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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고픈 이야기-예화

빈곤은 교회의 책임이다-예화모음

작성자김종민|작성시간01.09.25|조회수454 목록 댓글 0
** 빈곤은 교회의 책임이다

유엔 통계에 의하면 세계 인구의 약 사분의 일 가량이 빈곤으로 말미암아 기아 상태에 있다고 한다. 60억 지구 인구 중 27. 2%에 해당하는 16억 2,000만 명이 기아 상태에 있다는 보도이다. 이는 하루에 약 40,000명의 어린이가 기아로 죽고 있는 꼴이 된다. 또한 빈곤인구의 61.6%가 아시아에 살고 있으며 나라별로는 인도가 제일 많은 빈곤 인구를 가지고 있다. 어떤 미래 학자는 지구는 약 110억의 인구가 살아도 넉넉하게끔 만들어져 있다는 분석을 내놓았다. 그런데 소득의 불균형과 인간의 자연 파괴로 말미암아 인간 스스로가 빈곤이라는 자업자득의 고통을 초래했다.
기독교는 획실히 세계의 기아문제에 책임이 있다. 더욱이 교회는 이 문제에 책임의식을 가지고 적극적인 자세로 대처해 나갈 필요가 있다. 오병이어의 사건에서 예수님께서는 제자들이 아무 것도 가지고 있지 않은 것을 아셨지만 "너희가 먹을 것을 주라"고 하셨다. 이 말씀은 아무리 없어도 먹을 것을 주어야 하는 책임이 우리에게 있음을 말씀하시는 것이다. 또한 주님이 가르치신 기도에서 "우리에게 일용할 양식을 주소서"라는 간구가 비중있게 나오고 있다. 이 말씀은 온 세계인들을 향해 그 날에 족한 양식을 달라고 기도하라는 가르침이다. 이 기도는 우리가 남의 것을 빼앗을 만큼 욕심을 부리지 않겠다는 기도이며 나의 양식만 아니라 모두의 양식에 관심을 가지겠다는 약속이기도 하다.
- 작은 것이 아름답습니다/ 이성희

주님께서 ‘내게로 가져오라’고 명하시는 나의 작은 능력은 무엇입니까?
넉넉히 채우시는 주님께 내가 구할 것은 무엇입니까?

** 정도를 지나치면

다음의 진술들은 하나님이 만드신 유익한 것이지만 자칫하면 하나님의 뜻을 벗어나 죄의 결과를 초래하기 쉬운 것들이다.
* 육체적 휴식이 게으름이 된다.
* 침묵이 대화 부재가 된다.
* 이익을 취할 수 있는 능력이 탐욕과 욕심이 된다.
* 인생을 즐기는 것이 무절제가 된다.
* 다른 사람의 소유물에 관심을 갖는 것이 탐심이 된다.
* 음식을 즐기는 것이 탐식이 된다.
* 자신을 돌보는 것이 이기주의가 된다.
* 대화가 잡담이 된다.
* 신중함이 불신이 된다.
* 긍정적인 태도가 무감각이 된다.
* 사랑이 과잉보호가 된다.
* 민감한 양심이 완전주의가 된다.
* 관대함이 낭비가 된다.
* 조심성이 두려움이 된다.
- 이제 자유입니다/ 닐 앤더슨

내가 벗어나고 떠나야 할 세상 영광의 유혹은 없는가?
나는 모든 상황을 주께 맡겨드리고 있습니까?

** 10인 10색 예배시간

1. 설교시간에 멀거니 강단을 응시하는 멀대파(눈은 목사님, 생각은 멀리 출장중)
2. 주보에 밑줄 긋고 교정까지 보는 꼼꼼파
3. 졸면서 끄덕끄덕 콤마를 찍는 아멘파
4. 수시로 시계를 들여다 보는 안절부절파
5. 옆 사람과 글로 대화하는 청각장애파
6. 예배 후에 있을 회의만을 생각하는 회의 염려파
7. 설교시간에만 성경 읽기로 시간 떼우는 나 홀로파
8. 찬송 부를 때 입만 벙긋대는 붕어파
9. 기도시간의 틈을 노려 묵상(?)에 잠기는 기회주의파(어휴, 어제 못잔 잠 보충해야지)
10. 누가 왔나, 안왔나 두리번거리며 인원 체크하는 경비파(주로 각 기관의 회장들에게서 나타나는 증세)

당신은 어떤 유형?
우리 모두가 하나님께 신령과 진정으로 예배드리는 순정파가 됩시다!
-날나리 세상! 닐니리 교회?/정지미

내가 하나님 말씀에 비추어 버려야 할 편견과 전통은 무엇입니까?
하나님을 섬긴다는 이유는 인간관계를 잘못하지는 않습니까?

