들이 나를 훼방하고 비방하오니, 이 문제를 해결해 주옵소서. 내가 슬픔과 탄식의 포로로 사로잡혔을 때에 주님은 기쁨과 안위로 내 마음을 넓히셨습니다.”

2절 말씀입니다. 
“인생들아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는가 (셀라)”

“인생들”이라고 표현되어 있는 세상 사람들은 자기 자신들을 가리켜 위대한 사람이라고 생각합니다. 매우 영향력 있는 사람들이라고 여깁니다. 
그들은 가난한 자를 짓밟고, 악을 행하는 부유층의 사람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의 피난 시절에, 다윗을 배반하고, 압살롬에게 합류한 고위층의 인사들이라고 할 수 있습니다. 
다윗을 위협하여, 예루살렘으로부터 다윗을 쫓아낸 이들은 위대한 일을 성취했노라고 외쳤을 것입니다. 
그러나, 다윗은 그들을 어리석은 자들로 생각하고서 마치 어린아이를 책망하듯이 책망하고 있습니다. 그들은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는 자들입니다. 그들은 거짓말을 지껄이고, 공허한 꿈을 꾸며, 악한 마음으로 사람을 속이는 자들입니다. 

“어느 때까지 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어리석은 인생들은 하나님께서 다윗에게 주신 왕의 영광을 땅에 떨어뜨렸습니다. 
다윗의 왕권에 도전하였습니다. 압살롬과 그의 일당들은 거짓말로 백성들의 마음을 도적질하였습니다. 그러나, 다윗의 대적들이 추구한 모든 것들이 거짓이었음이 폭로될 것입니다. 

어느 때까지, 다윗의 영광을 조롱하며, 웃음거리를 삼을 수는 없을 것입니다. 
못된 짓을 계속할 수는 없을 것입니다. 그들이 주의 기름부음을 받은 자를 조롱하고, 억울하게 하여도, 결코 이길 수 없다는 것을 알게 될 것입니다. 못된 짓을 하다가, 영혼이 지옥에 빠져 들어가게 될 것입니다. 그들의 웃음이 슬픈 울음으로 변하게 될 것입니다. 

대적자들은 승리할 수 없습니다. 그들은 패배할 것입니다. 하나님의 택하신 자를 공격한다고 하는 것은 곧 하나님을 공격하는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영광을 바꾸어, 욕되게 하며, 헛된 일을 좋아하고, 거짓을 구하려고 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우리는 진리를 사랑하고, 의를 추구하는 삶을 살아야 합니다. 
하나님의 은혜를 감사하며, 하나님께 찬양을 돌리는 믿음의 삶을 살아야 합니다. 

3절 말씀입니다. 
“여호와께서 자기를 위하여 경건한 자를 택하신 줄 너희가 알지어다 내가 그를 부를 때에 여호와께서 들으시리로다”

하나님은 목동이었던 다윗을 존귀한 이스라엘의 왕위에 오르게 하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에게 큰 은혜를 베풀어 주셔서, 볼품없는 우리를 존귀한 자로 구별하여 세워주셨습니다. 자기 잘난 맛에 살아가는 세상 사람들과 구별해 주셨습니다. 
하나님은 우리를 죽음과 멸망으로부터 구원하여 주셨고, 은혜의 보좌 앞에 당당하게 나아갈 수 있는 자격을 부여해 주셨습니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을 사랑해야 합니다. 경건한 삶을 살아야 합니다. 기도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경건한 자의 기도는 반드시 응답하여 주십니다. 

하나님 앞에 무릎을 꿇을 때, 우리는 하나님의 택하심을 받은 자요, 하나님의 귀한 보물처럼 특별히 구별된 자라는 것을 기억해야 할 것입니다. 그리고, 강하고 담대함을 가지고, 믿음의 기도를 더욱 열심히 드려야 할 것입니다. 
주님이 우리를 존귀한 자로 택하셨으니, 우리의 기도를 들어주시지 않겠습니까? 
주야로, 주님께 울며 부르짖는 택하신 자를 하나님이 구하여 주시지 않겠습니까? 