** 하나님은 기도를 들으시고 언제나 응답하시는가?

우리가 만일 "하나님은 언제나 기도를 들으시고 응답하신다"라고 말하지 않고 그와 다르게 말한다면 그것은 웬지 하나님의 영광을 욕되게 하는 말처럼 들린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들 마음 속 깊은 곳에서는 낮은 목소리로 이런 속삭임이 일곤한다. "하지만 아무런 응답도 없는 것처럼 보인 경우들도 더러 있었어."
또한 기도 응답에는 분명 응답이긴 한데 기대했던 것과 다른 방식으로 주어지는 응답이 종종 있다. 곧 기대와는 다른 응답이다. 주님을 안지 꽤 시간이 흐른 크리스천이라면 대부분이 다 하나님께서 기도에 응답을 하시되 자기가 생각했던 것과 전혀 다른 방식으로 응답하신 경우들을 큰 기쁨으로 되돌아보곤 한다. 어거스틴의 경우도 그랬다.
젊었을 때 어거스틴은 아주 고집스럽고 방탕한 삶을 살고 있었다. 그의 경건한 어머니 모니카는 아들을 위하여 쉬지 않고 기도했다. 그즈음 아들이 이탈리아로 간다는 말을 듣고 모니카는 그것이 아들의 파멸을 부채질 하는 것이 되지 않을까 몹시 걱정이 되었다. 그래서 그녀는 하나님께서 막으셔서 아들이 이탈리아로 가지 못하게 해주실 것을 위해 기도했다. 그녀는 온밤을 꼬박 새우며 기도했다. 그러나 바로 그 밤, 어거스틴은 계획대로 배를 타고 이탈리아에 도착했다. 어거스틴은 바로 그곳에서 암브로스를 만나게 되고 주 예수를 개인적으로 믿어 회심하게 된다. 어거스틴은 어머니의 기도에 관한 당시의 일을 이렇게 아주 적절하게 요약하여 표현했다. "하나님은 어머니의 기도대로 응답하시진 않았지만 어머니의 소원을 이루어주셨다."
-기도는 호흡입니다, 밴 듀런

다른 사람의 구함은 허락이 되도 너의 구함은 안돼”라는 말을 들은 적이 있습니까?
믿음 중에 간구하면서도 구한 것들에 대한 확신이 없습니까? 그 이유는 무엇입니까?

** 설교자 빌리 그레이엄

집회 장소는 작았고 앞쪽에 놓인 철제 난로가 춥고 바람 부는 밤의 냉기를 녹여 주고 있었다. 40명 가량의 교인들 중에는 작업복 차림의 농장주와 카우보이들과 그 아내들이 눈에 띄었다. 드디어 조그만 보스트윜 침례교회 강단으로 걸어나갈 순간이 오자 무릎이 떨리고 손에 땀이 났다. 우선 네 편이 설교 중 1호로 시작했다. 시작하자마자 끝나버린 것 같았다. 그래서 2호로 넘어갔다. 이어 3호. 4호. 네 편의 설교를 몽땅 전하는 데 8분밖에 걸리지 않았다.
.............................(중략)
나는 옛날 사람들이 그리스도를 기다리던 상황을 교인들에게 온몸으로 목청껏 설교하고 있었다. "천 년이 지나도 그리스도는 오지 않았습니다!" 잠시 긴장된 침묵. "2천년이 지나도 그리스도는 오지 않았습니다!" 다시 긴장된 침묵. 그렇게 '7천년'까지 이어져서 다시 긴장된 침묵이 흐르고 있는데 강단 위 내 뒤쪽에 있던 웬델이 말했다. "그만 해!" 화가 난 나는 집에 오는 길에 물었다. "아까 설교할 때 나더러 그만 하라고 했지 그거 무슨 뜻인가?" 그러자 그는 말했다. "글쎄, 어셔 대주교의 창세기 연보에 따르면 아담이 창조된 후 역사는 6천 년 밖에 되지 않았어". "적어도 만년까지는 갈 참이었는데. 설교가 잘 나가고 있었거든!" 내 대답이었다.
................(중략)
과연 평생 설교자가 될 것인가? 결국 어느날 밤 골프장 한 구석에 무릎을 꿇었다. "오 하나님, 하나님께서 원하신다면 하나님을 섬기겠습니다."
-빌리 그레이엄 자서전/ 설교자로의 부르심 중에서


주님 앞에 내어놓아야 됨을 알면서도 아직도 그렇지 못한 것은 무엇 때문입니까?
과거에 주님의 능력을 많이 보고서도 그 역사를 잊고 현재 불안해하지 않습니까?

** 세상과 싸워 이기는 리더십 전략

1. 수시로 지도자로서의 역할에 영향을 미치는 세상적인 성공에 대한 내 자아의 욕구와 충동을 허락하였음을 인정한다.
2. 하나님이 나의 리더십의 동기와 생각과 행위들을 예수님이 모델로 보여 주신 섬기는 리더십으로 변형시키실 수 있음을 믿는다.
3. 나의 리더십에 대한 노력을 하나님께로 돌려, 예수님의 제자가 되고 예수님이 보여 주신 섬기는 리더십으로 바꾸기를 결심한다. 또한 섬기는 리더십과 일치하지 않는 나의 리더십의 동기, 생각, 행위 등을 자세히 조사하여 목록을 만든다.
4. 나는 예수님을 자랑스럽게 하지 못한 행동을 할 때 하나님께, 나 자신에게 그리고 적어도 다른 한 사람에게 나의 리더십의 부족한 부분을 인정한다.
5. 하나님이 내 리더십에 틈을 만드는 모든 성격적 결함을 제거해 주시는 것에 대해 믿는다. 또한 나의 단점을 제거해 달라는 것과 명성, 능력, 탐욕의 유혹에 대항하여 강하게 해달하고 겸손히 하나님께 기도한다.
6. 나는 나의 자기 중심적 리더십에 의해 상처를 입은 사람들의 목록을 작성하고 기꺼이 그 모든 사람들에게 보상한다.
7. 홀로 있는 훈련, 기도훈련, 성경 연구의 훈련들을 함으로써 나는 나의 섬기는 리더십을 위한 노력들을 예수님이 모델로 보여 주신 것에 일치시키고 나의 리더십을 행하면서 직면하게 될 사람들에게는 먼저는 그들의 종이요, 그 다음에 그들의 지도자가 되는 방법들을 계속 추구한다.
-이야기로 푸는 예수님의 리더십/ 빌 하이벨스외 2인

오늘 내가 천기가 아니라 영적인 진리를 깨달아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주님 안에 있으면서도 그것을 방해하는 '누룩'은 무엇입니까?

** 거룩한 소문

우리는 미디어를 의식하는 세대에 살고 있다. 우리는 매스 미디어가 대중의 정신에 어떤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잘 알고 있다. 우리는 복음 전도를 위해 인쇄물과 테이프, 녹음기와 비디오로, 라디오와 텔레비전으로 세상을 복음으로 흠뻑 적시고 싶어한다. 그리고 그런 마음을 갖는 것은 옳다. 원칙적으로 어느 누구도 이러한 야망에 대해 이의를 제기해서는 안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또 다른 방법이 있다. 이것은 훨씬 더 효과적인 방법이다. 그것은 복잡한 전자 기계 장치를 필요로 하지 않는다. 매우 간단하다. 조직화된 것도 아니고 전산화된 것도 아니다. 비용도 들지 않는다. 우리는 그것을 '거룩한 소문'(Holy gossip)이라고 부를 수 있다. 그것은 좋은 소식이 사람들에게 주고 있는 영향을 흥분하여 입에서 입으로 전달하는 것을 말한다.
"아무게가 하나님을 믿고 완전히 변화된 것을 아세요?. 이상한 일들(?)이 일어나고 있대요."
- 진정한 기독교/ 존 스토트

오늘 나의 주님에 대한 신앙 고백은 어떤 내용이어야 합니까?
신앙고백은 세상특권의 포기이고 천국특권의 획득이라는 것을 알고 있습니까?

** 십자가를 져야만 하는 이유

"자기를 부인하고 제 십자가를 지고 나를 따르라"(마 16:24)하신 주님의 말씀은 많은 사람에게 견디기 어려운 말처럼 생각된다. 그러나 우리 주님이 심판주로 다시 임하실 때는 십자가의 표가 하늘에 나타날 것이다. 그때에 십자가를 따르는 모든 종들은 십자가에 달려 돌아가신 분과 함께 같은 생활을 했던 사람으로 저들의 심판주 되시는 그리스도 앞에 자신만만하게 설 것이다.
그런데 왜 당신은 하나님 나라로 들어가는 첩경이 되어 있는 십자가 지기를 무서워하고 있는가? 십자가에 하늘나라의 행복된 맛이 숨어 있다. 생명과 참 내적인 평화를 얻는 길은 십자가의 길과 날마다 나를 부정하는 생활 이외에는 없다. 당신의 뜻대로 소원대로 모든 일을 정리한다고 해도, 원하든 원치 않든 간에 당신은 아직도 더 참고 견디어야 할 고통을 발견할 것이다. 그래서 당신은 육체적으로 고통을 느끼기도 하고 또한 정신과 마음의 고통을 받게 될 것이다.
그리스도께서 십자가의 고통을 받으신 것만큼 큰 고통을 사람은 당할 수 없다. 그러나 우리의 십자가는 언제나 우리 앞에서 우리를 기다리고 있다. 만일 참된 평안을 당신 속에 간직하고 영원한 면류관을 받으려고 하면 당신은 어느 곳에서나 참아야 한다. 당신이 즐겨 십자가를 지면 그 십자가가 당신을 져 줄것이고 그 십자가가 마침내 당신이 원하는 목적지로 인도할 것이니 당신은 조금도 괴로워할 필요가 없다. 십지가와 시험 없이 그 생을 마친 성자가 어디 있는가? 우리 주님도 살아계신 동안 슬픔과 고통이 없는 생을 보내지 않았다. 만일 그대가 고난을 받는 길을 피하려고 할 때 당신은 큰 잘못을 범하고 있는 것임을 기억하라. 많은 환난을 받은 연후에 하나님 나라에 들어갈 수 있기 때문이다(행 20:22).
-그리스도를 본받아, 토마스 아 켐피스

나는 영적 상태에 따라 단계적으로 지혜롭게 말씀을 배우며 가르치고 있습니까?
내 삶 속에서 십자가의 죽음과 부활의 새 생명이 체험되고 있습니까?
오늘 하루 십자가에 못 박아야 할 것은 한 가지는 무엇입니까?