4절 말씀입니다. 
“너희는 떨며 범죄하지 말지어다 자리에 누워 심중에 말하고 잠잠할지어다 (셀라)”

분노할 수 있지만, 실제적으로, 범죄를 범해서는 안될 것입니다. 
마음 속에 있는 분노를 겉으로 드러내지 말고, 침묵을 지켜야 할 것입니다. 
왜냐하면, 악인이 속에 있는 분노를 터뜨림으로 경건한 자가 무고하게 고통을 당하게 될 것이기 때문입니다. 물론, 침묵 자체가 속에 있는 악을 제거하지는 못하지만, 적어도, 그 악의 결과를 줄일 수는 있기 때문입니다. 

단 한 번이라도, 악한 정욕을 억누르고, 잠잠할 수 있다면, 그래서 잠잠히 그들의 과거를 돌아보고, 그들이 당할 운명을 한 번이라도 생각해 볼 수 있다면, 생각하는 사람이라면, 죄악이라고 하는 것이 얼마나 헛된 것이며, 이 세상이 얼마나 덧없음을 분명히 알게 될 것입니다. 

5절 말씀입니다.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지할지어다”

마음 속에 자리 잡은 악을 제거해야 합니다. 주님과의 바른 관계로 돌아와야 합니다. 왜냐하면, 대적들의 행위가 하나님과의 관계가 단절된 데서 비롯되었기 때문입니다. 
반역자들이 구원받기를 원했다면, “내가 무엇을 하여야 구원을 얻으리이까?”라고 물어야 할 것입니다. 
구원을 얻기 위하여, 무엇을 해야 합니까?
하나님께 의의 제사를 드리고, 여호와를 의뢰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사람들의 죄를 대속하는 제물을 보내 주셨습니다. 이는 세상 죄를 지고 가는 하나님의 어린 양, 구세주이십니다. 예수님의 보혈을 의지해야 합니다. 십자가에 달리셨던 예수님을 의지해야 합니다. 

6절 말씀입니다. 
“여러 사람의 말이 우리에게 선을 보일 자 누구뇨 하오니 여호와여 주의 얼굴을 들어 우리에게 비추소서”

다윗을 따라, 피난길에 오른 자들 중에는 인생에게 좋은 것으로 채워주시는 하나님을 바라보지 못하고, 다만 자신들의 절망적인 처지만을 바라보고, 탄식하고 있는 이들도 있었습니다. 
보이지 않는 것을 믿으려 하기 보다 보이는 것을 따라 살려고 하는 이들이 있습니다. 
하나님을 보지 못한 채, 눈에 보이는 부귀와 영화를 추구하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무엇에도 만족함을 느끼지 못하고, 그들의 입을 벌리고, 그들의 공허한 마음을 채우고자, 사방을 두리번거리며 살아가는 이들이 있습니다. 

우리는 마음 속에 일어나는 회의와 불안을 극복하고,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합니다. 
눈에 보이는 대적들의 공격을 피해야 하는 동시에, 마음 속에 일어나는 의심의 생각들을 극복해야 합니다. 외부의 적 뿐만 아니라, 내부의 적도 조심해야 합니다. 
다윗이 이런 의심의 생각을 물리칠 수 있었던 근거는 바로 하나님의 말씀이었습니다. 
하나님은 제사장에게 이스라엘 백성을 이렇게 축복하라고 말씀하셨습니다. 
“여호와는 네게 복을 주시고 너를 지키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의 얼굴을 네게 비추사 은혜 베푸시기를 원하며 여호와는 그 얼굴을 네게로 향하여 드사 평강 주시기를 원하노라”(민 6:24-26)
다윗은 곤경에 처하게 되자, 이 말씀을 기억하고, 의심을 물리치게 되었던 것입니다. 
그리하여, 다윗은 주의 얼굴빛이 자기 무리에게 비취기만 하여도, 좋은 것이 풍성하게 임할 것이라고 확신하였습니다. 