** 홀로 있기

예수님은 우리들에게 고독과는 다른 홀로 있기를 요청하셨다. 고독은 내적 공허를 가져오지만 홀로 있기는 내적 충만을 만든다.
홀로 있다는 것은 장소라기보다는 마음과 정신의 상태를 의미한다. 그래서 우리는 어느 때든지 마음의 홀로 있기를 할 수 있다. 반면 광야에서 혼자 수도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홀로 있기를 체험하지 못할 수도 있다.
또한 홀로 있기 없이 친교를 원하는 사람은 공허한 말과 감정에 빠지기 쉽다. 그러나 친교 없이 홀로 있기를 추구하는 사람은 공허한 깊은 수렁과 자기 도취와 절망에 빠질 수 있다.
고요함은 때때로 말이 없는 것과 연관되지만 듣는 행위와는 항상 연관이 된다. 하나님의 음성을 듣는 마음 없이 단순히 말을 금하는 것은 고요함이 아니기 때문이다.
우리가 일상생활에서 할 수 있는 할 수 있는 홀로 있기 훈련은 짧은 시간들을 이용하는 것이다. 가족이 일어나기 전 침실에서 가지는 홀로 있기를 생각해 보라. 또 하루의 일과를 시작하기 전 커피를 마시는 짧은 시간의 홀로 있기를 생각해 보라. 아침 출근 시간에 교통이 밀려 자동차가 자주 멈추는 시간의 홀로 있기도 생각할 수 있다. 그리고 꽃이나 혹은 나무를 볼 때에도 회복의 짧은 순간을 즐길 수 있다.
홀로 있기의 또 다른 방법으로 하루 종일 한 마디의 말 없이 생활하기를 시도해 보라. 율법적으로 그렇게 하라는 말이 아니라 일종의 실험으로 그렇게 해보자는 것이다. 이때 당신이 느낄 수 있는 무력감을 관찰해 보고 전달 수단으로서의 말에 당신이 너무 지나치게 의존하고 있지는 않은지 유의해 보라. 그리고 말에 의존하지 않는 다른 새로운 방법으로 다른 사람들과 소통하는 방법도 찾아보라.
- 영적 훈련과 성장/ 리처드 포스터

연단을 위해 주님께서 주시는 훈련의 시간들을 기쁨과 감사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고난 중에서도 "내 주 그리스도 예수를 아는 지식이 가장 고상함"을 믿습니까?

** 권세욕

권세욕은 교만이나 자부심과 밀접한 관계가 있다 권세욕은 질투와 마찬가지로 가장 나쁜 죄악이다. 권세욕은 파괴력을 가지고 있다. 누구든지 이 죄악 속에 사는 사람은 하나님의 엄한 심판을 받는다. 왜냐하면 권세욕 때문에 우리는 하나님과 그분의 다스림에 반기를 들게 되기 때문이다. 예수님 당시 유대인들과 그들의 지도자들이 예수님께 자리를 양보하지 않았듯이 우리도 권세욕으로 인해 예수님께 자리를 비어드리지 않을 수 있다.
우리가 남을 지도하는 책임을 맡았을 경우, 그것이 자식에 대한 부모들의 책임이라 할지라도 우리는 이런 죄악에 빠질 위험이 크다. 우리가 이런 지배욕에서 벗어나려면 첫째 성령께서 당신이 모르고 있는 지배적인 성향을 드러내 주시도록 간구하라. 둘째, 당신이 지은 나쁜 죄를 뉘우치고 담대하라. 셋째, 가시관을 쓰신 겸손하신 주님께 이렇게 기도하라. "나는 당신 곁에 머물며 이제부터는 당신의 그 겸손하고 온유한 자리를 택하겠습니다. 나는 가정에서나 직장에서나 그밖의 어디서나 다른 사람에게 나의 지위와 권리를 나누어주겠습니다."
이렇게 할 때 당신은 남을 지배하려는 욕망에서 언젠가는 완전히 벗어나게 될 것이다. 아담 자손으로서 우리 모두가 권세욕의 죄를 지어야만 하듯이 이제부터 우리는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그분의 구원으로 말미암아 겸손한 성향으로 들어가야만 한다. 또한 우리는 겸손으로부터 얼마나 찬란한 권세가 나타나는지를 알게 될 것이다.
- 그리스도인의 승리/ 바실레아 슐링크

다른 사람보다 높아진 마음을 무너뜨리기 위해 해야할 일은 무엇입니까?
나의 지체를 의의 병기로 삼기 위해 고쳐야 할 것은 무엇입니까?

** 두 세 사람이면 충분하다

자신이 일하는 직장 안에 그리스도인들이 많지 않을 때는 고독하다는 느낌이나 소외감을 가지기 쉽습니다. 한국 기독교 교인이 전체 인구의 25%나 된다는 데 우리 사무실에는 15명의 직원 중 단 둘만 기독교인이라도 낙심할 필요는 없습니다. 믿는 사람들이 많이 있다면 그만큼 더 힘이 나고 모이기도 수월할 것입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런 외형이 아니라 주님이 그 모임에 함께 하느냐 하는 것입니다. 진정으로 주님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면 두세 사람이 모인 곳에도 주님이 함께 하십니다. 그리스도인들의 모임이 주님께 인정받는 것은 숫자 때문이 아닙니다. 단 두명이라도 일단 모여서 주님이 이름으로 기도하면 바로 그곳에서 직장 속의 교회가 시작되는 것이며 그 기도는 그들이 속해 있는 직장을 움직이는 원동력이 될 것입니다.
모이는 사람들이 너무 적어서 직장 선교회를 조직하기는 어렵다고 포기하지 마십시오. 주님은 기다리십니다. 두세 사람이 주의 이름으로 모여 기도하면서 직장 속에서 크리스천 공동체를 만들기를 기다리십니다.
"두세 사람이 내 이름으로 모인 곳에는 나도 그들 중에 있느니라."
- 출근길 5분 묵상, 방선기

내 안에는 동료 지체들을 향한 사랑과 존경심이 있습니까?
나는 교회 지도자나 형제 자매들의 권면을 두려움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 현명한 사랑

드디어 결혼식날이 왔다. 애나가 오랫동안 꿈꾸어 왔고 참으로 오랫 동안 기다렸 왔던 바로 그 순간이었다. 그러나 목사님이 두 사람에게 서약을 시키려할 때 상상도 못할 일이 일어났다. 젊은 한 여자가 갑자기 일어나더니 걸어 나와 데이비드의 다른 한 손을 잡는 것이었다. 그러자 또 다른 여자가 나오더니 첫 번째 여자 옆에 서고 또 다른 여자가 두 번째 여자 옆에 서고...여섯 명의 여자가 그의 옆에 와서 섰다. 애나는 눈물이 차오르고 입술이 떨렸다. 그리고 데이비드에게 속삭였다. "지금 장난하는 거예요?" "미....미안해, 애나." "도대체 이 여자들은 누구죠? 어떻게 된 거예요?" "옛날 사귀었던 여자들이야. 애나 저 여자들은 이제 나한테 아무 의미도 없어....단지 과거에 한때 마음을 주었던 여자들이야. 저 여자들에게 주고 남은 건 전부 당신 거야." 애나의 빰으로 눈물이 흘러내렸다. 바로 그때 애나는 꿈에서 깼다.
애나는 내게 보낸 편지에 방금 소개한 자신의 꿈에 대하여 썼다. "결혼식 날 내 곁에도 많은 남자들이 나와 설 수 있지 않을까? 나도 잠깐씩 만나면서 내 마음을 준 남자들이 하나둘이 아닌데...과연 남편에게 줄 내 마음이라는 게 남아있기는 한 걸까?"
현명한 사랑은 개인적인 욕망과 순간적인 만족을 넘어 커다란 그림을 본다. 다른 사람들을 섬기며 하나님을 영광 되게 하는 것을 구하며 기다리는 것이다.
-No 데이팅. 조슈아 해리스

나에게 하는 질문들에 성경이 아니라 나의 지식과 지혜로 대답하지는 않습니까?
결혼을 "하나님이 짝지워주신 신령하고 권위 있는 결합"으로 바라보고 있습니까?

** 부의 허무

미국 역사 중에 미국인들의 경종을 울렸던 사건이 하나 있었다. 1923년 어느 날 시카고에 있는 에드워드 비치호텔에서 그 당시 미국 최고의 부자라고 불리는 7명의 사람이 모였다. 그들의 부는 그들의 전 재산을 모두 합칠 때 미국 전체의 국고를 능가할 정도였다. 그런데 어느 신문 기자가 시카고에 모였던 그 날로 시작해서 정확히 25년이 지난 후의 그들의 생애가 어떻게 되었는지 추적하여 발표했다.
"첫 번째 사람이었던 강철회사 사장, 찰스 슈업은 25년 후 무일푼의 거지가 되어 죽었습니다. 두 번째 사람인 알써 카튼은 밀농사로 거부가 된 사업가였는데 그 역시 파산하여 모든 것을 잃어버리고 쓸쓸하고 고독한 가운데 혼자 임종을 맞이했습니다. 세 번째 사람인 리차드 위트니는 뉴욕 은행의 총재였지만 자기를 둘러싼 여러 가지 상황이 잘못되어 감옥에서 고독하게 여생을 보내고 있었습니다. 네 번째 사람인 엘버트 홀은 미국이 재무장관까지 지냈지만 감옥에서 막 풀려 나와 집에서 죽음을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다섯 번째 사람인 웰스프트의 회장이었던 J.C. 리버모아는 인생의 끝을 자살로 마쳤습니다. 여섯 번째 사람인 국제은행 총재였던 리온 프레이져 역시 자살로 자신의 삶을 마쳤습니다. 일곱 번째 사람인 이반 크루컬은 부동산 업계의 거부였지만 자살 미수로 병원에서 치료를 받고 있었습니다."
그들의 인생은 미국인들에게 부의 허무를 알려주는 커다란 충격과 교훈이 되었다.
-짧은 이야기 긴 감동, 이동원