우리가 아버지와 그분의 아들 예수 그리스도와 끊임없이 교제를 나눌 수 있다면, 얼마나 좋겠습니까? 주님의 얼굴빛이 우리에게 비취기만 하여도, 우리는 기쁨 가득하여 어찌 할 바를 모를 것입니다. 

7절 말씀입니다. 
“주께서 내 마음에 두신 기쁨은 그들의 곡식과 새 포도주가 풍성할 때보다 더하니이다”

우리는 주님으로부터 좋은 것을 받았습니다. 그것은 마음 깊은 곳에까지 미치는 기쁨입니다. 이 기쁨은 인생들이 권세자에게 아부함으로 누리는 물질적인 풍요로움이나 그 권세보다도 더 영광스럽고 좋은 것이었습니다. 이 기쁨이 그러한 것들보다 더 좋은 이유는 그것이 아무도 빼앗아 갈 수 없는 안전한 것이기 때문입니다. 

우리 마음 속에 계시는 그리스도는 곡간의 곡식보다, 술통의 포도주보다 더 나은 분이십니다. 
곡식과 포도주는 이 땅에서 나는 열매에 불과하지만, 하나님으로부터 오는 기쁨은 영원한 것입니다. 
“주께서 나와 함께 하십니다”라는 고백이 “내 곡간이 가득 찼나이다”라는 말보다 훨씬 더 복된 말입니다. 
내 곡간이 모두 빈다 해도, 예수 그리스도께서 내게 미소를 보내신다면 내 복은 넘치는 것입니다. 
그러나, 내가 세상을 소유했다 할지라도. 주님이 없다면, 나는 가련하고 가난한 자에 불과할 뿐입니다. 

8절 말씀입니다.
“내가 평안히 눕고 자기도 하리니 나를 안전히 살게 하시는 이는 오직 여호와이시니이다”

하나님께서 주신 기쁨이 고위층의 인사들(사람의 아들들)이 누리는 물질적인 축복보다 더 좋습니다. 
다윗은 이 기쁨으로 인해, 극한 곤란 가운데서도, 아무런 두려움 없이, 평안히 누워 잘 수 있었던 것입니다. 
다윗이 대적의 무서운 공격 앞에서 평안히 누워 잘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의 도우시는 은총 때문이었습니다. 특히 “오직”이라는 말은 다윗이 하나님 외에 다른 어떤 것의 도움을 바라지 아니했음을 보여주고 있습니다

세상의 번잡스러운 소리를 들으며, 깨어 있지 않고, 평안한 가운데 누워 잘 수 있는 것은 두려움이 없기 때문입니다. 
하나님의 날개 아래 거하는 자는 다른 커튼이 필요 없습니다. 
여러 가지 건축 자재로 쌓은 벽보다도, 주님께서는 우리에게 더 훌륭한 보호자가 되어 주십니다. 
다윗은 피 흘리기를 좋아하는 원수들의 추적을 받으면서, 딱딱한 땅바닥에서 단잠을 잤습니다. 왜냐하면, “오직” 여호와 하나님만을 믿고, 의지했기 때문입니다. 
하나님과 함께라면, 세상에서 아무도 그와 함께하지 않아도, 안전한 것입니다. 
하나님의 약속처럼 부드러운 베개는 없으며, 그리스도처럼 우리에게 따뜻한 이불은 없습니다. 

오, 주여! 우리로 당신을 의지하며 평안한 안식을 누리게 하소서. 
다윗처럼 우리도 사는 날 동안 평안히 누워 잠자게 하소서. 
그리고, 때가 되면, 우리로 기쁨 가운데, 죽음의 잠을 자게 하시고, 하나님 안에서 영원히 안식하게 하소서. 

잠을 이루지 못했던 날들이 있었습니까?
이제는 “오직” 주님을 의지함으로, 평안한 잠을 잘 수 있기를 바랍니다. 

오늘 하루도, 주님이 주시는 참된 평안을 누릴 수 있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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