나는 어린이들의 삶에 주님의 선하신 축복의 손길이 임하기를 간구하고 있습니까?
구원의 길은 참 회개와 십자가라는 사실을 믿음으로 진정으로 받아들이고 있습니까?

** 합리적인 생활을 위한 지침들

1. 분수를 알아라. 자신의 나이, 직위, 경제적 능력, 건강 상태, 장점, 단점을 알고 분수에 맞는 행동을 하라.
2. 달성할 수 있는 목표를 세워라. 허황된 목표는 비현실적이다.
3. 수입 내에서만 지출하라.
4. 행동하기 전에 한 번 더 생각하는 습관을 가지라.
5. 남의 요청이나 유행에 끌려 다니지 말아라.
6. 과다한 일과 극단적인 일을 피하라. 과로, 과식, 과욕을 피하고 극단적인 언행을 삼가고 중용을 지켜라.
7. 융통성을 발휘하라. 때로는 계획을 시정하고 조정하는 것이 현명하다.
8. 쓸데없는 걱정은 하지 말라. 기우(杞憂)는 비현실적인 것이다.
9. 감정을 잘 다스려라. 기분에 이끌리지 말고 원칙을 따르라.
10. 완벽주의자가 되려고 하지 말아라. 나도 남도 환경도 불완전한 것이다.
11. 분위기에 맞는 행동을 하라. 자신이 처해 있는 문화와 관습에 맞는 행동을 하는 것이 현명하다.
12. 단순하게 사는 법을 배우라. 삶의 나무에서 쓸데없는 가지들은 쳐 버리라.
- 뛰는 시간, 걷는 직장인? / 유성은

세상을 더욱 소유하고 즐기려는 마음에 강력하게 자리잡고 있지는 않습니까?
주를 위한 헌신의 목적이 세상에서의 칭찬과 존경받음이 아닙니까?

** 바디매오 스케치

소망 없는 우울한 삶을 살던 소경 거지 바디매오와 그의 친구는 어느 날 나사렛 동네에 이상한 청년이 나타났다는 소문을 들었습니다. 장님이 눈을 뜨고 문둥병이 낫고 귀신이 나가고 바다가 잔잔해지고 오천 명이 먹고 남는다는 꼬리를 물고 이어지는 소문을. 그날 그는 동전이나 몇 푼 더 얻을 만한 소식인줄 알았던 발자국 소리가 예수님이 지나가시는 행차의 소리라는 것을 듣게 되었던 것입니다. 순간 체면이 문제가 아니었습니다. 일생 일대 절호의 찬스였습니다. 응급환자는 체면과 자기 지성을 찾지 않습니다. 지금 교통사고로 죽게 된 사람이 점잖케 "저의 병을 좀 고쳐 주실 수 있겠습니까?" 이렇게 말하지 않습니다.
인생이란 영혼이 죽어가는 응급환자와 같은 것입니다. 죽게 된 사람이 무슨 이성이 필요합니까? "주여 우리를 불쌍히 여기소서 다윗의 자손이여!" 이 소리는 많은 사람들의 시끄러운 소리를 뚫고 예수님의 귀에 들릴 만큼 아주 커다란 외침이었습니다.
오늘 그리스도가 지나가신다는 소식은 곳곳에서 들을 수 있습니다. 어느 순간 그리스도께서 우리의 인생에 성령을 통하여 역사하실 때가 있습니다. 우리가 곤궁에 빠졌을 때 하나님이 역사하시기 쉽습니다. 우리가 질병으로 불치병으로 절망 속에 있을 때 하나님은 가까이 오고 계십니다. 이 소경은 그 기회를 놓치지 않았습니다.
-용서의 축복(강해설교 시리즈 10)/ 하용조

소경의 간절한 외침처럼 나의 신앙생활에 주님께 간절함이 있습니까?
주님을 따르는 일에 분주하다는 이유로, 도움이 필요한 영혼에 소홀하지는 않습니까?

** 잡념 제거하기

묵상할 때 자신의 잡념에 사로잡히지 않도록 주의하라. 생각의 불모지나 황무지를 지나다 보면 백일몽이나 악몽과 같은 몽상에 휩싸일 수도 있다. 또한 자신의 문제거리를 묵상할 때에도 늘 위험이 따른다. 당신 자신에 대해 묵상하지 말고 하나님께 초점을 맞추어야 한다. 당신의 내적 사고는 하나님을 찾는 것이어야 한다. 하나님의 말씀에 비추어 묵상해 보는 습관을 발전시켜 나가면 거기에서 당신의 문제에 대한 해답을 얻게 될 것이다.
묵상할 때 잡념에서 해방되려면 묵상은 마음의 방황이 아님을 알아야 한다. 또한 묵상은 형식이 있으며 목적이 있음을 인식해야 한다. 묵상은 목적을 가진 생각이기 때문이다. 그렇다고 근엄한 학술적인 연습도 아니다. 당신이 시도해 볼 수 있는 방법들을 소개한다.
1. 풀어쓰기: 성구를 당신 자신의 말로 다시 써볼 때 흥미있는 내용들을 찾아낼 수 있다. 가능한 한 적은 수의 단어들을 사용하여 이 연습을 해보면 더 큰 축복이 있다.
2. 질문법: 한 구절에 대해서 누가, 무엇을, 언제, 어디서, 왜, 어떻게와 같은 질문들을 던져보거나 그 구절을 생각할 때 마음에 떠오르는 대로 질문들을 써봄으로써 함축되어 있는 내용들을 뽑아낼 수 있다.
3. 기도: 그 구절을 가지고 기도하라. 그리고 그 구절을 통해서 드러난 하나님의 인격에 대해서 찬양하라.
4. 장면 연상법: 성경의 장면을 시각화해보라. 그리고 그 내용 가운데 등장하는 인물의 한 사람이 되어 보라.
-경건의 시간/네비게이토 출판사

나는 주님의 말씀 앞에서 권위와 자존심의 겉옷을 고집하지는 않습니까?
나는 예배의 열광적인 외적 분위기를 중요하게 여기지는 않습니까?

** 행복이란 이런 것이 아니다

도날드 W. 맥컬로우는 ‘가장 어울리지 않는 곳에서 행복 찾기’라는 책에서 행복은 이런 것이라고 이야기하는 것보다 행복은 이렇지 않다고 이야기하는 것이 더 쉽다고 했다.
맥컬로우는 다음과 같은 것들은 행복이 아니라고 한다.
- 자신에게 만족스러운 느낌
- 기분 좋은 느낌
- 자신만만한 느낌
- 뭔가 이룬 듯한 느낌
- 인간의 고통에 초연한 느낌
- 마음대로 해도 될 것 같은 느낌
- 스트레스와 갈등이 없어진 느낌
- 세상의 인정을 받는 느낌
다시 말해, 행복이란 느낌이 아니다. 행복은 하나님과 올바른 관계를 맺을 때 오는 마음 상태이다. 그래서 진정한 행복은 기쁜 느낌이나 기쁘지 않은 느낌 모두를 감당할 수 있을 만큼 강하다. 우리는 누구나 행복해지고 싶어한다. 그러나 행복은 인생의 목표가 아니라, 진정한 목표를 이룬 것, 즉 하나님과의 교제를 맛보는 데서 오는 마음 상태이다.
-분주한 현대인을 위한 짧은 묵상, 라이프 워크/ WTB 엮음

세상 즐거움과 영광을 따르는 마음이 나의 영혼을 마비시키고 있지는 않습니까?
나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향하는 경건한 열망이 살아 있습니까?

** 천로역정의 존 번연

“나는 가끔씩 밧줄을 목에 두른 채 사다리 위에 서 있는 것 같은 느낌이 들었다.” 이것은 1660년대를 싸늘한 감방에 앉아 보내던 존 번연이 자신이 교수형으로 죽을 지도 모른다고 생각했던 그 기억을 후에 다시 떠올리며 했던 말이다. 번연은 하나님께서 주신 복음전도자와 설교자로서의 소명을 포기할 것을 거절한 연고로 투옥되어 12년이라는 긴 세월을 수감자 신세로 보낸다.
다음 세기 복음전도자의 선두에 섰던 존 뉴톤은 그의 생애를 생각하며 ‘주께서 유능한 설교자의 입을 다물게 하시면서 넓은 문을 여시는 데는 우리의 상상을 초월하는 이유들이 있다. 만약 존 번연이 베드포드 감옥에 갇혀 있지 않고 설교를 계속했었다면 그는 자신의 했던 일의 절반도 하지 못했을 것이다’라고 적었다. 그가 그곳에서 쓴 ‘천로역정’은 수세기 동안 그리스도인으로서 순례자의 길을 걸어가는 데 큰 힘이 되어 주고 있기 때문이다.
그는 한때 죽음에 대해 다음과 같은 말을 했다. “내가 이해하지 못했던 두 가지가 있었다. 첫째 노인들이 마치 이곳에서 영원히 살 것처럼 이생의 일들을 추구하는 것을 보았을 때였고 두 번째는 믿는다고 하는 사람들이 남편, 아내, 자녀의 죽음 등과 같은 손실들을 겪을 때 너무 번민하고 낙담하는 것을 발견했을 때였다.” 이 말을 그가 하늘나라에 대해 얼마나 잘 알고 있었는지에 대해 말해준다.
그는 감옥에서 나와 유명한 설교자로서 일하다가 60세에 그가 쓴 천로역경처럼 ‘멸망의 도시’를 떠나 오랫동안 소망해왔던 ‘새 예루살렘’을 향해 떠났다.
- 넘치는 은혜/존번연

나는 예수님만이 이 땅의 유일한 진리 이심을 확신하고 있습니까?
오늘 내가 즉각적으로 순종해야 할 주님의 말씀은 무엇입니까?

** ‘럼스펠드 규칙’

과거 백악관 비서실장, 국방장관 , NATO 대사, 기업체 대표 이사 등 다양한 공직을 경험한 럼스펠드는 복무에 관한 ‘규칙과 성찰, 경구’ 등을 간직했다. 이에 월스트리트 저널이 ‘럼스펠드 규칙’을 최근 공개했다.
**백악관 비서실장의 자세
- 전임자들의 실수를 되풀이하지 말고 독자적인 실수를 저지르라.
- 모른다고 말하는 법을 배워라.
- 일을 그르치면 대통령에게 즉각 보고하고 고쳐라. 이를 지체하면 실책을 더욱 꼬이게 만든다.
- 모든 비난을 무시하고 고개 숙이고 목표를 향해 최선을 다하라.
- 대통령의 측근이 되는 대가가 나쁜 소식을 전하는 것이다. 대통령에게 진실을 전하지 않는다면 당신은 그를 실패자로 만든다.
- 전임, 후임자를 욕하지 말라. 그들의 처지에 있어 본 적이 없지 않은가?
** 백악관에서 일하는 사람들을 위한 충고
- 대통령에게 사람과 쪽지 등이 전달되는 것을 지나치게 막아서는 안된다.
- 누구든 대통령과 생각이 다르다는 이유로 말할 기회를 박탈하거나 회의에서 제외시키지 말라.
- 다양한 견해를 듣고 배우라.
- 결재를 미루는 것은 결국 남의 급한 처지를 무시하는 것이다.
- 항상 빠진 것을 찾으라. 많은 대통령 보좌관들은 제안된 것을 어떻게 개선하는가만을 예기할 뿐이며, 뭐가 빠졌는지는 거의 보지 못한다.
- 부시 자서전, 맡아야 할 본분/ 조지 W. 부시

내가 누리는 평강이 하나님의 오래 참으심 때문임을 기억하고 있습니까?
나를 향한 권면과 책망의 말씀을 들을 때 겸손함으로 그것을 받아들입니까?

** 기독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

그리스도인들이 사회에서 일할 때 자기의 일에 대해서는 개인적으로 성심껏 기도하지만 그가 하고 있는 일의 목적과 계획과 정책들에 대해서는 기독교적인 것과는 거리가 멀다. 왜냐하면 그는 기독교적으로 그 일들을 생각하지 않기 때문이다. 도리어 그들은 효과적으로 일을 처리하기 위해 자기 정신을 세속적으로 생각하도록 훈련하고 있다. 그래서 그리스도인들은 그가 하고 있는 일의 영역에 대해서 기독교적으로 생각하는 습성을 훈련해야만 한다.
세속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이땅에서의 우리의 삶으로만 한정적으로 생각한다는 것이다. 그것은 또한 이 세상적 판단 기준틀에 뿌리를 둔 계산법을 고집하는 것이다. 반면에 기독교적으로 사고한다는 것은 모든 일을, 구속받고 선택된 하나님의 자녀로서 영원과 관련시켜 받아들이는 것이다.
예를 들면 당신은 가장 거룩하다고 생각하는 성찬식에 대해서 기독교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고 세속적으로 사고할 수도 있다. 아무리 하찮고 세상적이며 심지어 악한 것이라 할지라도 기독교적으로 생각될 수 없는 것은 하나도 없다. 또한 아무리 거룩하다고 할지라도 세속적으로 생각될 수 없는 것은 없다.
여기서 세속적이란 곧 시간에 매인 우주 속에서 지나가 버리고마는 육체와 정신 속에서만 모든 일들이 고려되는 것을 말한다. 현대의 세속적 사고는 현재를 초월한 다른 모든 실체를 완전히 무시한다. 즉 세속적 사고는 이 세상을 유일한 것으로 취급한다.
반면 기독교적 정신은 현세만을 보고 마는 것이 아니라 내세까지도 계산에 넣는다. 또한 인간의 생명과 인류 역사를 하나님의 손안에 있는 것으로 보는 것을 말한다.
우리가 그리스도인으로서 사회, 정치, 문화에 영향을 줄 수 있으려면 오랜 시간 동안 이런 기독교적 가치관과 사고를 훈련해야만 한다.
-그리스도인은 어떻게 사고해야 하는가?/헤리 블레마이어

나는 적극적으로 영혼을 견고히 세우는 일에 힘을 쏟고 있습니까?
나는 한 국가의 국이면서도 소홀히 하는 의무는 없습니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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